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아 K’의 자수서와 녹음파일 단독 입수
⊙ 對北 사업가 권모씨, <신동아>의 오보 사과 후에도 지금까지 “박대성은 가짜 미네르바” 선동
⊙ 신동아 K, 권씨 추적 피해 PC방 전전… 母 찾아가겠다는 협박에 자살 기도
⊙ 신동아 K, “신동아 기고문 중 2쪽 분량만 썼다. 나머지는 제3의 인물이 박대성의 글을 짜깁기,
보완한 것”
⊙ “이른 시일 내 경찰에 자수하고 박대성 측의 선처를 구할 예정”
⊙ 對北 사업가 권모씨, <신동아>의 오보 사과 후에도 지금까지 “박대성은 가짜 미네르바” 선동
⊙ 신동아 K, 권씨 추적 피해 PC방 전전… 母 찾아가겠다는 협박에 자살 기도
⊙ 신동아 K, “신동아 기고문 중 2쪽 분량만 썼다. 나머지는 제3의 인물이 박대성의 글을 짜깁기,
보완한 것”
⊙ “이른 시일 내 경찰에 자수하고 박대성 측의 선처를 구할 예정”

- 가짜 ‘미네르바 K’ 김씨.
2009년 초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신동아 미네르바 K’ 김모(34)씨를 지난 7월 26일 인터뷰했다. 사건 후 그가 언론에 노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사칭해 월간지 <신동아> 2008년 12월호에 글을 기고하고, 다음해 2월 “미네르바는 금융계 7인 그룹”이란 내용으로 인터뷰를 한 것으로 돼 있는 인물이다. 일명 ‘신동아 K’로 불린다.
김씨는 인터뷰 내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듯이 불안해했다. 그는 1년 전 사건 때부터 현재까지 대북(對北)사업가 권모씨로부터 협박과 추적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간 정황에 대한 진술서까지 작성을 마친 상태였고, 이를 사법기관에 제출한 뒤 ‘진짜 미네르바’ 박대성(朴大成·31)씨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잊힌 인물’이었던 그가 절박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권씨 “청와대 인사가 미네르바 조작했다” 주장
김씨와 기고문의 정체는 2009년 초 체포된 박대성씨의 진술과 동아일보사의 ‘신동아 미네르바 관련 오보 사건’ 진상조사를 통해 거짓임이 밝혀졌다. <동아일보>는 2009년 2월 17일 신문 1면에, 같은 날 발행한 <신동아> 3월호는 표지에 오보 사과문을 게재했다. 명망(名望) 높은 시사월간지와 신문사의 자존심을 크게 훼손한 이 사건은 진상조사 보고서 발표 및 관련인사를 해임, 정직(停職) 등 문책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같은 해 4월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박대성씨는 신동아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짜 미네르바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다. 바로 그 ‘미네르바 박대성’이 주요 활동공간으로 삼고 있는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에 “박대성은 가짜이며, ‘신동아 K’가 진짜 미네르바”란 주장이 제기됐다. 글 대다수가 허황된 음모론에 불과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추천과 댓글을 통해 이들의 주장에 동조했다.
대북 사업가 권모씨는 그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담담당당’이란 필명을 쓰는 그는 “미네르바 사건이 조작됐다”며 아고라 게시판에 125편의 글을 연재했다. 권씨의 글에는 다양한 사람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청와대의 전ㆍ현직 인사, 검찰 고위인사, 포털 다음의 경영진, 언론사 기자들이다.
거론된 인물은 이동관(李東官) 전(前) 청와대 홍보수석, 권재진(權在珍) 청와대 민정수석, 김철균(金喆均)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 김수남(金秀南)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김하중(金夏中)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석종훈(石琮熏) 전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등이다. 모두 미네르바 사건과 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권씨는 “이동관 전 수석의 총괄기획 아래 청와대 인사들이 조작을 지시, 검찰과 포털 다음 등이 다음의 회원 DB를 조작했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다음 아고라 이용자들은 “놀랍다” “존경스럽다”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 등 찬성의 댓글을 붙이며 권씨의 글에 수백 개의 추천을 보탰다. 많은 글이 다음 측에 의해 삭제됐지만, 황모씨의 블로그(http://blog.daesan.com)에 복원됐다. 권씨는 왜 ‘가짜 미네르바’ 선동에 앞장섰을까.
자수서에 드러난 신동아 기고 과정
권씨는 가짜 미네르바를 신동아 편집장에게 소개한 장본인이다. 그는 노무현(盧武鉉) 정부 시절 안희정(安熙正), 이해찬(李海瓚) 등 정권 실세들의 대북 접촉을 직접 주선했다며 그 내용을 담은 비망록을 <주간동아>에 최초 공개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때 특종을 터뜨린 기자와 미네르바 사건 당시 신동아 편집장은 동일 인물이다. 권씨와 신동아 편집장은 오랫동안 서로 알고 지내온 사이라고 한다.
권씨는 2008년 11월경 구글에 마련된 커뮤니티 ‘11클럽’을 통해 ‘신동아 K’인 김씨를 처음 만났다. 권씨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김씨와 접촉했고, 당시 신동아 편집장에게 ‘미네르바 기고’를 제안했다.
동아일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권씨는 김씨에게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여러 차례 권했다. 김씨는 건강, 위치 발각 등의 이유로 거부했지만, 권씨의 계속된 설득 끝에 기고를 결정했다.
권씨는 미네르바를 설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IP 주소와 같은 기초적 증거는 배제한 채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미네르바의 글과 김씨가 채팅으로 설명한 상황이 비슷하게 들어맞았다는 이유로 그를 미네르바로 확신한 듯했다. 권씨는 어떤 이유에서 급하게 미네르바와의 인터뷰를 추진했을까.
<월간조선>이 최근 입수한 김씨의 자수서에 따르면, 권씨는 광우병, 촛불집회 등 당시 한국의 현 정세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사회혼란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이슈화시켜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김씨에게 했다. 김씨는 당시 대화 내용에 대해 “권씨와 ‘11클럽’ 회원들이 광우병 사건 등으로 곤란해진 현 정권을 미네르바란 이름으로 공격하려고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자신을 권씨에게 소개해 준 ‘11클럽’ 회원들에게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럼 우리가 당신이 작성했던 글을 모아서 가져다 보여줄 테니 새로 작성할 필요 없이 그 글을 정리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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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씨가 다음 아고라 ‘미네르바 조작설’ 연재 글에 올린 일명 ‘조작그룹간 인맥도’. 권씨는 청와대 전·현직 인사, 검찰 고위 인사, 언론사 기자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근거 없는 음모론을 펼치고 있다. |
‘미네르바’는 박대성보다 먼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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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월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검찰에 체포되는 모습. |
―왜 당시 본인은 미네르바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예전에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주식 관련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제 글을 다음 아고라 같은 곳에다 퍼 간 걸로 생각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제 글에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했었죠.”
―그러면 권씨와의 채팅 중에 “잠복경찰관이 찾아왔다” “검찰에서 메일이 왔다” “출금(출국금지)조치를 하는 모양이다” 등의 이야기는 왜 했습니까.
“대화하기 며칠 전 집 앞에서 한 남자가 지갑에서 신분증 비슷한 것을 꺼내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당시엔 경찰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사람이 정확하게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나머지는 과장해서 한 이야기입니다. 검찰에서 메일이 오거나 출금조치를 당한 적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방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2001년 상경 후 투자 및 주식 상담을 하며 생활했다. 포털 사이트에 상담 카페를 개설해 회원들과 주식시황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직·간접 투자도 했다.
김씨는 2006년부터 ‘미네르바’란 필명을 사용해 증권 관련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8년 초 한 주식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활동한 기록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박대성씨가 다음 아고라에서 미네르바 필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그보다 늦은 2008년 7월부터다. 2008년 가을, 김씨를 다음 아고라의 미네르바로 오인한 이들이 김씨를 추종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그 과정에서 구글 커뮤니티(그룹)에서 함께 활동하던 지인으로부터 다음 아고라의 미네르바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됐다.
―당시 자신을 ‘고구마 파는 노인’이라고 표현했는데, ‘진짜 미네르바’를 사칭하기 위해서 쓴 표현이 아닌가요.
“실제로 어머니가 시골에서 고구마 농사를 지으십니다. 노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연륜이 있어 보이려고 했고요.”
“16페이지 기고문 중 직접 쓴 건 2페이지”
박대성씨는 2009년 8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고구마 파는 노인’이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해 본 말이었다”고 한 바 있다.
기자는 그에게 <신동아> 기고문을 보여주고 자신이 직접 쓴 부분을 체크하라고 요청했다. 편집자주(注)와 인터뷰를 제외한 16페이지의 글 중 실제로 김씨가 쓴 부분은 2페이지가 채 안된다. 서론 중 정부의 환율과 금리 문제를 비판한 내용과, 결론(정리) 중 ▶금리와 은행 ▶부동산 항목과 ‘일본이 나서는 까닭’ 부분이 전부다.
나머지 14페이지가량은 기존 박대성씨의 글을 짜깁기하거나 기고를 중계한 이들이 쓴 내용이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경제지표 예측 부분은 모두 신동아에 원고를 전달한 ‘11클럽’ 회원 또는 권씨의 손에서 편집됐다는 것이다. 김씨가 직접 작성했다는 서론 부분도 미네르바의 2008년 3월 23일 글 내용을 사실상 그대로 베낀 것이다. 신동아 기고문은 초안부터 ‘출처 불분명’ 원고였다. 김씨의 설명이다.
“제가 보낸 글을 본 ‘11클럽’ 운영진은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두 차례 수정을 요청했습니다. 좀 더 강하게 비판을 해 달라는 것이죠. 제가 보낸 서론과 결론을 박대성씨의 글과 합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을 했습니다. ‘11클럽’ 운영진 2명과 권씨가 새벽까지 작업했고, ‘모에’란 필명을 쓰는 사람이 신동아에 최종 원고를 보냈습니다.”
‘출처 불분명’인 신동아 기고문이 온 나라를 들썩였다. 온라인에 머물렀던 미네르바의 유명세는 하루아침에 오프라인 매체로 전파됐다. “국내 주가지수 바닥이 500이고, 부동산은 모두 반 토막 나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는 글 내용은 대다수의 국내 언론이 경쟁적으로 인용했다. 한 인터넷 경제매체는 “네티즌들은 정부보다 (신동아에 보도된) 미네르바의 전망을 믿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는데, 정부를 믿는다는 답은 6%, 미네르바를 믿는다는 답은 73%였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신경민(辛京珉) 앵커는 “누구인지 찾아내고 입을 다물게 하기보다는 미네르바의 한 수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맞아 보인다”는 클로징 멘트를 내놓았다. <오마이뉴스>는 “강만수 대신 미네르바를 앉혀라”란 기사를 통해 강만수(姜萬洙) 전 장관의 정책을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정보 당국이 미네르바를 찾은 것은 경제관료로 기용하기 위해서”란 내용의 패러디 칼럼을 게재했고, 독일의 경제지 <한델스 브라트> 등 외신도 미네르바의 재등장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국내 주가 바닥이 500이라든지, 부동산이 반 토막 된다는 글을 쓴 사실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김씨의 설명이다.
“바닥을 500으로 전망한 ‘주식시장’ 부분은 아예 쓴 적이 없습니다. 부동산은 지속적인 하락 가능성이 있다고는 말했지만, 책에서와 같이 반 토막이라곤 안 했습니다. 여담으로 ‘부동산이 서민을 위한다면 절반 정도 떨어지면 좋지 않겠느냐, 그건 나의 소망’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중간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고친 거죠.”
회원들 “권 선생은 무서운 사람, 적으로 만들 수 없다”
박대성씨도 ‘주가 500과 부동산 반 토막’에 대한 내용은 전혀 기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원조와 가짜 모두 쓴 사실이 없다고 한 내용이 기고문에 버젓이 게재된 것이다.
동아일보 진상조사위 보고서에도 기고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본론 부분을 누가 썼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고문의 대부분을 ‘11클럽’의 회원인 필명 ‘모에’(김모·여)와 ‘깨진손톱’(김모·남), 그리고 대북 사업가 권씨가 짜깁기, 또는 직접 작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기고문 공개 후 권씨는 김씨에게 신동아와의 추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씨는 거절했지만, 권씨는 “(신동아) 12월호 기사가 났기 때문에 추가 인터뷰를 안 하면 보호막이 없다”며 “인터뷰를 해서 공권력으로부터 신동아 취재원 자격으로 보호를 받는 게 낫다”고 했다고 한다.
2009년 1월 9일 ‘진짜 미네르바’가 허위사실 유포죄로 체포돼 그의 신원이 공개됐다. 체포된 박대성씨는 “신동아에 기고한 적이 없다”고 밝혀 기고문을 둘러싼 진위 논란이 벌어졌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권씨와 ‘11클럽’ 회원들은 이메일과 채팅창을 통해 수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고 과정에 관계된 ‘모에’는 “1차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2차 인터뷰를 안 하면 저쪽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며 “그렇게 되면 당신뿐 아니라 ‘11클럽’의 신상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함께 기고 과정에 참여한 ‘깨진손톱’은 “권 선생은 무서운 사람이고, ‘11클럽’은 권 선생을 적으로 만들 수 없다”면서 “당신만 다치면 괜찮은데, 우리까지 다치게 된다”며 김씨에게 인터뷰를 강요했다.
2009년 1월 14일, 김씨는 결국 ‘모에’가 알려준 신동아 기자의 연락처로 통화를 시도했다. 신동아 측은 “커피 한잔하면서 얘기하면 된다”고 전해 왔고, 김씨는 그날 저녁 서울 아현역 인근 커피숍에서 신동아 기자를 만났다. 그날 인터뷰의 조건은 ▲자신이 연락할 대포폰을 준비할 것 ▲기자 혼자 인터뷰 장소에 나올 것 ▲녹음 및 사진촬영 금지 ▲만나는 시간은 5~10분으로 제한 등이었다.
이날 인터뷰 주제는 ‘김씨에 대한 검증’이었다. 그날 처음 김씨의 실명이 밝혀졌고, ‘IP 공유 및 조작’ ‘7인의 금융계 그룹’ 등 허위내용이 인터뷰에 포함됐다. 저녁 8시경 커피숍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신동아 사옥으로 옮겨져 다음날 새벽 3시30분까지 이어졌다. 신동아 측은 약속과 달리 인터뷰 내용을 녹음하고, 김씨의 사진도 찍었다.
‘7인의 미네르바’가 등장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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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K’씨의 기고문과 인터뷰가 실린 <신동아> 2008년 12월호와 2009년 2월호. |
“겁이 났습니다. 당시 ‘11클럽’ 사람들은 저를 미네르바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제가 (미네르바가) 아니라고 한다면 신동아, ‘11클럽’, 박대성씨 측 모두 저를 공격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인터뷰를 하기 전 ‘모에’로부터 ‘권씨가 무조건 박대성을 강하게 깨라고 한다’는 내용을 전달받았습니다.”
신동아와의 인터뷰 당시 김씨는 “포털 네이버의 한 주식 관련 카페 채팅창에서 자주 대화를 나눈 사람이 7명”이라고 설명했는데, 이 내용은 ‘미네르바는 7인의 금융계 그룹’이란 제목이 나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씨의 설명이다.
“2006년 말경부터 2008년 9월까지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정기적으로 네이버 카페 채팅창을 통해 7명이 모여 자유롭게 경제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친목 모임 형식으로 자세한 신원은 서로 몰랐지만, 대부분 금융권이나 경제학 전공자들인 것으로 압니다. 신동아 기자가 그 7명과 연락이 되느냐고 물었고, 저는 ‘한 명이 외국에 나갔으며, 그가 2008년 12월 29일자 글을 올리지 않았을까’라고 답변한 기억이 있습니다.”
신동아 기고문 보도 후 미네르바가 12월 29일 아고라에 작성한 글은 “내부 참고용으로 만들어 놓은 걸 잡지사에 가져다가 팔아먹는 놈이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글과 김씨의 허위 주장을 근거로 신동아는 미네르바가 다수의 인물이 모인 팀이란 사실을 확정지었다.
<신동아> 2월호 기사는 다시 한번 큰 반향을 일으켰다. IP 조작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지만, IT 전문가들은 “상식적인 한도 내에선 가능성이 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박대성씨는 미네르바로 활동한 ID, 필명, IP 주소, 사용기록 모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반면, 신동아 K는 상식적인 기본 조건이 전혀 성립되지 않았다. 또 그가 주장한 ‘7인의 미네르바’ 중 본인을 제외한 6명의 신원도 확보되지 않았다.
동아일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신동아> 2월호 발매 후인 1월 29일 권씨는 신동아 기자의 요청으로 출판국 회의실에 와 신동아 팀 기자와 일부 주간동아 팀 기자를 대상으로 1시간반 동안 “박대성이 가짜 미네르바이며 K씨가 진짜 미네르바 그룹의 일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권씨는 또 2월 6일 자신이 검색한 ‘K씨와 이름이 같고 연령대가 비슷한 금융업 종사자 11명의 리스트’를 편집장에게 전달했지만, 신동아 측의 확인 결과 동명이인으로 밝혀졌다.
“당신 나한테 죽는다” 협박과 폭언 모두 녹음해
신동아와 김씨는 2월 11일 다시 만났다. 김씨가 당시 요청한 인터뷰 조건은 ▲자신의 사진과 녹음 파일 원본을 인터뷰 장소에 갖고 나와 폐기하라 ▲신동아 팀에서는 편집장 혼자 나오라 ▲다시는 자신을 찾지 않으며 신원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장하라 등이었다. 이에 신동아 측은 “무조건 인터뷰에 응해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라”고 했다.
2월 12일 오후 김씨는 “오늘 저녁에 만나겠다. 담담당당(권씨)을 인터뷰 장소로 데리고 오라”고 했고, 결국 그날 밤 8시경 편집장, 권씨, 김씨, ‘모에’ 등 4명이 서울 당산역 부근에서 모두 모였다.
이날 인터뷰는 다음날 새벽 3시30분경이 돼서야 끝났다. 장소도 커피숍에서 인근 호텔로 옮겼다. 신동아 기자들은 김씨의 정체에 대해 집중 추궁했고, 새벽 1시경 김씨는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이날 녹음기를 몰래 가져갔다. 지난번 인터뷰 당시 신동아 측이 약속을 깨고 녹음을 한 것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12시간 분량의 녹음 파일엔 그날 상황이 모두 담겨 있었다. 고성ㆍ폭언이 모두 녹음돼 있었다.
녹음 내용을 분석하면 신동아 기자들이 호텔을 떠난 후 권씨는 5시간여 동안 김씨와 독대를 하게 된다. 권씨는 당시 “칼은 기본이고 총 들고 나오는 것까지 상대를 해봤다” “(그들은) 겁나는 사람들이다” “거짓말하는 순간 죽는 거다” “지금 야자(반말) 안 한다. 야자 들어가면 당신 나한테 죽는다”며 김씨를 압박했고, 두려움을 느낀 김씨는 다시 한번 자신은 아고라의 미네르바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설명이다.
“그땐 정말 ‘이렇게 죽는구나’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기자들이 저를 둘러싸며 질문을 퍼붓더니, 그들이 간 뒤엔 더 무섭다던 권씨와 단둘이 남았으니까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권씨는 이날 김씨로부터 ‘또 다른 미네르바’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수차례 반복된 질문을 했다. 권씨의 반복된 질문에 대한 김씨의 대답은 결국 ‘나는 아니다’였다. 권씨도 “당신은 미네르바와 전혀 관계가 없다”며 김씨가 가짜임을 수차례 표명했다. 그럼에도 이후 권씨는 다음 아고라 게시판과 블로그를 통해 “김씨가 가짜가 아니다”란 주장을 되풀이한다.
권씨가 지난해 12월 8일에 쓴 “‘김○○’은 가짜가 아니다”란 제목의 글 내용 중 일부다. 권씨는 자신의 글에 김씨의 실명을 직접 거론했다.
지인들 접촉해 조사, 협박
<이렇게 나는 ‘고구마K’ 김○○과 ‘언어의 추억’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꽤 된다. 그는 11월 이후에는 절필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 요구 사항을 들어 주었다. 그래서 11월 29일 이후 미네르바 필명의 글은 그 후 한 달 동안 아고라에 올라오지 않았다. (중략) 사실 김○○의 진위에 관해서는 일일이 설명할 가치를 별로 못 느낄 정도다. 커밍아웃? 그 시기에 그렇게 하고 도망가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었는가? 정말 가짜였다면 1월 박대성이 체포된 이후 그렇게 인터뷰하지 않았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랬다면 오히려 처리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중략) 아직도 김○○을 가짜라고 여기는가?>
한편, 김씨의 실체를 안 신동아 기자들은 다음날 한 번 더 김씨를 불러내 진위를 재확인했다. 김씨는 “미네르바를 사칭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신동아 측은 그가 가짜 미네르바라고 최종 결론을 냈다.
2월 16일, 출판국의 보고를 받은 동아일보사는 당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다음날 발간한 <동아일보>와 <신동아>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진상조사 보고서는 한 달 뒤에 공개됐다. 김씨는 당시 진상조사 과정을 이렇게 회상했다.
“조사를 마친 후 위원 중 한 분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서 둘이 대화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분은 제게 ‘나는 권씨를 신뢰하지 못한다’며 ‘왜 너는 권씨 등에게 이용당해서 이런 상황에 처했느냐’고 했습니다. 또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부산에 있는 사찰에 가서 요양 좀 하라’고 하더니 ‘차비는 있느냐’며 10만원가량을 제게 쥐여줬습니다. 사실 그때 건강도 안 좋고 집안 사정도 어려워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분께는 지금도 죄송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0년 3월경, 김씨의 지인인 박모씨는 업무 중 전화를 받았다. 낯선 목소리의 남자는 김씨와 관련해 물어볼 것이 있다며 회사 앞으로 나와 달라고 했다. 그날 찾아온 사람은 권씨와 그의 지인인 황모(32)씨다. 황씨는 한 IT업체의 대표로, 자신의 블로그와 다음 아고라에 “미네르바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답변 없으면 사진 공개하겠다”
두 사람은 박씨를 만나자 다짜고짜 질문부터 했다. “다 조사했다”며 김씨와 지인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내놓은 그들은 박씨에게 “김씨를 만나야 하니 무조건 나오라고 하라”고 했다. 당시 황씨는 명함을 줬지만, 권씨는 신분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들이 비록 격식은 갖췄지만, 개인 연락처를 아는 데다 수사하듯 질문을 해서 권씨가 형사인 줄 알았다”고 했다.
권씨는 이후 박씨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김씨와의 접촉을 채근했다. 그는 “조사를 진행했고, 실체 파악도 끝났다”며 “답변이 없을 경우 조사한 내용과 김씨의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김씨에게 “도대체 권○○과 황○○이 누군데, 무관한 사람을 죄인 취급 하느냐”며 하소연을 했고, 김씨는 결국 황씨의 전화로 연락을 취했다. 3월 중순, 두 사람은 서울교대 앞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자신을 ‘네트워크 전문가’라고 소개한 황씨는 “해킹을 통해 조사한 결과 박대성은 미네르바가 아니다”라며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그 사실이 드러난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수차례 자신은 아고라의 미네르바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황씨는 계속 제 주변 조사와 박대성씨에 대한 조사를 다 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해킹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해킹 다 한다. 나는 국정원과도 일을 같이 한다’고 답했습니다.”
1시간쯤 후, 권씨가 그 자리에 합류했다. 그들은 인근 PC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은 김씨에게 <신동아> 인터뷰를 보여주며 어느 부분을 직접 했느냐고 물었고, 김씨는 있는 그대로 답변했다. 권씨는 그날 “현대아산 사장 하마평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김씨의 증언이다.
“현대아산 사장 정도의 권력이 있다는 권씨에게 더 주눅이 들어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신동아와 월간조선 기자들 모두 고소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신이 미네르바라고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수차례 ‘미네르바가 아니다’라고 설명했고, 그들은 분명 제가 미네르바의 아이디, 비밀번호, IP를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母 찾아간다는 협박 못 이겨 자살 기도
김씨는 권씨의 협박이 도를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잠깐 담배를 피우러 권씨와 함께 커피숍 밖으로 나왔는데, 권씨가 ‘자료가 다 있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자신의 윗도리 밑단을 툭툭 치며 지퍼를 열어 보였습니다. 왼쪽 주머니 안에 막대기 같은 것을 신문지로 둘둘 말아 넣은 것이 보이더군요. 전에 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고, 자신은 바늘 하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김씨는 또 권씨가 “당신 어머니 계신 시골까지 찾아가려 했다. 주소와 통화기록 등을 확보했다. 어머니를 찾아가면 당신 연락처를 알고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당신 어머니도 온전하겠나. 오늘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거다. 한 번은 참았다”며 협박했다고 밝혔다.
권씨는 김씨와의 만남 이후 지인들에 대한 협박을 그만두지 않았다. 권씨는 이후 두 차례 더 박씨에게 메일을 보내 “김씨가 또 거짓말을 했다”며 “3월 중순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박씨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해 모두 공개하겠다”고 했다. 또 김씨와의 통화 및 문자 내역을 거론하면서 “관계자들도 피해 나갈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권씨는 김씨의 또 다른 지인 김씨에게도 메일을 수차례 보냈다. “김씨와 관련해 몇 가지 확인할 부분이 있다”며 지인의 신변과 김씨와의 관계에 대해 캐물었다. 지인 김씨가 답변을 하면 다시 반박 질문을 하는 형식이었다. 그가 권씨에게 “본인의 신분을 밝히는 게 우선”이라고 하자 권씨는 답장에 자신을 “대북관계, 그리고 기술 컨설팅 등을 하는 사람”이라 소개하며 “‘미네르바 조작사건’으로 동아일보, 월간조선, 박대성 등을 고소한 당사자, 검찰 및 경찰 조사를 받고 있고 지금 곧 재판 절차에 들어가는 당사자”라고 했다. 또 “김씨는 미네르바 팀의 일원”이라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그들이 김씨 본인에게 원하는 요구 사항이 정확하게 뭡니까.
“두 사람은 제게 ‘자신이 미네르바임을 인정하고, 두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라. 그러면 제 방패막이가 돼 주겠다’라고 계속 얘기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후 수차례 제가 미네르바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지인들을 협박하고, 제 어머니까지 들먹이니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관악산에 올라가 준비했던 약을 먹고 자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계속 걱정돼서 우시더군요. 제가 죽을 경우 어머니까지 잘못될 것 같아 차마 죽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권씨는 김씨에게 계속 자신이 정보기관과 오랫동안 일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평소 그런 분야와 거리가 멀었던 김씨는 더욱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권씨와 황씨를 만나면 결국 죽을 것 같아 계속 숨어 지냈다. 그러던 중 자신이 박대성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는 것과 기소중지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고 결국 자수를 결심했다.
“국정원과 관련 없는 사람”
1963년생인 권씨는 코트라(KOTRA) 특수사업부 출신으로 1994년 사표를 낸 후, 최근까지 대북사업을 해 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안희정(현 충남도지사)씨와 북한의 리호남 참사와의 비밀 접촉을 주선한 후 언론에 폭로했다.
권씨의 폭로는 안희정씨가 ‘베이징(北京) 회담’을 시인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안씨는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호남 참사를 만났는데 ‘왜 나왔느냐’는 식이어서 황당했고 그쪽도 황당해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권씨 등의 과잉의욕이 만들어낸 자리가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농락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2006년 12월 평양 방문 당시 정부의 방북 승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불법 방북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2001년 불법 방북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아 남북협력사업자 자격이 취소된 상태였다.
<월간조선>은 국정원에 그의 정보기관 관련 주장에 대한 공식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았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다.
―권씨가 국정원 관계자 또는 직원인가.
“전혀 관계없다.”
―권씨가 국정원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는가.
“전혀 없다.”
―노무현 정부의 남북(南北)정상회담을 막후 추진한 인물로 알려진 권씨는 2006년 12월 북한에 다녀왔다고 밝혔다. 무단 방북(訪北)에 해당하는데, 방북 이후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한 전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기관이 그를 수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까지 현행법 위반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
권씨는 ‘미네르바 조작설’을 근거로 다수의 네티즌과 기자 등을 고소한 상태다. 권씨가 인터넷에 공개한 고소 대상 또는 소속기관은 박대성씨, 박찬종(朴燦鍾) 전 의원, 다음, NHN(네이버), 동아일보, 뉴시스, 시사저널, 월간조선 등이다.
피고소인이 된 기자들은 전화 인터뷰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각론에 대응할 생각은 없다” “일반적 상식과는 맞지 않는 주장” 등의 입장을 밝혔다. 다음 측은 이 사안에 대해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는 정부 기관의 발표 내용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권씨와 황씨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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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미네르바 김씨를 직접 만난 박대성씨. 유언비어와 음해에 스트레스성 소화기 장애가 생겨 몸무게가 20kg가량 줄었다고 한다. |
―김씨와 지인들을 추적·협박한 것에 대해.
“흥미롭다. 소재를 알려고 했으면 작년 초 이미 확보한 연락처를 갖고 그때 했을 것이다. 시간을 1년이나 넘겨 연락을 취했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만나기 싫은 사람이라면 만나지 않을 권리가 그들에게 있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알고자 하는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연락에 속한다. 그것이 협박처럼 여겨진다는 말을 메일에서 받은 바가 없다. 김씨와는 작년 이후 지금까지 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 협박이라고 느꼈다면 그에 따른 법리적 조치를 하라고 하라.”
―“바늘 하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어머니를 찾아가겠다” 등 협박성 발언과 정보기관 및 현대아산 관련 발언에 대해.
“나의 언어습관에는 그런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없다. 김씨를 만난 3월 18일은 이미 현대아산 사장이 결정됐던 상황으로 기억된다. 정보기관과 오랫동안 일해 왔다는 식의 발언은 우리 같은 사람은 하지 않는다. 어떤 형식이건 그러지 않고 남북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늘 하나’와 같은 식의 말 습관도 없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 부분은 벌교가 고향이라고 했으니 가서 찾아볼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작년 이후 금년 초까지는 내가 김씨를 만나려고 해 본 적은 없었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니까.”
―신문지로 싼 칼과 같은 흉기에 대해.
“참 우스운 이야기다. 그 번잡한 거리(교대)에서 만나자 하고, 주머니에 뭘 들고 다니고, 왜 그게 필요한가. 나는 그런 것이 없어도 얼마든 강한 사람이다. 그에게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뭔가. 도무지 앞도 뒤도 없는 이런 말은 거의 정신병자 수준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상황, 정황, 장소가 맞아떨어져야 그 주장을 들어 줄 가치가 있다.”
―“미네르바라고 인정하고 협조하면 방패막이가 돼 주겠다”는 발언에 대해.
“난 그런 정도의 힘이 없다. 미네르바로 인정하라는 말, 하지 않았다. 함께 PC방에 가서 미네르바의 글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신동아> 기고문 작성 경위에 대해.
“내게 물을 질문이 아니다. 그 원고의 수발은 모두 〈신동아〉에서 했다.”
김씨와 지인들을 추적·협박한 것에 대한 황씨의 답변이다.
“김씨가 네이버에서 글을 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거기에 스스로가 공개한 번호로 연락을 취했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지만 며칠 후 김씨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게 됐다는 것도 밝혔고, 전화를 받은 사람이 김씨가 〈신동아〉와 인터뷰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서 이 사람이 맞지 않느냐고 확인차 사진을 보낸 적은 있다. 당시에 보냈던 메일은 지금도 갖고 있다. 협박과 추적이란 표현은 심하게 부풀려진 것 같다.”
―“해킹을 통해 조사한 결과 박대성은 미네르바가 아니다” “국정원과 일을 같이 한다”는 발언에 대해.
“박대성이 미네르바가 아님을 확인했다고 발언을 하기는 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확인했다. 김씨가 네트워크 해킹 기술과 관련해 아는 척을 하기에, 나도 ‘국정원에 다니는 친구에게 조언해 주는 실력은 된다’는 이야기는 했던 기억이 난다. 국정원과 함께 일을 한 경험은 없다.”
―“미네르바라고 인정하고 협조하면 방패막이가 돼 주겠다”는 발언에 대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진짜와 가짜 미네르바의 첫 만남
권씨와 함께 활동 중인 황씨는 청와대 전·현직 인사와 검찰 고위 간부가 미네르바 사건을 기획·조작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가 실명으로 거론한 인물은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김철균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 김수남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최재경 법무부 기획조정실 실장 등으로, 권씨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황씨가 박대성씨와 박씨의 가족에 대한 개인정보를 다음 아고라와 블로그에 게재한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그는 지난 6월 ‘네이버의 DB 조작, 미네르바 팀의 6개 ID’란 글에서 박씨와 박씨 가족의 실명, 주민등록번호 일부, 네이버 탈퇴일 등의 정보를 올렸다. 원래 ‘미네르바 팀’에서 복수의 인물이 사용했던 ID를 네이버가 조작했다는 주장에 포함된 내용이다.
황씨는 당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네이버 직원이 보여준 (PC) 화면으로 확인한 정보”라면서 “개인정보 보호라는 기준이 일률적이지 않은 만큼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적 차원에서 공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올렸다”고 했다.
네이버 측은 “그런 정보가 정리된 화면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화면을 봤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며 “정보통신망법상 회원 탈퇴 후 6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이름과 주민번호가 파기되고 있기 때문에 2008년도의 탈퇴 정보를 봤다는 주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황씨는 지난 6월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과정’에서 30명의 멘토단 가운데 한 명으로 선발됐다. 멘토단은 장관의 위촉장을 직접 받은 후 연수생 선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청와대와 사법부를 비방하는 블로거를 정부 부처에서 ‘유망한 고수’로 지정한 것이다.
지경부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멘토 선발의 전담기관인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진흥원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해 멘토로서의 적격성 여부를 판단하여 조치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김씨와의 두 번째 인터뷰는 지난 8월 6일 논현동의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인터뷰 현장엔 박대성씨도 함께 참석했다. 김씨는 박씨를 처음 만나자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는 또 “이런 일로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해서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모든 논란을 떠나 일단 김씨가 협박과 추궁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일이 잘 마무리돼 하루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미네르바 사건은 복잡하지 않다. 박대성씨가 다음 아고라에 글을 썼고, 그의 예측이 맞아떨어져 이슈가 됐다. 김씨는 권씨의 중개로 아고라의 미네르바를 사칭해 〈신동아〉에 글을 기고했고, 김씨와 〈신동아〉 모두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허위사실유포죄로 구속됐던 박대성씨는 무죄로 풀려났지만, 검찰의 항소로 2심 진행 중이다. 과정이 명확한 사건을 두고 상식에서 벗어난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취재지원 朴熙錫 月刊朝鮮 인턴기자>
| ▣ 미네르바 2008년 포털 다음(Daum)의 ‘아고라’ 경제토론 게시판에서 미국의 금융그룹 리먼브러더스의 부실을 예측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인물. 본명은 박대성으로 주가와 환율을 정확히 예측해 네티즌들로부터 ‘경제대통령’으로 추앙받았다. 그가 추천한 책은 ‘미네르바 추천도서’란 이름으로 베스트셀러가 됐고, “50대 초반의 해외거주 경험 있는 전직 증권맨”이란 설이 나돌았지만, 본인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김경한(金慶漢) 당시 법무장관의 “(미네르바의 글이)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당연히 수사해야 한다”란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후, 미네르바는 짧은 글을 남기고 절필을 선언했다. <신동아>에 기고문이 게재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후에 신동아 기고자는 가짜로 확인됐다. 2009년 1월 허위사실유포죄로 체포된 후 ‘전문대 출신의 30대 무직 남성’이란 신분이 공개됐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