시인 최영미(58)는 긴 터널을 지나왔다. 2017년 9월 한 계간지에 원로 시인 고은(본명 高銀泰)을 암시하는 ‘괴물’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파문은 일파만파, 문단은 발칵 뒤집혔다. 소송은 2년을 끌며 이어졌다.
2019년 11월 8일 서울고법 민사13부(김용빈 부장판사)는 고은 시인의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1심에 이어 2심도 최 시인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최 시인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특별히 허위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이 정당하다”고 했다. 재판이 끝나고 최 시인은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해 건질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통쾌하다”고 말했다. 시인의 통쾌함에 많은 이가 같은 기분을 느꼈으리라.
기자는 노벨상을 ‘노털상’으로 야유를 보낸 시 ‘괴물’을 다시 읽어보았다.
〈…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중략)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중략)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이렇다.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 시인은 ‘괴물’이란 시를 발표하면서도 ‘괴물’을 잡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왜? 어마어마한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긴 터널의 시간을 보내며 괴물과 맞섰다. 어쩌면 거대한 문단 전체와 맞서야 하는 싸움이었다. 거칠고 외로웠을 그 시간이 문학적 완성으로 채워질 것이란 기대가 든다.
최영미의 데뷔작인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다시 펼쳐보았다.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괴물’과의 싸움 이후가, 묘하게 이 데뷔작과 닿아 있음을 느낀다. 부르다 만 노래를 고쳐 부르는 시인을 2020년에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괴물’ 이후 최영미는 문학의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섰다. 벌써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푸른 시절로 돌아가 있다.⊙
2019년 11월 8일 서울고법 민사13부(김용빈 부장판사)는 고은 시인의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1심에 이어 2심도 최 시인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최 시인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특별히 허위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이 정당하다”고 했다. 재판이 끝나고 최 시인은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해 건질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통쾌하다”고 말했다. 시인의 통쾌함에 많은 이가 같은 기분을 느꼈으리라.
기자는 노벨상을 ‘노털상’으로 야유를 보낸 시 ‘괴물’을 다시 읽어보았다.
〈…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중략)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중략)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이렇다.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 시인은 ‘괴물’이란 시를 발표하면서도 ‘괴물’을 잡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왜? 어마어마한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긴 터널의 시간을 보내며 괴물과 맞섰다. 어쩌면 거대한 문단 전체와 맞서야 하는 싸움이었다. 거칠고 외로웠을 그 시간이 문학적 완성으로 채워질 것이란 기대가 든다.
최영미의 데뷔작인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다시 펼쳐보았다.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괴물’과의 싸움 이후가, 묘하게 이 데뷔작과 닿아 있음을 느낀다. 부르다 만 노래를 고쳐 부르는 시인을 2020년에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괴물’ 이후 최영미는 문학의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섰다. 벌써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푸른 시절로 돌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