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박근혜 청와대의 ‘十常侍’ A씨 입을 열다

“박근혜 청와대의 실패 원인은 자기밥그릇만 챙긴 관료와 교수들 때문… 박근혜를 지킬 참모가 없었다”

  •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십상시 문건 내용은 완전 소설… ‘문고리 3인방’을 한자리에서 본 적이 없다”
⊙ ‘십상시’는 실무진이 주도하는 캠프 시스템에 불만 가진 일부 국회의원들 입에서 나온 이야기
⊙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관료와 교수·高스펙과 금수저 선호, 실무진에겐 권한이 없었다
⊙ 박 전 대통령에겐 충실한 비서뿐 정무적 판단 해줄 참모가 없어… 스스로 고립된 원인
⊙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무너진 원인 1위는 박근혜, 2위는 김무성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
6·13 지방선거로 보수정당이 완전히 무너졌다. 보수정당의 몰락을 가져온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태의 시발점은 지난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공개한 ‘정윤회 문건’이었다. 이 문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불씨가 됐다. 이때부터 보수정당의 쇠락은 시작됐다.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서 세간의 눈길을 끌었던 단어는 ‘십상시(十常侍)’다. 문서 작성자는 정윤회씨가 여권 관계자 10여명과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다고 적었고, 이들이 십상시로 불린다고 한 것이다.
 
  십상시는 중국 후한(後漢) 말기에 어린 황제인 영제(靈帝)를 조종해 부패한 정치를 행한 환관 집단이다. 문건에는 십상시라는 명칭 아래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1부속비서관, 안봉근 2부속비서관에 신동철 정무비서관, 음종환 홍보수석실 행정관 등 총 10명의 명단이 들어 있었다.
 
  문건에 따르면 정씨는 이들 10명과 2013년부터 월 2회씩 회동을 갖고 청와대 내부 사정과 인사문제를 논의해 왔다. 특히 정씨는 이 모임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연말 교체설을 정보지와 언론을 통해 “바람을 잡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적혀 있다.
 
  문건 공개 이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문건 내용이) 60% 이상 맞다고 본다”며 문서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이 ‘십상시 중 1인’에게 문서 내용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찌라시에 나라가 흔들렸다”는 반응을 보였고, 비선 실세를 근절해야 한다는 주변의 건의는 듣지 않았다. 보수세력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때 진상을 투명하게 밝히고 제대로 일을 처리했더라면 탄핵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박 전 대통령, 정윤회 문건 ‘찌라시’라며 묵살
 
《세계일보》는 ‘정윤회 문건’ 보도 후 압수수색과 세무조사 등으로 압박을 받았다.
  과연 십상시는 알려진 것처럼 국정을 농단한 부패세력인 것일까. 이들이 누구기에 박 전 대통령은 전국을 뒤흔든 문건을 ‘찌라시’라며 그토록 보호하려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십상시 명단이 국회 청문회와 언론 등을 통해 일부 알려지긴 했지만 ‘문고리 3인방’ 외에 정확한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고 3인방 외에 이름이 거론된 사람이 모두 10여명에 이른다. 십상시라고 불리는 사람이 실제로는 12~13명인 것이다. 3인방 외 십상시에 포함된 인물은 대부분 친박계 실세 의원의 보좌관이거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당직자 출신이다.
 
  6·13 지방선거 다음 날인 14일 강남 모처에서 A씨를 만났다. A씨는 ‘십상시’로 알려진 어떤 명단에서도 10명 안에 포함돼 있고 십상시로 거론되는 인물 중 캠프에서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모두와 동시에 일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2007년 대선캠프 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 곁에 있었던 인물로 청와대에 근무했다가 지금은 정치권을 떠나 있다. 더 이상의 신원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밝히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20여년을 지낸 A씨에게 먼저 6·13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했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뭐라고 보나.
 
  “자유한국당은 이미 정치적 동력을 잃었다. 보수진영을 지킬 사람은 없고 모두 자신의 영위에만 관심이 있다. 당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 패배 원인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찾는 사람이 많다.
 
  “물론 박근혜 정권이 실패하지 않았으면 보수정당이 이렇게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당이 완전히 바뀌었어야 하는데 지도부만 바뀌었지 당의 속성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자유한국당은 수도권과 PK 의원 탈당 러시가 일어날 것이다. 거대 여당이 탄생하는 일만 남았다.”
 
 
  십상시의 정체는
 
  A씨는 20여년간 정당과 청와대, 정부부처 등에서 ‘나랏일’을 해 왔다. 《세계일보》 문건 이후 ‘십상시’로 불렸던 그는 “십상시라는 명칭이나 각종 오해가 억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워낙 황당무계한 이야기라 억울하지도 않고 반박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문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가 있었는데 해당 인물들이 조사를 받지 않았나.
 
  “연락받은 바 없다. 김춘식 전 행정관만 내용 및 문서 유출 과정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문서 내용에 관한 건 사실확인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찌라시’ 수준의 문건이다. 청와대에는 그런 문건이 하루에 수십 건씩 돌아다닌다. 국정원도 그렇지 않은가. 그 모두가 팩트라고 볼 근거는 없다.”
 
  — 문건에는 이른바 ‘십상시 회동’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한 달에 두 번 만났다든가, 특정 중식당에 모였다든가.
 
  “그게 황당하다는 거다. 3인방이 한 달에 두 번 외부에서 사람들과 모일 시간이 있을 것 같은가. 나는 2006년 경선캠프에서부터 그들과 같이 일해 왔지만 셋이 외부에서 한자리에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청와대에서 셋이 모여 회의를 했는지는 내가 모르지만 박근혜 캠프와 그 주변을 아는 사람이라면 셋이 모여 무슨 논의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다 알 것이다.”
 
  — 10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없었다는 것인가.
 
  “10명은커녕 그중 서너 명도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사람들이다. 3인방이야 (십상시라는 명단 내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예 다른 상황이고, 다른 7명도 한자리에 모인 일이 없다. 말도 안 되는 소설이다. 특히 국정을 위해서? 박 대통령은 말이 나오는 것, 말이 돌아다니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 박 대통령을 아는 측근들이라면 여러 명이 모여서 청와대나 박근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 안다.”
 
  — 서로 다 친한 사람들 아닌가. 식사자리는 있을 수 있지 않았나.
 
  “다 캠프 출신으로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지만 각자 업무와 분야가 달라 모여서 무슨 일을 할 이유가 없다. 그중 한두 명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식사를 한 적은 있지만 그렇게 다 모일 이유도, 시간도 없다. 구심점도 없지 않은가. 그 명단에 수석, 아니 비서관급 한 명이라도 있나?”
 
  — 정윤회가 모았다고 문서에 나와 있다.
 
  “나는 정윤회를 본 적이 없다. 마주칠 일이 없었다.”
 
  — 최순실은. 10여년을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있었는데 못 봤다는 게 말이 되나.
 
  “캠프 실무진은 최순실의 이름은 알아도 본 적이 없다. 아예 캠프에 나타나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았다면 이 사달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순실은 대선 캠프나 당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에 들어간 후는 알 수 없다.”
 
  — 십상시 모임이 있었다던 중식당은 정윤회의 단골집인가. 언론에서 중식당 사장의 증언도 나온 바 있는데. 기업인들이 문서를 가지고 그 모임에 찾아왔다고 한다.
 
  “나는 가 본 적도 없는 곳이다. 그리고 중식당 사장이든 다른 손님이든 나나 다른 행정관들의 얼굴을 알아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장이라면 정윤회나 3인방의 얼굴을 안다 한들 그들이 누구와 만나는지 어떻게 알 수가 있나. 일방적인 말만 듣고 하는 얘기 같다. 모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십상시가 거론된 이유는
 
A씨는 2012년 대선 직후 박근혜 당선인이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할 때 관료와 교수 중심으로 인선했다고 설명했다.
  — 문건 내용으로는 실무진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전 국민에게 충격을 가져왔다.
 
  “허황된 소리다. 그럴 힘이나 있었으면 좋겠다.”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는 없지 않은가. 왜 그런 이야기가 시작됐나.
 
  “처음에 실무진이 좌지우지한다는 얘기를 하고 다니기 시작한 사람은 과거 친박이었던 L의원이다. L의원은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 몇몇 친박계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보좌관들을 잘 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캠프가 생기면서 ‘보좌진 10여명이 다 해먹는다’고 기자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다녔다. L의원은 결국 친박계에서 밀려났는데, 워낙 말이 많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거리를 둔 것이다.”
 
  — L의원은 왜 그런 얘기를 했나.
 
  “박근혜 대선캠프(2012년)는 실무진이 주도하는 캠프였다. 업무에서 국회의원들을 배제했다. 의원들이 일을 맡으면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고 쓸데없이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06년 대선경선캠프에 의원들이 많아 ‘무거운’ 캠프가 구성되다 보니 실패했다는 생각을 했고, 2012년 캠프에서는 ‘가벼운’ 캠프를 만들기 위해 의원들을 최대한 배제했다. 명함도 만들지 못하게 했고 쓸데없는 회의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섭섭함과 소외감을 느낀 의원들이 몇 있었다. 사실 L의원은 친박에서 거의 밀려난 상태였고 실무진 운운하는 이야기도 다들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의원들은 더 대통령과 가까이할 수 없게 됐고, 의원들이 언론에 흘렸던 그런 이야기들이 확대재생산된 것이다. 문건도 그런 맥락에서 생산됐다.”
 
  — 문건이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라는 의미인가 .
 
  “청와대는 수많은 정보가 떠도는 곳이다. 누군가 ‘실무진이 모든 걸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소문했을 거다. 그때(2013~2014년)만 해도 최순실의 존재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추론을 하다 보니 과거 캠프에서 중요한 일을 했던 실무진의 이름으로 추측을 한 거다. 그런 문서를 적지 않게 만들었다. 《세계일보》에 보도된 문건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봤다.”
 
  — 모두가 소설이란 얘긴가. 십상시로 불린 다른 사람들과 억울함을 공유하지 않았나.
 
  “다들 그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사실이 아니니까. 그런데 나중에 듣고 보니 최순실이 참여하는 팔선녀니 계모임이니 하는 모임들이 있지 않은가. 중식당 룸에서 만난다고들 하고. 보좌관들이 다 해먹는다는 이야기와 최순실 모임 얘기가 이리저리 섞여서 그런 희한한 내용이 나온 걸로 보고 있다.”
 
  — 조응천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문서의 60% 이상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분은 정치하는 사람 아닌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근거도 제시 못하고 말만 하는 거다. 우리 같은 당사자들이 아무 말 하지 않을 걸 아니까. 조 의원은 캠프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다. 그러려니 한다.”
 
 
  3인방은 삼각편대
 
  A씨는 2006년과 2012년 대선캠프에서 실무진으로 일하며 ‘문고리 3인방’과 지근거리에서 일했다. 청와대에서는 그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의 3인방에 대한 의견은 모두 대선캠프 시절 겪은 일을 토대로 한 것이다.
 
  —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오랫동안 겪어 온 사람인데. 그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한 것 아닌가.
 
  “3인방은 참모가 아니라 비서다. 그들은 박 대통령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조건 박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고,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모시는 사람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그분이 싫어하는 일은 안 하는 게 비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
 
  — 비서라도 주군이 잘못된 길을 가면 바로잡아야 하지 않나.
 
  “그건 참모의 역할이다. 비서와 참모를 별개로 써야 한다. 물론 비서도 참모와 함께 할 역할이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방법을 써서라도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유도하고 몰아가야 한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모든 사람이 동의해서 제안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캠프 시절 참모들은 박 후보를 설득하고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참모가 비서를 설득해서 한 방향으로 몰아가면 된다.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간 후 참모 없이 비서들만 주변에 있다 보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 3인방 중 가장 강력한 인물은 누구였나.
 
  “세 명이 합의를 봐야 하는 구조다. 셋 중 한 명이 어떤 일을 진행하려 하면 나머지 두 명이 동의해야 한다. 셋이 합의를 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실무진이 어떤 제안을 했을 때 정호성 비서관이 좋다고 했는데 이재만 비서관이 별로라고 하면 중단이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구조이긴 하다. 그런데 선거캠프는 스피드가 생명 아닌가. 빨리 돌아가질 않으니 실무진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은 주로 최경환 의원이 박 후보에게 직보해서 해결했다. 사실 최 의원이 없었으면 캠프가 돌아가질 못했을 것이다.”
 
  — 박 대통령이 3인방에게만 둘러싸여 있지 않았나. 최경환 의원 얘기는 잘 들었나.
 
  “국회에서 보고했다. 그 외에는 잘 만나 주지 않으니까. 최 의원은 친박이라는 정치적 스탠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하고 있는 사람이다. 박 대통령을 잘 모시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 선거 때는 그래도 효과적이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최 의원이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 보니 잘 모시고 싶어도 모시기 힘든 상황이 됐다.”
 
 
  박근혜 청와대에선 실무진 아무 힘도 없어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왼쪽에서 세 번째)은 국회 청문회에서 십상시 명단을 공개했다.박 의원은 비선실세국정농단 진상조사단장을 맡았다.
  — 친박계에서 실무진 힘이 강력했다는 얘기는 계속 나왔다.
 
  “캠프에선 어느 정도 가능했던 일이다. 박근혜 캠프는 슬림한 실무형 캠프였고 선거를 위해서는 그게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나 같은 실무진도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문제가 완전히 다르다. 청와대는 계급체계(hierarchy)가 강력한 조직이다. 대통령은 수석들과 회의를 하고, 일을 진행할 때는 수석-비서관-행정관이라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그러니 청와대 십상시라는 게 얼마나 어이없는 얘긴지 짐작이 가지 않나. 물론 3인방은 별개의 문제다.”
 
  — 김무성 당 대표가 청와대 행정관이 전한 고급정보에 화를 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스운 얘기다. 캠프 보좌관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이해가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행정관은 조직의 작은 부속 같은 것이다. 일개 행정관이 무슨 얘기를 한들 비서관·수석 또는 3인방이 그걸 들어주거나 대통령한테 전달할 것 같나? 절대 아니다.”
 
  — 조직 내에선 미약해도 청와대 밖에선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할 수 있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게 그런 행동이다. 초반에 그러다 잘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 비서관급인 3인방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실무진이 실세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십상시 중 모 행정관은 3인방 중 한 명과 대학동기로 친하다던데.
 
  “3인방과 다른 실무진은 정치적인 레벨이 완전히 다르다. 정호성 비서관과 E행정관이 대학 동기라는 것은 언론에서 하는 얘기일 뿐이다. 정호성이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시간이 있는 줄 아나. 솔직히 말하자면 정호성 비서관이 뭐가 아쉬워서 행정관들과 모여서 밥을 먹고 있겠나.”
 
 
  청와대 초기 구성에 충격받아
 
2012년 12월 대선 후 박근혜 캠프에서 열린 해단식.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청와대로 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A씨는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와 청와대에 참여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남다른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인 시절에는 주변의 얘기를 잘 들었다. 물론 참모들이 기술적으로 접근했다. 박 대통령은 여러 명이 같은 의견을 내면 수용하는 사람이었다. 청와대에 가서는 그분을 모셨던 사람들이 없다 보니 그분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 한두 명이 얘기하면 잘 안 들으니 아예 설득하려 하지 않고 자기 볼일만 본 거다. 대통령이 꺼리는 일이라도 올바른 길을 가게 만들어 주는 게 참모의 역할인데 관료와 교수들은 그런 일을 할 줄 모르고, 다른 길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 정치인으로서의 박근혜와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가 달랐던 것인가.
 
  “캠프 사람들은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나서 이제 제대로 개혁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인수위 구성에서부터 충격을 받았다. 인수위와 초기 청와대 면면을 보면 거의 모두가 교수 또는 관료 출신이다. 우리도 청와대에 들어가긴 했는데 수석이고 비서관이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정권 초반에 할 일이 산더미인데 정무적 감각이 전혀 없는 교수와 관료 출신들이 앉아 있으니 일의 진행이 되질 않았다. 역대 정권을 보면 정권 초기에 캠프 출신 수석이 없는 청와대가 있었나.”
 
  — 어떤 식으로 일이 안 됐다는 건가.
 
  “교수와 관료 출신들이 대선캠프에서 만든 공약들을 다 망쳤다. 다 뒤집어엎고 칼질하고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예산이 문제라는 거다. 행정가들만 데리고 정치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청와대에서 배웠다.”
 
  — 정치권에서 당 대표와 비대위원장 등을 지낸 박 대통령이 왜 정치인들을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나.
 
  “박 대통령은 정치인들을 ‘정치 건달’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인들이 하는 기획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 자신에게 쓴소리하지 않는 사람들을 선호했던 것 같다.
 
  “박 대통령이 당 시절엔 어쩔 수 없이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청와대 들어가고 나서는 자기 마음대로 인사를 했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 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학벌 좋고 외국 유학하고 왔거나 외국어 잘하는 사람, 집안 좋은 금수저, 고(高)스펙 들이다. 예를 들면 조윤선 수석 같은 사람이다.”
 
  — 실무진도 그렇게 뽑았나.
 
  “그런 편이었다. 청와대 인사에는 언론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국회 보좌관 출신들이 청와대에 많이 들어갔다고 리스트까지 만들어 기사로 도배하더라. 낙하산 얘기도 많았고, 그런데 이번 정부에선 탁현민 하나 못 몰아내지 않나.”
 
  — 청와대 인사 시스템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있다면.
 
  “세월호 사태다. 정무적인 감각을 가진 참모들이 있었다면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대통령이 안 보이면 공관에 쳐들어가서 박 대통령을 끌어내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청와대는 어땠나. 대통령한테 제대로 알리고 나오라고 한 사람이 없지 않나. 심하게 말하자면 대통령이 안에서 숨을 안 쉬고 쓰러져 있어도 몰랐을 사람들이다. 아니 신경을 안 썼을 사람들이다. 관료와 교수들이 대통령이 어떻게 되든 자기한테 무슨 상관이 있겠나. 청와대 있다가 나와서 장·차관 하고 그것도 안 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되는 거다. 청와대 안에는 이 정권을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이 없었다.”
 
 
  2016년 당청갈등의 이면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 정윤회와 보좌진 10인 등 ‘십상시’가 모여 국정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2016년 총선 당시 청와대가 당을 무시하고 의견을 듣지 않았다는 당 관계자들의 주장이 있다.
 
  “당에서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당 대표가 왜 있나. 대표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어도 안 되고, 눈치만 보고 있어도 안 된다. 대통령 입장에서야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걸 적절히 해결하는 게 당 대표의 역할이다.”
 
  — 오늘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천개입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편집자 주: 검찰은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공천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그게 법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특검 수사는 끼워맞추기 식이다.”
 
  — 청와대가 당 비례대표 공천에 개입한 것은 사실 아닌가.
 
  “당에서 만든 명단이 청와대로 갔다 오는 건 의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이 봤을 때 정말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은 거부할 수도 있다. 그게 문제인가. 그런데 사실 박 대통령은 그런 정무적인 언사를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다. 탈락 후 대통령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얘기가 부풀려지는 거다. 탈락하면 이유야 어쨌든 다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 2016년 공천 당시 당청갈등이 심했다. 김무성 당시 당 대표는 과거 친박이기도 했는데. 박 대통령이 과거 친박이었던 김무성 의원과 홍사덕 유승민 이혜훈 의원 등을 포용했어야 하는 것 아닌지.
 
  “그들에겐 다 박 대통령과 코드가 안 맞는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었다. 박 대통령은 주변에 조직과 계파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김무성 의원과 홍사덕 의원은 본인이 ‘좌장’이 되고 싶어했고 조직을 만들고 싶어했다. 물론 박 대통령을 잘 모시려고 한 것이겠지만, 정치적인 계파 욕심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유승민 의원도 박 대통령이 미워했다기보다는 정치적 싸움이었다. 유 의원이 대권 욕심을 너무 일찍 드러낸 것이 갈등의 원인이 됐다. 원내대표 당시 갈등이 불거진 것인데, 선거 때도 아닌데 발톱(대권 욕심)을 드러냈다는 점을 박 대통령은 용납하지 못했다. 또 TK에서 계속 대통령을 내기는 곤란한 일이니 유승민 의원도 깊게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개인적인 욕심을 내는 것 같이 보였다.”
 
  — 대통령이 김무성 당 대표를 지나치게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김 대표는 그렇게 생각했으면 끝까지 청와대와 맞서 싸우든지, 아니면 청와대와 함께 가야 했다. 당 대표를 누가 무시한 적이 있나. 무시당할 일을 안 하면 되지 않나. 당시 총선에서 패배하고 당이 갈 길을 잃은 데 김 대표의 책임이 크다. 지금 보수정당이 무너진 원인 1등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면 2등은 김무성 전 당대표다.”
 
  — 자유한국당이 무너진 이유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을 제대로 봐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신한국당 총재 당시 15대 총선에서 수많은 인재를 영입했고 민중당과 민주당을 끌어안았다. 1997년 정권을 뺏기고 나서 한나라당이 10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체질을 제대로 야성화했기 때문이다. 적폐에 가까운 민정당 출신들은 사라졌고 민중당과 민주당 출신들이 활개치며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2008년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당은 관료와 교수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정치보다 자신의 안위가 먼저인 사람들이다. 이런 현상이 10년 이어지다 보니 곪아 터진 거다.”
 
 
  박근혜는 도그마에 갇혀 있는 사람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세력은 재기할 수 있을까.
 
  “없다. 불가능하다. 이미 내적으로 균열이 생겨 무너진 것 아닌가. 또 친박계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친박이란 조직이 아니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바라보며 따르는 사람들일 뿐 아무런 결속력도 조직력도 없다.”
 
  — 박근혜는 어떤 사람인가.
 
  “도그마(dogma: 신조·信條)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도그마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스로가 갇혀 있다.”
 
  — 10여년간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정권창출에 기여하지 않았나. 박근혜에게서 어떤 점을 보았나.
 
  “박근혜라는 사람은 과거나 국가, 사회에 대한 빚이 없다. 부모를 국가에 바쳤고, 그 후 나라 덕을 본 것이 없었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엄청난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관료사회와 정치권, 재벌 등에 박근혜가 개혁의 칼을 휘두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거다.”
 
  A씨는 “지금의 보수정당에는 희망이 없다”며 “과거 보수정당의 리더들을 다시 분석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김영삼 신한국당 총재가 외부인사를 다수 영입하고 민중당, 민주당 등을 합당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무성, 홍준표, 김문수 등 지금 보수정당을 이끄는 중진급들이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권에 들어왔다.
 
  그는 “박근혜라는 사람은 특유의 리더십으로 보수정당을 이끌어 온 공(功)과 김영삼·이회창이 이끌어 개혁한 보수정당의 체질을 과거로 돌려놓은 과(過)가 모두 있다”며 “보수정당은 박근혜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 과거 보수정당의 체질개선을 이끌었던 신한국당 시절의 초심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십상시는 지금 어디에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 당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에게 “김영한 전 수석 비망록에 십상시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면서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문고리 3인방 외 장경상, 이창근, 이춘호, 음종환, 신동철, 김춘식이다. 알고 계시죠?”라고 물었고, 조 전 사장은 “네, 맞습니다”라고 확인했다. 이 밖에 백기승 전 국정홍보비서관, 조인근 전 연설기록비서관, 최진웅 행정관 등이 십상시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2007년 대통령 후보경선 당시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참모 그룹을 형성해 온 인물들로, 2012년 대선 당내 경선 때는 자체적으로 정기모임을 가지며 대선 경선 및 본선에 대비해 정무적인 사안들을 챙겨 왔다. 이들은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비서관, 선임행정관, 행정관 등으로 근무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검찰이 징역 2년6월을 구형한 상태고,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신동철 전 비서관은 블랙리스트 관련으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6월의 실형이 선고됐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음종환 전 행정관과 장경상 전 행정관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춘호, 김춘식 전 행정관도 마찬가지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