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세계 읽기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본 이란 전쟁

케말주의자·‘보수 우파’ 청년들도 이구동성으로 미·이스라엘 비난

  • 글 : 임명묵 작가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치러지는 전쟁”(하칸 피단 외무장관)
⊙ “이란의 승리를 위해 기도… 나토는 그 의미를 완전 상실”(이스탄불의 물담배 가게 주인)
⊙ 이란 난민 유입 우려…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역할 증대에 대한 기대도
⊙ 대부분 ‘엡스타인 스캔들’ 언급하며 ‘이스라엘의 대미 로비’와 연결시켜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 저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K를 생각한다》
지난 3월 1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현수막에는 튀르키예어로 “킬러 이스라엘”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A/엠라 구렐
3월 26일 새벽, 필자는 인천을 출발한 항공편에 몸을 싣고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공항으로 향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상공을 지나 카스피해를 넘어 캅카스(코카서스)에 진입할 무렵,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2026년 이란 전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공편이 잇따라 축소되면서, 캅카스 상공은 세계 여객기가 집중되는 좁은 병목으로 변해 있었다. 이 비행기 아래 멀지 않은 거리에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격렬한 공습을 주고받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무겁게 했다. 심지어 옆자리에 앉은 필리핀 승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전쟁의 영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몬테네그로로 향하는 선원이라고 했는데, 필리핀에서 두바이를 경유하는 기존 노선이 전쟁으로 중단되면서, 마닐라에서 인천을 거쳐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장도(長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으로 술렁이는 분위기
 
  필자는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스트랫컴(Stratcom) 행사에 초청받아 이곳을 찾았다. 스트랫컴은 튀르키예 정부가 주최하는 국제 전략 컨퍼런스로, 2021년부터 매년 열려 왔다. 튀르키예 정부 관료와 학계, 언론계 인사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국제 전문가들이 모이는 이 행사는 튀르키예가 자국(自國)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의제를 반영한 메시지를 발신하고 동시에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장(場)이다. 필자는 이번 행사에서 ‘전쟁의 시대에 소프트파워가 갖는 의미’를 주제로 짧은 발언을 요청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행사 자체는 이란 전쟁과 무관하게 계획된 것이었지만, 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이란 전쟁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택시 기사에게 짧은 튀르키예어로 말을 걸었는데, 딱히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이란 전쟁으로 향했다. 이스탄불 시내의 여러 식당을 방문했을 때도 TV에서는 튀르키예가 자랑하는 자국 드라마보다도 이란 전쟁 현황을 소개하는 뉴스 화면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스트랫컴 행사에서 각계각층 전문가들과 흥미로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래도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튀르키예 정부 고위직들의 발언이었다. 이틀 동안 진행된 행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로 시작해, 행사에 직접 참석한 부통령 제브데트 이을마즈, 외무장관 하칸 피단, 튀르키예 국가정보국(MIT) 국장 이브라힘 칼른의 발언이 이정표처럼 배치되었다. 행사에 직접 참석한 3명의 정부 주요 인사는 구체적인 방점을 다소 다른 데 찍기는 했어도 튀르키예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전달한다는 점은 대동소이했다.
 
 
  정부 인사들, 미국에 대해선 완곡한 비난
 
스트랫컴 행사에서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이스라엘 확장주의”를 비난했다. 사진=스트랫컴.

  우선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외교적 입장은 주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것이었다. 하칸 피단 외무장관은 이번 전쟁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치러지는 전쟁”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확장주의”에 분명히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브라힘 칼른 정보국장 역시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을 빌려 “이스라엘이 시작한 전쟁으로 80억 인류가 대가(代價)를 치르고 있다”고 말하며, 무엇보다 “튀르크, 아랍, 페르시아, 쿠르드 등 중동의 형제 민족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보복과 원한을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미국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비난보다는 완곡한 비판이 더 두드러졌다. 이러한 온도 차이는 튀르키예가 이스라엘과는 상호 대치하는 국가지만 미국과는 나토(NATO)를 통한 동맹 체제로 묶여 있음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을마즈, 피단, 칼른 모두 이란을 향한 공격이 “국제법적으로 불법”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향한 강경한 어조를 제외하면, 명시적 비난보다는 현재 국제질서가 겪고 있는 구조적인 전환을 묘사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을마즈 부통령이 말한 대로, “규칙 기반 질서”가 와해되는 가운데 “힘의 정치”가 더 노골적으로 부상(浮上)하는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튀르키예의 주된 관심사라는 것이다.
 
  이는 이란을 향한 태도와도 연결된다. 칼른 정보국장은 “이란을 향한 공격은 불법”이지만, 마찬가지로 “이란의 걸프 국가들을 향한 공격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걸프 국가들에 유치된 미국 군사 기지의 존재를 감안하면 걸프 국가들에 소재한 목표물 역시 “정당한 타격 대상”이라는 이란의 주장과 상충(相衝)하는 것이다.
 
 
  냉전 종식 후 독자 노선 강화
 
  튀르키예 정부의 이러한 논조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사실 스트랫컴 행사에 참석한 정부 대표들의 발언은 현재 튀르키예 에르도안 정부에 대한 전형적인 인식과는 상충된다. 대중적인 인식에서 에르도안 정부의 정책은 ‘친서방적이고 세속적인 공화인민당의 케말주의’에서 벗어나 ‘이슬람을 강조하고 서방에 맞서는 독자 세력화’로 묘사된다.
 
  분명히 그러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특히 2016년 실패한 쿠데타 시도 이후, 튀르키예의 페툴라 귈렌 송환 요청을 미국이 거부하며 양국 관계에 긴장이 발생했다. 2018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튀르키예에 구금된 앤드류 브런슨 목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 양국 관계가 상당히 악화되었다. 브런슨 목사는 결국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갔고 양국 관계는 파국을 면했지만, 상처가 다 아물지는 못했다. 한편 에르도안 정부는 2012년에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대화 파트너로 참여하고, 2024년에는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비서방 신흥 경제국 모임인 브릭스(BRICS)에 정회원 가입 신청을 하며 독자 노선을 꾸준히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독자 노선은 북쪽에서 튀르키예를 위협한 소련 공산주의가 1990년대에 사라지며 떠올랐다.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역사적 연관이 있는 발칸, 캅카스, 중앙아시아 등 구(舊) 공산권 영역으로 활발히 진출했으며, 중동과 아프리카에도 다방면에 걸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튀르키예 내부에서는 미국·서유럽 등 여타 나토 회원국과 자국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예컨대 2003년에 미국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침공할 때, 튀르키예는 이라크 국가 붕괴가 쿠르드 분리주의를 중동에서 촉발할 것에 우려를 표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內戰) 때 미국이 시리아의 쿠르드 세력 인민방위대(YPG)와 협력 관계를 맺을 때도 유사한 우려가 등장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시리아의 쿠르드 세력과의 제휴가 자신들의 지정학적 이익을 위한 동맹일 수 있지만, 튀르키예 입장에서 이는 자국을 괴롭혀 온 공산주의 반군 쿠르드노동자당(PKK) 연계 세력을 후원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PKK는 튀르키예 외에도 유럽연합, 나토, 미국, 일본 정부가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2016년에 협의되어 2020년에 완공된 튀르키예와 러시아 사이의 투르크 스트림, 중앙아시아 튀르크권(圈) 국가와 연계하여 중국과 튀르키예의 물류(物流) 연결을 노리는 중앙회랑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튀르키예는 유라시아 대륙 국가와 자국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리적 입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자국 전략의 일환이라고 강조한다.
 
 
  反서방이 아니라 非서방 노선
 
스트랫컴 행사에서 연설하는 제브데트 이을마즈 튀르키예 부통령. 사진=스트랫컴

  그렇다고 튀르키예가 서방 진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반(反)서방 노선을 천명한 것은 아니다. 튀르키예의 노선을 정의하자면, 서방이든 어느 나라든 국익에 따라 선택적 협력을 하겠다는 비(非)서방 노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튀르키예가 반서방 노선을 걷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에르도안 정부로 대표되는 정의개발당 지지층이 더 종교적이고 서방에 비판적인 면이 있지만, 이를 중국·러시아·이란과 같은 이념적 반서방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중국은 대만 문제와 초강대국의 야심, 러시아는 영국·미국과의 역사적 악연과 소련 해체의 트라우마,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념 등을 이유로 서방과의 대결에 적극적인 국가들이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케말주의 세속화의 오랜 영향이 여전히 전(全) 국민적으로 남아 있으며, 이슬람 세계에서는 구미권과 문화적 친연성(親緣性)이 가장 강한 국가다. 튀르키예에도 러시아·이란 등의 영향을 받아 ‘국가 주권’ 논리를 넘어서는 이념적 반서방주의를 외치는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소수에 그친다. 대다수의 튀르키예인들은 머나먼 중국 베이징보다는 미국 뉴욕을, 술도 살 수 없는 테헤란보다는 친척들이 거주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더 가깝게 생각한다.
 
  안보·경제 등 현실적인 이유에서도 튀르키예는 서방을 완전히 등질 수 없다. 매년 엄청난 수의 유럽 관광객들이 이스탄불과 이즈미르를 찾는다. 튀르키예 내륙의 의류 생산 업체들에게 유럽 시장은 가장 핵심적인 수출 시장이다. 구미권 대학과 연구소들 역시 튀르키예의 인적(人的) 자본이 훈련받고 서로 지식과 시야를 공유하는 중요한 창구다.
 
  게다가 전략적 이해관계가 간혹 상충할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토 회원국으로서 튀르키예는 다양한 문제에서 서방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와 결부된 키프로스 분단 문제는 나토의 틀을 통해 억제되고 있으며, 중동의 테러리즘 이슈,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 등 인접 지역의 갈등 상황에도 튀르키예는 기본적으로 서방 진영과 보조를 맞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이스탄불 평화 협상 중재 노력에서 드러나듯, ‘반서방 국가와 대화가 되는 나토 회원국’이라는 입지를 활용해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러시아와 이란을 여행할 당시 그곳 사람들로부터 “튀르키예는 우리를 이용하는 친서방 국가다”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에르도안 정부는 그 진의가 어떻든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규탄할 수 있어도 미국과의 문제는 훨씬 신중하게 풀어 갈 수밖에 없다.
 
 
  “내친김에 나토 해산하자”
 
튀르키예 좌익 단체의 포스터. “나토는 나가라! 점령은 끝났다!”라고 쓰여 있다. 사진=임명묵

  이틀에 걸친 행사가 끝난 뒤에 필자는 이스탄불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길거리 민심도 탐문했다. 사실 온라인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정부의 공식 입장보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스탄불에만 일주일 남짓 체류해서 전체 튀르키예의 민심을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모이는 제일의 도시이니만큼 각양각색의 다양한 튀르키예인을 만나며 이야기를 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반 튀르키예인들의 언어는 외교적 위치를 고려해 신중히 선택한 정부 관료들의 언어보다 훨씬 직설적이었다.
 
  필자는 이번 이스탄불행에서 탁심 광장 인근의 한 작은 물담배 가게를 단골처럼 방문했다. 방문할 때마다 TV에서는 이란 전쟁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쯤 가게 주인인 중년의 남성에게 이란 전쟁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동부 시골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 뒤 이스탄불로 이주해 고된 노동 끝에 작은 가게를 마련했다고 했다. 정치적으로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의개발당의 강력한 지지자라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그는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나토는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강조했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도 나토가 싫다고 하니까, 내친김에 그냥 나토를 해산하자”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니 신문 기사로만 읽던 ‘대서양 동맹 체제의 균열’이라는 말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은 더욱 강렬했다. 그의 어조에서 정부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더 강경한 정책을 취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졌다.
 
 
  “튀르크인과 쿠르드인은 형제자매”
 
  이스탄불 외곽의 한 카페에서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인물과 대화할 기회도 있었다. 이번 인터뷰이는 20대 초반으로 히잡을 쓰고 있는 무슬림 여성이었는데, 에르도안 정부에 대단히 비판적인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그도 “이란의 승리를 바란다”면서 “중동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존재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불평했다.
 
  대화 중간에 그가 부모를 따라 10대 때 이스탄불 외곽으로 이주해 온 동남부 출신의 쿠르드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마침 이란 전쟁에서도 쿠르드 분리주의가 이슈인 만큼, 쿠르드 입장에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그의 대답은 중동의 오랜 제국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튀르크인과 쿠르드인은 하나의 조국 아래에서 형제자매로 사는 두 민족이다. 또 우리 쿠르드인은 이란의 신년 명절인 노루즈를 쇠는 등 이란인과도 가깝게 지내 왔다. 튀르크·쿠르드·이란을 서로 갈라 놓으려는 것은 이스라엘의 술책”이라고 말했다. 매일같이 한류(韓流) 드라마를 챙겨 본다고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강한 어조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러한 입장은 필자가 만난 많은 쿠르드인들이 공유하는 것이기도 했다. 서두에 언급한 택시 기사 역시 자신을 쿠르드라고 밝혔는데, 필자가 이란 전쟁에서 쿠르드의 여론은 어떤지를 물으니 “이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세속적이고 친서방적이라고 평가받는 케말주의자들의 의견도 궁금해졌다. 이스탄불은 케말주의 야당 공화인민당 소속인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2019년과 2024년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최근 공화인민당 지지세가 두드러지는 지역이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2025년에 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이스탄불 시내의 공화인민당 지지층 거주 지역에는 “이마모을루를 석방하라”는 낙서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타튀르크 사진이 걸려 있는, 필자에게 자신을 당당히 ‘아타튀르크주의자’라고 선언한 또 다른 카페 사장과 손님들에게도 이란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혹시 이란에 비판적이고 미국에 우호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필자의 예상은 바로 무너졌다. 이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 전쟁은 이미 이란의 승리다”라고 말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했다. 국내 정치에 대한 의견과 무관하게, 튀르키예는 자주(自主) 국가로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전쟁 이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는 평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국내적인 세속주의 근대화 정책과 별개로, 아타튀르크 자신이 제1차 세계대전과 튀르키예 독립전쟁에서 영국과 맞서 싸운 전쟁 영웅임을 생각하면 케말주의자들이 현재 국면에서 이란에 더 가까운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이란 神政 체제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스탄불 파티흐 지구에 위치한 이란 영사관 앞을 지나는 시민들. 사진=임명묵

  스트랫컴 행사를 견학할 목적으로 이스탄불을 방문한 앙카라대학교의 젊은 학생들과의 대화는 이번 이스탄불행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 중 하나였다. 앳된 얼굴을 한 5명의 학생들이 휴식 시간에 차를 마시고 있는 필자에게 다가와서 대화를 걸었다. 이들과 나이 차이가 10살이 넘게 났지만 그래도 〈체인소 맨〉 〈나루토〉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부터 ‘리그오브레전드’와 같은 게임 얘기까지 가까스로 공통 소재를 찾을 수 있었다. 필자가 한국인이라 밝히니 “리그오브레전드의 전설 페이커 이상혁의 나라에서 왔냐”며 감탄하고, 대화 중간에 갑자기 어느 축구팀이 제일 ‘남자다운 팀’인지 자기들끼리 기나긴 논쟁을 벌일 때는 그야말로 영락없는 ‘이대남’이었다.
 
  이 학생들은 자신들 5명이 모두 “보수 우파”라고 아주 당당하게 밝히며 “좌파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혹시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지하느냐 물어보니 5명 중 2명은 그렇다고 답했고, 나머지 3명은 더 민족주의적인 다른 우파 정당을 지지하거나 혹은 무당파(無黨派)라고 답했다.
 
  국내 정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이란 전쟁에 관해서는 한결같이 미국과 이스라엘 비판이었다. 이들은 모두 “이란의 신정(神政) 체제를 좋아하지 않고, 무언가 이상한 체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것은 이란의 국내 문제에 불과하고, 핵 문제는 협상이 이루어지는 중이었는데 도대체 왜 전쟁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화를 하면서 이 민족주의적인 젊은 우익 청년들을 분노케 한 핵심 계기 중 하나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올해 2월 이스라엘의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가 “튀르키예가 새로운 이란이다”라며 튀르키예에 적개심을 표출한 것을 이구동성으로 언급하며 이스라엘에 격렬한 반감을 재차 드러냈다.
 
 
  난민 유입에 대한 우려
 
  즉각적인 불만 이외에도, 튀르키예의 우파 청년들의 ‘전략적 사고’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청년은 필자에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란 전쟁이 또 다른 난민(難民) 위기를 촉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튀르키예가 겪은 시리아 난민 위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중앙아시아나 여타 지역에서 오는 이주민은 주로 농촌과 소도시에서 계절성 노동에 종사하며 우리 경제에 기여하고 우리 사회와 화합하지만, 시리아 난민들은 대도시에만 거주하며 튀르키예어도 배우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란에서 난민이 유입되면 이미 한계 상황인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이 더욱 악화될 것이 뻔하기에, 자신들은 모든 종류의 지역 불안정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다른 학생은 이란의 아제르바이잔 튀르크인들과 정서적인 동질감을 강조했다. 그는 페르시아어나 문화에는 큰 관심은 없지만, ‘튀르크 동포’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며 전쟁을 비판했다. 영어를 가장 유창하게 구사하는 다른 학생은 전쟁을 계기로 중동에서 튀르키예의 정치적 역할이 더 커질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이 학생은 “우리는 다른 국가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으며, 미국과 이란 양측에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국가이기에, 어쩌면 중재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걸프 지역의 안보 체제에서 튀르키예가 맡을 역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추가적인 가능성도 덧붙였다.
 
 
  숨은 긴장
 
스트랫컴 행사. 맨 오른쪽 끝이 필자. 사진=스트랫컴

  이번 튀르키예행은 짧았고 장소도 이스탄불에만 국한되었지만, 그래도 필자는 이란 전쟁이 만들어 낸 튀르키예 사회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정치적 성향과 세대, 성별, 정체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란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이는 직설적인 감정의 표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중동과 캅카스, 중앙아시아까지 아우르는 보다 넓은 지정학적 시야 속에서 형성된 인식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의 풀뿌리 정서와 달리, 튀르키예 정부의 선택은 훨씬 신중할 수밖에 없다. 튀르키예는 여전히 서방, 특히 미국과의 안보·경제적 관계에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단절하는 선택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고, 사실 그 정도 리스크를 감당할 이념적인 이유도 없다. 게다가 튀르키예의 모든 문제가 이란 전쟁에 연결되는 것도 아니며, 정부는 국내 정치·경제·사회의 각양각색 문제를 이번 전쟁이 만든 안보·공급망 위기와 동시에 풀어내야 한다.
 
  결국 에르도안 정부도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정서를 완전히 거스르지도, 그대로 따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사실 정부 인사들의 절제된 표현과 때로는 거칠게 표현되는 길거리 민심 사이의 숨은 긴장은 튀르키예뿐 아니라 여타 중동 국가들이 모두 공유하는 공기이기도 하다.
 
 
  ‘서사 경쟁’
 
  한편 스트랫컴 행사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또 하나의 축(軸)은 ‘서사(敍事) 경쟁’이었다. 칼른 정보국장이 지적했듯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이른바 ‘탈진실(脫眞實)’의 환경에서 지식, 정보, 서사가 국가 전략의 도구로 더 노골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각국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긴급한 필요를 느끼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도,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도 미사일만큼이나 격렬하게 오가는 것이 바로 서사를 둘러싼 투쟁이다.
 
  여기서 필자가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엡스타인 스캔들’을 언급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엡스타인 스캔들’이란 미국 금융인이자 미성년자 성(性)착취범인 제프리 엡스타인이 권력층과의 연루 의혹 속에서 2019년 구치소에서 사망한 사건과, 미국 법무부에 의해 공개된 이른바 ‘엡스타인 파일’(관련 인물 명단, 연락망 등)을 일컫는다. 이들은 엡스타인 스캔들을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정서는 물론이고 미국에 대한 ‘이스라엘 로비’의 영향력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었다. 엡스타인 스캔들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냐고 물어보니, 대체로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 유통되는 숏폼 비디오를 통해 접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소재는 제각각 다를지라도, 한국을 포함한 오늘날의 모든 국가가 공유하는 미디어 환경이 이와 같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토에 속한 비서방 국가’
 
  ‘중동 전쟁’과 ‘서사 경쟁’의 시대에 튀르키예가 직면한 과제는 분명하다. 자국의 대(大)전략에 부합하는 서사를 구성하고, 이를 사회에 설득하며, 동시에 국제적 서사 경쟁 속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튀르키예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았는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동이라는 세계 갈등의 핵심 공간에 위치하고, ‘나토에 속한 비서방 국가’라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튀르키예가 앞으로 펼쳐질 전략 경쟁의 시대, 노골적인 강대국 경쟁의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를 가장 먼저 보여 주는 최전선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최전선은 당연히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에도 빠른 속도로 근접하고 있다. SNS와 전통 언론이 결합된 서사 경쟁,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지정학적 시야, 주권 국가로서 전략적 자율성 모색, 협력과 경쟁을 넘나드는 유연한 외교, 그리고 무엇보다 국익과 국가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와 같은 미덕은 튀르키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생존의 기술’인 셈이다. 그러니 이제는 눈앞에 펼쳐지는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를 되물을 때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