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문·이과(文理科) 통합으로 21세기에 맞는 인재 길러 내야”

  • 글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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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일(韓中日) 중에서 우리나라가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 가장 커”
⊙ “유전자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면 사람의 모든 행동이 이해돼”
⊙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은 큰 실수 … 환경에 함부로 손대는 것은 범죄”
서울 이대 종합과학관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글쓰는 과학자’인 최 교수는 엄청난 독서가이기도 하다. 사진=영상미디어
최재천(63)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만큼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니는 학자도 드물다. 진화생물학자, 동물행동학자, 환경운동가, 생태학자, 칼럼니스트 ….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어린 시절 그는 시인(詩人)이 되고 싶어했다. 엄하고 가부장적이었던 그의 부친은 법조인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연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최 교수가 과학자가 된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들에게는 행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그만큼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헌신해 온 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생태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 진화학과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기여한 그의 공로는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람이 있다. 국립생태원 건립에도 그의 활약이 있었다.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하버드에서 곤충행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미시간대 교수를 거쳐 1994년 귀국,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1997년 최 교수가 쓴 《개미제국의 발견》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한국 교양과학도서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외국 학자들의 연구서를 베낀 것이 아니라, 국내 학자로는 최초로 직접 정글을 누비며 연구한 자연과학의 결과물을 토대로 대중을 위한 과학서로 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최 교수가 줄곧 외쳐 온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첫 번째 시도였으며, 이후 자연과학 교양서 출판의 기폭제가 되었다.
 
  2001년 한 일간지와 가진 최 교수 인터뷰를 찾아보니 “귀국하면서부터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몸을 바치겠다는 선언을 스스로에게 했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그는 수천 번의 대중 강연을 가졌고, 6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번역서와 논문을 포함하면 저술이 수백 편이 넘는다. 《조선일보》에는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라는 고정칼럼을 400여 회째 연재하고 있다. 귀국 후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국내 최초의 ‘에코과학부’
 
  지난 2월 중순 최채천 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신촌에 있는 이화여대 캠퍼스를 찾았다. 교내(校內)에 들어서자 정문 왼쪽에 자연사박물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사박물관이자 최 교수가 오랫동안 관장으로 있던 곳이다. 교정을 가로질러 20분 가까이 오르막길을 따라가자 최 교수의 에코과학부가 있는 종합과학관 건물이 나타났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에코과학부’는 최 교수가 2006년 서울대에서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신설된 학부다. 그는 학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외국 대학에는 생물학과가 여러 개의 세부 전공 분야로 나뉘어 있습니다. 주로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미시적인 생물학 분야와 생태학과 진화생물학 분야를 다루는 거시적인 생물학으로 나누어 놓았는데, 두 분야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생물학은 워낙 위계적인 학문이라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다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생물학의 역사가 짧다 보니 대부분의 대학에서 생물학을 한 분야로 묶어서 가르칩니다. 제가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우리나라에서 생물학과를 두 과(科) 체제로 만든 첫 실험을 한 것입니다.”
 
  — 우리의 생물학도 세계적인 트렌드에 발맞춰야 한다는 뜻이군요.
 
  “생물학이 지금처럼 가면 물리학이나 화학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물학은 연구 방법론에서는 여전히 물리나 화학 분야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입니다. 생물학이 홀로서기를 하지 않으면 ‘생물학의 세기’에 경쟁력을 갖추기가 힘들어요. 이화여대에서 이렇게 앞서서 하고 있는데 다른 대학은 아직 시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과학의 대중화’에 힘써 오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미국 과학재단은 한때 연구비의 일부를 반드시 자신의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쓰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 정도로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하버드대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 교수도 대중을 위한 과학서를 쉼 없이 썼습니다. 윌슨 교수의 제자인 저도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1994년 제가 귀국하면서 언론에 칼럼을 연재하고,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주변 교수들이 안 좋게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저한테 대놓고 ‘자기가 연예인인 줄 아나’라며 핀잔을 준 교수도 있었습니다. 미국과 너무나 다른 학문 풍토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준 충격
 
2017년 1월 21일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오른쪽)와 최재천 교수가 서울 시내 호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이자 저술가 중에 한 명이다.
  최 교수는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렸을 때 집에 책이 많지 않아 가지고 있던 책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특히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최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천직이 된 자연과학을 하게 된 것도 우리 교육 현실에서 우연히 이과(理科)를 선택하게끔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언론에서 자신의 독서습관에 대해 ‘다양성’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이를 ‘통섭형 독서습관’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지적 관심 영역은 전공인 동물행동학, 생태학 등의 생물학 분야를 넘어, 문학, 철학, 역사, 사회과학, 심리학, 미술, 경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011년에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책 이야기를 자서전식 에세이로 엮은 《과학자의 서재》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가 20년이 넘게 신문에 글을 연재하고, 최고 인기의 대중적 과학자로 자리매김한 것이 독서에서 나온 힘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 교수는 자신이 읽은 책 중에 가치관에 특별히 큰 영향을 미친 책 한 권 꼽아 달라는 말에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펴낸 《이기적 유전자》를 들었다.
 
  〈세상을 살면서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경험을 해 보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아마 단 한 번도 그런 짜릿한 경험을 못하고 생을 마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그런 엄청난 경험을 했다.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의 영어 실력이 그렇게 출중하지 못했다.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까. 그럼에도 그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점심때부터 읽기 시작한 것이 다 읽고 난 뒤에 눈을 들어 보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밤을 새운 것이다.〉(《과학자의 서재》 중에서)
 
  그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후 자칫 인생이 허무하다며 염세적으로 빠지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동안 인간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설정한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인간도 다른 동물과 하등 다를 것 없이 유전자의 지배를 받아 행동하는 생명체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데서 오는 충격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의 말이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보는 세상이 완전히 새롭게 보입니다. 마당에서 모이를 쪼는 닭이 짝짓기를 하고 번식을 하면서 자기 종의 종족보존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거든요. 유전자가 닭이라는 개체의 전체 행동을 좌우합니다. 유전자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면 사람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됩니다. 인간이 엄청나게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극단적인 선행을 하는 모순적 행위도 설명이 됩니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경험을 하게 되는 거예요.”
 
  — 지난 1월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 박사께서 방한하셨을 때 교수님께서 직접 그를 인터뷰하신 내용이 언론에 소개되었는데요.
 
  “저로서는 두 번째 만남입니다. 2009년 ‘다윈의 해’를 맞아 옥스퍼드 그의 집을 방문해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도킨스 박사는 영국의 시사 월간지 《프로스펙트》가 2005년부터 독자 투표를 통해 ‘세계 지성 100인’을 뽑는데 놈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스티븐 핑커 등과 더불어 단골 리스트에 오르는 인물입니다. 2013년에는 1위에 올랐어요. 그만큼 과학을 대중에게 알린 공로가 크다는 거겠죠. 본인 스스로도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그는 연구논문을 쓰는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 저술가’라고 봐야 합니다. 1995년 영국 옥스퍼드대 석좌교수로 갔는데, 당시 교수직 제안 조건이 과학의 대중적 이해를 전담하는 것이었습니다.”
 
 
  진화학과 종교에 대해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교수. 1929년생으로 ‘사회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최재천 교수의 스승이기도 하다. 사진=위키피디아
  — 그는 모든 종교를 부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도킨스가 2006년 펴낸 《만들어진 신》은 전 세계에서 300만 부 넘게 팔렸는데, 생물계의 복잡성이 이미 신(神)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을 과학을 통해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책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즉 다윈주의자 3명(도킨스, 윌슨, 데닛)이 재미있게도 2006년 동시에 종교 문제를 다루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도킨스는 앞서 말한 《만들어진 신》에서, 저의 하버드대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편지》라는 책에서, 그리고 대니얼 데닛 교수의 《주문을 깨다》에서 각각 종교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최 교수는 “도킨스 박사가 종교의 해악을 고발하며 종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윌슨 교수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종교인의 참여를 요청함으로써 종교와 화해를 모색했고, 데닛 교수는 종교도 진화적으로 인간행동의 적응현상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종교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당히 ‘전략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말했다.
 
  — 최 교수님은 종교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지요.
 
  “저는 과학과 종교가 대척점에 서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앞서 말한 세 분 교수 중에는 데닛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참고로, 저는 2006년 돌아가신 강원용 목사님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과학에 엄청나게 큰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어느 날 ‘최 교수는 진화론자인데 교회는 어떻게 나오는 거야’ 하시더군요. 저는 약간 멈칫거리면서 ‘아 독실한 운전기사로 다닙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아내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거든요. 강 목사님은 교회 장로들을 상대로 내게 진화론 강의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진 종교 지도자 덕택에 종교와 과학의 대화가 시작된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스승인 윌슨 교수님에 대해서도 한마디해 주시죠.
 
  “윌슨 교수는 사회생물학 분야를 개척한 분입니다. 80세가 넘은 그는 지금도 개미를 들여다보면서 연구를 하고, 개미에 대한 논문을 씁니다. 개미 연구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윌슨 교수님께서는 평소 제자들에게 ‘하비 사이언스’(hobby science)를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우리말로 ‘취미과학’이라고 하면 뜻이 살아나지 않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과학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연구논문과 대중을 위한 과학책 두 가지를 모두 쓰시는 분입니다. 저도 이분의 영향으로 논문 쓰기와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는 일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겁니다.”
 
  — 우리나라처럼 진화학의 토대가 척박한 곳에서 진화학을 설파하시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이웃 일본만 해도 국민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데 별 거부감이 없습니다. 관련 책도 무지 잘 팔리고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다윈이 150여 년 전 《종의 기원》을 펴냈을 때와 윌슨 교수가 사회생물학을 통해 세상에 준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갑니다. 인문학에서는 ‘인간이 독특하다’고 하는 관점이 지배하지만, 진화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놓고 이야기하거든요. 인간도 진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생명체일 뿐이니까요. 원래 동양 전통 사상 관점에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었는데, 진화학과 정서적으로도 크게 상충되지 않습니다. 유교 문화권인 한·중·일(韓中日) 3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지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이 심합니다.”
 
 
  “생물 다양성 보호에 모두 나서야”
 
2016년 4월 26일 한국을 찾은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와 최재천 교수가 인간의 미래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긴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평소 강연에서 ‘인간만이 DNA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라고 강조하시는데.
 
  “도킨스 박사도 그의 저서에서 ‘인간은 유일하게 유전자의 폭력에 항거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유전자의 명령대로 행동하고 있구나 하는 것 자체를 알아 버린 동물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지극히 잔인할 수도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교육을 통해 행동을 순화시킬 수도 있는 지적 생명체죠.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자신의 기원을 알고, 우주에서 티끌보다 작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극히 겸허해질 수도 있는 동물입니다. 그리고 다른 생명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명체이기도 하고요.”
 
  — ‘알면 사랑한다’가 교수님의 좌우명이라고 들었는데, 많은 생물학자들이 생물 다양성 보호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스승이신 윌슨 교수님도 생물 다양성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오셨습니다. 요즘 제가 가장 많이 하는 강연 주제 중에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기후변화 문제가 중요한 것은 기온이 1~2도만 올라도 너무 많은 생물들이 멸종한다는 겁니다. 2도만 올라도 지구 생물종 절반이 멸종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인간은 기후변화에 어떻게 기술을 이용해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나머지 생명체는 그렇게 하지 못하죠. 전 세계 동식물 절반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과연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최 교수는 “제가 아마 우리나라 학자 중에 열대(熱帶)에서 직접 생물의 생태를 연구한 1세대일 것”이라며 “열대에서 어마어마하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생태계를 직접 보는 순간 생물에 대한 가치관 자체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저는 평생 열대에 한 번 못 가 보고 죽는 사람이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요즘은 접근로가 좋아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절박하게 느끼려면 이 문제가 피부에 와 닿아야 하는데, 아침 출근할 때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곰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보이지는 않거든요. 피부에 잘 와 닿지않기 때문에, 엄청나게 중요한 생물 다양성 고갈문제를 대중에게 전달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멸종 생물이 있나요.
 
  “한 생물종은 수억 년 진화의 산물이지만, 한 번 사라지면 다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생물종이 소중합니다. 저는 사라진 생물 하나에 대한 각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요. 남미 코스타리카 고산 지역에 살던 ‘황금두꺼비’는 현재 멸종생물로 기록되었습니다. 저는 이 황금두꺼비를 찾아 100밤 넘게 밀림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딱 두 번 봤습니다. 혹시 마주칠까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 지금도 간혹 밀림에 가면 혼자 플래시를 들고 정글 안을 돌아다닙니다.”
 
  — 생물학자의 길을 걸은 것을 후회하신 적은.
 
  “문과로 진학했다면 지금 상당히 편협된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과를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저한테는 잘된 일이죠. 그래도 문과에 미련이 남아서 한 발은 문과에 걸치고 다른 한 발은 이과에 걸친 채 학창생활을 했습니다. 결국 남들보다 엄청나게 늦었죠. 그런데 지금은 마치 세상이 저를 위해 변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양쪽의 지식을 써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 평소 문과와 이과를 나누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만큼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학창시절 구체적으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도 없었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어쩌다 운명처럼 과학자가 된 것이죠. 저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은 목표의식도 분명하고 공부하는 양도 엄청납니다. 저의 대학시절보다 10배는 더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 직장이 없잖아요. 이것은 아니죠. 제가 요즘 가장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분야 중에 하나가 바로 교육 문제입니다. 이과 문과의 구분을 없애고, 학생들이 여러 직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폭넓은 교육을 해야 합니다.”
 
 
  “문·이과 통합 교육해야”
 
  — 그렇게 하면 이과 교육이 부실해지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이 문·이과(文理科) 통합에 대해 오해를 합니다. 교육부도 이 방향(문·이과 통합)으로 가겠다고 해 놓고 막상 잘 안 되는 것이 학부모들의 눈치를 너무 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도 하기 힘든데 왜 아이들에게 문·이과 양쪽을 하게 하느냐는 거죠. 그런데, 문·이과 통합으로 이과 교육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리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육부는 학부모들의 압력에 밀려 이과 공부를 쉽게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문·이과를 통합하려고 하는데 완전히 방향을 잘못 짚은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향 평준화죠.”
 
  최 교수는 “문·이과 통합은 인문학 전공 학생들에게는 정보통신, 생명과학, 경제경영 등 세상에 필요한 학문을 접하게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기초과학을 공부를 하지 않고는 절대 살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한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 국립생태원장을 3년이나 지내셨는데요.
 
  “제가 초대 원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3년간 휴직하고 생태원장 직을 맡으려니 이화여대가 허락을 안 해 줘서 환경부가 한 달 동안 발표를 못했어요. 1분도 쉬지 못한 날이 허다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는 강연 요청을 무척 많이 받는 편인데, 생태원장 재직 시 3년 동안 1주일에 두세 번씩 강연을 했습니다. 다만 제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생태원이 있는 충남 서천까지 직접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려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는데, 2년 연속 1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습니다.”
 
  — 강연 요청은 얼마나 들어오나요.
 
  “예전 어느 정치인이 1년에 3000개 정도의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그 가운에 70~80개 정도의 강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느 날 저도 대충 계산해 보니 1년에 6000개 정도의 요청이 들어오는 겁니다. 며칠 출장이라도 다녀오면 하루 종일 강연 요청을 고사하는 편지를 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1년에 80~100건 정도 한 것 같네요.”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환경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환경은 우리 세대만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대대손손 이어서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가 함부로 환경에 손을 대는 것은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개발은 큰 실수라고 하는 겁니다. 국민 의식 속에 자연과 함께하는 ‘생태문화’가 하루빨리 뿌리 내려야 합니다. 이 작은 나라를 이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개발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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