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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진실화해위의 보상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나

인민군 등 좌익 희생자에 대한 국가 보상 한 건도 없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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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대 세력 희생자 유가족, 보상금 받으려 군경에 희생됐다고 증언”
⊙ “진실화해위원회 역사 왜곡 부추기고 있어”
⊙ 군경에 희생된 유가족 보상금 1인당 1억5000만원
⊙ 적대 세력 희생자 유족 ‘명예 회복이라도 해줘라’
⊙ 보수 정권, ‘진실화해위원회’ 외면
1948년 10월 여순사건을 진압한 뒤 여수 시가지에 진출한 국군. 짙은 연기를 뒤로한 채 군인들이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1월,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등 적대 세력에 희생된 민간인 유족에 대해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북한 인민군, 적대 세력과 그의 동조자 등에 희생된 대한민국 국민을 ‘전쟁 희생자’라는 개념으로 정의·명시하고 이들에 대한 배·보상 근거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6·25전쟁 전후 북한 인민군과 빨치산 등 일명 좌익 세력에 무고하게 희생된 희생자에 대한 국가 보상은 지난 70여 년간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민군이나 빨치산 등에 동조·가담한 민간인들이 ‘국군·경찰에 희생됐다’며 국가 보상금을 신청하는 사례는 수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심사과정에서 적대 세력에 대한 가담·부역 여부는 묻지 않고 오직 군경에 희생됐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현재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희생된 이들의 유족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 중 일부는 180도 입장을 바꿔 ‘군경에 의한 희생자’로 보상금을 받는 사례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상임위원에 따르면 처음 신청할 당시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처형됐다고 진술했던 희생자의 유족들은 보상자 대상에서 탈락하자 일정 기간 후에 국군·경찰에 의해 희생됐다며 다시 보상을 신청하는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자가 국군·경찰의 희생자로 뒤바뀐 셈이다.
 
  여기에 진실화해위가 북한 인민군이나 적대 세력보다 군경에 의한 희생자로 보상을 신청하도록 유도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 상임위원은 “내가 이곳에 온 지 약 10개월 됐다. 와서 보니 진상 규명 조사 결과 약 6400명의 희생자가 국가를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에서 배·보상 등 피해구제를 요청했다”면서 “그중 약 5600명 정도가 배상을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의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침략 세력을 맞아 죽음을 맞이하며 싸워야 했던 국군과 경찰에 의해 발생된 희생자들은 1인당 약 1억5000만원 전후로 받았다. 지금까지 지급된 금액은 전체적으로 약 8000억원 이상의 액수가 지급됐다. 그런데 정작 침략 세력인 인민군이나 빨치산에 의해 희생당한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단 한 건도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침략자에 의한 무고한 희생이 먼저 보상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았는데 이에 대한 보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진실화해위 유가족에게 가해 주체를 군경으로 적도록 유도해”
 
진실화해위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안내 자료. 첫 표지와 중간 일부 내용을 캡처해 편집한 이미지다. 사진=조선일보DB
  제1기 진실화해위는 2005년에 출범해 2010년까지 활동했다. 이 기간 5624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한 피해자로 인정돼 보상금을 받았지만, 인민군·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에 대해서는 단 한 건도 보상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일까. 2기 진실화해위(2020년 12월 출범)가 시작된 지 10개월간 접수된 1만852건의 피해 사례 가운데 가해자를 ‘군경’으로 적시한 것이 6930건(63.9%)으로, ‘적대 세력에 의한 피해 신청’ 1505건(13.9%)보다 5배 가까이 됐다.
 
  1기 당시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으로 판정된 피해자 유족들이 ‘과거 신청과 조사 결과는 잘못된 것’이라며 재신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 상황을 알 수 없는 총상 피해 등도 국군과 경찰에 의한 희생으로 처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진실화해위도 한몫했다. 진실화해위는 2021년 4월 공식 홈페이지에 ‘진실 규명 신청에서 결정까지 단계별로 살펴보는 Q&A(문답)’라는 제목의 안내문을 올렸다. 이 중 47번 항목은 “사건 관련자 중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 성명란에 국군, 경찰 등으로 기재해도 되나요?” “네 맞습니다. 가해자를 특정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국군, 경찰 등으로 기재하여도 무방합니다”라고 돼 있다. 진실화해위는 국회 국감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안내문을 바로 삭제했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직원의 실수”라고 변명했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소위 우파 진영에서 무관심하니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며 “그들도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별 죄의식 없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했다.
 
  차동길 대한민국 적대 세력에 의한 피해신고센터 센터장은 “진실화해위가 하는 행태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분들의 후손들에게 돈을 받기 위해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쓰라고 부추기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이는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진실화해위가 역사 왜곡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은 “내가 오고 나서 벌어진 사건이다. 저도 뒤늦게 알게 됐는데 그전에 위원회에 신청지침 같은 것이 없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아무리 지침이 없다고 해도 가해자를 바꿔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침략자에 대항해 싸운 유공자들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재단의 이사장은 2021년 11월 4일 진실화해위에 전쟁 범죄 피해 진상 조사 및 보상 등을 요구하는 민원인들에게 ‘사실과 다른’ 내용의 진정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취지로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을 직권남용 및 사기교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형사 고발했다.
 
  박 이사장은 “6·25전쟁을 지나 최근까지 북한 정권과 인민군, 빨치산, 남파 간첩, 남·북한 좌익 계열 인사들이 저지른 민간인에 대한 집단 학살, 암살, 징집, 납치, 테러 등 반인도 범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며 “그 대부분은 계획된 범행이었으며, 그 참혹함이나 피해의 정도에 있어서도 국군이나 경찰의 오해 또는 실수로 빚어진 참사와는 비교되지 않는 비극이었다”고 지적했다.
 
 
  물망초, ‘대한민국 적대 세력에 의한 피해신고센터’ 운영
 
  사단법인 물망초 재단은 2021년 6월부터 ‘대한민국 적대 세력에 의한 피해신고센터(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6·25전쟁 중 북한군이 자행한 민간인 납북·집단 학살 등 전쟁 범죄의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위원회는 6·25전쟁 전후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무고하게 희생된 희생자 유가족으로부터 진실 규명 신청서를 받아 진실화해위에 제출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신고센터에는 지금까지 총 37명의 신청인의 45건의 진실규명신청서가 접수됐다. 이들은 대부분 보상금보다는 진실 규명을 통해 명예회복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센터는 현재 진실화해위에 접수를 모두 마친 상태다.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무고하게 희생된 유가족들은 진실화해위의 조사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37명 중 1명은 지난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일남 신고센터 간사는 “전국 각지에서 신고된 사례들은 대부분 조부모나 증조부모 또는 형제자매들이 경찰, 군수, 지주였다는 이유로 동네 뒷산으로 끌려가 총살되거나 죽창으로 살해당했다”면서 “특히 납북되었던 사건들로서 지금까지 한 번도 법적으로 진실이 규명되거나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은 적이 없는 사례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후손들은 오히려 죄인처럼 쉬쉬하며 숨어 살거나 고향, 심지어 이 땅을 떠나야 할 정도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사건들이다”며 “사건들을 살펴보면 등기소에 갇힌 채 불에 태워진 사례, 6·25전쟁 중에 민간인으로서 국군의 실탄과 식량 등을 운반하다 인민군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등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고 했다.
 
  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건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신변보호로 인해 이름은 알파벳으로 처리했다.
 
  ▲A씨는 6·25전쟁 당시 좌익 세력에 의해 아버지와 형을 잃었다. 전쟁 전 A씨의 아버지는 전라남도 장흥군 ○○읍에서 지역유지였다. 형은 해남 지역에서 순경으로 근무했다. 6·25전쟁 당시 형이 순경으로 근무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삼 형제 모두 지역인민위원회에 의해 끌려갔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A씨와 둘째 형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후 아버지와 형은 뒷산으로 끌려가 무참히 처형당했다.
 
  ▲B씨는 인민군에게 억울하게 희생된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고자 진실 규명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B씨의 부친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일했다. 6·25전쟁이 반발하자 아버지는 외아들과 함께 전주 근교 친척집으로 피란을 갔다. B씨가 살던 전주 집은 인민군에게 빼앗겨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됐다. 이들은 방 한 칸에 B씨의 남은 가족을 감금해놓고 부친이 숨은 곳을 대라고 강요했다. 부친은 피신해 있던 곳에서 빨치산에게 붙잡혀 마을 유지 등 6명과 전주형무소로 이송 도중, 한 사람이 도주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인민군과 좌익 세력들은 야산에 차를 세우고 그곳에서 모두 총살했다. B씨의 조부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가 부친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B씨는 신청 이유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아온 유가족의 아픔과 억울하게 인민군에게 희생당한 부친의 학살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에 밝히고, 부친의 죽음에 대해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을 해달라고 요구한다”고 했다.
 
 
  “北에서 48년 통한의 세월,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 원해”
 
  ▲C씨의 부친은 지역 좌익 세력에 의해 악덕 지주라는 명목으로 당시 공산당 사무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매를 맞아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집에 왔다. 당시 부친은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 온몸이 부어올라 옷도 벗길 수가 없어 가위로 옷을 찢어낸 후에야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지역 공산당원들이 매일 집을 감시했고, C씨의 부친은 야간을 이용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의 부친을 고발한 사람은 다름 아닌 C씨의 집에서 소작인으로 일하던 일꾼들이었다. 전쟁 이후 C씨는 그들을 찾으려고 했으나 이미 그들은 월북한 상태였다.
 
  ▲D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진실 규명 신청을 했다. D씨는 1950년 11월 중순경 당시 충북 제천군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 갔다가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의 설득으로 부식품을 메고 부대에 갔다가 그곳에서 동네 아이들 4명과 함께 국군 전투 시 탄알, 군대식사 등을 운반하는 소년병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인민군의 습격을 받고 피신하던 중 중공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 이후 북한군으로 인계되어 조사를 받고 중국 헤이룽장성에 있는 부여중등학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교육을 받게 됐다.
 
  이후 북한으로 다시 들어갔다. 1958년 8월 북한에서는 반당 반혁명 간첩투쟁이 진행됐고 2000여 명의 군중 앞에 앉아 간첩으로 성토당할 때 죽음의 공포심을 느꼈다. D씨는 다행히 학원 지도 선생님의 보증으로 죽음을 면했지만, 그때의 공포는 매일같이 느껴졌다. 이후 소년 간첩 누명을 쓰고 북한에서 살아가기란 고통의 연속이었다. 연애하던 여자도 D씨가 간첩이라는 얘기를 듣고 헤어지게 됐다. 이후에도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어떤 사고라도 나면 안전부(경찰)에서 D씨에게 누명을 씌우는 등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러던 중 D씨는 소년 간첩 누명을 쓰고 48년간 살아온 북한을 떠나 10여 년 전 탈북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D씨는 신청 취지에 대해 “북한 인민군에 의해 소년 간첩으로 누명을 받고 무려 48년간 북한에서 당한 가혹한 인권유린 등에 대해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 국가배상을 요구한다”고 했다.
 
 
  인민군 돕다 군경에 처형당한 희생자는 보상
 
  이들은 모두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무고하게 가족을 잃은 희생자 유가족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진실화해위 조사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 만약 조사가 끝나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들은 현행법상 배·보상은 받지 못할 것이다. ‘가해자는 북한이기 때문에 보상 책임은 북한에 있고 한국 정부에는 없다’는 보상제도 때문이다. 반면 우리 군과 경찰에 희생된 유가족들은 해당 사건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1억5000만원이라는 보상금을 국가로부터 받게 된다. 현 제도가 그렇다 보니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희생됐지만, 보상금을 받기 위해 우리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고 허위로 작성하는 유가족도 늘어나고 있다.
 
  또 우리 국군, 경찰과 싸우다 죽은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보상을 받는 사례도 있다. 이 밖에 우익 활동을 하던 사람들을 죽이고 그 죄로 경찰에 의해 죽은 이들의 유가족에게도 보상이 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진실화해위에 모순되는 사건이 접수됐다. 충청남도에 거주하는 E씨가 동생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을 규명해달라면서 신청서를 제출했다. E씨의 동생은 6·25전쟁 전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위원회 민청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자 당시 마을 우익 조직인 태극동맹(太極同盟)의 단원들을 총살했는데 E씨의 동생이 관여했다. 전세가 역전되고 우익 치안복구대가 조직되자 E씨의 동생은 학살 책임자로 몰려 총살당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E씨의 동생에게 희생당한 사람 중 한 명의 유가족이 자신 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적대 세력 희생자로 진실 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런 경우 만약 두 신청자 모두 진실로 밝혀져 보상절차가 진행된다면 E씨는 보상을 받을 것이고, 인민군에 맞서 싸운 사람의 유가족은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태극동맹은 반공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인민군의 만행을 막기 위해 만든 비밀결사 조직이다.
 
 
  군경과 좌익 모두 가해자(?)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사진=조선DB
  또 한 신청자는 삼촌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명예회복을 원한다며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에는 전쟁 당시 삼촌이 좌익 세력인 빨치산을 따라나섰다가 경찰과 교전 중에 희생됐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신청자는 가해 대상을 군경이라고 명시했다.
 
  어떤 신청자들은 희생된 자신 부친의 진실을 규명해달라며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두 가지 버전의 신청서가 접수됐다. 하나는 가해자를 좌익 세력으로, 또 다른 하나는 우리 국군이라고 했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보상을 받기 위해 두 가지 버전을 제출했다는 것이 신청자의 진술이다.
 
  이 밖에도 희생 당시 마을은 인민군이 주둔해 있었음에도 경찰에 의해 희생됐다고 하는 신청자, 1기 진실화해위 때 온 가족이 적대 세력에 희생됐다는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2기에 다시 신청해 자신들의 가족은 적대 세력이 아닌 군경에 희생됐다고 주장하는 사람, 전쟁 당시 월북한 가족을 군경에게 총살당했다고 속이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보상을 받기 위해 적대 세력에 희생됐음에도 허위로 군경에 희생됐다고 하는 신청자들도 있다.
 
  김용판 의원은 “이번에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적대 세력에 희생된 유가족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그야말로 보상을 받기 위해 적대 세력에 피해를 입었음에도 군경이 가해자라고 거짓으로 신청한 것은 우리나라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고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광동 상임위원은 “경찰과 합동해 인민군과 전투하다 사망한 사람, 빨치산 토벌하다 희생된 사람 등 수많은 호국 영웅들은 보상도 없고, 역사에도 없다. 만약 이 사람들이 인민군과 빨치산을 돕다 죽었으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현 제도이고 지난 15년 동안 자행된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로 문제 제기도 하고 있고, 국회의원들이 법 개정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것을 규명하거나 이 사안을 정확하게 보고 있지 못하다”며 “침략 세력에 맞서 싸운 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대우하는 나라는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차동길 센터장은 “조상의 명예를 돈 몇 푼에 팔아넘기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무관심에 부끄럽고,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
 
사단법인 물망초재단의 박선영 이사장은 2021년 11월 4일 정근식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위원장을 직권남용 및 사기교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형사 고발했다. 사진=물망초 재단
  그동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1·2기 모두 좌파 정부에서 출범됐다. 1기는 노무현 정권, 2기는 문재인 정권에서 시작했다. 1기 진실화해위에서는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해선 신청 사례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고, 다른 하나는 당시 대부분 미군에 의한 피해나,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렇다 보니 보수 진영에선 이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2기가 시작되고 나서 보수 진영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김 의원은 “먼저 그동안 이에 대해 무관심한 것에 대해 국회의원으로서 부끄럽고,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는 우파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책무다. 지금까지 역사가 왜곡됐는데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하루빨리 개정안이 통과되어서 그동안 고통받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해드려야 한다”고 했다.
 
  박선영 이사장은 “보수들의 정신이 조금 부족했다. 무조건 용서하고 화해하고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보상금을 북한에 청구해야 하지만 먼저 국가가 갚아주고 나중에 북한에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존립 목적은 먼저 전쟁을 막고, 전쟁이 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권을 보호해주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진 것 자체가 국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며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해 국민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그것을 구제할 일차적 책임은 적국이 아니라 국가에 있다”고 덧붙였다.
 
  김 상임위원은 “보수 정권이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보상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진보 정부는 적극적으로 군경에게 죽은 소위 좌익 활동 관련자들이 무고하게 죽었다는 것이 표가 된다고 보고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 피해자는 중공군?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회의원은 “진실화해위 1기 목적은 미군의 전쟁 범죄를 공식화하고 기록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면서 “그때 과거사위라고 했고 지금은 앞에 진실화해가 붙었지만 똑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1기에서 주로 해왔던 것은 노근리 사건과 같이 미군에 의한 피해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지금은 국군과 중공군 피해를 다루고 있다. 중공군들은 여기 와서 우리 국군과 미군에게 아무런 잘못 없이 떼죽임을 당했다는 의도로 하고 있다. 미군에 의한 피해를 공식적으로 진실화해위에서 결정을 내리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이 기록이 되면 공신력을 가진다. 그러면 역사가 바뀐다. 6·25전쟁은 미군이 저지른 잔인한 범죄였고, 동족상잔의 범죄로 기록이 된다. 2기에서는 중공군까지 넓혀서 중국이 피해자다. 인민군과 적대 세력에 손해를 입은 희생자들에 대해선 아무런 보상이 없이 북한 가서 받으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방법을 찾아준다.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같은 법무법인에 사건을 주고 재판을 하게 한다. 완전히 꿩 먹고 알 먹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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