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뭘 그린 거냐”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 추상화의 본질
⊙ 캔버스, 물감, 붓자국 등을 잘 관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추상화
이규현
⊙ 연세대 국문과 졸.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대학원, 뉴욕 포댐 경영대학원 MBA 졸업.
⊙ 前 조선일보 미술 담당 기자. 現 아트마케팅사 ‘이앤아트’ 대표.
⊙ 저서: 《그림쇼핑1,2》 《안녕하세요? 예술가씨!》 《미술경매이야기》
《도시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 캔버스, 물감, 붓자국 등을 잘 관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추상화
이규현
⊙ 연세대 국문과 졸.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대학원, 뉴욕 포댐 경영대학원 MBA 졸업.
⊙ 前 조선일보 미술 담당 기자. 現 아트마케팅사 ‘이앤아트’ 대표.
⊙ 저서: 《그림쇼핑1,2》 《안녕하세요? 예술가씨!》 《미술경매이야기》
《도시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 ‘한국의 현대추상미술’에 전시 중인 이우환의 <선으로부터>(1975, 132X164cm). 우양미술관 제공.
단색회화의 대가 이우환(78)에 대한 국내외 미술계의 평가는 이미 최고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한 것에 이어 올여름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이우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등 이 작가에 대한 해외에서의 위상은 점점 높아져 간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단색회화에 대한 전체적인 관심도 부쩍 늘었다. 지난 7월에는 단색회화의 대가인 정상화(82)의 개인전이 갤러리 현대에서 열려 성황리에 끝났다.
최근에는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우양미술관(구 아트선재미술관)에서 ‘한국의 현대추상미술: 고요한 울림’(10월 12일까지)이라는 추상회화 전시가 문을 열었다. 단색회화의 대표작가 이우환·박서보·정상화·윤형근과, 1세대 추상화 대표작가 김환기·남관·유영국·하인두·이성자·곽인식·정창섭·윤명로·류경채·하종현의 대표적 스타일 작품 50점을 한번에 보여주고 있다.
‘모노크롬’ 회화라고도 불리는 ‘단색회화’는 말 그대로 한두 개의 색채만으로 표현하는 그림으로, 1960~70년대 우리나라 추상회화의 중요한 흐름이었다. 우리나라의 추상미술은 1930년대 김환기, 이규상, 유영국 등 선구자적인 작가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나타났다. 점점 추상화를 하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1958년 이후에는 집단적으로 하나의 운동처럼 추진되어 추상화 ‘경향’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추상회화 작가들의 수준은 미술시장에서는 저평가되어 있지만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권위 있는 미술평론가이자 ‘뮤지엄 산’의 관장인 오광수씨는 최근 낸 저서 《시대와 현장과 비평》(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전후(戰後) 우리나라 추상미술에 대해 매우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그는 특히 1958년 이후에 나타난 ‘전후 추상미술’은 우리 미술사에서 가장 강한 추진력과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은 미술이라며, 우리에게는 분명히 풍부한 표현적 추상의 DNA가 있다고 강조한다.
미술관, 갤러리, 경매회사 등 전시장과 미술시장 곳곳에서 추상화를 흔히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추상화에 대해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곤 한다. 뭘 그린 건지 구체적으로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 그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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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현대추상미술’에 전시 중인 윤형근의 <무제>(1990~1991, 162X130cm). 우양미술관 제공. |
추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바로 이거다. “뭘 그린 걸까?”
이에 대한 답부터 말하면, ‘뭘’ 그린 게 없다. 추상화는 특별한 대상을 재현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린 대상이 아예 없는 것이다. 그래서 ‘뭘 그린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은 외부세계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교육하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 자꾸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아내려고 습관처럼 고민한다. 하지만 사실은 외부세계를 재현하지 않은 미술도 많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추상화다.
뭘 그렸는지 알아내는 수수께끼를 풀 필요가 없다면 일단 추상화에 대한 숙제는 하나 풀렸을 것이다. 그럼 이제 추상화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추상화(抽象畫)’의 반대 개념인 ‘구상화(具象畫)’의 뜻을 살펴보자. 구상화는 말 그대로 구체적인 형상(모델)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구상화를 영어로 표현하면 ‘형태’라는 뜻의 ‘figure’를 써서 ‘figurative art’라고 하거나, ‘표현하다’는 뜻의 ‘represent’를 써서 ‘representative art’라고 한다. 구상화의 반대말인 추상화는 구체적인 형상을 표현한 게 아니라는 뜻이 더 분명해진다.
러시아 출신의 화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는 1913년에 ‘추상화(non-objective art)’라는 말을 만들어낸 추상화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그림은 분위기(mood)를 나타내는 것이지 물체(object)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체를 미술용어로는 ‘오브제(objet)’라고 한다. 그런데 추상화는 ‘오브제’를 그린 게 아니므로 ‘non-objective’ 미술인 것이다.
미술의 物性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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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현대추상미술’에 전시 중인 김환기의 <무제>(1971, 213X153cm). 우양미술관 제공. |
쉽게 말해, 꽃이나 동물이나 풍경을 그렸다면 관객은 꽃, 동물, 풍경을 보게 되지만, 이런 형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관객은 그 대신 캔버스의 질감, 그 위에 칠해진 물감의 색, 붓자국 등을 보게 된다. 추상미술은 미술의 원천재료인 점, 선, 면, 색으로만 그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작품 설명을 할 때 추상화 앞에서 관객들에게 “무엇이 보이세요?” 하고 물으면 어른들은 십중팔구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대답하지만, 아이들은 “빨간색!” “파란색!” “동그라미” “네모” 하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대답을 한다. 아이들에게는 ‘미술=외부세계 형상 재현’이라는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추상화가 보여주는 미술의 ‘물성’을 그대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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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현대추상미술’에 전시 중인 윤명로의 <균열 79-810>(1979, 162X130.3cm). 우양미술관 제공. |
그럼 추상화가들은 모두가 처음부터 아무 형태도 의도하지 않은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의 초기 작품은 나무라는 형태를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후기로 가면서 몬드리안은 점점 형상을 지워나가 나중에는 화면 전체에 직선과 면만 남았다.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은 한국의 추상미술 화가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눴다. 한 그룹은 처음부터 직선, 곡선, 사각형, 삼각형, 원과 같이 기하학적인 도형들로만 그린 화가들이다. 유영국은 풍경화의 산과 들을 기하학적 도형만으로 압축해 그렸으니 원래부터 기하학적 도형으로만 그린 추상화가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구상화에서 시작해 점점 형상을 지워나간 화가들이 있다. 수화 김환기는 점을 찍고 그 점을 여러 겹으로 둘러싸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완전한 추상화인 ‘점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점화’는 1970년부터 나왔다. 그전에는 색면추상이나 십자구도 등으로 다양한 추상 조형을 시도했다. 그보다 더 이전인 1963년 이전의 작품들은 간결한 형태로 그려서 추상화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산, 달, 구름, 항아리 등의 구체적인 형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김환기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형상을 지워나간 것이다.
戰後 분위기와도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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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현대추상미술’에 전시 중인 곽인식의 <무제>(412X191cm). 우양미술관 제공. |
이렇게 2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히 분위기가 바뀐 유럽에서는 기존 사회와 화풍에 대한 반항의 움직임도 예술에서 생겨났다. 화가들로서는 파괴된 세계에서 느끼는 허탈함을 표현할 방법이 추상화밖에 없었다. ‘부정형(不定形)의 미술’이라는 뜻의 ‘앵포르멜(Art Informel)’이 바로 이때 유럽에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작가의 격정적인 감정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추상화인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가 생겨나 전후 미국의 미술을 대변했다.
이때 즈음에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추상화가 발달했다. 형태를 완전히 들어내고 고요한 사색의 분위기를 만드는 ‘묘법’ 시리즈로 유명한 박서보(83)는 우리나라 전후 추상화의 대표적 작가다.
그는 당시 “캔버스는 자기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내동댕이치는 파괴의 마당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전후에 추상화가 발달한 것은 암울했던 사회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최근 우리 추상화가들에 대한 전시와 시장에서의 좋은 평가가 이어지는 것은 추상화가 가지는 미술사적인 의미를 다시금 조명해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추상화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미술계와 시장은 반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