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킹을 만나 그로부터 낙천성, 에너지, 유머, 생명력 전달받아”
⊙ “15살 때 만난 친구와 15년여 지난 최근에야 결혼”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15살 때 만난 친구와 15년여 지난 최근에야 결혼”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에디 레드메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레드메인의 수상은 영화 〈나의 왼발〉에서 왼발을 제외하고 전신이 마비돼 왼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아일랜드의 화가이자 작가인 크리스티 브라운 역으로 역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탄 대니얼 데이-루이스에 비견할 만하다.
호킹(73) 박사는 레드메인이 상을 타자 자기 페이스북에 “내 역을 해 상을 탄 에디 레드메인 축하한다. 참 잘했어.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런던 태생으로 케임브리지대학을 나온 레드메인은 연극으로 토니상과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탄 실력파로 한때 버버리 모델을 하기도 했는데 2012년 9월에는 잡지 《배니티 페어》에 의해 연례 국제적으로 가장 옷 잘 입는 사람의 명단에 올랐다.
레드메인은 연기만이 아니라 노래도 잘 불러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로 나와 열창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작년 12월 한나 백셔와 결혼,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란히 앉아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레드메인은 스타 티를 안 내는 사람이다. 주근깨가 있는 귀여운 동안에 큰 미소를 지으면서 질문에 자상히 답하고 사진도 함께 찍으면서 편안한 느낌을 줬다. 참 총명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필자가 그에게 “당신의 역은 〈나의 왼발〉의 대니얼 데이-루이스의 역에 비견할 만하다”고 말하자 “그렇다면 정말 영광이다”라며 겸손해했다.
“호킹의 이면에 비상한 여인이 있는 줄 몰라”
—스티븐 호킹을 언제 어디서 처음 만났습니까.
“영화에 나오기 전만 해도 난 그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케임브리지대에 다닐 때 거리에서 휠체어를 탄 그를 보고, 또 목소리도 듣긴 했지만 나는 13세 때 과학을 포기하고 예술사를 공부했지요. 그래서 촬영을 시작하기 닷새 전에 케임브리지 호킹의 자택에서 그를 처음 정식으로 만났을 때 그 점부터 사과했지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반년간 호킹에 관해 연구했는데 그의 이면에 그렇게 강력하고 정신을 고양시키며 또 우스운 이야기와 함께 비상한 여인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후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지요. 호킹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언제 그의 역을 자신 있게 해낼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살아 있는 사람의 역을 본인과 같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매일 저녁 촬영한 필름을 보면서 한없이 실망했었지요. 그러나 나는 호킹을 만나 그로부터 낙천성과 에너지와 유머와 생명력을 전달 받아 그것을 영화에 가져감으로써 자신감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최근에 결혼을 했는데 둘이 오래 사귄 사입니까.
“한나와 나는 15세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 뒤로 15년여가 지난 지금에서야 사랑이 영글게 된 것이지요. 한나는 특별한 여자이며 난 운이 좋은 남자지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습니까.
“실제로 믿습니다. 나와 한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흥미 있는 화학작용이겠지요. 나와 한나뿐 아니라 호킹과 그의 부인 제인, 그리고 마리우스와 코젯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적으로 몹시 고된 역인데 어떻게 휴식을 취했는지요.
“촬영 후 한나에게 욕조에 물을 틀어 달라고 해서 목욕을 했어요. 그리고 정골 요법사로부터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만난, 호킹과 같은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난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 든든한 바탕이 되었지요.”
“과학에 유연성이 있어 좋다는 것을 알게 돼”
—한나를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요.
“나는 남자 전용 학교에, 한나는 여자 전용 학교에 다닐 때 한나의 학교에서 자선 패션쇼가 열렸지요. 그때 우리 남학생들이 초대를 받았는데 나는 웃통을 벗고 무대를 걸어야 했습니다. 여학생들이 열광을 하더라고요. 쇼 후에 파티가 열렸는데 그때 방 저쪽에 있는 한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지요. 아주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우리 둘은 연극과 미술을 좋아하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지요.”
—당신 아내 제인 역의 펠리시티 존스와 공연한 경험에 대해 말해 주세요.
“우리는 같은 극장에서 무대 연기를 함께 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펠리시티는 영화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나의 육체의 연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우린 둘이 하나가 되어 육체적인 춤을 춘 셈입니다. 그로 인해 감정적으로 느껴야 하는 무기력감이 많이 상쇄됐지요.”
—영화에 과학과 수학에 관한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에 대해 잘 압니까.
“난 과학과 수학에 엉망입니다. 대학 때 여름방학에 런던의 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사람들이 내게 주식에 대해 얘기하는데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 생애 최고의 연기인 셈입니다.”
—호킹의 이론에 대해 이해합니까.
“그에 관한 것은 모조리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호킹의 옛 제자들로부터 기초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 꽤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호킹의 《시간의 짧은 역사》를 읽었을 때 처음에는 우주의 활동에 관해 알 것 같았는데 22쪽쯤에 가서부터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나 나는 과학이 유연성이 있어 좋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오디션 과정은 쉬웠는지요.
“별로 어렵진 않았지만 막상 감독 제임스 마쉬가 내게 역을 맡긴다고 말했을 땐 복부에 강펀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우상과 그가 앓고 있는 병을 진짜같이 해내고 또 아름다운 가족 얘기를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의상은 아인슈타인과 제임스 딘의 사진에서 영감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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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에디 레드메인. |
“상당히 게을렀어요. 주에 다섯 차례 예술사 강의를 듣고 매주 에세이를 한편씩 썼는데 그 내용이 다 사이비 예술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아침 10시에 어제 마신 술이 채 다 안 깬 상태로 교실 뒤에 슬그머니 들어와 앉아 남의 노트를 베끼곤 했지요. 난 집중력이 아주 나빠서 뭘 기억한다고 기록을 하지만 나중에 보면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사랑을 위해 한 가장 미친 짓이 무엇입니까.
“〈레 미제라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나흘 간의 휴식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나와 비로소 정식으로 데이트를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우린 그때까지만 해도 육체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나흘간 무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 갈 생각이 났지요. 그런데 혼자 갈 생각을 하니 슬프더라고요. 그래서 한나와 좋은 데이트 끝에 내가 대뜸 그에게 ‘당신 내주에 플로렌스에 갈 생각 없어요’ 하고 물었더니 ‘진짜요?’라고 반문하더라고요. 그래서 난 ‘그렇다’라고 말한 뒤 다음 날 아침에 한나에게 비행기 예약 용지를 보냈습니다. 몇 시간 후에 용지가 돌아왔고 우린 그래서 플로렌스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 셈입니다. 상당히 미친 짓이라고 하겠네요.”
—모든 것의 기원을 발견한 사람이 저렇게 불구의 몸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호킹이 자기 책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창조해 냈어요.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지닌 아이디어를 말합니다. 이는 인간의 어느 한 감관(感官)이 사라지면 다른 감관이 강해진다는 개념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한 개의 방정식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래요. 따라서 나는 그런 개념을 일종의 은유라고 봅니다. 새 변경을 찾아가는 식으로 과학적이거나 예술적이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앞으로 밀고나간다는 뜻입니다.”
—호킹이란 사람의 명성이 그의 물리학에 근원이 있다고 봅니까, 아니면 질병에 있다고 봅니까.
“나는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호킹은 그에 대해 매우 공개적입니다. 호킹은 자신의 질병에 대해 보통 이상으로 낙천적입니다. 대화하기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그는 이제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말해요. 그는 굉장히 복잡한 것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기 딸 루시와 함께 물리에 관한 아동서적을 쓴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물리를 대중이 알도록 하자는 것이 그의 뜻으로, ‘시간의 짧은 역사’도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대 출판사가 낸 것이 아니라 공항의 가게에서 파는 책을 출판하는 회사에서 발간했습니다. 사람들이 물리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호킹의 관심사입니다.
—영화에서 호킹은 옷을 다양하게 입는데 의상 선택을 어떻게 했는지요.
“내 트레일러에, 혀를 앞으로 내민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여러 장의 카드 속 조커, 그리고 쿨한 제임스 딘의 사진을 붙여 놓고 거기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런던에 있는 에인절스라는 대규모의 의상 대여점에서 77벌의 옷을 빌려 번갈아 가면서 입었지요. 호킹이 건강할 때와 병에 걸려 몸이 쇠약해지면서 체중이 줄었을 때가 다르기 때문에 옷도 계속해 갈아 입어야 했습니다. 그 많은 의상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한 것은 푸른 벨벳 상의입니다. 그리고 호킹이 처음에 낀 안경도 마음에 들어요.”
사랑하는 것은 나의 운명
—배우가 된 것이 어떤 운명이라고 여깁니까.
“내가 태어난 날 나의 부모님은 뮤지컬 〈캐츠〉를 보러 가기로 돼 있었답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났으니 그럴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 첫 출연한 연극의 제목이 〈염소〉였는데 내 띠가 염소자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배우가 된 것이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나는 사랑하는 것을 정열적으로 추구하며 살 것입니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호킹의 발성을 그대로 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에 대한 기록영화를 보고 또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호킹은 기계를 통해 말을 했기 때문에 발음이 분명치가 않아 이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호킹의 학생들도 그와 2주 정도 함께 있어야 호킹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인과 그의 가족은 늘 호킹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이해했지요. 호킹의 발성이 매우 분명치가 않아 제작진과 한때는 그가 말할 때 자막을 삽입하는 문제도 상의했었습니다. 어쨌든 호킹의 발성을 완벽하게 따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려운 역을 하는 데 한나가 어떤 도움이라도 주었는지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격려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한나는 자기 할 일이 있는데도 틈을 내 촬영 현장에 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독려하려고 애를 썼지요. 그리고 한나는 예술에 대해 관심이 깊어 영화의 각본을 읽고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아주 좋은 자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의 느낌은 어땠습니까.
“연기한다는 것의 훌륭한 점은 매우 강렬한 기간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호킹의 역을 하고 나서 난 완전히 녹초가 됐지요. 그래서 영육으로 내 자신으로 돌아가고 또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기 위해 다른 일도 안 하고 오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때도 한나가 튼튼한 뒷받침이 되어 주었습니다.”
—젊은 여성팬이 많은 줄 아는데 한나가 질투라도 하나요.
“아니요. 내 팬들과 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함께 즐겨요. 우린 서로 늘 관계를 재다짐하고 있지요. 한나는 그런 점에서도 제 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