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저출산 초고령화 시대,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

“내 돈은 내가 다 쓰고 간다”… 일본의 ‘나’답게 저물 권리

  •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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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독약 냄새 대신 밥 향기 흐르는 거실… 일본은 어떻게 ‘고려장’ 낙인을 지웠나
⊙ 전세금 대신 ‘존엄’을 택하다… 마치다시(市)에서 본 노인 주거의 미래
⊙ 병원 객사(客死) 대신 ‘집’에서의 임종… 일본의 임종 케어 ‘미토리’
⊙ 초고가 실버타운과 요양원 사이 ‘실종된 중산층’… ‘주거 사다리’에 길 있다
⊙ 규제의 땅에 들어선 노인들의 천국… 마치다시의 ‘행정 유연함’이 만든 활력 거점
⊙ ‘개호 전문 비자’로 들어온 동남아 전문 인력… 5년 정도 성실히 일하고 자격시험 통과하면 영주권 취득, 가족 초청 가능
⊙ 사이타마의 주택형 노인홈 ‘쇼쥬엔’… 한 달 100만원으로 생활 가능
마치다시(町田市) 혼마치다(本町田)의 그룹홈(グル―プホ―ム) 유유엔(悠悠園) 공동 거실. 사진=이정현
지난 3월 31일, 도쿄 도심에서 전철을 타고 서쪽으로 한참을 달리면 고즈넉한 주택가인 마치다시(町田市) 혼마치다(本町田)에 닿는다. 우물을 파는 공장이 여전히 성업 중인 예스러운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순백의 단정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간판 대신 ‘그룹홈(グル―プホ―ム) 유유엔(悠悠園)’이라는 이름표가 최소한의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요란한 수식어나 호화로운 브랜드 네임은 없다. 그저 잘 가꾸어진 ‘동네 공동주택’의 모습 그대로다.
 
  이곳은 2001년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유유카이(悠悠會)’가 운영하는 치매(인지증) 어르신을 위한 공동생활가정이다. 한국의 시니어 주거 모델이 수년째 풀지 못한 숙제인 ‘지속 가능성’과 ‘시설에 대한 인식의 벽’을 일본은 어떻게 넘었는가. 유유엔은 이에 대한 소박하지만 단단한 해답을 품고 있는 현장이다.
 
  시설 안으로 들어서면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나 무거운 정적은 없다. 대신 따뜻한 밥을 데우는 냄새, 낮게 오가는 대화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이곳은 9명씩 한 유닛을 구성해 한 동에서 18명이 생활하는 ‘유닛형(Unit-type)’ 구조다. 미야자와 가즈유키 시설장은 설계를 “사람이 사는 집답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묶지 않는 돌봄’
 
그룹홈 유유엔 내 ‘오픈형 아일랜드 주방’ 모습. 노인들의 활동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오픈형 아일랜드 주방’이다. 개인실 문을 열면 바로 공동 거실과 주방이 펼쳐진다.
 
  “이곳은 인지증 어르신들이 사는 공간이지만, 요양원이나 병동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게 핵심이에요.”
 
  주방에서는 어르신들이 배달된 식사를 나눠 담거나 설거지를 돕고 있었다. 미야자와 시설장은 “예전엔 직접 요리했지만, 서비스 품질의 균일화를 위해 배달식으로 바꿨다. 하지만 밥을 담고 정리하는 역할은 여전히 어르신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운영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가 아니라 ‘생활인’으로 남게 하기 위한 선택이다. 손을 쓰고, 역할을 맡고, 관계 속에 머무는 일. 이 사소해 보이는 과정들이 이곳에서는 존엄을 지탱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유유엔의 돌봄 원칙은 단호하다. ‘신체 구속 금지’. 한국에서는 낙상 사고 방지 등 안전을 명분으로 환자의 손발을 묶거나 행동을 제한하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신체 구속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오직 세 가지 조건(긴급성, 비대체성, 일시성)이 동시에 충족될 때뿐이다. 미야자와 시설장은 “어르신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억지로 막아서지 않는다. 대신 직원이 조용히 뒤를 따라가 살핀다”고 말했다. 24시간 4교대로 물 흐르듯 돌아가는 전문 인력의 헌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단순한 관리가 아닌 ‘동행’을 택한 일본 복지의 핵심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르신들의 개인실 내부 역시 존엄의 연장선이다. 방문을 열면 저마다의 세월이 묻은 원목 침대와 낡은 옷장, 빛바랜 가족사진이 취재진을 맞이한다. “평소 집에서 쓰던 가구를 그대로 가져오게 합니다. 낯선 시설에서 만나는 손때 묻은 물건의 ‘익숙함’은 인지증 어르신에게 그 어떤 치료제보다 큰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4~6인실의 좁은 공간에 규격화된 침대를 배치하고 어르신이 그곳에 몸을 맞추게 하는 한국식 요양 시설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간병인’이 아닌 동남아 출신 ‘개호복지사’들
 
  일본식 인력 해법도 인상적이다. 현장에는 동남아시아 출신의 젊은 직원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본은 2008년부터 외국인 개호(介護·돌봄) 인력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개호’ 재류 자격을 취득하면 영주권 신청까지 가능한 제도적 길을 열어두었다.
 
  이들은 단순한 ‘간병인’이 아니다. 국가 자격시험과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거쳐 전문 ‘개호복지사’로 대우받는다. 시설 차원에서는 일본어 교육을 지원하고, 학생 아르바이트 인력을 정규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이러한 구조는 특정 인력층에 의존해 온 한국식 돌봄 환경과 뚜렷이 대비된다. 고령 사회의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 일본이 택한 ‘전문화’ 전략은 한국이 면밀히 관찰해야 할 전략이다. 한때 일본에서도 노인 요양 시설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고려장’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한 시설이 늘어나면서 노인 돌봄이 일상의 일부로 들어오고 있다. 주민들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데 근처에 이런 시설이 있으니 안심된다”며 이곳을 마을의 자연스러운 공동체로 받아들인다.
 
  취재를 마치고 바라본 ‘유유엔’의 풍경은 한국 농촌의 경로당과 닮은 듯 달랐다. 경로당이 낮 동안만 머무는 ‘사랑방’이라면, 이곳은 ‘24시간 돌봄이 결합된 집과 시설 사이의 공간’이다. 삶과 돌봄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가 그대로 구현돼 있다.
 
  일본은 이제 “시설이 부족하니 더 지어라”의 단계에서 벗어나 “어떤 시설이 선택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질적 경쟁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한국이 마치다시의 작은 주택가, ‘유유엔’의 풍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약 처방 가능”
 
특별양호노인홈(도쿠요) ‘그랜드 하트’의 노인들. 한국 병원 병동 구조와 비슷한 골격을 가졌지만, 집 같은 분위기와 운영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치매 시설에서 주택가 사이로 난 나지막한 길을 따라 들어가면, 풍경의 일부처럼 단정하게 자리 잡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치매 어르신은 물론 거동이 어려운 노인을 위한 특별양호노인홈(特養·이른바 ‘도쿠요’) ‘그랜드 하트’다. 규모는 분명 병원급이지만, 인상은 그와 다르다. 웅장하되 위압적이지 않고, 깔끔하되 차갑지 않다. 마을의 일부처럼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익숙한 ‘병동의 이미지’는 곧바로 무너진다. 길게 이어진 복도 대신 넓게 트인 거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큰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식사를 마친 흔적이 남은 나무 테이블 위에는 일상의 온기가 남아 있다. 소파에 앉은 어르신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그 곁에는 직원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함께한다.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은 긴장감이 아니라 생활의 리듬이다. 이곳은 ‘치료를 받는 장소’라기보다 ‘삶이 이어지는 공간’에 가깝다.
 
  취재에 동행한 김미진 오쓰마 여자대학 인간복지학과 교수는 이 시설의 성격을 한 단어로 정리했다. ‘유지(維持)’. 그는 잠시 거실을 둘러본 뒤 조용히 설명을 했다.
 
  “이곳에서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약 처방이 가능합니다. 의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상태를 확인하죠. 하지만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상태를 극적으로 호전시키려 하기보다는, 지금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악화를 늦추는 데 초점을 둡니다. 무리한 치료 대신, 평온한 일상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겁니다.”
 
 
  ‘회복’보다 ‘지속’ 지향
 
  그의 말은 이 공간의 설계를 이해하는 열쇠에 가깝다. 병원 중심의 의료 모델이 ‘회복’을 목표로 한다면, 이곳의 돌봄은 ‘지속’을 지향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침대보다 거실이 중심이 된다. 누워 있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시간이 삶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요양 시설에 속하지만, 이곳의 의료 접근성은 일반적인 병원을 떠올리게 할 만큼 촘촘하다. 시설 바로 옆에는 정형외과, 정신과, 치과, 안과가 모여 있는 이른바 ‘메디컬 몰’이 자리하고 있다. 치료와 생활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동선 안에서 이어지는 구조다.
 
  의료진의 움직임 역시 ‘외래 중심’이 아니라 ‘생활 속 방문’에 가깝다. 내과 의사는 주 1회, 정신과 의사는 월 2회 직접 시설을 찾아 어르신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처방을 내린다. 병원을 찾아가는 대신, 의료가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방식이다.
 
  “간호사는 상주하면서 건강 상태를 계속 관리합니다. 산소호흡기를 사용하거나 지속적인 처치가 필요한 분들도, 일정 수준까지는 병원이 아니라 이곳 ‘자기 방’에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현장 관계자의 설명은 이 시스템의 핵심을 짚는다. 치료가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의료의 개입을 생활의 흐름 안에 조정해 넣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병원이 병원으로서 기능하면서도, 동시에 삶의 연속성이 끊기지 않는다. 의료와 돌봄이 서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유지한 채 맞물려 돌아간다. 한국이 병원과 요양 시설 사이의 단절, 그 높은 문턱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일본은 이미 두 기능을 ‘마을’이라는 그릇 안에 담아 느슨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결합해 놓은 셈이다.
 
 
  한 달 이용료 약 20만~25만 엔
 
  물론 이 안락함이 처음부터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장 관계자는 “입소자의 절반가량은 자신의 상황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이곳에 발을 들인다”고 귀띔했다. 평생의 궤적이 새겨진 집을 떠나 낯선 공간에 던져진 노인들에게,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불안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대목은 ‘적응의 온도 차’다. 현장 인력들은 여성에 비해 남성 어르신들의 적응이 대체로 더디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이라는 성(城) 안에서 위계와 효율에 순응해 온 그 시대 남성들에게, 타인과 섞여야 하는 공동체 생활은 평생 겪어보지 못한 생경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낯선 탁자 위에서 관계를 맺고 일상을 다시 설계하는 것, 이것이 이곳 어르신들이 매일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숙제이자 삶이다.
 
  현실적인 문턱도 존재한다. 이곳의 한 달 이용료는 약 20만~25만 엔(한화 약 180만~220만원) 수준이다. 일본 노인의 평균 연금 수령액이 17만 엔 안팎임을 감안하면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저축이 바닥나면 더 저렴한 시설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냉혹한 경제적 논리도 작동한다.
 
  이럼에도 늘 긴 대기 줄이 늘어선다. 한때 대기자만 300명에 달했을 정도다. 입소 기준은 선착순이 아닌 ‘긴급도’에 따른다. 지자체와 시설이 공동 심사회를 열어 돌봄이 가장 절박한 이에게 먼저 문을 열어준다. 수많은 가족이 긴 기다림을 감내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집보다 더 집 같은’ 이곳의 돌봄이 존엄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 때문이다.
 
  이 시설이 탄생한 배경은 한국 지자체에도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본래 이곳은 각종 규제에 묶여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던, 사실상 ‘죽은 땅’이었다. 지역의 골칫덩이였던 부지에 대해 마치다시는 파격적인 해법을 내놓았다. “고령자 복지 시설로 활용한다면 규제를 풀고 허가를 내주겠다”는 결단이었다.
 
  행정의 유연함은 규제의 땅을 레스토랑과 보육 시설, 데이서비스가 어우러진 ‘커뮤니티 단지’로 탈바꿈시켰다. 이제 이곳은 시설 이용자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도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지역의 사랑방이자 활력의 거점이 되었다.
 
  이곳에서 임종은 패배가 아닌 ‘완성’으로 정의된다. 과거에는 임종 직전 병원으로 실려가는 것이 당연시됐지만, 요즘은 익숙한 이곳으로 돌아와 마지막을 맞는 ‘미토리(看取り·임종 돌봄)’가 보편화됐다. 이를 위해 입소 초기부터 ‘인생 회의(ACP·사전 돌봄 계획)’를 연다. 어떤 치료를 받을지, 연명 치료를 할지, 마지막 순간은 어디서 맞을지를 가족과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다. 시설 한 관계자는 “결정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사를 미리 기록하고 존엄한 이별을 준비해 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김미진 교수가 한국의 현실을 짚었다.
 
  “지금의 1970년대생이 부모를 시설에 모시는 것을 ‘불효(不孝)’라고 죄책감을 느끼는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맞벌이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가족의 ‘독박 돌봄’은 이제 지속 불가능합니다. 결국 우리도 이 모델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설을 나서는 기자의 눈에 다시 한 번 거실의 풍경이 들어왔다. 어르신 한 명과 직원이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혼자 두지 않는, 그 섬세함 속에서 돌봄은 완성되고 있었다.
 
  이곳은 노인을 ‘관리’하는 수용소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집’의 언어로 써 내려가는 공간이었다. 마치다시의 이 풍경은 어쩌면 우리가 곧 마주해야 할, 혹은 마주하고 싶은 가장 따뜻한 미래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남길 유산인가, 누릴 삶인가”
 
특별양호노인홈(도쿠요)의 목욕 시설.

  현장을 동행한 김미진 교수는 한국 실버타운이 겪는 잇따른 실패와 갈등의 원인을 ‘수익 구조’와 ‘상속 문화’의 충돌에서 찾았다. 김 교수는 “한국은 전세 문화의 영향으로 시설 입주금조차 나중에 돌려받아야 할 ‘보증금’으로 인식한다. 자식들 입장에서 부모의 재산이 시설에서 소멸되는 것은 자산의 손실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여전히 ‘요양원=의료비’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을 때, 일본은 이를 삶을 지속하기 위한 비용, 즉 ‘개호(돌봄) 서비스’로 재정의했다. 유유엔 어르신들의 방에 놓인 낡은 서랍장 하나가 화려한 호텔식 시설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곳이 병원이 아닌 ‘나의 집’이기 때문이다.
 
  자산에 대한 일본의 접근 방식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도쿄 중심가에는 입주금만 60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실버타운도 있는데, 이 거액은 입소 나이에 따라 약 15~18년에 걸쳐 ‘감가상각(減價償却)’되어 사라진다. “내 돈은 내가 다 쓰고 간다”는 인식이 자식에게 남길 유산에 대한 압박을 앞지른 결과다. 자산이 아파트라는 부동산에 묶여 자식의 눈치를 보느라 빈곤한 노후(老後)를 보내는 한국적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은 ‘집을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고, 시설에서 그 돈을 천천히 소비한다’는 개념으로 노후의 경제적 장벽을 정면 돌파했다.
 
 
  감가상각 기간 지나도 거주 권리 보장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대한민국임에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정서적·구조적으로 지체되는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부모를 시설에 모시는 것을 ‘불효’로 치부하는 유교적 관념과 중산층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의 부재가 그 단면이다. 김미진 교수는 30년 먼저 초고령 사회의 터널을 통과한 일본의 경험에 주목했다.
 
  한국 실버타운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보증금’ 기반의 구조다. 수억원의 입주금을 맡기고 매달 생활비를 내는 방식인데,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 돈이 언젠가 반환해야 할 ‘부채’라는 점이 운영의 불안정성을 키운다.
 
  김미진 교수는 일본과의 결정적 차이를 이렇게 짚었다.
 
  “일본은 같은 돈을 내더라도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5억원을 내더라도 이것은 보증금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거주 서비스 비용’입니다. 입주금 규모에 따라 짧게는 5년, 길게는 18년에 걸쳐 감가상각으로 소멸되는 구조죠.”
 
  대신 감가상각 기간이 지나더라도 입주자는 사망 시까지 거주할 권리를 철저히 보장받는다. “나중에 돌려받을 돈이 아니라, 남은 생의 안전과 생활을 통째로 사는 개념”인 셈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회계 방식을 넘어 사회 전체의 리스크 관리로 이어진다. 비용을 ‘소비’로 전환함으로써 사업자는 재무 부담을 덜고, 이용자는 서비스의 질을 담보받는다.
 
  결국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한국은 여전히 ‘남길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일본은 ‘어떻게 품위 있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계층별로 나뉜 다층적 주거 구조
 
김미진 오쓰마여대 인간복지학과 교수.

  그렇다면 일본의 비용 구조는 얼마나 현실적일까. 김미진 교수는 고급 유료 노인홈의 평균 입주금이 약 2690만 엔, 우리 돈으로 약 2억6000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월 이용료가 더해진다. 중앙값 기준으로는 약 20만 엔, 평균은 24만 엔 안팎이다.
 
  언뜻 보면 한국의 중산층도 접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일본 노인의 평균 연금이 월 17만 엔 안팎인 만큼, 월 24만 엔 수준의 비용은 저축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 즉 일본에도 ‘누구나 갈 수 있는 고급 시설’은 없다.
 
  중요한 차이는 그다음에 있다. 일본 노인 주거 시스템의 핵심은 연속성이다. 자산이 부족한 이들은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사코주)처럼 일시금 없이 월세로 들어갈 수 있는 선택지를 택하고, 더 낮은 비용의 경비 노인홈이나 공공 성격의 ‘도쿠요’로 이어진다. 소득과 건강 상태에 따라 선택지가 층층이 나뉜 구조다.
 
  사코주는 자립 가능한 노인이 안부 확인과 생활 지원을 받으며 거주하는 형태고, 그룹홈은 치매 어르신이 9명 단위로 공동생활을 하는 공간이다. ‘도쿠요’는 중증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공공 성격의 최후 보루다. 일본은 노년을 하나의 단일 경로가 아니라, 상태와 자산에 따라 갈라지는 ‘계단형 주거 체계’로 설계해 놓았다.
 
  한국의 노인 주거는 초고가 실버타운과 저소득층 임대주택 사이가 크게 비어 있다. 그 사이의 중산층은 마땅한 선택지가 적다. 반면 일본은 소득과 신체 상태에 따라 거주와 돌봄의 단계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결국 차이는 시설의 숫자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의 넓이에서 갈린다.
 
 
  ‘슈카쓰(終活·종활)’
 
  일본 고령 사회의 변화는 삶의 가장 끝자락, 즉 임종의 방식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미진 교수는 “여전히 대다수의 노인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06년 ‘미토리(看取り·임종 케어)’ 제도가 정착된 이후 익숙한 시설에서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는 경우가 보편화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슈카쓰(終活·종활)’라는 독특한 문화가 깊이를 더한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장례 절차와 수의, 관의 종류, 종교적 형식까지 스스로 미리 결정해 두는 것이다. 죽음 후 처리를 타인에게 맡기는 비극적 사건이 아닌, 생애 최후의 ‘자기 결정’ 영역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도입을 넘어, ‘연명 치료’ 중심의 의료 집착에서 ‘삶의 질’ 중심의 존엄한 마무리로 사회적 가치관이 완전히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노인 주거 시설이 도심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 잡으면서 가족 관계의 지형도 바뀌었다. 김미진 교수는 “집이나 직장 근처 시설을 선택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이 가족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분석했다.
 
  “남편이 매일 시설에 들러 아내의 식사를 돕고 가거나, 자녀가 퇴근길에 잠시 들러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풍경이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시설이 도심 외곽으로 격리되어 방문 자체가 ‘특별한 결심’이 되어야 하는 한국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결국 시설의 위치는 단순한 부동산 입지의 문제를 넘어, 노년기에 가족과의 정서적 유대를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하느냐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된다.
 
 
  주택형 노인홈
 
사이타마현(埼玉縣) 가와구치시(川口市) ‘주택형 노인홈 쇼쥬엔(松壽苑)’ 입구 모습.

  지난 4월 3일, 도쿄의 화려한 마천루를 뒤로하고 전철로 1시간가량 달리면 닿는 사이타마현(埼玉縣) 가와구치시(川口市). 전형적인 베드타운의 한적한 골목 끝에 갈색 3층 건물 하나가 서 있다. 화려한 간판 대신 작고 단정한 이름표가 눈에 들어온다. ‘주택형 노인홈 쇼쥬엔(松壽苑)’. 외관은 평범한 다가구 빌라와 다를 바 없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질감이 확연히 달라진다.
 
  구수한 음식 냄새가 기자를 맞고, 낮은 톤의 일본어와 한국어 대화가 자연스럽게 섞여 흐른다. 이곳은 한국인 정금이 대표가 13년 전, 일본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고령자와 연고 없는 노인들을 위해 일군 ‘다문화 공생’의 터전이다.
 
  복도를 타고 퍼지는 따스한 음식 향기, 식사의 온기가 남은 나무 테이블, 그리고 낮게 오가는 웃음소리. 쇼쥬엔은 수용 시설이 아니라 철저히 ‘생활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2013년 문을 연 이래, 이곳은 단순히 몸을 의탁하는 곳을 넘어 소외된 노년들이 다시 ‘식구(食口)’가 되는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여전히 노인 돌봄의 주체를 ‘국가’ 아니면 ‘가족’이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서만 바라본다. 그러나 쇼쥬엔은 그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민간 공동체’가 어떻게 개개인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지 증명하고 있다.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행정적 효율을 넘어, “어떻게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게 할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일본식 해법이 바로 이 작은 골목 끝에 있었다.
 
 
  “병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집입니다”
 
‘주택형 노인홈 쇼쥬엔’ 식당 시설을 소개하는 정금이 대표.

  쇼쥬엔을 관통하는 첫인상은 ‘자유’와 ‘생활감’이다. 복도에는 방금 누군가 자리를 뜬 듯한 삶의 온기가 남아 있고, 거실 한편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잔잔한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정정한 모습으로 거실에 모여 차를 마시거나 외출 채비를 서두르는 모습도 보였다.
 
  정금이 쇼쥬엔 대표는 이곳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의했다. “이곳은 ‘주택형’ 노인홈입니다. 말 그대로 집을 빌려드리고 정성 어린 식사를 제공하는 구조죠. 병원 같은 엄격한 통제보다는, 혼자 살기에는 불안하지만 삶의 주도권만큼은 잃고 싶지 않은 분들을 위한 안식처입니다.”
 
  그의 설명처럼 이곳 어르신들에게 일상은 곧 선택의 연속이다. 생일을 맞으면 마음 맞는 이들과 어울려 근처 식당에서 야키니쿠(불고기)를 즐기고 오는 일이 다반사다. 화장실과 목욕탕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설계를 통해 이용료의 문턱을 낮췄고, 그 공백은 도미토리(기숙사) 같은 실용성과 이웃사촌의 정으로 채웠다. 초기 비용은 9만 엔, 월 비용은 식사 포함 12만 엔 정도다. 100만원으로 한 달 생활이 가능한 구조다.
 
  정금이 대표가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현장에서 마주한 절박한 질문들이었다. 2013년 방문 요양 사업을 하던 시절, 그는 노인들로부터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제도 밖에 놓인 삶의 공백을 드러내는 신호에 가까웠다.
 
  일본에서 노인이 집을 구하거나 시설에 입소하려면 ‘보증인’이 필요하다. 가족이 없거나 관계가 끊긴 이들에게 이 조건은 사실상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응급 상황 시조차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 동의를 받지 못해 치료가 지연되거나 거절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분들의 고민이 곧 제 미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대표는 결국 직접 개호 자격을 취득하고, 현장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며 이 공간을 열었다. 쇼쥬엔은 ‘고급 서비스’로 기획된 시설이 아니라,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에서 출발한 공동체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스러운 다문화 공존이다. 일본 사회의 인구 구조처럼, 이곳 또한 일본인 어르신들과 한국인, 중국인 어르신들이 함께 생활한다. 문화적 차이는 갈등의 이유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분들은 식사 때 김치를 가져와 함께 드십니다. 누가 제지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정금이 대표의 말처럼, 이곳에서는 ‘다름’이 문제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는 직원 채용에서도 같은 기준을 강조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고, 인정하는 순간 공생이 시작됩니다.”
 
 
  ‘재택 중심 의료’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 없이 운영되는 주택형 시설이지만, 의료 체계는 느슨하지 않다. 핵심은 ‘방문 진료’다. 의사가 2주에 한 번 직접 시설을 찾아 어르신들의 상태를 보고,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24시간 연결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일본이 고령화에 대응하며 발전시킨 ‘재택 중심 의료’의 한 단면이다. 의료가 일상으로 들어오는 방식은, 이동 자체가 부담인 노인들에게 실질적인 생명선이 된다.
 
  쇼쥬엔을 나서는 길, 한 어르신이 천천히 외출에 나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특별할 것 없는 장면이었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오래 남았다. 정 대표는 “여기 와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해주실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쇼쥬엔은 단순한 노인 시설이 아니다. 국가와 제도의 빈틈,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마지막까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머지않아 한국 사회가 마주하게 될 질문을 한 발 앞서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뷰
  김명중 닛세이 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
  “노후 자산, 상속할 것인가 엄하게 쓸 것인가”
 
일본의 노인 문제를 설명하는 닛세이 기초연구소 김명중 수석연구원.

  대한민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부모를 시설에 모시는 것을 ‘불효’나 ‘현대판 고려장’으로 여기는 정서적 저항, 그리고 중산층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 대안의 부재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숙제다. 지난 4월 2일, 일본에서 30년 넘게 노동 경제와 사회 보장을 연구해 온 닛세이 기초연구소 김명중 수석연구원을 도쿄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세대 앞서 고령화의 파고를 넘은 일본의 경험 속에서 한국이 마주할 미래의 해법을 물었다.
 
  한국 실버타운 운영의 최대 난제는 거액의 입주 보증금이다. 이는 운영사에는 ‘언젠가 돌려줘야 할 부채’가 되어 경영을 흔들고, 자녀에게는 ‘사라지는 유산’에 대한 거부감을 준다. 김 연구원은 일본의 ‘상각’ 시스템을 그 해답으로 제시했다.
 
  “일본의 입주금은 임대료 선납과 시설 이용권의 성격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15~20년 거주를 예정하고 일정 금액을 냈다면, 그 기간이 지났을 때 자산 가치는 제로(0)가 됩니다. ‘나중에 돌려받을 내 돈’이 아니라 ‘품위 있는 마지막을 위해 내가 지불한 비용’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실현된 것이죠.”
 
  이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결정적인 문화적 차이가 있다. “한국 부모는 자녀의 전세금을 위해 노후 자금을 쏟아붓지만, 일본은 자녀의 경제적 독립을 당연시합니다. 일본의 평균 결혼 비용은 한국의 8분의 1 수준인 4000만원대입니다. 부모가 자산의 대부분을 노후 시설에 투자해도 자녀가 서운해하지 않는 문화가 ‘소멸형 입주금’을 가능케 한 동력입니다.”
 
  김 연구원은 일본의 다층적 주거 시스템이 중산층의 ‘안전한 퇴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노후 돌봄을 ‘수용 시설’이 아닌 ‘연속적 주거’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특별양호노인홈(도쿠요)이 소득에 따라 월 1만 엔부터 이용 가능한 ‘공공의 보루’라면,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 주택(사코주)은 민간이 운영하는 ‘월세 기반의 상담형 주택’이다. 주택형 노인홈은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외부에서 맞춤형으로 불러 쓰는 ‘생활 중심’ 공간이다.
 
  “일본은 연금이 부족해도 저축액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층층이 나뉘어 있습니다. 부부 합산 200만원대의 공적 연금과 퇴직금을 결합하면 중산층도 충분히 자립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죠. 한국도 이제는 ‘가족의 무한 책임’에서 ‘사회적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 이 중간 지대를 넓혀야 합니다.”
 
 
  님비(NIMBY)를 넘어 ‘안심’으로
 
  노인 시설이 들어설 때마다 불거지는 지역 주민의 반대는 일본도 겪은 진통이다. 김 연구원은 ‘정보 공개’와 ‘제도적 신뢰’를 해법으로 꼽았다.
 
  “부유층 지역일수록 자산 가치 하락을 우려해 반대하지만, 일본은 지속적인 주민 설명회와 시설 개방을 통해 이를 돌파했습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내가 가기 편한 시설이 집 근처에 있어 다행’이라는 안심 여론이 형성되고 있죠. 특히 고베시처럼 치매 환자가 낸 사고에 대해 지자체가 최대 2억 엔까지 배상해 주는 ‘고베 모델’ 보험 제도는 지역사회의 막연한 불안을 제도로 잠재운 대표적 사례입니다.”
 
  한국 노인의 70% 이상은 병원 중환자실의 기계 소리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일본은 이를 바꾸기 위해 시설 내 임종 케어인 ‘미토리 가산(加算) 제도’를 도입했다. 이것은 시설 내 임종 돌봄에 대해 정부가 추가 비용(보너스 수수료)을 지급하는 제도다.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 대신, 본인이 직접 장례와 임종 방식을 정하는 ‘슈카츠’ 문화가 정착됐습니다. 70세가 되면 ‘엔딩 노트’를 작성하며 재산을 정리하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정서가 ‘나답게 죽을 권리’와 만나며, 병원 객사(客死)가 아닌 ‘살던 곳에서의 임종’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외국인 인력, ‘노동력’이 아닌 ‘전문 인재’로서의 포섭
 
  인력난 해소 방식에서도 일본은 전략적이다. 단순히 저임금 노동자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개호 전문 비자’를 통해 숙련된 인재를 사회 구성원으로 정착시킨다.
 
  “특정 기능을 갖춘 외국인이 5년 정도 성실히 일하고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영주권을 주고 가족까지 초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습니다. 이렇게 일본 정부는 숙련된 돌봄 인재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명중 연구원은 뼈아픈 조언을 남겼다.
 
  “일본은 30년에 걸쳐 이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지만 고령화 속도를 보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10년 뒤에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부모를 ‘어디에 맡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권리를 가지고 어디서 살게 할 것인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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