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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의 등장과 브라질의 미래

연립여당 조율, 貧富로 갈라진 국민통합이 과제

  • 글 :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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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불가리아 출신의 부유한 공산당원, 대학시절 ‘팔마레스 혁명군 전위대’ 활동
⊙ 연방에너지장관 지내면서 룰라 눈에 들어, 선출직 경험은 이번 大選이 유일
⊙ 룰라, 後見정치 하거나 2014년 대선 출마할 가능성 있어

李成炯
⊙ 1959년생. 부산대 회계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박사.
⊙ 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 연구원,서울대 국제지역원 초빙교수, 멕시코 과달라하라대(UdeG)·
    엘 콜레히오 데 메히코·과달라하라자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조교수. 現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 저서 :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 논쟁사> <라틴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경제>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민족주의>
    <대홍수: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 등.
브라질 대선 하루 전인 지난 10월 2일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대통령(오른쪽)이 브라질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후보(왼쪽)와 함께 유세 도중 국기를 흔들고 있다.
룰라가 없는 브라질. 어느 논평자는 “부모를 잃은 고아”의 심정일 거라고 말했다. 지난 8년간 룰라의 카리스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가난한 최빈층(最貧層) 1260만 가구에 가족기금(Bolsa Familia)을 나눠 주었다. 재임 8년 동안 브라질 경제는 5%대의 안정적인 성장을 일구었다. 브라질은 세계 8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암염하층(pre-sal) 심해유전(深海油田)에서는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왔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게임도 유치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브라질 외교가 돋보였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입사(IBSA·인도, 브라질, 남아공) 포럼 외교를 바탕으로 강대국 중심의 국제사회에 새로운 목소리를 보탰다. 룰라의 인기는 아마도 브라질 정치사에서 큰 족적(足跡)을 남겼던 민중주의 정치가 제툴리우 바르가스(1930~ 1945, 1951~1954년 재임)나 브라질리아를 건설했던 쿠비체크(1956~1961년 재임) 대통령에 비견될 정도로 높았다. 룰라 임기 말년의 국정(國政)지지도는 80%를 넘었다.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이었다.
 
  야당인 브라질 사회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조제 세하(Jose Serra)는 이번에도 눈물을 흘렸다. 상파울루 주지사를 역임한 베테랑 정치인인 그는 룰라가 지명한 (거의 무명의) 여성 후보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에게 여지없이 패배했다. 결선투표에서 56 대(對) 44로 밀린 것이다. ‘룰라의 그림자’와 싸운다는 것은 그에게 참으로 벅찬 일이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전은 처음부터 꼬였다. 여야(與野) 후보 모두 룰라의 유산을 계승하는 데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야당후보도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80%를 넘는 현직 대통령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를 공격했다간 역풍(逆風)을 맞을 것이 뻔했다. 브라질 사람들이 원한 것은 ‘룰라 없는 룰라 정부’였다. 선거전은 내내 룰라의 카리스마를 호세프에게 승계하는 의례(儀禮)처럼 보였다.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그는 당선 직후 이렇게 말했다.
 
  “오늘 브라질 사람들은 아마도 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최초로 한 여성이 브라질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마초의 나라’ 브라질에서도 여성의 반란이 시작됐다. 이번 대선(大選)에 출마했던 또 다른 여성후보인 녹색당의 실바 마리나도 1차 투표에서 20%를 얻어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이미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현직) 대통령을 목도한 바 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비해 여성 정치인의 정계 진출이 다소 떨어지는 브라질에도 의미가 있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는 부유한 공산당원
 
룰라 대통령과 자신의 사진을 담은 포스터 앞에서 유세를 하는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 호세프는 철저히 룰라의 후광 아래 이번 대선을 치렀다.
  호세프는 불가리아 이민 2세대이다. 부친 페드루 호세프는 상파울루에서 건축기사로 부(富)를 일구었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지우마 자니 실바와 결혼한 뒤에는 미나스제라이스주(州)의 벨루오리종치로 옮겨 살았다.
 
  지우마 호세프의 아버지는 1930년대 지식인들의 유행을 따라 공산당에도 참여했다. 그런 덕분에 자녀들은 유복한 가정이었지만 종교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대단히 세속화(世俗化)되고 정치화된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카지노에도 출입했고, 주말에는 친구들을 불러 음주와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1962년에 그가 사망할 당시 부인에게 물려준 유산으로 부동산 물건이 15건이 있었고, 덕분에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계속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지우마는 1951년 12월생이다. 어린 시절인 1950년대는 민주화의 시대였다. 그가 중등학교에 입학한 1964년 쿠데타가 일어났다. 거리에선 자주 학생 데모대와 군인들이 공방전을 벌였다. 학교에선 좌파 학생그룹이 그에게 접근해 왔다. 호세프는 그들이 준 <본원적 축적>이란 소책자를 공부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한 장(章)을 소책자로 묶은 팸플릿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 읽고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친구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래, 이 책이 노동자를 위한 것이야, 아니면 반(反)노동자적인 책이야?”
 
  그는 학창 시절 내내 문학과 사회과학에 취미가 없었고, 오로지 수학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나중에 미나스제라이스 연방대학과 리우그랑지두술 대학에서 경제학자로 진로를 정하는 것도 결국 수학 공부가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학에는 취미가 없었지만, 미술과 여행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가로는 카라바지오, 마티스, 레메디오 바로(멕시코 화가)를 좋아하고, 포르투갈어 이외에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한다.
 
  종교에 대해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었다.
 
  “만약 신(神)이 존재하지 않고, 영혼도 사멸(死滅)한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
 
  그가 1970년 반정부사범으로 기소됐을 당시, 상파울루 경찰청의 문서철에는 “종교가 없음”으로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기록은 가톨릭 분위기가 지배적인 브라질에서 정치가에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측근이 우연히 찾아낸 사진 한 장이 그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그는 외동딸 파울라가 낳은 외손자의 세례식에 참여하여 함께 찍은 사진을 배포함으로써 반대 여론을 중화시킬 수 있었다.
 
  결선투표 과정에는 낙태(落胎) 쟁점이 선거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사민당의 세하 후보는 호세프 후보를 낙태 지지자로 거의 악마시하면서 몰아붙였다. 그러나 종교적인 브라질 국민들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표를 던졌다. 호세프는 가톨릭 보수세력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당선됐다.
 
 
  운동권 시절
 
대학시절 무장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된 후 작성된 호세프의 경찰기록. 오른쪽 상단에 ‘테러리스트’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세프의 중등학교 시절, 학내에서는 두 개의 정치 그룹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나는 가톨릭 세력인 악숑 포풀라르(AP)였고, 다른 하나는 폴롭(Polop)이란 좌파 그룹이었다. 모두 중산층(中産層) 자제들의 조직이었지만, 폴롭 쪽이 지적(知的)인 토론을 즐긴다면, AP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우익(右翼) 그룹이었다. 호세프는 폴롭에 가입했다. 그의 아파트는 곧 폴롭의 회합 장소가 됐다. 폴롭은 나중에 콜리나(Colina)로 개명(改名)한다.
 
  1969년이 되면서 군정(軍政)은 긴급조치 제5호를 발동, 반정부 활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좌파 조직들은 지하로 들어갔다. 대학생이 된 호세프도 여러 개의 가명(假名)을 이용하여 운동권 조직 활동을 했다. 루이자, 완다, 마리나, 에스텔라, 마리아, 루시아 등이 이 시절 그가 쓴 가명이었다.
 
  호세프가 속한 콜리나는 이제 쿠바혁명 이후 만들어진 포코(foco) 이론(혁명적 전위세력이 거점을 만들어 게릴라 투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이론)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변신을 한다. 당시 유행했던 레지스 드브레의 <혁명 속의 혁명>에 따라 체 게바라의 선도(先導)투쟁론이 브라질 학생운동에 자극을 준 것이다. 이에 따라 콜리나는 다른 좌파 조직과 결합하여 ‘팔마레스 혁명군 전위대’(VAR-Palmares)를 결성한다. 이 조직은 군사훈련과 해외 전지(轉地)훈련을 계획 속에 담기도 했다. 호세프 후보는 자신은 결코 군사훈련이나 해외훈련에 가담한 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는 신분이 노출되어 군정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뒤, 2년간 감옥에서 시간을 보냈다. 25세에 감옥을 나온 그는 둘째 남편 카를루스 아라우주를 따라 포르투알레그리에 정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경제학 공부를 계속했다. 하지만 30년간 계속된 결혼생활은 아라우주의 숨겨 놓은 애인과 아들이 발견되면서 끝난다.
 
 
  이번 大選 출마가 유일한 선출직 경험
 
  1985년 민주화 이후 호세프는 레오넬 브리졸라의 민주노동당(PDT)에 합류하여 정치에 관여하게 된다. 그는 선거직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지만, 포르투알레그리시(市) 재무국장을 역임했고, 그 뒤 리우그랑지두술주(州) 에너지장관을 맡았다. 그가 룰라의 노동자당에 합류한 시점은 2001년으로 룰라가 당선되기 1년 전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룰라는 한 토론회에서 호세프를 눈여겨보았다. 그의 에너지 부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 거리낌 없는 언변, 그리고 성실한 태도를 눈여겨본 룰라는 그를 에너지장관으로 임명했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2005년 소위 ‘월급 스캔들(의회내 다수파를 창출하기 위해 연립여당 내 몇몇 의원들에게 매월 일정액을 지불한 스캔들)’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노동자당 실력자 주제 지르시우가 밀려났다. 지르시우는 룰라의 후계자로 거명됐던 인물이었다. 몇 차례의 스캔들을 거치는 동안 노동자당 내 거물과 유력자들은 대개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다.
 
  이러한 지각변동은 노동자당 내 신인(新人)이었던 호세프에게 큰 기회였다. 그동안 호세프의 업무수행 능력을 충분히 테스트한 룰라 대통령은 내각수반(수석장관) 자리를 그에게 맡겼다.
 
  호세프는 내각수반직을 수행하면서, 정부재정을 투입해 인프라를 확충하는 성장촉진계획(PAC)을 주도했다. 그는 이를 통해 낙후 지역의 개발, 인프라와 사회적 서비스망 확충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런 작업은 나중에 그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큰 도움이 됐다.
 
  룰라는 주말이나, 가족 모임에 늘 호세프를 불렀고, 그를 무슨 일이든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는 정치적 동반자(同伴者)로 키웠다. 내각의 토론에서도 룰라는 늘 호세프의 손을 들어 주었다.
 
  임기 말 2년 동안 룰라 곁에는 늘 호세프가 있었고, 그가 후보 지명자가 되리라는 예측이 일찌감치 당 주변에서 나왔다.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그였기에 곧바로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은 사실 무리였다. 하지만 룰라는 자신했다. 그는 호세프를 자신의 후계자로, ‘브라질의 어머니’로 키워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그는 룰라의 후광(後光) 아래 쉽게 승리를 낚아챘다.
 
 
  貧富 따라 나뉜 국민통합 시급
 
호세프 지지자가 국기를 몸에 두르고 ‘호세프에게 투표하라’고 쓴 팻말을 흔들고 있다.
  사실 이번 선거지도를 보면 브라질의 분열상이 잘 드러난다. 호세프는 주로 못사는 북부, 동북부, 아마존 지역에서 몰표를 얻었다. 반면 야당후보 세하는 가장 부유한 남부 지역에서 이겼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동남부 지역에서는 표가 나뉘었다. 상파울루주에서는 세하가 이겼고, 리우데자네이루와 미나스제라이스에서는 호세프가 이겼다. 사실 여권의 지지도는 가족기금이 집중적으로 투여된 빈곤층 거주지역에서 높았고, 중상층 거주지역에서는 낮게 나왔다. 이런 투표 행태는 2006년 대선의 지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빈부격차가 선거지도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호세프는 이 갈라진 두 개의 브라질―‘가진 자의 브라질’과 ‘빈자(貧者)의 브라질’―을 통합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룰라는 가진 자의 기득권(旣得權)을 해치지 않았고, 빈자에게는 가족기금을 제공하면서 양쪽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다.
 
  호세프도 이런 묘책(jeito·제이투)을 구사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룰라가 없는 브라질 정국(政局)은 야당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룰라의 카리스마에 맥을 추지 못하던 브라질 사민당도 이제 더욱 강력한 대오를 형성하면서 강성 야당으로 나올 것이다. 여당연립(聯立)의 주지사는 16명이지만, 야당연립도 10명의 주지사를 확보했다. 호세프는 지난 8년간 보다 훨씬 강력한 야당의 공세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둘째, 여당연립의 원활한 유지를 통해 복잡한 정국을 안정화시키는 것도 호세프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브라질의 대통령제는 연립형 대통령제이다. 의원들은 비례대표제로 뽑고, 대통령은 직선제(直選制)로 뽑으니, 늘 군소(群小)정당이 난립한다. 따라서 주요 정당들의 의석 점유율도 높지 않았고, 정부 여당의 의회 장악력도 변변치 못하다. 정당의 파편도(破片度)도 세계에서 최고로 높다. 그래서 오랫동안 정치학자들은 “선거제도 디자인 가운데 최악(最惡)의 사례”라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헌법을 바꾸지 않고, 그 특유의 유연함으로 이 제도에 적응했다. 룰라 대통령은 마치 의원내각제의 수상처럼 연립 내각의 지분(持分) 협상과 브로커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정국 안정에 성공했다.
 
 
  연립동맹 유지가 관건
 
  호세프도 룰라처럼 유연한 협상력으로 복잡한 연립동맹을 꾸려 정국을 이끌어야 하는 고단한 과제를 안고 있다. 룰라 정부 시절 수많은 정치부패 스캔들이 있었다. 모두 연립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기름칠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었다. 카리스마가 상대적으로 약한 호세프가 연립여당을 스캔들 없이 잘 이끌어 갈지가 향후의 관전(觀戰) 포인트이다. 정치개혁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지만, 아직 개혁을 시도할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군소정당들이 개혁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여당연립은 이번에 상원(上院)과 하원(下院)에서 모두 반수(半數)를 넘겨 60%의 지지표를 확보했다. 주지사직도 27개 주에서 16개 주를 장악했다. 브라질의 주지사는 정국 운영에 대단히 중요한 변수이다. 의원들은 주별(州別)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통령에게는 주지사의 동의(同意)가 관건이다. 호세프는 룰라 시절보다는 좋은 조건이지만 끊임없이 협상을 해서 다수(多數) 연립을 유지해야 하는 정치적 리더십을 인정받아야 한다. 아무래도 그는 정무적(政務的) 과제를 처리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룰라의 조력(助力)을 받아야 할 것이다.
 
  셋째, 첫 번째 조각(組閣)도 코앞에 닥친 사안이다. 일단 인수팀에 룰라 정부 제1기의 재무장관 팔로치가 들어가 있고, 외교수석이었던 마르쿠 아우렐리우 가르시아, 그리고 노동자당 의장 주제 에두아르두 두트라가 포진해 있다. 인수팀의 면모를 보면 경제정책, 외교정책은 거의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팔로치는 뇌물 스캔들로 장관직에서 밀려났지만, 호세프 당선자와 함께 화려하게 복귀했다. 외교라인도 큰 변화가 없고, 셀주 아모링 외교장관도 유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울러 호세프의 학생 시절 전력(前歷)을 염려해서 룰라는 국방부 장관과 군(軍) 관계인사들을 당분간 유임(留任)시킬 것을 권했다고 한다.
 
  호세프는 조각에서 여당연립의 의석 수에 따라 장관직을 나눠 줘야 하고, 노동자당 내 불만도 잠재워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아마도 첫 조각에는 룰라의 조언이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래’가 현실화되고 있는 ‘미래의 나라 브라질’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1930년대 브라질을 방문해서 <미래의 나라 브라질>이란 책을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이 나라가 지닌 잠재력에 주목했다. 그 이후 ‘미래의 나라’란 말은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실현되지 않는 공수표(空手票)란 냉소적인 표현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카르도주 대통령에서 룰라 대통령에 이르는 지난 16년간 브라질의 변화상은 그 ‘미래’가 조금씩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호세프 당선자의 임무는 이런 변화의 기조를 유지하고 가속화하는 것이다. 브라질 경제는 현재 세계 8위권인데, 이를 5위권 내로 진입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경제정책에는 룰라 정부의 기조가 유지될 전망이다. 호세프 당선자는 변동환율제, 물가목표제, 재정건전성과 같은 거시(巨視)경제 기조를 이끌고 나간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가족기금도 확충하여 더 많은 수혜자에게 나눠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고(高)금리와 고평가된 헤알화(貨), 최근 2년간의 경상(經常)수지 적자(赤字), GDP의 40% 수준에 달한 정부부채, 물류(物流) 시스템과 인프라의 부족 사태는 브라질의 발목을 잡고 있다.
 
  때문에 ‘성장촉진계획-2(PAC-2)’를 통한 공적(公的) 투자를 늘리고, 정부부채 비율을 줄이는 것이 차기 정부의 우선적 과제가 될 것이다. 고금리를 낮추고, 환율의 고평가를 중화시켜 제조업 부문의 투자와 수출경쟁력을 제고(提高)시키는 것도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호세프 정부도 룰라 정부와 마찬가지로 금융부문의 이해와 산업자본의 이해를 조화시키는 것이 과제이지만, 늘 두 이해는 충돌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개혁과제로 연금, 세제, 노동 분야의 개혁이 있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반발로 쉽게 밀어붙일 성격의 개혁은 아니다.
 
  호세프 정부는 단일 부가가치세(VAT)를 도입하는 세제(稅制)개혁에 먼저 착수할 것 같다. 브라질은 주별로 상이한 부가가치세 체계를 갖고 있어 여러모로 장애가 많다. 부가가치세의 단일화는 지방정부의 소득원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지사들의 반발을 무마해야 한다. 호세프는 보상기금을 설립하여 반발을 중화시키고자 하나, 각 주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살펴볼 일이다.
 
 
  룰라, 後見정치 할까?
 
  그 다음 긴요한 과제는 교육과 보건의료 제도의 개선이다. 룰라 정부 아래 빈곤층은 2300만명이나 줄었고, 아동 취학인구가 90%를 넘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경제대국이 되기엔 교육제도가 너무 낙후되어 있다.
 
  이번 대선에 녹색당 후보는 교육에 GDP의 7%를 배정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제시한 바 있었다.
 
  호세프도 거물급인 팔로치를 교육부장관에 임명해, 연방예산으로 운영되는 기술학교의 창설, 교직원 처우 개선과 제도개혁에 매진할 것이라고 한다. 다행인 것은 새로운 유전에서 나오는 소득의 일부를 교육예산에 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육제도의 개선이 없이는 선진국으로의 발돋움은 요원할 것이다.
 
  보건의료제도도 낙후된 지 오래되어 대대적인 설비확충과 투자가 필요하다. 브라질의 공립병원은 병실 대기자와 수술 대기자의 줄이 너무 길어 ‘중환자들은 병실 문에 들어서기 전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악명 높다. 보건의료서비스 개선은 일상생활에서 수백만 브라질인들이 바라는 개혁과제이다.
 
  치안문제도 ‘브라질 코스트’를 높이는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룰라 정부의 마지막 2년 동안 이 부분에 대한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와 같은 대도시의 치안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빈민가의 마약 갱스터와 민병대를 퇴치하고, 사회적 폭력의 수준을 낮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호세프 정부는 연방경찰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주와 시별로 공동체경찰을 창설하며, 또 사회적 서비스를 확충하여, 빈민가의 평화를 도모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이런 어려운 과제들 하나하나에 호세프가 잘 적응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레 후견자인 룰라의 정치적 역할이 부각될 것이다.
 
  후견주의(後見主義) 정치는 브라질의 오랜 전통이다. 정계(政界)의 큰 손들은 모두 나름대로 지분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협상 테이블에 참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참신한 정치인이 그야말로 법대로 정치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룰라는 이렇게 말한다.
 
  “전왕(前王)은 죽었다. 신왕(新王) 만세!”
 
  룰라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관계에 치중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들을 사람은 없다. 룰라도 “조언(助言)을 하지만 장애물은 만들지 않을 것”이고 “전임 대통령은 요청이 있을 때 조언을 줄 뿐이지, 지시를 하거나 비토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호세프의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지 조언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2014년 대선을 통해 룰라가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변화하는 브라질
 
  더구나 정치적 경험이 많지 않은 호세프이다. 그의 리더십은 내각수반 시절 경제정책 조정에 제한되어 있었다.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주로 기업인들이었다. 대선 이전에는 선출직을 수행한 적도 없다.
 
  이제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여성 대통령이 정치적 리더십까지 겸비하여 여러 가지 난제를 잘 요리하여 정국을 안정화하고, 각종 개혁과제에 매진한다면, 조만간 브라질은 세계 상위권의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10위권의 석유대국, 8위의 경제대국으로 이미 안정적인 성장가도에 진입한 브라질에 미래는 찬란한 것처럼 보인다. 국제사회도 브라질의 위상을 높게 평가한다. 이에 걸맞게 정치사도 매번 새로운 기록을 경신한다.
 
  노동자 대통령 룰라, 여성 대통령 호세프. 모두 ‘미래의 나라’ 브라질이 이제 현재형으로 둔갑하고 있는 경이로운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아비 잃은 고아 브라질’이 이제 ‘브라질의 어머니’를 찾게 될지 모두 한번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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