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의 하드보일드

최규선 게이트의 주인공 ‘숨겨진 게이트(Gate)’를 열다

그는 어떻게 중동 최대의 부호 알 왈리드 왕자와 중국 리커창 총리를 만났나

  •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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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불사조不死鳥가 되고 싶다… 전경련 회장 되는 게 꿈”
⊙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하고도 잇단 스캔들로 구치소행
⊙ 마이클 잭슨·알 왈리드 왕자·조지 소로스에 이어 넬슨 만델라까지 동원
⊙ DJ에게 ‘팽’당한 후 이회창씨 진영에 들어가려다 거부당해
⊙ 1.03평 구치소에서 재기 다짐… 정치쪽엔 눈 안 돌리겠다
최규선 썬텍·썬코어 회장이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규선(崔圭善) 썬코어·썬텍 회장(56)을 처음 본 것은 2000년 무렵이다. 당시 그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새정치국민회의 권노갑(權魯甲) 고문 사무실에 있었다. 권 고문은 한화갑(韓和甲)씨와 함께 ‘투갑스’로 불리며 세도를 부리고 있었다. 이름에 똑같이 갑(甲) 자가 들어간 것을 언론이 영화 〈투캅스〉를 본떠 지어 준 별명이었다.
 
  동교동계 좌장이던 권 고문 방은 조선일보 정치부 여당 출입기자였던 내가 반드시 체크해야 할 장소였다. 당시 최규선씨가 1997년 대통령선거 때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운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나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다. 분명한 것은 권 고문 사무실과 그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기자들이 내 인생 망쳐”
 
  그 후 나는 사회부로 복귀했고 최씨는 신문의 1면을 장식하게 됐다. 한국의 5대 게이트 중에 하나라는 ‘최규선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그런 그와 처음 대화한 것이 16년이 지난 올 6월이다. 최씨는 언론에 원망이 많았다. 최규선 게이트는 최씨 운전기사의 폭로로 시작됐으나 단초를 연 것은 조선일보였다.
 
  한 기자와 나눈 이야기가 대서특필됐기 때문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격노(激怒)를 부른 것은 동아일보 기자가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비무장지대(DMZ)에서 평화 콘서트를 열 것이라는 사실을 김 대통령이 발표하기 전 터뜨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참 언론을 원망하더니 ‘평생 소원’이라며 색다른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조선일보에서 90년사(史)를 보내 왔어요. 왠줄 아세요? 제가 조선일보 1면에 많이 등장했다는 거예요. 정말 할 말이 많은데 조선일보는 저를 항상 악당(惡黨) 취급만 합니다. 조선일보가 절 악당으로 만들었으니 인터뷰를 해 줬으면 합니다.” 그의 과거 보도를 살펴보니 제대로 된 것이 없이 대개 추측 수준이었다.
 
  인터뷰를 수락하자 그는 불교도처럼 두 손을 합장(合掌)하더니 여의도 전경련회관 17층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무실이 전경련회관에 있다는 것이었다. 약속 당일 그곳으로 가니 ‘케이티롤’이라 불리던 회사 이름이 ‘썬텍’으로 바뀌어 있었다. ‘선코어’가 아닌 ‘썬코어’에, ‘선텍’이 아닌 ‘썬텍이었다.
 
 
  — 썬코어, 썬텍의 ‘썬’이 최규선의 ‘선’입니까.
 
  “케이티롤이라는 사명(社名)을 6월 말에 변경했어요. 최규선의 ‘선’일 뿐 아니라 태양(Sun)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태양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잖아요.”
 
  — 밖에 있는 경호원이 건달 같아 보이는데.
 
  “UFC 무제한급 챔피언 출신인데 성격은 무지 착합니다.”
 
  — 최 회장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니 온통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王子) 이야기뿐이더군요.
 
  “왕자님(최 회장은 항상 그를 이렇게 불렀다)을 처음 만난 것은 1995년이에요. 마이클 잭슨이 소개해 줬습니다. 1997년 11월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두 사람이 우리나라를 살렸습니다. 12월에 마이클 잭슨이 내한해 김대중 대통령 손을 들어 줬고 알 왈리드 왕자가 내한해 ‘한국에 투자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이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물꼬를 텄지요.”
 
  — 알 왈리드 왕자가 그때 얼마를 투자했습니까.
 
  “2억 달러요. 당시 환율로 3000억원가량 됐습니다. 제가 최규선 게이트로 ‘의왕대학원’을 다녀온 뒤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업에 진출했을 때도 왕자님이 도와주신 겁니다.”
 
 
  “왕자님은 삼성전자 투자하려 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대우 투자 권유”
 
사우디의 알 왈리드 왕자는 지금 최규선씨를 지지해 주는 가장 큰 배경이다.
  — 당시 알 왈리드 왕자가 한국의 어느 기업에 투자했습니까.
 
  “왕자님은 삼성전자에 투자하고 싶어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가 4만원 정도 했어요. 지금 삼성전자 주가가 140만원을 넘으니 삼성전자 주식을 사 놨더라면 대박이 났겠지요.”
 
  —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대우에 투자시키라’고 해서 대우에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 왕자가 쫄딱 망했겠네요.
 
  “김 대통령께서 ‘삼성은 우리를 그간 도와준 것이 없다’고 하셨어요. ‘김우중(전 대우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된다’는 말도 하셨고요.”
 
  — 알 왈리드 왕자가 원망하지 않던가요.
 
  “왕자님은 별말 없으신데, 아직도 주변 인사들이 수군댄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 알 왈리드 왕자가 ‘최규선 게이트’를 모릅니까.
 
  “다 소상히 아시죠. 최규선 게이트 때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도 내 주셨는데요.”
 
  — 그런데 왜 알 왈리드 왕자가 최 회장을 아직도 믿나요.
 
  “글쎄요 …. 왕자님과 저의 지난 20년 우정을 돌이켜 보면 카르마(KARMA : 운명이라는 불교용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겠네요. 저는 남녀뿐만이 아니라 남남(男男)관계에 있어서도 천생연분이 있다고 믿습니다.”
 
  — 지금 알 왈리드 왕자와 최 회장이 하는 사업은 구체적으로 뭡니까.
 
  “제다 프로젝트.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 1008m 높이의 200층 건물을 짓는 ‘킹덤타워’와 그 주위에 두바이 3배 규모의 ‘킹덤시티’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알 왈리드 왕자가 왜 그런 고층 건물을 짓는 겁니까.
 
  “그분은 자기 생애의 마지막 역작(力作)으로 킹덤시티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가지요. 제다를 중동의 관광허브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제다 아시나요?”
 
  — 들어보기만 했습니다.
 
  “사우디의 수도가 리야드인데 제다는 구(舊) 수도입니다. 이슬람 최고의 성지인 메카와 차로 30분 거리고요. 홍해(Red Sea)와 인접해 있습니다. 왕자님께서는 한국의 저뿐 아니라 중국 투자도 끌어올 계획인데 저를 대 중국 연결고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알 왈리드 왕자 역시 중국에 투자한 금액이 많지요.?
 
  “뱅크 오브 차이나(BOC)에 30억 달러, 프랑스에 있는 유로 디즈니에 이어 최근 개장한 상하이(上海) 디즈니에도 지분을 갖고 계십니다.”
 
  — 그렇다면 중국에도 요인(要人)들을 많이 알고 있을 텐데 왜 최 회장을 개입시켰습니까.
 
  “중국 시티뱅크 회장이나 BOC회장 등을 물론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중국인도 아니고 중국통도 아닌 이 최규선이에 의해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해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리셴녠 중국 전 주석 딸 통해 리커창 총리 접견 기회 잡아”
 
중국 베이징의 중난하이는 최고위급 인사들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사진 왼쪽부터 최규선 회장, 사마드 킹덤호텔 회장, 사우디의 알 왈리드 왕자, 중국 리커창 총리, 왕이 외교부장이며 오른쪽 끝이 리셴녠(李先念) 전 국가주석의 딸이다.
  — 5월 16일 알 왈리드 왕자가 4시간 동안 한국에 체류한 뒤 최 회장과 함께 중국으로 갔지요?
 
  “저를 위해 일부러 들르신 거예요.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도 국빈 면담장소인 자광각(紫光閣)에서 리커창 총리,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셨습니다. 저도 참석했습니다.”
 
  — 아까 최 회장 스스로 말했듯이 중국통(中國通)도 아니면서 그런 자리를 마련한 비법이 뭡니까.
 
  “왕자님의 말씀이 있으신 후 작년 8월부터 제가 중국에만 38번 들어갔습니다. 제가 리셴녠(李先念) 전 국가주석의 따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도움이 컸습니다.”
 
  — 중국에서는 ‘최규선 게이트’를 모르던가요.
 
  “중국 측이 주중 한국대사관을 통해 저에 대해 신원조회를 했는데 스캔들 관련 부분만 문서로 2~3페이지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절 웰컴(Welcome)했습니다.”
 
  — 그럼 중국은 제다의 킹덤시티 어디에 투자하는 겁니까.
 
  “킹덤시티가 총 1500만 평 규모인데 그중 100만 평을 차이나타운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 썬코어나 썬텍은 뭘로 돈을 벌고요.
 
  “조명시설, 무인(無人) 모노레일, 전기 셔틀버스 등의 시행사(Developer) 자격이지요.”
 
  — 최 회장 관련 사업을 검색해 보니 제다 프로젝트 외에 국내에서 전기버스 사업도 하더군요.
 
  “중국 BYD라는 회사가 전기차 분야에서 미국의 테슬라를 제치고 1등입니다. 우리가 거기서 K9이라는 전기버스를 도입해 시범 운영하려 합니다.”
 
  — 어디서 운행할 계획인가요.
 
  “부산버스조합에서 올해 10대를 운행할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추가로 스무대를 더 들여올 예정이고요. 우리나라의 미세먼지로 인한 환경오염이 OECD 38개국 가운데 최악입니다. 전기버스를 더 들여와야 하는데 환경부 기준에 문제가 좀 있어요. 2시간 충전해서 60~80km를 달려야 환경부가 인증을 해 주는데 우리 K9은 4시간 충전해서 300~500km를 주행할 수 있거든요.”
 
  — 전기버스 사업이 돈이 됩니까.
 
  “AS센터 운영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기버스가 내연기관 버스보다 AS가 간단하고 비용 면에서 크게 절감됩니다. 서울에 내연기관 버스가 1만여 대, 부산에만 2500여 대가 운행되고 있는데 대체한다면 전망이 밝습니다.”
 
  — 그 버스를 사우디의 제다에서도 운행한다?
 
  “이슬람 라마단이 7월 5일에 끝나는데 이슬람은 라마단 이후 2주 동안 휴식을 취합니다. 제가 왕자님을 8월 초쯤 만나 사업계획을 발표할 겁니다.”
 
  — ‘최규선 게이트’를 기억하는 기업·단체장들이 최 회장의 버스를 선뜻 구매할까요.
 
  “그래서 제가 명예회복을 하고 싶은 겁니다. 한국 사회는 한 번 실패하면 무조건 그 사람을 험담하고 부정적으로만 봅니다. 한 번 실패했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면 외국에선 격려를 해 주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가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환호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누가 그런 소릴 했다면 바로 매도해 버렸을 겁니다. 또라이라고.”
 
 
  “최규선 게이트는 ‘결재권자’가 없는 이상한 게이트”
 
  — 그 소리는 최규선 게이트가 억울하다는 뜻입니까.
 
  “최규선 게이트를 사람들이 잘 몰라요. 최규선 게이트는 최규선과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아들 김홍걸씨가 스포츠토토 사업에서 타이거풀스라는 회사가 사업자가 되도록 힘을 썼다는 것입니다. 사건 기록 어디에도 ‘누구에게 힘을 썼는지’가 안 나와요. 문체부 장관이나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이나 누구에겐가는 영향력을 행사해야 될 거 아니에요? 결재권자, 그게 없는 이상한 게이트였죠.”
 
  — 그렇게 억울하면 왜 2년6개월간 복역했습니까.
 
  “2년6개월이 아니고 2년이었어요. 당시 저는 청와대 인수위원회에서 나와 백수 상태였습니다. 타이거풀스를 운영하던 송재빈씨가 허주(虛舟·고 김윤환 의원)의 사위였는데 사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DJ재단 이사로 있는 이수동씨가 타이거풀스의 경쟁자를 지원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이수동씨를 찾아가 ‘이런 이야기가 들리는데 조심하시라’고 한 적은 있어요. 김홍걸씨한테도 그 사실을 말했어요. ‘사실 이런 일이 있는데 당신이 얘기 좀 해라. 영향력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요. 그게 전부입니다.”
 
  — 그럼 타이거풀스에서 한푼도 안 받았습니까.
 
  “받긴 받았지요. 주식으로 30억원어치.”
 
  — 그럼 게이트 맞네, 그 주식 지금은 어디 있습니까.
 
  “다 휴지조각 됐지요.”
 
 
  “김홍걸씨 진짜 마이클 잭슨인가 확인하러 미국에 와… 그때부터 인연”
 
마이클 잭슨의 저택인 네버랜드에서 마이클 잭슨과 최규선 회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회장이 안고 있는 것이 마이클 잭슨이 아끼는 침팬지 버블스다.
  — 김홍걸씨와는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1996년 미국 LA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마이클 잭슨을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 조세형씨 같은 분들이 극구 반대했어요. ‘최규선이는 사기꾼’이라고요.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짝퉁 마이클 잭슨이 수십 명 있는데 최규선이가 짝퉁 가운데 한 명을 데려올 것이다. 그러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김대중 대통령께 직접 들었어요. ‘규선이 이런 이야기가 있네’라고 말해 주시더군요. 김 대통령께서는 제가 진짜 마이클 잭슨을 알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김홍걸씨를 보낸 겁니다.”
 
  — 최 회장 관련 기사가 제각각이더군요. 지금부터 주민등록 조사 좀 하겠습니다. 몇 년생입니까.
 
  “1960년생이요.”
 
  — 고향은?
 
  “전남 나주입니다.”
 
  — 전남고를 중퇴했습니까.
 
  “고3 초에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종로학원에서 검정고시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 서반아어과에 들어갔습니다.”
 
  — 대학 3학년 때 미국으로 갔지요?
 
  “위스콘신대로 갔습니다.”
 
  — 집안에 돈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선친께서 원래 복싱을 하셨어요. 목포사범학교를 나와 한국 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내시다 초등학교 교사가 됐고 나중에 교장까지 하셨어요. 재테크를 잘하셔서 나주에서 세금을 두 번째로 많이 낼 정도가 됐습니다. 땅을 사 놓은 것이 터미널 부지가 됐거든요.”
 
  — 복싱선수에서 교사로, 다시 갑부(甲富)로 대단하시네요.
 
  “제 선친께서 이철승(李哲承) 전 의원과 함께 한국 반탁(反託)운동의 대가였습니다. 돈을 모으신 게 흥미로운데 당시 월급을 받으면 쌀을 사 놓으셨대요. 쌀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서 논을 샀는데 그게 개발이 된 거죠.”
 
  — UC버클리대에서 평화와 분쟁학을 전공했습니까.
 
  “그게 정치학과에 소속된 겁니다.”
 
  — 석사·박사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말이 많던데.
 
  “전 학사 학위밖에 없어요. MBC ‘2580’의 PD가 일방적으로 그렇게 주장한 겁니다. 사실 확인도 안 해 보고 센세이셔널하게 보도만 한 거죠.”
 
 
  “스칼라피노 교수는 진짜 내 스승”
 
스칼라피노 교수의 회고록이 국내 출판된 것을 기념해 마련한 자리에서 최 회장과 스칼라피노 교수가 함께하고 있다.
  — 최 회장이 스승이라고 주장한 스칼라피노 교수도 사실은 스승이 아니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내 참, KBS가 한국에 온 스칼라피노 교수에게 던진 첫 질문이 ‘최규선씨 박사 학위가 있습니까?’였어요. 스칼라피노 교수께서 게이트 때 탄원서를 제출하셨으며 그 탄원서 내용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또한 지난 2010년 스칼라피노 교수님의 회고록인 《신동방견문록》을 제가 번역하여 출판했습니다. 이때 교수님께서 서문을 써 주셨고, 그 서문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 일부 보도를 보니 최 회장이 스칼라피노 교수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알고 미리 한국으로 와 스칼라피노 교수가 묵을 호텔의 옆방을 잡아 놓고 우연히 만난 것처럼 했다더군요.
 
  “아주 소설을 쓰라고 하세요.”
 
  — 최 회장이 마이클 잭슨을 알게 된 게 아들에게 색동옷을 입힌 뒤 마이클 잭슨 집 주변에서 1주일을 서성대자 마이클 잭슨이 불쌍하게 여겨 만나 줬다는 보도도 봤습니다.
 
  “마이클 잭슨 집 주변에는 1년 내내 미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드는데 제가 서성댄다고 눈에 띄겠습니까? 그리고 애를 데리고 기다렸다니, 제가 아동학대자입니까? 그보다 더한 이야기도 있었어요.”
 
 
  “내가 경복궁 배경으로 양치질한다는 헛소문까지 버젓이 보도”
 
  — 뭡니까, 그게.
 
  “채널A에 톱텐 뉴스라고 있는데 우연히 제가 그 방송을 보다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경복궁 앞에서 잠옷차림으로 양치질을 하면서 사진을 찍은 뒤 ‘이게(경복궁이) 우리 집이다’라고 허풍을 쳤다는 거예요. 코미디입니다. 이런 것들이 한국사의 씁쓸한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고요.”
 
  — 또 어떤 보도에는 마이클 잭슨의 어머니에게 차를 사 줘서 환심을 샀다던데.
 
  “제가 차를 사 준 게 아니라 마이클이 제게 롤스로이스 팬텀을 선물했지요. 돈이 필요할 때 팔아 버렸지만.”
 
  — 그럼 마이클 잭슨은 어떻게 만난 건데요.
 
  “UC버클리대학에서 ‘약물남용 방지 교육(Drug Abuse Resistense Education)이라는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주정부는 물론 LAPD(로스앤젤레스 경찰국)도 후원하는데 행사에 한국인으로는 제가 유일하게 참석했습니다. 기금을 모으기 위한 갈라 디너 행사가 LA 센트럴호텔에서 열렸는데 거기 마이클 잭슨이 참석했습니다.”
 
  — 그래서요.
 
  “제가 마이클 잭슨의 광팬이었습니다. 중1 때 처음 산 LP가 잭슨 파이브 시절의 ‘마리아’였어요. 마이클 잭슨이 앉아 있던 헤드테이블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다 사전에 순서가 정해져 있어요. 제가 목이 빠져라 그쪽을 쳐다보고 있는데 마이클 잭슨의 경호원이 제게 와 묻더군요. ‘Are you korean?(너 한국인이니)’ 해서 맞다고 했더니 마이클 잭슨이 오라고 손짓을 했어요. 가자마자 마이클 잭슨이 이러더군요. ‘I know how to spell Seoul.(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스펠링을 안다)’ 당시 미국사람들은 Seoul을 제대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마이클 잭슨 알게 된 것은 한국인 출신인 그의 형수 때문”
 
IMF 당시 방한한 세계적인 거물 투자가 조지 소로스 회장이 김포공항에서 최규선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마이클 잭슨은 이런 내용을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형수, 즉 제키 잭슨의 아내가 한국에서 입양된 분이었대요. 마이클 잭슨이 어렸을 때 그 형수가 어머니처럼 마이클에게 잘 대해 줬다고 합니다. 형수가 돌아가셨는데 그리움이 대단했다고 하더군요. 마이클은 경호원에게 제 연락처를 적어 놓으라고 했어요. 그로부터 두 달 뒤 저희 가족을 샌타바버라에 있는 ‘네버랜드’(Never Land ; 피터팬에 나오는 늙지 않는 낙원이라는 뜻)로 자기 생일파티에 초대했고요. 모든 비용까지 부담해 가면서요. 그게 1989년의 일입니다.”
 
  — 마이클 잭슨의 생일파티는 어떤가요.
 
  “영화배우 말런 브랜도, 소피아 로렌부터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거성(巨星)들이 다 모였어요. Dreamworks SKG에서 지금도 활발히 활약하고 있는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 제프리 카젠버그(Jeffrey Katzenberg) 등도 있었어요. 네버랜드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면서 황홀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내게 내린 은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 후론 어떻게 마이클 잭슨의 환심을 샀습니까.
 
  “독서광인 마이클에게 한국 관련 책들을 보내 줬지요. 탈춤·민요·승무(僧舞) 같은. 책을 보내 주면 항상 비서실장을 통해서 고맙다는 편지가 왔어요. 그게 인연이 돼 1996년 10월 2일 잠실운동장에서 역사적인 마이클 잭슨 공연이 열리게 된 겁니다.”
 
  — 알 왈리드 왕자나 조지 소로스를 소개해 준 것도 마이클 잭슨이라면서요.
 
  “소로스는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서 소개받았어요. IMF가 터졌을 때 소로스가 한국에 오느냐 마느냐가 관심거리였습니다. 그가 오는 게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에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거든요. 소로스는 원래 겨울 휴가차 스키 타러 갈 예정이었는데 한국에 왔습니다.”
 
  — 알 왈리드 왕자는 어떻게 소개받았습니까.
 
  “1995년이었습니다. 왕자님의 하나뿐인 아들 칼리드가 마이클의 팬이었는데 자기의 생일파티 때 마이클을 초대해 달라고 왕자님을 조른 겁니다. 왕자님은 모든 채널을 동원하여 당시 ‘팝의 황제’로 불리던 마이클 잭슨을 왕자님 소유의 LA 포시즌스 호텔에서 아들 칼리드와 친구 몇십 명을 불러 파티를 열었으며 마이클 잭슨이 잠깐 참석해 생일 축하를 해 주었습니다. 왕자님도 처음 사업을 시작하였을 때는 한국의 현대나 동아건설 같은 회사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마이클이 절 소개시켜 줬을 때 왕자님이 한 첫마디가 ‘너 직업이 뭐냐(What do you do?)’였어요. ‘학생’이라고 하자 ‘아주 재밌네(So funny)’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현대나 동아도 안다’라고 하셨어요. 그때 왕자님은 한국의 IMF를 예견했습니다. 한국에 투자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지금은 아니라면서 ‘한국이 세계 경제 동향에 안이하게 대처한다’고 했어요.”
 
  — 알 왈리드 왕자와 마이클 잭슨이 마지막엔 안 좋게 헤어졌지요.
 
  “왕자님께서 2억 달러를 투자하고 마이클은 자기 콘텐츠를 제공하는 합작사업을 했는데 틀어졌어요. 마이클은 밤낮이 바뀐 경우도 있고 취침 시간이 일정치 않았어요. 그래서 왕자님 전화도 여러 번 놓쳤다고 합니다. 통화가 돼도 잠결에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왕자님은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인격적으로 모욕 받았다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왕자님이 제게 그러더군요. ‘최, 마이클은 사업가가 아니라 꿈을 꾸는 사람이야’라고요. 마이클이 정도 많고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졌지만 제겐 왕자님이 절실히 필요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미 고인이 된 마이클에게 무척이나 미안합니다.”
 
 
  “1982년 미국 망명 시절 김대중 대통령 처음 만나”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는 최 회장의 결정적인 기여가 있었다.
  — 마이클 잭슨과 알 왈리드와 소로스와의 인연은 알겠고 김대중 대통령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1982년 위스콘신대학에 다닐 때 DJ 어르신(최 회장은 DJ를 꼬박꼬박 DJ 어르신이라고 호칭했다)께서는 미국에 망명 중이었습니다. 그분 강연에 갔는데 ‘내 시대는 갔다. 이제는 여러분의 시대가 왔다’는 요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손을 들고 ‘선생님, 대한민국 역사의 발전을 위해 꼭 대통령이 되셔야 합니다’라고 했어요.”
 
  — DJ의 기분이 매우 좋았겠네요.
 
  “당시 문동환 목사께서 함께 있었는데 강연이 끝나고 저를 부르시더군요. ‘자네를 보자고 한다’면서. 그 자리에 안기부 요원들도 있었는데 그런 발언을 한 절 보고 ‘자네 용기에 놀랐다’며 좋아하셨어요.”
 
  — DJ가 최 회장을 항상 ‘자네’라고 불렀습니까.
 
  “호칭이 달라졌어요. 최군, 최동지, 최보좌역으로 부르다가 나중엔 ‘규선이’라고 하셨죠.”
 
  — 그 이후 DJ와 어떻게 인연을 이어 갔습니까.
 
  “미국에 계실 때는 워싱턴에 가서도 뵙고 1985년 한국으로 들어와 동교동에 가택연금됐을 때도 자주 찾아뵀어요.”
 
  — 경찰이 들여보내 주던가요.
 
  “누구냐고 묻길래 ‘미국 유학생’이라고 하니까 문을 열어 줬어요. 1991년 대선을 1년 앞두고는 마이클의 어머니인 캐서린 잭슨이 서울에 오셨는데 제가 여기저기 구경시켜 드렸고요. 가수 이선희씨도 만났으며 그때 DJ 어르신께서도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캐서린 잭슨은 인권운동가라고 호감을 가졌어요.”
 
  — 그럼 1997년 대선 직전까지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이우영상이라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관여했습니다. 짐 캐리가 주연한 〈마스크〉라는 영화도 들여왔고요.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사장과도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 어르신께서 절 호출하신 겁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딸과 사위도 내가 초청”
 
  — 마이클 잭슨, 알 왈리드, 조지 소로스의 힘으로 DJ가 대통령이 된 셈인데 왜 쫓겨났습니까.
 
  “그뿐 아니라 몇 명 더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딸과 사위를 한국으로 부른 거지요. 넬슨 만델라는 DJ 어르신께 오랫동안 자신이 차고 다니던 시계를 선물했고 DJ께서는 만델라에게 당신께서 미국 망명 기간 내내 애용하셨던 낡은 손가방을 선물했습니다. 세계적인 인권운동가, 세계적인 투자가, 세계적인 팝가수가 다 DJ 어르신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신 겁니다. 제가 몇 가지 잘못을 했어요. 삼성 이건희 회장을 뵙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삼성자동차에 투자하라는 역할을 제가 했거든요. 왕자님을 뵈러 사우디의 리야드에 갈 때 한남동 이 회장 자택으로 가 친서도 받았어요. 삼성 전용기도 이용했고.”
 
  — 그 뒤 삼성을 위해 브루나이로 갈 때도 삼성 전용기를 탔죠.
 
  “브루나이에 갔다 오니 사직동팀에서 절 불렀어요. 사직동팀은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곳인데 왜 절 부르나 궁금했어요. 그와 동시에 최재승 의원이 급히 보자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만나 보니 최 의원이 제게 ‘규선아, 너 이제 죽었다. (김대중 정부가) 재벌개혁 한다는데 넌 이건희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라며 ‘너는 이제 골로 갔다’고 했어요.”
 
  — 어떻게 보면 DJ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인데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저처럼 권력의 정점으로 들어간 사람도 없을 겁니다. 대통령께서는 항상 절 제일 먼저 찾으셨어요. 그러다 보니 동교동계 사람들도 절 미워했지요. 처음에는 대통령께서 절 비판하는 목소리를 전부 막아 줬습니다. ‘정치바닥은 냉혹하다’는 조언도 해 주시고 ‘자네(최규선)가 나보다 훌륭한 점이 많다’며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드러내 놓고 칭찬도 해 주셨습니다.”
 
 
  “삼성 전용기 2번 이용한 게 눈밖에 나게 된 이유”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직후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 마이클 잭슨, 최규선 회장이 포즈를 취했다.
  — DJ의 눈밖에 나게 된 데는 삼성그룹의 전용기 이용뿐 아니라 다른 사건도 있었지요.
 
  “왕자님과 소로스의 방한과 관련해 시사저널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 DJ께서 불쾌해했습니다. ‘공은 나한테 돌려야 하네’라고요.”
 
  — 그러다 결정타가 된 게 마이클 잭슨의 DMZ 공연이었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얘기한 게 1면 톱으로 보도됐어요. 북한 어린이돕기 공연을 할 거라는. 얼마나 쇼킹한 뉴스였는지 북한 방송에서 그날 저녁 반응을 보였을 정도입니다. 그때 대통령께서 불같이 화를 냈어요. ‘내 귀에 수십 번 말이 들어와도 자네를 옹호했는데 동아일보 기사가 뭔가. 자네 나의 3단계 통일론을 읽어 본 적이 있나. 남북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않나.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이 북에 대해서 뭘 알아’라면서요. 그 일이 있기 직전에도 절 험담하는 보고서가 자주 전달됐다고 들었습니다.”
 
  — 요지는 DJ가 ‘한 건’하려다 놓치니 화를 낸 거네요.
 
  “뭐, 그건 ….”
 
  — 최 회장을 험담하는 보고서에는 무슨 내용이 있었습니까.
 
  “제가 루이 13세만 마신다, 여자 연예인을 만나고 다닌다, 도로에서 경광등을 켜고 다니면서 위세를 부린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 미움받을 짓만 하셨네.
 
  “결국 청와대에 들어가기로 다 돼 있었던 게 저만 못 들어가는 결과가 됐습니다. 청와대 다이어리, 수첩도 다 받은 상태였는데. 김중권 비서실장이 절 불러 제 나주 시절부터 싹 조사한 보고서를 보여주더군요. 그러면서 ‘1기에는 (청와대에) 못 들어가지만 2기에는 꼭 넣어 주겠다’고 절 달랬습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될 뻔하다가 막판에 좌초”
 
  — 그때 들어갔다면 무슨 일을 맡기로 돼 있었습니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죠.”
 
  — 지금도 후회가 됩니까.
 
  “당시, 제가 뭘 모르는 상태에서 권력의 심장부에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후회가 되지 않습니다. 그 길은 제가 갈 길이 아니었으니까요.”
 
  — 옆에서 지켜본 DJ는 정말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었습니까.
 
  “매사에 철두철미하셨습니다. 극한의 자기 절제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저에게 독서의 중요성도 가르쳐 주시고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애증(愛憎)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제 눈에 비친 국민회의의 내부 모습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당 운영은 너무나 독재적이었습니다. DJ 어르신 앞에서는 전부 두 손을 모으고 있고 그분을 신성시(神聖視)했습니다. 제가 그런 데 적응 못해 회의 때 혼난 적도 있어요.”
 
  — 왜요.
 
  “DJ께서 말하면 다들 받아적는데 저만 안 적었거든요. DJ께서 그게 못마땅하셨는지 ‘왜 자네는 메모를 안 하나’라고 하시더군요. 전 ‘필요한 건 다 적습니다’라고 했는데 그런 모습도 보기 못마땅하셨을 겁니다. 게다가 이상한 사람도 많았고.”
 
  — 누가 이상합니까.
 
  “실명으로 말하긴 그렇고 대북 관련 장관을 지낸 분인데 아무리 봐도 이쪽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피아(彼我) 구분이 안 된다고 할까?”
 
 
  “권노갑 고문이 마지막으로 불러 ‘우리와 인연 끊자’ 통보”
 
  — 여하간 여러 실수로 DJ에게 ‘팽’당한 건 맞지요.
 
  “DJ 어르신께서 ‘외국에 나가 있어라’라고 했어요. 너무 억울해 일본에 있던 권노갑 고문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문 편집장이 절 본 게 그때일 겁니다. 권 고문 사무실에 나갔거든요. 재기하나 싶었는데 2001년 1월경 눈이 엄청나게 내리던 어느 날 권 고문이 평창동 자택으로 절 부르더군요. ‘대통령님 지시인데 홍걸이와의 관계를 끊어라. 우리하고도 인연을 끊어라. 정치하려고 해도 우리 당에서는 공천을 안 주니 포기하라’는 요지의 말을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직접 메시지라면서요. 권 고문은 홍걸씨에게도 당부했어요. ‘홍걸이 너도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내 사주 보니 정치와는 안 맞아”
 
사우디 리야드에서 최규선 회장과 밥 호크 전 호주 수상, 알 왈리드 왕자가 대화하고 있다.
  — 그 소리만 하고 내보내던가요.
 
  “몇 푼의 돈을 쥐여주더군요. 그간 고생한 대가였겠지요.”
 
  — 액수가 얼마나 됐나요.
 
  “그걸 밝히긴 그렇고 그 돈으로 선산(先山) 땅을 샀습니다. 전남 영암에. 그런데 그게 또 언론에 나온 거예요. ‘불법으로 묘지를 조성했다’고.”
 
  — DJ당에서 쫓겨나 이회창씨 진영으로 가려 했었죠.
 
  “너무 열을 받아 윤여준 의원과 당시 이회창 총재 특보를 하던 유승민 박사를 만났습니다. 유승민 의원이 위스콘신대 출신이거든요. 그런데 이회창씨 진영에서 여러 가지를 검토해 보더니 ‘노(No)’라고 거절하더군요.”
 
  — 그리고 최규선 게이트가 터졌고.
 
  “의왕대학원 1.03평 구치소에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나 자신을 잃어 버리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종이에 내가 잃은 것과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적어 봤어요. 결론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게 더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재기할 수 있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 돈을 얼마나 벌고 싶습니까.
 
  “전후 이라크 재건사업으로 1억700만 달러를 벌었는데 10배는 더 벌어야죠.”
 
  — 앞으로의 꿈이 뭡니까.
 
  “전경련 회장이 되는 겁니다. 보란듯이 재기할 겁니다.”
 
  — 혹시 사주(四柱)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의왕대학원에서 나온 뒤 조용헌씨 소개로 용하다는 명리학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분이 그러시더군요. 저는 센 물이기 때문에 흙땅(정치권력)을 치면 흙탕물이 된다고요. 흙은 권력인데 제가 흙탕물로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어요? 정치하지 말라는 소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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