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지구 인근, 집속탄 소리 들려 기자가 IDF에 강하게 질문하자 “그럴 리 없다. 아니다”
⊙ 니르 오즈 마을에는 아직도 하마스의 총탄 흔적 그대로… 일가족이 전원 사망한 가정도 있어
⊙ “이스라엘에 인질전담기구 없어… 네타냐후 자녀가 인질이어도 이럴 건가”(인질 가족 피해자 루비 첸 씨)
⊙ “하마스, 가자지구에만 있는 것 아냐… 정치지도자는 ‘도하’에 있다”(외무부 대테러 부서 핵심 관계자 A씨)
⊙ 이스라엘 북서부에 위치한 람밤(Rambam) 병원은 유사시 지하 병원으로 전환… 수술부터 생활까지 가능
⊙ 건강한 음식과 인심 가득한 이스라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덥석 악수하고 덤 주기도
⊙ 니르 오즈 마을에는 아직도 하마스의 총탄 흔적 그대로… 일가족이 전원 사망한 가정도 있어
⊙ “이스라엘에 인질전담기구 없어… 네타냐후 자녀가 인질이어도 이럴 건가”(인질 가족 피해자 루비 첸 씨)
⊙ “하마스, 가자지구에만 있는 것 아냐… 정치지도자는 ‘도하’에 있다”(외무부 대테러 부서 핵심 관계자 A씨)
⊙ 이스라엘 북서부에 위치한 람밤(Rambam) 병원은 유사시 지하 병원으로 전환… 수술부터 생활까지 가능
⊙ 건강한 음식과 인심 가득한 이스라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덥석 악수하고 덤 주기도
- 크파르 아자(Kfar Aza) 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자지구의 모습. 공습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백재호
지난 5월 22일 텔아비브(Tel Aviv·이스라엘의 수도)의 새벽. 기자는 숙소 테라스에서 전쟁 중인 국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휘황찬란한 도심의 야경(夜景)에 푹 빠져 있었다. 이스라엘에 온 지 5일 차. 처음 입국하면서 느꼈던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함께 취재 온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마음을 가다듬고 입국했는데 생각보다 조용하다”고 했다. 기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6개월이 흘렀으니 초창기만큼의 우발(偶發) 상황은 없을 것”이라 말했다.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몸을 굳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3시에 공습경보가 울린 것이다. 기자를 포함한 일행은 ‘숙소 내 방공호(防空壕)로 대피해야 한다’는 본능을 누르고 각자가 방향을 정해 스마트폰으로 하늘을 찍기 시작했다. 이러던 중 기자가 사진을 찍는 우측면 끝 한 지점에서 ‘번쩍’ 하는 황금빛 섬광(閃光)이 보였다. 아이언돔(Iron Dome·이스라엘 중·단거리 미사일 요격용 방어체계)이 미사일 요격에 성공한 것이다. 이스라엘군(IDF)은 같은 날 오전 성명을 내고 “예멘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했다”며 “절차에 따라 공습경보를 발령했다”고 밝혔다.
다음 날에도 오전 4시경 공습경보가 또 울렸다. 같은 날 오전에도 공습경보가 울려 취재 중 방공호로 잠시 향하기도 했다. 취재 중 마구 울려대는 공습경보에 기자는 “전쟁 중이지만 꽤 평화롭다”는 모순(矛盾)적 위로를 더 이상 갖지 않게 됐다.
‘벽에 갇힌 백색도시’
크파르 아자(Kfar Aza) 인근 이스라엘군 전망대를 찾았다. 이곳은 가자지구로부터 불과 3km 떨어진 곳이다. 펄럭이는 이스라엘 국기 너머로 흐릿하게 가자지구가 보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자지구는 폭격으로 건물 대다수가 무너진 듯한 모습이었다. 건물 시멘트가 하얗게 밖으로 드러나 가자지구 자체가 하나의 벽에 갇힌 백색도시처럼 보였다. 기자가 가자지구를 멍하니 보고 있을 무렵 전투기 소리가 멀리서 들리더니, 이윽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가자지구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실제 공습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3km나 떨어진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진동과 폭음(爆音)이라면 ‘사망자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폭음과 진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검은 연기도 보였는데 이는 화재 발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습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전망대에 있었던 관람객들은 가자지구를 향해 수차례 사진을 찍기도 했다. 기자가 현장에 함께 있던 이스라엘군에게 “누군가는 방금 또 죽었을 것”이라 말하자 군인은 “무고한 시민이 아닌 하마스(Hamas)이길 바란다”라고 짧게 답했다.
전망대를 찾은 이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현장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을 응원했고 누군가는 기자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현장을 바라봤다. 일부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촬영하고자 노력했다. 기자가 전망대를 떠나기 직전 집속탄(cluster bomb·한 개의 폭탄 속에 또 다른 폭탄이 들어가 있는 폭탄으로 대량살상무기로 분류)으로 추정되는 폭음이 들렸다. 과거 포병 장교였던 기자는 곧바로 “방금 집속탄이 떨어진 것 아니냐”고 강하게 물었고 현장 이스라엘군 공보담당자는 단호하게 “그럴 리 없다. 아니다”라고 답했다. 집속탄이 터질 때 나는 특유의 소리였음을 기자는 확신했지만 증거가 없어 더 이상 구체적인 질문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도 공습으로 인한 진동과 폭음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주민 400명 중 117명이 사망하거나 납치돼”
이어 키부츠(Kibbutz·집단농장과 사업소를 함께 경영하는 이스라엘의 생활공동체) 마을인 니르 오즈(Nir Oz)를 방문했다. 이곳은 가자지구와 불과 3km 거리로 지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습격 당시 큰 피해를 입은 장소 중 하나다. 마을회관에는 가자지구로 끌려간 주민들의 초상화와 함께 당시의 악몽을 연상시키는 총탄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올라 메츠거(Ola Metzger) 씨는 하마스 습격 당시 시부모님이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하마스 습격의 피해자다. 메츠거 씨는 “시부모님 소식을 필리핀 출신 주민인 지미가 전해줘 기적적으로 알게 됐다”며 “지미 또한 하마스가 납치했지만 3주 뒤 풀어줬고 그때 시부모님 소식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후 그의 시어머니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지만 시아버지는 하마스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유해는 작년 8월에서야 니르 오즈에 묻혔다. 그는 “우리의 경우 천만다행으로 아들과 딸, 남편이 무사한데, 주위를 둘러보면 이렇지 않은 가족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그와 함께 마을을 돌아보았다. 곳곳에 불탄 흔적이 가득했다. 집이 전소(全燒)된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집 앞에는 납치되거나 사망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깃발과 사진들이 내걸려 있었다.
― 하마스가 습격하기 전에는 얼마나 살고 있었나요.
“400명가량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 중 117명이 사망하거나 납치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가자지구에 인질로 붙잡혀 있는 사람도 있어요. 확인된 사망자만 총 60여 명에 이릅니다.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이주했어요. 일부 사람만 매일 출근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메츠거 씨는 하마스에게 습격받은 한 가정집을 보여줬다. 새카맣게 타 그을음에 뒤덮여 있었고 당연히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밖은 화창한데 집 내부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암흑 그 자체였다. 숨이 턱 막혔다. 손전등을 켜자 동화책, 식기도구, 자잘한 옷가지 등 평범한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이 집 가족의 행방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물으니 그는 “하마스 습격 당시 다 사망했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메츠거 씨와 함께 많은 곳을 둘러보았는데 납치된 거주민 중 ‘살아서 돌아온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살기 위해 죽은 척했다”
기자가 둘러본 니르 오즈 마을의 경우 가구별 1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방공호가 설치돼 있었다. 이는 하마스의 공격에 대비한 정부의 지침인데, 집과 연결된 방공호가 없을 경우 가장 가까운 방공호로 대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럼에도 당시 주민들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하마스의 공격 방식이 기존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간 하마스는 로켓 위주의 공격을 자행해 왔는데 이날은 하마스 대원이 글라이더 등을 이용해 직접 침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방공호는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대한 대비책일 뿐 실제 하마스 대원이 침투하는 경우는 고려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방공호의 창문은 방탄(防彈)이지만 출입문은 그렇지 않았다. 메츠거 씨 역시 그가 방공호로 대피했을 당시 “하마스 대원이 방공호 문을 강제로 열려고 했다”며 밖에서 문을 열지 못하게 “문고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다”고 그때의 상황을 증언했다. 메츠거 씨는 불탄 방공호를 볼 때면 “나는 운이 좋았다”며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마스가 방공호 안에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불을 지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습격을 당한 곳은 또 있다. 바로 ‘슈퍼노바 페스티벌(Tribe of Nova)’ 현장이다. 2023년 당시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Sukkot·구약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 중 하나)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된 이 행사는 10월 6일 22시부터 그다음 날 15시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노려 하마스가 습격했고, 현장에 있던 참가자 중 500여 명이 실종되고 현장에서 260여 명이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마잘 타자(Mazal Taza·35) 씨는 극적으로 생존한 생존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열 살짜리 아들이 있는 어머니이자 현재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는 “(10월 7일 오전 6시20분경) 아침에 진행되는 파티에 참가 중이었는데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사이렌이 울렸다”고 했다.
“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로 정체(停滯)가 너무 심해서 차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한데 총소리와 비명이 들려 도로 옆 덤불로 도망쳤지만 끝내 하마스가 나를 발견해 개머리판으로 때렸어요.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하마스 대원이 다리를 줄로 묶고 있어 죽은 척을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고 다행히 내가 죽은 줄 알았는지 버려두고 자리를 떴습니다.”
“심리상담사에게 ‘죽고 싶다’고 말해”
― 일행은 없었나요.
“친구 2명과 함께 갔는데 모두 사망했습니다. 저만 살아남았어요. 오후 2시30분 정도 됐을 무렵 하마스들이 철수했는지 생존자들이 모여 자체적인 구조 작업을 벌였습니다. 이들에 의해 안전구역으로 이송됐는데, 부상자들과 시신이 뒤엉켜 있는 생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자니 큰 고통일 것 같습니다.
“사고 후 4개월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심리상담사에게 ‘죽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아들이 있어서…. (하마스의 습격 후) 저는 아들을 2주 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조금 다쳤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다 제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아들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물론 아직 전부를 말하지는 못했어요. 아이가 더 크면 말할 생각입니다.”
― 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죽은 척 정말 잘했다. 멋지다’며 저를 응원하더군요.”
타자 씨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공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마스는 잔인함을 정당한 저항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들은 종교,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살해와 성(性)폭행 등의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증오’를 어릴 때부터 배운 사람들입니다. 틱톡에는 어린아이가 총을 들고 유대인을 죽이겠다고 외치는 영상도 있습니다. 이는 학대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제 아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텔아비브에서 ‘인질가족포럼’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루비 첸 씨의 아들 이타이 첸(18) 씨는 캠퍼스의 낭만을 먼저 누릴 수도 있었지만 국가를 위해 이스라엘군 입대를 먼저 선택했다. 이런 그였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서 작전임무 수행 중 하마스에게 납치됐다. 첸 씨는 “사건일(하마스 습격일)로부터 2주가 지나 자신의 아들이 가자지구에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게 됐다”고 했다.
― 아들은 여전히 가자지구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아들이 가자지구에 있는 걸 알게 된 직후 ‘미국 시민 인질 가족’으로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저는 미국계 이스라엘인이고 제 아내는 독일계 이스라엘인입니다. 제 아들 이타이는 미국·독일계 이스라엘인인 셈이죠. 이스라엘군은 아들의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지만 하마스는 제 아들과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첸 씨는 인질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인질가족석방 NGO(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를 소개하며 “우리는 인질 석방 촉구를 담당하는 ‘외교팀’도 있고 SNS에 올라오는 각종 관련 영상을 분석하는 ‘기술팀’도 있지만 전문가는 아니다. 자원봉사자들과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순수 민간단체다”라고 했다. 또 그는 “미국의 경우 국무부 내에 인질 문제를 전담하는 ‘인질 문제 특별대표(SPEHA)’라는 부서가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에는 아직 관련 전담부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타냐후(현직 이스라엘 총리)의 자녀가 인질이었어도 이럴 것이냐”고 인질 석방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은 해외에서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활동을 할 때로 한정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첸 씨는 인질 석방을 위해 직접 뛰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개전 초 당시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초청돼 발언하기도 했다. 또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과 직접 통화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예정된 통화시간은 15분 내외였지만 대통령은 그와 1시간30분 이상 통화하며 인질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첸 씨는 ‘인질 석방과 정치적 연계성’에 대해 단호히 선을 그었다.
“우리 단체는 설립과 동시에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고 순수 인질 석방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과 인질은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우리는 가자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위기도 인식하고 있지만 이 문제와 우리의 가족이 얽히는 건 원치 않습니다.”
“한국, 이스라엘 편에 서달라”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외무부의 입장은 어떨까. 아비브 에즈라(Aviv Ezra)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은 “먼 길 왔는데 좋은 얘기를 더 많이 해주고 싶다”며 현장 기자들에게 여유를 보였다. 그는 “한국이 곧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차기 한국 정부와도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그러기 위해 이스라엘의 입장도 잘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에즈라 부국장은 “이스라엘은 한국의 모든 정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초당적(bipartisan) 관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그는 현재 이스라엘의 유일하게 아쉬운 점으로 ‘유엔 등 다자 무대에서의 협력 부족’을 꼽으며 “한국이 보다 강하고 분명하게 이스라엘 편에 서주길 희망한다”고 했다.
― ‘보다 강하고 분명하게 이스라엘 편에 서달라’의 구체적인 예를 들면요.
“유엔 안보리나 총회에서 나오는 몇몇 선언문이나 결의안에 있어 좀 더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는 겁니다. 한국은 우리가 말하는 ‘온건 세력 측’의 일원입니다. 물론 우리 역시 한국이 처한 외교적 상황 등 다양한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방적 요구’가 아닌 ‘쌍방향적 기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에즈라 부국장은 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착각’이라 표현했다.
“이스라엘이 1970년대에는 이집트와 1990년대에는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이후 UAE, 바레인, 모로코 등과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평화의 길을 걸어오고자 노력했습니다. 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프로세스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경제와 외교를 통해 평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중동 내 온건 파트너들과 협력하며 안정적인 관계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2005년 당시 아리엘 샤론(Ariel Sharon·1928~2014년) 총리는 가자지구 철수를 단행하기도 했죠. 당시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팔레스타인 모두 가자지구가 ‘중동의 싱가포르’가 될 것이라 장담했지만 가자지구는 과학·기술·교육 개발로 나아가지 않았고 오히려 (하마스의) 전면전 준비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하마스 정치지도자, 카타르에 있다”
이스라엘 외무부 소속으로 지역 안보 및 대테러 부서에서 근무 중인 A씨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해’ 이제는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서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율은 ‘급감’했습니다. 만약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계 국가가 수립된다면 어떤 국가가 되겠습니까. 시리아와 같은 내전(內戰) 국가나 레바논처럼 무장단체가 통제하는 국가 등의 형태를 띨 겁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전략도 있었습니다. 미사일 한두 발쯤은 괜찮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절대 아닙니다. ‘단 1%의 위험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이스라엘 사회의 생각입니다.”
기자는 평소 가장 궁금했던 ‘하마스의 ‘컨트롤타워’, 즉 핵심 지휘부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이스라엘군은 항상 하마스의 지도자를 제거해 왔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A씨는 “하마스의 실제 ‘정치지도부’는 도하(카타르)에 있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내 하마스’ ‘해외에 위치한 하마스’ ‘웨스트뱅크(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한 하마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해외 조직의 경우 도하와 튀르키예(터키)에 있고 일부는 유럽에 근거지를 두고 자선단체를 통해 활발히 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군사전술 작전은 여전히 가자지구에서 수행되고 있습니다.”
A씨는 “현재 이스라엘군이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작전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더 이상 작전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하마스 지도부가 어떤 형태로든 가자지구에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자단은 ‘이란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이스라엘의 직접적 위험’으로 보는지 물어봤다. A씨는 “이스라엘은 북한을 직접적 위협으로 보지는 않지만 이란과 북한 사이의 협력에 따른 ‘무기 확산’ ‘기술 공유’ ‘러시아와의 연계 확장’ 등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단적인 예로 이란이 러시아에 무인기 등의 군사 장비를 제공한다면 현재 러시아와의 협력이 강화된 북한이 이란산 장비의 운용법을 습득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레 한국에도 직간접적 위협으로 작용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전쟁 대비한 ‘람밤 병원’
이스라엘을 향한 위협은 하마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헤즈볼라(Hezbollah)도 이스라엘의 적 중 하나다. 이스라엘 북부에서는 골란고원을 둘러싸고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군이 여전히 산발적 교전(交戰)을 벌이고 있다.
기자는 이스라엘 북서부에 위치한 해양도시 하이파(Haifa)를 찾았다. 하이파 역시 헤즈볼라의 공격 사정권(射程圈)에 드는 도시다. 가는 길에 보인 탁 트인 바다와 산길을 따라 펼쳐진 평원지대는 무거웠던 이스라엘의 현 상황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만큼 시원했다. 기후 또한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한 예루살렘(Jerusalem)과 수도인 텔아비브보다 비교적 선선한 편이었다.
하이파에는 람밤(Rambam) 병원이 위치해 있다. 람밤 병원은 이스라엘 북부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기자는 람밤 병원을 취재하러 가면서 한국도 내로라하는 병원이 많은 만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람밤 병원의 역량은 기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실전적(實戰的)이고 정교했다. 바로 ‘전쟁에 대비한 병원이자 실전 경험이 풍부한 병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람밤 병원은 유사시 지하에 1169개의 병상(病床)을 수용 후 병원의 주요 역량도 동시에 지하화(地下化)시킬 수 있다. 또 적의 생화학, 미사일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방어 시설도 구축되어 있다.
지하 병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하 주차장은 지난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 이후 건설됐다. 당시 헤즈볼라의 미사일이 병원에 떨어지면서 환자들을 안전한 공간에서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람밤 병원은 지하 3층 규모의 공간을 추가 건설해 총 6만㎡에 달하는 면적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 최근 실전에 쓰인 사례가 있습니까.
“코로나19 시기에 지하 병동이 운영됐습니다. 지난 2020년 후반부터 2021년까지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를 완전히 분리, 코로나19 환자를 지하 병원에서 치료했습니다. 감염 위험이 매우 높은 환경이었습니다만 의료진과 환자 사이 단 한 건의 감염 사례도 없었습니다. 이때 실제로 지하 병원을 운영하며 많은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지하 병원으로 전환하는 데도 1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 지하 시설에서 수술도 가능한가요.
“코로나19 시기에 첫 수술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출산까지 이뤄졌죠. 뿐만 아니라 고정식 및 이동식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모두 마련되어 있습니다. 람밤 병원은 단순 병원이 아닌 이스라엘인들의 자부심이자 하나의 전략자산입니다.”
“아이들이 전쟁 몰랐으면”
기자가 이스라엘에서 지낼수록 ‘이스라엘은 하나의 거대한 전초기지(前哨基地)’ 그 자체로 느껴졌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강한 국가’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의 전투력과 준비성을 겸비한 국가로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 그대로 사방이 적인 나라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인 셈이다. 또 한국의 대내외적 상황이 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해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에게 가장 큰 심리적 안정을 준 곳은 이스라엘의 시장과 평범한 골목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예루살렘의 마하네 예후다(Machne Yehuda)시장은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기자는 늦은 저녁 시장을 홀로 돌아다니며 주변 곳곳을 구경했다. 시장이 문을 닫을 즈음에 방문한 만큼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지만 시장 특유의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견과류를 팔고 있던 가게에 흥미가 생겨 기웃거렸다. 가게 사장이 “어디서 왔냐. 하나 먹어봐라. 공짜다”라며 기자에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사장은 “최근 넷플릭스로 〈오징어게임〉을 봤다. 한국 드라마를 늘 재미있게 본다”고 했다. 그는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가게 사장은 “한국은 이스라엘의 친구”라며 “이스라엘도 북한은 싫다”고 외치기도 했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견과류 값을 치르려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예루살렘 거리를 감상하며 걸어보았다. 거리 곳곳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출산율은 2022년 기준 평균 한 가구당 3명에 육박할 정도다. 부모와 아이가 골목에서 함께 놀고 있는 모습도 흔히 보였다.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가정을 꾸린 리암(Liam·37) 씨는 두 딸의 아버지다. 그는 “유대인은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은 인구 유지가 매우 중요한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아직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의 존재를 모른다. 아버지로서 평생 몰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아이언돔보다 강한 ‘골든(golden)돔’”
기자에게는 종교가 없다.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성지(聖地)순례’는 곧 ‘참된 신앙의 상징’으로 비치기도 한다. 기자는 예수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알려진 ‘성묘(聖墓)교회’와 유대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을 찾아갔다. 성묘교회 안에서는 한 방문객이 예수의 시신이 눕혀진 것으로 알려진 ‘성유석(聖油石)’에 입을 맞추며 기도하고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로 알려진 골고다(Golgotha) 언덕 위 세워진 기도 장소로 향했다. 많은 이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자도 그 분위기와 공기에 잠시나마 종교인들의 심정을 공감하며 자리를 지켜봤다. 예수의 무덤에서는 함께 간 기자단 일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했다.
통곡의 벽을 두고 기도하는 수많은 유대인과 벽 뒤 ‘황금빛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과의 조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몇 미터를 두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연달아 있는 셈이니 예루살렘을 ‘성지의 땅’으로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가 황금빛 바위의 돔과 통곡의 벽이 함께 보이는 위치에서 한창 촬영을 하고 있을 때 기자와 함께 간 기자단 중 한 명이 불쑥 “이스라엘에 아이언돔보다 강력한 방공망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건 바로 골든돔(golden dome)”이라며 이슬람 성지를 가리켰다. 기자는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금방 실소(失笑)를 터트렸다. 예루살렘의 경우 이슬람 성지가 있으니 하마스나 예멘(Yemen)의 후티 반군(Houthis)이 미사일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단순 말장난이 아닌 ‘뼈 있는 농담’인 셈이다. 그의 말 때문인지 몰라도 기자에게 성지순례는 종교적 감명보다 복잡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냉정한 상황으로 와닿았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반군의 이스라엘 공격을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한 ‘공격’이라는 것이 함께 상기됐기 때문이다.
기자는 통곡의 벽에서 유대인들의 전통 모자인 키파(Kippah)를 쓰고 벽을 만져보기도 했다. 통곡의 벽은 남녀 구역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었다. 또 종이에 소원을 써 벽 틈에 끼우곤 하는데 기자 주변에서 한 소년이 열심히 소원을 적고 있었다. 기자가 무슨 소원을 열심히 적나 싶어 물어보니 “지난달에 입대한 형이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우리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도 다른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벽에 손을 대고 하늘을 보자 멀리서 봤을 때는 낮아 보였던 통곡의 벽이 유독 높아 보였다.
‘건강한 맛’과 안전한 ‘치안’
이스라엘의 기후는 상당히 더웠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심하고 금방 허기가 졌다. 함께 취재 온 기자들의 고민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잘 먹을 수 있을까”인 이유다. 이스라엘인들은 아침으로 샥슈카(Shakshouk·달걀 요리)나 빵에 치즈, 요구르트, 샐러드 등을 곁들여 먹는다. 기자가 이스라엘에서 끼니를 챙기는 동안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이스라엘인들은 ‘건강한 요리를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유대교에서 비롯된 식습관이자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을 지향하는 유대인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기자가 방문한 음식점들의 공통점은 항상 ‘피타브레드(Pita bread)’와 함께 보이는 ‘이스라엘식 샐러드’ ‘훔무스(Hummus·병아리콩으로 만든 스프레드)’ ‘팔라펠(Falafel·병아리콩과 누에콩을 쪄서 잘게 다진 후 양파나 고수 등을 넣은 후 기름에 튀겨낸 것)’ 등이 기본 음식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피타브레드를 가장 좋아했는데 빵에 훔무스를 바르고 이스라엘식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든든한 한 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언급한 음식은 식전(食前) 음식인데 ‘갓 나온 따끈한 빵이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는 점에 있었다. 음식점 종업원도 항상 기자에게 “메인 요리가 나오니 미리 많이 먹지 마라”고 당부했지만 기자는 이 당부를 지킨 적이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의 요리는 굽거나 찌는 경우가 대다수다. 볶음요리 등 기름진 요리는 거의 없다. 이스라엘에서 지내는 내내 기자단들은 공통적으로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더부룩하지가 않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식전 요리로 구성되는 음식들이 ‘소화를 돕는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만 이스라엘의 경우 유대인들을 위한 코셔푸드(Kosher food·유대인의 종교적 요리법을 따른 요리)에 따라 돼지고기는 엄격히 금지된다. 삼겹살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도중에는 소, 닭, 양, 해산물 요리 등에 집중해 볼 것을 권한다.
이스라엘의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점은 안전한 ‘치안’이다. 전쟁 중인 국가라 치안이 불안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스라엘의 치안 수준은 한국과 다를 바가 크게 없었다. 수도인 텔아비브에서는 밤에도 러닝 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음식점은 대개 오후 10시 이전에 문을 닫지만 술집의 경우 늦게까지 운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취재는 기자의 첫 해외 취재임과 동시에 전쟁 중인 국가의 일상을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시간이었다. 언뜻 보면 평화롭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항상 이스라엘이 처한 외교·안보적 현실을 너무나도 쉽게 맞닥뜨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현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번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강함을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유대인들의 정신력만큼이나 우리 국민들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항상 걱정하는 ‘정신력’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에도 오전 4시경 공습경보가 또 울렸다. 같은 날 오전에도 공습경보가 울려 취재 중 방공호로 잠시 향하기도 했다. 취재 중 마구 울려대는 공습경보에 기자는 “전쟁 중이지만 꽤 평화롭다”는 모순(矛盾)적 위로를 더 이상 갖지 않게 됐다.
‘벽에 갇힌 백색도시’
크파르 아자(Kfar Aza) 인근 이스라엘군 전망대를 찾았다. 이곳은 가자지구로부터 불과 3km 떨어진 곳이다. 펄럭이는 이스라엘 국기 너머로 흐릿하게 가자지구가 보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자지구는 폭격으로 건물 대다수가 무너진 듯한 모습이었다. 건물 시멘트가 하얗게 밖으로 드러나 가자지구 자체가 하나의 벽에 갇힌 백색도시처럼 보였다. 기자가 가자지구를 멍하니 보고 있을 무렵 전투기 소리가 멀리서 들리더니, 이윽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가자지구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실제 공습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3km나 떨어진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진동과 폭음(爆音)이라면 ‘사망자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폭음과 진동은 꾸준히 이어졌다. 검은 연기도 보였는데 이는 화재 발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습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전망대에 있었던 관람객들은 가자지구를 향해 수차례 사진을 찍기도 했다. 기자가 현장에 함께 있던 이스라엘군에게 “누군가는 방금 또 죽었을 것”이라 말하자 군인은 “무고한 시민이 아닌 하마스(Hamas)이길 바란다”라고 짧게 답했다.
전망대를 찾은 이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현장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을 응원했고 누군가는 기자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현장을 바라봤다. 일부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촬영하고자 노력했다. 기자가 전망대를 떠나기 직전 집속탄(cluster bomb·한 개의 폭탄 속에 또 다른 폭탄이 들어가 있는 폭탄으로 대량살상무기로 분류)으로 추정되는 폭음이 들렸다. 과거 포병 장교였던 기자는 곧바로 “방금 집속탄이 떨어진 것 아니냐”고 강하게 물었고 현장 이스라엘군 공보담당자는 단호하게 “그럴 리 없다. 아니다”라고 답했다. 집속탄이 터질 때 나는 특유의 소리였음을 기자는 확신했지만 증거가 없어 더 이상 구체적인 질문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도 공습으로 인한 진동과 폭음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주민 400명 중 117명이 사망하거나 납치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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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초토화된 한 가정집 내부. 그을음 냄새가 아직도 가득했다. 사진=백재호 |
이곳에서 만난 올라 메츠거(Ola Metzger) 씨는 하마스 습격 당시 시부모님이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하마스 습격의 피해자다. 메츠거 씨는 “시부모님 소식을 필리핀 출신 주민인 지미가 전해줘 기적적으로 알게 됐다”며 “지미 또한 하마스가 납치했지만 3주 뒤 풀어줬고 그때 시부모님 소식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후 그의 시어머니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지만 시아버지는 하마스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유해는 작년 8월에서야 니르 오즈에 묻혔다. 그는 “우리의 경우 천만다행으로 아들과 딸, 남편이 무사한데, 주위를 둘러보면 이렇지 않은 가족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그와 함께 마을을 돌아보았다. 곳곳에 불탄 흔적이 가득했다. 집이 전소(全燒)된 경우도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집 앞에는 납치되거나 사망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깃발과 사진들이 내걸려 있었다.
― 하마스가 습격하기 전에는 얼마나 살고 있었나요.
“400명가량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 중 117명이 사망하거나 납치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가자지구에 인질로 붙잡혀 있는 사람도 있어요. 확인된 사망자만 총 60여 명에 이릅니다.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이주했어요. 일부 사람만 매일 출근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메츠거 씨는 하마스에게 습격받은 한 가정집을 보여줬다. 새카맣게 타 그을음에 뒤덮여 있었고 당연히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밖은 화창한데 집 내부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암흑 그 자체였다. 숨이 턱 막혔다. 손전등을 켜자 동화책, 식기도구, 자잘한 옷가지 등 평범한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이 집 가족의 행방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물으니 그는 “하마스 습격 당시 다 사망했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메츠거 씨와 함께 많은 곳을 둘러보았는데 납치된 거주민 중 ‘살아서 돌아온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살기 위해 죽은 척했다”
기자가 둘러본 니르 오즈 마을의 경우 가구별 1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방공호가 설치돼 있었다. 이는 하마스의 공격에 대비한 정부의 지침인데, 집과 연결된 방공호가 없을 경우 가장 가까운 방공호로 대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럼에도 당시 주민들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하마스의 공격 방식이 기존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간 하마스는 로켓 위주의 공격을 자행해 왔는데 이날은 하마스 대원이 글라이더 등을 이용해 직접 침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방공호는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대한 대비책일 뿐 실제 하마스 대원이 침투하는 경우는 고려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방공호의 창문은 방탄(防彈)이지만 출입문은 그렇지 않았다. 메츠거 씨 역시 그가 방공호로 대피했을 당시 “하마스 대원이 방공호 문을 강제로 열려고 했다”며 밖에서 문을 열지 못하게 “문고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다”고 그때의 상황을 증언했다. 메츠거 씨는 불탄 방공호를 볼 때면 “나는 운이 좋았다”며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마스가 방공호 안에 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불을 지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습격을 당한 곳은 또 있다. 바로 ‘슈퍼노바 페스티벌(Tribe of Nova)’ 현장이다. 2023년 당시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Sukkot·구약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 중 하나)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된 이 행사는 10월 6일 22시부터 그다음 날 15시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노려 하마스가 습격했고, 현장에 있던 참가자 중 500여 명이 실종되고 현장에서 260여 명이 사망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마잘 타자(Mazal Taza·35) 씨는 극적으로 생존한 생존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열 살짜리 아들이 있는 어머니이자 현재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그는 “(10월 7일 오전 6시20분경) 아침에 진행되는 파티에 참가 중이었는데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사이렌이 울렸다”고 했다.
“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로 정체(停滯)가 너무 심해서 차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한데 총소리와 비명이 들려 도로 옆 덤불로 도망쳤지만 끝내 하마스가 나를 발견해 개머리판으로 때렸어요.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하마스 대원이 다리를 줄로 묶고 있어 죽은 척을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고 다행히 내가 죽은 줄 알았는지 버려두고 자리를 떴습니다.”
“심리상담사에게 ‘죽고 싶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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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슈퍼 노바 페스티벌 현장에서 두 친구를 잃은 마잘 타자 씨가 그의 친구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백재호 |
“친구 2명과 함께 갔는데 모두 사망했습니다. 저만 살아남았어요. 오후 2시30분 정도 됐을 무렵 하마스들이 철수했는지 생존자들이 모여 자체적인 구조 작업을 벌였습니다. 이들에 의해 안전구역으로 이송됐는데, 부상자들과 시신이 뒤엉켜 있는 생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자니 큰 고통일 것 같습니다.
“사고 후 4개월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심리상담사에게 ‘죽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아들이 있어서…. (하마스의 습격 후) 저는 아들을 2주 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조금 다쳤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다 제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아들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물론 아직 전부를 말하지는 못했어요. 아이가 더 크면 말할 생각입니다.”
― 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죽은 척 정말 잘했다. 멋지다’며 저를 응원하더군요.”
타자 씨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공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마스는 잔인함을 정당한 저항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들은 종교,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살해와 성(性)폭행 등의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증오’를 어릴 때부터 배운 사람들입니다. 틱톡에는 어린아이가 총을 들고 유대인을 죽이겠다고 외치는 영상도 있습니다. 이는 학대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제 아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텔아비브에서 ‘인질가족포럼’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루비 첸 씨의 아들 이타이 첸(18) 씨는 캠퍼스의 낭만을 먼저 누릴 수도 있었지만 국가를 위해 이스라엘군 입대를 먼저 선택했다. 이런 그였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서 작전임무 수행 중 하마스에게 납치됐다. 첸 씨는 “사건일(하마스 습격일)로부터 2주가 지나 자신의 아들이 가자지구에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게 됐다”고 했다.
― 아들은 여전히 가자지구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아들이 가자지구에 있는 걸 알게 된 직후 ‘미국 시민 인질 가족’으로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저는 미국계 이스라엘인이고 제 아내는 독일계 이스라엘인입니다. 제 아들 이타이는 미국·독일계 이스라엘인인 셈이죠. 이스라엘군은 아들의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지만 하마스는 제 아들과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첸 씨는 인질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인질가족석방 NGO(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를 소개하며 “우리는 인질 석방 촉구를 담당하는 ‘외교팀’도 있고 SNS에 올라오는 각종 관련 영상을 분석하는 ‘기술팀’도 있지만 전문가는 아니다. 자원봉사자들과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순수 민간단체다”라고 했다. 또 그는 “미국의 경우 국무부 내에 인질 문제를 전담하는 ‘인질 문제 특별대표(SPEHA)’라는 부서가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에는 아직 관련 전담부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타냐후(현직 이스라엘 총리)의 자녀가 인질이었어도 이럴 것이냐”고 인질 석방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은 해외에서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활동을 할 때로 한정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첸 씨는 인질 석방을 위해 직접 뛰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개전 초 당시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초청돼 발언하기도 했다. 또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과 직접 통화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예정된 통화시간은 15분 내외였지만 대통령은 그와 1시간30분 이상 통화하며 인질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첸 씨는 ‘인질 석방과 정치적 연계성’에 대해 단호히 선을 그었다.
“우리 단체는 설립과 동시에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고 순수 인질 석방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과 인질은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우리는 가자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위기도 인식하고 있지만 이 문제와 우리의 가족이 얽히는 건 원치 않습니다.”
“한국, 이스라엘 편에 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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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브 에즈라 이스라엘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은 “대한민국이 유엔 안보리나 총회에서 나오는 몇몇 선언문이나 결의안에 있어 좀 더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진=백재호 |
― ‘보다 강하고 분명하게 이스라엘 편에 서달라’의 구체적인 예를 들면요.
“유엔 안보리나 총회에서 나오는 몇몇 선언문이나 결의안에 있어 좀 더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는 겁니다. 한국은 우리가 말하는 ‘온건 세력 측’의 일원입니다. 물론 우리 역시 한국이 처한 외교적 상황 등 다양한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방적 요구’가 아닌 ‘쌍방향적 기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에즈라 부국장은 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착각’이라 표현했다.
“이스라엘이 1970년대에는 이집트와 1990년대에는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이후 UAE, 바레인, 모로코 등과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평화의 길을 걸어오고자 노력했습니다. 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프로세스도 진행 중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경제와 외교를 통해 평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중동 내 온건 파트너들과 협력하며 안정적인 관계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2005년 당시 아리엘 샤론(Ariel Sharon·1928~2014년) 총리는 가자지구 철수를 단행하기도 했죠. 당시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팔레스타인 모두 가자지구가 ‘중동의 싱가포르’가 될 것이라 장담했지만 가자지구는 과학·기술·교육 개발로 나아가지 않았고 오히려 (하마스의) 전면전 준비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하마스 정치지도자, 카타르에 있다”
이스라엘 외무부 소속으로 지역 안보 및 대테러 부서에서 근무 중인 A씨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해’ 이제는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하마스의 기습공격 이후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서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율은 ‘급감’했습니다. 만약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계 국가가 수립된다면 어떤 국가가 되겠습니까. 시리아와 같은 내전(內戰) 국가나 레바논처럼 무장단체가 통제하는 국가 등의 형태를 띨 겁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전략도 있었습니다. 미사일 한두 발쯤은 괜찮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절대 아닙니다. ‘단 1%의 위험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이스라엘 사회의 생각입니다.”
기자는 평소 가장 궁금했던 ‘하마스의 ‘컨트롤타워’, 즉 핵심 지휘부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이스라엘군은 항상 하마스의 지도자를 제거해 왔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A씨는 “하마스의 실제 ‘정치지도부’는 도하(카타르)에 있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내 하마스’ ‘해외에 위치한 하마스’ ‘웨스트뱅크(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한 하마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해외 조직의 경우 도하와 튀르키예(터키)에 있고 일부는 유럽에 근거지를 두고 자선단체를 통해 활발히 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군사전술 작전은 여전히 가자지구에서 수행되고 있습니다.”
A씨는 “현재 이스라엘군이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작전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더 이상 작전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하마스 지도부가 어떤 형태로든 가자지구에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자단은 ‘이란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이스라엘의 직접적 위험’으로 보는지 물어봤다. A씨는 “이스라엘은 북한을 직접적 위협으로 보지는 않지만 이란과 북한 사이의 협력에 따른 ‘무기 확산’ ‘기술 공유’ ‘러시아와의 연계 확장’ 등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단적인 예로 이란이 러시아에 무인기 등의 군사 장비를 제공한다면 현재 러시아와의 협력이 강화된 북한이 이란산 장비의 운용법을 습득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레 한국에도 직간접적 위협으로 작용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전쟁 대비한 ‘람밤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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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밤 병원 지하주차장에 구축된 수술실. 람밤 병원에서는 유사시 지하주차장에서도 수술이 가능하다. 사진=백재호 |
기자는 이스라엘 북서부에 위치한 해양도시 하이파(Haifa)를 찾았다. 하이파 역시 헤즈볼라의 공격 사정권(射程圈)에 드는 도시다. 가는 길에 보인 탁 트인 바다와 산길을 따라 펼쳐진 평원지대는 무거웠던 이스라엘의 현 상황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만큼 시원했다. 기후 또한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한 예루살렘(Jerusalem)과 수도인 텔아비브보다 비교적 선선한 편이었다.
하이파에는 람밤(Rambam) 병원이 위치해 있다. 람밤 병원은 이스라엘 북부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기자는 람밤 병원을 취재하러 가면서 한국도 내로라하는 병원이 많은 만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람밤 병원의 역량은 기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실전적(實戰的)이고 정교했다. 바로 ‘전쟁에 대비한 병원이자 실전 경험이 풍부한 병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람밤 병원은 유사시 지하에 1169개의 병상(病床)을 수용 후 병원의 주요 역량도 동시에 지하화(地下化)시킬 수 있다. 또 적의 생화학, 미사일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방어 시설도 구축되어 있다.
지하 병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하 주차장은 지난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 이후 건설됐다. 당시 헤즈볼라의 미사일이 병원에 떨어지면서 환자들을 안전한 공간에서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람밤 병원은 지하 3층 규모의 공간을 추가 건설해 총 6만㎡에 달하는 면적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 최근 실전에 쓰인 사례가 있습니까.
“코로나19 시기에 지하 병동이 운영됐습니다. 지난 2020년 후반부터 2021년까지 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를 완전히 분리, 코로나19 환자를 지하 병원에서 치료했습니다. 감염 위험이 매우 높은 환경이었습니다만 의료진과 환자 사이 단 한 건의 감염 사례도 없었습니다. 이때 실제로 지하 병원을 운영하며 많은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지하 병원으로 전환하는 데도 1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 지하 시설에서 수술도 가능한가요.
“코로나19 시기에 첫 수술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출산까지 이뤄졌죠. 뿐만 아니라 고정식 및 이동식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모두 마련되어 있습니다. 람밤 병원은 단순 병원이 아닌 이스라엘인들의 자부심이자 하나의 전략자산입니다.”
“아이들이 전쟁 몰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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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 골목길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 사진=백재호 |
기자가 방문한 예루살렘의 마하네 예후다(Machne Yehuda)시장은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기자는 늦은 저녁 시장을 홀로 돌아다니며 주변 곳곳을 구경했다. 시장이 문을 닫을 즈음에 방문한 만큼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지만 시장 특유의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견과류를 팔고 있던 가게에 흥미가 생겨 기웃거렸다. 가게 사장이 “어디서 왔냐. 하나 먹어봐라. 공짜다”라며 기자에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사장은 “최근 넷플릭스로 〈오징어게임〉을 봤다. 한국 드라마를 늘 재미있게 본다”고 했다. 그는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가게 사장은 “한국은 이스라엘의 친구”라며 “이스라엘도 북한은 싫다”고 외치기도 했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견과류 값을 치르려 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예루살렘 거리를 감상하며 걸어보았다. 거리 곳곳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출산율은 2022년 기준 평균 한 가구당 3명에 육박할 정도다. 부모와 아이가 골목에서 함께 놀고 있는 모습도 흔히 보였다.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가정을 꾸린 리암(Liam·37) 씨는 두 딸의 아버지다. 그는 “유대인은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은 인구 유지가 매우 중요한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아직 하마스나 헤즈볼라 등의 존재를 모른다. 아버지로서 평생 몰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아이언돔보다 강한 ‘골든(golden)돔’”
기자에게는 종교가 없다.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성지(聖地)순례’는 곧 ‘참된 신앙의 상징’으로 비치기도 한다. 기자는 예수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알려진 ‘성묘(聖墓)교회’와 유대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을 찾아갔다. 성묘교회 안에서는 한 방문객이 예수의 시신이 눕혀진 것으로 알려진 ‘성유석(聖油石)’에 입을 맞추며 기도하고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장소로 알려진 골고다(Golgotha) 언덕 위 세워진 기도 장소로 향했다. 많은 이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자도 그 분위기와 공기에 잠시나마 종교인들의 심정을 공감하며 자리를 지켜봤다. 예수의 무덤에서는 함께 간 기자단 일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했다.
통곡의 벽을 두고 기도하는 수많은 유대인과 벽 뒤 ‘황금빛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과의 조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몇 미터를 두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연달아 있는 셈이니 예루살렘을 ‘성지의 땅’으로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가 황금빛 바위의 돔과 통곡의 벽이 함께 보이는 위치에서 한창 촬영을 하고 있을 때 기자와 함께 간 기자단 중 한 명이 불쑥 “이스라엘에 아이언돔보다 강력한 방공망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건 바로 골든돔(golden dome)”이라며 이슬람 성지를 가리켰다. 기자는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금방 실소(失笑)를 터트렸다. 예루살렘의 경우 이슬람 성지가 있으니 하마스나 예멘(Yemen)의 후티 반군(Houthis)이 미사일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단순 말장난이 아닌 ‘뼈 있는 농담’인 셈이다. 그의 말 때문인지 몰라도 기자에게 성지순례는 종교적 감명보다 복잡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냉정한 상황으로 와닿았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반군의 이스라엘 공격을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한 ‘공격’이라는 것이 함께 상기됐기 때문이다.
기자는 통곡의 벽에서 유대인들의 전통 모자인 키파(Kippah)를 쓰고 벽을 만져보기도 했다. 통곡의 벽은 남녀 구역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었다. 또 종이에 소원을 써 벽 틈에 끼우곤 하는데 기자 주변에서 한 소년이 열심히 소원을 적고 있었다. 기자가 무슨 소원을 열심히 적나 싶어 물어보니 “지난달에 입대한 형이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우리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도 다른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벽에 손을 대고 하늘을 보자 멀리서 봤을 때는 낮아 보였던 통곡의 벽이 유독 높아 보였다.
‘건강한 맛’과 안전한 ‘치안’
이스라엘의 기후는 상당히 더웠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심하고 금방 허기가 졌다. 함께 취재 온 기자들의 고민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잘 먹을 수 있을까”인 이유다. 이스라엘인들은 아침으로 샥슈카(Shakshouk·달걀 요리)나 빵에 치즈, 요구르트, 샐러드 등을 곁들여 먹는다. 기자가 이스라엘에서 끼니를 챙기는 동안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이스라엘인들은 ‘건강한 요리를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유대교에서 비롯된 식습관이자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을 지향하는 유대인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기자가 방문한 음식점들의 공통점은 항상 ‘피타브레드(Pita bread)’와 함께 보이는 ‘이스라엘식 샐러드’ ‘훔무스(Hummus·병아리콩으로 만든 스프레드)’ ‘팔라펠(Falafel·병아리콩과 누에콩을 쪄서 잘게 다진 후 양파나 고수 등을 넣은 후 기름에 튀겨낸 것)’ 등이 기본 음식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피타브레드를 가장 좋아했는데 빵에 훔무스를 바르고 이스라엘식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든든한 한 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언급한 음식은 식전(食前) 음식인데 ‘갓 나온 따끈한 빵이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는 점에 있었다. 음식점 종업원도 항상 기자에게 “메인 요리가 나오니 미리 많이 먹지 마라”고 당부했지만 기자는 이 당부를 지킨 적이 거의 없었다.
이스라엘의 요리는 굽거나 찌는 경우가 대다수다. 볶음요리 등 기름진 요리는 거의 없다. 이스라엘에서 지내는 내내 기자단들은 공통적으로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더부룩하지가 않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식전 요리로 구성되는 음식들이 ‘소화를 돕는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만 이스라엘의 경우 유대인들을 위한 코셔푸드(Kosher food·유대인의 종교적 요리법을 따른 요리)에 따라 돼지고기는 엄격히 금지된다. 삼겹살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도중에는 소, 닭, 양, 해산물 요리 등에 집중해 볼 것을 권한다.
이스라엘의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점은 안전한 ‘치안’이다. 전쟁 중인 국가라 치안이 불안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스라엘의 치안 수준은 한국과 다를 바가 크게 없었다. 수도인 텔아비브에서는 밤에도 러닝 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음식점은 대개 오후 10시 이전에 문을 닫지만 술집의 경우 늦게까지 운영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취재는 기자의 첫 해외 취재임과 동시에 전쟁 중인 국가의 일상을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시간이었다. 언뜻 보면 평화롭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항상 이스라엘이 처한 외교·안보적 현실을 너무나도 쉽게 맞닥뜨릴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현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번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강함을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유대인들의 정신력만큼이나 우리 국민들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항상 걱정하는 ‘정신력’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