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철의 미국 망명 요청에 CIA가 미국 망명을 불허한 이유는?
북한과 관련한 핵심 정보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큰 김명철의 망명을 미국이 불허한 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게 박근혜 정부 외교 안보 관계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미국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판단하는 ‘통일 방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김명철의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행이 무산됐음에도 김명철은 한국행을 거부하고 이탈리아 망명을 선택했다. 이탈리아 정보기관인 AISE는김명철의 망명을 도왔고, 그는 2016년 4월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AISE는 김명철의 이탈리아 망명이 결정되기 전까지 국정원에 신문 내용을 제공했다.
⊙ 김정은 혁명자금 상당액, 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미화 현금으로 보관
⊙ 외국인 명의 유령계좌 통해 돈 배분 관리, 규모는 수십억 달러
⊙ 김명철, 장성택 측근이던 동생 처형당하자 신변위협 느껴 이탈리아 망명
⊙ 김정은, 대규모 달러 중국 다수 은행계좌에 예치
⊙ 모든 제재 물품, 중국 다롄항 통해 北 반입
⊙ 김명철이 가지고 간 김정은 비자금 규모… 최소 1000억원은 될 듯
북한과 관련한 핵심 정보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큰 김명철의 망명을 미국이 불허한 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게 박근혜 정부 외교 안보 관계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미국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판단하는 ‘통일 방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김명철의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행이 무산됐음에도 김명철은 한국행을 거부하고 이탈리아 망명을 선택했다. 이탈리아 정보기관인 AISE는김명철의 망명을 도왔고, 그는 2016년 4월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AISE는 김명철의 이탈리아 망명이 결정되기 전까지 국정원에 신문 내용을 제공했다.
⊙ 김정은 혁명자금 상당액, 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미화 현금으로 보관
⊙ 외국인 명의 유령계좌 통해 돈 배분 관리, 규모는 수십억 달러
⊙ 김명철, 장성택 측근이던 동생 처형당하자 신변위협 느껴 이탈리아 망명
⊙ 김정은, 대규모 달러 중국 다수 은행계좌에 예치
⊙ 모든 제재 물품, 중국 다롄항 통해 北 반입
⊙ 김명철이 가지고 간 김정은 비자금 규모… 최소 1000억원은 될 듯
2015년 5월 있었던 북한 유럽자금총책 김명철의 망명 배경과 정확한 행선지, 그리고 김정은의 비자금 내역 등이 밝혀졌다.
《월간조선》은 최근 김명철 망명 신청 당시 이탈리아 정보기관인 AISE(Agenzia Informazioni e Sicurezza Esterna·해외보안정보부)와 미 정보국 CIA가 김씨를 신문, 국정원에 제공한 기밀 조서(調書)를 입수했다.
애초 김명철은 2015년 5월 이탈리아 AISE를 통해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미국의 거부로 현재는 이탈리아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됐다. AISE는 1977년 군 정보기관으로 설립됐다. 2007년 총리실 산하 해외보안정보부로 재편됐다. 수장은 루치아노 카르타(Luciano Carta)이며 이탈리아 로마에 있다. 해외공작 및 국외정보 수집·분석, 대테러 등이 임무다.
美, 김명철 망명 불허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김명철의 망명 움직임을 포착한 것은 그가 미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한 무렵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은 AISE와 CIA의 협조 속에 김명철의 국내 망명을 추진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엘리트들이 체제에 회의를 느껴 탈북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상황 등을 감안할 때, 김정은 체제가 흔들린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우리가 무력 공격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남은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북한 정권을 ‘정상적인 체제’로 바꾸는 것밖에 없는데, 엘리트들이 우리 쪽으로 많이 넘어올수록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 시기가 당겨질 것으로 봤다.
김명철의 국내 망명을 추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김명철은 미국행을 요구했다. 미국은 그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과 관련한 핵심 정보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큰 김명철의 망명을 미국이 불허한 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게 박근혜 정부 외교 안보 관계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미국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판단하는 ‘통일 방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김명철의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정은 비자금, 외국인 명의 유령계좌 통해 배분 관리
하지만 김명철은 한국행을 거부하고 이탈리아 망명을 선택했다. 이탈리아 정보기관 AISE는 김명철의 망명을 도왔고, 그는 2016년 4월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AISE는 김명철의 이탈리아 망명이 결정되기 전까지 국정원에 신문 내용을 제공했다.
AISE와 CIA가 김씨를 신문, 국정원에 제공한 조서(調書)에 따르면 그는 김정은 비자금 관리 실태에 대해 “김정은 혁명자금 상당액은 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미화 현금으로 보관된다”며 “39호실이 외국인 명의 유령계좌를 통해 돈을 배분 관리하며, 이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실제 김정은 가족은 유럽 국가 은행에 비밀계좌가 있으며, 그 금액은 최소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미국 《워싱턴타임스》)도 나왔다. 미국 정부의 정보 분야 관리는 “김정은 가족은 스위스·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 등 은행에 비밀계좌가 있으며, 최소 10억 달러가 예치돼 있다”고 밝혔다.
김명철은 북한의 대북 제재 회피 방법과 관련해서는 “해외 북한 상사원들은 민간물자를 가장업체, 위조 선적서류, 음어 등을 활용해 구매하고, 중국 다롄항을 통해 북한으로 반입한다”고 했다. 거의 모든 배는 중국 다롄항을 거쳐서 나갔다 거쳐 들어온다. 다롄항이 북한의 민간물자 반입과 무기 수출 등 불법 활동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서에 따르면 김명철은 “북한은 대규모 달러를 직접 중국으로 보내 중국은행 내 다수의 은행계좌에 예치시켰다”고 했다.
김명철의 발언을 토대로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함께, 북한이 중국 상하이 등지의 여러 은행에 김정은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가·차명 계좌 수십 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계좌명과 계좌번호까지 파악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김정일 시대에 만든 것이었다. 당시 정보 당국 관계자는 “이 계좌들에 예치된 돈은 수억 달러 이상”이라고 했다.
더욱 자세히 파헤치지 못한 것은 북한의 불법적인 자금 조성 과정을 추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전문가인 존 박 하버드 케네디스쿨 코리아워킹그룹 디렉터는 “북한의 해외망은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 매우 잘 적응해왔다. 북한의 불법적인 비즈니스는 대부분 합법적인 무역으로 위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간 북한의 불법적인 자본 조달을 연구해온 시나 그레이튼스(Sheena Greitens) 미주리대학 교수는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그런 수입은 곧바로 북한 최고 지도자의 주머니 혹은 은행 계좌로 들어간다. 이런 돈을 제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김명철이 자국 시민권 획득하자 정보 공유 중단한 AISE
김명철은 2016년 4월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김명철은 이탈리아로 망명하면서 거액의 ‘김정은 비자금’도 함께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철이 가지고 간 김정은 비자금 액수와 관련해 AISE는 “김명철은 16년간 대성무역 지사장으로 장기 근무했고, 여러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해온 인물이다. 거액을 가지고 망명한 것은 맞지만, 액수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국정원에 알렸다. 이후 AISE는 자국 시민권을 획득한 김명철에 대한 정보 공유를 중단했다. 이와 관련 대북소식통들의 예상은 “김명철이 가지고 잠적한 외화 액수는 많아야 400억원”과 “최소 4000억원”으로 갈린다.
북한의 핵심 엘리트였던 김명철은 왜 서방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게 됐을까. 지금부터는 그 배경을 추적해본다.
2009년 북한 후계자로 결정된 김정은은 2013년 12월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을 죽였다. 장성택은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죽기 몇 개월 전부터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택은 2013년 12월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장에서 끌려나가 죽임을 당했다. 김정은이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해 이미 체포돼 있던 장성택을 회의장에 앉혀놓고 다시 끌어내는 모습을 꾸몄다.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도 권력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장애물로 등장한 친삼촌 김영주를 가차 없이 제거했다.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면서 이런 공포정치 비법을 전수했다는 말이 나왔다.
북한이 밝힌 장성택의 죄(罪)는 20가지가 넘었다. 북한은 “장성택 일당은 반당(反黨)·반(反)혁명적 종파 행위를 감행하고 강성 국가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는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며 장성택의 세력을 ‘종파(宗派)주의’로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일당이 부정부패를 일삼았다”면서 “장성택은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마약을 쓰고 다른 나라에 병 치료를 가 있는 기간에도 도박장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장성택 처형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충격은 상당했다. 시장 아줌마들도 다 충격받아 물건도 안 팔고 앉으면 장성택 얘기만 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이야기다.
“김일성·김정일 때도 숙청이 있었고, 로열패밀리 권력 암투도 있었지만, 그때는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장성택 처형을 《로동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렸다. 신(神)처럼 여기는 로열패밀리가 ‘마약을 하고 외국에서 도박하고 수백만 달러 돈을 착복했다’고 하니 주민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장성택 처형, 김경희도 찬성
장성택 처형과 관련, 그의 아내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이자, 김정은 고모)에 대한 고위층 탈북자들의 증언은 엇갈린다. 장성택 처형은 김경희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의견이 조금 우세했다. 김경희는 장성택과 오랜 불화를 겪고 있었고, 특히 장성택의 여성 편력에 진저리가 난 상태인 만큼 남편을 죽이는 데 찬성했다는 것이다.
외교관 출신의 한 고위 탈북자는 “김경희는 오빠와 더불어 나라의 주인 격이기 때문에 조카의 권력을 위해 남편을 죽이는 자기희생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장성택의 처형 방식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대공(對空) 화기인 고사총으로 쐈다는, 사냥개 120마리를 풀어 물려 죽게 했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처형 방식이 어떻든 김정은이 장성택의 머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도록 전시했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5월쯤 비공개로 열린 지지자 모임에 참석해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죽이고 머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도록 전시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9년 5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 모임의 참석자는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다른 이들이 보도록 전시(displayed)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생생하고 상세하게(graphically detailed)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생생하고 상세하게’ 얘기했다는 것으로 볼 때 미공개 정보를 정보 당국으로부터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동생 김경철 처형 후 신변 위협 느낀 김명철
장성택 처형 직후 김정은은 ‘장성택 추종 세력 명단’을 만들어 장성택 측근과 가족들을 비밀리에 무자비하게 처형하고 숙청했다. 탈북자 출신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장성택 사건으로 노동당 간부 415명, 산하 기관 간부 300여 명, 인민보안성 간부 200명이 공개 총살됐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처형된 간부 중에는 김일성 빨치산 동료 가족도 포함됐다”면서 “가족과 친척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등 장성택 사건으로 적어도 2만명이 숙청됐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를 비롯한 북한 고위직 출신 탈북자 6명의 증언을 토대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대규모 처형·숙청 과정에서 장성택의 측근이었던 김경철 전 싱가포르 무역대표부 대표도 사형됐다.
김경철 전 싱가포르 무역대표부 대표는 김명철 대성무역 로마 지사장의 동생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김명철은 노동당 39호실 유럽자금총책이다. 그는 유럽에서 외국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김정일·김정은의 비자금을 능숙하게 분산 관리하던 전문가다. 게다가 북한은 이탈리아에 파견하는 인물은 엘리트 중 엘리트를 선발해 보낸다. 김정은 집권 이후 망명한 북한 외교관 출신 한 탈북민은 “이탈리아는 김정은 일가가 소비하는 각종 사치품의 주요 공급 루트”라며 “북한은 이탈리아를 통해서 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외교 전략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을 선발해 보낸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2000년 1월 유럽 국가 중에는 처음으로 북한과 수교를 맺었다.
대성무역
김명철이 어떤 인물인지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성무역과 노동당 39호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대성무역은 노동당 39호실의 핵심 기구다. 대성무역의 모체는 무역성의 작은 부서(미상)였다. 이 부서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우상화 대상 건설에 필요한 물자, 선물, 1호 제품 구입을 맡아 수행하다가 노동당 39호실로 배속됐다. 본사 종업원 수는 약 600명이고, 산하 무역회사의 종업원 수는 약 5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39호실은 김정은 비자금의 핵심 기관이다. 39호실은 대성무역 등 소속 기관을 통해 직접 비자금을 조성하고, 인민군 정찰총국과 무역성 등 당·정·군에서 보내오는 ‘상납금’과 ‘충성자금’을 관리하는 김정은의 개인금고 역할을 한다. 39호실이 만들어진 것은 1974년. 김정일이 김일성 후계자로 정해진 직후로, 그 이듬해인 1975년 조선노동당 창건 30년 기념행사를 치르기 위해 39호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는 행사에 참석한 당 간부와 각계 주민 대표 등 1만명에게 시계와 컬러TV를 선물했으며, 그 행사 자금 마련과 집행에 39호실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노동당 39호실
39호실 자금은 북한 공식 예산과는 별도 운영되며, 오로지 최고 권력자의 통치자금으로만 사용된다고 한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이 직접 자금 용도와 규모를 지정하고 승인하는 등 39호실 운영은 극비리에 이뤄지고 있다”면서 “서기실과 39호실의 소수 측근이 자금을 관리한다”고 했다.
북한은 중앙당 주요 기관들과 도당(道黨) 등 지방당 조직에도 39호실 기능을 하는 부서를 두고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의 외화벌이는 총참모부, 호위총국 등 군부에서도 하지만 39호실이 가장 전문적이고 규모가 크다”며 “특히 금·은광은 39호실이 독점한다”고 했다. 세계에 퍼져 있는 북한 식당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도 39호실로 흘러 들어간다.
39호실은 김정일 통치 시절엔 해마다 5억 달러(약 60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직접 조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등으로 대북 경제 제재가 심해지면서 현재 39호실 소속 기관들이 직접 벌어들이는 수입은 예전의 절반인 2억~3억 달러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보 당국은 39호실이 마약 밀매와 위조달러, 가짜담배 제조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의심해왔다. 김명철 노동당 39호실 산하 대성무역 로마 지사장 같은 북한 해외 ‘금고지기’들은 각종 외화벌이 사업으로 조성한 혁명자금을 관리하고 평양에 상납하는 역할을 한다.
2001년 1월 대성무역 로마 지사장으로 부임
김정일의 신임을 받던 김명철은 2001년 1월 노동당 39호실 산하 대성무역 로마 지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2009년 김정일이 구입하려 했던 이탈리아 ‘아지무트’ 요트 계약 체결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김명철은 이탈리아산 요트 구입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유럽 금융당국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데다 요트 판매가 북한에 사치품 수출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2006년 10월)에 위반한다는 이유로 계약금을 압수했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6년 11월 김정일의 사치 생활을 억제하기 위해 대북 금수(禁輸) 품목에 아이팟,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스쿠터와 함께 고급 요트를 포함시켰다. 당시 김정일이 사려던 호화 요트 2척의 대금은 2000만 달러(약 268억원)에 이른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한 달간 먹여 살릴 쌀을 살 수 있는 금액에 육박한다.
김정은 초호화 요트 구매 때 관여
김명철은 김정은이 2013년 약 80억원짜리 초호화 요트를 구매할 때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는 2013년 6월 김정은이 암시장을 통해 ‘프린세스 요트’사의 95MY 모델을 샀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 요트를 2013년 5월 10여 일간 동해안 일대를 시찰할 때 타고 다녔다고 한다. 실제 2013년 5월 28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김정은의 항구 시찰 장면 사진을 보면, 군 장성이 김정은을 수행하고 있고 뒤편 배경에 초호화 요트 한 대가 보인다.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 그룹 소속인 프린세스 요트사의 한 관계자는 “95MY는 지하 거래시장을 통해 많은 주인에게 인도됐다”며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암시장 등을 통해 김정은에게 들어간 것 같다”고 외신에 밝혔다.
이 외에도 김명철은 2010년 10월 리설주가 입어 화제가 된 ‘레드 발렌티노’의 베이지색 롱코트 등을 공수하기도 했다. 명품 패션에 밝은 사람도 레드 발렌티노는 익숙지 않다. 레드 발렌티노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가 기존 고객층보다 젊은층을 겨냥해 만든 세컨드 브랜드로, 디자인에 귀여운 꽃무늬와 앙증맞은 리본을 많이 쓴다. 전형적 소녀 취향 브랜드로 원피스 한 벌에 1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레드 발렌티노를 입는 것을 보면 리설주가 해외 명품에 대해 상당한 정보와 안목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설주가 인터넷이나 패션잡지를 통해 명품을 찍으면 김명철 등 해외 ‘금고지기’들이 사서 보내는 것이다.
김명철의 탁월한 비자금 관리
뭐니 뭐니 해도 김명철이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비자금 관리 실력 때문이었다. 그는 유럽의 많은 중소은행이 예금 유치만 중시한다는 허점을 파고들어 다양한 차명계좌를 관리했다. 이런 식이다. 외국인 명의로 다수의 차명계좌를 개설한다. 이 계좌들에 비자금을 분산배치하는데, 비자금을 찾을 때는 차명 예금주의 위임장을 지닌 변호사를 차명계좌가 있는 은행에 보내 다른 은행에 있는 자신의 계좌나 현지처 명의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이 비자금 일부는 유럽 계좌에 남기고, 일부는 북한에 송금한다. 송금된 자금은 중국 내 다수의 유령계좌에 예치하거나, 노동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달러로 보관한다.
북한 인사 명의의 계좌는 서방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가상의 외국인 계좌를 아무리 잘 개설해도 북한에 보내기가 어렵다. 김명철은 현지처를 두는 등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세탁하는 실력 덕에 자신의 계좌를 개설, 큰 금액의 비자금을 자유자재로 주무를 수 있었다.
김씨 정도의 ‘기술자’는 북한에서도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김정일·김정은 부자도 비자금 세탁과 관련, 김씨에게 많이 의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 안보 핵심 관계자는 “김명철은 이런 식으로 북한의 유럽 비자금을 총괄했다”고 전했다.
동생 처형 후 신변 위협 느낀 김명철, 美 망명 타진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유럽 비자금을 총괄해온 김명철에게 동생 김경철의 처형은 충격이었다. 동생은 김정은의 장성택 잔재 세력 청산 2단계 작업 때 사형당했다. 김정은은 장성택을 2013년 12월 처형한 뒤 2014년 초까지 ‘장성택 파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진행했으나, 내부적인 동요로 인해 중단했다. 7~8개월 뒤인 2014년 8~9월 김정은은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장성택의 그림자를 철저히 없애라’는 지시를 은밀하게 내렸다. 당 조직지도부는 “현대판 종파 일당이 집행했던 문제를 전면 재검증하고, 간부들의 충실성을 검증하여 이색분자를 색출·제거하라”는 지시를 당·보위부·군 등 검열기관에 하달했다.
당·보위부·군 등 검열기관은 총동원돼 지방간부는 물론이고 해외 주재 공관원 및 상사원들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김명철의 동생 김경철도 2014년 9월 처형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생 처형 소식을 접한 후 김명철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김명철이 들고 간 김정은 비자금 액수는?
김정은과 그 가족의 유럽 국가 은행 비밀계좌에 최소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의 비자금이 있고, 중국은행 다수의 가·차명 계좌에 수억 달러가 들어 있다는 점을 봤을 때, 김명철이 4000억원을 ‘꿀꺽’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김명철의 이탈리아 망명 직후 북한이 이탈리아 외교부에 김명철의 소재 파악을 요청하는 공한(公翰)을 끊임없이 보내고, 암살조를 파견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김명철이 4000억원을 들고 망명했다면 김정은은 경제적 측면에서 크게 휘청거렸을 것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 북한이 1년 동안 남쪽에서 받은 돈이 9600만 달러(약 1062억원) 정도였음을 감안했을 때 그렇다.
김명철이 망명하자 그를 대신해 ‘김정은의 유럽 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이 조성길 전 주(駐) 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였다. 조성길은 2018년 11월 잠적했다. 격노한 김정은은 조성길 잠적 직후 체포조를 현지에 급파했다.
김정은 유럽 비자금 총책 연달아 탈출
조성길의 행방과 관련,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조성길이 미국 망명을 원하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 정보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8월 1일 조성길과 관련해 “이탈리아를 떠났고, 어디인가에서 신변 보호 중”이라고 밝혔다.
조성길과 가끔 식사를 했다는 안토니오 라치 전 이탈리아 상원 의원은 이 신문에 “(조성길의) 애국심이 강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잠적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며 “두 자녀를 키우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조성길 딸의 강제 북송설이 터져 나왔다. 이탈리아 외교부가 “조 전 대사대리가 아내와 탈출하면서 고교생 딸을 데리고 나오지 못했으며, 딸은 북한에 압송됐다”고 밝힌 것이다.
조성길의 후임으로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부임한 김천 대사대리는 “조성길의 딸은 잠적한 조성길 부부에 의해 집에 홀로 남겨졌기 때문에 부모를 증오했고, 조부모에게 돌아가기 위해 평양에 가길 원했다”며 “조성길의 딸은 치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거기서 잘 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강제 북송설을 불식시키고 조성길 부부를 부도덕한 부모로 몰아가려고 외교 공세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조성길 딸의 북송(北送)이 강제인지, 자진인지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졌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입장이나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조성길은 2015년 5월 현지에 부임했다. 이탈리아는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한 달 뒤 문정남 당시 대사(현 시리아대사)를 추방했다. 이후 3등 서기관이던 조성길이 1등 서기관으로 승진해 대사 역할을 해왔다. 조성길은 북한 외무성에서 잘나가던 엘리트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고위급은 아니다”고 국회에 보고했지만, 북한 외무성 유럽국에서 조성길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는 태영호 전 공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조성길은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집안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조성길의 장인은 외무성 의전 국장을 지내고 태국 주재 북한대사를 지낸 리도섭”이라고도 했다.
4년 사이(2015~2018년)에 김정은의 유럽 비자금 총책을 맡은 인물들이 연달아 망명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김정은 비자금’의 액수가 엄청나고, 김정은 독재에 대한 엘리트층의 피로감이 극에 달한 것이다.⊙
《월간조선》은 최근 김명철 망명 신청 당시 이탈리아 정보기관인 AISE(Agenzia Informazioni e Sicurezza Esterna·해외보안정보부)와 미 정보국 CIA가 김씨를 신문, 국정원에 제공한 기밀 조서(調書)를 입수했다.
애초 김명철은 2015년 5월 이탈리아 AISE를 통해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미국의 거부로 현재는 이탈리아에 머무는 것으로 확인됐다. AISE는 1977년 군 정보기관으로 설립됐다. 2007년 총리실 산하 해외보안정보부로 재편됐다. 수장은 루치아노 카르타(Luciano Carta)이며 이탈리아 로마에 있다. 해외공작 및 국외정보 수집·분석, 대테러 등이 임무다.
美, 김명철 망명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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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럽자금총책 김명철의 망명 배경과 정확한 행선지, 김정은의 비자금 내역 등이 밝혀졌다. 김명철은 ‘유령계좌’ 를 이용한 비자금 관리의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명철의 국내 망명을 추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김명철은 미국행을 요구했다. 미국은 그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과 관련한 핵심 정보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큰 김명철의 망명을 미국이 불허한 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게 박근혜 정부 외교 안보 관계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미국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판단하는 ‘통일 방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김명철의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정은 비자금, 외국인 명의 유령계좌 통해 배분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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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혁명자금 상당액은 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미화 현금으로 보관돼 있다. |
AISE와 CIA가 김씨를 신문, 국정원에 제공한 조서(調書)에 따르면 그는 김정은 비자금 관리 실태에 대해 “김정은 혁명자금 상당액은 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미화 현금으로 보관된다”며 “39호실이 외국인 명의 유령계좌를 통해 돈을 배분 관리하며, 이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실제 김정은 가족은 유럽 국가 은행에 비밀계좌가 있으며, 그 금액은 최소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미국 《워싱턴타임스》)도 나왔다. 미국 정부의 정보 분야 관리는 “김정은 가족은 스위스·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 등 은행에 비밀계좌가 있으며, 최소 10억 달러가 예치돼 있다”고 밝혔다.
김명철은 북한의 대북 제재 회피 방법과 관련해서는 “해외 북한 상사원들은 민간물자를 가장업체, 위조 선적서류, 음어 등을 활용해 구매하고, 중국 다롄항을 통해 북한으로 반입한다”고 했다. 거의 모든 배는 중국 다롄항을 거쳐서 나갔다 거쳐 들어온다. 다롄항이 북한의 민간물자 반입과 무기 수출 등 불법 활동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서에 따르면 김명철은 “북한은 대규모 달러를 직접 중국으로 보내 중국은행 내 다수의 은행계좌에 예치시켰다”고 했다.
김명철의 발언을 토대로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함께, 북한이 중국 상하이 등지의 여러 은행에 김정은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가·차명 계좌 수십 개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계좌명과 계좌번호까지 파악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김정일 시대에 만든 것이었다. 당시 정보 당국 관계자는 “이 계좌들에 예치된 돈은 수억 달러 이상”이라고 했다.
더욱 자세히 파헤치지 못한 것은 북한의 불법적인 자금 조성 과정을 추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전문가인 존 박 하버드 케네디스쿨 코리아워킹그룹 디렉터는 “북한의 해외망은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 매우 잘 적응해왔다. 북한의 불법적인 비즈니스는 대부분 합법적인 무역으로 위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간 북한의 불법적인 자본 조달을 연구해온 시나 그레이튼스(Sheena Greitens) 미주리대학 교수는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그런 수입은 곧바로 북한 최고 지도자의 주머니 혹은 은행 계좌로 들어간다. 이런 돈을 제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김명철이 자국 시민권 획득하자 정보 공유 중단한 AISE
김명철은 2016년 4월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김명철은 이탈리아로 망명하면서 거액의 ‘김정은 비자금’도 함께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철이 가지고 간 김정은 비자금 액수와 관련해 AISE는 “김명철은 16년간 대성무역 지사장으로 장기 근무했고, 여러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해온 인물이다. 거액을 가지고 망명한 것은 맞지만, 액수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국정원에 알렸다. 이후 AISE는 자국 시민권을 획득한 김명철에 대한 정보 공유를 중단했다. 이와 관련 대북소식통들의 예상은 “김명철이 가지고 잠적한 외화 액수는 많아야 400억원”과 “최소 4000억원”으로 갈린다.
북한의 핵심 엘리트였던 김명철은 왜 서방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게 됐을까. 지금부터는 그 배경을 추적해본다.
2009년 북한 후계자로 결정된 김정은은 2013년 12월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을 죽였다. 장성택은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죽기 몇 개월 전부터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택은 2013년 12월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장에서 끌려나가 죽임을 당했다. 김정은이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해 이미 체포돼 있던 장성택을 회의장에 앉혀놓고 다시 끌어내는 모습을 꾸몄다.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도 권력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장애물로 등장한 친삼촌 김영주를 가차 없이 제거했다.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면서 이런 공포정치 비법을 전수했다는 말이 나왔다.
북한이 밝힌 장성택의 죄(罪)는 20가지가 넘었다. 북한은 “장성택 일당은 반당(反黨)·반(反)혁명적 종파 행위를 감행하고 강성 국가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는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며 장성택의 세력을 ‘종파(宗派)주의’로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일당이 부정부패를 일삼았다”면서 “장성택은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으며 마약을 쓰고 다른 나라에 병 치료를 가 있는 기간에도 도박장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장성택 처형으로 인한 북한 주민의 충격은 상당했다. 시장 아줌마들도 다 충격받아 물건도 안 팔고 앉으면 장성택 얘기만 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이야기다.
“김일성·김정일 때도 숙청이 있었고, 로열패밀리 권력 암투도 있었지만, 그때는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장성택 처형을 《로동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렸다. 신(神)처럼 여기는 로열패밀리가 ‘마약을 하고 외국에서 도박하고 수백만 달러 돈을 착복했다’고 하니 주민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장성택 처형과 관련, 그의 아내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이자, 김정은 고모)에 대한 고위층 탈북자들의 증언은 엇갈린다. 장성택 처형은 김경희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의견이 조금 우세했다. 김경희는 장성택과 오랜 불화를 겪고 있었고, 특히 장성택의 여성 편력에 진저리가 난 상태인 만큼 남편을 죽이는 데 찬성했다는 것이다.
외교관 출신의 한 고위 탈북자는 “김경희는 오빠와 더불어 나라의 주인 격이기 때문에 조카의 권력을 위해 남편을 죽이는 자기희생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장성택의 처형 방식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대공(對空) 화기인 고사총으로 쐈다는, 사냥개 120마리를 풀어 물려 죽게 했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처형 방식이 어떻든 김정은이 장성택의 머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도록 전시했을 가능성은 커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5월쯤 비공개로 열린 지지자 모임에 참석해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죽이고 머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도록 전시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9년 5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 모임의 참석자는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다른 이들이 보도록 전시(displayed)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생생하고 상세하게(graphically detailed) 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생생하고 상세하게’ 얘기했다는 것으로 볼 때 미공개 정보를 정보 당국으로부터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동생 김경철 처형 후 신변 위협 느낀 김명철
장성택 처형 직후 김정은은 ‘장성택 추종 세력 명단’을 만들어 장성택 측근과 가족들을 비밀리에 무자비하게 처형하고 숙청했다. 탈북자 출신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장성택 사건으로 노동당 간부 415명, 산하 기관 간부 300여 명, 인민보안성 간부 200명이 공개 총살됐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처형된 간부 중에는 김일성 빨치산 동료 가족도 포함됐다”면서 “가족과 친척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등 장성택 사건으로 적어도 2만명이 숙청됐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를 비롯한 북한 고위직 출신 탈북자 6명의 증언을 토대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대규모 처형·숙청 과정에서 장성택의 측근이었던 김경철 전 싱가포르 무역대표부 대표도 사형됐다.
김경철 전 싱가포르 무역대표부 대표는 김명철 대성무역 로마 지사장의 동생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김명철은 노동당 39호실 유럽자금총책이다. 그는 유럽에서 외국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김정일·김정은의 비자금을 능숙하게 분산 관리하던 전문가다. 게다가 북한은 이탈리아에 파견하는 인물은 엘리트 중 엘리트를 선발해 보낸다. 김정은 집권 이후 망명한 북한 외교관 출신 한 탈북민은 “이탈리아는 김정은 일가가 소비하는 각종 사치품의 주요 공급 루트”라며 “북한은 이탈리아를 통해서 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외교 전략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을 선발해 보낸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2000년 1월 유럽 국가 중에는 처음으로 북한과 수교를 맺었다.
김명철이 어떤 인물인지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성무역과 노동당 39호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대성무역은 노동당 39호실의 핵심 기구다. 대성무역의 모체는 무역성의 작은 부서(미상)였다. 이 부서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우상화 대상 건설에 필요한 물자, 선물, 1호 제품 구입을 맡아 수행하다가 노동당 39호실로 배속됐다. 본사 종업원 수는 약 600명이고, 산하 무역회사의 종업원 수는 약 5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39호실은 김정은 비자금의 핵심 기관이다. 39호실은 대성무역 등 소속 기관을 통해 직접 비자금을 조성하고, 인민군 정찰총국과 무역성 등 당·정·군에서 보내오는 ‘상납금’과 ‘충성자금’을 관리하는 김정은의 개인금고 역할을 한다. 39호실이 만들어진 것은 1974년. 김정일이 김일성 후계자로 정해진 직후로, 그 이듬해인 1975년 조선노동당 창건 30년 기념행사를 치르기 위해 39호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는 행사에 참석한 당 간부와 각계 주민 대표 등 1만명에게 시계와 컬러TV를 선물했으며, 그 행사 자금 마련과 집행에 39호실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노동당 39호실
39호실 자금은 북한 공식 예산과는 별도 운영되며, 오로지 최고 권력자의 통치자금으로만 사용된다고 한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이 직접 자금 용도와 규모를 지정하고 승인하는 등 39호실 운영은 극비리에 이뤄지고 있다”면서 “서기실과 39호실의 소수 측근이 자금을 관리한다”고 했다.
북한은 중앙당 주요 기관들과 도당(道黨) 등 지방당 조직에도 39호실 기능을 하는 부서를 두고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의 외화벌이는 총참모부, 호위총국 등 군부에서도 하지만 39호실이 가장 전문적이고 규모가 크다”며 “특히 금·은광은 39호실이 독점한다”고 했다. 세계에 퍼져 있는 북한 식당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도 39호실로 흘러 들어간다.
39호실은 김정일 통치 시절엔 해마다 5억 달러(약 60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직접 조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등으로 대북 경제 제재가 심해지면서 현재 39호실 소속 기관들이 직접 벌어들이는 수입은 예전의 절반인 2억~3억 달러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보 당국은 39호실이 마약 밀매와 위조달러, 가짜담배 제조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의심해왔다. 김명철 노동당 39호실 산하 대성무역 로마 지사장 같은 북한 해외 ‘금고지기’들은 각종 외화벌이 사업으로 조성한 혁명자금을 관리하고 평양에 상납하는 역할을 한다.
2001년 1월 대성무역 로마 지사장으로 부임
김정일의 신임을 받던 김명철은 2001년 1월 노동당 39호실 산하 대성무역 로마 지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2009년 김정일이 구입하려 했던 이탈리아 ‘아지무트’ 요트 계약 체결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김명철은 이탈리아산 요트 구입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유럽 금융당국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데다 요트 판매가 북한에 사치품 수출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2006년 10월)에 위반한다는 이유로 계약금을 압수했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6년 11월 김정일의 사치 생활을 억제하기 위해 대북 금수(禁輸) 품목에 아이팟,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스쿠터와 함께 고급 요트를 포함시켰다. 당시 김정일이 사려던 호화 요트 2척의 대금은 2000만 달러(약 268억원)에 이른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한 달간 먹여 살릴 쌀을 살 수 있는 금액에 육박한다.
김정은 초호화 요트 구매 때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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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으로, 사진 오른쪽 상단부에 700만 달러(약 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요트의 모습이 보인다. |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 그룹 소속인 프린세스 요트사의 한 관계자는 “95MY는 지하 거래시장을 통해 많은 주인에게 인도됐다”며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암시장 등을 통해 김정은에게 들어간 것 같다”고 외신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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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은 2010년 10월 리설주가 입어 화제가 된 레드 발렌티노의 베이지색 롱코트 등을 공수하기도 했다. |
김명철의 탁월한 비자금 관리
뭐니 뭐니 해도 김명철이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비자금 관리 실력 때문이었다. 그는 유럽의 많은 중소은행이 예금 유치만 중시한다는 허점을 파고들어 다양한 차명계좌를 관리했다. 이런 식이다. 외국인 명의로 다수의 차명계좌를 개설한다. 이 계좌들에 비자금을 분산배치하는데, 비자금을 찾을 때는 차명 예금주의 위임장을 지닌 변호사를 차명계좌가 있는 은행에 보내 다른 은행에 있는 자신의 계좌나 현지처 명의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이 비자금 일부는 유럽 계좌에 남기고, 일부는 북한에 송금한다. 송금된 자금은 중국 내 다수의 유령계좌에 예치하거나, 노동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달러로 보관한다.
북한 인사 명의의 계좌는 서방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가상의 외국인 계좌를 아무리 잘 개설해도 북한에 보내기가 어렵다. 김명철은 현지처를 두는 등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세탁하는 실력 덕에 자신의 계좌를 개설, 큰 금액의 비자금을 자유자재로 주무를 수 있었다.
김씨 정도의 ‘기술자’는 북한에서도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김정일·김정은 부자도 비자금 세탁과 관련, 김씨에게 많이 의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 안보 핵심 관계자는 “김명철은 이런 식으로 북한의 유럽 비자금을 총괄했다”고 전했다.
동생 처형 후 신변 위협 느낀 김명철, 美 망명 타진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유럽 비자금을 총괄해온 김명철에게 동생 김경철의 처형은 충격이었다. 동생은 김정은의 장성택 잔재 세력 청산 2단계 작업 때 사형당했다. 김정은은 장성택을 2013년 12월 처형한 뒤 2014년 초까지 ‘장성택 파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진행했으나, 내부적인 동요로 인해 중단했다. 7~8개월 뒤인 2014년 8~9월 김정은은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장성택의 그림자를 철저히 없애라’는 지시를 은밀하게 내렸다. 당 조직지도부는 “현대판 종파 일당이 집행했던 문제를 전면 재검증하고, 간부들의 충실성을 검증하여 이색분자를 색출·제거하라”는 지시를 당·보위부·군 등 검열기관에 하달했다.
당·보위부·군 등 검열기관은 총동원돼 지방간부는 물론이고 해외 주재 공관원 및 상사원들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김명철의 동생 김경철도 2014년 9월 처형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생 처형 소식을 접한 후 김명철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김명철이 들고 간 김정은 비자금 액수는?
김정은과 그 가족의 유럽 국가 은행 비밀계좌에 최소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의 비자금이 있고, 중국은행 다수의 가·차명 계좌에 수억 달러가 들어 있다는 점을 봤을 때, 김명철이 4000억원을 ‘꿀꺽’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김명철의 이탈리아 망명 직후 북한이 이탈리아 외교부에 김명철의 소재 파악을 요청하는 공한(公翰)을 끊임없이 보내고, 암살조를 파견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김명철이 4000억원을 들고 망명했다면 김정은은 경제적 측면에서 크게 휘청거렸을 것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 북한이 1년 동안 남쪽에서 받은 돈이 9600만 달러(약 1062억원) 정도였음을 감안했을 때 그렇다.
김명철이 망명하자 그를 대신해 ‘김정은의 유럽 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이 조성길 전 주(駐) 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였다. 조성길은 2018년 11월 잠적했다. 격노한 김정은은 조성길 잠적 직후 체포조를 현지에 급파했다.
김정은 유럽 비자금 총책 연달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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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이 망명하자 그를 대신해 ‘김정은의 유럽 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조성길 전 주 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도 망명했다. |
조성길과 가끔 식사를 했다는 안토니오 라치 전 이탈리아 상원 의원은 이 신문에 “(조성길의) 애국심이 강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잠적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며 “두 자녀를 키우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조성길 딸의 강제 북송설이 터져 나왔다. 이탈리아 외교부가 “조 전 대사대리가 아내와 탈출하면서 고교생 딸을 데리고 나오지 못했으며, 딸은 북한에 압송됐다”고 밝힌 것이다.
조성길의 후임으로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부임한 김천 대사대리는 “조성길의 딸은 잠적한 조성길 부부에 의해 집에 홀로 남겨졌기 때문에 부모를 증오했고, 조부모에게 돌아가기 위해 평양에 가길 원했다”며 “조성길의 딸은 치료를 받고 있긴 하지만 거기서 잘 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강제 북송설을 불식시키고 조성길 부부를 부도덕한 부모로 몰아가려고 외교 공세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조성길 딸의 북송(北送)이 강제인지, 자진인지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졌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입장이나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조성길은 2015년 5월 현지에 부임했다. 이탈리아는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한 달 뒤 문정남 당시 대사(현 시리아대사)를 추방했다. 이후 3등 서기관이던 조성길이 1등 서기관으로 승진해 대사 역할을 해왔다. 조성길은 북한 외무성에서 잘나가던 엘리트 외교관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고위급은 아니다”고 국회에 보고했지만, 북한 외무성 유럽국에서 조성길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는 태영호 전 공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조성길은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집안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조성길의 장인은 외무성 의전 국장을 지내고 태국 주재 북한대사를 지낸 리도섭”이라고도 했다.
4년 사이(2015~2018년)에 김정은의 유럽 비자금 총책을 맡은 인물들이 연달아 망명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김정은 비자금’의 액수가 엄청나고, 김정은 독재에 대한 엘리트층의 피로감이 극에 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