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日帝) 치하에서 경성전기에 근무하던 할아버지는 1945년 1월 21일 내가 태어나자 직접 동회(洞會・동사무소)에 가셔서 장손의 이름을 ‘李正國’으로 신고하셨다고 한다. 서기가 ‘바른 나라’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보고 겁이 나서 못 해준다고 해서 몇 푼 집어주고 등록을 하셨다고 들었다. 7개월 후에 해방이 되니 할아버지는 “내 손자의 이름을 바른 나라라고 작명해서 손자 덕에 해방이 됐다”고 자랑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러면서 일본 기업체에서 일했던 비굴함에 대해 조금은 위로를 받으셨던 것 같다.
1968년 1월 21일, 공군 복무 제대 명령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장남이 제대하고 돌아왔고 생일이어서 어머니는 고교 친구들을 누하동의 집으로 불러서 저녁을 차려주었다. 부족한 살림에도 미역국에다가 꽁치를 여유 있게 구공탄 불에 구워주었다.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 청와대 부근에서 조명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친구 한명이 “세검정 고개를 막아서 못 가게 되었다”면서 우리 집으로 되돌아왔다. 이어서 그 친구의 동생들도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이정국이라는 이름, 해방둥이, 1월 21일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어쩌면 내게는 운명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6·25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
6·25 때는 6세 나이로 피란을 간 할아버지,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을 지키며 어머니와 고생을 겪었다. 집에 가끔 오던 동 서기가 빨간 완장을 찬 공산당원이 되어서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누면서 할아버지, 아버지를 내놓으라고 하는데, 그네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 종북(從北)세력은 전쟁이 나면 바로 빨간 완장을 차고 북한의 앞잡이 노릇을 할 것이다.
지금의 인천 자유공원까지 올라가는 길에 시신과 부상자들을 병원선으로 나르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여섯 살 꼬마는 시신을 보고도 무섭지 않았다. 병정놀이라도 하듯 시신 목에 걸려 있는 군번줄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아마 1945년생 해방둥이가 6·25의 참상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1947년생인 내 여동생만 해도 우마차를 타고 피란 가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세대가 사라지면 6·25의 참상들은 잊힐 것이다.
우리 세대에게 미국은 부모 같은 보호자였다. 최소 하루에 한 끼는 굶고 살던 어린 우리는 미국이 제공해준 우유와 초콜릿을 먹고, 미국인이 보내준 옷을 입고 자랐다. 우리가 경제개발을 하기 시작하자 미국은 의류, 가발, 양말, 라디오 등의 수출길을 열어주었다. 삼성, LG 등이 기업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진보를 가장한 정치꾼들이 반미(反美)를 외치고 있으니 미국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은혜를 저버린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586세대 유감
고등학교 1학년 때 4·19가 일어났다. 우리 학교 학생들도 시위에 참가했는데, 함께 데모하던 고려대생들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오후 서너 시로 기억되는데 경무대 부근의 하늘이 유난히도 검은 구름으로 덮여 있던 기억이 난다. 이듬해 5·16이 일어났을 때에는 군사혁명 지지 시위행진을 했다. 4·19 때도 그랬지만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게 즐거웠다. 혁명공약을 달달 외우던 기억도 난다.
6·3사태 당시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은 거의 내 또래였다.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한 이들은 내게는 후배뻘이다. 당시에는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여서 동참은 못 했지만, 그들의 민주화운동에 심정적으로는 동조했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시절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들에 대한 보상이나 예우는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학생운동을 했던 1980년대 세대, 이른바 586세대의 생각이나 그들이 오늘날 한국 정치를 좌우하는 상황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 그들은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를 가장하여 북한의 공산주의를 이 땅에 심기 위해 노력해온 망나니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삼성전자를 세계 1등으로 만들고, 현대자동차가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게 만들어준 후배들은 진심으로 고맙다. 그들 덕분에 이역만리 태국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고 있다. 그들처럼만 정치를 해주면 대한민국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 텐데. 위정자들은 전대협 시절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분통을 터뜨리게 된다.
나라 걱정하는 마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만 해도, 그의 당선에 대해 속상해하는 주위의 선배들에게 “국민 다수의 결정에 승복해야 하고, 보수와 진보가 교차하면서 대한민국은 더욱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문재인’이라고 부르고, TV 뉴스에 그의 얼굴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중학교 과정만 마쳤어도 알 수 있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위선을 옹호하고,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겠다고 프레임을 짜놓고 언론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죽이려고 하는 앞잡이들의 비열한 행태, 같은 여자이면서도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한 윤미향 같은 진보를 가장한 위선자들의 모습을 보면,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간다는 자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또 학생 데모를 했다고, 또 감옥에 다녀왔다고, 그 사실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면서 특혜를 요구하는 국회의원이 7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1945년생 해방둥이는 한숨만 나온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을 것은 언론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른바 군사정부 시대보다 더 교묘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만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정치 뉴스를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TV 앞에 가족끼리 앉아 있는 시간들도 적어지고 있다. 이역만리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글을 써 보낸다.⊙
이정국·태국 교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