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시절 이슬람성원 지나가다가 관심… 三位一體와 原罪 부인, 청결 강조가 신선하게 느껴져 入敎”
⊙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도 IS 만행은 용납될 수 없어”
⊙ “예멘 난민 문제는 정부가 열어준 문이니,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
⊙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도 IS 만행은 용납될 수 없어”
⊙ “예멘 난민 문제는 정부가 열어준 문이니,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
- 사진=조현호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내려 우사단길로 접어들었다. 서울이슬람성원(聖院)을 찾는 것은 17년 만이다. 2001년 9·11테러사건 직후에도 ‘한국의 이슬람’에 대해 취재하기 이곳을 찾았었다. 우사단길 입구에 붙어 있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이 눈길을 끈다.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아랍어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성원이 있는 우사단로 10길에는 아랍어가 병기된 이슬람 종교용품점, 여행사, 환전소, 할랄음식점 등이 늘어서 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여성 관광객들, 서남아나 중동 등지에서 와서 눌러앉은 것으로 보이는 남성들도 보였다. 몇 년 전 여행했던 제네바의 거리가 생각났다. 북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온 무슬림(이슬람교도)들과 흑인들이 몰려 있는 거리였다. 제네바의 중앙역인 코르나방역에서 불과 10분 거리였는데도, 그곳만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물론 이슬람성원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느낌을 주는 거리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17년 전보다 이슬람 색채가 훨씬 짙어진 것 같았다.
이주화(李周和·55) 이맘(Imam·이슬람의 예배 인도자로 기독교의 목사와 비슷한 존재)과는 구면이었다. 17년 전 찾았을 때 그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사무차장이었다. 이주화 이맘도 어렴풋이 기자가 기억나는지 “언제 한 번 오신 적이 있는 분인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17년 전, 9·11테러 직후에 ‘한국의 이슬람’에 대해 취재하러 왔었다”고 하자, 이 이맘은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요?”라고 했다.
이주화 이맘을 만나기로 한 것은 ‘예멘난민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관심이라기보다는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공포증)’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주화 이맘도 그런 사회의 시각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인터뷰에 응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했다. 인터뷰 내내 그런 태도가 그대로 나타났다. 우선 쉬운 질문부터 시작했다.
국내 유일한 한국인 이맘
― 이맘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예배 인도자’라고 하던데, 기독교의 목사 같은 건가요.
“이슬람에는 성직자(聖職者), 특히 가톨릭의 신부(神父)나 불교의 스님처럼 세상과 떨어져서 활동한다는 의미에서의 성직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업무, 즉 설교·예배·결혼·장례 등을 주관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의 성직자는 존재하죠. 그게 이맘입니다. 이맘은 아랍어 ‘앞쪽’ ‘앞에’라는 의미의 ‘이마마’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도, 그의 뒤를 이은 칼리파(후계자)들도 이맘이었습니다.”
― 목사는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고시(考試)에 합격한 후 부목사 생활을 거쳐 안수를 받아야 목사가 되는데, 이맘은 어떻게 되나요.
“대중의 추대(推戴)에 의해 됩니다. 이건 예언자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칼리파 아부 바크르 이래의 전통입니다. 이슬람공동체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는 초대(初代) 윤두영 이맘부터 신자들 가운데 이슬람에 대해 좀 더 많이 공부하신 분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 이주화 이맘은 몇 대째입니까.
“5대째입니다. 제 앞에는 윤두영·문세주·윤창영·이행래 이맘이 계셨죠.”
― 이맘에 정년이 있습니까.
“65세입니다. 한국이슬람교 회칙에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 이맘은 몇 명이나 됩니까.
“한국인 이맘은 저 하나이고, 외국인 이맘이 15명입니다.”
“국내 무슬림 수는 내외국인 합쳐 14만명 정도”
― 지금 한국 내 무슬림 수(數)는 얼마나 됩니까.
“내외국인 합쳐서 14만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중 외국인 신자가 11만~12만 명 정도입니다. 외국인 신자는 출입국관리본부 통계로 미루어본 것입니다.”
― 한국인 신자 수는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네요.
이 말에 이주화 이맘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신도 수는 그렇지요.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옛날에 입교하신 분들 중에는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자리를 스스로 입교(入敎)하는 젊은이들, 무슬림과 결혼하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분들이 메워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작고 약한 한국인 이슬람세(勢)나, 혹은 내부적으로 조금씩 질적(質的) 변화를 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기를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여기서 ‘옛날에 입교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하다. 이들 대부분은 1970~1980년대 중동(中東) 근로자로 나갔다가 현지에서 ‘급조(急造)’된 무슬림들이었다. 이슬람 성지인 메카나 메디나에서 공사를 하려면 무슬림이 아니면 안 됐기 때문에, 간단한 입교 의식을 치른 후 ‘무슬림’이 되어 버린 이들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샤하다’라고 하는 신앙고백만으로 무슬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랍어로 “앗슈하두 알라 일라하 일랄라, 와 왓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수룰라(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신이 아니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합니다)”라는 선언만 하면 무슬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 무슬림이 2만~5만명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 때문에 무슬림이 된 이들 중에는 계속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귀국 후 이슬람과 거리를 둔 이들도 많았다.
대학생 때 입교
― 한국인 무슬림들은 교명(敎名)이라는 걸 쓰던데, 가톨릭의 세례명 같은 건가요.
“세례명처럼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정하는 건 아니고요, 좋은 무슬림이 되고 싶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정하는 것입니다.”
― 이주화 이맘의 교명은 무엇입니까.
“압두르 라흐만입니다. 압두르는 아랍어로 ‘종’이라는 뜻이고, ‘라흐만’은 하나님(알라)의 95가지 속성 중 하나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압두르 라흐만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미죠.”
― 어떻게 해서 이슬람을 믿게 됐습니까.
“1984년경이었습니다. 대학생 때였는데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이슬람성원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는 근처에 건물도 많지 않아 이슬람성원이 눈에 확 들어왔었죠. 여러 가지 일에 흥미가 많을 때라 성원에 들어와서 이슬람 선교사들이나 학생들과 영어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슬람을 소개하는 소책자도 받아서 읽어보았습니다. 흥미가 생기더군요.”
― 무엇이 흥미로웠습니까.
“기독교에 조금 관심이 있을 때였는데, 3위1체(三位一體)나 원죄(原罪)를 부인하고, 청결을 강조하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 입교는 어떻게 해서 하게 됐나요.
“얼마 후 선교사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장학생을 선발하는데 지원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장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무슬림이어야 했습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샤하다(신앙고백)를 하고 무슬림이 됐습니다.”
― 가족이나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잘 받아들이지 못했죠. 같이 술을 마시고 어울리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그게 싫어서 방학을 해도 한국에 잘 들어오지 않고 터키 등지를 여행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제 정체성(正體性)을 찾기 위한 방황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 대학에서는 무슨 공부를 했습니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국립이슬람대학교에서 아랍어와 이슬람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17년 전 그를 만났을 때, 무슬림으로서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어보았었다. 그는 “차례(茶禮)를 지낼 때, 아들들이 다른 사촌들과 함께 제사상에 절하려고 하는 걸 막는 게 힘들다”고 대답했다.
― 아드님들은 다 이슬람을 받아들였나요.
“네. 다행히도 ‘알 함무릴라(이슬람 가정)’를 이루고 있습니다.”
― 전에 만났을 때는 없었는데, 턱수염을 기르고 있네요. 수염 기르는 게 무슬림의 의무 중 하나인가요.
“(웃으면서) 어색해 보이나요? 무슬림들은 ‘순나’라고 해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본받으려 합니다.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통일성 속의 다양성
― 이슬람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매력적이었습니까.
“한국 사회에서는 이슬람을 많이 왜곡하고 오해하고 있지만, 세계 어디에나 이슬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슬람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슬람에 이슬람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매력은 통일성과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통일성과 다양성이요?
“이슬람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코란》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원칙을 지키며, 부족·민족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다양성을 인정합니다. 《코란》 제49장 13절을 보면 ‘오, 사람들이여! 실로 우리(알라=하나님)가 너희를 창조하여 남성과 여성을 두고 종족과 부족을 만들었으니, 이는 너희가 서로서로를 알게 하기 위함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또 109장을 보면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 《코란》의 통일성이란 무슨 얘기입니까.
“이슬람은 ‘읽어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난 종교입니다. 《코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 23년 동안 한 언어(아랍어)로 한 사람(무함마드)에 의해 한 지역(메카와 메디나)에서 게시되어 기록된 경전입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달리 한 글자의 첨삭도 없이 1400년 동안 유지 보전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무슬림들은 《코란》의 이런 완전함과 완벽성에 대해 확신하고, 이를 따르는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모든 행동은 《코란》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이슬람의 통일성이 나오는 것이지요.”
무슬림들이 말하는 《코란》의 ‘완전함과 완벽성’은 《코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종(무함마드)에게 경전(《코란》)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모든 찬미가 있을 것이니 그것(《코란》)에는 한 점의 오류도 없느니라(18장 1절)’ ‘오, 무함마드! 너의 주님께서 너에게 전해주신 경전을 읽어라. 어떤 누구도 그분의 말씀을 변경할 수 없으며…(제18장 27절)’라는 구절들이 그것이다.
무슬림은 담배를 피워도 되나?
― 하지만 ‘《코란》은 일자일획(一字一劃)도 고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이슬람 사회의 혁신과 발전을 가로막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샤리아(이슬람법)는 4가지 단계를 거쳐서 해석됩니다. 첫째가 성문화된 하나님의 말씀인 《코란》이고 둘째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입니다. 셋째가 ‘이즈마아’입니다. 이것은 《코란》과 《하디스》 내에서 당대의 이슬람 학자들이 이룬 법리(法理) 해석에 대한 합의를 말합니다. 《코란》과 《하디스》 내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고 학자들 간에 의견일치도 이루지 못할 경우 이슬람 법학자 개개인이 《코란》과 《하디스》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추(類推) 해석하는데, 이를 ‘키야스’라고 합니다. 이 ‘키야스’를 통해 이슬람은 유연하게 시대상황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이주화 이맘은 흡연을 예로 들었다.
“담배에 관한 얘기는 《코란》이나 《하디스》에도, ‘이즈마아’에도 없습니다. 한발리법학파에서는 담배를 《코란》에서 금지하는 마약과 같은 것으로 보아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파에서는 ‘흡연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일이 잘 된다는 사람도 있지 않으냐’면서 ‘그렇다면 꼭 금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주장합니다. 이런 학파에서는 흡연을 ‘마크루후’, ‘즉 가능하면 기피해야 하지만, 부득이 행해도 죄가 되지는 않는 행위’라고 합니다.
이슬람이 이런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은 종교적 가치(價値)와 공동체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소한 문제를 갖고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이슬람 샤리아법과 국가의 실정법(實定法) 가운데는 어떤 것이 우선합니까.
이주화 이맘은 “이건 정말 오해 없게 잘 써주셔야 하는데…”라면서 곤혹스러운 빛을 띠었다.
“무슬림 개개인은 샤리아법을 우선적으로 따라야겠지요. 하지만 이는 ‘도덕법’으로서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주화 이맘은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샤리아법정이 인정되고 있고, 샤리아법이 실정법에 우선한다”면서 “우리는 그런 걸 바랄 수는 없고, 국가의 실정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무슬림은 샤리아법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샤리아법정이 인정되고, 그럴 정도로 이슬람 세력이 강해진 영국을 부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슬람과 유대교
이주화 이맘은 대화하는 내내 ‘알라’ 대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 대해 이주화 이맘은 “‘알라’가 아랍어로 ‘하나님’이라는 뜻”이라면서 “아랍의 기독교인이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알라’라고 칭한다”고 설명했다. 이슬람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에 뿌리를 둔 유일신교(唯一神敎)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 기독교는 예수의 구원(救援), 불교는 부처의 자비(慈悲)와 깨달음에 대한 종교라는 식으로 이슬람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어떤 종교입니까.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럼 유대교·기독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 이전의 유일신교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모두 ‘성서(聖書)의 백성’으로서 존중하고, 이브라힘(아브라함)·무사(모세) 등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와 사도(使徒)들도 받아들입니다.”
― 그럼 이슬람은 유대교와 어떤 점에서 다른 겁니까.
“유대교는 한마디로 선민(選民)사상입니다. 반면에 이슬람은 ‘선민은 없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만 있으면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코란》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인류는 모두가 아담과 이브의 자손으로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입니다. 아랍인이 비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또한 비아랍인이 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흑인 또한 백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우열(優劣)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경외심에 있습니다. 또한 모든 무슬림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이며 무슬림들은 모두가 하나의 움마(공동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하나, 유대교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슬람은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수태(受胎)해서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예수는 神이 아니다”
― 그럼 이슬람은 기독교와는 어떤 점에서 다른 것입니까.
“이슬람은 ‘누군가 하나님과 대등한 것을 두고 함께 믿는 것은 실로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코란》). 즉 예수에게 신성(神性)을 부여하는 기독교의 3위1체설은 이슬람으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다신(多神) 행위입니다. ”
이주화 이맘은 “이슬람은 원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담과 이브가 이블리스(사탄)의 꾐에 넘어가 죄를 짓기는 했지만, 그들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잘못을 물어 갓 태어난 순수한 어린 아기에게 원죄를 묻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관용에 반하는 모순이죠.”
예수의 신성도, 원죄도 부정된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해 주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것도 부정된다. 이슬람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인간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많은 예언자·사도 중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인들로서는 펄쩍 뛸 얘기지만, 이런 신학적인 단순명쾌함을 무슬림들은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3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어느 사이에 4시를 훌쩍 넘었다. 이주화 이맘이 시계를 보더니 “예배를 보고 와야 하는데, 기다려달라”고 했다. “기도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길어야 15분 정도”라고 했다. “함께 가서 보겠다”고 했더니, 이주화 이맘은 흔쾌히 승낙했다.
예배(살라트)는 이슬람의 5가지 의무(5行·신앙고백[샤하다], 예배, 단식[사움], 희사[자카트], 성지순례[하지]) 가운데 하나다.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 행한다. 파즈르예배(새벽 예배), 주흐르예배(정오 직후 낮 예배), 아스르예배(오후 예배), 마그립예배(일몰 후 저녁 예배), 이야예배(취침 전 밤중 예배)가 그것이다. 기자가 참관한 예배는 아스르예배였다.
오후 예배 풍경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20여 명 정도였다. 한국인은 이주화 이맘을 포함해서 3~4명 정도로 보였다. 복장은 각양각색이었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작업복 차림, 콤비 차림 등등…. 《코란》 구절을 외우며 엎드렸다가 무릎을 굽히고 일어섰다가 완전히 일어서고, 다시 엎드리고…. 따로 설교 같은 건 없었다. 정장 차림에 맨발을 한 키가 큰 흑인 무슬림이 허겁지겁 달려와 예배에 참석했다. 이런 식으로 예배가 진행되는 사이에도 새로운 예배자들이 계속 동참했다. 예배가 끝날 무렵 보니 30명 정도가 참석한 것 같았다. 이맘 사무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 주마 예배(매주 금요일 행하는 단체예배) 때는 참석자가 얼마나 됩니까.
“1000명 정도 됩니다.”
―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나요.
“산업연수생이나 노동자들도 있고, 외교관들도 많이 참석합니다. 방한(訪韓) 중인 이슬람국가의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 등이 참석하는 일도 있습니다.”
― 설교는 한국어로 합니까.
“한국어·아랍어·영어를 섞어 가며 합니다.”
― 이슬람성원은 전국에 몇 개나 됩니까.
“이제는 30개쯤 됩니다. 부산·광주(廣州), 그리고 안양·안산·김해·창원·구미·파주 등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은 곳에 있습니다.” (한국이슬람 홈페이지에는 서울성원을 비롯해 모두 17개가 소개되어 있다.)
난민, 할랄, 수쿠크
― 예멘난민사태를 계기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봅니까.
“정부가 열어준 문이니,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고…. 말레이시아에 있던 예멘 난민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얘길 듣고 들어왔다는 건데…. 국격(國格)과 국민 보호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 같습니다.”
― 이슬람교 차원에서의 대응은 없었습니까.
“그야말로 인도적 차원에서 약간 도와준 게 있지만, 그렇게 큰 도움은 아니었어요.”
― 예멘난민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이슬람포비아’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내에 들어온 무슬림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한국을 정복하려 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웃으면서) 저는 한국인과 결혼한 무슬림들이 아이를 3명 낳은 것도 별로 못 봤어요. 아이는 1명, 많아야 두 명 갖는데, 한국 여성들과 다를 바 없어요.”
이주화 이맘은 “할랄 음식(‘할랄’은 ‘허용’이라는 의미. 이슬람의 정결의식을 거친 후 《코란》이 정한 방식에 따라 도축한 고기 등으로 마련한 음식) 단지 조성, 수쿠크(이슬람 금융) 허용 입법 등이 특정 종교의 반대로 무산됐는데, 알고 보면 다 근거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할랄인증단지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전북 익산에 식품단지를 조성하면서 그중 일부에서 할랄인증식품을 취급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지, 할랄식품을 위한 독자적인 단지를 만들어 주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할랄 방식에 의한 도축은 이맘이 해야 하고 이맘 한 사람이 들어가면 수천 명의 무슬림이 따라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된다’는 얘기도 근거 없는 것입니다. 할랄 방식에 의한 도축은 이맘이 아니더라도 무슬림이 정해진 방식에 따라 정결하게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슬림이 수천 명씩 따라 들어갈 이유도 없고요.
수쿠크도 그래요. 영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이슬람 금융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건설회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해외에서 이슬람 금융을 많이 조달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걸 테러자금 운운하니…”
“IS 만행 용납 안 돼”
― 무함마드 만평사건, 샤를리 에브도 사건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교와 자유의 문제, 그런 것인 것 같은데…. 자유가 사회악(社會惡)을 초래한다면, 그런 자유가 마냥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
― IS(이슬람국가)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슬림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모두 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종교적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도 그런 만행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등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고유한 목적에 의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코란》에도 ‘만일 누군가 지상에서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는 (선량한) 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살해한 것과 같은 것이며, 만일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을 구한다면 그것은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제5장 32절)’ ‘정당한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살인을 하지 말라(제17장 33절)’라고 나와 있습니다.”
― 몇 년 전 우리나라 학생이 IS에 들어간 사건이 있었죠. 혹시 국내 무슬림 사회에 그와 관련된 소문 같은 건 없었나요.
“우리도 신문을 보고 아는 정도입니다.”
― 영국에서 일어났던 지하철테러 등은 영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 무슬림 2세, 3세들이 극단주의에 물들면서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에 거주하는 무슬림들, 무슬림과 한국인의 결혼이 많아지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영국에서의 테러사건들은 영국 다문화정책의 실패입니다. 우리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지요. 저희도 다른 종교에 비해서는 미약하지만 다문화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너희 모두는 하나님의 동아줄을 잡고 분열하지 말라’
― 기독교나 가톨릭과 어떤 대화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등을 통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종교인평화회의는 7대 종단이 원래 참여하고 있지만, 7+1이라고 해서 이슬람도 (옵서버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현대 한국 이슬람은 6·25 때 터키군에 의해 전래된 이래 이제 6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제 어렵게 홀로서기를 하려는 작고 평화로운 공동체입니다. 이슬람이 중동 건설 진출 등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와 함께하면서 성장해 왔다는 걸 기억하면서, 올바로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 가장 좋아하는 《코란》 구절이 무엇입니까.
“‘너희 모두는 하나님의 동아줄(《코란》)을 잡고 분열하지 말라’(3장 103절)입니다.”
원래 이주화 이맘과의 인터뷰를 기획했을 때에는 이슬람과 관련된 여러 현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있는 인터뷰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주화 이맘은 ‘교과서적 답변’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슬람 원리주의 내지 극단주의와 관련된 질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터키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다행히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선되어서…”라고 한 것이나, 그의 책 《이슬람과 꾸란》에 나오는 9·11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에 대해 “미군과 연합군의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도발 행위는… 재래식 무기로 대항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적할 수 없는 엄청난 횡포와 테러 행위에도 불구하고…”라는 대목에서, 무슬림으로서 오늘날의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여성 관광객들, 서남아나 중동 등지에서 와서 눌러앉은 것으로 보이는 남성들도 보였다. 몇 년 전 여행했던 제네바의 거리가 생각났다. 북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온 무슬림(이슬람교도)들과 흑인들이 몰려 있는 거리였다. 제네바의 중앙역인 코르나방역에서 불과 10분 거리였는데도, 그곳만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물론 이슬람성원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느낌을 주는 거리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17년 전보다 이슬람 색채가 훨씬 짙어진 것 같았다.
이주화(李周和·55) 이맘(Imam·이슬람의 예배 인도자로 기독교의 목사와 비슷한 존재)과는 구면이었다. 17년 전 찾았을 때 그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사무차장이었다. 이주화 이맘도 어렴풋이 기자가 기억나는지 “언제 한 번 오신 적이 있는 분인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17년 전, 9·11테러 직후에 ‘한국의 이슬람’에 대해 취재하러 왔었다”고 하자, 이 이맘은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요?”라고 했다.
이주화 이맘을 만나기로 한 것은 ‘예멘난민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관심이라기보다는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공포증)’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주화 이맘도 그런 사회의 시각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인터뷰에 응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했다. 인터뷰 내내 그런 태도가 그대로 나타났다. 우선 쉬운 질문부터 시작했다.
국내 유일한 한국인 이맘
― 이맘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예배 인도자’라고 하던데, 기독교의 목사 같은 건가요.
“이슬람에는 성직자(聖職者), 특히 가톨릭의 신부(神父)나 불교의 스님처럼 세상과 떨어져서 활동한다는 의미에서의 성직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업무, 즉 설교·예배·결혼·장례 등을 주관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의 성직자는 존재하죠. 그게 이맘입니다. 이맘은 아랍어 ‘앞쪽’ ‘앞에’라는 의미의 ‘이마마’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도, 그의 뒤를 이은 칼리파(후계자)들도 이맘이었습니다.”
― 목사는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고시(考試)에 합격한 후 부목사 생활을 거쳐 안수를 받아야 목사가 되는데, 이맘은 어떻게 되나요.
“대중의 추대(推戴)에 의해 됩니다. 이건 예언자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칼리파 아부 바크르 이래의 전통입니다. 이슬람공동체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는 초대(初代) 윤두영 이맘부터 신자들 가운데 이슬람에 대해 좀 더 많이 공부하신 분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 이주화 이맘은 몇 대째입니까.
“5대째입니다. 제 앞에는 윤두영·문세주·윤창영·이행래 이맘이 계셨죠.”
― 이맘에 정년이 있습니까.
“65세입니다. 한국이슬람교 회칙에 그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 이맘은 몇 명이나 됩니까.
“한국인 이맘은 저 하나이고, 외국인 이맘이 15명입니다.”
“국내 무슬림 수는 내외국인 합쳐 14만명 정도”
― 지금 한국 내 무슬림 수(數)는 얼마나 됩니까.
“내외국인 합쳐서 14만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중 외국인 신자가 11만~12만 명 정도입니다. 외국인 신자는 출입국관리본부 통계로 미루어본 것입니다.”
― 한국인 신자 수는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네요.
이 말에 이주화 이맘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신도 수는 그렇지요.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옛날에 입교하신 분들 중에는 돌아가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자리를 스스로 입교(入敎)하는 젊은이들, 무슬림과 결혼하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분들이 메워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작고 약한 한국인 이슬람세(勢)나, 혹은 내부적으로 조금씩 질적(質的) 변화를 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기를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여기서 ‘옛날에 입교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하다. 이들 대부분은 1970~1980년대 중동(中東) 근로자로 나갔다가 현지에서 ‘급조(急造)’된 무슬림들이었다. 이슬람 성지인 메카나 메디나에서 공사를 하려면 무슬림이 아니면 안 됐기 때문에, 간단한 입교 의식을 치른 후 ‘무슬림’이 되어 버린 이들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샤하다’라고 하는 신앙고백만으로 무슬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랍어로 “앗슈하두 알라 일라하 일랄라, 와 왓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수룰라(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신이 아니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합니다)”라는 선언만 하면 무슬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 무슬림이 2만~5만명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 때문에 무슬림이 된 이들 중에는 계속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귀국 후 이슬람과 거리를 둔 이들도 많았다.
대학생 때 입교
― 한국인 무슬림들은 교명(敎名)이라는 걸 쓰던데, 가톨릭의 세례명 같은 건가요.
“세례명처럼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정하는 건 아니고요, 좋은 무슬림이 되고 싶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정하는 것입니다.”
― 이주화 이맘의 교명은 무엇입니까.
“압두르 라흐만입니다. 압두르는 아랍어로 ‘종’이라는 뜻이고, ‘라흐만’은 하나님(알라)의 95가지 속성 중 하나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압두르 라흐만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미죠.”
― 어떻게 해서 이슬람을 믿게 됐습니까.
“1984년경이었습니다. 대학생 때였는데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이슬람성원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는 근처에 건물도 많지 않아 이슬람성원이 눈에 확 들어왔었죠. 여러 가지 일에 흥미가 많을 때라 성원에 들어와서 이슬람 선교사들이나 학생들과 영어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슬람을 소개하는 소책자도 받아서 읽어보았습니다. 흥미가 생기더군요.”
― 무엇이 흥미로웠습니까.
“기독교에 조금 관심이 있을 때였는데, 3위1체(三位一體)나 원죄(原罪)를 부인하고, 청결을 강조하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 입교는 어떻게 해서 하게 됐나요.
“얼마 후 선교사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장학생을 선발하는데 지원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장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무슬림이어야 했습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샤하다(신앙고백)를 하고 무슬림이 됐습니다.”
― 가족이나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잘 받아들이지 못했죠. 같이 술을 마시고 어울리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그게 싫어서 방학을 해도 한국에 잘 들어오지 않고 터키 등지를 여행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제 정체성(正體性)을 찾기 위한 방황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 대학에서는 무슨 공부를 했습니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국립이슬람대학교에서 아랍어와 이슬람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17년 전 그를 만났을 때, 무슬림으로서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어보았었다. 그는 “차례(茶禮)를 지낼 때, 아들들이 다른 사촌들과 함께 제사상에 절하려고 하는 걸 막는 게 힘들다”고 대답했다.
― 아드님들은 다 이슬람을 받아들였나요.
“네. 다행히도 ‘알 함무릴라(이슬람 가정)’를 이루고 있습니다.”
― 전에 만났을 때는 없었는데, 턱수염을 기르고 있네요. 수염 기르는 게 무슬림의 의무 중 하나인가요.
“(웃으면서) 어색해 보이나요? 무슬림들은 ‘순나’라고 해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본받으려 합니다.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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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주마 예배의 모습. 이맘이 민바르(설교단)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벽감(壁龕)은 메카가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키블라이다. |
“한국 사회에서는 이슬람을 많이 왜곡하고 오해하고 있지만, 세계 어디에나 이슬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슬람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슬람에 이슬람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매력은 통일성과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 통일성과 다양성이요?
“이슬람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코란》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원칙을 지키며, 부족·민족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다양성을 인정합니다. 《코란》 제49장 13절을 보면 ‘오, 사람들이여! 실로 우리(알라=하나님)가 너희를 창조하여 남성과 여성을 두고 종족과 부족을 만들었으니, 이는 너희가 서로서로를 알게 하기 위함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또 109장을 보면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 《코란》의 통일성이란 무슨 얘기입니까.
“이슬람은 ‘읽어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난 종교입니다. 《코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 23년 동안 한 언어(아랍어)로 한 사람(무함마드)에 의해 한 지역(메카와 메디나)에서 게시되어 기록된 경전입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달리 한 글자의 첨삭도 없이 1400년 동안 유지 보전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무슬림들은 《코란》의 이런 완전함과 완벽성에 대해 확신하고, 이를 따르는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무슬림의 모든 행동은 《코란》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이슬람의 통일성이 나오는 것이지요.”
무슬림들이 말하는 《코란》의 ‘완전함과 완벽성’은 《코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종(무함마드)에게 경전(《코란》)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모든 찬미가 있을 것이니 그것(《코란》)에는 한 점의 오류도 없느니라(18장 1절)’ ‘오, 무함마드! 너의 주님께서 너에게 전해주신 경전을 읽어라. 어떤 누구도 그분의 말씀을 변경할 수 없으며…(제18장 27절)’라는 구절들이 그것이다.
무슬림은 담배를 피워도 되나?
― 하지만 ‘《코란》은 일자일획(一字一劃)도 고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이슬람 사회의 혁신과 발전을 가로막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샤리아(이슬람법)는 4가지 단계를 거쳐서 해석됩니다. 첫째가 성문화된 하나님의 말씀인 《코란》이고 둘째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입니다. 셋째가 ‘이즈마아’입니다. 이것은 《코란》과 《하디스》 내에서 당대의 이슬람 학자들이 이룬 법리(法理) 해석에 대한 합의를 말합니다. 《코란》과 《하디스》 내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고 학자들 간에 의견일치도 이루지 못할 경우 이슬람 법학자 개개인이 《코란》과 《하디스》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추(類推) 해석하는데, 이를 ‘키야스’라고 합니다. 이 ‘키야스’를 통해 이슬람은 유연하게 시대상황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이주화 이맘은 흡연을 예로 들었다.
“담배에 관한 얘기는 《코란》이나 《하디스》에도, ‘이즈마아’에도 없습니다. 한발리법학파에서는 담배를 《코란》에서 금지하는 마약과 같은 것으로 보아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파에서는 ‘흡연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일이 잘 된다는 사람도 있지 않으냐’면서 ‘그렇다면 꼭 금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주장합니다. 이런 학파에서는 흡연을 ‘마크루후’, ‘즉 가능하면 기피해야 하지만, 부득이 행해도 죄가 되지는 않는 행위’라고 합니다.
이슬람이 이런 유연성을 인정하는 것은 종교적 가치(價値)와 공동체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소한 문제를 갖고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이슬람 샤리아법과 국가의 실정법(實定法) 가운데는 어떤 것이 우선합니까.
이주화 이맘은 “이건 정말 오해 없게 잘 써주셔야 하는데…”라면서 곤혹스러운 빛을 띠었다.
“무슬림 개개인은 샤리아법을 우선적으로 따라야겠지요. 하지만 이는 ‘도덕법’으로서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주화 이맘은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샤리아법정이 인정되고 있고, 샤리아법이 실정법에 우선한다”면서 “우리는 그런 걸 바랄 수는 없고, 국가의 실정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무슬림은 샤리아법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샤리아법정이 인정되고, 그럴 정도로 이슬람 세력이 강해진 영국을 부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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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세워진 이태원의 서울이슬람중앙성원.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국가들의 지원으로 건립됐다. |
― 기독교는 예수의 구원(救援), 불교는 부처의 자비(慈悲)와 깨달음에 대한 종교라는 식으로 이슬람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어떤 종교입니까.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럼 유대교·기독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슬람은 예언자 무함마드 이전의 유일신교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모두 ‘성서(聖書)의 백성’으로서 존중하고, 이브라힘(아브라함)·무사(모세) 등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와 사도(使徒)들도 받아들입니다.”
― 그럼 이슬람은 유대교와 어떤 점에서 다른 겁니까.
“유대교는 한마디로 선민(選民)사상입니다. 반면에 이슬람은 ‘선민은 없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만 있으면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코란》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인류는 모두가 아담과 이브의 자손으로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입니다. 아랍인이 비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또한 비아랍인이 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흑인 또한 백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우열(優劣)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경외심에 있습니다. 또한 모든 무슬림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이며 무슬림들은 모두가 하나의 움마(공동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하나, 유대교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슬람은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수태(受胎)해서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예수는 神이 아니다”
― 그럼 이슬람은 기독교와는 어떤 점에서 다른 것입니까.
“이슬람은 ‘누군가 하나님과 대등한 것을 두고 함께 믿는 것은 실로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코란》). 즉 예수에게 신성(神性)을 부여하는 기독교의 3위1체설은 이슬람으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다신(多神) 행위입니다. ”
이주화 이맘은 “이슬람은 원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담과 이브가 이블리스(사탄)의 꾐에 넘어가 죄를 짓기는 했지만, 그들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잘못을 물어 갓 태어난 순수한 어린 아기에게 원죄를 묻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관용에 반하는 모순이죠.”
예수의 신성도, 원죄도 부정된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해 주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것도 부정된다. 이슬람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인간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많은 예언자·사도 중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인들로서는 펄쩍 뛸 얘기지만, 이런 신학적인 단순명쾌함을 무슬림들은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3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어느 사이에 4시를 훌쩍 넘었다. 이주화 이맘이 시계를 보더니 “예배를 보고 와야 하는데, 기다려달라”고 했다. “기도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길어야 15분 정도”라고 했다. “함께 가서 보겠다”고 했더니, 이주화 이맘은 흔쾌히 승낙했다.
예배(살라트)는 이슬람의 5가지 의무(5行·신앙고백[샤하다], 예배, 단식[사움], 희사[자카트], 성지순례[하지]) 가운데 하나다.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 행한다. 파즈르예배(새벽 예배), 주흐르예배(정오 직후 낮 예배), 아스르예배(오후 예배), 마그립예배(일몰 후 저녁 예배), 이야예배(취침 전 밤중 예배)가 그것이다. 기자가 참관한 예배는 아스르예배였다.
오후 예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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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 예배 후의 이슬람성원 풍경. 이슬람성원은 예배의 장소일 뿐 아니라 만남의 광장이기도 하다. |
― 주마 예배(매주 금요일 행하는 단체예배) 때는 참석자가 얼마나 됩니까.
“1000명 정도 됩니다.”
― 어떤 사람들이 참석하나요.
“산업연수생이나 노동자들도 있고, 외교관들도 많이 참석합니다. 방한(訪韓) 중인 이슬람국가의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 등이 참석하는 일도 있습니다.”
― 설교는 한국어로 합니까.
“한국어·아랍어·영어를 섞어 가며 합니다.”
― 이슬람성원은 전국에 몇 개나 됩니까.
“이제는 30개쯤 됩니다. 부산·광주(廣州), 그리고 안양·안산·김해·창원·구미·파주 등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은 곳에 있습니다.” (한국이슬람 홈페이지에는 서울성원을 비롯해 모두 17개가 소개되어 있다.)
난민, 할랄, 수쿠크
― 예멘난민사태를 계기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봅니까.
“정부가 열어준 문이니,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고…. 말레이시아에 있던 예멘 난민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면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얘길 듣고 들어왔다는 건데…. 국격(國格)과 국민 보호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 같습니다.”
― 이슬람교 차원에서의 대응은 없었습니까.
“그야말로 인도적 차원에서 약간 도와준 게 있지만, 그렇게 큰 도움은 아니었어요.”
― 예멘난민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이슬람포비아’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내에 들어온 무슬림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한국을 정복하려 한다는 얘기도 합니다.
“(웃으면서) 저는 한국인과 결혼한 무슬림들이 아이를 3명 낳은 것도 별로 못 봤어요. 아이는 1명, 많아야 두 명 갖는데, 한국 여성들과 다를 바 없어요.”
이주화 이맘은 “할랄 음식(‘할랄’은 ‘허용’이라는 의미. 이슬람의 정결의식을 거친 후 《코란》이 정한 방식에 따라 도축한 고기 등으로 마련한 음식) 단지 조성, 수쿠크(이슬람 금융) 허용 입법 등이 특정 종교의 반대로 무산됐는데, 알고 보면 다 근거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할랄인증단지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전북 익산에 식품단지를 조성하면서 그중 일부에서 할랄인증식품을 취급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지, 할랄식품을 위한 독자적인 단지를 만들어 주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할랄 방식에 의한 도축은 이맘이 해야 하고 이맘 한 사람이 들어가면 수천 명의 무슬림이 따라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된다’는 얘기도 근거 없는 것입니다. 할랄 방식에 의한 도축은 이맘이 아니더라도 무슬림이 정해진 방식에 따라 정결하게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슬림이 수천 명씩 따라 들어갈 이유도 없고요.
수쿠크도 그래요. 영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이슬람 금융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건설회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해외에서 이슬람 금융을 많이 조달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걸 테러자금 운운하니…”
“IS 만행 용납 안 돼”
― 무함마드 만평사건, 샤를리 에브도 사건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교와 자유의 문제, 그런 것인 것 같은데…. 자유가 사회악(社會惡)을 초래한다면, 그런 자유가 마냥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
― IS(이슬람국가)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슬림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모두 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종교적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도 그런 만행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등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 고유한 목적에 의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코란》에도 ‘만일 누군가 지상에서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는 (선량한) 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살해한 것과 같은 것이며, 만일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을 구한다면 그것은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제5장 32절)’ ‘정당한 이유 없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살인을 하지 말라(제17장 33절)’라고 나와 있습니다.”
― 몇 년 전 우리나라 학생이 IS에 들어간 사건이 있었죠. 혹시 국내 무슬림 사회에 그와 관련된 소문 같은 건 없었나요.
“우리도 신문을 보고 아는 정도입니다.”
― 영국에서 일어났던 지하철테러 등은 영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 무슬림 2세, 3세들이 극단주의에 물들면서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에 거주하는 무슬림들, 무슬림과 한국인의 결혼이 많아지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영국에서의 테러사건들은 영국 다문화정책의 실패입니다. 우리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지요. 저희도 다른 종교에 비해서는 미약하지만 다문화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너희 모두는 하나님의 동아줄을 잡고 분열하지 말라’
― 기독교나 가톨릭과 어떤 대화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등을 통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종교인평화회의는 7대 종단이 원래 참여하고 있지만, 7+1이라고 해서 이슬람도 (옵서버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 국민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현대 한국 이슬람은 6·25 때 터키군에 의해 전래된 이래 이제 6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제 어렵게 홀로서기를 하려는 작고 평화로운 공동체입니다. 이슬람이 중동 건설 진출 등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와 함께하면서 성장해 왔다는 걸 기억하면서, 올바로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 가장 좋아하는 《코란》 구절이 무엇입니까.
“‘너희 모두는 하나님의 동아줄(《코란》)을 잡고 분열하지 말라’(3장 103절)입니다.”
원래 이주화 이맘과의 인터뷰를 기획했을 때에는 이슬람과 관련된 여러 현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있는 인터뷰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주화 이맘은 ‘교과서적 답변’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슬람 원리주의 내지 극단주의와 관련된 질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터키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다행히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선되어서…”라고 한 것이나, 그의 책 《이슬람과 꾸란》에 나오는 9·11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에 대해 “미군과 연합군의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도발 행위는… 재래식 무기로 대항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적할 수 없는 엄청난 횡포와 테러 행위에도 불구하고…”라는 대목에서, 무슬림으로서 오늘날의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