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히트의 내면과 문학은 15년간 유럽·미국을 떠돌며 쇠처럼 단단해져
⊙ 동시대의 시문학파 김영랑, 서정시를 쓰며 불면의 시대 견뎌
⊙ 동시대의 시문학파 김영랑, 서정시를 쓰며 불면의 시대 견뎌
Bertolt Br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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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히트의 시선집. 그는 수많은 나라를 전전하며 망명 생활을 했으나 그의 내면과 문학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
Ist beliebt. Seine Stimme
HÖrt man gern. Sein Gesicht ist schÜn.
Der verkrÜppelte Baum im Hof
Zeigt auf den schlechten Boden, aber
Die VorÜbergehenden schimpfen ihn einen KrÜppel
Doch mit Recht.
Die grÜnen Boote und die lustigen Segel des Sundes
Sehe ich nicht. Von allem
Sehe ich nur der Fischer rissiges Garnnetz.
Warum rede ich nur davon
Daß die vierzigjährige Häuslerin gekrÜmmt geht?
Die BrÜste der Mädchen
Sind warm wie ehedem.
In meinem Lied ein Reim
Käme mir fast vor wie Übermut.
In mir streiten sich
Die Begeisterung über den blühenden Apfelbaum
Und das Entsetzen über die Reden des Anstreichers.
Aber nur das zweite
Drängt mich, zum Schreibtisch.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베르톨트 브레히트(김광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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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규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출판된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 |
사랑 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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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히트의 카툰. 그는 서사극 이론과 탁월한 희곡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다. |
물론 ‘처녀의 젖가슴’과 ‘꽃피는 사과나무’ 같은 풍성함과 감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은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에 더 마음이 쓰인다. 여기서 ‘엉터리 화가’는 나치의 히틀러를 지칭한다.
이 시는 1939년 쓰였는데 브레히트는 이미 1933년 고향 독일을 떠나야만 했다. 히틀러가 정치사상범으로 그를 체포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후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모스크바, 미국, 스위스, 동독 등 15년간 망명객으로 떠돌아야 했다. 브레히트 자신의 표현대로 ‘구두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꿔 가며’ 여러 곳을 전전해야 했으나 그의 내면과 문학은 담금질을 하듯 단단해졌다. 혹자는 브레히트 시를 망명문학이라 명명한다.
브레히트와 김영랑

브레히트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쓴 같은 해, 시문학파 시인 김영랑(金永郞·1903~1950)은 〈독(毒)을 차고〉라는 시를 《문장》지에 발표했다. 시문학파는 동시대 ‘카프’와 대조적인 사조를 표방한 문인집단이다.
브레히트가 나치에 탄압받을 때 영랑 시인 역시 일제의 억압을 견뎌야 했다. 비극적 현실 속에서 문학하는 일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문학이 현실과 투쟁할 순 없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내용)를 지녀도 문학이라는 형식이 아름답지 않으면 예술로서 존재할 수 없다. 시는 궁극적으로 언어예술이다.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변영로 같은 시문학파 시인들은 그런 불면(不眠)의 시대에 아름다운 시(서정시)를 쓰며 시대를 견뎌야 했다.
독(毒)을 차고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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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시문학 동인 창립 당시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김영랑 정인보 변영로. 뒷줄 왼쪽부터 이하윤, 박용철, 정지용 시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