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도 1기 48%, 2기 45%, 6·25 전쟁 당시 전사 또는 실종
⊙ 육사생도 13명, ‘불암산 유격대’ 결성해 抗戰하다 전사
⊙ 육사생도들, 戰線 투입 소식 듣고는 공산당 물리친다는 생각에 의기양양
⊙ 육사 첫 4년 과정으로 선발한 생도 2기, 육사 기수 인정까지 46년 걸려
⊙ 생도 2기, 6·25 전선 교착기에 복교 논의 있었지만 의견 엇갈려 무산
⊙ 2010년 생도 2기 전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수상
⊙ 육사생도 13명, ‘불암산 유격대’ 결성해 抗戰하다 전사
⊙ 육사생도들, 戰線 투입 소식 듣고는 공산당 물리친다는 생각에 의기양양
⊙ 육사 첫 4년 과정으로 선발한 생도 2기, 육사 기수 인정까지 46년 걸려
⊙ 생도 2기, 6·25 전선 교착기에 복교 논의 있었지만 의견 엇갈려 무산
⊙ 2010년 생도 2기 전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수상
- 6·25 참전 육군사관학교 생도 1·2기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참전생도상. 사진=육군사관학교
“당시 상황이 아무리 급박했다 하더라도 사관생도들을 전선의 일개 병사로 운용하였다는 것은 졸렬한 방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도들을 후방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킨 후 장교로 임관하여 활용했더라면 불필요한 희생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다.”[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2권》(2005)]
오는 6월 25일은 북한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기습 남침한 지 75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육군본부는 전쟁 발발 2주를 앞두고 사단장과 연대장을 교체했다. 남침 28시간 전인 24일 0시에는 전군에 발령한 비상경계 태세도 해제했다. 여기에 개전 당일에는 농번기가 겹쳐 일선 부대 병력 중 3분의 1, 많게는 절반가량이 외출·외박을 나간 상태였다. 수송 차량과 중화기(重火器)는 정비를 하느라 편제보다 부족한 상황이었다.
생도 1·2기 539명, 소총수로 투입
개전일 오전 4시, 북한군은 소련제 T-34 전차를 앞세워 남침했다. 한국군은 이에 대응할 병력도, 무기도 마땅치 않았다. 당시 국군 수뇌부는 수도 서울의 함락을 우려해 임관을 일주일 앞둔 육군사관학교(육사) ‘생도 1기(1949년 7월 입교)’와 6월 1일 입교해 24일 차인 ‘생도 2기’ 539명을 ‘생도 전투대대(생도대대)’로 편성해 소총수로 투입했다. 이는 육사생도 1·2기가 치러야 할 고난의 서막이었다.
생도 1·2기는 6월 25일부터 7월 4일까지 포천~한강~판교 일대에서 축차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했다. 이때 151명(생도 1기 65명, 2기 86명)이 전사하고 63명이 실종됐다. 생존한 생도들은 장교로 임관해 전선으로 재투입됐는데 95명(생도 1기 47명, 2기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6·25 전쟁 당시 생도 1·2기 595명 중 245명이 전사했다. 10명 중 4명이 산화한 이 기수를 두고 ‘비운(悲運)의 기수’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두 기수의 활약상은 조명받지 못했다. 생도 1·2기 출신이 증언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보존했을 뿐 국가나 군 차원에서의 활약상 규명은 없었다. 생도 1기(교육 기간 1년)는 ‘육사 10기’로 기수가 조정됐지만 생도 2기는 육사 10기와 11기 사이에 끼인 채 ‘육사 출신’이라는 사실도 인정받지 못했다. 대통령 두 명(전두환, 노태우)을 배출한 육사 11기는 ‘4년제 정규 육사 첫 기수’라는 위상을 지키기 위해 생도 2기의 존재를 외면했고 ‘첫 4년제 육사생도’라는 칭호를 받고 입교한 생도 2기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린 뒤로는 육사 출신이라는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육사는 1950년 7월 8일부로 휴교(休校)했는데, 1951년 10월 경남 진해에서 4년제 사관학교로 재(再)개교했을 때 입교한 첫 기수가 육사 11기다.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로 출발
육사 군사사학과 나종남(육군 대령) 교수의 논문 〈6·25 전쟁 초기 육사생도 참전 전투 연구〉(2013)에 따르면, 육사는 창군과 건군, 6·25 전쟁 발발 이전까지 육군에서 유일한 장교 양성 기관이었다.
육사는 1946년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국군은 1946년 1월 14일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를 모체로 삼고 있다. 이에 육사의 전신(前身)은 군사영어학교(군영)로까지 이어진다. 미 군정(軍政)은 1945년 12월 5일 감리신학교 자리에 군영을 세웠다. 장차 조직될 국방경비대를 주도할 장교들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미 군정은 뱀부계획(the Bamboo Plan)에 기초해 남조선 국방경비대를 신속하게 확장하려 했으나 당시 남한에는 자격을 갖춘 간부 요원이 부족했다. 이에 소수의 군 경력자 위주로 교육하던 군영을 해체하고, 태릉에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설립했다.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1기생은 군영에서 임관하지 못한 60명과 각 연대에서 2~3명씩 선발된 병사 28명 등 모두 88명이었다. 이들이 육사 1기다.
1946년 6월 15일에는 군정 명령에 따라 남조선국방경비대에서 조선경비대로 개칭됐고 학교 명칭도 ‘조선경비사관학교’로 바뀌었다. 조선경비사관학교는 정부 수립 이후 1948년 9월 5일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됐다.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조선경비사관학교 시절 2년 4개월 동안 배출한 인원은 1~7기까지 약 2100명이다. 이 시기에 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한 이들은 현역 군인들이었다. 교육 기간도 제각각이었다. 1기 45일, 2기 80일, 3기 3개월, 4기 4개월, 5기 9개월(병영 훈련 3개월 포함), 6기 3개월, 7기 6개월(병영 훈련 3개월)이었다. 교육 기간도 일정치 않았고 그때그때 수요에 따라 조정되는 상황이었다. 또 7~8기 때는 특별반 제도도 운용했다. 입대하지 않은 해외 군 경력자들을 입교시켜 단기간 교육 후 임관시켰다.
생도 1기
육사로 명칭을 바꾼 후 장교 양성에 변화가 생겼다.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교육 기간이 늘었다. 8기는 22주, 9기는 23주 교육을 받고 임관했다. 육군은 장교 육성 체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장차 육군을 이끌 미래 지휘관을 육성하기 위해선 군사 실무와 일반 소양을 모두 갖춘 초급 장교를 육성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육사 10기(이하 생도 1기)를 4년제 사관생도로 선발해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4년제 교과과정을 담당할 교수진의 부족과 교육 시설 미비, 장교 양성 공백 등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4년제 정규 장교 육성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생도 1기는 ‘후보생(육사 1~9기)’이 아닌 2년제 과정으로 ‘생도 1기(육사 10기)’를 선발했다. 지원 자격은 고급 중등학교 졸업자였다. 1차 시험(신체검사, 학과 시험), 2차 시험(인물고사, 구술시험)을 통해 사관생도 338명을 선발했는데 경쟁률은 약 10대 1이었다. 이들은 1949년 7월 15일 육사에 입교했다.
하지만 생도 1기에 대한 교육 기간은 입교를 앞두고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됐다. 육군은 생도 1기를 신입생으로 선발해 장기간 장교를 육성하지 못할 것에 대비해 갑종 간부후보생 과정을 신설하기로 했는데, 이 절차가 지연됐다. 여기에 육사에서 2년제 과정을 담당할 교수진과 교육 시설도 미흡했다. 그럼에도 생도 1기는 당시까지 육사에서 배출한 앞선 기수에 비해 교육 기간이 가장 길었고 교과과정도 체계적이었다.
생도 1기는 1950년 7월 14일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었다. 개전을 하루 앞둔 6월 24일 토요일에는 며칠 후 진행되는 3박 4일 졸업 행군 준비를 위해 외출과 외박이 허용된 상태였다. 하지만 개전 소식을 듣고는 바로 대다수가 당일 오전 귀대했다. 당시 1기 생도 총원은 262명이었다.
생도 2기, 영점 사격 3발 쏜 게 전부
생도 1기 과정을 운영하며 육군과 육사는 정규 4년제 생도를 양성할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1949년 11월 26일자 《동아일보》에 ‘제2기 육군사관학교 생도 모집 공고’를 냈다. 서울을 비롯해 주요 지방 명문고 재학생들이 지원했는데 경쟁률이 28대 1이었다. ‘창군 이래 가장 젊고 우수한 자원’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나이 제한(19세)이 있었지만, 당시 원용덕(후일 헌병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17세)를 합격시키는 바람에 17세 지원자를 한 명 더 뽑았다. 주인공은 대전중학교 5학년(현 대전고) 박경석(예비역 육군 준장, 초대 재구대대장)이었다.
1950년 6월 1일 육사생도 2기로 가입교한 인원은 총 449명이었는데 입교 직후 실시한 소양 시험에서 334명만 통과했다. 박경석은 “소양 시험에서 탈락한 이들은 시흥 보병학교(육군보병학교) 후보생 과정으로 보냈다. 최종 입교 인원은 330명이다”고 밝혔다. 생도 2기의 가입교 인원을 두고 448명, 최종 입교 인원은 333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생도 2기는 개전을 앞두고 약 20일 동안 제식훈련과 사격술 예비 훈련, 영점 조준 사격 등을 마쳤다. 실탄 사격은 M1 소총으로 영점 사격 3발을 쏴본 게 전부였다.
개전 직후부터 의정부 정면을 맡은 국군 7사단과 파주·문산 일대의 1사단 정면의 전황이 악화했다. 당시 우리 국군은 전방에 4개 사단을 배치했는데, 서쪽부터 1사단, 7사단, 6사단, 8사단이 있었다. 7사단은 당시 제1연대가 동두천, 제9연대가 포천 방면을 맡았다.
후방 예비사단으로는 대전 일대에 2사단, 대구 일대에 3사단, 광주 일대에 5사단이 있었다. 개전 직후 대전, 광주 등 후방에서 북상하는 증원 부대는 수송편이 부족해 도착이 늦어지고 있었다.
사관생도 전선 투입 결정한 채병덕
전쟁 발발 직전까지 육사 교장을 지낸 김홍일(전 대만대사)은 개전 초 후방 지원 부대를 전방에 투입하는 대신 한강 남쪽에 제2방어선을 구축해 한강을 장애물로 삼아 방어 작전을 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육군 총참모장(현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수도 서울 절대 사수와 북진을 주장했다.
채병덕은 서울 인근에 주둔하는 병력을 전방으로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개전 당일 오후 1시경 육사 교도대대(敎導大隊)와 보병학교 교도대대를 1사단에 배속하고, 육사 교장 이준식에게는 생도대대를 이끌고 포천 후방의 서파(현 경기 포천시 내촌면 일대)~퇴계원(경기 남양주 서부) 축선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쟁 전에 수립한 육군의 방어계획에는 7사단이 맡은 포천 정면 방어선이 무너질 경우 이를 후방 지역의 서파~퇴계원 축선에서 막는 방어 대책이 없었다. 개전 초 북한군 3사단과 109기갑연대는 38선 돌파 후 43번 국도를 타고 내려왔다. 포천에서 병력을 Y모양으로 나눠 일부는 의정부, 나머지는 서파 방면으로 보냈다. 서파로 진출한 북한군은 퇴계원까지 연결된 47번 국도선을 타고 내촌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지하철 4호선 종점인 진접역이 있는 곳이다. 진접을 거쳐 퇴계원을 지나면 육사가 있는 태릉이 나온다.
이곳은 서울 방어를 위해 지켜야 할 동북부 관문이었으나 이 지역에 투입할 가용 병력은 처음부터 없었다. 바로 이곳에 임관을 20일 앞둔 생도 1기와 입교한 지 20여 일 지난 생도 2기가 소총수로 투입됐다. 이들의 임무는 포천을 점령한 후 서울 동북쪽으로 남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적의 주력 부대를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었다.
육사생도들은 출동 명령이 내려오자 25일 오후 3시 육사 화랑 연병장에 완전군장으로 집결했다. 생도 1기생은 소대장, 분대장, 부분대장, 공용화기 반장, 공용화기 사수로 편성됐고, 생도 2기생은 소총수인 분대원으로 편성됐다. 생도 1기 262명은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들이 투입되면 북한 공산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하거나 모조리 격멸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각개전투나 분대 단위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생도 2기 277명도 의기양양했다. 육사 생도대대는 총 539명이었는데, 이는 생도 1기 중 미복귀자가 있었고 일부는 학교와 용산역 경비병으로 차출됐기 때문이다.
육본 작전명령 제90호
“육군사관학교장은 휘하의 생도대로 1개 대대를 편성하고 경찰대대를 통합 지휘하여 372고지-330고지로 이동하여 남침한 적을 격멸하라.”(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0호)
육군본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육사 생도대대는 4개 중대로 편성을 마치고 오후 4~5시경 학교에서 출발해 직선거리로 약 20km 떨어진 내촌면 부평리에 도착했다. 생도대대는 25일 오후 늦게 내촌면 부평리로 가 372고지에 진지를 마련했다. 생도 2기는 삽질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생도 1기가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실탄 8발이 들어 있는 클립을 M1 소총에 장전하는 것마저도 힘에 겨웠다. 이를 본 생도 1기가 대신 장전해 줄 때도 있었다.
개전 다음 날 새벽 372고지 건너편 330고지에는 수도경찰청 소속 전투경찰 1개 대대가 배치됐다. 이들이 가진 무기는 99식 소총과 1인당 실탄 10~20발 수준이었다. 남하하는 북한군은 26일 오전부터 포성을 내뿜으며 남하했다. 적 포탄은 330고지를 먼저 공격했고 북한군 화력에 경찰대대는 약 10분 만에 무력화(無力化)됐다. 이어 372고지를 향한 포격이 이어졌다. 생도대대는 전날 파놓은 호에서 대기한 채 북한군이 접근하면 사격했다. 하지만 북한군은 후방으로부터 병력과 장비를 지원받아 전투력이 강력해졌지만 생도대대는 탄약이 곧 바닥났다. 육사생도의 희생은 늘어만 갔다. 일부 생도는 백병전을 벌이며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생도 1기 출신인 신현수 예비역 중장은 당시 전투를 회상하며 “부딪쳐보니 우리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초전부터 박살이 났다”고 했다.
대대장이 戰線 이탈
생도대대를 지휘하는 조암 중령은 육군본부와 연락을 취하겠다며 전장에서 이탈했다. 이에 부대대장 손관도 소령이 생도대대를 지휘했는데 생도들을 더는 희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생도들에게 후퇴를 지시했다. 내촌 전투는 적의 남진을 일시 저지시켰지만, 그만큼 희생도 컸다. 생도들은 전우의 시체도 거두지 못한 채 후퇴했는데, 후퇴 과정에서도 대낮에 철수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일부 생도는 후퇴 명령을 전달받지도 못했다.
육사로 돌아온 생도들은 26일 밤부터 불암산과 육사 교정의 92고지를 잇는 구릉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했다. 27일 밤에는 육사 건물에도 적 포탄이 떨어졌고 생도들은 방어진지에서 개인호를 구축하는 데 몰두했다. 28일 새벽에는 적 전차가 서울 시내로 들어왔다. 이때 북한군은 퇴계원에서 망우리 방면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생도들은 이날 오전 10시경 한강 광나루 일대로 철수했다.
생도대대는 29일 한강변 천호리에 재집결해 한강 방어선에 투입돼 광나루 일대에서 피란민 검문·검색 임무를 수행했다.
30일 육군본부는 생도대대에 판교 근처 금곡리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이곳은 한강을 건넌 적이 남진하려면 거쳐야 하는 길목이기 때문이었다.
7월 1일 금곡리 일대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생도대대는 북한군 선발대를 선제공격해 적 선두 부대를 거의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2일에는 아침부터 적이 우세한 포병 화력을 앞세워 생도대대 방어진지를 공격해 왔고 전투는 백병전으로 전개됐다. 생도대대는 적 공격을 저지하며 전선을 지켜냈지만, 부상자와 사상자 등 인명 손실이 컸다. 보유한 탄약마저 떨어졌다.
부상당하자 자결한 생도도 있어
생도대대는 3일 오전 수원으로 철수하던 중 1사단 예비대 임무도 수행했다. 4일에는 전투에 투입됐는데 생도대대로서 마지막 전투였다. 수원 일대에서 1사단과 생도대대가 분전한 덕분에 적 공격을 지연시켰다. 하지만 이어지는 적의 대규모 병력 투입으로 인해 육군본부는 5일 생도대대에 평택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6일에는 평택에서 화물차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했다. 대전으로 이동한 생도대대는 10일 해체됐다.
대전에서 인원을 조사한 결과 7월 6일을 기준으로 남아 있는 생도 1기는 134명이었다. 부상으로 후송된 인원이 20명가량 됐으며, 이동 과정에서 10여 명이 이탈했다가 뒤늦게 합류했다. 이 결과 7월 10일 임관식에 참석한 생도는 154명이었다. 6월 25일 전선에 투입된 숫자가 262명이었으니 약 10일 만에 생도 108명을 잃은 것이다. 생도 2기는 277명이 출동해 86명이 전사 또는 실종됐다. 일부 생도는 부상을 당하자 동기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자결(自決)을 택한 경우도 있었다.
불암산 유격대
6월 28일 생도대대가 지연작전을 벌이며 태릉(육사)에서 철수할 때 육사 인근 불암산에서는 철수 대신 유격대를 편성해 맞선 이들도 있다. 생도 1기 10명과 생도 2기 3명, 국군 7사단 9연대 소속 부사관 2명과 병사 5명으로 구성된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다. 이들은 서울과 모교를 버리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는 것보다는 인근 불암산에 입산해 죽음을 무릅쓰고 유격 활동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약 80일 동안 4회에 걸쳐 적 후방 교란, 보급기지 타격 등을 감행했다. 이러다 9월 28일 서울 수복을 눈앞에 두고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1인을 제외하고 전원 전사했다. 불암산에 있는 불암사와 석천암이 이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불암산 유격대는 ‘유격대 활동 수칙’도 있었다. 수칙은 총 네 개였으며 첫 번째는 이렇다.
“우리 유격대는 전원이 결사(決死)의 각오로 유격 활동에 임할 것을 다짐한다. 그것이 후일에 전쟁을 기피했다는 누명을 벗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겠다.”
불암산 유격대는 7월 11일 퇴계원에 있는 북한군 보급기지를 급습해 보급품을 불태우고 북한군 약 30명을 사살했다. 하지만 철수 과정에서 북한군의 추격으로 생도 1기 2명과 생도 2기 1명이 전사했다.
7월 31일에는 유격대원 6명이 수류탄과 화염병을 사용해 북한군 숙영지와 보안서를 습격했다. 퇴각 주동 북한군 추격으로 9연대 소속 김만석 중사가 전사했다.
8월 15일에는 모교인 육사에서 전투를 벌였다. 당시 육사는 북한군이 의용군 훈련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날 밤 유격대는 육사를 급습해 북한군 약 5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지만 철수하던 중 유격대장 김동은을 비롯 생도 6명이 전사했다.
유격대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이 주민들을 화물차에 태우고 북한으로 끌고 갈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유격대장 조영달 생도는 주민 구출 작전을 계획했다. 당시 유격대가 보유한 장비는 개인별 소총 한 자루와 실탄 10여 발뿐이었다.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불암산에 숨어 있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하지만 유격대원들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군인의 임무라고 판단해 9월 21일 밤 내곡리(경기 남양주시) 마을에서 매복 진지를 구축하고는 북한군 수송대가 매복 진지 앞을 통과하자 습격했다. 이때 조영달 생도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육사생도들이오. 여러분은 어서 피하시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에 많은 이가 여러 방향으로 달아나 북한군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격대원들은 탄약을 모두 소모한 뒤 도망쳐 불암산으로 복귀하려 했지만, 북한군의 추격으로 강원기 생도(이듬해 부상 치료 중 사망)를 제외한 전원이 전사했다.
울음바다가 된 생도 1기 임관식
7월 10일 생도 1기는 소위로 임관했다. 이날 오전 10시 육군본부가 있는 충남도청 광장에서는 눈물의 임관식이 열렸다. 이날 임관식 행사는 소위 계급장 134쌍을 전달한 게 전부였다. 이때 마련한 계급장은 급조한 깡통 계급장이었다. 헬멧에는 반창고를 오려 붙여 계급장으로 삼았다. 생도 2기는 생도 1기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 눈물을 흘렸다. 소위로 임관한 생도 1기는 전국 각지로 분산 배치돼 신편(新編) 사단이나 부대 창설 요원으로 장교 생활을 시작했다.
생도 2기는 다시 육사로 복귀해 4년제 교육을 이어받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인민군은 대전을 거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고, 생도 2기는 대전에서 대구,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일선 부대의 초급간부, 소대장이 부족했다. 분대장이나 선임하사 등은 고참 병사를 진급시키면 됐지만 지휘관인 소대장은 달랐다. 1개 연대에는 소대장 약 60명이 필요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중대장, 대대장, 참모들은 손실이 크지 않지만, 소대장은 최전선에서 소총병과 함께 싸워야 하기에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6월 25일부터 7월 말까지 소대장 손실률은 60%에 달했다. 이에 대한 고육책이 ‘현지 임관(現地 任官)’ 제도였다.
육사생도 2기에서 육종 2기로
1950년 10월 21일 생도 2기는 육종 2기로 졸업하게 된다. 이날 졸업식 분위기는 숙연했다. 육사 4년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 먼저 떠난 동기생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위령제와 같은 분위기였다. 육종 2기를 1등으로 수료한 박보희(전 《세계일보》 사장)는 졸업생 답사에서 먼저 떠난 전우 몫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튿날 부산을 떠난 열차는 그다음 날인 23일 새벽 용산역에 도착했다. 을지로에 있는 전시(戰時) 육군본부 지휘소에서 신고를 마친 육종 2기는 대부분 신편 사단인 9사단 창설 요원으로 배속돼 충주로 내려갔다. 당시 육군의 실세 원용덕(헌병총사령관)의 장남 원창희(생도 2기)만 육군본부로 발령을 받았다. 육종 2기는 임관 초기 공비 토벌 임무를 주로 맡았다.
4년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생도 2기는 자신들이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들은 육사에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미국 군사 유학 등으로 해소했다. 생도 2기에서는 대령 47명, 장군 19명이 나왔다. 4성 장군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3성 장군 2명(장정열 전 병무청장, 김용진 전 군수사령관)을 배출했다.
생도 2기로 인정받기까지는 46년이나 걸렸다. 그 배경에는 기칭(期稱) 파동(1955년, 1966년)이 있다.
첫 기칭 파동은 육군사관학교가 폐교된 뒤 1951년 10월 경남 진해에서 정규 4년제 교육과정으로 재개교한 데서 비롯됐다. 육사 11기가 1955년 10월 임관할 때 육군본부는 ‘정규 육사 1기’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공고는 ‘육사 제1기 사관생도 모집’으로 했음에도 전쟁 발발 전 1~9개월 과정의 단기 육사 출신(육사 1~9기)들이 군의 주축이 돼 장교 족보를 흔들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66년 육사 기수 정리 과정에서 생도 1기는 육사 10기로 조정됐으나 생도 2기는 육사 기수에 편입되지 못했다.
군 생활을 계속하던 생도 2기는 1980년대 들어 모두 군을 떠나 민간인이 됐다. 이들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생도 2기의 존재를 알리는 활동을 본격화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하나회가 몰락하자 생도 2기에 대한 명예 회복도 진행됐다. 1996년 5월 4일에는 육사를 떠난 지 46년 만에 생도 2기 노병(老兵) 94명이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2010년에는 입교 60주년을 맞아 생도 2기 전원이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수상했다.
인터뷰
생도 2기 박경석 예비역 육군 준장
“생도 2기, 명예 회복되진 않았지만 수습은 됐다”
17세에 육군 소위로 임관해 최연소(17세)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박경석(생도 2기, 예비역 준장, 92세)씨. 그는 신군부에 맞서 1981년 군복을 벗었다. 5·18 진압 군인에 대한 훈장 수여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전역 후에는 군사평론가, 작가로 살며 생도 2기 명예 회복을 위해 힘썼다.
그는 “생도 2기에 대한 명예가 회복되진 않았지만 수습은 됐다”고 했다. 2000년에는 생도 2기의 활약상을 정리한 장편실록소설 《육사생도 2기》를 펴냈다.
— 75년 전 6월 25일을 기억하십니까.
“그 시절에는 닭고기가 최고였어요. 그날 우리 중형(仲兄, 박영석 예비역 준장)이 닭을 갖고 면회를 왔는데, 갑자기 비상이 걸렸어요. 인민군이 쳐들어왔다는 소리를 들었죠. 면회를 빨리 끝내고 생도들은 연병장에 모였습니다.”
— 전선에 투입된다고 하니 떨리지 않았습니까.
“총 세 발(영점사격)밖에 안 쏜 놈들이 자신감에 넘쳐 ‘북으로, 북으로’를 외치며 포천으로 갔어요. 나라를 지키러 간다는 마음에 영광스러웠죠. (생도 2기) 장기호(예비역 대령)는 ‘공산당 무찌르러 간다’며 보무당당하게 걸으며 군가를 불렀어요.”
“자신감이 공포로 바뀌었다”
— 개전 다음 날 실제 전투를 치러보곤 어땠습니까.
“포탄에 맞아 팔다리가 잘리는 걸 보니 무서웠죠. 자신감이 공포로 바뀌었어요.”
— 개전 초기 생도대대가 치른 전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가 있습니까.
“한강방어선 전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적 정찰대가 공격을 했거든요. 이에 희망 생도들도 광나루 일대에서 전투를 했죠. 원용덕 아들 원창희가 저보고 ‘경석아 안 가?’라고 하기에 저는 가기 싫었는데, ‘천하의 사나이가…’라고 하며 따라갔습니다. 거기서 죽을 고비를 넘겼죠. 대구로 철수했을 때 3사단에 배속돼 포항 방어 전투를 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원창희(예비역 준장)와 박준병(전 국군보안사령관, 민정당 사무총장), 박경석은 대전고 동기 동창이다. 원창희는 대전고(당시 대전중)를 다니다가 서울 배재고로 전학을 갔고, 이 둘은 생도 2기로 다시 만났다.
— 전투를 치르면서 가졌던 마음가짐이 있습니까.
“‘사람이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데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 소위로 임관한 후 기억에 남는 전투가 있습니까.
“1951년 평창 1077고지 전투. 수류탄이 터졌는데 다행히 눈이 사타구니까지 오는 바람에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대신 왼쪽 청력을 잃었죠. 눈 속에서 기절했다가 포로가 됐습니다.”
— 포로가 된 후에는요.
“북한군이 치료해 줬는데, 저를 ‘해방군관 동무’라고 불렀죠.”
— 왜요?
“국군은 미제(美帝)의 괴뢰(꼭두각시)인데, 북으로 왔으니 미제와 그 괴뢰로부터 해방됐다는 뜻이지요.”
9사단에서는 박경석이 포로가 되자 그를 전사 처리했다. 이 때문에 서울 국립현충원에 2020년까지 박경석의 가묘(假墓)가 있었다. 치료를 받고는 탈출한 박경석은 대구 CIC(방첩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당시 박경석을 조사한 이는 김학호로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을 할 때 중정에서 감찰실장을 했다.
— 어렵게 탈출했는데 의심하지 않던가요.
“탈출했다고 하니 애국자 취급을 하더군요.”
— 중공군 참전 소식을 들었을 땐 어땠나요.
“처음엔 무시했죠. 비행기로 폭격하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단숨에 그 많은 영토를 뺏겼더라고요.”
박경석은 중위로 진급해 8사단에 배속됐다. 미국 유학 시험을 쳐 1953년에는 도미했다. 소령 때는 양구에서 HID 공작장교를 2년 가까이 지냈다.
초대 재구대대장
— 군 생활 중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은요.
“베트남전에 전투병 파병을 앞두고 맹호사단 대대장으로 임명됐을 때입니다. 대대장 시절 제 부하가 강재구 중대장(대위, 추서 계급 소령)이었습니다. 강 소령이 순직한 후 저희 대대가 이를 기리기 위해 재구대대가 됐죠.”
강재구 소령의 살신성인을 세상에 알린 것도 박경석이었다. 3대 재구대대장은 노태우다.
— 생도 1·2기의 활약상을 평가하신다면요.
“북한군 주공(主攻)이 서울까지 진격하는 데 하루 내지 한나절은 지연시켰다고 생각해요. 전략적인 역할을 한 거죠. 북한군 진출 경로에 국군이 배치돼 있다고 북한군이 오해하도록 했으니까요.”
—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생도 2기에 대한 복교(復校)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선 교착 국면이 되자 육군본부에서는 육사 재건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1951년 6월 육군참모총장이 된 이종찬 장군은 육사 휴교와 생도 1·2기 전선 투입에 대해 비판적이었죠. 육종 2기로 임관한 생도 2기는 당연히 복교시켜 2학년으로 승급시키고 신입생을 모집해 육사를 개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 복교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도 2기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모두 중위였고 ‘조금 있으면 대위로 진급하고 3년 후에는 소령이 될 수도 있는데 그 혹독한 훈련을 어떻게 다시 받느냐’는 생각이 있었죠. 특히 당시 육사에는 3금(금주, 금연, 금혼) 제도가 있었습니다. 3금을 지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반면 아직 10대였던 생도 2기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생도 2기가 하나로 단결해 한목소리를 내도 복교가 가능할까 말까인데….”
기수 조정
— 육사 11기가 밉진 않습니까.
“1966년 기수 조정 문제를 두고 유학성(당시 육본 인사처장) 준장, 박경석(당시 중령), 전두환(당시 소령) 세 사람이 모였습니다. 유학성 안(案)은 ▲생도 1기는 육사 10기 ▲생도 2기는 육사 11기 ▲전두환 기수(현 육사 11기)는 육사 12기로 조정하는 거였죠. 이는 전두환 기수에서 반대했어요. 저는 ‘생도 2기를 살리는 게 목표다. 학위 졸업장을 달라는 게 아니다. 육사인으로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고 했죠. ▲생도 1기는 육사 10기 ▲생도 2기는 그대로 ‘생도 2기’ ▲육사 11기 순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이 안도 전두환이 반대했죠. ‘왜 육사 11기 앞에 생도 2기가 끼느냐’면서요. 그러면서 ‘생도 1·2기를 모두 육사 10기로 조정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주장한 안이 채택됐지만 정작 발표에선 생도 2기와 관련된 내용은 빠졌죠.”
—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참 밉겠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전두환, 노태우 이 두 사람이 저한테 그렇게 잘했거든요.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만들어 군을 병들게 한 점은 비판하고 싶습니다.”
박경석은 5공 시절 대전고 동기인 박준병 민정당 사무총장으로부터 내무부 장관 입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윤필용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강창성 의원의 권유로 그는 하나회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 육사 정신은 무엇이고 육사생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육사 정신은 조국 수호입니다. 사관생도들은 조국, 정의, 진리, 이 세 가치를 추구하길 바랍니다.”⊙
오는 6월 25일은 북한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기습 남침한 지 75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육군본부는 전쟁 발발 2주를 앞두고 사단장과 연대장을 교체했다. 남침 28시간 전인 24일 0시에는 전군에 발령한 비상경계 태세도 해제했다. 여기에 개전 당일에는 농번기가 겹쳐 일선 부대 병력 중 3분의 1, 많게는 절반가량이 외출·외박을 나간 상태였다. 수송 차량과 중화기(重火器)는 정비를 하느라 편제보다 부족한 상황이었다.
생도 1·2기 539명, 소총수로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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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 생도 1기(육사 10기). 사진=육군박물관 |
생도 1·2기는 6월 25일부터 7월 4일까지 포천~한강~판교 일대에서 축차 지연전을 펼치며 후퇴했다. 이때 151명(생도 1기 65명, 2기 86명)이 전사하고 63명이 실종됐다. 생존한 생도들은 장교로 임관해 전선으로 재투입됐는데 95명(생도 1기 47명, 2기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6·25 전쟁 당시 생도 1·2기 595명 중 245명이 전사했다. 10명 중 4명이 산화한 이 기수를 두고 ‘비운(悲運)의 기수’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두 기수의 활약상은 조명받지 못했다. 생도 1·2기 출신이 증언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보존했을 뿐 국가나 군 차원에서의 활약상 규명은 없었다. 생도 1기(교육 기간 1년)는 ‘육사 10기’로 기수가 조정됐지만 생도 2기는 육사 10기와 11기 사이에 끼인 채 ‘육사 출신’이라는 사실도 인정받지 못했다. 대통령 두 명(전두환, 노태우)을 배출한 육사 11기는 ‘4년제 정규 육사 첫 기수’라는 위상을 지키기 위해 생도 2기의 존재를 외면했고 ‘첫 4년제 육사생도’라는 칭호를 받고 입교한 생도 2기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린 뒤로는 육사 출신이라는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육사는 1950년 7월 8일부로 휴교(休校)했는데, 1951년 10월 경남 진해에서 4년제 사관학교로 재(再)개교했을 때 입교한 첫 기수가 육사 11기다.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로 출발
육사 군사사학과 나종남(육군 대령) 교수의 논문 〈6·25 전쟁 초기 육사생도 참전 전투 연구〉(2013)에 따르면, 육사는 창군과 건군, 6·25 전쟁 발발 이전까지 육군에서 유일한 장교 양성 기관이었다.
육사는 1946년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국군은 1946년 1월 14일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대를 모체로 삼고 있다. 이에 육사의 전신(前身)은 군사영어학교(군영)로까지 이어진다. 미 군정(軍政)은 1945년 12월 5일 감리신학교 자리에 군영을 세웠다. 장차 조직될 국방경비대를 주도할 장교들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미 군정은 뱀부계획(the Bamboo Plan)에 기초해 남조선 국방경비대를 신속하게 확장하려 했으나 당시 남한에는 자격을 갖춘 간부 요원이 부족했다. 이에 소수의 군 경력자 위주로 교육하던 군영을 해체하고, 태릉에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설립했다.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1기생은 군영에서 임관하지 못한 60명과 각 연대에서 2~3명씩 선발된 병사 28명 등 모두 88명이었다. 이들이 육사 1기다.
1946년 6월 15일에는 군정 명령에 따라 남조선국방경비대에서 조선경비대로 개칭됐고 학교 명칭도 ‘조선경비사관학교’로 바뀌었다. 조선경비사관학교는 정부 수립 이후 1948년 9월 5일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됐다.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조선경비사관학교 시절 2년 4개월 동안 배출한 인원은 1~7기까지 약 2100명이다. 이 시기에 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한 이들은 현역 군인들이었다. 교육 기간도 제각각이었다. 1기 45일, 2기 80일, 3기 3개월, 4기 4개월, 5기 9개월(병영 훈련 3개월 포함), 6기 3개월, 7기 6개월(병영 훈련 3개월)이었다. 교육 기간도 일정치 않았고 그때그때 수요에 따라 조정되는 상황이었다. 또 7~8기 때는 특별반 제도도 운용했다. 입대하지 않은 해외 군 경력자들을 입교시켜 단기간 교육 후 임관시켰다.
생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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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 생도 1기를 기리기 위한 기념탑인 불멸탑. 사진=육군사관학교 |
이에 육사 10기(이하 생도 1기)를 4년제 사관생도로 선발해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4년제 교과과정을 담당할 교수진의 부족과 교육 시설 미비, 장교 양성 공백 등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4년제 정규 장교 육성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생도 1기는 ‘후보생(육사 1~9기)’이 아닌 2년제 과정으로 ‘생도 1기(육사 10기)’를 선발했다. 지원 자격은 고급 중등학교 졸업자였다. 1차 시험(신체검사, 학과 시험), 2차 시험(인물고사, 구술시험)을 통해 사관생도 338명을 선발했는데 경쟁률은 약 10대 1이었다. 이들은 1949년 7월 15일 육사에 입교했다.
하지만 생도 1기에 대한 교육 기간은 입교를 앞두고 2년에서 1년으로 단축됐다. 육군은 생도 1기를 신입생으로 선발해 장기간 장교를 육성하지 못할 것에 대비해 갑종 간부후보생 과정을 신설하기로 했는데, 이 절차가 지연됐다. 여기에 육사에서 2년제 과정을 담당할 교수진과 교육 시설도 미흡했다. 그럼에도 생도 1기는 당시까지 육사에서 배출한 앞선 기수에 비해 교육 기간이 가장 길었고 교과과정도 체계적이었다.
생도 1기는 1950년 7월 14일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었다. 개전을 하루 앞둔 6월 24일 토요일에는 며칠 후 진행되는 3박 4일 졸업 행군 준비를 위해 외출과 외박이 허용된 상태였다. 하지만 개전 소식을 듣고는 바로 대다수가 당일 오전 귀대했다. 당시 1기 생도 총원은 262명이었다.
생도 2기, 영점 사격 3발 쏜 게 전부
생도 1기 과정을 운영하며 육군과 육사는 정규 4년제 생도를 양성할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1949년 11월 26일자 《동아일보》에 ‘제2기 육군사관학교 생도 모집 공고’를 냈다. 서울을 비롯해 주요 지방 명문고 재학생들이 지원했는데 경쟁률이 28대 1이었다. ‘창군 이래 가장 젊고 우수한 자원’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나이 제한(19세)이 있었지만, 당시 원용덕(후일 헌병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17세)를 합격시키는 바람에 17세 지원자를 한 명 더 뽑았다. 주인공은 대전중학교 5학년(현 대전고) 박경석(예비역 육군 준장, 초대 재구대대장)이었다.
1950년 6월 1일 육사생도 2기로 가입교한 인원은 총 449명이었는데 입교 직후 실시한 소양 시험에서 334명만 통과했다. 박경석은 “소양 시험에서 탈락한 이들은 시흥 보병학교(육군보병학교) 후보생 과정으로 보냈다. 최종 입교 인원은 330명이다”고 밝혔다. 생도 2기의 가입교 인원을 두고 448명, 최종 입교 인원은 333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생도 2기는 개전을 앞두고 약 20일 동안 제식훈련과 사격술 예비 훈련, 영점 조준 사격 등을 마쳤다. 실탄 사격은 M1 소총으로 영점 사격 3발을 쏴본 게 전부였다.
개전 직후부터 의정부 정면을 맡은 국군 7사단과 파주·문산 일대의 1사단 정면의 전황이 악화했다. 당시 우리 국군은 전방에 4개 사단을 배치했는데, 서쪽부터 1사단, 7사단, 6사단, 8사단이 있었다. 7사단은 당시 제1연대가 동두천, 제9연대가 포천 방면을 맡았다.
후방 예비사단으로는 대전 일대에 2사단, 대구 일대에 3사단, 광주 일대에 5사단이 있었다. 개전 직후 대전, 광주 등 후방에서 북상하는 증원 부대는 수송편이 부족해 도착이 늦어지고 있었다.
사관생도 전선 투입 결정한 채병덕
전쟁 발발 직전까지 육사 교장을 지낸 김홍일(전 대만대사)은 개전 초 후방 지원 부대를 전방에 투입하는 대신 한강 남쪽에 제2방어선을 구축해 한강을 장애물로 삼아 방어 작전을 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육군 총참모장(현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수도 서울 절대 사수와 북진을 주장했다.
채병덕은 서울 인근에 주둔하는 병력을 전방으로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개전 당일 오후 1시경 육사 교도대대(敎導大隊)와 보병학교 교도대대를 1사단에 배속하고, 육사 교장 이준식에게는 생도대대를 이끌고 포천 후방의 서파(현 경기 포천시 내촌면 일대)~퇴계원(경기 남양주 서부) 축선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쟁 전에 수립한 육군의 방어계획에는 7사단이 맡은 포천 정면 방어선이 무너질 경우 이를 후방 지역의 서파~퇴계원 축선에서 막는 방어 대책이 없었다. 개전 초 북한군 3사단과 109기갑연대는 38선 돌파 후 43번 국도를 타고 내려왔다. 포천에서 병력을 Y모양으로 나눠 일부는 의정부, 나머지는 서파 방면으로 보냈다. 서파로 진출한 북한군은 퇴계원까지 연결된 47번 국도선을 타고 내촌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지하철 4호선 종점인 진접역이 있는 곳이다. 진접을 거쳐 퇴계원을 지나면 육사가 있는 태릉이 나온다.
이곳은 서울 방어를 위해 지켜야 할 동북부 관문이었으나 이 지역에 투입할 가용 병력은 처음부터 없었다. 바로 이곳에 임관을 20일 앞둔 생도 1기와 입교한 지 20여 일 지난 생도 2기가 소총수로 투입됐다. 이들의 임무는 포천을 점령한 후 서울 동북쪽으로 남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적의 주력 부대를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었다.
육사생도들은 출동 명령이 내려오자 25일 오후 3시 육사 화랑 연병장에 완전군장으로 집결했다. 생도 1기생은 소대장, 분대장, 부분대장, 공용화기 반장, 공용화기 사수로 편성됐고, 생도 2기생은 소총수인 분대원으로 편성됐다. 생도 1기 262명은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들이 투입되면 북한 공산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하거나 모조리 격멸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각개전투나 분대 단위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생도 2기 277명도 의기양양했다. 육사 생도대대는 총 539명이었는데, 이는 생도 1기 중 미복귀자가 있었고 일부는 학교와 용산역 경비병으로 차출됐기 때문이다.
육본 작전명령 제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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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있는 육사생도 6·25참전기념비. 1979년 12월 건립된 이 기념비는 관할 지역 군단장이었던 신현수 장군이 동기생들이 모은 기금과 국비를 지원받아 세웠다. |
육군본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육사 생도대대는 4개 중대로 편성을 마치고 오후 4~5시경 학교에서 출발해 직선거리로 약 20km 떨어진 내촌면 부평리에 도착했다. 생도대대는 25일 오후 늦게 내촌면 부평리로 가 372고지에 진지를 마련했다. 생도 2기는 삽질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생도 1기가 알려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실탄 8발이 들어 있는 클립을 M1 소총에 장전하는 것마저도 힘에 겨웠다. 이를 본 생도 1기가 대신 장전해 줄 때도 있었다.
개전 다음 날 새벽 372고지 건너편 330고지에는 수도경찰청 소속 전투경찰 1개 대대가 배치됐다. 이들이 가진 무기는 99식 소총과 1인당 실탄 10~20발 수준이었다. 남하하는 북한군은 26일 오전부터 포성을 내뿜으며 남하했다. 적 포탄은 330고지를 먼저 공격했고 북한군 화력에 경찰대대는 약 10분 만에 무력화(無力化)됐다. 이어 372고지를 향한 포격이 이어졌다. 생도대대는 전날 파놓은 호에서 대기한 채 북한군이 접근하면 사격했다. 하지만 북한군은 후방으로부터 병력과 장비를 지원받아 전투력이 강력해졌지만 생도대대는 탄약이 곧 바닥났다. 육사생도의 희생은 늘어만 갔다. 일부 생도는 백병전을 벌이며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생도 1기 출신인 신현수 예비역 중장은 당시 전투를 회상하며 “부딪쳐보니 우리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초전부터 박살이 났다”고 했다.
대대장이 戰線 이탈
생도대대를 지휘하는 조암 중령은 육군본부와 연락을 취하겠다며 전장에서 이탈했다. 이에 부대대장 손관도 소령이 생도대대를 지휘했는데 생도들을 더는 희생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생도들에게 후퇴를 지시했다. 내촌 전투는 적의 남진을 일시 저지시켰지만, 그만큼 희생도 컸다. 생도들은 전우의 시체도 거두지 못한 채 후퇴했는데, 후퇴 과정에서도 대낮에 철수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일부 생도는 후퇴 명령을 전달받지도 못했다.
육사로 돌아온 생도들은 26일 밤부터 불암산과 육사 교정의 92고지를 잇는 구릉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했다. 27일 밤에는 육사 건물에도 적 포탄이 떨어졌고 생도들은 방어진지에서 개인호를 구축하는 데 몰두했다. 28일 새벽에는 적 전차가 서울 시내로 들어왔다. 이때 북한군은 퇴계원에서 망우리 방면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생도들은 이날 오전 10시경 한강 광나루 일대로 철수했다.
생도대대는 29일 한강변 천호리에 재집결해 한강 방어선에 투입돼 광나루 일대에서 피란민 검문·검색 임무를 수행했다.
30일 육군본부는 생도대대에 판교 근처 금곡리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이곳은 한강을 건넌 적이 남진하려면 거쳐야 하는 길목이기 때문이었다.
7월 1일 금곡리 일대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생도대대는 북한군 선발대를 선제공격해 적 선두 부대를 거의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2일에는 아침부터 적이 우세한 포병 화력을 앞세워 생도대대 방어진지를 공격해 왔고 전투는 백병전으로 전개됐다. 생도대대는 적 공격을 저지하며 전선을 지켜냈지만, 부상자와 사상자 등 인명 손실이 컸다. 보유한 탄약마저 떨어졌다.
부상당하자 자결한 생도도 있어
생도대대는 3일 오전 수원으로 철수하던 중 1사단 예비대 임무도 수행했다. 4일에는 전투에 투입됐는데 생도대대로서 마지막 전투였다. 수원 일대에서 1사단과 생도대대가 분전한 덕분에 적 공격을 지연시켰다. 하지만 이어지는 적의 대규모 병력 투입으로 인해 육군본부는 5일 생도대대에 평택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6일에는 평택에서 화물차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했다. 대전으로 이동한 생도대대는 10일 해체됐다.
대전에서 인원을 조사한 결과 7월 6일을 기준으로 남아 있는 생도 1기는 134명이었다. 부상으로 후송된 인원이 20명가량 됐으며, 이동 과정에서 10여 명이 이탈했다가 뒤늦게 합류했다. 이 결과 7월 10일 임관식에 참석한 생도는 154명이었다. 6월 25일 전선에 투입된 숫자가 262명이었으니 약 10일 만에 생도 108명을 잃은 것이다. 생도 2기는 277명이 출동해 86명이 전사 또는 실종됐다. 일부 생도는 부상을 당하자 동기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자결(自決)을 택한 경우도 있었다.
불암산 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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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월 17일 경기 남양주 불암사 앞에서 불암산 유격대 충혼비 제막식이 열렸다. 사진=남양주시 |
불암산 유격대는 ‘유격대 활동 수칙’도 있었다. 수칙은 총 네 개였으며 첫 번째는 이렇다.
“우리 유격대는 전원이 결사(決死)의 각오로 유격 활동에 임할 것을 다짐한다. 그것이 후일에 전쟁을 기피했다는 누명을 벗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겠다.”
불암산 유격대는 7월 11일 퇴계원에 있는 북한군 보급기지를 급습해 보급품을 불태우고 북한군 약 30명을 사살했다. 하지만 철수 과정에서 북한군의 추격으로 생도 1기 2명과 생도 2기 1명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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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도 1기(육사 10기)로 불암산 유격대 활동을 한 김봉교 중위의 여동생 김옥균씨와 남동생 김선교씨가 국립서울현충원 합동영안 봉환소에서 김봉교 중위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조선DB |
8월 15일에는 모교인 육사에서 전투를 벌였다. 당시 육사는 북한군이 의용군 훈련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날 밤 유격대는 육사를 급습해 북한군 약 5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지만 철수하던 중 유격대장 김동은을 비롯 생도 6명이 전사했다.
유격대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이 주민들을 화물차에 태우고 북한으로 끌고 갈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유격대장 조영달 생도는 주민 구출 작전을 계획했다. 당시 유격대가 보유한 장비는 개인별 소총 한 자루와 실탄 10여 발뿐이었다.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불암산에 숨어 있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하지만 유격대원들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군인의 임무라고 판단해 9월 21일 밤 내곡리(경기 남양주시) 마을에서 매복 진지를 구축하고는 북한군 수송대가 매복 진지 앞을 통과하자 습격했다. 이때 조영달 생도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육사생도들이오. 여러분은 어서 피하시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에 많은 이가 여러 방향으로 달아나 북한군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격대원들은 탄약을 모두 소모한 뒤 도망쳐 불암산으로 복귀하려 했지만, 북한군의 추격으로 강원기 생도(이듬해 부상 치료 중 사망)를 제외한 전원이 전사했다.
울음바다가 된 생도 1기 임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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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화랑의식을 하고 있다. |
생도 2기는 다시 육사로 복귀해 4년제 교육을 이어받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인민군은 대전을 거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고, 생도 2기는 대전에서 대구,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일선 부대의 초급간부, 소대장이 부족했다. 분대장이나 선임하사 등은 고참 병사를 진급시키면 됐지만 지휘관인 소대장은 달랐다. 1개 연대에는 소대장 약 60명이 필요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중대장, 대대장, 참모들은 손실이 크지 않지만, 소대장은 최전선에서 소총병과 함께 싸워야 하기에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 6월 25일부터 7월 말까지 소대장 손실률은 60%에 달했다. 이에 대한 고육책이 ‘현지 임관(現地 任官)’ 제도였다.
육사생도 2기에서 육종 2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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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5월 3일 6·25 참전 선배들이 육군사관학교에서 일일입소훈련을 가졌다. 사진=조선DB |
4년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생도 2기는 자신들이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들은 육사에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미국 군사 유학 등으로 해소했다. 생도 2기에서는 대령 47명, 장군 19명이 나왔다. 4성 장군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3성 장군 2명(장정열 전 병무청장, 김용진 전 군수사령관)을 배출했다.
생도 2기로 인정받기까지는 46년이나 걸렸다. 그 배경에는 기칭(期稱) 파동(1955년, 1966년)이 있다.
첫 기칭 파동은 육군사관학교가 폐교된 뒤 1951년 10월 경남 진해에서 정규 4년제 교육과정으로 재개교한 데서 비롯됐다. 육사 11기가 1955년 10월 임관할 때 육군본부는 ‘정규 육사 1기’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공고는 ‘육사 제1기 사관생도 모집’으로 했음에도 전쟁 발발 전 1~9개월 과정의 단기 육사 출신(육사 1~9기)들이 군의 주축이 돼 장교 족보를 흔들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66년 육사 기수 정리 과정에서 생도 1기는 육사 10기로 조정됐으나 생도 2기는 육사 기수에 편입되지 못했다.
군 생활을 계속하던 생도 2기는 1980년대 들어 모두 군을 떠나 민간인이 됐다. 이들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생도 2기의 존재를 알리는 활동을 본격화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하나회가 몰락하자 생도 2기에 대한 명예 회복도 진행됐다. 1996년 5월 4일에는 육사를 떠난 지 46년 만에 생도 2기 노병(老兵) 94명이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2010년에는 입교 60주년을 맞아 생도 2기 전원이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수상했다.
인터뷰
생도 2기 박경석 예비역 육군 준장
“생도 2기, 명예 회복되진 않았지만 수습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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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생도 2기인 박경석 예비역 준장. |
그는 “생도 2기에 대한 명예가 회복되진 않았지만 수습은 됐다”고 했다. 2000년에는 생도 2기의 활약상을 정리한 장편실록소설 《육사생도 2기》를 펴냈다.
— 75년 전 6월 25일을 기억하십니까.
“그 시절에는 닭고기가 최고였어요. 그날 우리 중형(仲兄, 박영석 예비역 준장)이 닭을 갖고 면회를 왔는데, 갑자기 비상이 걸렸어요. 인민군이 쳐들어왔다는 소리를 들었죠. 면회를 빨리 끝내고 생도들은 연병장에 모였습니다.”
— 전선에 투입된다고 하니 떨리지 않았습니까.
“총 세 발(영점사격)밖에 안 쏜 놈들이 자신감에 넘쳐 ‘북으로, 북으로’를 외치며 포천으로 갔어요. 나라를 지키러 간다는 마음에 영광스러웠죠. (생도 2기) 장기호(예비역 대령)는 ‘공산당 무찌르러 간다’며 보무당당하게 걸으며 군가를 불렀어요.”
“자신감이 공포로 바뀌었다”
— 개전 다음 날 실제 전투를 치러보곤 어땠습니까.
“포탄에 맞아 팔다리가 잘리는 걸 보니 무서웠죠. 자신감이 공포로 바뀌었어요.”
— 개전 초기 생도대대가 치른 전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가 있습니까.
“한강방어선 전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적 정찰대가 공격을 했거든요. 이에 희망 생도들도 광나루 일대에서 전투를 했죠. 원용덕 아들 원창희가 저보고 ‘경석아 안 가?’라고 하기에 저는 가기 싫었는데, ‘천하의 사나이가…’라고 하며 따라갔습니다. 거기서 죽을 고비를 넘겼죠. 대구로 철수했을 때 3사단에 배속돼 포항 방어 전투를 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원창희(예비역 준장)와 박준병(전 국군보안사령관, 민정당 사무총장), 박경석은 대전고 동기 동창이다. 원창희는 대전고(당시 대전중)를 다니다가 서울 배재고로 전학을 갔고, 이 둘은 생도 2기로 다시 만났다.
— 전투를 치르면서 가졌던 마음가짐이 있습니까.
“‘사람이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데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 소위로 임관한 후 기억에 남는 전투가 있습니까.
“1951년 평창 1077고지 전투. 수류탄이 터졌는데 다행히 눈이 사타구니까지 오는 바람에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대신 왼쪽 청력을 잃었죠. 눈 속에서 기절했다가 포로가 됐습니다.”
— 포로가 된 후에는요.
“북한군이 치료해 줬는데, 저를 ‘해방군관 동무’라고 불렀죠.”
— 왜요?
“국군은 미제(美帝)의 괴뢰(꼭두각시)인데, 북으로 왔으니 미제와 그 괴뢰로부터 해방됐다는 뜻이지요.”
9사단에서는 박경석이 포로가 되자 그를 전사 처리했다. 이 때문에 서울 국립현충원에 2020년까지 박경석의 가묘(假墓)가 있었다. 치료를 받고는 탈출한 박경석은 대구 CIC(방첩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당시 박경석을 조사한 이는 김학호로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을 할 때 중정에서 감찰실장을 했다.
— 어렵게 탈출했는데 의심하지 않던가요.
“탈출했다고 하니 애국자 취급을 하더군요.”
— 중공군 참전 소식을 들었을 땐 어땠나요.
“처음엔 무시했죠. 비행기로 폭격하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단숨에 그 많은 영토를 뺏겼더라고요.”
박경석은 중위로 진급해 8사단에 배속됐다. 미국 유학 시험을 쳐 1953년에는 도미했다. 소령 때는 양구에서 HID 공작장교를 2년 가까이 지냈다.
초대 재구대대장
— 군 생활 중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은요.
“베트남전에 전투병 파병을 앞두고 맹호사단 대대장으로 임명됐을 때입니다. 대대장 시절 제 부하가 강재구 중대장(대위, 추서 계급 소령)이었습니다. 강 소령이 순직한 후 저희 대대가 이를 기리기 위해 재구대대가 됐죠.”
강재구 소령의 살신성인을 세상에 알린 것도 박경석이었다. 3대 재구대대장은 노태우다.
— 생도 1·2기의 활약상을 평가하신다면요.
“북한군 주공(主攻)이 서울까지 진격하는 데 하루 내지 한나절은 지연시켰다고 생각해요. 전략적인 역할을 한 거죠. 북한군 진출 경로에 국군이 배치돼 있다고 북한군이 오해하도록 했으니까요.”
—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생도 2기에 대한 복교(復校)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선 교착 국면이 되자 육군본부에서는 육사 재건 문제가 논의됐습니다. 1951년 6월 육군참모총장이 된 이종찬 장군은 육사 휴교와 생도 1·2기 전선 투입에 대해 비판적이었죠. 육종 2기로 임관한 생도 2기는 당연히 복교시켜 2학년으로 승급시키고 신입생을 모집해 육사를 개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 복교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도 2기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모두 중위였고 ‘조금 있으면 대위로 진급하고 3년 후에는 소령이 될 수도 있는데 그 혹독한 훈련을 어떻게 다시 받느냐’는 생각이 있었죠. 특히 당시 육사에는 3금(금주, 금연, 금혼) 제도가 있었습니다. 3금을 지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반면 아직 10대였던 생도 2기는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생도 2기가 하나로 단결해 한목소리를 내도 복교가 가능할까 말까인데….”
기수 조정
— 육사 11기가 밉진 않습니까.
“1966년 기수 조정 문제를 두고 유학성(당시 육본 인사처장) 준장, 박경석(당시 중령), 전두환(당시 소령) 세 사람이 모였습니다. 유학성 안(案)은 ▲생도 1기는 육사 10기 ▲생도 2기는 육사 11기 ▲전두환 기수(현 육사 11기)는 육사 12기로 조정하는 거였죠. 이는 전두환 기수에서 반대했어요. 저는 ‘생도 2기를 살리는 게 목표다. 학위 졸업장을 달라는 게 아니다. 육사인으로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고 했죠. ▲생도 1기는 육사 10기 ▲생도 2기는 그대로 ‘생도 2기’ ▲육사 11기 순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이 안도 전두환이 반대했죠. ‘왜 육사 11기 앞에 생도 2기가 끼느냐’면서요. 그러면서 ‘생도 1·2기를 모두 육사 10기로 조정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주장한 안이 채택됐지만 정작 발표에선 생도 2기와 관련된 내용은 빠졌죠.”
—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참 밉겠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전두환, 노태우 이 두 사람이 저한테 그렇게 잘했거든요.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을 만들어 군을 병들게 한 점은 비판하고 싶습니다.”
박경석은 5공 시절 대전고 동기인 박준병 민정당 사무총장으로부터 내무부 장관 입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 이후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윤필용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던 강창성 의원의 권유로 그는 하나회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 육사 정신은 무엇이고 육사생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육사 정신은 조국 수호입니다. 사관생도들은 조국, 정의, 진리, 이 세 가치를 추구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