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 인맥’과 지방 ‘내부자’들이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줄의 나라’
⊙ 권력 교체 없는 특정 지역에선 ‘분권’이 더 큰 독재로 이어질 것
⊙ 무작정 지방분권 시행하면, 지역 ‘경제’ 증발하고 지역 ‘정치’만 남아
⊙ ‘서울바라기’ 지자체장과 지역 토호들의 배만 불리는 ‘지방 잔치’
⊙ 현행 한국의 지방자치는 한국 사회 전체를 폐쇄적인 구조로 이끌고 있어
李陽承
1974년생. 전북대 무역학과 졸업,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경제학 석사, 미국 캔자스대 경제학 박사 / 캐나다 앨버타 대 연구원·강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역임. 現 국립군산대 무역학과 교수 / 저서 《자유무역론》 《메트로 이코노미》 《와일드 게임이론》
⊙ 권력 교체 없는 특정 지역에선 ‘분권’이 더 큰 독재로 이어질 것
⊙ 무작정 지방분권 시행하면, 지역 ‘경제’ 증발하고 지역 ‘정치’만 남아
⊙ ‘서울바라기’ 지자체장과 지역 토호들의 배만 불리는 ‘지방 잔치’
⊙ 현행 한국의 지방자치는 한국 사회 전체를 폐쇄적인 구조로 이끌고 있어
李陽承
1974년생. 전북대 무역학과 졸업,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경제학 석사, 미국 캔자스대 경제학 박사 / 캐나다 앨버타 대 연구원·강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역임. 現 국립군산대 무역학과 교수 / 저서 《자유무역론》 《메트로 이코노미》 《와일드 게임이론》
- 3월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 국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대선 후보마다 지방분권 개헌을 내걸고 있지만, 뿌리깊은 중앙집권제를 넘어설지 미지수다. 사진=조선DB
지난 탄핵 정국의 와중에 정치권에서는 개헌(改憲) 논의가 솔솔 나왔다. 개헌 논의는 대선(大選)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일단 들어갔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언제든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개헌의 명분 중 하나가 ‘지방분권(分權) 개헌’이다. 지방 소멸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연방제(聯邦制)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문제의 원인을 한참 잘못 짚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달라지는 건 딱 하나다. 지방이 더 빨리 망한다. 게임이론 시각에서, 그 지역이 필요로 하는 건 그 지역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지방자치제를 하는 이유다. 지역민들이 필요한 걸 스스로 구하도록 배려하는 게 지방자치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지방에 있다.
지방은 독재 중
한국은 중앙집권제 역사가 깊다. 그 흔적이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이다. 중앙에서 관료를 파견해 지방을 다스렸다. 총명한 청년은 과거제를 통해 중앙에 진출했다. 중앙과 지방은 수직적 종속관계였다. 지방은 매사 중앙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자연스레 지방자치 개념도 희박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관존민비’가 ‘3김(金) 정치’를 만난 결과다. 겉은 지방자치지만 속은 ‘정당 지배 자치’다. 여기에 더해 지방은 독재(獨裁) 중이다. 투표 결과를 보면 안다. ‘선거’라는 형식이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다. 히틀러도 선거로 선출됐다. ‘체육관 선거’는 ‘형식’ 민주주의의 표상이다.
특정 지역은 특정 정당의 ‘지배 자치’다. 기초단체장·기초의회, 광역단체장·광역의회 등 지방권력 거의 대부분을 장악한다. 견제 세력도 없다. 그 정당 이해관계자들의 양심과 도덕에 맡길 뿐이다.
착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재를 막는 빛과 소금은 견제와 감시뿐이다. 문제는 정당 공천제다. 이는 시스템 파괴자이자 지방의 올가미다. 특정 지역에선 특정 정당 공천장이 곧 당선증이다.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검증도 필요 없다. 심지어 파렴치한도 당선될 수 있다. 지사장(支社長)을 서울 본사가 낙점하는 식이다.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이 아닐 수 없다. 풀뿌리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중앙당은 지방선거에서 손을 떼야 한다. 지방은 경쟁 중이다. ‘민심 얻기’ 경쟁이 아니라 ‘줄 대기’ 경쟁이다.
‘예산 폭탄’ 끌어올 ‘큰 인물’ 찾는 지방
한국엔 전통이 있다. 현수막을 올려 누군가의 출세 사실을 알린다. “출세를 하라”고 외치는 노래도 있다. 이 역시 관존민비 사상의 한 단면이다.
지역 TV 토론을 보면 누가 더 ‘중앙 인맥’이 많은지를 놓고 후보자 간 다툼이 이는 경우가 많다. 선거 때면 중앙 인맥을 활용해 ‘예산 폭탄’을 가져온다는 공약을 남발한다. ‘줄’이 지역 발전 전략인 셈이다. ‘줄의 나라’ 한국에서 인적(人的) 네트워크가 풍부한 건 자랑이다.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예산이 특히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구적(自救的) 노력 없이 마냥 ‘예산 폭탄’을 기다리는 건 올바른 자치 행태가 아니다. 황당한 건,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예산 폭탄’을 기다린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더 ‘큰 인물’을 지역 대표로 뽑자는 목소리가 힘을 받게 된다. 그런 식의 발전 전략을 짤 거라면 지방자치를 포기하는 게 맞다.
문제는 지방의 ‘내부자’들이다. 그들은 ‘경계인(境界人)’인데 서울 유력 정치인의 아바타 역할을 맡는다. 자산은 주로 서울에 있거나 그 가족들 대부분 서울에 거주하는 게 특징이다. 당연히 서울 중심의 정책을 선호하고 ‘서울 공화국’ 체제를 환영한다. 정체성(正體性)도 불분명하다. ‘표몰이’는 지역에서 하지만 그 자신은 서울 사람에 가깝다.
역설적인 건, 지역 정체감 없는 그 내부자들이 지역감정을 더 자극하고 지역 정치 시장을 더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정치 오염은 인간 혐오를 낳는다. 누군가는 혐오감에 고향을 등진다. 혐오감은 그 지지자들에게까지 번져 지역사회 전체가 분열된다. 오염이 혐오를 낳고 혐오가 더 큰 오염으로 이어진다. 지방 탈출 동력이 된다. 그게 바로 ‘발로 하는 투표’다. 지역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발’로 서울을 찍는다. 서울로 간다는 뜻이다. 출향민(出鄕民)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도 없지만, 그들에게 애향심(愛鄕心)과 지역 정체감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방이 스스로 망하는 건 역(逆)선택 현상의 보편화 때문이다. 지방 ‘내부자’들 중에서도 절대 뽑혀서는 안 될 이들이 지자체장으로 뽑힌다.
‘서울바라기’ 지자체장들
꽃 중에 해바라기꽃이 있다. 해만 바라봐서 해바라기다. 지방 정치인들 중에도 서울만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서울바라기’들이다. 그들은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소년 시절 고향을 떠나 줄곧 서울에서 생활해 왔다. 물론 유능한 이는 소년 시절 상경(上京)할 가능성이 높다. 출세를 위해 서울로 가는 게 유리하고, 실제로 출세를 하면 서울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은 그들의 ‘제2의 고향’이다. 그들은 서울에 더 정을 느끼고 서울을 더 편하게 여긴다.
그런 ‘서울바라기’들은 정체감도 문제지만 지역 발전에 관심이 없다. 더 오랫동안 그 지역을 ‘나와바리’로 갖고 싶어 할 뿐이다. 그들은 중간관리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직(職)을 지역민들에게 위임받은 게 아니고 중앙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착각하는 격이다. 그들은 지방을 서울 ‘핵심부’를 떠도는 ‘주변부’로 만들어, 지방을 서울에 ‘종속’시킨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지방을 ‘내부 식민지’로 규정한 이유일 것이다.
‘서울바라기’ 지자체장들은 당선되면 인사권부터 장악한다. 권력 교체가 없는 지역에선 지자체장이 제왕적(帝王的) 권력을 행사한다. 견제가 없어서다. 즉, ‘서울바라기 제왕’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감시 기구 내지 시민단체의 역할이 요긴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역설 공화국이다. 권력 교체가 없는 지역일수록 시민단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패가 창궐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중에도 ‘서울바라기’들이 많다. 시민단체의 감시 기능은 광역시급 도시들, 중소도시, 농촌 지역들 간에 큰 차이를 보인다. 광역시급 도시들은 지자체장 권한이 제어될 수 있지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은 지자체장 권한이 잘 제어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곳에 ‘서울바라기’ 지자체장이 들어서면 지방행정이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낙하산’ 인사들의 地代 추구
한국에서 선거는 ‘벼락출세’를 상징한다. 당선자를 도운 사람도 벼락출세 혜택을 누린다. 정쟁(政爭)의 후유증은 서울보다 지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끝판 권력은 교체되지 않는 지방권력이다. 수혜자들은 지방 권력에 줄이 닿는 사람들이고, 피해자들은 줄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다.
권력이 바뀔 거라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기대를 하면 그 기대는 실현된다. 바로 기대의 ‘자기실현성(自己實現性)’이다. 권력은 대물림되고 그 주변인들도 더불어 권력을 누린다. 사실상 ‘줄’을 통한 ‘음서(蔭敍)’ 사회다. 강준만 교수가 ‘자기파괴적 연고주의(緣故主義)’를 지적한 배경이다. 특히 정치와 행정의 ‘사유화(私有化)’를 꼽는다. 예를 들면 ‘공직 특별전형’, 즉 ‘낙하산’ 인사다. 지자체장이 사적으로 가까운 인사를 정무직으로 임명하는 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일반직까지 정실(情實) 인사로 채우면 망하는 길이다.
게임이론 시각에서, 낙하산 인사들은 ‘지대(地代) 추구’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충분한 이들은 그 업무 자체가 적성에 맞기에 그 업무 수행에 ‘노력 비용’이 덜 들어간다. 반면 낙하산 인사들은 그 업무가 적성에 맞다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력 비용이 더 큰 상태다. 이때 지대 추구 여지가 발생하면, 전문성 부족의 낙하산 인사가 노력 비용이 큰 업무 수행보다 노력 비용이 적은 지대 추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은 당연하다.
참고로 미국의 종신(終身)교수직(tenure) 제도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종신교수직이 연구업적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게임이론 시각에선 선별(screening)의 결과다. 즉, 누가 종신교수직에 맞는지에 대한 검증인 것이다. 연구업적이 많다는 건 연구 수행에 노력 비용이 덜 들어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재능 덕분이다. 그리고 연구업적이 많으면 추가적 연구가 더 쉽다. 노력 비용이 더 감소한다. 따라서 연구를 등한시할 유인(誘因)이 적어진다. 쉽게 말해, 종신교수직을 부여받고 연구를 등한시하면 자기 자산을 스스로 낭비하는 게 된다. 즉, 그 손해가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태만을 저지를 유인이 없다. 그게 종신교수직을 부여하는 이유다.
법과 제도만으로 공직 사유화를 차단하기 어렵다. 그나마 최소화하는 길은 정보 공개다. 낙하산 인사를 무조건 백안시(白眼視)할 게 아니라, 철저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
청년들, ‘끼리끼리 시스템’ 때문에 지방 탈출
지역 청년들이 서울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일자리도 많지만, 정서적으로 서울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지역 청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지역이 더 불공정하다고 여길 수 있다. ‘줄의 나라’ 한국 어디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끼리끼리’ 시스템은 지방이 더 심각하다. ‘부모 찬스’를 기대하지 못하는 청년들은 지역에서 더 큰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권력 교체가 없는 지역에선 더욱 그렇다. ‘특별전형’과 ‘특채’도 많다.
서울에선 언론의 취재 경쟁 과정에서 청탁 또는 부정 채용 등이 밝혀질 수 있지만, 지방의 현실은 다르다. 단체장과 지방의회 모두 ‘끼리끼리’ 멤버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지역 언론도 같은 멤버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선 지자체장은 제왕적 권력을 누리게 된다. 물론 그 지자체장과 줄이 닿는 청년들은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줄이 닿지 않는 청년들은 더 큰 소외감을 느끼며 차라리 고향을 떠나는 게 유리해진다.
이 와중에 청년들을 두 번 울리는 코미디가 있다. 역선택 현상이기도 하다. 앞서 진정한 지방의 자치행정을 위해 절대 뽑혀선 안 될 게 ‘서울바라기’ 지자체장임을 지적했다.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지방에 절대 있어선 안 될 것은 바로 ‘향토학사(鄕土學舍)’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에서 ‘향토학사’는 ‘지역 발전 전략’이 아니라 ‘지역 황폐화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향토학사’는 코미디다
향토학사란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의 학업을 돕도록 지자체가 서울시내에 운영하는 기숙사다. 황당한 발상이다. 지역에 청년들이 많아지도록 만든다면서 그 지역 청년들로 하여금 서울로 떠나도록 보조금을 주는 격이어서다. 향토학사 입사(入舍) 자격 요건도 실은 자의적이다. 문제는 운영비다. 사실상 지자체가 세금으로 부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지자체 대부분은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다. 10%가 채 안 되는 곳도 부지기수다. 지방세로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 못 하는 실정이다. 행정안전부에서 내려보내는 지방교부세와 보조금이 지자체의 주요 재원이다. 그렇게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도 ‘향토학사’를 지어 운영하는 중이다.
어려운 청년을 돕자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청년은 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청년들일 수도 있다. 편견으로 인해 구직(求職)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평성을 위한다면, 지역 대학에 진학한 청년들에게도 뭔가 혜택을 주는 게 맞다. 지자체가 그 지역 청년들에게 진학 대학에 따라 혜택을 다르게 제공한다면 그것도 차별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의 나라다. 대학 선택도 자유다. 선택이 자유인 만큼 그 비용도 스스로 부담하는 게 맞다. 그 비용을 지자체가 덜어 준다는 건 말이 될 수 없다. 지자체장이 사비(私費)를 털어 지원하면 말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이타적(利他的)인 지자체장은 없을 것 같다.
향토학사 운영비엔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했거나 지역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그리고 그 부모들이 낸 세금도 포함됐을지 모른다. 4년제 대학생만 입사하도록 규정하는 것도 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지역민들의 서울 방문이 많아지는 추세에 맞춰 이제라도 향토학사를 ‘향토호텔’로 개조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서울 의료시설을 방문해야 하는 노인들, 서울로 관광을 다니는 청년들을 위해 향토호텔을 운영하는 것이다. 공적 재원은 그렇게 써야 맞다.
지금까지의 중간결론이다. ‘정당 지배 자치’인 한국의 지방자치는 ‘중앙 인맥’과 지방 ‘내부자’들이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줄의 나라’에 ‘예산 폭탄’을 배분, ‘서울바라기’ 지자체장과 지역 토호들의 배를 불리는 ‘지방 잔치’다.
지방분권 개헌론
지방 발전을 위해 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이다. 문재인 정부는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을 내걸었다. ‘선(先) 지방분권, 후(後) 균형발전’을 말하는데, 이는 매우 허구적이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한’을 이양하면 ‘자원’도 따라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나눠질 거라는 기대가 그 출발점이다. ‘나눠먹기’ 발상에 불과하다.
비현실성도 문제지만, 경제 주체의 전략적 사고를 배제하고 있어 문제다. 기업과 인재(人材)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건 그들의 이익 추구 욕망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 추구는 자연스럽다. 냉정하게 말하면 인간은 본래 이기적(利己的)이다. 한국의 자원이 서울로 몰리고 쏠리는 것도 이기적 동기에 따른 결과다. 자유다. 그리고 자연스럽다. 그런데 특정 지역을 지정해 무작정 내려가라고 강요하는 게 더 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강요하기 전에 합당한 유인이 제공되어야 마땅하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지금 지방분권 개헌 얘기가 나오고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 중심의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주도로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토대로 헌법 조문에 ‘지방분권 정신’ ‘자치입법권 및 자주(自主)재정권’ ‘상하 양원제(兩院制)’ ‘지역 균형발전 원칙’ 등을 담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지방정부를 중앙의 하위 개념으로 보는 시각은 분명 문제가 있다. 선진국에서 양원제가 보편적인 걸 감안할 때, 지역 대표로 상원을 구성하자는 그 주장도 평가할 만하다.
나눠먹기식 지방분권은 대안 될 수 없어
하지만 지방분권이 무조건 지방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그 단순한 사고방식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지역별로 특정 정당 지배 체제가 공고한 가운데 권한을 무조건 이양하면 더 큰 독재권력이 등장할 수 있다. 더구나 그 권력은 견제조차 받지 않는다.
강조하지만 현재 지방자치는 정당 지배 자치다. 중앙에서 벌어지는 큰 ‘권력 게임’의 ‘부분게임(subgame)’인 것이다. 소란스러울망정 중앙정치는 경쟁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지방정치는 경쟁 원리가 배제된 채 ‘줄 대기’ 경쟁만 더 가열된다. 바로 공천 경쟁이다. 누군가는 한평생 가꿔 온 소신을 공천을 위해 하루아침에 바꾸기도 한다.
수직서열화된 지방행정도 큰 문제다. 중앙당이 지자체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지자체의 정책 추진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밀실행정’ 구태도 많다. 지자체 위원회도 형식에 불과하다. ‘짝퉁’ 전문가들을 위원회에 참여시켜 거수기(擧手機)로 활용하기도 한다. 지역 언론은 사실 보도를 하지 않고 지자체장 편에 서서 ‘인간극장’ 제작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된다고 해서 지방자치제가 정상화되리란 보장이 없다. 권력 교체가 없는 특정 지역에선 그 ‘분권’ 자체가 오히려 더 큰 독성(毒性)을 발휘할 수 있다. 그 독재권력의 권한을 더 강화해 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은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엉터리 지방자치의 원인은 지방정부의 권한이 약한 데 있지 않다. 정당 지배 방식 때문이다. 지방분권 논쟁 자체가 지방자치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 ‘선 자치, 후 분권’이 순리다. 먼저 지자체의 자구책이 나와야 한다. 공간 단위 조정과 행정구역 개편이다. 무작정 지방분권을 시행하면 그 과정에서 지역 ‘경제’가 증발하고 지역 ‘정치’만 남을 수 있다. 나눠먹기식 지방분권은 대안이 될 수 없고,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서울 중심의 정신문화
지방은 중앙정부에 요구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구해야 한다. 지방이 원래 경쟁력이 없었던 게 아니다. 수도권과 비교해 땅도 넓다. 인구가 적다고 하지만, 미국의 와이오밍주(州)는 인구가 50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30년 넘게 지속된 정당 지배 자치가 지방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켰을 수도 있다. 이제라도 전략적 사고를 갖춰야 할 때, 지자체가 보여 주는 건 중앙당 추종주의밖에 없다. 지방이 스스로 망하는 진짜 이유다.
문제의 핵은 서울 중심의 정신문화다. 서울(Seoul)은 한국의 솔(soul)이다. 한국인 그 어느 누구도 지방 도시가 ‘감히’ 서울에 맞설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경쟁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도시들 간에도 경쟁이 있는 게 맞다. 한국은 그게 없다. 서울과 ‘비(非)서울’로 나눈다. 지역번호도 서울은 ‘02’ 두 자리고 비서울은 모두 세 자리다. 이름부터가 다르다. ‘서울특별시’다. 규모가 있는 지방 도시들은 ‘광역시’다. ‘광역시’는 일반명사다. 서울은 ‘광역시’라는 일반명사를 붙이지 않고 왜 ‘특별시’라고 해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치 않다.
수도권 초(超)집중화는 서울과 경쟁할 수 있는 도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일극(一極) 체제는 독점 시장을 의미한다. 독점의 폐해는 자원 배분의 극단적 비효율성이다. 바로 수도권 초집중화다.
균형발전의 지향점은 일극 체제에 작은 변화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균형발전을 모든 지역이 균등하게 발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건 불가능하다. 가능한 건, 전략적으로 서울만큼 경쟁력 있는 도시를 ‘최소한’ 하나 이상 만드는 것이다. 그 경우, 그 도시에 의해 ‘탈(脫)서울 원심력(遠心力)’이 발생하고 모든 게 자동 조정될 수 있다. 서울의 인구밀도도 낮아져 서울시민들의 주거 환경이 개선된다. 서울도 이롭다. 그러한 ‘자동 조정 메커니즘’이 진정한 국토 균형발전 전략인 것이다.
도시경제학의 거장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지역 발전을 위해 인프라 중심의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대신 인적(人的) 자본을 강조한다. 거대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발전을 이끈다고 역설한다. 지방의 문제는 인구 감소가 아니라 인적 자본의 고갈이다. 그는 인류의 가장 큰 발명품이 도시라고 파악한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변화와 혁신이 나타난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면 흡인력이 필요하다. 그 흡인력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사람들 간 ‘네트워크’와 ‘편의’일 수도 있다. 정서적 편안함도 중요하다.
앞서 지적했지만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가 단순히 일자리 때문이 아니다. 일자리 때문만이라면 오히려 정책 설계가 쉽다. 일자리들을 이전하면 된다. 그게 혁신도시 건설 이유였다. 하지만 혁신도시는 실패했다. 아무리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도 인적 자본은 유입되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혁신도시는 ‘유령도시’로 변한다.
혁신도시의 실패는 흡인력 부족 때문이다. 중세(中世)에도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는 표현이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선진국 도시는 여성 친화적이다. 지방의 흡인력 부족엔 관습도 한 이유가 된다. 여성들 시각에선 수도권이 지방보다 여성 친화적으로 보일 것이다. 지방이 ‘남초(男超) 도시’가 되는 이유다.
쓸데없는 오지랖도 문제다. 대도시에선 길을 걷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낮다. 익명성(匿名性)이 정서적 편안함을 준다. 흡인력은 무작정 산을 깎고 땅을 민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예산 배정보다 기업 투자
인프라 구축보다 합리적 제도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한국의 편견 중 하나가 땅이 넓고 자원이 많아야 부국(富國)이 된다는 생각이다. 관건은 제도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은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 등 제도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지역 발전도 합리적 ‘제도’가 필요하다. 예산 배정보다 기업 투자다. ‘중앙 인맥’을 쫓을 게 아니고 투자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삼성이 미국 텍사스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건 수익 창출을 위해서다. 텍사스주는 엄청난 유인을 제공했다. 부지 제공, 인프라 구축, 세금 감면까지 기업이 돈을 벌어 가게끔 배려했다. 기업 투자는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
합리적 제도 설계를 방해하는 게 정치 폐쇄성이다. 지방은 더욱 폐쇄적이다. 폐쇄적인 환경에선 연고주의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줄빽’으로 구성된 연고주의는 최악의 유인 체계다. 피라미드 같은 조직을 만들어 놓고 구성원들에게 서열을 부여하면, 그 구성원들의 최선 전략은 그 수직적 조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방 엘리트들의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줄을 대기 위해 서울을 드나들며 서열 피라미드 입성(入城)만 모색할 때가 아니다. 먼저 지역에 뭐가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지역민들과 같이 호흡하며 수평적 대의(代議)정치를 호소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지방자치를 위해선 지역민들과의 수평적 소통이 먼저다.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들도 만나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 게 개방적인 태도다. 그렇게 비판을 수용하고 개방적 태도를 보일 때, 지자체장 본인도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방자치는 정당 지배 자치로 변질
지역에서 인정받는 이가 중앙에 진출하는 게 맞다. 미국에선 주지사 출신이 대통령을 맡는 게 자연스럽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정당 지배 자치로 변질되고 있다. 정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지자체장들이 지역 주민들을 자신의 서열 아래 단계로 보는 경향 때문이다.
현행 한국의 지방자치는 한국 사회 전체를 폐쇄적인 구조로 이끌고 있어 심각하다. 이는 국가 발전 차원에서도 전혀 이롭지 못하다. 폐쇄적인 나라에선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먼저 어떤 이가 나서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면 불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치적 변고(變故)가 발생하지 않는 한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 나라가 망하는 공식이다. 한국이 달라지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위해 풀뿌리 지방자치가 중요하다.
‘선 자치, 후 분권’은 ‘순차적 합리성’에 부합한다. 하지만 ‘선 분권, 후 자치’는 허구다. 분권이 선행되면 지역의 진정한 ‘자치’ 단계 도달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개헌의 명분 중 하나가 ‘지방분권(分權) 개헌’이다. 지방 소멸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연방제(聯邦制)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문제의 원인을 한참 잘못 짚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달라지는 건 딱 하나다. 지방이 더 빨리 망한다. 게임이론 시각에서, 그 지역이 필요로 하는 건 그 지역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지방자치제를 하는 이유다. 지역민들이 필요한 걸 스스로 구하도록 배려하는 게 지방자치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지방에 있다.
지방은 독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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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과 시민단체들은 2014년 2월 20일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했던 박근혜 정권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조선DB |
특정 지역은 특정 정당의 ‘지배 자치’다. 기초단체장·기초의회, 광역단체장·광역의회 등 지방권력 거의 대부분을 장악한다. 견제 세력도 없다. 그 정당 이해관계자들의 양심과 도덕에 맡길 뿐이다.
착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재를 막는 빛과 소금은 견제와 감시뿐이다. 문제는 정당 공천제다. 이는 시스템 파괴자이자 지방의 올가미다. 특정 지역에선 특정 정당 공천장이 곧 당선증이다.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검증도 필요 없다. 심지어 파렴치한도 당선될 수 있다. 지사장(支社長)을 서울 본사가 낙점하는 식이다.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이 아닐 수 없다. 풀뿌리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중앙당은 지방선거에서 손을 떼야 한다. 지방은 경쟁 중이다. ‘민심 얻기’ 경쟁이 아니라 ‘줄 대기’ 경쟁이다.
‘예산 폭탄’ 끌어올 ‘큰 인물’ 찾는 지방
한국엔 전통이 있다. 현수막을 올려 누군가의 출세 사실을 알린다. “출세를 하라”고 외치는 노래도 있다. 이 역시 관존민비 사상의 한 단면이다.
지역 TV 토론을 보면 누가 더 ‘중앙 인맥’이 많은지를 놓고 후보자 간 다툼이 이는 경우가 많다. 선거 때면 중앙 인맥을 활용해 ‘예산 폭탄’을 가져온다는 공약을 남발한다. ‘줄’이 지역 발전 전략인 셈이다. ‘줄의 나라’ 한국에서 인적(人的) 네트워크가 풍부한 건 자랑이다.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예산이 특히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구적(自救的) 노력 없이 마냥 ‘예산 폭탄’을 기다리는 건 올바른 자치 행태가 아니다. 황당한 건,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예산 폭탄’을 기다린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더 ‘큰 인물’을 지역 대표로 뽑자는 목소리가 힘을 받게 된다. 그런 식의 발전 전략을 짤 거라면 지방자치를 포기하는 게 맞다.
문제는 지방의 ‘내부자’들이다. 그들은 ‘경계인(境界人)’인데 서울 유력 정치인의 아바타 역할을 맡는다. 자산은 주로 서울에 있거나 그 가족들 대부분 서울에 거주하는 게 특징이다. 당연히 서울 중심의 정책을 선호하고 ‘서울 공화국’ 체제를 환영한다. 정체성(正體性)도 불분명하다. ‘표몰이’는 지역에서 하지만 그 자신은 서울 사람에 가깝다.
역설적인 건, 지역 정체감 없는 그 내부자들이 지역감정을 더 자극하고 지역 정치 시장을 더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정치 오염은 인간 혐오를 낳는다. 누군가는 혐오감에 고향을 등진다. 혐오감은 그 지지자들에게까지 번져 지역사회 전체가 분열된다. 오염이 혐오를 낳고 혐오가 더 큰 오염으로 이어진다. 지방 탈출 동력이 된다. 그게 바로 ‘발로 하는 투표’다. 지역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발’로 서울을 찍는다. 서울로 간다는 뜻이다. 출향민(出鄕民)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도 없지만, 그들에게 애향심(愛鄕心)과 지역 정체감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방이 스스로 망하는 건 역(逆)선택 현상의 보편화 때문이다. 지방 ‘내부자’들 중에서도 절대 뽑혀서는 안 될 이들이 지자체장으로 뽑힌다.
‘서울바라기’ 지자체장들
꽃 중에 해바라기꽃이 있다. 해만 바라봐서 해바라기다. 지방 정치인들 중에도 서울만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서울바라기’들이다. 그들은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소년 시절 고향을 떠나 줄곧 서울에서 생활해 왔다. 물론 유능한 이는 소년 시절 상경(上京)할 가능성이 높다. 출세를 위해 서울로 가는 게 유리하고, 실제로 출세를 하면 서울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은 그들의 ‘제2의 고향’이다. 그들은 서울에 더 정을 느끼고 서울을 더 편하게 여긴다.
그런 ‘서울바라기’들은 정체감도 문제지만 지역 발전에 관심이 없다. 더 오랫동안 그 지역을 ‘나와바리’로 갖고 싶어 할 뿐이다. 그들은 중간관리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직(職)을 지역민들에게 위임받은 게 아니고 중앙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착각하는 격이다. 그들은 지방을 서울 ‘핵심부’를 떠도는 ‘주변부’로 만들어, 지방을 서울에 ‘종속’시킨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지방을 ‘내부 식민지’로 규정한 이유일 것이다.
‘서울바라기’ 지자체장들은 당선되면 인사권부터 장악한다. 권력 교체가 없는 지역에선 지자체장이 제왕적(帝王的) 권력을 행사한다. 견제가 없어서다. 즉, ‘서울바라기 제왕’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감시 기구 내지 시민단체의 역할이 요긴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역설 공화국이다. 권력 교체가 없는 지역일수록 시민단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패가 창궐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중에도 ‘서울바라기’들이 많다. 시민단체의 감시 기능은 광역시급 도시들, 중소도시, 농촌 지역들 간에 큰 차이를 보인다. 광역시급 도시들은 지자체장 권한이 제어될 수 있지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은 지자체장 권한이 잘 제어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곳에 ‘서울바라기’ 지자체장이 들어서면 지방행정이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낙하산’ 인사들의 地代 추구
한국에서 선거는 ‘벼락출세’를 상징한다. 당선자를 도운 사람도 벼락출세 혜택을 누린다. 정쟁(政爭)의 후유증은 서울보다 지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끝판 권력은 교체되지 않는 지방권력이다. 수혜자들은 지방 권력에 줄이 닿는 사람들이고, 피해자들은 줄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다.
권력이 바뀔 거라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기대를 하면 그 기대는 실현된다. 바로 기대의 ‘자기실현성(自己實現性)’이다. 권력은 대물림되고 그 주변인들도 더불어 권력을 누린다. 사실상 ‘줄’을 통한 ‘음서(蔭敍)’ 사회다. 강준만 교수가 ‘자기파괴적 연고주의(緣故主義)’를 지적한 배경이다. 특히 정치와 행정의 ‘사유화(私有化)’를 꼽는다. 예를 들면 ‘공직 특별전형’, 즉 ‘낙하산’ 인사다. 지자체장이 사적으로 가까운 인사를 정무직으로 임명하는 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일반직까지 정실(情實) 인사로 채우면 망하는 길이다.
게임이론 시각에서, 낙하산 인사들은 ‘지대(地代) 추구’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충분한 이들은 그 업무 자체가 적성에 맞기에 그 업무 수행에 ‘노력 비용’이 덜 들어간다. 반면 낙하산 인사들은 그 업무가 적성에 맞다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력 비용이 더 큰 상태다. 이때 지대 추구 여지가 발생하면, 전문성 부족의 낙하산 인사가 노력 비용이 큰 업무 수행보다 노력 비용이 적은 지대 추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은 당연하다.
참고로 미국의 종신(終身)교수직(tenure) 제도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종신교수직이 연구업적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게임이론 시각에선 선별(screening)의 결과다. 즉, 누가 종신교수직에 맞는지에 대한 검증인 것이다. 연구업적이 많다는 건 연구 수행에 노력 비용이 덜 들어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재능 덕분이다. 그리고 연구업적이 많으면 추가적 연구가 더 쉽다. 노력 비용이 더 감소한다. 따라서 연구를 등한시할 유인(誘因)이 적어진다. 쉽게 말해, 종신교수직을 부여받고 연구를 등한시하면 자기 자산을 스스로 낭비하는 게 된다. 즉, 그 손해가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태만을 저지를 유인이 없다. 그게 종신교수직을 부여하는 이유다.
법과 제도만으로 공직 사유화를 차단하기 어렵다. 그나마 최소화하는 길은 정보 공개다. 낙하산 인사를 무조건 백안시(白眼視)할 게 아니라, 철저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
청년들, ‘끼리끼리 시스템’ 때문에 지방 탈출
지역 청년들이 서울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일자리도 많지만, 정서적으로 서울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지역 청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지역이 더 불공정하다고 여길 수 있다. ‘줄의 나라’ 한국 어디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끼리끼리’ 시스템은 지방이 더 심각하다. ‘부모 찬스’를 기대하지 못하는 청년들은 지역에서 더 큰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권력 교체가 없는 지역에선 더욱 그렇다. ‘특별전형’과 ‘특채’도 많다.
서울에선 언론의 취재 경쟁 과정에서 청탁 또는 부정 채용 등이 밝혀질 수 있지만, 지방의 현실은 다르다. 단체장과 지방의회 모두 ‘끼리끼리’ 멤버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지역 언론도 같은 멤버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선 지자체장은 제왕적 권력을 누리게 된다. 물론 그 지자체장과 줄이 닿는 청년들은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줄이 닿지 않는 청년들은 더 큰 소외감을 느끼며 차라리 고향을 떠나는 게 유리해진다.
이 와중에 청년들을 두 번 울리는 코미디가 있다. 역선택 현상이기도 하다. 앞서 진정한 지방의 자치행정을 위해 절대 뽑혀선 안 될 게 ‘서울바라기’ 지자체장임을 지적했다.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지방에 절대 있어선 안 될 것은 바로 ‘향토학사(鄕土學舍)’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에서 ‘향토학사’는 ‘지역 발전 전략’이 아니라 ‘지역 황폐화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향토학사’는 코미디다
향토학사란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의 학업을 돕도록 지자체가 서울시내에 운영하는 기숙사다. 황당한 발상이다. 지역에 청년들이 많아지도록 만든다면서 그 지역 청년들로 하여금 서울로 떠나도록 보조금을 주는 격이어서다. 향토학사 입사(入舍) 자격 요건도 실은 자의적이다. 문제는 운영비다. 사실상 지자체가 세금으로 부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지자체 대부분은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다. 10%가 채 안 되는 곳도 부지기수다. 지방세로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 못 하는 실정이다. 행정안전부에서 내려보내는 지방교부세와 보조금이 지자체의 주요 재원이다. 그렇게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도 ‘향토학사’를 지어 운영하는 중이다.
어려운 청년을 돕자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청년은 그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청년들일 수도 있다. 편견으로 인해 구직(求職)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평성을 위한다면, 지역 대학에 진학한 청년들에게도 뭔가 혜택을 주는 게 맞다. 지자체가 그 지역 청년들에게 진학 대학에 따라 혜택을 다르게 제공한다면 그것도 차별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의 나라다. 대학 선택도 자유다. 선택이 자유인 만큼 그 비용도 스스로 부담하는 게 맞다. 그 비용을 지자체가 덜어 준다는 건 말이 될 수 없다. 지자체장이 사비(私費)를 털어 지원하면 말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이타적(利他的)인 지자체장은 없을 것 같다.
향토학사 운영비엔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했거나 지역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그리고 그 부모들이 낸 세금도 포함됐을지 모른다. 4년제 대학생만 입사하도록 규정하는 것도 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지역민들의 서울 방문이 많아지는 추세에 맞춰 이제라도 향토학사를 ‘향토호텔’로 개조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서울 의료시설을 방문해야 하는 노인들, 서울로 관광을 다니는 청년들을 위해 향토호텔을 운영하는 것이다. 공적 재원은 그렇게 써야 맞다.
지금까지의 중간결론이다. ‘정당 지배 자치’인 한국의 지방자치는 ‘중앙 인맥’과 지방 ‘내부자’들이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줄의 나라’에 ‘예산 폭탄’을 배분, ‘서울바라기’ 지자체장과 지역 토호들의 배를 불리는 ‘지방 잔치’다.
지방분권 개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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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2월 8일 ‘전국자치분권개헌 추진본부 출범식 및 천만인 서명운동 출정식’이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렸다. 사진=조선DB |
비현실성도 문제지만, 경제 주체의 전략적 사고를 배제하고 있어 문제다. 기업과 인재(人材)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건 그들의 이익 추구 욕망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 추구는 자연스럽다. 냉정하게 말하면 인간은 본래 이기적(利己的)이다. 한국의 자원이 서울로 몰리고 쏠리는 것도 이기적 동기에 따른 결과다. 자유다. 그리고 자연스럽다. 그런데 특정 지역을 지정해 무작정 내려가라고 강요하는 게 더 말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강요하기 전에 합당한 유인이 제공되어야 마땅하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지금 지방분권 개헌 얘기가 나오고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 중심의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주도로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토대로 헌법 조문에 ‘지방분권 정신’ ‘자치입법권 및 자주(自主)재정권’ ‘상하 양원제(兩院制)’ ‘지역 균형발전 원칙’ 등을 담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지방정부를 중앙의 하위 개념으로 보는 시각은 분명 문제가 있다. 선진국에서 양원제가 보편적인 걸 감안할 때, 지역 대표로 상원을 구성하자는 그 주장도 평가할 만하다.
나눠먹기식 지방분권은 대안 될 수 없어
하지만 지방분권이 무조건 지방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그 단순한 사고방식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지역별로 특정 정당 지배 체제가 공고한 가운데 권한을 무조건 이양하면 더 큰 독재권력이 등장할 수 있다. 더구나 그 권력은 견제조차 받지 않는다.
강조하지만 현재 지방자치는 정당 지배 자치다. 중앙에서 벌어지는 큰 ‘권력 게임’의 ‘부분게임(subgame)’인 것이다. 소란스러울망정 중앙정치는 경쟁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지방정치는 경쟁 원리가 배제된 채 ‘줄 대기’ 경쟁만 더 가열된다. 바로 공천 경쟁이다. 누군가는 한평생 가꿔 온 소신을 공천을 위해 하루아침에 바꾸기도 한다.
수직서열화된 지방행정도 큰 문제다. 중앙당이 지자체장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지자체의 정책 추진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밀실행정’ 구태도 많다. 지자체 위원회도 형식에 불과하다. ‘짝퉁’ 전문가들을 위원회에 참여시켜 거수기(擧手機)로 활용하기도 한다. 지역 언론은 사실 보도를 하지 않고 지자체장 편에 서서 ‘인간극장’ 제작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된다고 해서 지방자치제가 정상화되리란 보장이 없다. 권력 교체가 없는 특정 지역에선 그 ‘분권’ 자체가 오히려 더 큰 독성(毒性)을 발휘할 수 있다. 그 독재권력의 권한을 더 강화해 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은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엉터리 지방자치의 원인은 지방정부의 권한이 약한 데 있지 않다. 정당 지배 방식 때문이다. 지방분권 논쟁 자체가 지방자치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 ‘선 자치, 후 분권’이 순리다. 먼저 지자체의 자구책이 나와야 한다. 공간 단위 조정과 행정구역 개편이다. 무작정 지방분권을 시행하면 그 과정에서 지역 ‘경제’가 증발하고 지역 ‘정치’만 남을 수 있다. 나눠먹기식 지방분권은 대안이 될 수 없고,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
서울 중심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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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31일 진주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혁신도시’ 중 상당수는 ‘유령도시’가 됐다. 사진=조선DB |
30년 넘게 지속된 정당 지배 자치가 지방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켰을 수도 있다. 이제라도 전략적 사고를 갖춰야 할 때, 지자체가 보여 주는 건 중앙당 추종주의밖에 없다. 지방이 스스로 망하는 진짜 이유다.
문제의 핵은 서울 중심의 정신문화다. 서울(Seoul)은 한국의 솔(soul)이다. 한국인 그 어느 누구도 지방 도시가 ‘감히’ 서울에 맞설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경쟁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도시들 간에도 경쟁이 있는 게 맞다. 한국은 그게 없다. 서울과 ‘비(非)서울’로 나눈다. 지역번호도 서울은 ‘02’ 두 자리고 비서울은 모두 세 자리다. 이름부터가 다르다. ‘서울특별시’다. 규모가 있는 지방 도시들은 ‘광역시’다. ‘광역시’는 일반명사다. 서울은 ‘광역시’라는 일반명사를 붙이지 않고 왜 ‘특별시’라고 해야 하는지 이유가 명확치 않다.
수도권 초(超)집중화는 서울과 경쟁할 수 있는 도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일극(一極) 체제는 독점 시장을 의미한다. 독점의 폐해는 자원 배분의 극단적 비효율성이다. 바로 수도권 초집중화다.
균형발전의 지향점은 일극 체제에 작은 변화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균형발전을 모든 지역이 균등하게 발전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건 불가능하다. 가능한 건, 전략적으로 서울만큼 경쟁력 있는 도시를 ‘최소한’ 하나 이상 만드는 것이다. 그 경우, 그 도시에 의해 ‘탈(脫)서울 원심력(遠心力)’이 발생하고 모든 게 자동 조정될 수 있다. 서울의 인구밀도도 낮아져 서울시민들의 주거 환경이 개선된다. 서울도 이롭다. 그러한 ‘자동 조정 메커니즘’이 진정한 국토 균형발전 전략인 것이다.
도시경제학의 거장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지역 발전을 위해 인프라 중심의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대신 인적(人的) 자본을 강조한다. 거대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발전을 이끈다고 역설한다. 지방의 문제는 인구 감소가 아니라 인적 자본의 고갈이다. 그는 인류의 가장 큰 발명품이 도시라고 파악한다. 도시에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변화와 혁신이 나타난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면 흡인력이 필요하다. 그 흡인력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사람들 간 ‘네트워크’와 ‘편의’일 수도 있다. 정서적 편안함도 중요하다.
앞서 지적했지만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가 단순히 일자리 때문이 아니다. 일자리 때문만이라면 오히려 정책 설계가 쉽다. 일자리들을 이전하면 된다. 그게 혁신도시 건설 이유였다. 하지만 혁신도시는 실패했다. 아무리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도 인적 자본은 유입되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혁신도시는 ‘유령도시’로 변한다.
혁신도시의 실패는 흡인력 부족 때문이다. 중세(中世)에도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는 표현이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선진국 도시는 여성 친화적이다. 지방의 흡인력 부족엔 관습도 한 이유가 된다. 여성들 시각에선 수도권이 지방보다 여성 친화적으로 보일 것이다. 지방이 ‘남초(男超) 도시’가 되는 이유다.
쓸데없는 오지랖도 문제다. 대도시에선 길을 걷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낮다. 익명성(匿名性)이 정서적 편안함을 준다. 흡인력은 무작정 산을 깎고 땅을 민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예산 배정보다 기업 투자
인프라 구축보다 합리적 제도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한국의 편견 중 하나가 땅이 넓고 자원이 많아야 부국(富國)이 된다는 생각이다. 관건은 제도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은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 등 제도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지역 발전도 합리적 ‘제도’가 필요하다. 예산 배정보다 기업 투자다. ‘중앙 인맥’을 쫓을 게 아니고 투자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삼성이 미국 텍사스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건 수익 창출을 위해서다. 텍사스주는 엄청난 유인을 제공했다. 부지 제공, 인프라 구축, 세금 감면까지 기업이 돈을 벌어 가게끔 배려했다. 기업 투자는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
합리적 제도 설계를 방해하는 게 정치 폐쇄성이다. 지방은 더욱 폐쇄적이다. 폐쇄적인 환경에선 연고주의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줄빽’으로 구성된 연고주의는 최악의 유인 체계다. 피라미드 같은 조직을 만들어 놓고 구성원들에게 서열을 부여하면, 그 구성원들의 최선 전략은 그 수직적 조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방 엘리트들의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줄을 대기 위해 서울을 드나들며 서열 피라미드 입성(入城)만 모색할 때가 아니다. 먼저 지역에 뭐가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지역민들과 같이 호흡하며 수평적 대의(代議)정치를 호소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지방자치를 위해선 지역민들과의 수평적 소통이 먼저다.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들도 만나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 게 개방적인 태도다. 그렇게 비판을 수용하고 개방적 태도를 보일 때, 지자체장 본인도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방자치는 정당 지배 자치로 변질
지역에서 인정받는 이가 중앙에 진출하는 게 맞다. 미국에선 주지사 출신이 대통령을 맡는 게 자연스럽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정당 지배 자치로 변질되고 있다. 정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지자체장들이 지역 주민들을 자신의 서열 아래 단계로 보는 경향 때문이다.
현행 한국의 지방자치는 한국 사회 전체를 폐쇄적인 구조로 이끌고 있어 심각하다. 이는 국가 발전 차원에서도 전혀 이롭지 못하다. 폐쇄적인 나라에선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먼저 어떤 이가 나서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면 불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치적 변고(變故)가 발생하지 않는 한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 나라가 망하는 공식이다. 한국이 달라지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위해 풀뿌리 지방자치가 중요하다.
‘선 자치, 후 분권’은 ‘순차적 합리성’에 부합한다. 하지만 ‘선 분권, 후 자치’는 허구다. 분권이 선행되면 지역의 진정한 ‘자치’ 단계 도달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