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들여다보기] 정당 여성 대변인의 세계

  • : 권세진  sjkwon@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첫 여성대변인 등장은 2002년 대선, “남자 후보의 딱딱한 이미지 상쇄가 목적”
⊙ 선거 때는 ‘저격수’ 역할 등 신랄한 논평 마다 않아
⊙ 머리손질 안 했다간 ‘국민에 대한 예의 없다’ 비난 쇄도
⊙ 집에서 전화기만 붙들고 있어 남편이 전화부스 선물하기도
⊙ 술문화 개선에 앞장, 기자들과 와인바 회합도
⊙ 닮고 싶은 대변인은 박희태·박지원
2008년 3월 17일 한나라당 신임 당직자 임명식에서 신임 조윤선 대변인(오른쪽)과 나경원 전 대변인이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는 화려한 외모의 글래머 여배우 한채영이 야당 여성 대변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대통령 피격미수 사건 후 “경호원보다 빠르게 오히려 대통령이 먼저 피했다던데요. 우린 역사상 가장 민첩한 대통령을 잃을 뻔했습니다”라며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꼬는 논평을 내놓는다. ‘미모까지 갖춘 여성 대변인’과 ‘신랄한 논평’, 어딘지 부조화(不調和)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21세기 사람이 아니다. 2010년 현재 영화 같은 이런 장면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與, 남녀 공동대변인 체제 先導
 
  지난 2월, 여당의 ‘입’이 바뀌었다. 2년여간 한나라당의 장수 대변인으로 일해 온 조윤선(趙允旋) 의원이 퇴장하고, 검사 출신 초선의원인 정미경(鄭美京) 의원이 새 대변인이 됐다. 조윤선 의원의 하차를 앞두고 여러 여성 의원이 ‘여성 몫 대변인’을 놓고 하마평에 올랐고, 결국 정 의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조해진(曺海珍)-정미경 체제가 된 것이다. 이제 이런 남녀 대변인 체제는 정치권에서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보편화됐다.
 
   민주당 역시 지난해 8월 김유정(金裕貞) 대변인이 사퇴한 이후 여성 대변인을 찾기 위해 고심했지만, 대부분의 여성 의원이 중진급이거나 연령이 50대 이상이어서 적임자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결국 한동안 고수해 온 남녀대변인 구도를 포기, 노영민(盧英敏)-우상호(禹相虎) 두 남자 대변인이라는 ‘이상한’ 체제가 됐다. 그동안은 대변인이 남자 대변인 1명이거나 남녀 대변인이었다. 자유선진당은 만 2년째 박선영(朴宣映) 대변인이 남자 공동 대변인을 몇 명 바꿔 가며 부동의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정당에 여성 대변인이 등장한 역사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2002년 9월, 이회창(李會昌)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선대위 대변인으로 판사 출신인 조윤선씨를 내세운 것이 처음이다. 선대위와 같은 임시 조직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정당 대변인직을 맡은 첫 여성은 2003년 7월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임명돼 6개월간 활약한 김영선(金映宣) 의원이다.
 
  이후 국내 정치권의 여성 대변인 역사는 화려하게 진행됐다. 한나라당은 김영선-전여옥(田麗玉)-나경원(羅卿瑗)-조윤선-정미경까지 일부 짧은 기간을 빼고는 계속 여성 대변인을 기용해 왔다. 민주당 역시 2004년부터 이승희(李承姬)-차영(車英)-김유정 대변인을 잇달아 임명했으며, 열린우리당에서도 박영선(朴映宣) 김현미(金賢美) 대변인이 활약했다. 자유선진당은 2008년 3월 창당 당시부터 신은경(申恩卿) 전 앵커를 대변인으로 내세웠고, 이후 바통을 물려받은 박선영 의원이 만 2년째 대변인직을 수행하고 있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도 현재 여성 대변인(심재옥·沈載玉, 우위영)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간 정치권에서는 전여옥-이승희-박영선(2004년), 나경원-김현미(2007년 대선), 조윤선-차영-신은경(2008년 18대 총선), 조윤선-김유정-박선영(2009) 등 여성 대변인들의 대결이 펼쳐졌다.
 
 
  여성 대변인 기용의 첫째 이유는 ‘부드러움’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방송토론을 앞두고 조윤선 대변인으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다.

  대변인 임명은 당 대표의 권한이다. 여성 대변인 조윤선을 처음 정치무대에 데려온 것은 2002년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현(現) 자유선진당 대표였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선대위 고위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이회창 후보가 워낙에 고지식하고 딱딱한 이미지인 데다 상대후보(노무현)에 비해 고령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미지를 상쇄해 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다”며 “가장 대외 노출빈도가 높은 당직인 대변인에 부드러운 이미지의 젊은 여성을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대변인 행정실에서 9년간 일해 온 김영인 팀장은 “척박한 정치환경과 언론환경을 개선해 보자는 뜻에서 2002년 대선 당시 여성 대변인을 영입했는데, 여러 가지로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면서 이후 여성 의원이 대변인직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척박하고 딱딱한 이미지의 정치권에 여성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시선을 끌게 되고, 대국민 호감도가 높은 여성 정치인들이 대변인을 맡아 와 당 이미지 쇄신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투사형 여성 대변인 등장으로 남성과 구분 힘들어지기도
 
2007년 대선 직전 대통합민주신당 김현미 대변인이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관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처음 의도대로 여성 대변인이 ‘기대했던 역할’에 그쳤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김영선·전여옥 의원은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 대변인으로서 정부와 여당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투사’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민주당 김현미 대변인은 당시 여당이었지만 매서운 논평과 공격으로 야당을 곤혹스럽게 만들어 ‘강성’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2004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이 남미순방에 나서자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대통령이 없어서 모처럼 나라가 조용해질 기회이니 되도록 오래 머무시라”고 독설을 퍼부었고, 이에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그쪽도 아이가 있을 텐데 (아이들 보기) 부끄럽지 않으냐”고 맞받아친 것은 좋은 예이다. 상대방을 향해 ‘치매노인’이라거나 ‘시정잡배’, ‘개’, ‘쓰레기통’ 같은 원색적인 단어를 논평에서 주로 사용했던 사람도 사실 각 당의 여성 대변인들이다.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했던 박영선 의원은 2007년 대선이 시작되자 대변인 못지않은 대여 공격력을 보여줬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BBK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끈질기게 이 후보를 공격했다. 정가에서는 이를 두고 “아직도 대변인 피가 흐르는 모양”이라고 화제로 삼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성 대변인의 역할과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킨 사람으로 전여옥·나경원·김현미 대변인을 꼽는 사람이 다수다. 한 전 국회의원은 전여옥 대변인에 대해 “국민의 호오(好惡)가 분명했지만 어쨌든 야당 대변인으로서 확실한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평했고, 나경원 대변인에 대해선 “빼어난 외모가 먼저 주목받긴 했지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역할을 했고, 대변인으로서 매서운 논평을 많이 내놓아 ‘외모가 출중한 정치인’이 아닌 ‘능력있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김현미 대변인은 야당에서 잔뼈가 굵은 전사형(戰士型)으로 핵심을 비켜가지 않는 논평과 성명으로 남성 대변인을 능가하는 역할을 해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24시간 울려대는 전화기
 
200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나경원 대변인의 보고를 받고 있다.

  각 정당 당헌·당규를 보면 대변인의 업무는 ‘논평과 성명, 브리핑 등 대언론 업무를 관장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대변인의 일은 이보다 훨씬 폭이 넓다. 당(黨)을 대변(代辯)해야 하는 만큼 당무(黨務)를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대표(또는 총재)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기자들의 취재 요구에도 응답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회의마다 참석해야 하고 대표의 중요한 일정은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대표와 자주 만나다 보니 대표의 정치 참모로서 역할도 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권 인사들은 대변인을 ‘3D 직종’이라고 한다. 대변인의 하루는 대개 아침 7시쯤 조찬모임으로 시작된다. 보통 9시부터 열리는 당 공식회의에는 필수 참석 멤버다. 부대변인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지만 중요한 성명, 논평은 직접 작성해야 한다. 긴급 현안이나 기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브리핑에 나서야 한다. 행여 말 실수라도 하면 곧바로 정치문제로 옮아붙어 사퇴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
 
  남녀 공동 대변인 체제의 경우 업무 자체는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 않다. 보통 두 명의 대변인이 짝수날과 홀수날 담당을 하며 번갈아 대변인 역할을 한다. 언론활동 담당이 아닌 날은 대표 수행업무가 주어진다. 담당이 아닌 날에도 회의에는 참석해야 하지만 논평이나 브리핑 활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만큼 의정활동을 할 시간이 생긴다.
 
  주요 정당의 여성 대변인은 대변인 활동을 통해 높은 인지도를 얻게 됐고,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가 대변인직 수행 이후 지역구에 도전해 성공했다. 김영선·전여옥·나경원 의원이 그랬고, 박영선 의원은 원외에서 대변인 역할을 하다가 비례대표 국회의원(17회)이 된 후 차기(18회)에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시간 관리 못하면 過勞死하기 십상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은 여성 대변인으로 활약한 것은 물론, 당대표직까지 올랐다. 2006년 6월 당대표 취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정미경 한나라당 대변인은 최초의 지역구(수원 권선) 출신 여성 대변인이다. 그는 대변인 발령을 받고 나서 지역구민들에게 “당분간 저를 중앙에 좀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해 놓은 상태다. 자기 지역의 대표가 중앙정치무대에서 활약하게 됐다며 기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는 “우리가 그러려고 지역대표 뽑았느냐”며 불평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정 대변인(수원)이나 과거 민주당 김현미 대변인(경기 고양)처럼 챙겨야 할 지역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이면 바쁘다는 얘기도 잘 먹혀들지 않는다. “아무리 바빠도 그거 하나 못 왔다 가나”라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지역구민이 많기 때문이다.
 
  대변인의 휴대전화는 하루 24시간 울린다고 보면 된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별 차이가 없다.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보통 새벽 5시에 기상하는데, 기자의 전화 때문에 깰 때도 많다”며 “밤 12시나 새벽 5시는 양반이고, 중요 현안이 있을 때는 새벽 2~3시에도 전화가 자주 울린다”고 말했다. 박영선 전 열린우리당 대변인의 이야기다. “한번은 남편이 영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미니 공중전화 부스(booth)를 선물로 사왔어요. 대변인 시절 아이들에겐 엄마=전화라는 공식이 서 있을 정도였거든요. 남편이 집에서도 편하게 부스에 앉아서 전화하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지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등 개인시간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원래부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반응이었다. 여성 대변인들의 전직(前職)이 판사·검사·기자·교수·정당인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업이었기 때문에 살림과 육아는 처음부터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미경 대변인은 “검사나 변호사 생활을 할 때는 그래도 아침에 아이들과 아침을 함께 먹고 나갈 수 있었는데 대변인은 6시면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아이들 얼굴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며 “어느 주말 아침상에 마주앉은 여덟 살, 열 살 아들들이 ‘엄마 오랜만이에요’라고 인사하더라”고 말했다.
 
  각 당 여성 대변인 간 교류는 시간상 거의 불가능하다. 박선영 대변인과 김유정 전 대변인은 이화여대 선후배 사이로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만, 그 외의 여성 대변인들은 서로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고 한다.
 
 
  김현미·김유정, 폭탄주 5잔 정도는 거뜬
 
한나라당 전여옥 전 대변인은 국민들에게 강성 야당 대변인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아무래도 남자 기자들이 많다 보니 술자리도 많다. 10여 년 전보다 빈도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술자리는 여성 대변인에게는 스트레스다. 기자들과 스킨십 이상의 ‘홍보활동’은 없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중진일수록 많기 때문이다. 요즘 여성 기자들의 숫자가 굉장히 많이 늘었지만 “기자는 여자나 남자나 술실력이 비슷하다”(민주당 전 대변인)는 말처럼 술을 잘하는 여성 기자들이 많다. 남성 정치인 중에는 여성 기자들과 술을 마시다 ‘경계(警戒)’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구설에 오른 예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언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술을 많이 마시는 문화가 줄어들면서 여성 대변인들의 술자리 스트레스도 많이 없어졌다.
 
  MBC 기자 출신인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내가 기자생활하던) 예전보다 언론계의 끈끈함은 많이 사라진 편”이라며 “남성 중심의 술 문화가 많이 개선돼서 술자리가 크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도 “판사시절보다 정치권에 들어와서, 또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술자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선배의원들의 말에 따르면 예전보다는 술자리가 많이 줄었고 짧아진 편이라고 하고,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리한 술자리는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이 꽤 술을 하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다음으로는 김현미·김유정 전 대변인이 폭탄주를 5잔 정도는 거뜬히 비우고 나경원 의원도 이와 비슷한 술실력을 갖고 있다. 박영선 전 대변인은 술이 잘 받지 않아 대변인으로서의 의무감으로 1~2잔 비우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정미경 대변인은 기자들과 와인바를 찾는 등 분위기를 중시하는 편이다.
 
 
  단정한 외모는 ‘국민에 대한 예의’?
 
  일반인들은 여성 대변인 선정 기준이 외모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역대 여성 대변인 대부분이 어느 곳을 가도 꿀리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였거나 방송에 어울리는 단정한 외모를 지닌 방송기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으레 여성 대변인 하마평은 외모 순으로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런 항간의 시선 때문에 받는 여성 대변인들의 의상·외모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박선영 대변인은 “대변인에게 외모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름 단정하게 하기 위해 머리나 메이크업은 내가 스스로 하는데, 가끔 부스스한 머리 스타일을 하면 주변에서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나경원 의원은 일부러 수수한 옷을 골라 입는다. 탤런트급의 외모를 지닌 만큼 “정치인이 지나치게 튀어서는 곤란하다”는 주변의 조언 때문이다. 기자 출신인 박선영 전 대변인과 판사 출신인 조윤선 전 대변인은 ‘신뢰감을 주는 옷차림’인 짙은 색 계열의 정장을 선호한다. 정미경 대변인은 “대변인이 논평 내용과 사회 분위기에 따라 의상을 선택했으면 좋겠지만, 사실 옷이 별로 없어 곤란하다”며 웃었다. 그는 아침 6시부터 문을 여는 국회 미용실을 가끔 이용한다고 말했다. “방송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날이면 아예 일찍 나와서 국회 목욕탕과 미용실을 이용합니다. 머리와 화장은 깔끔한 정도로 손질해 주고요. 방송 녹화가 있는 날이면 방송국에서 해 주기 때문에 따로 신경은 쓰지 않습니다. 이전 여성 대변인들도 다 그렇게 했다고 해요.”
 
  정 대변인은 의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대변인이 되고 나서 국회 사진기자단과 식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그분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정치인들은 사진이 잘 안 받아 괴롭다’며 정당 차원에서 코디네이터를 기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당직자회의나 대변인 브리핑 등은 거의 매일 뉴스에 소개되는데 매일매일 똑같이 촌스럽다는 거죠. 헤어스타일도 좀 세련되게 하고 옷도 좀 신경 써서 입으면 국민들의 눈이 즐겁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어떤 면에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재 중 잇달아 만나본 여성 전·현직 대변인들은 자신만의 ‘대변인론(論)’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바쁘지만 보람 있었다”와 “다시 한 번 하라면 고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미경, “남편 반대에도 시아버지가 찬성해 정계 입문”
 
정미경 대변인.
  여당 대변인이 된 지 두 달을 갓 넘긴 정미경 대변인은 활기찬 표정이었다. 정 대변인은 검사 출신으로 2008년 총선 직전 정치에 뛰어들어 단번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초선에 여당 대변인직까지 거머쥔 ‘정치 루키(rookie: 신인)’다.
 
  지역구 여성 의원으로 대변인이 된 것은 정 대변인이 처음이다. “대변인이라는 직책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사실 지역구 의원에게 대변인을 시킬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저를 많이 추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언론에서도 직책 앞에 ‘여성’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지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가 검사로 일할 때만 해도 여성 검사가 거의 없었다. 그를 부를 땐 늘 ‘여검사’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늘 따라붙는 ‘여성’이란 말에 불편함을 갖고 있던 그는 2007년 저서 <여자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를 내놓고 우리 사회의 ‘첫 여성’ 국무총리·헌법재판관·검찰총장 등에 대한 분석을 내놓아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남자는 잘하건 못하건 그 사람의 실적이잖아요. 그런데 여성들은 잘하면 자기 몫이고, 못하면 여성 전체를 욕먹이는 꼴이 돼요. 각 분야의 여성 선배들은 후배들을 위해 이런 선입견을 깨 줘야 할 의무가 있어요. 사실 남녀가 평등하게 인정받기 위한 전제는 여성 인재가 많아야 한다는 겁니다. 남녀가 비슷한 숫자라면 여성이라는 게 무슨 이슈가 되겠어요? 여성 국회의원이나 여성 대변인이라는 게 화제가 되지 않으려면 그 분야에서 남성과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면 돼요. 근데 거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때까지 여성들은 무조건 자기 분야의 업무를 ‘잘’해야 됩니다. 어렵지만 여성 선배로서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그는 정치를 시작할 당시 가족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총선을 앞두고 주변에서 출마 권유를 받고 있던 때, 충남 청양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시아버지가 그의 집을 방문했다. 정 대변인이 정치 이야기를 꺼내자 시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네(며느리)가 하겠다면 찬성”이라고 말했다. 정치를 반대하던 남편이 “아버지는 왜 이사람 편만 드느냐”고 묻자 시아버지는 남편에게 “너만한 남자는 많지만, 이만한 여자는 없다”고 답했다는 것.
 
  “정말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분이시거든요. 그 말씀을 듣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마웠어요. 심지어 총선 때는 수원에 상주하면서 명함 돌리기까지 나서서 하셨어요. 촌로(村老)의 모습을 한 시아버님을 보고 친근감을 느껴 표를 줬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가족의 지원과 사랑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정 대변인은 한 정당의 대변인이 아닌 ‘국민의 대변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에 가보면 순수한 분들이 참 많아요. 순수하게 정치인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분들을 만나면, ‘이런 사람들의 대변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웃집에 사는 사람 같은 대변인이 되고 싶어요.” 3년 전 냉철한 검사 시절 만남만 뇌리에 남아 있던 필자의 기억이 무색하게, 그는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의 ‘정치인 정미경’이 돼 있었다.
 
 
  박선영, “‘꽃’이 되려면 대변인 하지 마라”
 
박선영 대변인.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2008년 4월부터 대변인직을 맡고 있는, 최장수 여성 대변인이다. 역대 최고령이기도 하다. “역대 대변인 중 현직에서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분은 박희태 대변인뿐일 겁니다. 여성 대변인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는 걸 절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대변인직을 수행하면서 “의원으로서 활동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정치인 중 3D 직업이에요. 당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시간은커녕 의원 개인으로서의 활동을 할 시간도 없어요.”
 
  그는 거의 매일 당과 국회 대변인실을 오가며 대변인직을 수행하다 주말이면 의원회관으로 출근한다. 주중에 밀린 의정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가족의 불만은 없을까? 잘 알려져 있듯 그의 남편은 민일영(閔日榮) 대법관이다. 두 아들은 이미 대학생이다. “저는 그래도 아이들을 다 키운 상태지만 다른 여성 대변인들은 아직 아이가 어려서 힘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행히 두 아들은 ‘엄마가 잘할 것’이라며 응원해 줬습니다.”
 
  그의 논평은 법 전문가답게 논리적이고 냉철하다는 평을 받는다. “정치가 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법치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점도 많고요. 법학자로서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맵고 짜게’ 논평을 내놓는 적도 많았습니다.” 출입기자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작년 후원금 납부자 리스트에는 출입기자도 여러 명 포함돼 있었다. “흔치 않은 이름이라 설마하고 전화해 봤더니 맞았어요. 고맙다고 했더니 쑥스러워하더라고요. 눈물나게 고마웠지요.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것 같아요.”
 
  그는 직책 앞에 붙는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박 대변인은 그동안 여기자·여교수·여성 정치인으로 불린 적이 많았다. “여성 정치인이라면 꽃이나 장식으로 보는 사람이 아직도 많아요. 나이 든 거물급 정치인 옆에는 꼭 젊은 여성 정치인이 있었던 적도 있고요.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물론 여성이 미모를 갖고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미모가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여성이다 미모다 이런 말은 이제 정치권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메르켈이나 힐러리가 미모에 옷 잘 입어서 성공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성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여성 의원으로서의 역할을 경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올해 일본군 위안부, 어린이 근로정신대, 노인문제 관련 국제세미나들을 준비하고 있다. 18대 의원 중 정책세미나를 가장 많이 한 의원 중 한 명으로, 임기 2년이 채 안 됐지만 정책세미나를 연 횟수가 20회에 달한다.
 
  “후배 여성 대변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체화(體化)된 대변인이 돼라”고 말했다. “제가 대변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여성 대변인에 대해 ‘꽃’으로만 알고 있더라고요. ‘꽃’이나 ‘얼굴마담’ 역할의 대변인이라면 아예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대변인은 정치와 당무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스스로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논평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단순한 꽃으로 남으면 본인도 설 자리를 못 찾고 이미지 손상 등 불명예를 갖게 되지만, 후배 정치인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돼요. 써 준 논평을 읽는 것은 앵무새에 불과합니다. 본인이 한 정당을 책임지는 대변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경원, “대변인 되면서 비로소 정치를 알게 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나라당 나경원 전 대변인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는 오세훈 시장, 원희룡 의원, 김충환 의원과 함께 경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변인 시절에 대해 질문하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빴다”며 웃었다.
 
  “대변인 하는 동안 점심·저녁식사를 언론인 외의 사람들과 한 적이 없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당의 입장을 밝히는 게 제 일이었으니까요. 그전까지 당에서는 정치 신인인 저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는데, 매일매일을 그렇게 살았더니 윗분들이 저의 당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는 판사로 재직하다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선대위 특보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땐 사실 할 일이 없더라고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날도 있었고요.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2006년 대변인이 되면서 비로소 정치를 알게 됐죠. 대변인은 당은 물론 정치권의 모든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직책이거든요.”
 
  미모의 여성 대변인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만큼 개인적으로 곤란한 일들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언론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과한 음주를 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어서 몸이 힘들곤 했어요. 하지만 대변인일 때의 술자리는 대부분 제가 주최하는 자리여서 무리한 요구를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변인이 아닐 때의 술자리가 더 힘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는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여성 정치인’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근혜 전 총재는 (부친의 후광을 업은 만큼) 사실 진정한 여성 정치인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겠죠. 전 그런 지지기반이 없잖아요.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여성 파워가 커지고 있고 이제 여성 지도자에 대한 요구 역시 커지고 있어서 여성 정치인이 활약할 환경은 주어진 것 같습니다.”
 
  첫 여성 서울시장을 노린 그에게 과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실패했던 강금실 전 후보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후보였기에 실패했다고 봅니다. 그의 출마는 내용이 없는 이벤트였기에 시민들도 그걸 파악한 거죠. 진정성이 부족해 보였어요. 이젠 ‘속 빈 강정’으로는 시장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직을 대선을 위한 교두보로 생각하는 사람 역시 시장이 돼서는 안 되고요. ‘꼼꼼하고 따뜻한 리더십’을 기치로 시장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박영선, “재선되니 겁이 나 대변인 못하겠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전 대변인은 2007년 대선 직전 ‘BBK 공격수’로 활약했다.
  MBC 기자로 20년간 일했던 박영선 전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대변인으로 영입돼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당시엔 대변인이 어떤 자리인지 몰라서 했지만 다시는 하기 힘들것 같다”며 웃었다.
 
  “20여 년 동안 경제부에만 있었거든요. 정치를 하나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정치인이 되기엔 엄청나게 불리한 여건이었죠. 게다가 대변인까지 하라니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밤마다 일을 마친 후 선후배 기자들을 만나서 개인과외 식으로 조언을 받았죠. 서투른 점도 있었겠지만 경제기자 출신이라서 나름 신선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평도 들었습니다.”
 
  박영선 의원은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한 이후 18대에는 지역구(구로을)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대변인직이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음을 그도 부인하지 않는다. “대변인은 보통 초선 의원들이 많이 하잖아요. 초선 의원은 본인을 알릴 수 있는 기회니까 본인도 하고 싶어 하고, 재선 이상 의원들은 웬만하면 대변인은 안 하려고 하죠.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초선 의원의 논평은 성숙하고 발효된 맛이 없어요. 사실 저도 재선되고 나서 다시 대변인 하라는 요청을 몇 번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힘들고 겁도 났어요. 의정활동에 집중하면서 더 이상 당직을 맡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대변인 생활은 ‘보람 있지만 힘든 삶’이라고 말했다. “일단 가족의 부담이 컸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어요. 이른 출근에 늦은 퇴근이 일상사인 데다가 집에서도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늘 밤 1시까지 전화가 울렸어요. 그런데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죠. 새벽부터 뉴스와 신문을 빠짐없이 보고 그날 할 일을 완벽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정말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어요. 지금도 법사위에 속해 있어서 일이 많긴 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나은 편이죠.”
 
  박 의원은 여성 대변인이 우리 정치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농담삼아 ‘열린우리당이 반수를 넘는데 대변인의 기여도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었어요. 여성 대변인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건 사실이죠. 지금은 여성 대변인이 일반화됐는데, 이는 정치분야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유정, “13개월 했는데 10년은 한 기분”
 
민주당 김유정 전 대변인은 ‘부드러우면서 강한’ 이미지를 보였다.
  김유정 전 민주당 대변인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기자를 맞았다. 그는 2008년 대변인이 된 후 이명박 정부의 인사청문회와 용산참사 등 굵직한 현안을 놓고 여당 저격수로 나선 바 있다. 그의 논평은 알기 쉽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10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욕설사건 때는 논평을 통해 “성질 뻗친다는 유 장관 때문에 정말 성질이 뻗치는 사람은 국민들”이라며 “상식 이하의 언행을 보이는 유 장관은 사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 전 대변인은 “그런 논평을 내놓을 때면 속 시원하다는 사람이 많은데, 그럴 때 대변인으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야당에서 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르고자 민주당 당료로 정치권에 들어왔고, 2008년 18대 국회에 민주당 비례대표로 입성했다.
 
  그가 대변인이 된 것은 2008년 7월 전당대회에서 사회를 맡았던 것이 계기가 됐다. 어릴 적부터 웅변을 배웠던 그는 전당대회를 매끄럽게 치러냈고, 이틀 후 정세균(丁世均) 대표가 전화를 걸어 대변인직을 제의했다. “대변인은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선망하는 자리잖아요. 언젠가 하고 싶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죠.”
 
  그는 대변인직에 대해 “13개월 했는데 10년은 한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대변인은 정말 부지런해야 하고, 많이 공부해야 하고, 엄청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자리죠. 1년 넘게 대변인 생활을 하고 나니 지치기도 했고, 의정활동도 충실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선망했던 대변인직이지만 쉽지는 않았다. 대변인이 되기 전까지 주변의 도움없이 살림과 교육까지 도맡아 했던 김 의원이지만, 대변인이 되면서는 집안에 아이 돌봐 주는 사람을 두어야 했다. 언론인들과 어울려 술도 자주 마셔야 했고, 주말에 출근하는 것은 물론 주로 주말 밤늦게 열리는 당 비공개회의에도 참석해야 했다. “정세균 대표께서 ‘그래도 둘(남녀공동대변인)이 하니까 할 만하지? 토요일은 쉬잖아’라고 하시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요(웃음). 특히 야당은 의원 수도 적고 일할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 힘든 편입니다. 하지만 대변인의 경험이 제 정치활동에 엄청난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에요. 후배 정치인들에게도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김현미, 이승희 전 대변인은 정치활동 중단
 
민주당 이승희 전 대변인은 전여옥, 박영선 대변인과 함께 ‘여성 대변인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이들처럼 대변인직 수행 이후 재선에 성공, 정치활동을 계속하는 여성 정치인도 많지만 소리없이 사라져 간 전직 여성 대변인도 적지 않다.
 
  민주당 김현미 전 대변인은 인지도와 정치 경력을 바탕으로 2008년 총선에서 지역구(고양 일산서)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전 여성 대변인인 김영선 의원과 격돌, 낙선한 이후 현재 정치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있다. 일산 당협위원장(舊 지구당위원장)직도 물러났으며 정치와 관련된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얘기다. 김 전 대변인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부인 김윤옥씨가 고가의 명품시계를 착용했다”는 발언을 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후 지난해 9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태다.
 
민주당 차영 전 대변인은 방송인과 미디어컨설턴트로 활약하다 정치권에 입문했다.
  여성학자 출신인 이승희 전 대변인 역시 정치활동을 중단했다. 17대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그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공천심사 과정에 이의를 제기한 후 공천신청을 하지 않고 정치권을 떠났으며, 현재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차영 전 대변인은 그동안 특별한 정치활동을 하지 않다가 지난 2월 민주당 양천갑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직에 임명돼 차기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경원 의원과 2008년 총선 지역구(중구)에서 맞붙은 바 있는 신은경 전 대변인은 총선 이후 정치권을 떠난 상태다.
 
  여성 대변인들이 꼽는 ‘바람직한 대변인상’은 어떤 것일까? 대부분 “특별한 롤모델이 없다”고 답했지만 정미경 대변인은 박희태 전 대변인을, 김유정 전 대변인은 박지원(朴智元) 전 대변인을 꼽았다. 정미경 대변인은 “박희태 의원이 대변인일 때 저는 학생이었어요. 야당의 엄청난 공격을 받으면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더라고요.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박 대변인의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대변인은 그런 사람이라고 쭉 생각해 왔어요.” 김유정 전 대변인은 “박지원 전 대변인은 ‘촌철살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명대변인”이라며 “대변인은 짧은 한마디로 국민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 하고, 논리와 감성을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