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

민영화 얘기 나오는 HMM과 KAI

“기간산업이 무조건 공공 소유여야 할 필요 없다”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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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방산 4대 강국’ 진입하려면 민영화 필요”
⊙ “HMM 본사 부산 이전이 매물의 몸값을 높이는 처사인가”
⊙ 아무 문제없었는데 느닷없이 본사를 부산으로 옮긴다는 HMM… “직원 10% 이탈할 것”(노조)
⊙ “원래 사기업인 회사를 살렸다고 정부가 이 회사를 공기업처럼 여기는 것은 무리”
⊙ KAI의 역대 사장 9명 중 7명은 항공업 경험 全無… 2025년 영업이익 방산 4社 중 꼴찌
⊙ “63%가 ‘정치적 간섭 없이 전문성과 자율성이 확보된 민간 중심 경영이 필요하다’ 응답”(KAI 임직원 내부 설문 조사)
HMM(과거 현대상선)의 본사 이전을 두고 사측과 노조의 갈등이 거세지고 있다. HMM은 오는 5월 8일에 임시주주총회(이하 임시주총)를 열고 본점 소재지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HMM 노조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본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며, 4월 7일에 최원혁 대표이사를 고용노동부에 부당 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다. 노조는 사측이 합의 없이 부산으로 본사 이전을 강행할 때에는 파업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HMM의 노사 갈등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HMM은 국내 최대의 컨테이너 선사(船社)다. 업계에서는 현재 이란 전쟁 등으로 인해 국제적인 공급망 불확실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으로 인해 우리 경제에 미칠 파문을 우려하고 있다.
 
  다른 이유는 HMM의 본사 이전이 다분히 정치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회사의 본사 이전은 이재명(李在明) 대통령의 대선(大選) 공약이었고, 6월에 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장 선거에 나오는 전재수(田載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정부는 세계 7위권의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항, 해운 정책을 총괄하는 해양수산부, HMM의 대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의 본사가 부산에 있는 만큼 HMM의 본사도 이전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우리가 사기업이었다면…”
 
  상장사가 본사를 이전하려면 이사회에서 반드시 정관(定款)을 변경해야 하고, 이 과정은 주총의 승인 사안이다. HMM 노조의 반대에도 본사 이전에 관한 안건은 무난하게 임시 주총을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HMM의 대주주가 산업은행(전체의 35% 보유)과 해진공(35%)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재는 회사에 7조원 이상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준공기업처럼 보이지만, 주인을 찾아 매각해야 하는 사기업에 정치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 과연 올바르냐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본사를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은 간단한 얘기가 아닙니다. 임직원의 터전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이사회의 정관 변경, 주주 설득 등 본사 이전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본사 이전을 위한 비용도 들어가고, 상황에 따라 주가에 영향을 줍니다. HMM의 본사가 서울에 있어서 경영 효율성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느닷없이 본사를 이전하는 것을 노조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조직원 입장에서는 ‘우리가 사기업(HMM은 법적으로는 공기업이 아니지만, 공적 자금이 들어가서 정부 지분이 70%임)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겠느냐’고 반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HMM 노조는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전체 직원의 10~15%는 이탈할 것”이라며 “서울의 인프라와 멀어지는 것이 오히려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HMM, 국내 1위·글로벌 8위
 
2023년 11월 23일, 서울 여의도 HMM 본사 사무실 내부 전광판에 HMM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KDB 산업은행과 한국해양공사는 당시 HMM 인수 본입찰에 하림·동원·LX인터내셔널 등 3개 기업이 적격 인수 후보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HMM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1976년에 만들어진 외항 화물 운송업 회사다. 본래 현대상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이 회사는 국내 해운업계 1위, 글로벌 8위에 랭크돼 있다. 2024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매출은 11조7000억원대, 영업이익 3조5000억원대, 순익 3조7000억원대다. 2026년 4월 현재 시가총액은 19조8000억원대다.
 
  회사는 2016년에 해운업계가 전반적으로 침체하면서 경영난을 겪었고, 워크아웃을 거쳐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2016년 7월에 최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변경됐고, 이후 회사는 채권단의 지원을 받아 2020년 영업이익 1조원가량을 기록하며 기사회생했다. 채권단은 2023년부터 HMM의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채권단은 2023년 12월에 6조4000억원을 제시한 하림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독립 경영 보장을 요구하는 하림과 국가 해운 산업임을 주장하는 채권단의 입장 차이로 인해 협상이 결렬됐다. HMM은 다시 채권단 관리 체제로 돌아갔고, 산업은행은 조만간 재매각에 착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HMM에 눈독을 들이는 회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림과 경쟁하며 인수가 4조원대를 썼던 동원그룹이 여전히 관심을 드러냈고, 여기에 포스코까지 가세했다. 포스코는 철강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을 위해 해운업 진출을 저울질하며 인수를 검토했다.
 
  하지만 한국해운협회가 ‘연관 사업이 없는 곳에서 해운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자 포스코는 인수전에서 한 발 물러났다.
 
  이런 와중에 주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입장이 바뀌었다. 애초 HMM을 서둘러 매각하려는 제스처를 취했던 산업은행은 민영화를 미루기로 했다. 박상진(朴相珍)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월에 “HMM 매각은 부산 이전을 완료한 다음에 추진하겠다. 부산 이전이 가장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박상진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중앙대 법대 82학번 동기다.
 
  해운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치킨 대 참치’
 
현대상선은 2016년 8월 5일 신주 상장을 완료하고 40년 만에 현대그룹을 떠나 주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 자회사로 새로 출발했다.

  “산업은행의 행보에 업계가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때 민영화를 하고자 우선협상대상자까지 선정했는데, 또 그 거래(deal)가 물 건너갔다고 해도 아직 관심을 보이는 회사가 있음에도 갑자기 민영화를 미루고 있습니다.
 
  HMM의 주가가 떨어졌다면 헐값 매각을 의식해 민영화를 미룰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코로나19 이후에 해운업계 시황은 좋았고, 2024년을 피크 시즌이었다고 보지만 여전히 시황이 꺾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림에 매각하려 했을 때보다 주가는 더 올랐습니다.
 
  컨테이너선은 세계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전쟁이 길어지면 리스크가 커지지만, 현재 상황이 매각하지 못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습니다. 산업은행이 HMM을 처음 매물로 내놓았을 때 업계에서는 하림과 동원그룹을 빗대서 ‘치킨 대(對) 참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하림은 포기했지만, 동원그룹은 여전히 관심이 높고, 다른 회사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매각할 곳이 없어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 업계에서는 민영화를 늦출 만한 이유가 딱히 없다고 보는군요.
 
  “채권단이 자금을 회수하려면 무조건 매각을 서둘러야죠. 물론 단순 계산으로 10조짜리 거래가 쉽게 이뤄지기는 어렵지만,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것이 추세인데 원래 사기업인 회사를 살렸다고 정부가 이 회사를 공기업처럼 여기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투입한 비용 이상의 값을 받고 매각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입니다. 해운업은 사이클을 타는 사업이라서 언제가 적기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5년 단위로 비교적 예측이 가능했는데 2008년 이후에는 굉장히 불규칙해졌습니다. 사이클을 크게 탄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관 산업보다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업체에 더 매력적인 매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HMM 최우선 과제는 인수 기업 찾는 것”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HMM은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이기 때문에 공적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정상 절차”라고 말했다.
 
  “HMM의 최우선 과제는 인수 기업을 찾는 것입니다. 산업은행과 해진공의 지분을 부분적으로 매각하든, 한꺼번에 매각하든 방법은 다양합니다. 일부에서 ‘해운업은 국가 전략사업이자 기간산업’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민간 회사였고, 이후에 공적 자금이 들어갔으니 그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얘기는 너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것이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시끄러운데, 매각에 영향을 줄까요.
 
  “HMM에 어떤 식으로든 노이즈가 생기는 것은 매각에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사려는 사람 입장에서 그 회사가 시끄러워지면 부담스럽기 마련입니다.
 
  HMM은 자연스럽게 매물로 나와야 하고, 자본의 논리에 의해 채권단에서 팔아야 합니다.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이 HMM의 몸값을 높이고 매각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HMM의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이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고 매물의 몸값을 높이는 처사입니까? 지금처럼 대통령이 개입하고, 정치적인 잣대에 의해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이유 대면 평생 못 판다”
 
2023년 6월 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3 부산국제조선해양대제전’에서 관람객들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스에서 폴란드 수출형 FA-50 전투기 등의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9일까지 열린 이번 행사에는 12개국 140여 개의 국내외 방산업체가 참여했다. 사진=조선DB

  ― 포스코가 관심이 있다고 하니 연관 산업이 아니라며 반대하고, 지금은 해운업이 피크를 찍고 내려오는데 매각을 하느냐고 하는데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대면 평생 못 팝니다. 경영 전략 관점에서 비(非)관련 다각화가 있는데, 만일 포스코가 HMM에 관심이 있다면 그런 차원일 겁니다. 업계의 주장처럼 비슷한 기업군에만 매각해야 한다면 외국에 팔 수밖에 없고, 그러면 국부(國富) 유출이라고 비난할 겁니다. 결국 HMM의 새 주인을 찾는 조건은 국내 기업 중에서 자금력이 탄탄한, HMM에 대해서 재무적으로 안정성을 줄 수 있는 회사여야 합니다.
 
  매물을 파는 것에 적기가 있느냐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합니다. HMM에 정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만일 지금 매각하지 않아서 추가적인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고 쳐보죠. 채권단 입장에서 이래저래 미루다가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을 딱 맞출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기업의 민영화에 국민 여론을 묻겠다’고 하니 채권단이 매각 의사가 있기는 하냐고 합니다.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입니다. 국민은 HMM의 매각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일반 국민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주주들조차 전부 이해관계가 다른데, 그리고 어떤 국민에게 물어서 여론을 취합하겠다는 겁니까. 정부에서 공기업 혹은 채권단이 지원한 회사의 민영화를 퍼블릭 어젠다로 만들고 싶은 모양인데 무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HMM과 함께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의 민영화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KAI의 지난해 경영 실적이 좋지 않은 것을 두고 ‘공기업으로서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었던 데다, 최근 한화그룹이 KAI의 지분을 5% 가까이 사들였기 때문이다. KAI의 민영화는 2000년 이후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KAI는 1999년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의 항공 부문을 통합해 출범한 방위 산업체다. 국산 전투기인 KF-21 보라매, 공격기인 FA-50, KA-1, 소형 무장 헬기를 비롯해 우주발사체, 위성 등을 개발·생산한다. 2026년 3월 기준으로 한국수출입은행이 전체의 26.41%, 국민연금공단 8.3%,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6.92%, 한화 4.99%를 갖고 있다.
 
  KAI 민영화 논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번 제기됐다. 2003년에는 대한항공이 대우가 갖고 있던 KAI의 지분(28.1%)을 전량 매수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거래가 무산됐다.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될 때 산업은행이 KAI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고, 산업은행은 2016년에 민영화를 다시 추진했다. 당시 KAI의 주주는 산업은행(26.8%), 현대자동차(10%), 국민연금(7.6%), 한화테크윈(6%)이었다. 업계에서는 한화나 두산, 현대중공업, 대한항공 등이 KAI의 인수 후보로 오르내렸지만 결국 KAI를 사겠다는 곳이 없어 M&A가 성사되지 못했다.
 
 
  사장은 ‘퇴직한 관료들의 몫’
 
  이 와중에 KAI의 사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체됐다. KAI 대표이사는 1999년 출범한 이후 9명이었는데, 이 중에서 내부 출신인 하성용(河成龍) 사장(제5대)과 공군 예비역 중장인 강구영(姜求永) 사장(제8대)을 제외하고는 항공 분야와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대 사장을 비롯해 제3, 4, 6, 7대 사장은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 KAI의 대표이사 자리는 ‘퇴직한 관료들의 몫’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의 지적이다.
 
  “KAI는 관료주의적 의사 결정, 정치권의 개입, 낮은 주인의식 등의 문제로 경영 효율성과 혁신 역량이 저해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 경영자가 교체되는 것은 물론, 임원진까지 정치적 고려에 따라 임명되는 관행이 조직의 안정성을 해쳤습니다. 최고 경영자가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죠. 과거 산업은행 통제 아래 있었던 대우조선해양이 겪었던 구조적 병폐와 아주 유사한 일이 KAI에서 벌어졌습니다.”
 
 
  “KAI의 사장은 3년 임기 보장받는 자리일 뿐”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의 얘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부분 비전문가가 자리를 꿰찼습니다. 지난해에는 CEO가 8개월 동안 공석이었습니다. 배에 선장이 없는데 그 배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전임 CEO 중에서 주인의식이 있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들에게 KAI 대표이사라는 자리는 3년의 임기를 보장받는 자리일 뿐입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고사하고 가지를 자르고, 아예 뿌리째 뽑으려고 합니다. 미래 성장동력, 중장기 비전을 수립하기는커녕 현재의 실적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습니다. 정부도 주인이 아니고, 대표이사나 노조도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 KAI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입니다. 민영화를 해 주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KAI, 지난해 수주 목표 75%만 달성
 
  KAI에는 지난해 악재가 많았다. 신(新)사업 수주에서 연거푸 실패했다. 지난해 초에 KAI는 2025년 수주 목표를 8조4000억원대로 잡았지만, 실제 수주액은 6조4000억원대에 머물러 목표치의 75%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군수(軍需)사업의 대부분은 내수(內需)로 구성되며, 수요자인 한국 정부(방위사업청)와의 계약을 통해 제품의 연구개발, 생산, 성능 개량, 후속 지원 등을 한다. 방위사업청은 2025년 9월에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을 추진했는데, 사업 수행 업체로 KAI를 제치고 대한항공-L3Harris(미국 방산업체)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또 같은 해 10월에 방위사업청은 1조5000억원대의 전자전기(블록 I) 체계 개발 계약에서 KAI가 아닌 LIG넥스원-대한항공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KAI가 연달아 수주전에서 실패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강구영 전 사장이 퇴임하고 임시 대표 체제로 운영된 탓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사기업인 대한항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KAI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방산업계 빅 4(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LIG넥스원) 중에서 꼴찌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조원대, 현대로템 1조원대, LIG 3000억원대지만, KAI의 영업이익은 2700억원가량에 불과했다.
 
  ‘CEO스코어데일리’와 ‘CEO스코어’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KAI의 2025년 3분기 누적 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 8847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마이너스 6826억원)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이 일정 기간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 등을 차감하고 남는 현금이다. ‘실제 남는 현금’인데 이것으로 배당·자사주 매입 등을 할 수 있고, 기업의 실제 자금 사정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모든 수주전에서 다 따낼 수 없는 게 당연한데, KAI에는 유독 혹독한 비판이 뒤따랐다. 2018년 9월에는 미국에서 주문한 18조원짜리 미 공군 훈련기 교체 사업에서 수주에 실패했다. 당시에는 록히드마틴이라는 든든한 컨소시엄이 있었지만, 스웨덴에 패했다.
 
  2019년 1월에는 필리핀에 기동헬기 ‘수리온’을 팔려 했지만 실패했다. 2024년에는 KAI가 폴란드에 수출한 ‘FA-50’ 전투기 12대 중 일부가 비행 불능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윤석열 대통령실에서 격분한 적도 있다. 업계에서는 김종출(金鍾出) 신임 사장이 “사업 수주에 앞장서서 그동안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며 ‘2026년 수주 10조원대’의 목표를 내걸었지만, 의심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한국형 록히드마틴 필요한 시점”
 
이재명 대통령이 2022년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 시절 인천 계양역 광장에서 열린 ‘공항·철도·전기·수도 민영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KAI 문제의 해법을 ‘민영화’에서 찾고 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방산 생태계의 대형화, 통합화를 주장해 온 학자다. 그는 “10년 동안 연구를 하면서 국내 방산기업의 매각 관련 이슈에 다양하게 접근해 왔다”고 말했다.
 
  “민영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다른 방산업체들이 선전하는 와중에 KAI만 뒷걸음질 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방위 산업이 질적(質的), 양적(量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내 방산기업의 체급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우리나라가 군사력 순위 5위, 방산 수출을 이어가 ‘방산 4대 강국’에 진입하겠다고 하는데 아직 요원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높이 올랐던 순위가 세계 36위 정도였습니다. ‘한국형 록히드마틴’이 필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 우리는 스스로 잘한다고 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모양이군요.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방산기업이 어디인가?’라고 물으면 쉽사리 답하기 어렵습니다. 한화, 현대로템, LIG넥스원, KAI 등 다양한 이름이 나오지요. 특정 업체를 편파 지지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볼 때 현재로서 국내 방산기업의 넘버원은 한화입니다. 엔비디아가 수많은 기업을 먹여 살리고 나아가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방산업체도 글로벌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를 실현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KAI의 민영화는 필수고 능력 있는 회사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합니다.”
 

  ― 일부에서는 KAI와 같은 방산기업을 민영화할 경우, 기밀 유출이나 특정 회사의 독과점을 우려하는데요.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여태까지 한화,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 방위 산업을 하는 민간 회사에서 기술 유출이 된 적이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방위 산업법, 전략물자관리제도에 근거해 방산업체로 지정된 회사는 산업통상부 장관에 의해 엄격한 보안검사를 매년 받습니다. 기술 유출에 대해서도 현행 법령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방위 산업 법령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괜히 운운하는 얘기일 뿐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방위 산업은 미국의 국방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서 발전했습니다. 미국의 방위 산업은 록히드마틴, 보잉 등 민간 업체가 이끕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80~90여 개 방산업체가 한 번 지정되면 계속 방산업체의 지위를 갖고, 미국은 매년 지정한다는 차이뿐입니다.
 
  우리나라의 방산을 키우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사례를 많이 참고하는데 이스라엘은 인구는 10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정부 지정 방산업체가 800여 개입니다. 이스라엘은 애당초 무기를 생산하는 시점부터 수출을 염두에 둡니다. 이스라엘에서 방산 산업은 생산한 무기의 70%는 전량 수출하는 수출 주도형 산업입니다.”
 
 
  1990년대 세계 방산업체 대형 합병화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
최기일 상지대 교수에 따르면 1993년에 미국을 중심으로 방산업체가 인수·합병에 들어갔다. 당시 미국의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국방장관은 미국의 주요 방산업체 CEO들을 모아놓고 ‘라스트 서퍼(Last Supper)’를 주문했다. 페리 장관의 요지는 ‘앞으로 이렇게 많은 방산업체는 필요 없다. 살아남으려면 합병하라’는 것이었다. 탈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국방 예산은 급감할 수밖에 없었고, 기존의 업체는 너무 많았다. 이대로 가면 다 같이 망한다는 시각이 팽배했던 때였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방산업체인 록히드(Lockheed Corporation)와 마틴 마리에타(Martin Marietta)가 합병해 ‘록히드마틴’이 탄생했고, 보잉(Boeing)사는 맥도넬 더글라스(McDonnell Douglas)를 인수해 군용기와 민항기 부문 모두를 강화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의 여러 국가 역시 방산업체에 대한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했고, 이 같은 추세는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학자들 사이에서 ‘지금이 신 냉전이다’와 ‘신 냉전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갈려 있고,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자국(自國)의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최 교수는 “국가별로 ‘군 현대화 산업’이라는 미명하에 새로운 군비 경쟁에 돌입 중이다”라고 말했다.
 
 
  “지나친 개입은 경영 활동 위축”
 
미 항공우주국(NASA)과 록히드마틴이 제작 중인 초음속 여객기 X-59 퀘스트(QueSST) 조감도. 지상 17㎞ 높이에서 시속 1500㎞로 비행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제작사 측은 올해 말 시험 비행을 시작해 늦어도 10년 안에 상용화할 방침이다. 사진=조선DB, 록히드마틴 홈페이지

  ― 민영화를 하기는 하겠지만 적기가 아닐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부가 123대 국정 과제를 내세우면서, 방산은 K-방위 산업 역량 강화를 통해 4대 강국으로의 도약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2022년도 우리나라의 무기 수출 상승률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였습니다. 4개 업체의 수주 잔고만 10조원에 달합니다. 2020년까지 박스권에 갇혀 있던 우리의 방산 수출은 현격한 수준으로 올라 이제 방산 강국을 눈앞에 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K2 전차를 1년에 100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국가죠.
 
  하지만 오늘날의 핵심 키워드는 ‘무한 경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이고, 이를 염두에 둔다면 단순히 우리가 방산 수출 4대 강국에 올라섰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말 세계 톱 4의 방산 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기본 전제는 민영화입니다. 정부 주도하의 민영화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시장의 자율 경쟁 체제에 입각해서 시장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방산의 민영화를 보장해 줘야 합니다.
 
  미국, 이스라엘 등 서유럽 국가들은 현재까지도 정부가 일정 부분에서 방산업을 관리하지만 지나치게 개입하면 오히려 경영 활동이 위축됩니다. 정부의 개입, 간섭, 시장 자율 기능 체제가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KAI, 공기업이라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져”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KAI의 시가총액이 이렇게 올랐는데 사갈 곳은 있나요?”라며 말을 시작했다.
 
  산업은행이 민영화를 시도했던 2016년 KAI의 한 주 가격은 7만~9만원대였는데, 2026년 4월 현재 KAI의 한 주 가격은 19만원대다. 문 교수의 질문을 해석하자면 현재 KAI의 주가는 충분히 올랐고, 시장의 원리에 따라 매각이 이뤄진다면 어느 기업이 가져가든 특혜 시비에 시달릴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문 교수의 얘기다.
 
  “KAI의 시가총액이 10조가 넘어서 어느 기업이 나설는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로 있는 KAI는 주요 전략과 투자 결정 과정에서 과도한 국가 개입을 받고 있습니다. 중요한 시기에 과감하게 투자를 하지 못하고, 회사가 어려울 때 인원을 감축해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고, 낙하산 인사가 오면 눈치를 봅니다. 이로 인해 글로벌 항공우주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KAI의 KF-21, FA-50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제품인데 안타깝죠. 또 KAI가 군용 항공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민수항공기, 위성, 드론 등 민간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국제 경쟁력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봅니다.”
 
 
  KAI 임직원 설문조사도 민영화 선호
 
  ― KAI에 대해 박한 평가가 내려지는 것이 공기업 성격을 띠고 있어서라고 보십니까.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고 어떻게 됐습니까? 저가 수주 관행이 사라지고,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 등 글로벌 확장 전략이 전개되면서 시가총액이 인수 당시 7조5000억원에서 27조50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민영화가 단순히 소유권 이전을 넘어서 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물론 핵심 방산기업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고 국가 통제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방위산업법, 정부의 일정 지분 유지, 이사회 구성 규정 등 관련 법을 통해 충분히 보완할 수 있고, 이미 다수의 민간 기업 운영 사례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5년 상반기에 실시한 KAI의 임직원 내부 설문 조사에서도 63%가 ‘정치적 간섭 없이 전문성과 자율성이 확보된 민간 중심 경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 민영화를 통해 얻을 점이 더욱 많다고 보시는군요.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경영 자율성이 확보되고, 수익성과 기술 혁신을 중심으로 한 사업 다각화가 가능해집니다. 최대주주인 수출입은행은 지분 매각을 통해 자기 자본을 확충할 수 있고, 그 자금을 수출 금융으로 전환해 방산 수출 확대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낙하산 인사를 차단해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가 가능할 겁니다. 민간 자본이 투입되어 고용 창출을 한다면 지역 경제와 국가 항공우주 산업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KAI의 민영화는 한국의 항공우주 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겁니다. 전략 산업이라서, 기간산업이라서 무조건 공공 소유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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