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는 한국사회를 불신사회, 私益사회, 그리고 야만사회를 잉태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
⊙ 한국인의 自畵像은 카인이자 아벨,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얼굴
⊙ 戰後 한국인은 광기·퇴행·갑작스러운 분노 표출에 의한 사회분열의 후유증 앓아
⊙ 植民·戰爭·分斷·離散을 거친 한국인의 폭력성은 가정·학교·사회에서 재생산, 재사회화 과정을 거쳐
취재지원 : 趙惠林 月刊朝鮮 인턴기자
⊙ 한국인의 自畵像은 카인이자 아벨,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얼굴
⊙ 戰後 한국인은 광기·퇴행·갑작스러운 분노 표출에 의한 사회분열의 후유증 앓아
⊙ 植民·戰爭·分斷·離散을 거친 한국인의 폭력성은 가정·학교·사회에서 재생산, 재사회화 과정을 거쳐
취재지원 : 趙惠林 月刊朝鮮 인턴기자

- 8월 5일 경기도 양주 제28사단 군사보통법정에서 윤일병 사망사건의 가해병사들이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기자는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사건을 계기로 한국인 내면의 폭력성을 들여다보았다. 수난의 아픔이 깊은 한국인의 심리를 파헤쳐 폭력성을 들춰내는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일인지 모른다. 다수의 한국인은 우리 민족이 여전히 비폭력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외눈박이 오류’를 무릅쓰고, 한국인에 내재한 가해와 피해의 정서를 끄집어낼 생각이다. 폭력성은 민족이나 국가를 떠나 인간에 내재된 본능적 야만성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20세기 100년간 식민(植民)·전쟁·분단·이산(離散)을 모두 경험한 한국인의 심리를 ‘폭력성’이란 프리즘으로 들여다본다.
먼저, 이번 윤일병 사망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인지, 일종의 군대(軍隊)문화 폐해인지, 한국인에 내재한 폭력성향의 하나로 봐야 하는지 명확히 구획 짓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히 드는 생각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볼 수 있고 전체의 관점에서 부분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윤일병 사건은 일종의 투시경으로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분단국가’ 한국은 엄밀히 말해 아직도 6·25가 끝나지 않았다. 1980년대 “군부독재 타도”라는 민주화 과정을 거쳤지만 징병제 국가인 한국은 매일 휴전선과 24시간 맞댄, 병영(兵營)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6·25가 한국의 기성세대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살기 위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그것도 동족(同族) 간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한국미래학회 전 회장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全相仁) 교수는 “6·25는 삶과 죽음이란 위기상황에 내몰려,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 이기성이 정당성을 확보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생존의 단위가 개인과 가족의 경계를 결코 넘어서기 어려웠던 상황이라 6·25는 불신사회, 사익(私益)사회, 그리고 야만사회를 잉태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어요. 기회주의와 행동의 무작위화(randomization)가 이른바 ‘생존의 법칙’으로 자리 잡게 된 만큼 공동체 의식에는 허구이고도 가상적인 측면이 많이 내포됐습니다.”
전 교수는 6·25가 한국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보다 결정적으로 붕괴시킨 또 다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민간인끼리의 내전(內戰)이었다.(전상인 교수의 《고개숙인 수정주의》 참조) 그의 말이다.
“6·25 당시 적 치하 서울시민에게 정작 먹고사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정부가 몇 차례 바뀌는 동안 벌어진 엄청난 정치적 보복극과 복수전이었습니다. 이는 남한을 점령했던 북한 인민군의 가혹행위뿐만 아니라 9·28 서울수복 이후 남한정부의 사정도 비슷했어요. 그것이 일반 민간인끼리의 ‘내전’으로 귀결됐다는 점입니다.”
같은 민족이 공동체를 이루어 타협하며 어우러져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좌우 이념의 집단이 뭉쳐 대립·반목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6·25를 거치며 ‘극단적 이기성’,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동족 간 전쟁이 낳은 ‘야만(野蠻)’이 자리 잡게 됐다. 전쟁의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전후 세대 역시 기성세대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메스미디어를 통해 한반도 내 북핵(北核)과 전쟁 위협에 늘 익숙해져 왔다.
“공포와 불안은 사람들의 폭력적 경향을 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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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9·28 서울 수복 당시의 모습.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6·25는 한국인에게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 이기성이 정당성을 확보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
<조선시대만 해도 편법주의, 즉 권술(權謀術數)은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권술은 언제나 권도(權道)로 위장되어 음성적으로 행해져야 했다. 그러나 6·25전쟁을 겪으며 얌체, 사바사바, 적당주의, 요령주의, 모리배 등과 같은 권술이 일반화됐다. 사람들은 예의·염치란 불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삶을 구속하는 방해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p238)
최 교수는 “6·25가 끝나자 사람들은 배고픔과 이산에 대한 한이 맺히면서 어떠한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치게 됐다. 극소수의 규범주의자와 대다수의 탈규범주의자가 윤리와 비윤리의 극단을 이루는 윤리적 극단주의가 지배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승전(勝戰)을 경험한 적이 없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지배한 적이 없었는데도 참혹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는 점에서 그 비극성이 더하다. 게다가 6·25는 폭력의 명분을 ‘생존’의 이름으로 단순화시켰고, 생존의 도구로 폭력을 정당화시켰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外勢)가 전쟁을 촉발시켰지만 한국인의 자아(自我)는 카인이자 아벨,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했다.
전쟁과 폭력으로 빚어진 민족의 분단은 한국인들에게 일그러진 가치관을 심어 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반관(反官)과 면종복배(面從腹背) 사상이다. 나와 가족, 친지의 생명을 정부가 지켜 주지 못해 증오하면서도 관직 앞에서는 비굴하게 굽실대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또한 대립적인 분단체제가 유지되면서 적대감과 전쟁의 공포감은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분단(分斷) 트라우마’로 부른다.
그런데 분단 트라우마는, 분단이 지금까지 굳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무의식적 상처가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분단 트라우마는 동족 간 전쟁, 이산과 연결돼 있고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식민(植民) 트라우마’와도 닿아 있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김종군 연구교수는 “한국의 역사적 트라우마는 식민 트라우마가 근원적 트라우마이고, 이산 트라우마와 분단 트라우마가 이리저리 섞여 있는 착종(錯綜)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윤일병 사건은 많은 한국인에게 야만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동족을 죽이는 데 서슴지 않았던,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무시하고 잔인할 정도로 대하는 6·25 당시의 극단적 이기심을 들춰 낸 것이다.
| 심리학에서 보는 폭력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을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정서와 닿아 있다. 한국인은 자존감이 높을까 낮을까. 자존감이 낮은 이는 남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져 자꾸만 집단에 숨어 자아를 은폐하고, 익명성에 기대어 폭력성을 드러내려 한다. 폭력성은 원인과 동기가 복잡하지만 자존감과 관련이 높다. 심리학자들은 구타자(毆打者)들의 자존감이 보통사람에 비해 낮은 경향을 띤다고 말한다. 반면 평균치보다 더 우울하다는 연구도 있다.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이 폭력과 직접 연관은 없지만 적어도 폭력의 전조(前兆)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리상담 전문가 정은미(鄭殷美)씨의 얘기다. “폭력성과 관련한 연구를 보면, 폭력이 구타자의 ‘지위 불안정’과 관련이 높다고 해요. 사회의 안정적인 생활기대치 아래의 비정규직, 저소득, 저학력의 남성들에게 폭력성향이 높다고 합니다. 이들은 당연히 자존감이 낮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방법에 서툽니다.” -심리적으로 미숙하다는 얘기네요. “폭력성향의 남성을 조사했더니, 가족이나 타인에게 자신의 기대와 바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미흡합니다. 감정표현에 서툴고 문제해결 능력도 낮아 홧김에, 술김에 폭력을 부른다는 것이죠.” 자존감이 낮은 이들에게 폭력적인 성향이 높게 발견되는데, 이들은 완력(腕力) 외에도 다양한 비지시적 방식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예를 들어 조직 내 특정인을 구별하고, 그를 힘으로 억누르고 비난하며 창피를 준다. ![]() |
기성세대의 군 복무 기억은 ‘배고프거나 매 맞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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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7월 일본군이 한국인 3명을 총살하고 있다. 일본군은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한국을 무단통치했다. 한국인은 아직도 식민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식민 기억의 잔상은 광복 이후 일본 군(軍) 문화의 유입에서도 확인된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군 복무와 폭력을 체계적으로 연결했으며 병사 간 군기(軍氣)가 엄했다고 한다. 폭력이 일상화됐고, 강제 징집된 조선인들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복종을 확립하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폭력은 정당화됐다.
일본 강점기 군 경험을 거친 장교들이 해방 이후 고스란히 한국군을 지휘하면서 폭력과 강한 군율은 군대 내 ‘재사회화 과정’을 통해 반복됐다. 폭력의 사용은 병사의 복종과 추종, 공격성을 부추기는 주요 실천 관행이 됐다. 한국인의 기성세대 중 군 복무에 대한 기억은 ‘배고프거나 매 맞은’ 기억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윤일병 사망사건 역시 군대의 고질적인 악습, 폭력의 대물림과 관련이 깊다. 가해자 중 두 명은 윤일병이 전입해 오기 전에 이모 병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한다. 가해자인 이모 일병은 이 병장이 치약 한 통을 다 짜서 먹게 하고 물고문을 시켰다고 한다. 또 다른 가해자인 지모 상병도 이 병장으로부터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맞았다는 것이다.
식민과 6·25의 상처와 폭력을 ‘대물림’ 차원에서 바라보면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李那美) 박사는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딛고 기적적으로 일어난 국가”라며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의 외적인 충격이 엄청났고 전후에는 광기와 퇴행, 갑작스러운 분노 표출에 의한 사회분열의 후유증을 앓았다”고 했다. 이 박사의 《한국사회와 그 적들》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나온다.
<… A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세상에 없는 악마라고 비난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심하게 구타하는 것은 물론 키우는 개와 고양이도 나무에 매달고 때리곤 했다. 면담 중에 친일파였던 할아버지가 열 살 남짓 된 A씨의 아버지 앞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어린 아버지가 받았을 충격이 아버지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공격 성향을 키웠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자 A씨는 그제야 아버지를 이해하겠다고 했다. …>(p133)
“공포와 불안은 사람들의 폭력적 경향을 조장하기 때문이죠. 이런 외상 후 신경증을 우리는 건전한 직업윤리, 교육, 가족적 응집력으로 나름대로 잘 극복했어요. 그러나 연평 해전이나 천안함 사건과 같은 테러가 발생하면 내재한 피해의식과 의심이 커지게 되고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특정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반대세력에는 무자비한 전체주의적 태도도 활개를 칩니다. 적만큼 경계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의식의 분열과 사회통합의 붕괴입니다.”
교육부 장관과 서울시 교육감을 역임한 문용린(文龍鱗)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제시대 군사문화, 식민문화에서 무단 통치 등과 같은 것에 한국인의 폭력성이 영향받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근대화 이후 법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이는 문화적으로 일제시대 영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무단통치 시절, 법대로 산다는 것은 식민통치에 순응하는 길밖에 없었어요.
35년간의 식민통치를 지나며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고, 결국 법의 권위와 합목적성이 매우 떨어져 버렸어요. 옳지 않은 일을 대신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도 생겨났지요. 또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법을 지키기보다 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보는 시각과 비슷합니다. 법의 정통성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고 이를 따르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는 사실에 둔감해진 것이죠.”
법을 불신하면 말이 안 통하게 되고, 말 대신 주먹이 앞서게 된다. 문 교수의 계속된 말이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은 법 집행이 엄정하지만 한국은 엄정하지 못하고 흔들리기 일쑤입니다. 폭력을 휘둘러도 부잣집이나 권력이 있으면 처벌을 회피하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죠.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상식이 통해야 하는데, 별로 안 통한다는 겁니다.
한국에선 ‘하지 마라’고 해서 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눈치껏’이라는 문화가 있어서 법에 명시된 것과 다르게 행동합니다. 예를 들면, 밤 12시에 네거리 신호등을 지키는 이가 한국에선 보기 드물지만 외국에선 다 지킵니다.”
민주화 겪으며 ‘비인간적 집단’이라는 불신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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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행렬. 한국항공대 최봉영 교수는 “6·25의 배고픔과 이산에 대한 한이 맺히면서 한국인은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고 주장한다. |
이런 상황에서 군부독재를 거치며 한국군은 강제성과 타율성에 의한 내무생활을 개선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0~90년대 민주화 과정을 겪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동안 억눌렸던 군 의문사 문제가 공개적으로 다뤄지고, 크고 작은 인권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군은 ‘비인간적이고 갈 곳이 못 되는 집단’이라는 불신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났다. 시민사회는 민간인 사찰, 고문, 강제징집, 군내 가혹행위, 총기사고에 항의하며 인권과 법치주의를 요구했었다.
2003년 들어서 군 당국은 ‘분대장 외에 병사들끼리 명령하거나 지시·간섭을 할 수 없도록’ 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2006년 12월 당시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설치된 군사소위원회를 통해 사병의 인권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됐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은 낮았다. 진정 과정에서 상하 동료끼리 불신과 원망이 생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톨릭대 교양교육원 하병학(河炳學) 교수는 “사회가 급변하고 젊은이들의 사고도 바뀌었지만 군대는 여전히 보수적 집단이고 전통을 유지하려는 성향 탓에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할 수 없었다. 기성세대와 가치관이 다른 젊은이들이 보수집단에 들어가면서 폭력과 같은 문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군 인권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600~800명이 속한 한 대대마다 군 인권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대 내 목사, 스님, 신부님들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하고, 사건이 터지면 연대 단위에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군 인권위원회에 바로 보고해야 합니다. 그래야 군을 바꿀 수 있어요.”
한국의 병영문화는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는 가설을 세워 보자. 한국에서 아랫사람과 윗사람은 공적인 일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에서도 상하를 따져 행동한다. 최봉영 교수는 “한국에서 아랫사람은 공적인 일은 물론이고 사적인 일에서도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윗사람이 부당한 일을 지시할 경우 ‘노(NO)’라고 말하는 부하직원은 드물다. NO라고 하는 직원을 괘씸하다고 여기는 관리자가 대부분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 자발적인 토론과 비판이 일어날 수 없다. 서로 합의하고 양보하는 미덕도 생기지 않는다. NO라고 할 수 없어 상사의 지시를 거부할 순 없지만, 불만과 불쾌한 기억마저 떨쳐지진 않는다. 결과적으로 조직 내 분위기를 왜곡시킨다.
그러나 같은 유교문화권인 중국은 다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한국보다 활발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 일이 드물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버스에서 노인이 아무리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도 자리 양보를 하거나 짐을 들어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점에서 거스름 받을 때도 돈을 던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길에서 누군가가 넘어져 있어도, 남의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으며 노상강도나 열차 내 강간사건이 발생해도 끼어들지 않으려 한다. 중국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철저히 실익(實益)·실리(實理)를 추구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한국과 타이완 대학생의 군대문화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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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 돌고 있는 군대 내 얼차려 모습. 윤일병 사망사건은 군대의 고질적인 악습, 폭력의 대물림과 관련이 깊다. |
연구진은 한국 25개 대학생과 대만 4개 대학생 24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폭력이나 단체기합 등 군대문화적 요소는 주로 한국대학 문화에서만 나타났고 남성중심적 음주문화와 성매매 문화의 지배력도 한국에서 더 강한 것으로 조사했다. 연구진은 “한국과 사회적·역사적 유사성이 두드러지지만, 타이완은 위계적 대학문화에 대한 이중성이 거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 대학생들에게 ‘기합을 받았거나 목격한 일이 있는지’ 물었더니 35.2%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타이완 대학생은 4.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타이완에는 단체기합 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단체기합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한국은 31.2%, 대만은 12.0%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단체기합은 군대문화의 이식 정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국이 타이완보다 훨씬 집단주의적 성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타이완의 집단주의가 약한 이유에 대해 “타이완은 이민(移民)사회이고 본토보다 유교적 문벌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약해서 상대적으로 덜 위계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전후 타이완 국민당의 집권 당시 “인민과 대륙을 수복하자”는 것이 지상명령이었으나 대륙 함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군사주의적, 집단주의적 명분이 많이 약화했다고 한다. 반면 한국사회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문화적 힘이 집단주의이다. 집단의 이익에 개인의 인권은 종속, 희생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타이완의 학생문화 비교연구는 서열성, 위계성 등에서 집단주의와 군대문화의 유입이 대학문화를 얼마나 다르게 구성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서열성과 위계성에서 아주 다른 결과를 보이는 두 나라의 대학문화는 징병제가 있더라도, 그 징병제와 대학이 관련성을 맺는 방식에 따라 학생들의 사고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윤일병 사건과 유사한 일이 타이완에서도 일어났을까. 폐쇄적 소집단조차 서열·위계를 내세우는, 친소를 확연히 구분하고, 친한 사람과 친하지 않은 사람, 동년배와 아닌 사람, 고향과 타향 사람을 구별하는 한국식 집단주의가 타이완에도 있을지 의문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병영 폭력은 외부로부터 격리된 폐쇄적 집단주의의 특성이 반영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군부대는 집단 내부의 문제를 발설하기 쉽지 않은 구조인 데다 책임감이 분산되고 개인보다 소규모 집단의 특성 때문에 병영 폭력이 일어나죠. 집단주의는 상명하복의 뿌리가 깊어 부당한 행위를 해도 맞서기가 너무 어려워요.”
—폐쇄적 집단 내 폭력은 어떻게 전염이 되나요.
폭력 피해의 경험이 있을 경우 조직 내 가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누군가 개입하지 않으면 절대 (폭력이) 사라질 수 없어요. 한국의 가정폭력은 그동안 방치돼 왔어요. 훈육을 위해 폭력을 썼다고 해도 폭력은 폭력이 되는 겁니다. 한국인은 전쟁을 거치며 폭력적인 현상을 경험하게 됐고,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도 군사정권과 대학생 간 치열한 대결이 있었어요. 폭력을 통해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나쁜 면도 답습하게 됩니다.”
OECD 국가와 한국의 범죄율 비교

한국인의 폭력성이 심각한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는 국가 간 범죄율을 비교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율에 대한 국가 간 비교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사회적·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국가마다 범죄행위에 대한 규정도, 범죄 집계방식도 상이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인구 10만명당 살인율을 살펴보면, 멕시코의 경우 18명에 육박하고 에스토니아, 미국, 칠레 등이 약 5명 이하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6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경우 제시된 국가 중에 가장 낮은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구 10만명당 폭행을 국가 간 비교해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2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거의 가장 낮은 수준인 33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스웨덴, 영국, 벨기에, 이스라엘, 독일, 핀란드, 칠레 등의 나라들이 인구 10만명당 400건 이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 뉴질랜드, 에스토니아, 폴란드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폭행률을 기록하고 있다.
강간(rape)의 경우 OECD 36개국의 자료를 비교해 보면, 한국은 13위로 인구 10만명당 약 13건을 기록했다. 가장 낮은 국가는 일본이었다. 높은 수준의 강간율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스웨덴인데 거의 60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뒤이어 뉴질랜드, 영국, 벨기에 순으로 높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2012년 펴낸 <우리나라 폭력수준 실태진단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한국과 OECD 나라들과의 강력범죄 발생률을 비교한 결과,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강력범죄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이 밝힌 2010년 폭력범죄 발생건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인구 10만명당 609.2건이나 미국은 252.4건, 일본은 50.4건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폭력범죄 발생률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국은 1980년에 인구 10만명당 형사범죄율이 824건이었던 것이 2007년에는 1738.8건으로 증가했으나 일본은 같은 기간 1160건에서 1494건으로 늘었다는 자료(《현대사회와 범죄》 2010)도 있다.
스포츠 폭력과 의료계 폭력
서열과 위계가 강한 폐쇄적인 병영 내 폭력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폭력, 의료계 폭력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선수 폭력은 엘리트 체육을 표방하는 한국 스포츠의 우울한 현실이다. 학교와 코치, 감독 등 운동 지도자들이 팀 성적을 위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데 익숙하다. 심지어 학부모들도 성적(成績)을 위한 일이라면 구타나 체벌에 관대하다.국가인권위가 2008년 5월부터 6개월 동안 실시했던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전체 학생선수의 78.8%가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훈련과 상관없는 욕설 또는 폭력도 심각했다. 이런 스포츠 폭력 원인은 대학진학을 위한 4강진입 경쟁(특기자 제도)에 따른 문제, 한 선수의 실수에 따른 팀의 패배, 대학교에서의 선수 간 위계 등 다양하다. 이는 성적지상주의와 관련된 한국사회 특유의 엘리트 스포츠 정책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 결과이다. 폭력이 선수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어 기록이나 성적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까지의 폭력이 허용될 수 있는지는 연구된 바가 없다. 문제는 폭력에 대한 불쾌감은 지속하고 반복되며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맞으며 기록이 향상된 선수가 지도자가 되면 또다시 매를 들 가능성이 크다. 의료계 폭력도 마찬가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08년 서울시내 소재한 종합병원 종사자 대상 154명(일반의사 23명, 전공의 17명, 간호사 59명, 간호조무사 24명, 병원행정 업무 담당자 15명, 의료기사 16명)을 대상으로 폭력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간호사의 85.5%가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의 경우는 80.0%, 행정업무 종사자와 의료기사의 경우 71.0%가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환자나 환자가족의 폭력이 의사와 간호사끼리 발생하는 폭력보다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와 의사 간의 폭력도 문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인 만큼 긴장감을 주기 위해 폭력·폭언이 필요하다지만 폐쇄적 병원 내에서 일어나는 서열과 위계에 의한 폭력도 잦다. 이런 폭력은 교수와 의대생, 교수와 전공의, 전공의와 전공의, 전공의와 수련의(인턴), 의사와 간호사, 간호사와 간호사 간에 일어난다. |
“나이의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 받을 때 폭력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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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폭력을 써서라도 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1996년 8월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시위 모습. |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미시적(微視的) 원인이다. 연구진의 관찰결과, 야간의 술집거리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계기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접받지 못할 때”라는 것이다. 그런 푸대접 혹은 부정적 자극은 크게 ①나이의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 ②공중도덕의 위반 ③자신의 영역 침해 ④기타 넓은 의미의 질서와 정의에 위반하는 행위 등 4가지 유형을 통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2~4번째 유형의 경우 다른 문화에서도 나타나지만, 첫 번째 유형, 즉 나이의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행위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문화에서 특이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외국에서 어린 사람이 예의 없게 행동한다고 이에 대해 분노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같은 유교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은 한국처럼 연령에 따른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다. 그러나 서열과 위계에 대한 집착은 한국에서 곧잘 폭력으로 이어진다.
이런 위계와 서열집착 현상은 한국인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라고 생각하기보다 집단의 관계망 속에서 개인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내부에서 찾기보다 장유(長幼), 위계(位階), 친소(親疎)에서 찾으려 한다. 한국인은 타인을 만나면 우선 집단 속에서 그 사람과 자신의 서열을 파악하려고 한다. 이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이 ‘나이’다.
사람들은 윗사람,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아랫사람, 힘없는 이들에게는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 또 권력과 나이에 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면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심드렁해진다.
병영 내 폭력은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폐쇄적 조직 내에서 발생한 후임병에 대한 선임병의 위계, 서열의식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구타사건에서 후임병이 선임병을 때렸다는 하극상 얘기는 거의 없다.
선임자가 후임자에게 구타와 폭언을 일삼고 인격을 모독하는 병영 악습은 뿌리가 깊다. 국방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작년 6월까지 구타와 가혹행위로 영창에 수감된 병사는 육군이 2만7694명(전체 징계 입창자 5만9866명의 46.3%), 공군은 222명(전체 558명의 39.8%)이다. 군에서 자살하는 연간 70~80명의 병사도 상당수가 가혹행위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접수된 군 관련 진정사건은 2012년 3월말 현재 405건이며, 이 중 폭행·가혹 행위, 언어폭력, 생명권 유형에 해당한 진정사건은 223건(55.1%)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폭행·가혹 행위는 122건(54.7%), 폭언(언어폭력)은 45건(20.2%), 생명권은 56건(25.1%)으로 폭행·가혹 행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폭행·가혹 행위 가운데 병 상호 간에 발생한 폭행·가혹 행위가 64건(52.5%)으로, 장교와 병 사이에 발생한 38건(31.1%)이나 기타 20건(16.4%)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대개가 부대 내 관행적으로 용인된 속칭 ‘기수 열외(없는 사람 취급)’ 등 선임병에 의한 병사 간의 폐쇄적 조직문화가 원인이다. 피해행태의 경우 지속·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례가 64건(52.5%), 우발·일시적 사례가 31건(25.4%)으로 약 2배 이상의 비중으로 많았다.
| 폭력의 여러 얼굴들 가톨릭대 교양교육원 하병학 교수는 “오늘날 물리적 폭력은 법적 제재를 받아 줄어들었지만 구조적인, 권력적인, 언어적인, 심리적인 억압과 폭력은 늘고 있다”고 말한다. 하 교수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 철학자 슬라보에 지젝(Slavoj Zizek)의 말을 빌려 “폭력에는 가시적·구조적·언어적 폭력이 있다”고 설명한다. ‘가시적 폭력’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폭력, 예컨대 군대 내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폭력을 말한다. 하 교수는 “이런 폭력은 없애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가시적 폭력을 없애겠다면서 구조적·언어적 폭력을 못 보거나 은폐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조적 폭력’은 국가의 정치·경제 체제 등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있다. 성장제일주의, 결과중심주의, 성공제일주의 등과 맞물려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수단화하고, 필요에 따라 폭력이 ‘정당한’ 대처수단으로 등장하고 인정된다. 그는 “문제는 구조적 폭력이 익명적이며, 개인의 의도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윤일병 사건은 가시적 폭력이지만, 개인의 인권보다 국가안보가 중요시돼 왔다는 점에서 구조적 폭력으로 볼 수도 있다. ‘언어적 폭력’은 인간의 모든 사고가 언어에 구속된다는 점을 반영한다. ‘무슬림’ ‘종북’ ‘전교조’ ‘재벌’ ‘강남’ 등의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인간의 판단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언론의 오보(誤報)로 집단적인 오판을 하는 것도 ‘언어적 폭력’에 해당된다. 하 교수는 “모든 폭력들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은 인권”이라며 “군대 내 반인륜적 폭력을 없앨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도 인권과 결부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 인권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군사 인권 전문인력’을 군에서만 양성하거나, 군인이어야만 한다거나, 초급장교에게 겸직토록 하는 방식을 취해선 곤란해요. 특히 사단장의 지휘 아래 둘 때는 결코 군대 내 폭력과 반인륜 행위를 예방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핵심은 안보입니다. 그러나 강군(强軍)을 위해서도 군내 폭력은 근절돼야 합니다. 국가안보의 근본 토대는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
‘너는 기수 열외다. 지금부터 너는 민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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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
기수 열외를 당한 병사는 인간 이하 취급을 받는다. 기수가 한참 낮은 후임들마저 이름을 부르면서 아랫사람 취급을 하고 선임들은 이를 방관한다. 선임들은 부대원들에게 기수 열외에 동참하기를 강요하고 이에 불응하면 함께 기수 열외를 시켜 버린다. 인터넷에 회자하는 한 기수 열외자의 경험담이다.
<… 저는 해병대 ○○○○단 ○○중대에서 근무 중인 일병 ○○○입니다. 20××년 상륙지원단으로 전입을 왔습니다. 전입해 선임병들에게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고 기수 열외인 선임병에게 반말 등을 하라고 강요받았습니다. (중략) 결국 선임병들은 저를 기수 열외시켜 없는 것과 같은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선임병들은 ‘너는 기수 열외다. 후임병하고 너는 아무 사이가 아니니, 후임병이 반말을 해도 되고 불만 삼지 말고 마치 민간인 같은 존재로 생각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소등 이후 침대 2층에서 자고 있으면 코 곤다고 하루에 2~4번씩은 제 옷깃 부분을 잡고 단추가 뜯어질 정도로 끌어당겨서 깨우는데, 아프고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깨어서 멍하게 있으면 ‘코 골면 죽여 버린다’고, 잠깰 때까지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합니다. …>
기수 열외를 당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상관에게 소원수리를 한 병사, 선임에게 미운털이 박힌 후임병, 훈련 낙오병, 집단생활에 적응 못하는 성격 등이 열외를 당한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수 열외는 ‘한국식 집단주의’ 폐해와 닮은꼴이다. 원래 서구에서 말하는 집단주의란 집단목표를 성원 개인의 목표보다 우선하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식 집단주의는 집단의 목표보다 성원 간의 관계유지를 더욱 중시한다.
다시 말해, 집단의 목표나 규범보다는 관계망을 구성하는 소집단 내의 ‘우리 의식’과 ‘우리의 관계 유지’가 행동의 준거가 된다. 공식적인 구조와 의사소통 양식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조직 내 구성원들끼리 연결되는 사적 연결망과 비공식적 의사소통 채널을 통해 의사를 결집하고, 이에 반하는 소수에게 집단적 압력을 행사한다. 왕따와 기수 열외도 다수의 집단이 소수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지난 6월 23일, 경북 포항에 있는 해병대 모 부대 저녁 점호시간.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며 선임병 3명이 신병 3명에게 가혹행위를 시켰다. 이른바 변기 핥기 행위. 남성용 소변기 바깥 부분을 혀로 핥게 하는 반인권적인 행위를 시킨 것이다.
가혹행위를 당한 신병들은 부대 내 소원수리함에 이 사실을 고발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병들은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이른바 ‘기수 열외’를 당했다. 일부 피해 장병은 모멸감에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한다.
사건발생 뒤 가해자인 선임병들은 형사 입건돼 보름짜리 영창 징계를 받았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해당 부대에서 전역한 예비역 병장이 언론에 제보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소녀 왕따의 야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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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분단·이산을 겪은 한국인의 폭력성은 가정·학교·사회에서 재생산, 재사회화 과정을 거쳤다. 지난 4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가정폭력 사건인 칠곡계모사건 1심 공판 직후 시민단체 회원들이 낮은 형량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있다. |
이번 사건과 비슷한 시기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이 발생, 두 번의 충격을 안겨 주었다. 성매매, 학대, 암매장 등 그 가혹행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숨진 윤모(15) 양은 사투리로 인해 왕따를 당하는 등 힘든 학교생활을 이어 갔다고 한다. 윤양의 아버지에 따르면, 이혼 후 김해로 이사했지만 딸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학교 적응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발생하는 ‘소녀 왕따’는 군대의 ‘기수 열외’만큼이나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안긴다.
‘소녀 왕따’는 관계를 중시하는 청소년들의 ‘관계 소망’의 심리를 망가뜨리는 폭력행위를 말한다. 소녀 왕따의 잔인성은 학급이나 소집단끼리 은폐하고 지속한다는 점에서 가혹하다. 관계 맺기를 열망하는 어린 마음에 상처를 내고, 집단내 관계망 속에서 특정 개인을 추방하여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괴로움을 제공한다.
비록 소녀 왕따는 신체적 폭력이 아니고 우회적인 공격이지만 잔인성은 물리적 폭력 못지않다. 소녀 왕따의 실례는 부탁 거절하기, 물어도 대꾸 안 하기, 중간에 말 끊어먹기, 귀엣말로 수군대기, 일부러 거짓 소문 내기 등 다양하다. 학부모나 교사, 전문 상담교사가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으면 왕따의 고리를 풀기가 어렵다.
서울대 문용린 명예교수의 말이다.
“제가 보기에 아쉬운 부분은 부모의 역할입니다. 가해 학생의 부모들은 ‘우정 다짐’으로 치부하고, 아이들끼리 그럴 수 있지 않냐, 애들 일을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해요. 부모가 잘못한 아이의 편을 들어 주면 아이는 죄의식이 사라지고 아이의 범죄 가능성도 커지는 겁니다.
애초에 폭력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어떤 일이 있어도 때리는 행위를 허용해선 안 돼요.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군대에서 명령을 어겼다고 때리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명령을 어겼으면 군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지 개인적으로 사병이 사병을 처벌할 수 없어요.”
—아이들의 폭력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국엔 동네마다 체육관이 있고, 야구를 할 수 있는 볼파크 등이 있지만 한국엔 그런 공간이 거의 없고, 방과 후에 학원에 가거나 조금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합니다. 그런데 이 게임들이 매우 자극적인 폭력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이 부분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독특한 특성일지 몰라요. 공부에 매달려 스트레스가 높은데 비활동적이고 폭력게임을 하니 결과적으로 대인관계가 서투를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과 교내에서 마찰, 갈등이 생기면 말로서 풀기보다 주먹으로 풀려 합니다. 폭력 아닌 수단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폭력 아닌 수단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몰라”
한국인의 폭력 수준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심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가정에서 일어나고 문화적으로 전수되는 폭력, 부부 간의 폭력, 부모·자식 간의 폭력, 학교폭력, 병영폭력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분단을 경험한 한국의 기성세대들이 경험한 폭력 트라우마는 가정과 학교, 군대, 대학과 사회 속에서 ‘재생산’되고, 세대를 거쳐 전수되는 ‘재사회화’ 과정을 거쳤다. 20세기 벽두부터 휘몰아친 식민과 혼란의 해방공간, 6·25와 동족상잔(同族相殘), 군부독재, 속도전에 가까웠던 산업화, 폭력시위가 난무했던 민주화를 거치며 폭력은 한국인의 내면에 뿌리 깊이 안착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의식 속에 형성된 폭력에 대한 가치와 태도는 한국인의 생활습관 속에 일상화되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윤일병 사건과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은 단순히 불행한 사건이 아니다. 가정과 학교·군대·사회에 만연된 폭력의 편린일 뿐이다. 지금 한국인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자기 자신의 폭력성 앞에 놀라고 있다. 놀라는 것만으로 이런 한국사회가 얼마나 변할까.⊙






서열과 위계가 강한 폐쇄적인 병영 내 폭력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폭력, 의료계 폭력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선수 폭력은 엘리트 체육을 표방하는 한국 스포츠의 우울한 현실이다. 학교와 코치, 감독 등 운동 지도자들이 팀 성적을 위해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데 익숙하다. 심지어 학부모들도 성적(成績)을 위한 일이라면 구타나 체벌에 관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