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은 생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고 고생한 다음에 깨닫게 되려나? 하느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시는가?’ 하며 우신 적이 있었어요”
⊙ “하느님께서 쓸 데가 있으니까 죽다 살아나고, 죽다 살아나잖아요”(오태순 신부)
⊙ 2009년 세계성령대회 준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1주일에 3~4차례 투석
⊙ “노동이 靈的인 거라고! 날개 달고 날아다니는 게 靈的인 게 아니에요”
⊙ 1980~90년대 검찰총장들에게 “진짜배기 좌익은 안 잡고 (데모)꾼만 잡혀 온다” 따져
朴弘
1941년 대구 출생. 성신고, 가톨릭대 철학과·광주가톨릭대 신학과 졸업,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영성신학 석사·교황청 그레고리안대 신학박사, 미국 알마대 명예문학박사 / 서강대 총장, 서강대 이사장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제7기 민주평통 자문위원 역임
⊙ “하느님께서 쓸 데가 있으니까 죽다 살아나고, 죽다 살아나잖아요”(오태순 신부)
⊙ 2009년 세계성령대회 준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1주일에 3~4차례 투석
⊙ “노동이 靈的인 거라고! 날개 달고 날아다니는 게 靈的인 게 아니에요”
⊙ 1980~90년대 검찰총장들에게 “진짜배기 좌익은 안 잡고 (데모)꾼만 잡혀 온다” 따져
朴弘
1941년 대구 출생. 성신고, 가톨릭대 철학과·광주가톨릭대 신학과 졸업,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영성신학 석사·교황청 그레고리안대 신학박사, 미국 알마대 명예문학박사 / 서강대 총장, 서강대 이사장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제7기 민주평통 자문위원 역임
- 서강대 총장 시절인 1996년 3월 《월간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는 박홍 신부.
서강대 총장을 지낸 박홍(朴弘·78) 신부(神父)가 깨어났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오태순 신부와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김원율 교리연구소장이 “박 신부가 한 달 반 전, 3주 동안 의식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좋아지셨다”고 기자에게 알려왔다.
기자는 서울 아산병원으로 박홍 신부를 찾아갔다. 지난 9월 5일이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원로 사제(司祭)인 오태순 신부의 음성이 들려왔다.
“… 민족이 하나 되어 적대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바뀌어 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미움이 아닙니다.”
오 신부가 봉성체(奉聖體· Viaticum)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영성체(밀떡)를 병자에게 주는 의식을 말한다. 봉성체는 라틴어로 ‘여행을 위한 준비’ 혹은 ‘여행을 위한 양식’이란 뜻이다.
오 신부는 가톨릭 성가 34장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를 선창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신자 여럿이 함께 불렀다.
“내가 사랑 받았고 은총 속에 산 것은 성령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셨도다. 주에 참된 평화여. 신성한 광명이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성가는 1절로 끝이 났다. 오 신부는 마침기도를 했다.
“전능하신 천주(天主) 성부(聖父), 성자(聖子)와 성령(聖靈)의 이름으로 박홍 루카 사제와 믿는 신자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신자들이 모두 “아멘”이라고 답했다.
누워 있던 박홍 신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낮은 음성이 들릴 듯 말 듯 했다.
“고맙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신자들에 대한 고마움의 인사였다.
“박홍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 창립멤버”
박홍 신부 곁에 서 있던 오태순 신부가 기자의 ‘돌연한’ 방문을 의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1980~90년대) 학생들이 북한의 잘못된 사상으로 잡혀갈 때 박 신부가 정부와 학생 사이에서 중재를 많이 섰어요. 그때 정부 측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을 만나 늦게까지 얘기하면서 ‘주(主)님’을 ‘주(酒)’님으로 모시면서 (설득)해야 되니까… 왜, 술을 마시면서 우로 우로, 좌로 좌로 하는 술 있잖습니까? 그걸 다섯 번(잔), 열 번(잔)씩 마셨기 때문에 건강을 해쳤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박홍: “고맙습니다.”
오태순: “(기자에게) 나하고 박 신부는 동지이자 투사예요, 1970년대부터. (저는) 함세웅 신부, 박홍 신부와 정의구현사제단 창립멤버예요.”
― 네? 그렇습니까?
1980~90년대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시절, 박홍 서강대 총장(1989~ 1997년)은 주로 정부와 학생 사이에서 중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잡혀간 학생들을 석방시키려 정부 측 검·경, 법무부 쪽 인사들과 만나야 했다. 시대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폭탄주를 몇 순배 돌렸다. 다른 대학 총장들은 5~6잔에 푹푹 쓰러졌지만, 박홍 총장은 10잔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또 “담배는 정신의 비타민”이라며 한창때 하루 3갑씩 피웠다.
“술도 마이(많이) 마셨고…”
그러다 지난 2009년 6월 충북 음성의 꽃동네 마을에서 열렸던 ‘가톨릭 세계지도자 성령대회’를 돕다가 대회 1주일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당시 세계성령대회 한국준비위원장이 바로 오태순 신부였다.
“제가 매주 열심히 봉성체를 하는 이유는 그때 성령대회를 같이 준비하다가 박 신부가 쓰러져서 제가 하느님께 기도했더니 ‘내가 그를 쉬게 하였다’고 응답했어요. 그 인연으로 열심히 봉성체를 합니다.”
박 신부는 현재 1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고 있다. 그 고통은 겪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오 신부의 말이다.
“병원에서 하는 말이 ‘피곤해서 쓰러졌다’고 해요. 이 양반이 줄담배를 피우지, 어디 가서 얘기하면 몇 시간, 어떨 때는 밤새워 토론을 하거든. 건강을 과신했다고 스스로 말했어요. 많이 피곤하면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최근에 기적처럼 좋아졌어요.
하느님께서 쓸 데가 있으니까 (박홍 신부가) 죽다 살아나고, 죽다 살아나잖아요.”
오 신부와 신자들이 떠나고, 드디어 기자는 박 신부와 마주 앉게 됐다. “공산주의야말로 꿀 바른 독(毒)”이라 설파하던, 직설적이고 거친 입담의 그가 10년 가까이 투병 중이란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80kg에 육박하던 체중은 지금 50kg이 채 되지 않는다.
박홍 하면 누구라도 1991년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그해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진압 중이던 경찰에게 맞아 숨지고, 대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신(焚身)정국’이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었다. 김지하 시인이 그해 《조선일보》 5월 5일 자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고 기고하자, 박홍 서강대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일갈했었다.
박 신부가 기자를 보며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
“은총을 많이 받고, 많이 나눠주고….”
― 감사합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많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술도 마이(많이) 마셨고, 학생들하고 마이 갈등도 있었고…. 그런데 요새 학생들,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실천 못하는 사랑은 가짜배기”
1980년대를 거쳐 90년대로 넘어오면서 학생운동은 폭력성과 좌경 사상성(친북·반정부·반미 폭력투쟁)이 농후했다. 그 시절, 그는 “학생운동에 ‘레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며 온몸으로 맞섰다. 그러나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폭력시위는 점점 대학가에서 사라졌다. 계속된 박 신부의 말이다.
“우연하게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성모(聖母)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주셔서 가능해졌어요.”
박 신부가 말하는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가리킨다. 성모 마리아는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성인이다. 19세기 조선교구는 베이징교구에 포함돼 있었는데 당시 베이징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요셉(예수의 양아버지)이었다.
그러나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가 1838년 12월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새로운 수호자로 ‘성모무염시잉모태(聖母無染始孕母胎·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2년 8개월 후인 1841년 8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이 요청을 허락해 성모 마리아는 한국교회의 수호자가 됐다.
― 6·13 지방선거 결과를 보셨지요?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어요.
“어느 당이든 교회는 그런 것 안 따집니다. 어느 당이든 말만 잘한다고 되는 기(게) 아니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속담에 ‘말은 사람을 움직이고 체험은 사람을 잡아당긴다’고 하잖아요. ‘움직이는 것’과 ‘잡아당기는 것’은 차이가 있어요. 실천하라, 사랑을 실천하라, 실천 못하는 사랑은 가짜배기다. 교황님께서도 ‘나이롱’이라 하셨어요.”
― 요즘 우리나라를 위해 어떤 기도와 고민을 하십니까.
“평화와 용서….”
북한이 거짓말하고 선전선동으로 6·25 사변을 남한이 일으켰다고 ‘택도 없는’(어림 없는) 말을 했잖아요. 우리 대학생들도 따라서 얘기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헛정보’라는 걸 알게 돼 안 먹혀 들어가요. 성모님께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弱者에게 약하고 强者에게 강해라’
서강대 총장 시절, 어쩌면 박홍 인생의 절정기였을지 모른다. 그는 학생들이 주사파에 물들었다고 비난했지만 한편으로 교도소를 찾아가 학생들을 설득했고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 등을 만나 “쌀 먹은 사람은 안 걸리고 당가리(당가루) 먹은 놈만 걸려 들어간다. 진짜배기 좌익은 안 잡고 (데모)꾼만 잡혀온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기자가 그때 발언을 들려줬더니 박 신부는 “쌀 먹는 놈은 도둑질하는데 안 걸리고, 당가리 먹은…, 당가리라고 있잖아요. 몰라?”라고 반문했다.
― 설탕이나 사카린 같은 것인가요.
“아냐, 설탕 아냐. 밀가리(밀가루) 만들다가 남는 찌끄래기(찌꺼기)가, 하얗게 나오는 걸 당가리라 해요. 달싹하니까. 그것 먹은 놈은 다 때리(때려)잡고. … 다는 아니겠지만. 그런 기(게) 있었어요.
그들에게 ‘약자(弱者)에게 약하고 강자(强者)에게 강해라’고 했어요.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게 우리 대한민국의 이토스(Ethos)… 정신문화예요.
그 시절, 검찰총장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당신! 뭐 금테모자 쓰고 폼이나 잡고…, (남의) 땅 팔아 돈 버는 놈은 안 잡고, 조그만 쪼가리(조각) 훔친 놈은 끌려가 터지고 말이야’라고.”
― 그때 그 말씀 건넨 검찰총장 이름이 뭔가요.
“몰라, 다 이자(잊어) 버렸어요.”
예수회 사제인 박홍은 1941년 2월 27일 대구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덩치가 크고 괄괄했던 그는 학창시절 규율부를 하면서 친구들 도시락 반찬을 빼앗아 먹기도 했고, 포항에서 오는 트럭에 올라 오징어를 몇 축씩 장난 삼아 빼먹곤 했다. 어느 날 그가 다니던 성당 신부가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잘못을 뉘우치고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부자하고 가까워지면 교회는 타락”
― 신부님, 조금 전 ‘우리나라의 평화와 용서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셨는데,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어요. ‘(용서를)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요. 그런데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셨어요. 칠칠(7×7)이 49. 49주간을 말합니다. 1년이 49주간이야. 인간은 한없이 용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가장 위대한 존재지만 가장 비참한 존재이고, 한 손으로 만든 것을 다른 손으로 부수는 유혹을 항상 겪고 있는 존재지요. 여기서 ‘부수는 유혹’은 전쟁을 말합니다. 전쟁은 (평화를 이루는) 해결책이 아니에요.
사실,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디 시건방지게… 인간을 용서할 권리가 있나요? 그런데 하느님은 인간에게 ‘용서하라, 용서하라… 니(너희)가 용서받아서 좋으니까, 니(너희)한테 좋은 걸 남에게도 하라’고 예수님을 통해 설파하셨죠.”
― 인간의 죄는 상처인데,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회심(回心)을 해야죠, 회심.”
― 회개?
“예, 회개(悔改)…. 요새는 회심이라는 말이 없어졌어.”
― 워낙 세상살이가 각박해져 그럴까요. 갑(甲)질 얘기도 많고….
“교회가 가난한 자와 가까워져야지요. 부자하고 가까워지면 교회는 타락입니다.”
“惡의 유혹이 바로 ‘거짓 합리화’”
그러더니 이런 말을 했다.
“똥이 있으면 똥파리가 모이듯이 권력이 있으면 사람들이 막 모입니다. 똥파리 얘기해서 좀 미안하지만….
권력을 못 쥐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게 레닌 사상입니다. 권력을 잡아야, 총을 잡아야, 걸거치는(걸리적거리는) 놈 죽여 버릴 수 있다고. 힘은 원리에 맞게 잘 활용될 때 좋은 것인데 잘못 사용될 때 ‘거짓 합리화’의 명수가 돼요.
악의 유혹이 바로 ‘거짓 합리화’예요. 교회도 그 유혹에 빠지면 몇 백 년 동안 허덕입니다.”
― 예전에 ‘레드 바이러스를 우리 사회가 과소평가한다’고 걱정하셨지요? 또 ‘병자(病者)는 사랑해야 하지만 그 균(菌)까지 사랑해서는 안 된다’셨죠.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항체(抗體)가 형성됐다고 보시나요.
“항체가 형성되기도 하고 이미 돼 있던 것, 까먹기도 하고 두 가지가 막 섞여 있습니다. 식별하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식별과 투신의 배합…’. 참 밝혀 내기가 힘들어요. 언론에도 (바이러스가) 많이 있지만 언론은 잘못하고 난 다음에야 잘못했다, 잘못했다고 하지요.”
박 신부가 말하는 ‘식별과 투신의 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과거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기를 목욕시키고 나서 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려서야 되겠는가. 현재는 식별과 투신의 배합이 필요한 때다. 용서 없는 정의(正義)는 폭군(暴君)과 마찬가지다. 정의 없는 사랑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문화충돌의 시대에 우리는 진정 생명과 공동선(共同善), 사랑의 가치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 말은 2003년 12월 6일 박홍 당시 서강대 이사장이 서울구치소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 중이던 재독(在獨) 사회학자 송두율(뮌스터대 교수)을 특별 면회하면서 한 말이었다.
낯설고 추상적인 말인 “식별과 투신의 배합”이 이상하게도 기자에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예수님은 참된 해방자예요. 그러나 멍에에 대한 무질서한 해방(은 다릅니다). 질서 있는 해방 같으면 좋은 거죠. 무질서한…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있습니다.”
― 균하고 항체하고 섞여 있어서 뭐가 옳은지 알 수 없다는 거죠?
“알쏭달쏭하게….”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지. 기도하고….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탱자나무가 어찌 사과를 맺을 수 있느냐’고요.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탱자는 탱자나무에서 열리죠. 공산주의가 바로 그것이에요. 깊이 들어가면 ‘속았구나’ 하고 알게 되죠.”
“김지하는 善惡 식별 잘해”
지난 8월 2일 뜻밖에도 김지하(金芝河) 시인이 박홍 신부를 찾아왔다. 1941년생 동갑인 두 사람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1주일 전에(박홍 신부는 오랜 투병생활 때문인지 시간개념이 불명확했다) 김지하가 나한테 나타났어. 여기 왔었다구. 나는 꿈인 줄 알고 ‘니가 지하 맞나?’고 했지.
‘맞습니다. 정신이 왔다갔다합니까?’라고 하길래 ‘가마이(가만히) 있어 봐라. 내(나)하고 같이 식사도 하자’고 했지.
― 김지하 시인은 건강하시던가요.
“거의 죽은 몸이 됐지. 그러다가 이제는 다시 소생을 해가지고… 내가 ‘기도하시오’ 그랬어요. 기도하라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김지하는) 정통의 식별을 잘해요. 악(惡)을 가장한 선(善)인지, 선을 가장한 악인지 식별을 할 줄 아는 분이에요.”
― 선악 식별을 잘하신다고요?
“네. 김지하가 제게 그랬어요. ‘박홍 신부! 악을 가장한 선은 없지만, 선을 가장한 악은 많아. 속지 마! 마귀는 속이는 자’라고. 그 친구와 얘기하면 끝이 없어.”
전태일 추모 미사 집전하다 연행되기도
김지하 시인이 그랬듯 1970년대 박홍 신부도 군부 독재에 비판적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1970년대 초 가톨릭 지성인협회 전국지도 신부와 ‘크리스천 사회행동협의체’ 초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자 서강대에서 추모미사를 집전하다 연행되기도 했고, 전두환 정권 때는 학생들을 선동하고 폭동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끌려간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에 침투한 주사파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그의 세계관은 180도 달라졌다.
“주사파가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잠복해 있어. 균이 잠복해 있다가 다시 10년 후에 나타난 거지(10년 후라는 시점이 언제를 뜻하는지 기자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김수환(金壽煥) 추기경께서 생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고 고생한 다음에 깨닫게 되려나. 하느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시는가’ 하시며 우신 적이 있으셨어요.”
― 요즘 정진석(鄭鎭奭) 추기경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정진석 추기경이 최근에 아주 좋은 책을 냈어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하신 말씀을 풀어서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여기서 ‘그분’은 예수님이에요. 무슨 말이냐,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 듯이,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지만 우리를 살렸습니다. 미사 예문에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오죠.”
정 추기경의 《그분의 상처로…》는 ‘최근’이 아니라 2015년 12월에 출간됐다.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동안 일어난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에 모두 담겨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이 박홍 암살명령을 내리다!
때마침 간호사가 박홍 신부에게 영양제 주사를 놓기 위해 병실을 찾았다.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아무리 (건강이) 좋아져도 100년을 못 살아요. 앞 버스 타느냐, 뒤 버스 타느냐 차이지. 건강 나쁘면 아무 것도 못해. 건강할 때 관리를 잘해야 돼. 난 건강만 믿고 교만했어. 그때 80kg이 넘었지만 지금은 50kg이 안 돼요.”
― 예전에 북한 김정일이 신부님에 대해 암살명령을 내렸지요?
1995년 3월 독일 유학생 출신 자수간첩 한병훈은 “박홍 총장이 주사파 공격발언을 계속하자 암살을 계획했다. 이 계획이 성공할 경우 5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요인 암살 등 간첩활동을 위해 북한에서 특별 사격훈련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일설에는 한병훈이 ‘안기부(국정원) 프락치’라는 설이 있었지만, 안기부는 박 신부의 암살지령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내가 어디서 강연한다고 하면 4, 5일 전부터 그 집(강연 장소)을 경찰이 수색을 했어요.”
― 왜 암살명령을 내렸을까요. 두려워서?
“그렇겠지….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 다 떱니다. 나는 내일 죽거나, 모레 죽거나, 내일모레 죽거나 두려움이 없어요. 죽으면 지옥이나 천당, 연옥 중에 꼭 가야 되는데… 지옥엔 가기 싫어요.
천당 보내주시면 고맙지만 내가 죄를 많이 지었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니(너)는 정화(淨化) 좀 하고 올라온나’ 하시면 ‘정화학교’ 가서 정화 좀 받고 가야지.”
― 정화학교는 연옥(煉獄)을 말씀하시는 거죠?
“예.”
가톨릭에서 연옥은 죽은 영혼이 천국에 가기 전, 생전에 지은 죄(小罪·Venial Sin)들을 씻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문다는 중간단계의 공간을 말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49항). 이런 중간지대 개념은 단테의 《신곡(神曲)》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문학·학문 등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개신교(改新敎)에서는 연옥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며 이를 부인한다.
현대중공업 勞組에서 특강
박홍 신부를 따르는 신자들은 기자에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인연 때문에 병원비를 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오태순 신부도 기자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기세등등하던 현대중공업 이갑용 노조(勞組)위원장이 박 신부에게 특강을 요청해 울산에 내려갔는데, 4시간의 특강 뒤 노조원들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고마워 서강대에다 당시 150억원짜리 건물을 지어 주었고 병원 이사로 이름을 올려주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박 신부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한번은 노동조합장 하던 이갑용이 날 찾아왔어요. 그때 한국의 노조를 쥐고 흔들던 게 현대중공업 노조입니다. 그런데 이갑용이가 특강을 해 달라면서 ‘단,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뭔데?’ 하니 ‘쉽게 해 달라’는 거예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총장들을 다 초대해 특강을 들었대요. ‘서강대 총장은 노동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얘기해 달라’길래, ‘좋다! 석사논문 주제가 노동문화에 대한 것’이라고 했어요.”
― 예? 신부님의 논문 주제가 ‘노동문화’였다고요? ‘영적(靈的)인’ 주제가 아니고요?
“노동이 영적인 거라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날개 달고 날아다니는 게 영적인 게 아니에요.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는, 그런 노동하는 인간에 깊이 들어가는 게 영적인 거예요. 저도 노동운동을 많이 했지요.”
“남의 聖杯에다 코풀지 마세요”
그러더니 그가 예수회 수련사제 시절 겪었던 넝마주이 얘기를 꺼냈다. 구역을 침범했다고 텃세를 부리던 다른 넝마주이에게 얻어맞아 상처를 입기도 했는데, 다 헤진 걸레조각 같은 옷을 걸쳐 입은 그를 사람들이 거지취급을 했다. 그 경험을 통해 인간의 참가치를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서울대 출신의 한 놈이랑 넝마주이를 한 달간 했어요. 그렇게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이 저를 쓰레기 취급 하더라고. 그런데 아이들만 유일하게 저를 환대해 주었어요.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갖다 주었거든요. 그 생활을 《가톨릭신문》에다가 있는 그대로 막 썼더니 그 다음 날, 예수회 (한국)관구장이 날 찾아와서 ‘당장 때려치우고 돌아오라. 안 돌아오면 예수회에서 나간 걸로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순명(順命)했죠.”
― 현대중공업 특강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요,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나세요?
“노조원들이 ‘당신은 공산당이 아닌 이상 어떻게 북한의 정책과 용어를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길래 ‘학생들이 저한테 언제, 며칟날 데모한다고 다 알려준다. 그래서 아는 거지, 내가 귀신이라서 아는 게 아니다’고 답했지요.”
― 레닌이 ‘예수회 사제 1명을 없애는데 1개 사단 병력을 희생하더라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희생을 많이 할 각오를 하라, 그 말이 아니겠어요?
―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하느님은 왜 북한 김씨왕조를 안 붕괴시키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요.
“손 안 대고 코풀려는 소리야. 코는 지 손으로 풀어야지, 하느님 이름 빌려서 대신 코풀려고 하니…. 남의 성배(聖杯)에다 코풀지 마세요.”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 북한의 비핵화, 어떻게 될까요.
“안 하고 못 배길 거예요.”
― 남북 관계, 좋아질까요.
“나는 ‘아이 홉 소(I hope so)’.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만드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와~ 무서운 거예요. 후유증이 얼마나 긴지….”
건강 탓에 더는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에게 역할이 남아 있음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신은 그에게 앞으로 어떤 과업을 맡기실까.
며칠 후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김원율씨가 이메일을 보내 왔다. 메일을 열었더니 지난 6월 27일 박 신부가 이런 발언을 했다고 알려왔다. 일부를 소개한다.
“인간 존재의 근거를 부정하게 하는 어둠의 세력을 성령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가 두 살배기 어린이가 어머니 치마폭을 붙잡고 칭얼거리듯이 하여도 모든 것을 우리의 아버지이신 성부께 전구(轉求·성모 마리아와 성인(聖人)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은혜를 구한다는 의미다)하시며 기도해 주십니다.
70년간 이어졌던 남북의 적대관계, 미국과 북한의 대결적인 관계가 평화로 이어지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뀔 수 있도록 성모님께 간구합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오태순 신부와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김원율 교리연구소장이 “박 신부가 한 달 반 전, 3주 동안 의식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좋아지셨다”고 기자에게 알려왔다.
기자는 서울 아산병원으로 박홍 신부를 찾아갔다. 지난 9월 5일이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원로 사제(司祭)인 오태순 신부의 음성이 들려왔다.
“… 민족이 하나 되어 적대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바뀌어 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미움이 아닙니다.”
오 신부가 봉성체(奉聖體· Viaticum)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영성체(밀떡)를 병자에게 주는 의식을 말한다. 봉성체는 라틴어로 ‘여행을 위한 준비’ 혹은 ‘여행을 위한 양식’이란 뜻이다.
오 신부는 가톨릭 성가 34장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를 선창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신자 여럿이 함께 불렀다.
“내가 사랑 받았고 은총 속에 산 것은 성령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셨도다. 주에 참된 평화여. 신성한 광명이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성가는 1절로 끝이 났다. 오 신부는 마침기도를 했다.
“전능하신 천주(天主) 성부(聖父), 성자(聖子)와 성령(聖靈)의 이름으로 박홍 루카 사제와 믿는 신자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신자들이 모두 “아멘”이라고 답했다.
누워 있던 박홍 신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낮은 음성이 들릴 듯 말 듯 했다.
“고맙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신자들에 대한 고마움의 인사였다.
“박홍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 창립멤버”
박홍 신부 곁에 서 있던 오태순 신부가 기자의 ‘돌연한’ 방문을 의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1980~90년대) 학생들이 북한의 잘못된 사상으로 잡혀갈 때 박 신부가 정부와 학생 사이에서 중재를 많이 섰어요. 그때 정부 측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을 만나 늦게까지 얘기하면서 ‘주(主)님’을 ‘주(酒)’님으로 모시면서 (설득)해야 되니까… 왜, 술을 마시면서 우로 우로, 좌로 좌로 하는 술 있잖습니까? 그걸 다섯 번(잔), 열 번(잔)씩 마셨기 때문에 건강을 해쳤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박홍: “고맙습니다.”
오태순: “(기자에게) 나하고 박 신부는 동지이자 투사예요, 1970년대부터. (저는) 함세웅 신부, 박홍 신부와 정의구현사제단 창립멤버예요.”
― 네? 그렇습니까?
1980~90년대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시절, 박홍 서강대 총장(1989~ 1997년)은 주로 정부와 학생 사이에서 중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잡혀간 학생들을 석방시키려 정부 측 검·경, 법무부 쪽 인사들과 만나야 했다. 시대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폭탄주를 몇 순배 돌렸다. 다른 대학 총장들은 5~6잔에 푹푹 쓰러졌지만, 박홍 총장은 10잔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또 “담배는 정신의 비타민”이라며 한창때 하루 3갑씩 피웠다.
“술도 마이(많이) 마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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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 전 총장. 2009년 세계성령대회를 돕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10년 가까이 투병 중이다. 사진=이석재 |
“제가 매주 열심히 봉성체를 하는 이유는 그때 성령대회를 같이 준비하다가 박 신부가 쓰러져서 제가 하느님께 기도했더니 ‘내가 그를 쉬게 하였다’고 응답했어요. 그 인연으로 열심히 봉성체를 합니다.”
박 신부는 현재 1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고 있다. 그 고통은 겪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오 신부의 말이다.
“병원에서 하는 말이 ‘피곤해서 쓰러졌다’고 해요. 이 양반이 줄담배를 피우지, 어디 가서 얘기하면 몇 시간, 어떨 때는 밤새워 토론을 하거든. 건강을 과신했다고 스스로 말했어요. 많이 피곤하면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최근에 기적처럼 좋아졌어요.
하느님께서 쓸 데가 있으니까 (박홍 신부가) 죽다 살아나고, 죽다 살아나잖아요.”
오 신부와 신자들이 떠나고, 드디어 기자는 박 신부와 마주 앉게 됐다. “공산주의야말로 꿀 바른 독(毒)”이라 설파하던, 직설적이고 거친 입담의 그가 10년 가까이 투병 중이란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80kg에 육박하던 체중은 지금 50kg이 채 되지 않는다.
박홍 하면 누구라도 1991년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그해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진압 중이던 경찰에게 맞아 숨지고, 대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신(焚身)정국’이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었다. 김지하 시인이 그해 《조선일보》 5월 5일 자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고 기고하자, 박홍 서강대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일갈했었다.
박 신부가 기자를 보며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
“은총을 많이 받고, 많이 나눠주고….”
― 감사합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많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술도 마이(많이) 마셨고, 학생들하고 마이 갈등도 있었고…. 그런데 요새 학생들,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실천 못하는 사랑은 가짜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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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박홍 총장과 전국대학 총·학장들이 1996년 8월 21일 연세대를 찾아 한총련 시위로 폐허처럼 변한 종합관 내부를 둘러보고있다. |
“우연하게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성모(聖母)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주셔서 가능해졌어요.”
박 신부가 말하는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가리킨다. 성모 마리아는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성인이다. 19세기 조선교구는 베이징교구에 포함돼 있었는데 당시 베이징교구의 수호성인은 성 요셉(예수의 양아버지)이었다.
그러나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가 1838년 12월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새로운 수호자로 ‘성모무염시잉모태(聖母無染始孕母胎·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2년 8개월 후인 1841년 8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이 요청을 허락해 성모 마리아는 한국교회의 수호자가 됐다.
― 6·13 지방선거 결과를 보셨지요?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어요.
“어느 당이든 교회는 그런 것 안 따집니다. 어느 당이든 말만 잘한다고 되는 기(게) 아니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속담에 ‘말은 사람을 움직이고 체험은 사람을 잡아당긴다’고 하잖아요. ‘움직이는 것’과 ‘잡아당기는 것’은 차이가 있어요. 실천하라, 사랑을 실천하라, 실천 못하는 사랑은 가짜배기다. 교황님께서도 ‘나이롱’이라 하셨어요.”
― 요즘 우리나라를 위해 어떤 기도와 고민을 하십니까.
“평화와 용서….”
북한이 거짓말하고 선전선동으로 6·25 사변을 남한이 일으켰다고 ‘택도 없는’(어림 없는) 말을 했잖아요. 우리 대학생들도 따라서 얘기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헛정보’라는 걸 알게 돼 안 먹혀 들어가요. 성모님께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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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26일 전남 승주군 송광면 송광사에서 법정스님과 박홍 서강대 총장(신부)이 만나 대담을 마친 뒤 법정스님이 박 총장을 산문까지 배웅하고 있다. |
기자가 그때 발언을 들려줬더니 박 신부는 “쌀 먹는 놈은 도둑질하는데 안 걸리고, 당가리 먹은…, 당가리라고 있잖아요. 몰라?”라고 반문했다.
― 설탕이나 사카린 같은 것인가요.
“아냐, 설탕 아냐. 밀가리(밀가루) 만들다가 남는 찌끄래기(찌꺼기)가, 하얗게 나오는 걸 당가리라 해요. 달싹하니까. 그것 먹은 놈은 다 때리(때려)잡고. … 다는 아니겠지만. 그런 기(게) 있었어요.
그들에게 ‘약자(弱者)에게 약하고 강자(强者)에게 강해라’고 했어요.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게 우리 대한민국의 이토스(Ethos)… 정신문화예요.
그 시절, 검찰총장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당신! 뭐 금테모자 쓰고 폼이나 잡고…, (남의) 땅 팔아 돈 버는 놈은 안 잡고, 조그만 쪼가리(조각) 훔친 놈은 끌려가 터지고 말이야’라고.”
― 그때 그 말씀 건넨 검찰총장 이름이 뭔가요.
“몰라, 다 이자(잊어) 버렸어요.”
예수회 사제인 박홍은 1941년 2월 27일 대구에서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덩치가 크고 괄괄했던 그는 학창시절 규율부를 하면서 친구들 도시락 반찬을 빼앗아 먹기도 했고, 포항에서 오는 트럭에 올라 오징어를 몇 축씩 장난 삼아 빼먹곤 했다. 어느 날 그가 다니던 성당 신부가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잘못을 뉘우치고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부자하고 가까워지면 교회는 타락”
― 신부님, 조금 전 ‘우리나라의 평화와 용서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셨는데,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어요. ‘(용서를)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요. 그런데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셨어요. 칠칠(7×7)이 49. 49주간을 말합니다. 1년이 49주간이야. 인간은 한없이 용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가장 위대한 존재지만 가장 비참한 존재이고, 한 손으로 만든 것을 다른 손으로 부수는 유혹을 항상 겪고 있는 존재지요. 여기서 ‘부수는 유혹’은 전쟁을 말합니다. 전쟁은 (평화를 이루는) 해결책이 아니에요.
사실,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디 시건방지게… 인간을 용서할 권리가 있나요? 그런데 하느님은 인간에게 ‘용서하라, 용서하라… 니(너희)가 용서받아서 좋으니까, 니(너희)한테 좋은 걸 남에게도 하라’고 예수님을 통해 설파하셨죠.”
― 인간의 죄는 상처인데,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회심(回心)을 해야죠, 회심.”
― 회개?
“예, 회개(悔改)…. 요새는 회심이라는 말이 없어졌어.”
― 워낙 세상살이가 각박해져 그럴까요. 갑(甲)질 얘기도 많고….
“교회가 가난한 자와 가까워져야지요. 부자하고 가까워지면 교회는 타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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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7월 박홍 총장이 수배된 대학생의 아버지와 함께 경찰병원을 찾아 시위진압 도중 부상을 당한 전경을 위로하고 있다. |
“똥이 있으면 똥파리가 모이듯이 권력이 있으면 사람들이 막 모입니다. 똥파리 얘기해서 좀 미안하지만….
권력을 못 쥐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게 레닌 사상입니다. 권력을 잡아야, 총을 잡아야, 걸거치는(걸리적거리는) 놈 죽여 버릴 수 있다고. 힘은 원리에 맞게 잘 활용될 때 좋은 것인데 잘못 사용될 때 ‘거짓 합리화’의 명수가 돼요.
악의 유혹이 바로 ‘거짓 합리화’예요. 교회도 그 유혹에 빠지면 몇 백 년 동안 허덕입니다.”
― 예전에 ‘레드 바이러스를 우리 사회가 과소평가한다’고 걱정하셨지요? 또 ‘병자(病者)는 사랑해야 하지만 그 균(菌)까지 사랑해서는 안 된다’셨죠.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항체(抗體)가 형성됐다고 보시나요.
“항체가 형성되기도 하고 이미 돼 있던 것, 까먹기도 하고 두 가지가 막 섞여 있습니다. 식별하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식별과 투신의 배합…’. 참 밝혀 내기가 힘들어요. 언론에도 (바이러스가) 많이 있지만 언론은 잘못하고 난 다음에야 잘못했다, 잘못했다고 하지요.”
박 신부가 말하는 ‘식별과 투신의 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과거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기를 목욕시키고 나서 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려서야 되겠는가. 현재는 식별과 투신의 배합이 필요한 때다. 용서 없는 정의(正義)는 폭군(暴君)과 마찬가지다. 정의 없는 사랑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문화충돌의 시대에 우리는 진정 생명과 공동선(共同善), 사랑의 가치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 말은 2003년 12월 6일 박홍 당시 서강대 이사장이 서울구치소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 중이던 재독(在獨) 사회학자 송두율(뮌스터대 교수)을 특별 면회하면서 한 말이었다.
낯설고 추상적인 말인 “식별과 투신의 배합”이 이상하게도 기자에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예수님은 참된 해방자예요. 그러나 멍에에 대한 무질서한 해방(은 다릅니다). 질서 있는 해방 같으면 좋은 거죠. 무질서한…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있습니다.”
― 균하고 항체하고 섞여 있어서 뭐가 옳은지 알 수 없다는 거죠?
“알쏭달쏭하게….”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지. 기도하고….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탱자나무가 어찌 사과를 맺을 수 있느냐’고요.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탱자는 탱자나무에서 열리죠. 공산주의가 바로 그것이에요. 깊이 들어가면 ‘속았구나’ 하고 알게 되죠.”
“김지하는 善惡 식별 잘해”
지난 8월 2일 뜻밖에도 김지하(金芝河) 시인이 박홍 신부를 찾아왔다. 1941년생 동갑인 두 사람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1주일 전에(박홍 신부는 오랜 투병생활 때문인지 시간개념이 불명확했다) 김지하가 나한테 나타났어. 여기 왔었다구. 나는 꿈인 줄 알고 ‘니가 지하 맞나?’고 했지.
‘맞습니다. 정신이 왔다갔다합니까?’라고 하길래 ‘가마이(가만히) 있어 봐라. 내(나)하고 같이 식사도 하자’고 했지.
― 김지하 시인은 건강하시던가요.
“거의 죽은 몸이 됐지. 그러다가 이제는 다시 소생을 해가지고… 내가 ‘기도하시오’ 그랬어요. 기도하라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김지하는) 정통의 식별을 잘해요. 악(惡)을 가장한 선(善)인지, 선을 가장한 악인지 식별을 할 줄 아는 분이에요.”
― 선악 식별을 잘하신다고요?
“네. 김지하가 제게 그랬어요. ‘박홍 신부! 악을 가장한 선은 없지만, 선을 가장한 악은 많아. 속지 마! 마귀는 속이는 자’라고. 그 친구와 얘기하면 끝이 없어.”
전태일 추모 미사 집전하다 연행되기도
김지하 시인이 그랬듯 1970년대 박홍 신부도 군부 독재에 비판적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1970년대 초 가톨릭 지성인협회 전국지도 신부와 ‘크리스천 사회행동협의체’ 초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자 서강대에서 추모미사를 집전하다 연행되기도 했고, 전두환 정권 때는 학생들을 선동하고 폭동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끌려간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에 침투한 주사파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그의 세계관은 180도 달라졌다.
“주사파가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잠복해 있어. 균이 잠복해 있다가 다시 10년 후에 나타난 거지(10년 후라는 시점이 언제를 뜻하는지 기자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김수환(金壽煥) 추기경께서 생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고 고생한 다음에 깨닫게 되려나. 하느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시는가’ 하시며 우신 적이 있으셨어요.”
― 요즘 정진석(鄭鎭奭) 추기경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정진석 추기경이 최근에 아주 좋은 책을 냈어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하신 말씀을 풀어서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여기서 ‘그분’은 예수님이에요. 무슨 말이냐,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 듯이,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지만 우리를 살렸습니다. 미사 예문에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오죠.”
정 추기경의 《그분의 상처로…》는 ‘최근’이 아니라 2015년 12월에 출간됐다.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동안 일어난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에 모두 담겨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이 박홍 암살명령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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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한 간첩 한병훈씨가 1995년 3월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박홍 총장을 암살하려고 계획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박홍 서강대 총장이 한씨의 말을 듣고 있다. |
“인간이 아무리 (건강이) 좋아져도 100년을 못 살아요. 앞 버스 타느냐, 뒤 버스 타느냐 차이지. 건강 나쁘면 아무 것도 못해. 건강할 때 관리를 잘해야 돼. 난 건강만 믿고 교만했어. 그때 80kg이 넘었지만 지금은 50kg이 안 돼요.”
― 예전에 북한 김정일이 신부님에 대해 암살명령을 내렸지요?
1995년 3월 독일 유학생 출신 자수간첩 한병훈은 “박홍 총장이 주사파 공격발언을 계속하자 암살을 계획했다. 이 계획이 성공할 경우 5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요인 암살 등 간첩활동을 위해 북한에서 특별 사격훈련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일설에는 한병훈이 ‘안기부(국정원) 프락치’라는 설이 있었지만, 안기부는 박 신부의 암살지령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내가 어디서 강연한다고 하면 4, 5일 전부터 그 집(강연 장소)을 경찰이 수색을 했어요.”
― 왜 암살명령을 내렸을까요. 두려워서?
“그렇겠지….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 다 떱니다. 나는 내일 죽거나, 모레 죽거나, 내일모레 죽거나 두려움이 없어요. 죽으면 지옥이나 천당, 연옥 중에 꼭 가야 되는데… 지옥엔 가기 싫어요.
천당 보내주시면 고맙지만 내가 죄를 많이 지었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니(너)는 정화(淨化) 좀 하고 올라온나’ 하시면 ‘정화학교’ 가서 정화 좀 받고 가야지.”
― 정화학교는 연옥(煉獄)을 말씀하시는 거죠?
“예.”
가톨릭에서 연옥은 죽은 영혼이 천국에 가기 전, 생전에 지은 죄(小罪·Venial Sin)들을 씻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문다는 중간단계의 공간을 말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49항). 이런 중간지대 개념은 단테의 《신곡(神曲)》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문학·학문 등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개신교(改新敎)에서는 연옥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며 이를 부인한다.
현대중공업 勞組에서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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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박홍 전 총장은 생전 가까운 사이였다. 정 회장과 박 총장이 지난 1991년 7월 19일 한·중 수교를 앞두고 중국에 민간사절단으로 떠나기 앞서 김포공항에서 출국 인사를 하고 있다. |
오태순 신부도 기자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기세등등하던 현대중공업 이갑용 노조(勞組)위원장이 박 신부에게 특강을 요청해 울산에 내려갔는데, 4시간의 특강 뒤 노조원들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고마워 서강대에다 당시 150억원짜리 건물을 지어 주었고 병원 이사로 이름을 올려주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박 신부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한번은 노동조합장 하던 이갑용이 날 찾아왔어요. 그때 한국의 노조를 쥐고 흔들던 게 현대중공업 노조입니다. 그런데 이갑용이가 특강을 해 달라면서 ‘단, 조건이 있다’는 겁니다. ‘뭔데?’ 하니 ‘쉽게 해 달라’는 거예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총장들을 다 초대해 특강을 들었대요. ‘서강대 총장은 노동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얘기해 달라’길래, ‘좋다! 석사논문 주제가 노동문화에 대한 것’이라고 했어요.”
― 예? 신부님의 논문 주제가 ‘노동문화’였다고요? ‘영적(靈的)인’ 주제가 아니고요?
“노동이 영적인 거라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날개 달고 날아다니는 게 영적인 게 아니에요.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는, 그런 노동하는 인간에 깊이 들어가는 게 영적인 거예요. 저도 노동운동을 많이 했지요.”
“남의 聖杯에다 코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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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원로 사제인 오태순 신부는 매주 수요일 박홍 신부를 위해 병자성사를 행하고 있다. 사진=이석재 |
“서울대 출신의 한 놈이랑 넝마주이를 한 달간 했어요. 그렇게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이 저를 쓰레기 취급 하더라고. 그런데 아이들만 유일하게 저를 환대해 주었어요.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갖다 주었거든요. 그 생활을 《가톨릭신문》에다가 있는 그대로 막 썼더니 그 다음 날, 예수회 (한국)관구장이 날 찾아와서 ‘당장 때려치우고 돌아오라. 안 돌아오면 예수회에서 나간 걸로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순명(順命)했죠.”
― 현대중공업 특강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요,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나세요?
“노조원들이 ‘당신은 공산당이 아닌 이상 어떻게 북한의 정책과 용어를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길래 ‘학생들이 저한테 언제, 며칟날 데모한다고 다 알려준다. 그래서 아는 거지, 내가 귀신이라서 아는 게 아니다’고 답했지요.”
― 레닌이 ‘예수회 사제 1명을 없애는데 1개 사단 병력을 희생하더라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희생을 많이 할 각오를 하라, 그 말이 아니겠어요?
―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하느님은 왜 북한 김씨왕조를 안 붕괴시키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요.
“손 안 대고 코풀려는 소리야. 코는 지 손으로 풀어야지, 하느님 이름 빌려서 대신 코풀려고 하니…. 남의 성배(聖杯)에다 코풀지 마세요.”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 북한의 비핵화, 어떻게 될까요.
“안 하고 못 배길 거예요.”
― 남북 관계, 좋아질까요.
“나는 ‘아이 홉 소(I hope so)’.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만드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와~ 무서운 거예요. 후유증이 얼마나 긴지….”
건강 탓에 더는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에게 역할이 남아 있음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신은 그에게 앞으로 어떤 과업을 맡기실까.
며칠 후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김원율씨가 이메일을 보내 왔다. 메일을 열었더니 지난 6월 27일 박 신부가 이런 발언을 했다고 알려왔다. 일부를 소개한다.
“인간 존재의 근거를 부정하게 하는 어둠의 세력을 성령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자애로운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가 두 살배기 어린이가 어머니 치마폭을 붙잡고 칭얼거리듯이 하여도 모든 것을 우리의 아버지이신 성부께 전구(轉求·성모 마리아와 성인(聖人)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은혜를 구한다는 의미다)하시며 기도해 주십니다.
70년간 이어졌던 남북의 적대관계, 미국과 북한의 대결적인 관계가 평화로 이어지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뀔 수 있도록 성모님께 간구합시다.”⊙
30대에 테레사 수녀를 만난 박홍 신부 “가난한 이웃이 1분 후에 죽더라도…” 박홍 신부는 1971년, 서른한 살 때 인도에서 마더 테레사를 만난 적이 있다. 제27차 세계가톨릭성인 지도신부 회합이 인도 방갈로에서 한 달간 진행됐다. 그곳에서 한국인 신부 6명과 함께 일주일간 봉사활동을 했는데 언어도 안 통하고 몸이 고되어 다른 신부들은 돌아가고 혼자 남게 됐다. 그때 BBC 기자들이 마더 테레사를 인터뷰하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했다. 당시 캘커타 수녀들이 다 죽어 가던 병자들을 씻기고 있었다. 한 기자가 “죽어 가는 이들을 헛간에 모아 놓고 이렇게 한다고 인도의 가난과 궁핍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테레사 수녀에게 따지듯 물었다. 테레사 수녀는 “그렇지 않다”며 다소 어눌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질문을 나에게 하는 것은 틀렸다. 나에게 하지 말고 장관이나 나라 대통령, 정치하는 사람에게 하라. 수녀이자 약한 여자로서, 주님의 복음(福音)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이 사람도 똑같은 인간이다. 다른 질문을 하지 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게 내가, 우리 수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봉사하고 씻기고 몸을 닦이고 내일 죽더라도, 아니 1분 후에 죽더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이다.” 박 신부는 마더 테레사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말씀을 오래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