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종교계 차세대 리더 선정. 2008년 차세대 리더 개신교 분야 1위
⊙ 교회 역사상 최초로 레포츠와 교회 선교 결합해 주목
⊙ 2013년 12월 교회 창립 20주년… 年 평균 신도 수 1100명씩 증가
⊙ 성직자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아
⊙ 해외 유명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꿈의교회’ 목회 벤치마킹 중
金鶴中
⊙ 49세.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 호서대 철학박사.
⊙ CBS 기독교방송 이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책임교수, 감신대 겸임교수,
굿프랜드복지재단 이사장, 사회적 기업 ‘드림라이프플래닝’ 대표.
⊙ 저서: 《하나님께 길을 묻다》 《당신은 전도하는 제자입니까》 등 50여 권.
⊙ 교회 역사상 최초로 레포츠와 교회 선교 결합해 주목
⊙ 2013년 12월 교회 창립 20주년… 年 평균 신도 수 1100명씩 증가
⊙ 성직자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아
⊙ 해외 유명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꿈의교회’ 목회 벤치마킹 중
金鶴中
⊙ 49세.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 호서대 철학박사.
⊙ CBS 기독교방송 이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책임교수, 감신대 겸임교수,
굿프랜드복지재단 이사장, 사회적 기업 ‘드림라이프플래닝’ 대표.
⊙ 저서: 《하나님께 길을 묻다》 《당신은 전도하는 제자입니까》 등 50여 권.
그 젊은 목사는 그 자리에서 울먹이면서 이런 인사말을 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남자는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한테 목숨을 건답니다. 제가 두 분한테 목숨을 걸고 살 텐데 한 분은 하나님일 것이고 또 한 분은 이렇게 지금까지 저를 있게 해주신 한재봉 목사님입니다. 그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되겠습니다.”
이 젊은 목사가 울먹인 것은 그날까지 자신에게 신앙의 지주로서 영적인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던 한재봉 목사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한 목사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한 목사는 그 젊은 목사가 다니던 새부천교회의 담임목사다. 한 목사는 그 젊은 목사가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가정형편 때문에 몇 번인가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학비를 마련해 주면서 대학을 마치게 한 사람이다. 졸업 후에는 자신이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교회에 전도사로 있던 그 젊은 목사가 새부천교회에 출석하면서 음대 작곡과에 다니는 한 여성과 결혼하려고 할 때도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전도사를 위해 작곡과에 다니는 여성의 부모를 설득해 결국은 결혼까지 성사시켜 주기도 했다.
새부천교회는 신도 수 300~400명의 작은 교회였지만 그 젊은이가 자신의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교회를 나올 때 수천만원을 지원해 주었다. 20년이 지난 후 당시의 그 젊은 목사는 이렇게 술회한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제가 없었겠죠. 그분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고마워 당시 무명인 제가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이 교회와 목사님에게 평생의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뭐로 갚을까’를 고민하다가 그 교회가 새부천교회니까 제가 개척하는 교회 이름을 새안산교회라고 지으면 그분에 대한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한편 제 마음도 변질되지 않는 목회자로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당연하게 교회 이름을 새안산교회로 지었던 거죠. 사람들은 그 교회를 잘 모르잖아요. 유명한 교회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왜 그런 이름을 짓느냐, 유명한 교회 이름 따라 짓지’라고 했지만 저는 제 마음속에 그분만큼 유명하고 그 교회만큼 좋은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교회 이름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따라 지었습니다.”
위 내용의 젊은 목사는 지금 재적 신도 수 2만2000명의 대형교회인 꿈의교회를 이끌고 있는 김학중(金鶴中) 목사다. 새안산교회는 꿈의교회의 전신이다. 교회 창립 20년 동안 매년 평균 1100명씩 신도 수가 증가해 온 셈이다.
다소 장황하게 김 목사와 한 목사의 인연을 언급한 것은 꿈의교회의 성장의 본질에는 언제나 초심을 지키려는 김 목사의 노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 꿈꿔왔던 신앙과 삶의 조화, 목회를 생각하던 청년 시절부터 꿈꿔왔던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된 삶을 기쁘게 하는 목회 등 신도 수 제로의 교회가 신도 수 2만2000명의 교회로 성장하기까지에는 그의 그런 초심이 흔들리지 않고 지켜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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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중 목사가 목회를 하며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가정의 소중함이다. 2013년 8월 꿈의교회에서 열린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경기지부 개소식에 참석해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는 김 목사. |
이를 통해 ‘레포츠교회’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사전에 등재까지 됐다. 이런 레포츠와 교회 선교를 연결시키는 목회는 국내 최초였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인 건강과 여가생활을 선교의 한 영역으로 끌어들여 적극 활용한 것이다.
가정의 소중함과 행복을 강조하며 가정살리기운동을 벌이는 것도, 신자는 물론 불신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는 점도 이 교회의 특색이자 자랑 중 하나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책도 낸 김 목사는 《아내의 말 한마디가 남편의 인생을 결정한다》 《남편의 말 한마디가 아내의 인생을 결정한다》 등의 ‘가정의 행복을 위한 말 한마디 시리즈’로도 유명하다.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다. 2007년 5월에는 굿프랜드 복지재단을 설립해 아동청소년복지, 가족복지, 지역복지를 지원하고 있고 장애아동발달센터를 통해 언어치료, 놀이치료, 특수체육 등의 장애아동 치료활동도 벌이고 있다.
2011년 10월부터 경기문화복지재단과 협력해 빈곤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대학교수, 교사, 대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공부를 가르치는 에듀투게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밖에 경로당과 어린이보육시설에 쌀을 보내주는 사랑의 쌀 보내기, 북녘 어린이에게 우유 보내기 등의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런 교회의 성장과 사회공헌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학중 목사는 《시사저널》이 선정하는 ‘2008 한국을 움직일 차세대 리더’ 개신교 분야 1위를 차지했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주목되는 분야별 미래 지도자 300인’ 중 종교 분야 차세대 리더에 연속 선정됐다.
2013년 12월 6일 안산에 있는 꿈의교회에서 김 목사를 만났다. 구김살 없고 잘생긴 외모는,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은 부모님과 단칸방에서 생활했고 신학대학 시절에는 학비를 걱정하며 보내야 했다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게 했다. 정확한 발음과 논리적 언어 구사는 왜 이 교회가 다른 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남성 신도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것 같았다.
聖殿보다 체육관을 먼저 지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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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교회 예배당. 꿈의교회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자리에서 예배를 드린다. |
“실제 젊어요. 제가 네 살짜리 딸이 있거든요(웃음). 사실 늦둥이 딸을 본 겁니다. 아들은 군대까지 제대했어요.”
―재적 신도가 2만2000명이면 교회 창립 후 20년 동안 연간 1000명 이상씩 신자가 증가한 셈인데요.
“1970, 80년대에는 빠르게 성장한 교회들이 많았는데 90년대 이후는 사회적으로 물리적으로 그게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축복을 받아서 교회가 빠른 성장을 했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교회성장의 정체기라고 할 수 있는데 꿈의교회가 그런 시기에 급속하게 성공하게 된 비결이 따로 있습니까.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첫째는 제가 자라온 배경이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집안을 통틀어 교회를 다니는 분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비빌 언덕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스스로 어릴 적부터 목회자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 하게 됐고 그 방향으로 노력을 했다는 점이 있고요.”
―두 번째 이유는요.
“제가 얻은 결론이 똑같으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교회가 물론 하나님 한 분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하나님을 향해 가는 여러 가지 목회의 길은 조금 다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차별성이죠.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게 교회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존 교회와 다른 것들을 선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레포츠 시설을 교회에 둔 것은 한국교회에 없는 시도잖아요. 그것이 아마 나름 저희 교회를 많은 분이 선택해 주시고, 저희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새안산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2002년에는 새안산레포츠교회로 2007년에는 꿈의교회로 교회 이름의 변경이 있었는데 굳이 레포츠교회로 교회명을 바꿀 이유가 있었습니까.
“지금의 이 교회 자리가 종교 부지 1500평을 분양받은 거예요. 이 자리로 교회를 옮길 때 당시 종교 부지가 20개 나왔고 이미 안산은 500개 교회가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제 생각에 그 많은 교회가 똑같으면 우리 교회는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었죠. 뭘 다르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는데 레저하고 연관된 쉼터가 있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학교 다니면서부터 제가 꿈꿨던 게 레포츠교회였어요. 예배당 짓지 말고 체육관을 지어서 거기에 수영장도 넣고 헬스장도 넣고 농구장, 배구장 이런 것도 만들어서 주중에는 누구나 상관없이 운동하고 주일에는 농구장에 의자를 세팅해서 예배를 보는 그런 교회를 생각했죠. 그런 생각에서 교인들을 설득해서 체육관을 먼저 지은 거죠. 교회 건물은 그 뒤에 지었는데 사람들에게 교회를 알릴 방법을 생각하다가 교회와 레포츠라는 말을 합친 거죠.”
99%가 레포츠교회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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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오동 시절 꿈의교회. 당시 교회명은 새안산교회였다. |
“99%가 반대했죠. 우선 내부에 있는 교인들은 ‘우리는 교회를 온 거지 레포츠센터 온 게 아니다’며 반대하는 분들이 있었고요. 외부에서는 한국에 전혀 없는 모델이니까 심지어 ‘저 교회는 이단이다’는 말까지 했어요. 제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이 시대에 다시 오시면 어떤 교회를 지으실까?’ 하는 자문이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가 주일에만 문을 열고 나머지 요일은 문을 닫는데 이것처럼 비효율적인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교회의 존재를 꼭 예배당의 거룩한 것으로만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 주민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반대가 심했는데 막상 오픈을 해놓고 보니까 의외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직접 경험해 보니 뭔가 다른 느낌이 오는 거죠. 우선 외부 분들이 이런 교회가 있다는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됐고 와서 직접 보니까 자신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교회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우리 교회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죠.”
―이름에 얽힌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습니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새롭게 우리 교회를 찾는 신도들이 적는 ‘새 가족 카드’ 인도자의 이름을 적는 칸에 수영, 헬스, 탁구, 농구, 배드민턴 등을 적어놓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우리 교회가 마련한 레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외부에 교회를 개방하면 관리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 교인들이 힘들었죠. 매일 의자도 세팅했다가 치우고 일반인들 왔다 가면 담배꽁초도 주워야 하고 화장실도 더럽고 물건도 파손되고 교회는 손해가 있지만 그것 때문에 교회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이 교회에 대한 칭찬이 많아지니까 내부에 있는 사람들도 고무가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인정해 주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안과 바깥에 다 좋은 일이 생겼어요.”
―꿈의교회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요.
“레포츠교회를 하면서부터 언론에 저와 우리 교회가 많이 소개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신자들이 서울에서도 오고 일산에서도 오고 분당에서도 오고 수원에서도 오는 거예요. 안산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서 수도권 전체로 신자들의 분포가 확대되기 시작한 거죠. 보통 안산에서 서울 교회로 가는 분들은 많아도 서울에서 안산으로 오는 분들은 드뭅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왔겠지 얼마나 가겠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에요. 다시 돌아가겠지 했는데 안 돌아가고 더 열심히 하는 거예요. 이 교회에서 은혜도 많이 받고 좋은 크리스천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 이름에 안산이라는 지명을 그대로 두는 것은 바깥에서 오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 이름에서 안산이라는 지명을 빼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레포츠교회 건물이 800명에서 900명 정도 들어가는 공간이었는데 하루에 5번 예배를 드려도 수용을 못 하는 거예요. 교인들이 ‘적어도 3000석 규모의 예배당 건물을 빨리 지어야 한다’고 제게 건의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부지에다 교회를 지은 거예요. 그러면서 교회 이름을 공모했는데 꿈의교회로 이름을 짓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개척교회를 열 때 내걸었던 모토가 ‘비신자가 좋아하는 교회, 젊은이가 좋아하는 교회, 남성들이 더 좋아하는 교회’였는데 목사님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남성들이 더 좋아하는 교회로 가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웃음)한국교회엔 어느 교회든 여성들이 많습니다. 차별성 있는 교회가 되려면 거꾸로 남성이 많은 교회가 돼야 한다고 봤죠. 남성이 여성보다 숫자로 많아지지는 않을지라도 기존의 7대 3, 8대 2로 여성이 많은 교회에서 6대 4, 5대 5는 돼야 교회가 건강해지고 미래지향적이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주일날 예배 때 보면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6대 4 정도 돼요. 다른 교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남성 비율이 상당히 높은 거죠.”
김 목사는 ‘비신자가 좋아하는 교회, 젊은이가 좋아하는 교회, 남성들이 더 좋아하는 교회’라는 꿈의교회의 슬로건은 꿈의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참고해야 할 슬로건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 목표는 우리 교회의 목표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교회들도 참고해야 할 목표일 겁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그렇게 하다 보니까 여성들이 더 많아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남편들이 좋아하니까요. 실제로 저희 교회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당신이 다니는 교회를 꿈의교회로 옮기면 교회에 다닐게’ 해서 온 여성들이 꽤 있어요. 남편과 아버지를 위해서 아내들과 가족들이 옮겨온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남성들이 더 좋아하는 교회, 교회 마케팅으로 봐도 될까요.
“뭐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됐으니까 부인할 수는 없죠.”
외형 아닌 내용에서 세계 10대 교회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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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2월 현재의 교회 위치인 고잔신도시로 이전했을 때의 꿈의교회. 당시 교회명은 새안산레포츠교회였다. |
“선정 소식을 듣고 왜 저를 그렇게 보아주셨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전문가들이고 여러 가지 자료를 토대로 해서 점수를 매긴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다른 교회와 차별성 있는 목회가 그런 평가를 받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교회가 크고 그런 걸로 따지면 우리보다 더 큰 교회가 있으니까 그런 거는 아닐 테고 우리 사회가 원하는 니즈(needs)를 수용하는 교회라는 게 가장 중요했을 거라고 봅니다. 우리 교회는 바깥에서 봤을 때도 어느 정도 좌우의 균형을 갖춘 교회라고 자부합니다. 보수와 진보도 같이 아우르려고 노력했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것들이 아마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많은 저술 중에 조만식 박사나 장기려 박사 전기 같은 책을 쓴 것도 눈길을 끌던데요.
“출판사에서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열 분 정도 선정해서 누구든지 전철 안에서 한두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읽을 수 있는 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기독교 근대인물 가운데 좋은 인물, 젊은이와 비기독교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읽힐 만한 인물이 누구일까 생각했습니다. 1년여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구성해서 썼습니다. 한국에 교회가 많고 세계에 많은 선교사를 보낸 것은 우리 기독교인만의 자랑이지 바깥사람들의 자랑은 아니죠. 젊은 세대나 다음 세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책입니다.”
―교회 목표 중에 세계 10대 교회로 만드는 것도 있던데 그 목표에 어느 정도까지 다가섰다고 봅니까.
“처음에 제가 교인들에게 ‘오늘은 안산, 내일은 한국, 모레는 세계’ 이런 교회로 가자고 했는데요. 사실 슬로건만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제가 의미했던 것은 세계 10대 교회라는 것이 외형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 시대에 공신력 있는 분들이나 특히 서구 사회에서 세계에 현존하는 교회 가운데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세계 10대 교회를 선정한다면 한국에서는 우리 교회가 그 안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어요.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몇 번째라는 이야기는 많이 있었지만 건강한 캐릭터를 가진 교회가 세계에 소개된 적은 없었어요. 양적인 것은 소개됐지만 질적인 것은 소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교회로 우리가 세계 속에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그런 건강한 교회로 꼽혔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운 거죠.”
―그럼 신도 수라든가 교회의 규모는 어느 정도까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지요.
“물론 일정 이상의 규모는 돼야 합니다. 제가 볼 때 대형교회라고 함은 1만명 이상 모이면 대형교회라고 봅니다. 2만명 모이나 10만명 모이나 별 의미 없습니다.”
―해외에서 꿈의교회를 벤치마킹하러 오지는 않습니까.
“외국에 있는 좋은 신학교나 유명한 목사님들이 최근에 저희 교회를 많이 다녀가셨어요. 또 소위 MOU를 맺고 싶어하는 데도 많이 있고 그런 제안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꿈꾸던 그런 교회의 모습으로 조금씩 가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우리 교회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목회 방법에 있어서 새로운 롤모델을 만들었고 또 만들어가고 있는 거네요.
“서구 등 세계 교회가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 중에서 한 번 주목해 볼 만한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교육 분야 사회공헌활동은 지속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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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교회 레포츠센터 내부. 레포츠센터는 비신자들에게도 개방돼 있다. |
“몇 퍼센트라고 딱 정한 것은 아니고 교회가 해오는 원칙이 있어요. 바깥에 나누고 사회에 공헌하는 예산이 3분의 1 정도는 될 거예요.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20년 동안 늘 예산 사용 내역을 공개해 오고 있어요. 몇 퍼센트를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해마다 점점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고민하는 것은 넓게 많이 할 거냐, 아니면 집중력 있게 할 거냐, 이게 어느 것이 그 시대에 맞는 것이냐,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최근에는 넓게 하는 것보다는 깊이 있게 도와주고 섬겨주는 일을 해야 되지 않느냐 생각해요. 여기저기 많은 복지보다는 어느 한 대상을 정해 놓고 그해에는 그 대상이 자립할 수 있도록 또는 근본적인 혜택을 주는 그런 복지나 나눔을 많이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사회공헌활동 중 이 사회공헌활동만은 꿈의교회가 지속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활동이 따로 있습니까.
“굿프랜드는 저희 교회에서 세운 NGO입니다. 매년 10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고 있는데 언젠가 우리 교회가 손을 떼게 돼도 우리 사회가 지탱해 줄 수 있는 그런 복지재단으로 갈 것으로 봅니다. 지금 제가 관심 갖는 것 중의 하나가 차세대 교육입니다.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우리 시대에는 사라졌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다음 세대를 살리는 교육에 관한 일, 이런 일에는 저는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 일만큼은 모든 걸 다 팔아서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은 아닙니까.
“그런 것도 있겠죠. 교육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교회가 해주어야 한다고 봐요. 학원도 많고 공교육을 잘 해주고 있지만 분명히 사각지대가 있고 못 하는 게 있거든요. 그걸 종교가 해주어야만 종교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2013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놓고 보수적인 일부 교회의 반대 등 한국 교계가 시끄러웠는데요.
“제가 속한 교회가 감리교회이고 감리교회가 그런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 의사와 상관없이 중앙위원회에 이름이 들어가 있었죠. 제가 총회장 방문도 했습니다. 그것은 제 도리고 예의이기 때문이죠. 저는 그곳에 가서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저는 WCC에 대해서 반대하는 분들의 우려를 알아요. 저도 WCC에서 주장하는 것에 몇 가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참여해서 그런 것들에 대해 반대 토론도 하고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WCC에 참여한 분들도 보수 측에서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만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반대하는 분들의 이야기 속에 참고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죠.”
―자제분 중에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회세습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요.
“민감한 문제인데요. 그것을 ‘옳다, 그르다’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아요. ‘좋은 것이냐, 안 좋은 것이냐’로 말해야 하는데 다만 시대 상황과 상대성에 따라 조금씩 결론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나 교회가 이제는 교회세습을 수용하지 않아요. 그러면 안 해야죠. 저희 교단 같은 경우는 세습을 아예 법으로 금지하잖습니까. 저는 그런 교단의 결정이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으로 보기 때문에 너무 잘했다고 보고 지지해요.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세습한 분들에게 ‘이거는 나쁜 거다’고 말할 것은 아니죠. 지금의 상황에서 얘기한다면 저는 세습에 대한 의사가 없어요.”
―세금은 내고 있습니까.
“네, 내고 있습니다.”
―성직자의 세금 납부 문제는 어떻게 결론 내야 할까요.
“결론적으로 성직자도 세금은 납부해야 됩니다. 다만 우리 교역자 가운데 사회 기준으로 봤을 때 저소득층에 속한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에 대한 보완이 마련되면서 세금을 내도록 해야겠죠. 국가가 있고 사회가 존재해야 교회도 있는 것이니까요.”
―소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운 등의 발언 후 개신교에서도 목회자정의실천협의회 소속 목사들이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의 정치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본적으로 성직자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치에 직접 참여해서 그러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에요. 운동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직접 뛰지는 않잖아요. 선수가 못한다고 감독이 직접 운동장에 나가서 뛰는 것은 월권입니다. 코칭은 해줄 수 있어요. 성직자도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직접 참여는 안 하지만 누군가 와서 조언을 구하거나 사회가 정말로 잘못 가고 있을 때 잘해야 한다고 질책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365일 새벽기도와 하나님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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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교회 전경. |
“어릴 적이어서 뭘 기도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요. 하나님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절실함만 있었던 거죠.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제 평생에 그렇게 간절하게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하나님이 뭐 때문에 날 예뻐하실까, 한국에 나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 목사님들도 많은데 나같이 부족한 사람, 허물 많은 사람을 이 시대에 그렇게 하나님이 축복하실까’를 자문해 보곤 하는데 그때 365일 동안 빠지지 않고 교회 나갔던 모습이 떠오르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걸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지 않을까, 나는 너를 그때 그 모습으로 이미 축복하고 싶었단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신앙생활 해오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이 신앙생활이 기복신앙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던 적은 없습니까.
“있죠. 지금도 여전히 저는 저한테 반문하죠. ‘내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 갖는 기복적이고 본능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하죠. 그러나 그런 것을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 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그런 것에 대한 제 중심 철학 논리는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기복신앙이 나쁜 겁니까.
“그것은 본능적으로 인간이 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창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알든 다른 종교를 갖든 기본적으로 인간은 신에 대한 욕망이 있어요. 기복신앙이라는 것도 신앙이잖아요. 인간의 원초적인 신앙이거든요. 인간 안에는 종교성이 다 있어요. 전 그게 이미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창조 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복신앙도 일종의 신앙인데 우리가 말하는 신앙과는 좀 다르죠.”
―욕망이 섞인 신앙?
“네, 그렇죠. 그것을 좀 더 불순물을 제거하고 추출된 신앙으로 끌어내는 것이 교회와 바이블과 성직자들이 해내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신학대를 가지 않고 일반대에 진학해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했는데요.
“그때는 제가 신학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였고요.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하고 이런 것은 사실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이었죠. 돈도 좀 벌었어요. 많은 재산을 축적한 것은 아니지만 제법 잘나가는, 지금으로 말하면 김제동씨 같은 톱클래스의 레크리에이션 강사였어요. 기획과 아이디어도 많이 냈어요. 그 길로 계속 갔다면 지금의 이수만쯤 되었을 겁니다.(웃음)”
―레포츠교회 할 때 레크리에이션 강사 경험이 큰 도움이 됐겠습니다.
“제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군대 생활과 레크리에이션 강사 경험이에요.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하면서 상대와의 눈 맞추기라든지 현장의 분위기를 어떻게 주도해야 하는지 등을 잘 알게 됐어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했던 그런 창조적인 경험이 지금의 제 목회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 적은 없습니까.
“그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제 성격상 목회 안 했을 겁니다. 남들에게 너무 강한 색채로 표현하지만 않을 뿐이지 제 마음속에는 피가 빨간 것처럼 저에게 구원은 그 색깔이에요. 그런 확신과 신념이 없다면 저는 목회자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도마 위 칼질하는 소리가 가장 행복한 소리
―혹시 잘할 수 있는 요리 있습니까.
“‘라볶이’ 잘하고요. 전도 잘 부치고요.”
―무슨 전?
“동태전, 파전, 빈대떡 이런 거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줍니다. 아이들도 아빠가 만들어주는 전이 제일 맛있다고 합니다. 집에서 가끔 아내한테 요리를 뽐낼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이 할 수 있는 요리가 있느냐고 물으면 라면 정도만 끓일 수 있다고 하지 다른 음식은 언급을 안 합니다. 그런 답을 들을 때마다 목사님들은 권위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도마에 부딪치는 칼질 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어요. 어머니의 향수가 느껴지고, 행복한 가정을 가장 잘 표현할 때 저는 도마 위 칼질 소리가 연상돼요.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의 도마 위 칼질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아닐까 생각해요. 한쪽에서는 냄새가 퍼져나가고, 그런 광경이 가정을 표현하는 가장 멋진 그림이 아닐까요. 저는 도마에 부딪치는 칼질 소리를 들을 때 가끔은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웃음)”
신도 2만2000명의 대형교회를 이끌지만 집에서는 가끔 행주치마를 두르는 목사님. ‘남성이 더 좋아하는 교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왜 이 교회에 대해 여성 신자들이 더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