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르포

부산이 수상하다

“(PK)대통령 안 만들고 싶겠능교”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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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공항 무산은 민심 술렁이는 단초 제공했을 뿐
⊙ MB정부에 대한 실망, TK에 대한 반감, 자괴감 뒤엉켜 뒤숭숭
⊙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 6명 떨어뜨리며 이변 연출
지난 4월 3일, 부산 중구 광복로 일대에서 부산 시민 1000여 명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규탄하며 촛불집회를 갖고 있다.
“신공항이예, 그건 난 몰라예. 정치인 갸들끼리 걍 싸우는 갑지. 정부가 한 게 뭐가 있능교. 잘살끼라 생각했는데 달라진 게 없네 예.”
 
  지난 4월 8일 부산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기사 임모씨에게 ‘부산 가덕도 신공항이 무산돼서 실망했겠다’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30대(代) 주부 김모씨에게 같은 질문을 해 봤다.
 
  김씨는 “공항이 뭐 어쨌다는 건지는 모르겠고 물가가 올라서 장보기가 무섭다”고 했다. 그의 말 속에는 이명박(李明博) 정부에 대한 야속함이 담겨 있었다.
 
  몇몇 시민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반응은 비슷했다. 신공항이 무산된 것으로 인한 실망보다는 당장 먹고살기가 팍팍하다는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부산여성NGO연합회 조정희(趙貞姬) 대표의 얘기다.
 
  “신공항이 무산된 것까지는 이해했습니다. 대통령이 밀양과 가덕도(부산) 중에 한 곳을 택하는 게 쉽지 않았겠죠. 그래도 그렇지, 산속에 있는 밀양이 부산 가덕도 해안보다 공항으로 좋은 환경이라면서 높은 점수를 준 게 말이나 됩니까. 부산 사람들 자존심이 팍 상했어요. 우리나라를 연방국가로 해서 부산이 독립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동명목재, 국제그룹이 있을 때는 서울보다 잘살았습니다. 누가 이렇게 망쳤습니까. 게다가 요즘은 물가가 치솟아서 다들 못살겠다고 난리잖아요. 이제 한나라당에 대한 부산의 짝사랑은 끝났습니다.”
 
  부산 동래구 소속의 한나라당 이진복(李鎭福) 의원은 요즘의 상황을 이렇게 규정했다.
 
  “부산 사람들끼리 ‘앗싸리하다’는 표현을 합니다. 하는 것은 하는 거고, 안하는 건 안한다는 소리예요. 처음에 신공항에 대해 잘 몰랐던 부산 사람들이 지난해 말부터 곳곳에 현수막이 붙으니까, 이게 뭐 전쟁이라도 난 줄 아는 겁니다. 그러다가 밀양 얘기가 나오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하네. 밀양이 공항 할 데나 있나. 돗대산에 비행기가 떨어져가(지난 2002년 4월, 중국 민항기가 돗대산에 추락해 129명이 숨진 사고를 가리킴)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데, 산 깎아가 밀양에 공항 만든다니 말이 되나’라는 얘기가 나온 겁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밀양도 아니고 부산도 아니라고 발표했잖습니까. 부산 사람들은 ‘뭐라꼬? 백지는 뭐꼬? 하면 하고 말면 말끼지. 에이, 한나라당 표 찍은 손가락 다 빼뿌라’ 이런 상황입니다.”
 
 
  요동치는 부산 민심에 휘발유 부은 신공항
 
지난 3월 31일, 시민단체가 부산시청 앞에서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 발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무산을 선언한 직후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의 민심은 요동치고 있었다. 그런데 요동치는 원인이 상당히 묘했다. 정부가 부산 가덕도에 동남권 신공항을 건설하지 않기로 한 것이 원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신공항 무산은 흡사 ‘울고 싶어 안달난 부산 사람들의 뺨을 때린 격’이었다.
 
  부산 사람들은 물가가 치솟는 요즘 상황과 기대를 하고 뽑아 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 지난 30년간 정체된 부산 경제에 대한 불만으로 폭발 직전이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대구·경북(TK)에 대한 반감, 부산 시민들 스스로에 대한 원망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산이 서울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40여 부산 시민들의 눈빛은 변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부산 시민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어 놓은 계기는 신공항 건설 무산이다. 시청 주변을 보면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미래형 신공항 최적지 부산가덕 해안공항’, ‘동남권 신공항, 신어산 추락사고 잊었는가’, ‘안전한 24시간 공항, 가덕도 신공항뿐입니다’.
 
  동남권 신공항의 골자는 아주 간단하다.
 
  노무현(盧武鉉) 전(前)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신공항 건설 검토를 지시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에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일은 4년3개월 동안 표류했고, 정부는 지난 3월 30일에 전면 백지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공항 후보지였던 부산을 달래기 위해 허남식(許南植) 부산시장을 불러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은 뿔이 단단히 난 모양이다.
 
  허남식 부산시장의 얘기다.
 
  “김해공항 인근 지역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소음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24시간 운영할 수 없었습니다. 김해공항을 안전하고 24시간 운항이 가능한 공항으로 만들어 보자는 차원에서 출발했고, 부산시가 전문가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가덕도 해안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밀양이 튀어나오고, 이런 결과가 나오니 부산시민들이 실망한 겁니다.”
 
  조정희 부산여성NGO연합회 대표는 이랬다.
 
  “김해공항이 생긴 다음부터 지역 주민들이 꽹과리 치면서 시장실을 점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부산시의 고민은 소음 없는 지역으로 공항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20년 된 일입니다. 공항 이용객이 늘어나니까 확장 이전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러다가 중국 민항기가 돗대산에 추락하면서 안전성 얘기가 나온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옮긴다고 하다가 이명박 정부로 넘어왔습니다. 그런데 공항 옮기는 것이 큰 프로젝트니까 영남 5개 도시가 같이 해라, 뭐 이렇게 얘기가 나온 겁니다. 그러다가 밀양과 가덕도가 후보지로 결정되고, 대구가 밀양 편을 들고 나서면서 일이 커졌습니다. 원래 취지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됐죠.”
 
 
  “가덕도가 소음이 문제라고? 어린애가 봐도 안다”
 
물가 폭등으로 인한 재료값 인상으로 식당 메뉴 가격이 올라 부산 민심도 험악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신공항 얘기가 나오면 흥분된 어조로 말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곰곰이 듣고 있자니 의문이 들었다. 그들이 김해공항을 이전할 수 없게 돼서 걱정이 된다는 소리인지, 아니면 그들의 발걸음에 브레이크를 건 정부에 성토를 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단편적인 예로 부산 사람들은 ‘정부 결정을 믿지 못하겠다’고 나섰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나라의 이름을 걸고 내린 결정이 아닌가. 신공항에 대해 기대가 있었던 만큼 정부의 발표가 상처가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이자니 상처가 된다가 아니라, 정부의 결정을 신뢰할 수 없다고 나서고 있었다.
 
  정부가 신공항 건설을 무산시킨 이유는 경제성이 없어서다.
 
  박창호 동남권신공항입지평가위원장은 “밀양과 가덕도는 불리한 지형조건으로 인해 환경훼손과 사업비가 과다하고 경제성이 미흡해 공항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럼 이에 대한 부산의 얘기를 들어 보자.
 
  부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낸 박인호(朴仁鎬) 박사의 얘기다.
 
  “가덕도는 안전성과 소음 측면에서 만점이 나와야 하는데, 정부의 조사결과에서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해안가에 공항을 짓는데 무슨 소음이 날 것이 있습니까. 하물며 가덕도의 점수가 밀양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일부러 짜맞추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죠.”
 
  부산시청 동북아 제2허브공항 유치기획단의 신유라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이유로 무산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은 있었지만 밀양보다 점수를 덜 받을 거라는 건 상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정부가 평가하는 점수 배점(경제성 40%, 공항운영 30%, 사회환경 30%)을 다르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평가단이 ‘부산이 유리한데 뭘 그리 걱정을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제 와서 뚜껑을 열어 보니 우리가 밀양보다도 못한 조건에 공항을 지으려 했다는 건데, 부산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엄청 상하죠.”
 
  허남식 시장은 ‘정치적 이유’라고 못 박았다.
 
  허 시장은 “가덕도 해안은 소음문제가 없다.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이라는 것을 어린애가 봐도 안다. 밀양과 가덕도를 둘 다 탈락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발표를 했다. 공항의 경제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무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덕도가 밀양보다 낮아? 그럼 인천공항은
 
  이즈음, 얘기는 슬쩍 인천국제공항으로 넘어갔다. 처음에는 신공항이 무산된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경쟁지였던 밀양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것에 대한 격분을 거쳐 ‘인천국제공항 대(對) 동남권 신공항’으로 옮겨갔다.
 
  부산 북·강서갑의 한나라당 박민식(朴敏植) 의원은 이런 주장을 펼쳤다.
 
  “소음의 경우 가덕도는 44점을 받았는데 피해가 더 큰 영종도 인천공항은 과거에 93점을 받았다. 연평균 60일 안개가 끼는 영종도는 1년에 11일밖에 안개가 끼지 않는 가덕도보다 22점을 더 받았다. 전문가단이 오류를 바로잡은 결과 가덕도의 평점은 100점 만점에 38점이 아닌 52점이다. 사업 타당성인 50점을 웃도는 점수다.”
 
  40여 분 동안 부산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눈 박인호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세계적인 공항을 만드는데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합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요. 어떤 지자체에서 뺏기려고 하겠습니까. 정부가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인천국제공항처럼 만들고, 국익(國益)을 위해 결정해야죠. 이런 일을 야기시키고 분열을 가져온 정부의 잘못이 크지요.”
 
  허남식 시장의 얘기도 비슷했다.
 
  허 시장은 “접근성 차원에서만 따지면 영종도에 국제공항을 둘 수 없다. 대통령이 용단(勇斷)을 내려 서쪽 끝에 만들고 수많은 재원을 투자해 오늘날 세계적인 공항이 된 것이 아니냐. 가덕도 해안에 공항 만드는 것은 인천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고 했다.
 
 
  “대통령이 TK니까 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들의 말속에 담긴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산이 무시당했다’는 식(式)의 사고다. 대구·경북, 소위 TK에 대한 반감이 뒤섞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민은 “가덕도 공항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에도 PK가 TK에 졌기 때문에 흥분하는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또 다른 시민은 “이번 일로 PK와 TK의 골이 훨씬 깊어졌다. 같은 경상도지만, TK보다 호남사람들이 부산에 우호적이라는 얘기를 한다”라고 했다.
 
  TK와 PK는 모두 경상도다. 하지만 요즈음 이들의 심리적 거리는 부산에서 평양보다 멀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부산시민이 대구에 섭섭함을 느끼는 이유는 대구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자체들이 ‘밀양에 동남권 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지원사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조정희 대표의 말이다.
 
  “대구의 고민 중 하나가 K2 비행장이었습니다. 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컸죠. 밀양에 동남권 신공항이 들어서면, 대구 K2 비행장을 밀양으로 이전시키면 된다고 판단을 한 겁니다. 그래서 밀양 편을 든 겁니다. 밀양보다 더 큰 목소리로 밀양에 비행장 지어 주라고 한 거 아닙니까. 대구가 목소리 크면 답니까. 대구에서 시민 5000명 동원하면 부산은 1만명 할 수 있고, 대구에서 1만명 하면 우리는 2만명 할 수 있습니다. 부산시민이 바보예요? 경북 출신 대통령 비위 맞춘다고 점수 더 준 거 아닙니까.”
 
  이진복 한나라당 의원의 얘기를 들어 보면 부산 사람들이 대구를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느낄 수 있다.
 
  이 의원은 “대구에서 난리를 칠 때 부산 사람들은 ‘저넘아들 미친 놈들 아이가. 저그들 와 저러노. 남 일에 지가 와 나서는데’라고 했다”고 말했다.
 
  남해안시대포럼 이영(李英) 상임의장의 얘기다.
 
  “섭섭하죠. 정말 섭섭합니다. TK랑 PK가 대결한 것을 굳이 찾으라면 예전에 대구 위천공단을 반대한 겁니다. 부산 사람들은 낙동강 물을 먹는데 대구에 100만평짜리 공단 짓는다니까 반대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대구 사람들도 잘살지 못하니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번에는 우리 발목을 제대로 잡은 거 아닙니까.”
 
  ―골이 더욱 깊어졌다는 얘기군요.
 
  “그 정도가 아니지요. 영호남 갈등 이상이 될 겁니다. 솔직히 우리 부산 사람들은 ‘대통령이 TK니까’라고밖에 생각이 안 드는 겁니다.”
 
  ―PK 출신 대통령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경제성을 들먹이며 진실을 호도하지는 않았겠죠. 난중에 고향이 몬 오니까. 마땅한 사람이 없어 그렇지, 대통령 내고 싶지. 이번에 부산의 꿈을 뺏은 겁니다. 부산21세기 미래포럼에 있는 젊은이들이 그럽디다. ‘어른들은 와 그리 힘이 없어요. 부산의 지도자들은 뭐하기에 우리를 이래 좌절시키느냐’고요. 할 말이 없는기라.”
 
 
  “삭발해서 된다면 부산시민 다 깎는다”
 
대구시의회 의원이 신공항 입지 선정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갖고 있다. 이는 부산이 TK에 대해 반감을 갖는 단초를 제공했다.
  대전에서 태어난 조정희 대표는 부산에 40년 이상 거주했다. 그의 얘기다.
 
  “부산 사람이 경북에서 살아남는 건 하늘의 별따기예요. 부산은 달라요. 부산은 다 받아 주고 포용했습니다. 우리는 밀양 사람이 하나도 보기 싫지 않아요. 경북이 난리를 친 거라니까요. 그동안은 경북이다 경남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부산 사람의 정서가 바뀔 겁니다. 우리도 챙길 건 챙겨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인천은 대한민국이고 가덕도는 외국입니까. 왜 똑같이 생각하지 않습니까.”
 
  부산시청의 한 고위 공무원은 묘한 ‘반어법’을 써 가며 대구에 대해 빈정거렸다.
 
  “(신공항 무산은) 부산이 오히려 대구를 잡은 거죠. 가만뒀으면 대구가 떠들어서 밀양으로 갔을 거 아닙니까. 우리가 잘 반격해서 오히려 대구를 누른 겁니다. 대구에서 밀양이 신공항 유치해야 한다카며 삭발투쟁 하고 그라데예. 삭발이요, 그거 해가 될 것 같으면, 부산시민 360만명이 다 깎습니다. 부산을 뭘로 보고 이럽니까.”
 
 
  2011년 부산, 30년을 되돌아보고 있다
 
PK의 선거 이변 중 하나로 꼽히는 무소속 김두관 후보의 경남도지사 당선 당시 모습.
  취재에 응한 부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이 갖고 있는 감정이 하루 이틀에 쌓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산 사람들은 신공항 무산을 계기로 지난 30년을 곱씹어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영수(金榮秀) 부산 시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서울에 가면 ‘촌놈 왔나’ 이래요. 부산이 명색이 제2의 도시인데 그동안 어떻게 됐습니까. 공기업 지방으로 이전해 준다 해 놓고 뭐가 내려왔어요? 금융은 껍데기뿐이지. (르노)삼성차는 우리가 하도 떠들아가 받은 거예요. 규모가 안 커요. 옛날에는 여기가 대단했는데 하나 없이 다 빼끼뿔고, 부산 인재들은 수도권으로 가 버렸다 아입니까. 전부 다 잃었어요. 특히 이 정부는 수도권만을 위한 정부예요. 정부가 정리를 몬해서 허망하죠.”
 
  남해안시대포럼 이영 의장의 얘기도 이와 비슷했다.
 
  “부산이 역대 정권으로부터 많은 수모를 당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에서 25%를 차지했어요. 동명목재, 삼화그룹, 국제그룹이 있었습니다. 정치권력이 이들을 해체하면서 부산이 몰락한 겁니다. 요즘은 국가 경제에서 2.5%쯤 될 겁니다. 부산을 성장억제 도시로 묶어 버렸습니다. 45년 전에 그린벨트로 묶어 놓은 땅 7000만 평을 여전히 못 씁니다. 40년 전에는 철새가 부산에 제일 많이 왔는데 이제는 안 와요. 그런데 왜 안 풀어 줍니까. 지난해에 국세로 4조4000억원을 냈는데, 정부에서 받은 것은 절반이 안됩니다. 국방비 같은 것으로 쓰인 것이 있겠지만, 솔직히 수도권으로 들어간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YS 때 르노삼성차, 부산국제영화제 유치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9년 4월 8일, 부산 자갈치시장을 방문해 DJ정부의 경상도 탄압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조정희 대표에게 ‘PK인 YS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에는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때도 받은 거 없어요. 여태까지 부산을 누가 챙겨 주기나 했나요. 이번에 MB정부는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겁니다. 신공항 백지화도 좋아요. 그런데 우리가 밀양보다 못하다니요. 이 모든 것이 대구 때문입니다. 우리가 공항 이전하려고 20년 동안 요리해서 상차려 놓으니까, 엄한 사람이 와서 밥숟가락이 아니라 삽을 들고 나선 겁니다. 어른 중에 ‘MB 찍어 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언론도 너무합니다. 왜 우리의 이런 목소리가 서울에는 전해지지 않는 겁니까.”
 
  부산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했던 H씨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부산은 상당히 특이한 지역입니다. 항구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타지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고 포용력이 있습니다. 성격이 급하면서 화끈하고, 이해관계나 실리(實利)를 따지는데 조금 둔감합니다. PK 출신인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 자체가 행복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나마 YS 시절에 르노삼성차를 가져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얻는다, 가져온다 식의 이익 챙기기에 몰두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DJ정부 때에는 받은 것이 없었고, 부산 사람들 마음속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세월을 지내면서 서울 등 수도권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졌고 그제야 부산 사람들이 조금씩 달라졌던 겁니다. MB정부 들어서면서 일말의 기대를 했을 텐데 이번 신공항 문제까지 터진 겁니다. 문제는 부산 사람들이 화끈하지만, 한 번 돌아버리면 무섭다는 점입니다. 확 돌면 감당을 하기 어렵습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의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30대 직장인은 이렇게 얘기를 했다.
 
  “부산에 미묘한 패배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제2 도시라고 하면서 서울을 동경하고, 대구보다 낫다고 말하면서도 TK 출신들에 대한 묘한 열등감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1970년대의 영화를 잊지 못합니다. 부산 출신의 젊은이들이 빠져나간다고 흥분해 잠을 못 잔다면서도 또 언제 그랬냐 싶게 태연한 사람들입니다.”
 
 
  부산에서 4·27 보궐선거 했었어야 하는데
 
  부산에 기반을 둔 몇몇 국회의원들은 부산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최근 들어 부쩍 느끼는 듯하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국회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 지역구에 내려가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면 일상적인 얘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어르신들이 정치 현안을 꼼꼼하게 챙기시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많이 알고 있더라고요. 한 어르신이 ‘대통령이 와 약속을 안 지키노. 공항 지준다 안했나’ 하는 겁니다. 예전보다 훨씬 심각해진 것을 느낍니다.”
 
  또 다른 국회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비단 이번 일이 아니라 어떤 때 지역구에 내려가면 사람 면전(面前)에서 ‘꼴보기 싫어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부산 사람입니다. 부산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붙잡아서 얘기나 하자고 하면 ‘아따 마, 고마 아까 일을 이해하소. 내가 꼭 싫어 그란 거 아니오’라고 합니다. 보통은 사람 면전에서 그렇게 면박 주거나 고개를 팩 돌려 버리지는 않잖습니까. 그런데 부산은 그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지금 부글부글하는 거죠. 게다가 김해공항 문제는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라 20년도 더 된 일이니까 사람들이 쉽게 잊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인터뷰에 나선 한 부산시청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이번에 부산에서 보궐선거 했었어야 돼요. 한나라당 작살나는 거지 뭐. 우리요, 한 번 폭발하면 감당 못합니다. 개방된 성격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팩 돌아서면 우째 감당할라꼬예.”
 
 
  6·2 지방선거 때 이상신호 감지된 부산·경남
 
  2010년 말을 기준으로 부산시의 인구는 360만명을 조금 넘는다. 대구시 250만명, 대전시 152만명, 광주시 147만명 등이다. 대선(大選)을 앞두고 있는 후보자로서는 부산이 중요한 요충지다.
 
  부산과 경남이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끔씩 ‘확 도는’ 이변을 연출하는 곳이 또 이곳이다.
 
  지난해 치러진 부산시장 선거에서 허남식 후보는 진땀을 뺐다. 민주당 공천을 받은 김정길(金正吉) 후보에 45%를 내준 것이다. 부산 출신이라지만 민주당 공천을 받은 그에게 ‘몰표’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때부터 부산은 이상을 넘어 수상했던 셈이다.
 
  뿐만 아니다. 경상남도지사 선거에서는 아예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두관(金斗官) 후보를 당선시켰다. 상대는 이달곤(李達坤) 한나라당 후보였다. 김두관 후보가 누구인가. 부산·경남 사람들이 “경상도도 아니다”라고 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행정자치부장관(현 행정안전부장관)을 했던 친노 핵심 아닌가.
 
  1995년 이후에 김혁규(金爀珪), 김태호(金台鎬) 등 한나라당 출신이 경남도지사를 독식해 왔고, 그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광주시장과 전남·북지사를 민주당이 차지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치른 지방선거에서 부산·경남 민심은 반(反)이명박을 집단 분출시킨 것이다.
 
  한나라당의 공천 학살이 원인이라지만 2008년 총선도 한나라당으로선 뼈아픈 실패였다. 어찌 보면 지금의 정서가 그때부터 잉태됐는지도 모른다. 당시로 시계를 돌려보자.
 
  부산은 총 18석의 국회의석 중에서 7석을 비(非) 한나라당 후보에게 내줬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무성(金武星·남을), 김세연(金世淵·금정), 유기준(兪奇濬·서), 유재중(柳在仲·수영), 이진복(李鎭福·동래) 후보와 친박연대 박대해(朴大海·연제) 후보, 민주당의 조경태(趙慶泰·사하을) 후보를 뽑았다. 경선 없이 한나라당의 공천을 따냈던 김형오(金炯旿) 의원은 개표 과정에서 내내 무소속 후보에게 뒤지다가 가까스로 판을 뒤집었다.
 
 
  “내년 총선·대선 기류도 묘할 것”
 
  《부산일보》 기자 출신 S씨의 분석은 이렇다.
 
  “부산이 6·25 전쟁 때 피란지였고, 사람들의 배타성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적습니다. 타지 사람들이 대구나 광주에서 뿌리 내리는 것과 비교할 때 부산이 훨씬 쉽습니다. 이렇다 보니 부산에는 순수 부산 출신이 드뭅니다. 일부에서는 호남 출신 중에 부산에 정착한 사람이 인구의 3분의 1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광주나 대구처럼 자신의 지지 정당에 대한 ‘몰표’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우리가 30년 동안 뭐하고 살았나’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이런 것들이 투표에서 이변을 연출하는 겁니다. 요즘과 같은 분위기라면 내년 총선, 대선에서 묘한 기류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취재를 위해 부산에서 머문 느낌으로는 많은 시민이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신공항 무산 여부와 상관없이 현 정부에 대한 묘한 반감과, 그럼에도 어쩌랴 싶은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될 듯하다.
 
  시민단체 관계자이긴 하지만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에 반감을 드러냈다.
 
  “부산은 그동안 이래도 한나라당, 저래도 한나라당, 미워도 다시 한 번. 이게 뭡니까. 40년 동안 한나라당을 찍은 노인들의 마음이 돌았습니다. 민주당에도 섭섭하죠. 제대로 된 야당의 역할을 했으면 우리가 이렇게 홀대받겠습니까. 지난번 선거에도 한나라당 후보들을 많이 떨어뜨렸습니다. 이제는 바보가 아니에요. 당이 밥 먹여 줬습니까. 우리는 여태까지 한나라당을 믿고 해바라기했는데 이젠 아니에요. 끝났어요. 70대 할아버지들이 자존심이 상했답니다.”
 
 
  을사 5적, 부산 5적
 
허남식 부산 시장이 정부의 결정에 섭섭함을 드러냈다.
  또 다른 부산 지역의 유지도 이 대목에서는 흥분했다.
 
  그의 말이다.
 
  “다시는 안 속습니다. 한나라당 욕하면 난리가 났던 연세 드신 분들이 먼저 얘기합니다. ‘다음번에는 민주당 찍어서 본때를 보여주자’는 겁니다. 부산 사람들은 배포가 크지만 한번 팩 돌아서면 감당 몬합니다. 을사 5적처럼, 부산 5적 리스트가 있습니다.”
 
  그는 말만 했지 5적(賊)에 대해서는 김형오 의원(그는 신공항이 경제성이 없다고 대놓고 말을 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까지만 얘기하다 말았다. 그의 얘기가 이어졌다.
 
  “김형오 의장을 부산 사람이 20년 국회의원 시키줬는데 배반한 거 아닙니까. 지난번 선거 때는 일주일 전에 내려와서 현수막 걸고 시작해서 무소속 출신 후보한테 거의 질 뻔했습니다. 부산 사람들이 보기에는 김형오 의원은 떠날 준비를 하는 거죠. 부산을 떠나야 하는데 명분을 찾을라 저카는 거 아닝교. 5적 중에 1번으로 칩니다.”
 
  ―만약에 민주당 후보가 부산 신공항 건설을 약속하면 어떻겠습니까.
 
  “표를 많이 받을 겁니다.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요. 부산에서 신공항 무산 규탄대회 형식으로 촛불집회를 했는데 한 번만 하고 그만뒀습니다. 촛불집회 천만 번 하면 뭐합니까. 우리는 이제 알 거 다 알았으니까, 이런 데 힘을 소진할 필요가 없죠. 부산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전부 알았습니다. 중요한 건 진심입니다. 민주당도 그냥 버릴 요량의 공약으로 들고나오면 소용 없습니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겁니다. 부산 국회의원의 대부분이 친박인데 달라질 겁니다. 박 대표가 대구에서 두 번이나 공항 얘기를 했잖습니까. 부산 사람들은 다 지켜봤습니다. 요즘 박근혜씨, 글쎄, 싸늘합니다.”
 
  오랫동안 ‘박근혜 팬’이었다는 부산의 한 시민은 이랬다.
 
  “박근혜씨를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부산에 팬이 제일 많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구에서 공항 얘기 하는 것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박근혜씨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부산 출신이랑 붙으면 팔이 안으로 굽죠. 우린들 대통령 안 만들고 싶겠습니까. 박근혜씨도 부산 표를 얻으려면 결단을 내려야 할 겁니다.”
 
  ―부산 사람들은 금방 끓고 또 식지 않습니까.
 
  “달래 주면 잊을 수 있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좀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부산이 당연히 한나라당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함 두고 보세요.”
 
 
  선거 때마다 깜짝 놀라게 하는 부산
 
  부산시민의 ‘수상한’ 민심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다.
 
  중앙선관위의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부산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냈다. 선거를 한 사람 278만명 중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찍은 사람은 전체의 21.1%(58만8000여명)였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비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이다.
 
  대구는 달랐다. 투표를 한 총 인원 99만8000여 명 중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사람은 13.1%(24만명)에 불과했다. 이른 바 PK와 TK의 한나라당에 대한 ‘충성도’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는 더했다.
 
  부산에서 투표한 사람 중에 53.3%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29.8%가 이인제(李仁濟) 국민신당 후보를 지지했다. ‘이인제 찍으면 김대중 된다’는 입소문이 공공연할 때였다. 72.7% 이회창, 13.1% 이인제를 보인 대구·경북 지역과 큰 차이다.
 
  부산의 한 시의원은 이런 얘기를 했다.
 
  “아무리 힘이 없어 보여도 부산은 대한민국 제2 도시입니다. 360만명을 갖고 있습니다. 부산 지지파가 있다, 이 말입니다. 하도 기도 안 차는 얘기가 들립디다. 밀양에 공항이 가면 부산 국회의원들이 다 죽고, 가덕도가 되면 TK 의원들이 다 죽는다고. 입장 참 곤란하다, 그캅디다. 저그들 살라꼬 국민은 상관 안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박근혜요. 요즘 대세라 카데요. 글쎄요, 쉽지 않을 텐데.”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사람은 좀 더 노골적인 얘기를 했다. 그는 “부산은 TK 출신 뽑는 데 주저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얘기다.
 
  “지난번에 시민단체장들 모임에 갔는데 다들 주저주저합니다. TK 출신을 품에 안기에는 우리가 너무 (마음이) 다쳤습니다. 어르신들이 앉으면 ‘인물’ 얘기를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하다가 ‘우예 우리는 사람이 이래 없노’라고 답답해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 사이에서는 벌써 저런 얘기까지 나오는 사정입니다. 서울 사람들은 모르지요. 정말 몰라요. 부산이 어떤 심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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