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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대학총장, 과학자, 벤처 사업가, 그리고 최고봉 산악인 韓仁錫

“최고봉 登頂 노하우는 쉬지 않고 뚜벅뚜벅 천천히 걷는 것”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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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50개 주 최고봉, 에베레스트 제외한 6대륙 최고봉 등정
⊙ “너무 힘들지만 ‘하느님·부처님 도와주세요’ 하는 구호는 없죠”
⊙ 정상 등정엔 運이 50% 작용… 運은 神의 보이지 않는 손
⊙ 등산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명예총장 한인석. 그는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발명한 학습용 과학교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김 기자, 한 총장 한번 만나 봐.”
 
  편집장의 이 한마디뿐이었다. 별다른 배경설명이 없었다.
 
  한인석(韓仁錫·61) 유타대 아시아캠퍼스(인천 송도에 있다) 명예총장은 대학교수이자 과학자, 벤처 사업가, 그리고 산악인이라는 정보를 급히 찾았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포인트가 여러 개여서 당황스러웠다. 등정(登頂)으로 치면, 산행 루트가 여러 갈래인데 어느 길로 가야 그 인물을 제대로 알 수 있을지 막막했다.
 
  편집장이 건넨 인물자료에는 한 총장이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50개 주 최고봉에 올랐고, 7대륙 최고봉 중 에베레스트산을 제외한 6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반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기자는 등산을 모른다. 목숨을 내걸고 깎아 지르는 빙벽을 타고 고산병을 견디며 험한 설벽과 빙탑지대, 순백의 눈과 언제 갈라질지 모르는 얼음덩이를 건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를 만나기 전날, 한 총장이 등정했다는 6대륙 최고봉이 어딘지 알아보았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5895m), 북아메리카의 디날리(옛 이름 매킨리·미국 알래스카·6195m), 남극의 빈슨 매시프(남극대륙·4897m), 남아메리카의 아콩카과(아르헨티나 안데스 산맥·6959m),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츠(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의 경계·4884m), 유럽의 엘부르즈(러시아 코카서스·5642m) 등이다.
 
  아직 가지 않은 곳이 에베레스트뿐이다. 8848m의 세계 최고봉이다.
 
  입이 떡 벌어졌다. 전문 산악인도 아닌 대학교수가 어떻게 저 산을 올랐단 말인가. 저런 최고봉들은 신(神)이 사는 영토가 아닐까. 아무에게나 속살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저런 산정에 흔적을 남기는 이는 특별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인석 총장은 유타대 화공과 교수로 재직 중에 대학 측에 아시아분교 설립을 제안했고, 2014년 3월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초대총장으로 부임했다.
  지난 8월 29일 서울 성동구의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한인석 총장을 만났다. 냉혈한은 아니더라도 전사(戰士)처럼 억세고 강인할 것 같은 그의 낯빛은 아주 부드러웠다. “전날 과음해 갈 지(之)자로 걸어 집까지 갔다”고 했다. 신계(新界)가 아닌, 인간계의 우리 이웃이 분명했다.
 
  그는 유타대 명예총장(아시아캠퍼스)이지만 현재 한양대 특훈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관심영역은 약물전달 체계, 바이오센서, 하이드로젤 화학, 발생학, 생화학 분야다. 한양대 화학과 77학번인데 진짜 전공은 ‘산악과’란다.
 
  “대학교 때 산악과가 주전공이었어요. 산에서 살았습니다. ‘한양대 산악회’ 서클에서 아내도 만났으니까요. ‘대학 산악과’를 나오면 전문 산악 과정을 마친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때부터 프로페셔널하게 산을 탈 수 있어요.”
 
  “(한 총장을 가르친) 화학과 교수님들이 싫어하시겠어요”라고 해도 그는 “전공이 산악과예요”라고 한 번 더 말했다.
 
  그가 유타대 교수로 간 것도 산 때문이 아닐까. 유타주에는 거대한 로키산맥의 가지 능선인 워새치 프런트(Wasatch Front)가 있다. ‘역시나’였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시간대 앤하버에서 연구원으로 있었는데 콕 찍어서 유타주 솔트레이크로 왔어요. 그곳 산이 좋아서…. 원래는 제 연구를 위해선 (뉴욕주의) 버펄로로 가야 하는 데 유타로 가고 말았어요.”
 
  그는 유타대 화공과 교수로 재직 중에 대학 측에 아시아분교 설립을 제안했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관철시킨 뒤 2014년 3월 인천 송도에 세워진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초대총장으로 부임, 모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임기를 마치고 명예총장으로 있다.
 
 
  主전공은 산악과, 副전공은 화학과
 
  그가 아시아인 최초로 등정한 미국 50개 주 최고봉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몇 년 전 기록이지만 미국 50개 주 최고봉 완등자는 세계적으로 240여 명 정도다.
 
  최고봉 중에는 설산, 바위산 같은 험한 산악도 있다. 미국에서 알래스카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봉우리를 지닌 휘트니 마운틴(Mt.Whitney)은 해발 14497피트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4.418km에 달한다. 등산 허가를 미리 받아야 하고, 등반 인원을 제한해 추첨이란 운도 따라야 한다.
 
  또 50개 주를 찾아다녀야 하니 시간과 경비가 보통 드는 게 아닐 것이다. 정상에 등극하겠다는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의지가 강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아내와 가족의 내조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을지 모른다.
 
  “젊었을 땐 날고 기었죠. 제 자랑 같지만 손가락 하나로 턱걸이를 10개씩 했어요. 한양대 입학할 때 몸무게가 58kg이었고 근육이 있을 땐 63kg, 미국에 있을 땐 67kg, 지금은 78kg입니다. 남극(빈슨 매시프·2015년 12월에 등반했다)에 다녀온 뒤 운동을 안 해서…”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에선 거의 술을 안 마셨어요. 산행 목표가 있었으니까. 테니스 단식을 일주일에 두 번씩, 산행은 거의 매주 했어요. 1년으로 치면 석 달은 산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등반도 아침에 올라갔다 저녁에 내려오는 코스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남극 최고봉 등반은 왕복 26일이 걸리는 극한의 코스다.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에서 특수 제작된 비행기를 타고 남극 유니온빙하 캠프에 접근한 다음, 경비행기로 갈아타고 베이스캠프로 이동 후 등반을 시작한다.
 
  참, 빠뜨린 게 있다. 사전에 등반전문가 소견서, 의사 소견서, 신체조건 등의 관문을 넘어야 출발선에 설 수 있다.
 
  “남극 최고봉 등반을 할 때 날씨가 좋지 않았어요. 지금 돌아보니 기적 같아요. 견디기 힘들 만큼 매서운 추위와 고소(高所) 증세가 괴롭혔습니다.
 
  190cm가 넘는 덩치 큰 외국인들 속도에 맞추려 했으면 틀림없이 도중에 낙오했을 거예요. 제 속도를 지키며 걸었어요.”
 
  ― 육체적 한계점에 도달한 적도 있었을 텐데 그땐 어떻게 합니까.
 
  “… 너무 힘든데 무념무상이랄까. ‘하느님·부처님 도와주세요’ 하는 구호는 없죠.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없어요. 대신 체력의 한계치를 느낄 때 요령이 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생각의 차이인데 목표지점을 향해 천천히 걷는 겁니다. 쉬지 않고 천천히 가는 게 노하우입니다.”
 
  ― 쉬지 않고요?
 
  “거의 안 쉬어요. 쉬면 (다시 걷기) 어려우니까. … 걷지만 빨리 걷지는 않죠. 쫓겨서 가다 보면 남의 발뒤꿈치, 엉덩이만 보고 따라가게 돼요. 등반 도중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요? 그때도 천천히 걷습니다. 누가 빨리 가자고 해도 안 가요. 그랬다간 (몸이)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제 페이스대로 뚜벅뚜벅 걸어가요.
 
  과학적으로 정상에 올라가면 정신이 맑아져요. 생각이 없어집니다. 대개 해발 6000m까지 가면 ‘1+1’이라는 간단한 수식 계산도 어려워요. 걷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죠.”
 
 
  산에선 술·커피도 안 마셔
 
2011년 1월 5일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과 6962m 정상에 선 한인석 총장.
  한인석 총장은 “등반 필수품은 은박지”라고 유독 강조했다. 일명 알루미늄 쿠킹 포일. 갑자기 추위가 닥치거나 체온이 떨어질 때 포일로 몸을 두르면 추위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쿠킹 포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깁니다. 그것만큼 요긴한 게 없어요.
 
  대신 산에서 안 하는 게 딱 두 가지 있어요. 평소 술을 좋아하지만 등반 두 달 전부터 금주를 합니다. 몸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산에선 커피도 안 마셔요. 자주 소변이 마려우면 불편하니 안 먹습니다. 담배요? 담배는 군에 있을 때 끊었어요.
 
  그리고 몸에 필요한 비타민을 등반 몇 달 전부터 충분히 섭취하죠. 산행이 시작되면 자기 전, 그리고 아침에 물을 충분히 마십니다. 땀이 많이 나면 컨디션 조절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수분 섭취가 중요합니다. 커피를 안 마시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도전과 무모함의 차이는 뭡니까.
 
  “훈련과 준비의 차이랄까요? 준비를 철저히 하고 필요한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무모한 도전에 불과합니다. 세상 이치가 그래요.”
 
  ― 산에서 가끔 헛것이 보입니까. 예컨대 산신령 같은….
 
  “산신령? 하하하. 등반가 중에 산신령을 봤다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나봤어요. 그런데 보이지 않는 자연의 기운이랄까. 사실 산행에는 운(運)이 많이 따릅니다. 왜냐면 돈, 시간, 체력, 열정, 그다음에 운이 있어야 되거든요. 저는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운이라는 것이 신(神)의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요.”
 
  ― 운은 등반에서 몇 %나 작용할까요.
 
  “제가 봤을 때 음… 50%?”
 
  ― 절대적이네요.
 
  “운이 없으면 못 가죠. 특히 고산지대는 일기가 급변합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 저 자신만 믿고 올라갈 수는 없어요. 보통 사업은 ‘운칠기삼’이라 하는데 산행은 운과 기가 5대 5?”
 
  히말라야 8000m급 14봉을 처음으로 완등(完登)한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라는 등반가가 있다. 히말라야 첫 등반길에 동생 권터와 함께 올라갔다 동생을 잃고 말았다. 눈사태를 만나 휩쓸린 것이다. 그 역시 손발이 모두 동상에 걸리는 등 죽을 고비를 겪으며 가까스로 귀환했다. 동료들은 “기적의 생환”이라고 했지만 메스너는 “기적은 없다”며 동생의 죽음을 슬퍼했다.
 
  ―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하는 등반가는 기적 같은 것을 믿지 않을 것 같아요.
 
  한 총장은 그러나 메스너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기적이죠.”
 
  지칠 대로 지쳐 고통이 올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을 자연에 맡긴다고 했다.
 
  ― 기적 체험을 많이 하셨겠네요.
 
  “많이 했죠. 항상 기적을 체험합니다. 저는 자연과학을 전공한 과학자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봐요. 삶에서 운명적인 것이 많이 있잖아요.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 제 노력보다는 위에서 인도하심이랄까… 종교가 아니더라도 어떤 힘이 있다고 보는 거죠. 자연에 여러 가지 힘이 있듯이 우리 사이에도 힘이 작용하는데, 그 힘을 정리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죠.”
 
 
  무수한 물거품이 모여 결국 역사라는 배가 전진
 
2015년 12월 28일 남극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 정상에서 한양대 산악회기를 펼쳐 든 한인석 총장.
  ― 산에서만 하는 습관이 있나요.
 
  “마치 주문을 외듯이 저만의 중얼거림이 있어요. 딱 세 마디야. 그것만 계속 중얼거리며 걷는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 어떤 세 마디?
 
  “그건 비밀입니다. 누가 그러던데 그런 걸 가르쳐주면 안 된대요. 저만이 가지고 있는… 세 마디 말은 의미가 없어요. 우리말도, 영어도 아닌….”
 
  ― 그걸 언제 외운다고요.
 
  “힘들 때 외워요. 꾸준히 걸으며 주문 외듯이. 가끔 숫자도 세요. 하나부터 100까지를 세는데, 다 세면 다시 처음부터 셉니다.”
 
  등산가는 뛰어난 전략가여야 한다. 때를 기다려 도전해야 하고, 때론 시기를 놓치지 않고 퇴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눈사태를 만나 모든 것이 쓸려나가는 산의 비정함과 맞서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한인석 총장은 좀 더 긍정적이고 겸손하다. 그게 다른 등반가와 차이라면 차이일지 모른다.
 
  “어쩌면, 산은 어머니 같아요. 세상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치유의 공간이죠. 가족과 직장, 사회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숨 쉬게 만드는 공간이죠.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에요. 절로 겸손해지죠.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에요. 나와 산이 한 몸이 될 뿐이죠. 그래서 산에 가면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자연과 동화되는 느낌,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
 
  한 총장은 자신의 철학관을 ‘열매주의’라고 했다.
 
  ― 열매주의?
 
  “어떤 일을 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택하면 반드시 결과를 내고, 등산을 하더라도 철저히 준비해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려 합니다.”
 
  ― 네?
 
  “색안경이라고 해서 나쁜 가림막이 아니라 긍정의 색안경, 행복의 색안경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 것이냐, 부정적으로 보고 살 것이냐는 제 마음에 달려 있어요. 가급적 세상을 긍정하려 해요. 개인적으로 딸이 골형성부전증(선천적으로 뼈가 잘 부러지는 장애)을 앓았고, 아들은 미국에서 사고로 잃었어요. 하지만 비관하지 않았어요.
 
  스물한 살 때 혼자서 무전여행을 갔는데 제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카페리를 탔어요. 카페리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거품, 수많은 그러나 곧 사라지는 물거품을 보면서 ‘나’는 수많은 물거품 중 하나이고 전진하는 카페리가 우리의 역사라 생각했습니다.
 
  그 물거품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하나의 물거품만 보면 가치가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무수한 물거품이 모여 결국 역사라는 배가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어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지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작은 것이 결국에 커다란 동력(動力)으로 세상을 끌어간다고 믿게 됐습니다.”
 
  ― 그 생각을 20대 초에 했다고요.
 
  “네, 스물한 살 때요. 제가 어릴 때 열등감이 많았어요. 그런데 등산과 무전여행이란 경험을 통해 결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사서 고생을 하며 세상 이치를 깨달은 거죠. 결국 등산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 비교적 세상사를 일찍 깨달으신 것 같아요.
 
  “네, 20대에 깨달았네요.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싶어 결혼해 아이 둘 놓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1989년 가을 그는 “멀쩡한 직업을 던지고 왜 사서 고생이냐”는 친지·동료의 걱정을 뒤로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993년 워싱턴주립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년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얻은 정상 등극이었다.
 
 
 
산에서 배운 ‘열매론’이 빛을 발하다

 
  한 총장의 라이프 스토리 중에서 박사 논문은, 그가 성공한 과학자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논문 제목은 ‘정자 발생학에서 세포와 세포 간 교환물질 연구’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지만 이 분야 최고의 학술지(《Molecular Endocrinology》)에 게재되는 기쁨을 안았다.
 
  정자세포 배양액의 어떤 성분이 세르톨리 세포(Sertoli Cells)에 영향을 주는지 밝혀내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과제였는데 지도교수가 미국 보건성(NIH)으로부터 연구자금을 받아 진행하게 됐다. ‘세르톨리 세포’는 정자세포들에게 모든 영양분을 공급해 ‘엄마 정자세포’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실험을 하려면 계산상 최소 700마리의 쥐를 한번에 잡아야 될 형편이었다. 아무리 연구자금을 받는 프로젝트여도 엄청난 자금을 쏟아야 했다. 지도교수는 “비용과 시간, 장비가 많이 들어가니 이 연구를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2년 동안 열심히 연구한 것이 수포가 될 판이었다. 등산으로 치면, 사방이 낭떠러지, 올라갈 수 없는 큰 벽을 만난 것 같았다. 그러나 한 총장의 긍정적인 생각이 순간 빛을 발했다. ‘막힌 벽이라면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면 되지 않냐?’고 생각했다.
 
  일일이 실험을 통한 귀납적 결론을 찾기보다 거꾸로 연역적 방식으로 접근했다. 고작 1000달러 하는 물질의 항체를 구입해, 그가 분리한 세포의 단백질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최초로 정자세포와 세르톨리 세포 간 단백질을 통한 상호작용을 극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제 ‘열매론’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새로움을 찾는 겁니다. 산에 다니는 기질로 장벽이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이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어요.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던 미국에서 벤처사업을 시작한 것도 그런 믿음 때문입니다. 당뇨병 환자용 혈당측정기를 개발해 특허도 냈어요. 영어로 거츠(Guts), 우리말로 배짱,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믿음으로, 산에서 배운 ‘열매론’으로 해낸 겁니다.”
 
 
  마지막 등정, 에베레스트 도전은…
 
한인석 총장(왼쪽)이 지난 5월 27일 한양대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도봉산 인수봉을 회갑기념으로 등반했다.
  산악용어로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란 말이 있다. 산을 오를 때 방향감각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그러나 한 총장은 생각이 달랐다.
 
  “그런 경험 다 해봤죠. 어제 술 먹고 갈 지 자로 걸었잖아요. 삶은 갈 지 자의 연속이에요. 하하하. 저는 링반데룽을 나선형으로 보고 싶어요. 원뿔형 나선처럼 뱅글뱅글 돌지만 3차원적으로 보면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겁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목표지점을 향해….”
 
  우리나라 등산로는 가파르다. 정상을 향해 최단거리 직선 코스로 가파른 사다리와 계단이 이어져 있다. 마치 고시, 의사, 공무원 등 시험 한 번으로 평생의 삶을 결정지으려는 경향과 닮아 있지 않을까.
 
  한 총장은 “직선 코스로 계단을 만들고 관리한답시고 오히려 산을 파괴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미국에선 등산로가 가파르지 않아요. 그런데 완만한 코스가 훨씬 더 빠르고, 피로가 적으며 위험하지도 않아요. 우리나라 등산로는 불필요한 게 너무 많아요. 완만한, 인공물이 없는 루트를 만들어야 해요. 어쩌면 개발자금이 들어가 어떤 식으로든 예산을 쓰려고 그런 장치를 만든 게 아닐까요? 산에 계단이나 사다리를 놓기보다 운동시설이나 벤치처럼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더 나아요.”
 
  한 총장은 벤처사업가로 새로운 열매 맺기에 나섰다.
 
  초·중·고교 수학·과학 실습교재와 교구를 만들어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자석을 이용한 마그네틱 보드로 복잡한 실험을 대신할 수 있는 교재다. 전류의 방향, 자기장, 전하량의 법칙, 옴의 법칙 같은 이론을 쉽게 배울 수 있게 고안됐다. 한 총장이 기자에게 일일이 교구로 설명해 주었다. 상당히 흥미로웠다.
 
  또 치매 환자의 인지 능력을 검사하는 기구, IT 기술을 가미한 첨단 배낭도 최근 개발했다.
 
  “사람을 쥐어짜서 저 혼자 돈 벌 생각은 없어요. 성공하는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직원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 지금의 모습이 과거에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나요.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으니까요. 산행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다보면 먼 길을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목표가 제일 중요해요. 천천히든 뭐든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어느새 산정에 다가서 있을 겁니다.”
 
  ― 마지막 남은 에베레스트 등반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나요.
 
  “꼭 가야죠. 정상에 못 간다고 해도 반드시 갈 거예요. 그때는… 신만이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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