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호 happyletter.park@gmail.com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 57세.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국대 법무대학원 문화예술관련법
석사 과정.
⊙ 재무부장관 비서관, 재경부총리 비서관, 정리금융공사 사장, 우체국예금보험지원단 이사장 역임.
⊙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겸 행복편지 발행인, 사진가.
⊙ http://sihopark.com.ne.kr | twitter@parksiho
박한나 parkreative@gmail.com
⊙ 홍익대 국제디자인박사 디자인학 과정(휴학).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석사(Illustration 전공).
⊙ 前 제일기획 아트 디렉터.
⊙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가 활동 중.

우리 부부는 변두리에서 조그마한 만두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하기도 했습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대체 저 두 분은 어떤 사이일까?”라며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요?”라는 아내의 대답에 나는 “부부가 뭣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본의 아니게 헤어졌는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그런데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각자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 ….”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번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먹거렸습니다.
오늘 따라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그런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만두 가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낡은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조금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라고 할아버지에게 물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허탈하면서도 씁쓰레한 미소로만 웃어 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하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
두 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어.”
큰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왜 나만 부모님을 모셔야 하냐고 나 혼자 부모님을 모실 수가 없다고 …. 하도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병에 걸려 먼저 돌아가셨답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천장을 쳐다보며 혼잣말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
“야속한 사람, 왜 나만 남겨두고 먼저 떠났어! 가려거든 나도 함께 데려가지 …. 자식들 다 소용없어 …. 어려서 갖은 고생 다 하면서 키웠지만 다들 결혼하고 나면 마누라한테 잡혀서 기도 펴지 못하고 잡혀 살고 있잖아?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애지중지 키웠는지 애들은 알지 못하나 봐. 나중에 자기들도 늙고 병들어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겠지 ….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우리도 잘못인데 누구를 탓하겠어 …. 부모는 불편하고 방해만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식들한테 하는 것 봐봐. 그것 반만이라도 부모에게 신경써 주면 이런 일들은 없을 텐데 …. 자식 키워 봤자 아무 소용없어. 그런 것을 왜 진작 모르고 살았을까? ….”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 이 내용은 신정남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나이 스물여덟, 남자는 어느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지요.
나이 스물여섯, 여자는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성당에서 조촐한 출발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어느새 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요. … 그때,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불행이었어요.
그들이 살던 자그마한 집에 그만 불이 났답니다. 그 불로 아내는 실명을 하고 말았대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겐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두 사람이 만들어 갈 그 수많은 추억들을 이제는 더 이상 아내가 볼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 후로 남편은 늘 아내의 곁에 있었죠. 아내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혼자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가 않았답니다.
남편은 곁에서 아내를 도와주었지요. 처음엔 아내가 많이 짜증도 부리고 화도 내었지만 남편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었답니다.
늘 그것이 미안했었나 봐요. 당신을 그 불 속에서 구해 내지 못한 것이 …. 그리고 그 아름다운 눈을 잃게 만든 것이 말이에요. ….
또 다시 시간이 흘러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도 주위를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적응을 하였지요.
그리고 이제서야 남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서 …. 하나 남은 세상의 목발이 되어 주고 있음을 알게 된 거죠. 이젠 다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이젠 둘은 아무 말 없이 저녁노을에 한 풍경이 되어도 편안한 나이가 되어 갔답니다.
시간은 그들에게 하나둘씩 주름을 남겨 놓았지요. 아름답던 아내의 얼굴에도 세월의 나이테처럼 작은 무늬들이 생겨나고 남편의 늘 따사롭던 손도 여전히 벨벳처럼 부드럽긴 하지만 많은 주름이 생겨났지요.
남편은 이제 아내의 머리에 난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놀리곤 했답니다.
“이제 겨우 8월인데 당신의 머리엔 하얀 눈이 내렸군. ….”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이제 왠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어요. 벌써 세상의 빛을 잃은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이 보고 싶군요. 난 아직도 기억한답니다. 당신의 그 맑은 미소를 …. 그게 내가 본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아내가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길은 누군가의 눈을 이식 받는 것뿐이었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았죠.
아무도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에게 각막을 이식해 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아내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남편은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나, 당신의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군요. ….”
세월은 이제 그들에게 그만 돌아오라고 말을 전했답니다.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먼저 남편이었지요.
아내는 많이 슬퍼했답니다. 자신이 세상의 빛을 잃었을 때보다 더 많이 말이에요.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 하고 떠나기로 했지요. 자신의 각막을 아내에게 남겨 주는 것이랍니다.
비록 자신의 눈도 이제는 너무나 희미하게만 보이지만 아내에게 세상의 모습이라도 마지막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거지요. 남편은 먼저 하늘로 돌아가고 아내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남편의 각막을 이식 받게 되었죠.
그녀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늘 곁에 있던 남편의 그림자조차 말이죠. 병원 침대에서 내려와 이제 환하게 밝혀진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머리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머리에 가득 내려앉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정경을 내려다보며,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답니다.
당신에게 지금보다 훨씬 전에 이 세상의 모습을 찾아 줄 수도 있었는데 ….
아직 우리가 세월의 급류를 타기 전에 당신에게 각막 이식을 할 기회가 있었지.
하지만 난 많이 겁이 났다오. 늘 당신은 내게 말하고 있었지.
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
아직 젊을 때 나의 환한 미소에 대해서 말이오. 하지만 그걸 아오?
우리는 너무나 늙어 버렸다는 것을 ….
또한 난 당신에게 더 이상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오.
당신은 눈을 잃었지만 그때 난 나의 얼굴을 잃었다오. 이제는 미소조차 지을 수 없게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해 버린 나의 모습을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소.
또한 우리 생활의 어려움과 세상의 모진 풍파도 말이오. 난 당신이 나의 그 지난 시절 내 미소를 기억하고 있기를 바랐소.
지금의 나의 흉한 모습보다는 …. 그러나 이제 나는 떠나오. 비록 당신에게 나의 미소는 보여 주지 못하지만 늘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기 바라오.
그리고 내 마지막 선물로 당신이 이제는 환하게 변해 버린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기를 바라오.
아내는 정말로 하얗게 변해 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답니다.
난 알아요. 당신의 얼굴이 화상에 흉측하게 변해 버렸다는 것을 ….
그리고 그 화상으로 인해서 예전에 나에게 보여 주던 그 미소를 지어 줄 수 없다는 것도 ….
곁에서 잠을 자는 당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고 알았지요. 하지만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내가 당신의 그 미소를 간직하기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난 당신의 마음 이해하니까 말이에요. 참 좋군요. 당신의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이 ….
그리고 며칠 뒤 아내도 남편의 그 환하던 미소를 쫓아 하늘로 되돌아갔답니다.
※ 이 내용은 정영진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오늘도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새벽부터 인력시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호가 경기 침체로 인해 공사장 일을 못한 지도 벌써 넉 달이나 흘렀다. 요즈음에는 인력시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루의 일자리도 찾지를 못하고 가랑비 속을 서성거리다 쓴 기침 같은 절망을 안고 뿔뿔이 흩어지기가 부지기수이다.
이렇게 남편이 제대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자 정호의 아내는 지난달부터 시내에 있는 큰 음식점으로 일을 다니며 정호 대신 힘겹게 가계를 꾸려 나가고 있지만, 그것도 살림에는 그리 큰 보탬이 되지 못한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한 초라한 밥상에서 정호는 늘 죄스러운 한숨만 내뱉을 뿐 뾰족한 대책이 없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 본인 스스로가 너무나 밉다. 그래도 정호는 무언가 일거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아이들만 집에 남겨 두고 다시 집을 나섰다. 목이 긴 작업신발 속에 발을 밀어 넣으며 끝내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주인집 여자를 만날까 봐 발소리조차 그의 것이 아니었다. 벌써 여러 달째 밀려 있는 집세를 생각하면 그는 어느새 고개 숙인 난쟁이가 되어 버렸다.
저녁 즈음에 오랜 친구를 만나 일자리를 부탁했다. 친구는 일자리 대신 삼겹살에 소주를 샀다. 술에 취해 고달픈 삶에 취해 산동네 언덕길을 오를 때 야윈 그의 얼굴 위로 떨어지던 무수한 별빛들. 집 앞 골목을 들어서니 귀여운 딸아이가 그에게로 달려와 안겼다.
“아빠, 엄마가 오늘 고기 사왔어. 아빠 오면 해 먹는다고 그래서 아까부터 아빠 기다렸어.”
일을 나갔던 아내는 늦은 시간 저녁 준비로 분주했다.
“사장님이 애들 갖다 주라고 이렇게 고기를 싸 주셨어요. 그러지 않아도 영준이가 며칠 전부터 고기반찬 해 달라고 했는데 어찌나 고맙던지요.”
“집세도 못 내면서 고기 냄새 풍기면 주인 볼 낯이 없잖아.”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지금에야 저녁준비 한 거예요. 열한 시 넘었으니까 다들 주무시겠죠. 뭐.”
불고기 앞에서 아이들의 입은 꽃잎이 됐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내는 행복해했다.
“천천히들 먹어. 잘 자리에 체할까 겁난다.”
“엄마. 내일 또 불고기 해줘, 알았지?”
“내일은 안 되고 엄마가 다음에 또 해줄게. 우리 영준이 고기 먹고 싶었구나?”
“응 ….”
아내는 어린 아들을 달래며 정호 쪽으로 고기 몇 점을 옮겨 놓았다.
“당신도 어서 드세요.”
“나는 아까 친구 만나서 저녁 먹었어. 당신이 배고프겠다. 어서 먹어.”
정호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고기 몇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와 달빛이 내려앉은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가엾은 아내 …. 아내가 가져온 고기는 음식점 주인이 준 게 아니었다. 숫기 없는 아내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쟁반의 고기를 비닐봉지에 서둘러 담았을 것이다. 아내가 구워 준 고기 속에는 누군가 씹던 껌이 노란 종이에 싸인 채 섞여 있었다. 아내가 볼까 봐, 정호는 얼른 그것을 집어서 삼켜 버렸다. 아픈 마음을 꼭꼭 감추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착한 아내의 마음이 찢어질까 봐. ….
정호는 늦은 밤. 아내의 구두를 닦는다. 별빛보다 총총히 아내의 낡은 구두를 닦으며 내일의 발걸음은 지금보다 가볍고 빛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 이 내용은 행복편지를 통해 소개된 이철환님의 글입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2년 만에 변두리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성공한 친구들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둥지였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마누라는 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살림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당신, … 집 장만한 게 그렇게도 좋아?”라고 묻자 아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지 그럼, 얼마나 꿈에 그리던 일인데.”
이렇게 집을 정리하면서 힘든 줄 모르게 하루가 갔습니다. 겨우 짐 정리를 마치고 누웠는데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남의 집 문간방살이를 전전하던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여보 그 집 생각나? 옛날에 결혼하자마자 첫살림을 살던 그 문간방.”
지금 생각하면 찬바람이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고, 수도관이 터져 밥도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냈지만,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미래를 설계하며, 꿈과 희망을 가졌던 안식처였습니다.
“여보 우리 거기 한번 가 볼까?”
숟가락몽둥이 하나 들고 신혼 단꿈을 꾸던 그 가난한 날의 단칸방이었지만 그곳은 아내의 기억 속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얇고 따뜻한 이불 한 채를 사 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달동네 문간방을 찾아갔습니다. 계단을 오르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이 이렇게 높았었나?”
남편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 그땐 이렇게 높은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우리가 그 옛집에 당도했을 때 손바닥 둘을 포갠 것만한 쪽방에선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기저귀가 펄럭이고 아이가 까르륵대는 집.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만 같은 상념에 잠겨서 우리 부부는 멍한 상태에서 옛일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때 돈은 없었지만 둘만 있으면 아무 것도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었고, 아이들의 얼굴만 쳐다보아도 이 세상에 우리 부부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둘이 함께 있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난방이 필요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이불을 문간방 툇마루에 슬며시 놓아 두고 돌아섰습니다.
그날 문간방 젊은 새댁이 발견한 이불 보따리 속에는 이불보다 따뜻한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10년 전 이 방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집에 돌아와 이불을 덮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따뜻했었지요. 행복하게 사세요.”
달동네 계단을 내려오면서 우리 부부는 마주보며 웃었습니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허름한 변두리의 작은 집에 찾아와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이불 한 채를 선물하고 내려가면서 우리 부부는 새삼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이불은 문간방 식구들의 시린 발보다 부부의 마음을 더 포근히 감싸 덮는 이불로 평생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 이 내용은 김도용님이 보내주신 행복편지입니다. -연재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