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시각

처음 만난 李在明과의 세 시간 대화

  • 글 : 조갑제 조갑제TV/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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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 밥값만 내고 나갔다. 뭔가 경쾌한 뒷맛이었다!
6월 4일 이후엔 이 기사의 ‘이재명 후보’를 ‘이재명 대통령’으로 읽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선 즉시 취임하게 되므로 독자들은 이 기사를 읽고 사람이 달라지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5월 1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선 출정식을 가졌다. 사진=조선DB
한번도 대면(對面)한 적이 없는 이재명(李在明) 후보와 저녁 약속을 잡아 놓은 뒤 그가 쓴 책 몇 권을 읽다가 접점(接點)을 하나 찾았다.
 
  〈연수원 시절 변호사 시보(試補)를 조영래(趙英來) 변호사 사무실로 나갔다. 조영래는 누구인가? 《전태일 평전》을 썼던 그분이 맞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최우수로 나온 수재였지만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화운동가로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불멸의 삶을 살았던 분.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망원동 수재민 집단소송을 자원봉사했다.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하는데 사무실 임대료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다. 하루는 변호사님이 부르더니 개업에 쓸 500만원을 빌릴 수 있게 해주셨다. 판검사 임용을 마다하고 갈 길을 가겠다는 스물다섯 살짜리 어린 변호사의 무모한 도전과 용기가 가상했던 모양이다. 뿌듯했다. 전태일 열사를 평전으로 우리 안에 되살린 조영래 변호사님이 나를 믿고 인정해 준 것 같았다.〉
 
  지난 4월 21일 저녁 서울 광화문 지역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이재명 후보, 정규재TV의 정규재 대표와 식사를 함께 했다. 이 후보 초청으로 이뤄진 비공개 회동이었다.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의 그는 악수를 하자마자 “저 조 대표님 좋아했습니다. 그런데…”라고 했다.
 
  자연히 조영래 변호사 이야기가 나왔다.
 
  서소문 명지빌딩에 있던 조 변호사 사무실은 1980년대 후반 내가 자주 가던 곳이다. 그 사무실에는 운동가, 법조인, 기자들이 들락날락했는데 천정배 변호사(전 법무장관)와 박석운(한국진보연대 대표) 씨가 같이 일하고 있었다. 조 변호사는 나와 고향(경북 청송군 안덕면)이 같고 일가(一家)이기도 한데 유신 시절을 도피 생활로 보낸 사람답지 않게 푸근하고 화제(話題)가 풍부했다. 그의 사무실은 민주화의 열기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일종의 아지트 역할을 했다. 이재명 시보가 도왔다는 망원동 수재민 집단소송을 기획하고 밀어붙인 조영래 변호사는 인권변호의 지평을 넓힌 사람인데 1990년에 43세로 일찍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더 큰 일을 했을 사람이다.
 
 
  首都 이전 문제
 
생전의 조영래 변호사.
  1980년대 후반, 당시의 민주화운동은 직선제 개헌 하나로 집중되어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김대중이 분열하기 전까지는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지지 않은 순수한 시절이었다. 작년 12·3계엄 사태 이후 그때 친했던 이들과 다시 만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은 계엄과 음모론에 반대하는 점에서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헌법과 사실만 존중하면 좌우, 여야(與野)를 넘어 편한 대화가 가능하다.
 
  당시 이야기를 시작으로 세 시간 동안 잡담이 오고 갔다. 이재명 후보는 높은 지지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경쾌한 모습이었다. 천성(天性)이 낙천적인 듯했다. 나는 ‘李在明’이란 한자(漢字) 이름에 그런 성격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밝음(明)이 있으라는(在) 염원을 담아 지어 준 이름이니 명함이나 서명(署名) 때 한자 본명(本名)을 써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설명했더니 동감을 표시했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에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 한자 병기(倂記) 교육을 하기로 결단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서자마자 이를 폐기한 것은 정치적 신념을 떠나 미래 세대를 위해서 나쁜 짓을 한 것”이라고 했다.
 
  대화는 편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하면 의외로 일치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선거판에서 공론(公論)이 되고 있는 세종시로의 수도(首都) 이전에 대해 반대론을 폈다. 역사적으로 수도를 남쪽으로 옮긴 고구려·백제가 내분을 겪고 망하는 길로 갔다는 점,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2002년 선거에서 신(新)행정수도 건설 공약으로 재미를 봤으나 국회와 청와대까지 옮기는 사실상의 천도(遷都)를 밀어붙이다가 이명박 서울시장의 반대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좌절되었던 사실, 남북한 대결의 핵심은 평양 정권과 서울 정권의 정통성 싸움인데 세종시로 수도를 옮기면 불리해진다는 점, 그리고 내륙 도시에 정치인과 관료가 모이면 세상 돌아가는 것과 멀어져 기득권 센터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파키스탄의 행정도시 이슬라마바드 이야기를 했다).
 
  이재명 후보는 당선되면 일단 용산 집무실로 들어갔다가 청와대 내부를 고쳐서 복귀한 뒤 세종시로 수도를 옮기는 문제 등을 검토할 생각이라면서, 개헌이 필요하고, 국민 갈등 등으로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고, 초기에 그런 문제로 힘을 뺄 필요가 있을까라는 반응이었다. 무리하게 수도 이전을 밀어붙이진 않을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취재 목적의 만남은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생각이 ‘천년 수도 서울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문제라서 내가 이야기를 좀 길게 했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선거공학적으로만 다루고 역사적으로 보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친하다고 무능자를 쓰면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이재명 후보는 보수가 윤석열의 계엄을 편들면서 약해지는 바람에 자신들이 보수가 된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 그는 “이념을 기준으로 하는 갈등은 너무나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작년 총선을 계기로 민주당에서 종북(從北)적 영향력을 줄인 사람이 자신이라고 했다. 이념적 동질성보다는 유능한 사람 위주로 써야 한다는 말도 했다. 친하다고 무능한 사람을 써봤자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고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능력 위주의 실용 정책’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실용주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천인데 현실과 사실을 근거로 삼아 좋은 방향을 모색하는 합리(合理) 정신이다. 이재명 후보의 실용주의가 실리주의(實利主義)인지, 즉 현실의 이익에 맞는 방향인지, 아니면 이기주의(利己主義),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그가 능력 위주의 인사를 강조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원래 한국의 보수는 유능함으로 이름을 떨치고 위대한 문명을 건설한 주체 세력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과학적 근거 없이 추진해 의료대란을 일으킨 이른바 의료개혁과 병정놀이 수준의 비상계엄 때문에 요사이는 보수가 무능 집단으로 몰리고 있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김성한(金聲翰) 선생이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 《7년전쟁》 다섯 권 첫 페이지에 써넣었던 글을 인용한다.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萬斬)으로도 모자라는 역사의 범죄자이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악평(惡評)은 많지만 무능한 사람이란 평은 듣지 못했다. 조선일보 사회부장 출신 최보식(崔普植) 기자(‘최보식의 언론’ 편집인)의 평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말과 글이 되는’ 정치인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나?”라고 물었더니 “젊은 날 세일즈맨과 관련된 책을 많이 봤고 외판원도 좀 했다”고 하더란 것이다. 말과 글이 되는 또 다른 두 사람, 한동훈 전 대표와 이준석 의원은 지금 이재명과 대척점에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 자랑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이 일하고 공부하는 효율적 정당으로 바뀌었다고 자랑했다. 아침마다 공부 모임 같은 것이 있는데 의원들 참여율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백낙청 교수는 지난 대선 패배 후 “이재명은 김대중 이후 최고 정치 지도자”라는 평을 했는데 최보식 기자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거대 야당의 황제적 대표를 지낸 건 김대중도 못 한 일이다. 아무리 공천권을 갖고 있어도 이건 거의 불가능하다. 보수 진영이 악마 프레임에 갇혀 있지 말고 이런 관점에서 이재명을 볼 필요가 있다.”
 
  최 기자는 계엄 후 이재명 전 대표가 자신에게 “큰일이다. 나라가 반으로 쪼개졌다. 민주당이 정권을 가져온다 해도 똑같이 되는 거다. 사람들이 왜 나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어떻게 계엄 선포를 예측했느냐”는 나의 질문에 이 후보는 마키아벨리 이야기를 꺼냈다. 지도자가 몰리면 충성 분자들을 데리고 요새 안으로 피해 결사항전을 하는데, 계엄 직전의 윤석열 대통령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있더라는 것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안창호 국가인권위 위원장 임명 등 강경파 중용(重用), 북한에 대한 위험한 행동을 보면서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다’는 점을 알려 막아 보자는 차원에서 지난 여름부터 비상계엄령 선포설(說)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자신의 저술에서 “윤석열 정권에 대한 나의 질문들은 쌓여 갔다. 모든 타협에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배제와 은둔의 정치를 고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라고 썼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이 정권의 갈 길이 영구 집권을 꿈꾸는 것밖에 없다는 판단이 확실히 들었다. 마키아벨리는 대중의 인기를 잃은 독재자들이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고 했다. 그 독재자들은 강력한 병사들을 데리고 요새로 가서 칩거한다. 그리고 요새의 성문을 지키는 자는 절대 스스로 열고 나가지 않을 만한, 배신해 봐야 상대편에서 환영받지 못할 만한 사람으로 세운다. 윤 전 대통령 입장에선 김문수 전 장관 같은 사람이 그런 측면에서 아주 유용했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이 책에서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저들은 나를 고문하면서 지난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허위 자백을 받아내려고 발버둥을 쳤을 것이다”라고도 썼다.
 
 
  정확했던 예측
 
  김민석 의원은 지난해 8월 2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입 틀어막기)’ 국방장관으로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反)국가 세력 발언으로 이어지는 최근 정권 흐름의 핵심은 국지전과 북풍(北風)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했다. 이어 9월 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김 후보자가 최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 여인형 국군 방첩사령관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경호처장 공관으로 불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이들의 방문 사실을) 출입 기록에 안 남기려고 입구에서 경호처 직원 안내로 불렀다”며 “무슨 얘기를 했느냐. 계엄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이에 김 후보자는 “사실이 아닌 것을 가지고 선동적인 말씀을 하고 있다”며 “이 자리는 청문회, 말 그대로 듣는 자리고 거짓 선동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 후보자는 부승찬 민주당 의원의 관련 질의에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계엄을 한다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군에서도 따르겠나”라며 “저는 안 따를 것 같다”고 답했다. ‘장관이 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계엄 발동을 건의할 것이냐’는 여야 의원들의 거듭된 질의에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귀신이 뭘 잘못 먹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황당하다”고 민주당을 비판했지만 민주당은 상당히 정확한 내부 정보를 갖고 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요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보기관을 활용하지 않고 독단, 주술, 음모론에 휘둘려 파국을 맞은 것과 비교된다. 이런 정보 능력의 차이는 보수와 진보의 실력 차이이기도 하다.
 
  이 후보는 그러나 작년 12월 3일 계엄 선포 순간엔 “이거 딥페이크야. 가짜뉴스야”라고 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진짜라는 게 밝혀져 국회로 가려고 나설 때는 문 앞에 군인들이 와있을 것 같아 부인이 현관문의 안전고리를 걸어 둔 채 살짝 문을 열고 먼저 바깥을 살폈다고 했다.
 
 
  對日觀의 극적 反轉
 
  나는 이 후보에게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향해 적대적, 분열적 용어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수’ ‘진보’ ‘기득권층’ ‘반국가 세력’처럼 싸잡아 규정하는 말은 헌법에 나와 있지 않다. 헌법엔 개인과 국민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링컨은 “대통령은 헌법의 눈밖에 가질 것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동석한 세 사람은 대통령이 역사 논쟁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어선 안 된다는 데 같은 생각이었다. ‘대통령(大統領)’이란 낱말이 ‘국민을 크게 통합하는 우두머리’란 뜻 아닌가.
 
  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후 첫 공식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는데 이승만·박정희 묘소도 들렀다. 기자들에겐 이렇게 말했다.
 
  “망인(亡人)들의 평판은 역사가와 시민사회에 맡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급적이면 지나간 이야기, 이념과 진영 이런 것들은 곁으로 미뤄 두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날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참석해서는 이런 말도 했다.
 
  “대통령이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을 찾아 뒤져서 보았습니다. ‘국민을 크게 통합하는 우두머리’라는 의미가 있더군요.”
 
  이 말을 두고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와 대치시킨 것이란 해석도 있었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의 우두머리가 되어 국민들, 특히 보수층을 대분열시킨 사람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더 직설적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예상할 수 있는 모범답안 수준이었다. 반일(反日) 종족주의에 가까웠던 그의 대일관(對日觀)은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극적으로 반전(反轉)했다. 일본의 국방력 강화에 대해 “현재 한일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으므로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이런 답변에도 불구하고 그날 대화로는 ‘이재명 대통령’이 반일 정책을 쓰지 않을 것이란 확신은 들지 않았다. 며칠 뒤 만난 주한(駐韓) 일본 대사관의 고위 인사는 “그의 말을 믿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그런 말을 해도 그쪽 진영에서 반발이 없다는 현실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全국민 회고록 쓰기 운동’에 공감
 
  이 후보는 대화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휴대전화에 메모를 하기도 했다. 그는 “정부 부처마다 쓴소리 하는 자리를 하나씩 만들면 어떨까” 하면서 작명(作名)에 대해서 물었다. 내가 ‘옴부즈맨’이라고 했더니 메모를 했다.
 
  나는 ‘정부 차원의 전(全)국민 회고록 쓰기 운동’을 이야기했다. 한국 현대사는 인류사에 남을 ‘가장 위대한 이야기(The Greatest Story Ever Told)’이다. 지인(知人)들이 쓴 회고록을 읽어 보면 모두가 소설감이다. 더구나 해피 엔딩이다. 국가가 나서서 이런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하고 그 기록을 모아 국가기록으로 보존하고, 출판도 도와주고, 손자 손녀들에게 선물하면 아마도 세계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한국인만 남길 수 있는 이런 거대한 기록은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으로 경제적, 교육적 기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후보도 즐거운 표정으로 동감했다.
 
  내가, “당선될 경우 취임 직후에 6·25 남침 75주년 기념행사를 하게 되는데, 한국전(戰)의 결전장인 다부동 전적지에서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거기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사이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한국전의 두 최고사령관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을 세웠습니다.”
 
  3시간의 대화를 끝내고 헤어질 때 내가 만든 동상 제막식(2023년 7월 27일) 소책자 〈위대한 만남〉을 건네면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영문(英文)으로 써 보낸 편지가 천하명문(名文)이다”라고 했다. 그는 “꼭 읽어 보겠다”고 했다.
 
 
  다부동 이승만 동상을 둘러본 이재명
 
이재명 후보는 5월 9일 다부동 전적지를 방문했다.
  이재명 후보는 ‘골목골목 경청투어’로 경북 지방을 돌고 있던 지난 5월 9일, 예정을 바꿔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을 찾았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그는 맨 처음 이승만 동상을 둘러본다. 동상 발밑에 새겨진 글을 읽고, 트루먼 동상 앞을 지나 구국용사 충혼비에 참배했다. 우산을 쓴 채였다. 현직 대통령이라면 현충 행사에서는 비를 맞는 것이 관례다. 그는 떨어져 서있는 백선엽 동상은 지나치고 내려온다. 그날 이 후보는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역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 속의 일들을 꺼내서 자꾸 편 가르기 수단으로 써요. 제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안 갔습니다. 가면 너무 시끄러워지니까. 그게 또 다른 정쟁(政爭)의 요소가 되니까 안 갔는데, 이번에는 그걸 감수하기로 하고 갔다 왔는데 (오히려) 별말이 없었요.(웃음) 다 공(功)과 과(過)가 있는 것 아닙니까. 특히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쪽에 가까웠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한목숨 바쳐서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투에 참여했고 그리고 산화(散華)해 갔는데, 기억하고 기려야죠.
 
  이번 (경북) 일정에 (다부동 일정이) 빠졌길래 제가 ‘긴 시간 걸리는 것도 아닌데 한번 가자’고 해서 갑자기 갔다 왔어요. 갔더니 볼 것도 있고 괜찮더군요.”(웃음)
 
  그가 둘러본 이승만 동상 발밑엔 “대통령 각하, 위대한 귀국(貴國)의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애국심을 뛰어넘어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목숨을 바쳤습니다”(1950년 7월 19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 옆 트루먼 동상 발밑에는 “Dean, we’ve got to stop thos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이란 문장이 있다. 남침 보고를 한 딘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트루먼이 한 말이다.
 
  지난 4월 11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 명문(銘文)을 찍어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찰스 형,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한 인터넷 매체는 ‘안철수, 이재명 겨냥?’이란 제목을 달았다.
 
 
  대통령이 되면 표변하는 경우
 
  나는 그날 저녁 자리에서 ‘3김(金)씨’ 김종필·김영삼·김대중을 오랫동안 취재한 경험과 인물평을 했는데, 세 사람은 정치적 입장은 달라도 인간을 대하는 교양을 유지했던 분들이다. 3김씨는 1920년대생, 이재명 후보는 1960년대생, 나는 1940년대생이다. 기자의 특권이자 의무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는 일이다. 나는 3김씨 중 김대중에 대하여 비판적인 글을 많이 쓴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가장 많은 인터뷰를 한 이도 김대중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후보와의 만남은 늦은 감이 있는데 이 만남이 뉴스가 됐다. 보수 기자가 진보 정치인을 만나면 뉴스가 되는 상황, 이게 진짜 뉴스일 것이다.
 
  김종필은 말년에 대통령이 되면 사람이 달라지는 경우를 이렇게 표현했다.
 
  “경제는 실업(實業)이고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청와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변심, 욕심, 야심을 갖게 되더라.”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사람이 갑자기 달라진 경우로는 김영삼(1993년), 박근혜(2013년), 윤석열(2022년)이 있다. 김영삼의 좌파적 역사관, 박근혜의 친중 반일(親中反日) 정책, 그리고 윤석열의 독단적 청와대 대통령실 이전은 예상 밖이었다. 세 사람이 선거운동 기간에 보여 준 활달한 모습은 순식간에 교조적인 딱딱함으로 변했다.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가 대통령을 세상과 차단하고 아부파들로 둘러싸이게 하는 고유한 기능이 있는 건지 성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개헌의 초점은 윤석열·문재인처럼 사고 치는 대통령을 막는 데 두어야 할 것이다.
 

  후보자 등록이 끝난 5월 11일 현재 여론조사는 이재명 후보가 김문수 후보를 500만 표차 이상으로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당선 즉시 취임하게 되므로 독자들은 이 기사를 읽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눈치챌 수도 있을 것이다.
 
  군인들은 다른 나라 군대의 위협을 평가할 때 ‘의도보다 능력에 주력하라’고 한다. 능력이 압도적이면 상대를 치고 싶은 유혹이 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행정부와 국회에 대한 압도적 지배력을 갖게 되므로 굉장한 견제나 자제력이 없으면 사법부나 언론에 대한 독단적 영향력을 멈추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하나 유리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두 전임(前任) 대통령은 역대 최악이었으므로 아무리 못해도 그보다는 잘할 것이란 기대감이 그것이다.
 
 
  잘 웃는 사람이 이긴다!
 
  성격이 운명이란 말이 있는데 윤석열은 화를 잘 내는 사람, 이재명은 잘 웃는 사람이었다. 처칠은 잘 웃기는 사람, 히틀러는 증오심을 부추긴 사람이었다. 레이건은 남을 웃기면서 총 한 방 쏘지 않고 ‘악의 제국’을 해체해 간 이다.
 
  이재명이 쇼를 한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데, 인생(人生)의 본질을 연극으로 이해한 사람이 셰익스피어였다. 한 기자가 “배우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레이건은 즉석에서 “아니, 대통령이 어떻게 배우가 안 될 수 있습니까?”라고 답한다.
 
  계엄 사태를 평화적으로, 헌법적 질서 속에서 진압하고 선거를 통한 국민적·주권적 결단으로 결론을 내고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도 지난 77년간 시행착오의 연극을 되풀이하다가 실연(實演)의 경지에 오른 경우일 것이다.
 
  지난 4월 21일 밤. 이재명 후보가 먼저 식당을 나가고 우리 두 사람은 10분 뒤에 나가서 계산대에 들렀더니 이 후보는 자신의 밥값만 내고 갔음을 알게 되었다. 뭔가 경쾌한 뒷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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