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명째 위탁 아동 기르는 명문대 운동권 출신 이충원씨
⊙ “남편이 변했어요” 가부장 장손에서 새벽 빨래 돌리는 ‘육아 동지’로
⊙ 수양부모제 70년, 권한 없이 책임만… 서울 내 비혈연 위탁가정 단 52가구
⊙ 엄마, 아빠라 불리지만 사실상 ‘동거인’… 법적 울타리 넓혀야
⊙ 노르웨이로 떠난 ‘토실이’가 가르쳐준 ‘이만하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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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로 떠난 ‘토실이’가 가르쳐준 ‘이만하길 다행이다’

- 10년째 위탁 부모로 지내고 있는 이충원·김명희 부부. 현재 키우는 아동인 ‘장군이’와 함께. 사진=이충원
돌아보면 참 용감했다 싶다. ‘또 다른 아이’를 키워보고서야 그간 저버린 무게가 뭔지 알게 됐다. 이충원(李忠源·57)씨는 이렇게 10년째, 헤어질 줄 알면서도 아빠가 된다.
울지 않던 아이
위탁(委託) 부모. 말 그대로 남의 아이를 맡는 일이다. 그의 손을 거쳐간 아이는 넷이다. 애칭은 토실이, 힝순이, 깔끔이, 경이다. 아이당 약 2년을 함께 지냈다. 지금은 ‘장군이’와 함께 산다.
시작은 아내 김명희(56)씨의 제안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유학을 떠나고 집이 비던 시기, 김씨가 “위탁모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반대했다. 언젠가 헤어져야 할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아내가 ‘다들 그렇게 생각해서 애들이 갈 데가 없다더라’고 하더군요. 이 말에 더는 할 말이 없었어요. 한번 해보라 한 거죠. 이랬다가 일이 이렇게 커져버린 거예요.”
당시 딸아이는 중1이었다. 오빠가 유학을 떠난 뒤 귀염을 독차지할 참이었는데, 얼굴도 모르는 갓난쟁이가 온다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딸이 내건 조건은 하나였다.
‘여자애는 절대 안 된다.’
다행히 남자아이가 왔다. 막상 데려오니 딸은 완전 ‘츤데레’가 됐단다. 엄마 고생한다고 제가 보살피기도 했다.
친자식과 경계는 없었다. 함께 외출하고, 병원에 데려갔고 여행도 다녔다. 필요하면 심리상담도 받게 했다.
첫아이 토실이는 ‘입양 전 위탁’이었다. 입양이 결정된 아동을 입양가정으로 보내기 전까지 일정 기간 위탁가정에서 보호·양육하는 방식이다. 생후 한 달에 집에 왔는데, 웬일인지 울지를 않았다. 원래 말 못 하는 시기 아이들은 배고프면 울고, 졸려서 울고, 용변을 봤다고 운다.
“어디가 아픈가 싶었어요. 그 조그만 게 떼도 한 번 안 쓰고,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공갈 젖꼭지만 찾았거든요. 그 전까지 임시 보호 시설을 몇 군데 거쳤던 아이였는데, 거긴 아이들이 많잖아요. 아무리 울어도 안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공갈 젖꼭지만 물려주고요. 애가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 안 거죠.”
처음 타본 목말
아내는 이런 토실이를 안아주고, 또 둘러업었다.
“얼마간 이랬더니 애가 떼를 쓰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애가 울고, 떼쓴다는 건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구나. 말을 못 하니까 자기 좀 봐달라는 거잖아요. 자식 키우면서 애가 울고, 떼쓰면 대부분 힘들어하죠. 저도 젊었을 땐 그랬고요. 그 울음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도 있더군요.”
네 번째 아이 경이는 일반 가정 위탁이었다. 친부모의 사정·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돌봐주고 다시 본래의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형태다. 생모가 수감(收監)되기 직전 시설에 맡겨졌다가 스물일곱 달에 왔다. 아내는 금세 따랐지만, 이씨에게는 유독 낯을 가렸다.
“기저귀를 갈거나 옷을 입히는 일은 반드시 아내가 하도록 했고, 저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손은 격렬히 거부했습니다. 아동심리 상담을 받아봤더니, ‘분리의 상처’라고 하더군요. 생모와의 단절이 깊은 불안을 남겼고, 그 불안이 순서와 역할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는 진단이었어요.”
상처가 어찌나 깊었는지 마음의 문은 아주 천천히 열렸다.
“어느 날 경이를 목말 태워 편의점에 다녀온 뒤였어요. 난생처음 타본 거였겠죠. 하루는 제 장롱 한편에 장난감을 가만히 밀어 넣어놨더라고요. ‘여기는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이라는 아이만의 안심 영역 표시인 거예요. 참 묘하죠. 저희 애들 키울 때 같았으면 어지르지 말고 치우라고 했을 텐데, 그걸 아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다니요.”
‘같이 안 가?’
위탁 아동들은 위탁 부모 또한 엄마, 아빠로 부른다. 아이들은 “‘낳아준 엄마’와 ‘키워주는 큰엄마’가 따로 있다”고 배운다. 지내는 동안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원(原) 가정 복귀 시 정체성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다.
경이는 지난해 11월 말, 큰엄마, 큰아빠를 떠나 생모(生母)에게 돌아갔다.
“위탁을 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또 있어요. 기르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낳는 모정(母情)이 있다는 것. 예전엔 이해 못 했어요. 못 키울 거면서 왜 낳느냐고 했죠. 들여다보면 대부분 10대, 20대 초반 아이들이 덜컥 임신을 한 거예요. 저마다 기구한 사연으로 앞으로 살길이 막막한데도 결국 아이를 저버리지 않고, 택한 겁니다.”
모정의 형태는 저마다 다양하다.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 경이의 생모는 이십대다.
“생모가 어릴 때 학대 피해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핏줄에 대한 애착이 강했어요. 남편은 출산 직후 떠났고, 임신 중 혼자 마트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어요. 경이가 태어나고, 분유와 기저귀 값이나 앞으로 교육비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보이스피싱 일을 좀 도운 게 화근(禍根)이었죠. 징역형을 받고 아이를 시설에 맡길 때 반드시 아이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함께 지낼 위탁모에게 ‘엄마’라고 부르지 말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대요. 딴에는 이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겠죠. 이렇게 애지중지하던 엄마를 떠나 시설에 갔으니, 분리의 상처가 깊을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경이는 이런 생모를 2년 만에 만났다.
“원 가정으로 복귀하던 날, 경이는 이제 아내 옆에서 한 발짝도 안 떨어지려고 했습니다. 조금도 곁을 내어주지 않자, 생모가 ‘집에 가면 인디언 텐트도 있고 그 안에 뽀로로 인형도 있다’며 달랬어요. 그렇게 한참을 버티다 결국 떠났는데, 아이는 아내에게 끝까지 ‘같이 안 가? 같이 안 가?’라고 했답니다. 큰엄마도 새 집으로 가서 사는 줄 알았던 거죠.”
‘언젠가 헤어져야 할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위탁을 망설였던 이유였다. 선배 위탁 부모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별도 반복되면 익숙해진다.’ 반만 맞는 얘기였다.
“헤어지는 순간보다 그다음이 더 힘듭니다. 2년간 집의 중심이었던 존재가 사라지면 집안 공기 자체가 달라져요. 소파 밑을 청소하다 아이 장난감이라도 나오면, 그냥 한참 멍하니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헤어지면 끝이다. 이후의 삶에 개입하면 새로운 양육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해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
“아내는 위탁을 시작할 때부터 ‘유한(有限) 책임’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짊어지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시간만 책임지겠다는 뜻이에요. 무한 책임을 자처하다 지쳐 그만두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다음 아이를 맡는 쪽이 더 지속가능하고, 위탁가정의 취지에도 맞는다고요. 이 일을 10년째 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죠.”
학대 피해 아동
위탁 부모가 된 건 아내 김명희씨의 제안 때문이었다. 김씨는 이 일을 시작하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까지 땄다. 사진=이충원내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미울 때가 있다는데, 남의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힘의 원천(源泉). 이씨는 이를 ‘기질’이 아닌 ‘효능감’의 문제로 해석했다.
“가사노동은 티가 나지 않잖아요. 치워도, 치워도 어질러지고, 밥을 차려도 돌아서면 배가 고픕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한데 육아는 다릅니다.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병원에 데려가면, 살이 오르고 웃음이 돌아와요. 내가 한 행동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는 거예요. 자기 아이라면 이런 모든 게 의무라 만족감을 잘 못 느끼는데, 위탁은 본인이 선택한 일이잖아요. 효능감이 다르죠.”
돌봄의 난도(難度)가 높을수록 보람도 컸다. 아내는 ‘정인이 사건’ 이후 학대 피해 아동을 돌보겠다고 결심했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는 이를 두고 “친자식 키우는 게 초등 교육이라면, 지금 아내는 대학 과제를 수행하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함께 사는 ‘장군이’가 바로 이 고난도 숙제다. 장군이는 경이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 학대 피해 아동이다. 생모는 정신질환으로 아이를 돌보지 못했고, 생부는 폭행을 일삼다 가출(家出)했다. 태아 시절부터 약물에 노출됐던 장군이는 조산(早産)으로 태어나 쉼터를 거쳐 이들 부부의 집으로 왔다.
“사람들은 베이비박스 속 아이들을 버려졌다고 하잖아요. 그건 그나마 보호받은 거예요. 그 트랙에조차 올라가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학대로 죽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학대 판단 건수의 약 85%가 가정 내에서 발생한다. 위탁가정은 이 비극의 문턱에 선 아이들을 붙잡아주는 울타리가 된다. 사진은 지난 2022년 4월 28일 정인이 살인 혐의로 양모가 대법원에서 징역 35년을 확정받은 날 대법원 앞 모습. 사진=뉴시스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학대 판단 건수의 약 85%가 가정 내에서 발생한다. 특히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2세 이하 영아의 사망 비중이 높다. 위탁가정은 이 비극의 문턱에 선 아이들을 붙잡아주는 울타리가 된다.
장군이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법원이 지난해 11월 강제 분리 결정을 내렸지만, 이는 1년 단위의 임시 조치다. 중증(重症) 정신질환으로 입원 중인 생모는 여전히 퇴원 후 아이를 키우겠다고 주장한다. 올해 11월이 되면 법원은 다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생모나 생부가 언제든 나타나서 친권(親權)을 주장할 수 있어요. 법원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그 의지를 완전히 꺾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입신고할 때 주민등록 조회 금지도 걸어놨어요. 아이를 데려갔다가 다시 포기하는 일이 반복될 수도 있거든요. 지금 이 집에서의 안정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겁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에요.”
거대 담론과 젖병
이씨는 한 미디어 기업의 임원이다. 그의 머릿속은 위탁 아동을 돌보기 전까지 온통 ‘동북아 정세’나 ‘인권’과 같은 거대 담론(談論)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 현대사를 다룬 《헤이세이사(平成史)》를 번역할 정도의 식견(識見)도 있었다. 월간지 《좋은생각》을 읽으며, 소박한 미담에 귀를 기울이고, 미혼모 시설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아내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이런 아내의 활동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사소한 일’로만 여겼다.
운동권 중에서도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PD(민중해방·마르크스-레닌주의 계열)였지만, 그 인식은 철저히 관념에만 머물렀다. 우에노 치즈코(上野 千鶴子)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서 ‘재생산 노동’이 사회 지탱의 핵심이라는 이론은 머리로만 완벽히 이해했다. 집안일과 육아는 여전히 아내의 전유물(專有物)이라며 방관했다.
“책을 통해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죠. 이론과 삶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던 겁니다.”
위탁 아동을 집으로 데려온 뒤에야 비로소 그 간극이 메워지기 시작했다. 밤새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는 고된 일상, 이유 없는 울음을 견디며 하루를 채우는 무명(無名)의 노동. 이 끝없는 돌봄의 구조가 바로 그가 읽어온 페미니즘의 실체였다. 아내가 묵묵히 해온 일들이 거대 담론과 맞닿아 있고, 사회 변혁의 뿌리는 결국 부엌에 있다는 걸 쉰이 넘은 나이에 젖병을 닦으며 깨달았다.
‘남편이 변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새벽 출근 전 먼저 싱크대 앞에 선다. 젖병을 소독하고, 시간이 남으면 밥도 짓고 빨래도 돌린다.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내는 이런 그를 보고 인터넷 매체에 글을 썼다. 제목은 〈남편이 변했어요〉다. “남편이 아기가 오고 나서 육아와 엄마의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그는 아내에게 “알고 보니 조선이 제사 때문에 망했다”는 말까지 했단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헤이세이사》의 저자인 일본 역사가 요나하 준(與那覇潤)의 분석으로 설명했다.
“책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좌파는 말과 글로 설득해서 조직을 운영하고, 우파는 누군가의 헌신과 모범으로 사람을 감화시키는 방식이라고요. 좌파 방식은 처음엔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나중에는 설득이 안 되면 배제하거나 공격하는 식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한 실천은 사람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을 갖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농담처럼 그랬어요. ‘내가 당신 때문에 우파로 전향하게 됐다’고요.”
아내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단순한 역할을 넘어선 존재에 대한 경의(敬意)다.
“아내는 이제 아이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수준에 이르렀어요. 울음소리나 시간대만으로 배고픔과 불편함을 짐작해 대응하는 감각이 형성된 거죠. 예컨대 장군이는 뇌 발달이 온전치 않고, 태아기 약물 노출의 영향으로 잠복고환과 심한 변비 등 건강 문제가 많아요. 작은 징후만 보여도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죠. 아내는 매일 장군이를 씻기며 늘 몸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핍니다. 실제 잠복고환을 발견한 것도 아이의 몸을 유심히 들여다본 아내 덕분이었어요.”
52가구의 현실
가정위탁제도는 2000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2003년 4월 전국 17개 시·도에 가정위탁지원센터가 설치되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이후 올해로 23년째지만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서울시내 비혈연 위탁가정은 단 52가구뿐이다. 사진=AI 생성이미지가정위탁제도는 1950년대 전쟁고아를 위한 ‘수양부모제(收養父母制)’에서 출발했다. 2000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2003년 4월 전국 17개 시·도에 가정위탁지원센터가 설치되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이후 올해로 23년째지만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가정법원 판사조차 제도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위탁 보호를 받는 아동은 약 9000명이다. 이 중 60% 이상은 조부모가 양육하는 ‘대리 양육’이며, 이씨 부부처럼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 가정위탁’은 11%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 시내를 통틀어 비혈연 위탁가정은 단 52가구뿐이다.
가정위탁 규모는 매년 뒷걸음질 치고 있다. 위탁 아동 수는 2019년 1만1105명에서 2023년 7900여 명으로, 위탁가구 수 역시 같은 기간 8000여 가구에서 7000가구 선 아래로 떨어졌다. 낮은 참여율의 원인으로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강요되는 구조’가 꼽힌다. 위탁 부모는 법정대리권이 없어 양육 행정에서 매번 벽에 부딪힌다. 반면 사고 발생 시에는 모든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 위탁 부모에게 사실상 ‘성모 마리아급’ 헌신만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엄마, 아빠지만 ‘동거인’
이충원씨는 권한은 없고 희생만 강조하는 현 위탁가정의 해법으로 ‘아동 보호권’을 제시했다. 친권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친권이 작동하지 않는 공백을 메우는 보충적 권리다. 사진=박지현“병원조차 자유롭게 옮길 수 없습니다. 장군이는 기존에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추적 관찰을 받아왔는데, 저희가 보호자임에도 병원을 변경할 권한이 없더군요. 최근 가와사키병으로 응급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야 겨우 병원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5일간의 입원 치료비 250만원 중 의료급여를 제외한 본인 부담금은 아동에게 지급되는 생계급여에서 충당해야 했다. 기저귀와 분유 값도 마찬가지다. 최근까지 식비 지출을 증명하기 위해 생선 토막 단위까지 적힌 영수증을 제출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정책 건의로 지난해 말 겨우 사라진 관행이지만, 현장에서는 언제든 이런 검열이 재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행정 창구에서 위탁 부모는 그저 ‘동거인’ 혹은 ‘무연고(無緣故) 보호자’일 뿐이다. 따라서 예컨대 아이의 여권 발급이나 해외 출국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전에 돌봤던 아이의 친권자 동의를 받기 위해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야 했던 일도 있다.
오는 6월부터 위탁 부모가 ‘임시 후견인(後見人)’ 자격으로 일부 법적 절차를 대신 처리할 수 있게 되지만 1년 한도의 임시 자격인 데다 허용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근본적인 친권 공백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장기 위탁의 경우 후견인 지위를 인정받는 절차가 있지만, 소송을 거쳐야 하며 연간 인정 건수도 20건 안팎이다.
그의 이야기는 ‘누가 아이를 키우는가’에서 ‘사회가 돌봄을 어디까지 떠넘기고 있는가’로 확장됐다. 그러면서 해법으로 ‘아동 보호권’을 제시했다. 친권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친권이 작동하지 않는 공백을 메우는 보충적 권리다.
동네 단위 돌봄
“입원이나 수감, 정신질환 등으로 양육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어요. 10대 미혼모처럼 처음부터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공백을 제도적으로 메울 장치는 없습니다. 위탁가정은 존재하지만 권한이 제한적이고, 민법(民法)은 여전히 혈연(血緣)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서죠.
근본적인 문제는 1948년 제정된 이후 호주제(戶主制) 폐지 외에는 본질적으로 바뀐 적 없는 민법에 있습니다. 민법 개정은 가족 형태의 다양화 및 동성혼 등 사회적 쟁점과 맞물려 있어 입법 우선순위에서 배제돼 왔어요. 이로 인한 입법 공백은 ‘구하라법’과 같은 개별 특별법을 통한 단편적인 보완에 그치고 있죠.”
위탁의 또 다른 축인 친인척 위탁 역시 위태롭기는 매한가지다. 경제 능력이 없는 조부모가 손주를 맡거나, 청소년이 생계급여에 의지해 사실상 소년·소녀 가장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 관리할 인력도 태부족(太不足)이다. 지자체 아동보호팀 직원 서너 명이 시설 아동부터 위탁, 입양 아동까지 사실상 수백 명을 동시에 책임지는 구조다.
“정부는 저출생 해결을 강조하지만, 정작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현장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개인의 온정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구조죠. 비단 위탁가정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맞벌이 가정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돼요.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고, 결국 부담은 한 사람에게 몰리죠. 저는 이걸 ‘가부장제에 포섭된 페미니즘’이라고 봅니다. 권리를 이야기하지만 실제 책임은 개인, 특히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구조인 거죠.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개인에게 그대로 둔 채 권리만 강조해서는 현실이 바뀌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는 ‘동네 단위 돌봄’을 제언했다. 일정한 경험과 여유를 갖춘 주민에게 공적(公的) 인증을 부여해, 필요할 때 잠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에 이를 건의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책임 소재와 사고 가능성부터 따져왔다고.
‘이만하길 다행’
벌써 8년 전 일이다. 첫아이 토실이는 노르웨이로 입양이 결정됐다. 이 무렵 그는 인터넷으로 노르웨이 말을 찾아봤다. 아빠는 ‘포르(Far)’, 엄마는 ‘모르(Mor)’. 스물다섯 달 된 아이를 앉혀놓고 “포르, 모르”를 가르쳐봤지만, 아이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소용없는 짓인가 싶어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문득 옆을 보니, 토실이는 자기 다리 사이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혼자 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인사철이 돌아오면 괜스레 불안하던 때였어요. 조직에서 인정받는지, 내 자리는 어디쯤인지. 이 관성에서 벗어나게 된 게 토실이 덕분이었어요. 태어나자마자 생모 품을 떠나 낯선 아저씨를 아빠인 줄 알고 지내다가, 조금 있으면 또 이역만리(異域萬里) 땅으로 건너가 새 언어로 살아가야 할 아이가, 자기 처지를 한탄하기는커녕 그저 열심히 놀고 있는데, 이에 비하면 제 고민이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법륜 스님이 말하는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어요.”
아내와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 갑자기 생의 마지막이 왔을 때, 갈 곳 없는 아기 다섯을 건사했다는 말만큼은 할 수 있겠다고. 어릴 적 꿈꿨던 거창한 일들은 다 이루지 못했을지언정, 훗날 누군가 앞에 섰을 때 꺼내놓을 수 있는 단단한 삶의 이력이 생겼다고 말이다.
“자식도 아니고 손자도 아닌, 참 어중간한 관계죠. 그런데 함께한 시간만큼 정이 들고, 아프면 같이 밤을 새우고 걱정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제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는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지 절감하게 됐죠. 위탁 부모가 아니었다면 이런 걸 깨달을 기회는 평생 없었을 겁니다.”
그의 휴대폰 갤러리는 서로 다르게 생긴 아이들 사진으로 빼곡했다. 지난 1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중 한 사진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참 신기한 게, 제 어릴 때 모습이랑 정말 많이 닮았어요.”
오는 5월 22일은 ‘가정위탁의 날’이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처 입은 아이들의 ‘정서적 심폐소생술’
위탁 부모 되려면?
과거 정인이부터 최근 해든이까지, 아동 학대 사망 사건들의 공통된 비극은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 안에서, 가장 믿을 수밖에 없는 부모에 의해 아이들이 숨졌다는 점이다. 상처 입은 아이들의 손을 다시 잡아줄 제2의 울타리가 바로 위탁가정이다.
위탁가정이 학대 아동만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부모의 빈곤, 이혼, 질병, 사망 등 다양한 사정으로 보호가 필요한 모든 아이에게 열려 있다. 위탁가정 아동의 83%가 정서적 안정을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는, 따뜻한 밥상과 일상적인 안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강한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위탁 부모가 되려면 만 25세 이상으로 아동과의 나이 차가 60세 미만이어야 하며, 안정적인 수입과 주거 환경, 학대·범죄 전력이 없어야 한다. 지역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신청해 5시간의 예비 교육을 이수하고 심사를 통과하면 아동을 배정받는다. 학대 피해 아동이나 2세 이하 영아, 장애 아동을 돌보는 전문가정위탁의 경우 3년 이상의 위탁 경험이나 사회복지사·교사·의료인 등 자격증을 갖춰야 하며 20시간 이상의 추가 교육도 필수다.
올해 6월부터는 제도의 오랜 약점이 일부 보완된다. 위탁 부모가 ‘임시 후견인’ 자격으로 아이 명의 통장 개설, 휴대전화 개통, 병원 치료·수술 동의, 학적 관련 행정 처리를 친부모 동의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임시 후견 기간은 원칙적으로 최대 1년이며, 시장·군수·구청장은 위탁 부모에게 결정 사항 보고서를 요구할 수 있다. 1년 이상 장기 위탁가정을 대상으로는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선진국들은 가정위탁제도의 핵심을 신뢰와 현실적 지원에 둔다. 미국은 21세 이상이면 신청 가능하며 재정 지원과 의료비, 세금 공제 혜택이 촘촘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사회적 인식이다.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전제 아래, 수급비 영수증을 일일이 검사하는 대신 매주 사회복지사가 아동을 면담하며 상태를 확인한다. 가사 도우미 파견과 데이케어 인력 지원 등 위탁가정의 돌봄 부담을 더는 서비스도 별도로 제공한다.
영국 역시 실무적이고 구체적이다. 여분의 침실 보유 등 엄격한 거주 조건을 요구하며, 약 8개월의 심사를 거친다. 최근에는 위탁 부모의 전문성을 인정해 ‘기술 수당’을 인상하고 수당 체계를 다양화했다.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을 보장해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위탁가정이 학대 아동만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부모의 빈곤, 이혼, 질병, 사망 등 다양한 사정으로 보호가 필요한 모든 아이에게 열려 있다. 위탁가정 아동의 83%가 정서적 안정을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는, 따뜻한 밥상과 일상적인 안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강한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위탁 부모가 되려면 만 25세 이상으로 아동과의 나이 차가 60세 미만이어야 하며, 안정적인 수입과 주거 환경, 학대·범죄 전력이 없어야 한다. 지역 가정위탁지원센터에 신청해 5시간의 예비 교육을 이수하고 심사를 통과하면 아동을 배정받는다. 학대 피해 아동이나 2세 이하 영아, 장애 아동을 돌보는 전문가정위탁의 경우 3년 이상의 위탁 경험이나 사회복지사·교사·의료인 등 자격증을 갖춰야 하며 20시간 이상의 추가 교육도 필수다.
올해 6월부터는 제도의 오랜 약점이 일부 보완된다. 위탁 부모가 ‘임시 후견인’ 자격으로 아이 명의 통장 개설, 휴대전화 개통, 병원 치료·수술 동의, 학적 관련 행정 처리를 친부모 동의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임시 후견 기간은 원칙적으로 최대 1년이며, 시장·군수·구청장은 위탁 부모에게 결정 사항 보고서를 요구할 수 있다. 1년 이상 장기 위탁가정을 대상으로는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선진국들은 가정위탁제도의 핵심을 신뢰와 현실적 지원에 둔다. 미국은 21세 이상이면 신청 가능하며 재정 지원과 의료비, 세금 공제 혜택이 촘촘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사회적 인식이다.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전제 아래, 수급비 영수증을 일일이 검사하는 대신 매주 사회복지사가 아동을 면담하며 상태를 확인한다. 가사 도우미 파견과 데이케어 인력 지원 등 위탁가정의 돌봄 부담을 더는 서비스도 별도로 제공한다.
영국 역시 실무적이고 구체적이다. 여분의 침실 보유 등 엄격한 거주 조건을 요구하며, 약 8개월의 심사를 거친다. 최근에는 위탁 부모의 전문성을 인정해 ‘기술 수당’을 인상하고 수당 체계를 다양화했다.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을 보장해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