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의 개항 축제를 둘러보면서 느낀 것은 과거와 현재를 조화롭게 공존시키면서 개항 15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 글로벌 마인드와 긍정적인 역사의식이었다.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駐파리 특파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역임.
⊙ 저서: <현장에서 본 프랑스 교육> 등.
⊙ 상훈: 佛 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
愼鏞碩
⊙ 1941년 인천 출생.
⊙ 서울대 농대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
⊙ 조선일보 駐파리 특파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역임.
⊙ 저서: <현장에서 본 프랑스 교육> 등.
⊙ 상훈: 佛 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

- 요코하마 세관의 보세창고로 쓰이던 붉은 벽돌창고는 식당과 기념품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선우정 특파원은 칼럼을 통해 개항 당시 일본의 국내 사정을 언급하고 ‘요코하마가 올해 개항 150주년을 맞았다. 6월 기념일을 앞두고 축제가 한창이다. 개항이라면 침탈을 떠올리는 어두운 그림자는 없다. 개항의 부작용을 개혁으로 극복하고 개방을 지렛대로 强國(강국)을 일군 역사적 승자들의 경쾌한 풍경’이라고 축제 분위기를 현장에서 전했다.
그러나 필자를 감동시킨 대목을 다음 문장이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개방을 받아들일까. 6년 전 인천 개항 120주년을 맞아 개항 기념탑을 때려 부순 것이 우리 수준이다. 교통 흐름을 방해한다는 명목으로 세기를 두 차례나 넘기면서도 극복하지 못한 남루한 역사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자세라면 24년 후엔 개항장 전체를 때려 부수는 살풀이로 150주년을 기념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4대에 걸쳐 인천에 살고 있으면서 개항 기념탑이 사라지는 현장이나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또는 이전)해야 한다는 집단들을 설득하면서 실감했던 우리의 역사의식 수준을 선우정 특파원이 명쾌하게 요코하마 개항 기념 축제를 통해 갈파했다.
인천에서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인천을 東北亞(동북아)의 허브로 만들어 세계 명품 도시화하겠다는 汎(범)시민적 열망에 동참하고 있는 입장에서 요코하마 축제를 꼭 참관하고 싶어졌다.
축제행사에 1600억원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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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하마의 역사자료가 집대성되어있는 개항자료관 입구. |
호텔 로비에 비치된 각종 선전 팸플릿 가운데 개항 축제 선전물 두 가지가 진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처음 찾아간 곳은 개항 150주년 사무국이었다. 홍보담당자는 한국의 항구도시 인천에서 요코하마 축제를 참관하기 위해 왔다는 필자에게 많은 자료를 챙겨주면서 “추가로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담당자에 따르면, 재단법인체로 구성된 사무국에는 100여 명의 상근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고, 외부 용역 인원까지 합치면 1500여 명이 축제 준비와 진행요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2600명의 자원봉사자까지 합치면 도합 4100명이 된다고 했다.
축제 행사에 투입된 총 120억 엔(약 1600억원)의 예산 중 55억 엔은 요코하마市(시)에서 부담하고, 45억 엔은 입장권 판매로, 나머지 20억 엔은 스폰서 수입으로 충당했다는 설명이었다.
사무국에서 입수한 자료들을 챙겨본 후 현장을 둘러보면서 개항 기념 축제의 기본 개념을 알 수 있었다. 요코하마 항구의 베이사이드 일대에는 이번 축제를 위해 여러 가지 테마의 특별관을 만들어 놓았고, 시내 곳곳에 있는 개항 관련 건물이나 기념관들에서도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항구 부근 20여 군데서 동시에 축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이벤트를 조직해 본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축제의 장을 자연스럽게 요코하마 항구 부근 전체로 확대해 놓은 것이다.
이벤트용 특별관 중에서 관람객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미래의 에너지관’ ‘미래의 극장’ ‘요코하마 이야기관’들이었다. 일본 최대의 석유회사 신일본석유(ENEOS)에서 만든 ‘미래의 에너지관’은 새로운 에너지에 대해 배우고 즐기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었다.
‘미래의 극장’은 가까운 미래 ‘혹성아벨’을 무대로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이 만든 신감각 판타지 애니메이션 ‘BATON’이 3부작으로 공개되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었고, ‘요코하마 이야기관’에서는 개항 초기부터 요코하마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강연회도 열고 있었다.
그러나 테마별 특별관보다도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시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개항 관련 건물들과 자료관들이었다. 처음 찾은 곳은 베이사이드와 인접해 있는 요코하마 세관이었다. 개항과 동시에 업무를 시작한 요코하마 세관은 그동안 몇 차례 증축과 신축을 거듭한 끝에 1934년 현재 건물을 신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잘 보존된 開港 관련 건물들
세관 입구 1층에 마련된 자료전시실에는 요코하마 세관 역사와 함께 개항 초기에는 생사(비단)나 茶(차)를 수출하던 일본이 공업화를 거치면서 자동차, 사무용기기, 과학광학기기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하는 나라로 변모했다는 것을 무역 통계 등으로 보여주면서 개항 150주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요코하마 개항기념회관도 인상적이었다. 1917년 개항 50주년을 계기로 시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된 기념관은 붉은 벽돌의 유럽식 2층 건물로 우뚝 솟은 시계탑이 돋보였다.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때 파괴된 것을 1927년에 再(재)건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까지 갖춘 기념관은 요코하마에 거주하고 있던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문화·예술공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시민회관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는 중년 여성 자원봉사자의 안내로 개항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개항 초기부터 오늘의 요코하마에 이르기까지 항구의 역사는 물론, 시민 생활과 외국인 거주지의 변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구로후네(黑船) 來港 이벤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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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식 벽돌 건물로 요코하마의 대표적 근대건축물인 개항기념회관. |
개항 당시 요코하마에서 사업을 벌였던 외국 상인들이나 회사에 관련된 자료들은 물론, 요코하마에서 우편물을 취급했던 프랑스, 영국, 미국의 우편국 관련 자료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들이 압권이었다. 특히 개항 당시의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요코하마항의 초기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다.
이밖에도 가나가와(神奈川) 현청과 요코하마 시청은 물론, 요코하마 최초의 서양 호텔인 그랜드호텔 등도 개항 150주년을 맞는 항구의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항구 쪽 이벤트 중에도 흥미로운 것이 많았다. 야마시타 공원에서는 일본의 개항과 開國(개국)의 계기가 됐던,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끌던 구로후네(黑船) 來港(내항)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었고, 4척의 증기선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 입체적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오오산바시 會場(회장)에서는 요코하마 항구의 역사를 장식했던 여러 가지 선박 150척을 골판지로 제작 전시하고 있었는데, 바다와 해운의 나라답게 수많은 관람객이 모여들어 옛 선박들의 모양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개항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항구 쪽과 베이사이드 중간 지점에 위치한 붉은 벽돌 창고(아카렌가) 건물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요코하마 세관이 보세 창고용으로 지은 두 개의 붉은 벽돌 건물은 각종 기념품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차 있었고, 관람객들은 한 세기 전 요코하마 항구의 정취를 맛보면서 쇼핑과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보세 창고 건물을 시민들이 재미있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일본인들의 아이디어도 신선했지만, 몰려드는 관람객들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자세 또한 돋보였다.
요코하마와 인천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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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를 마치고 도쿄에서 선우정(우) 특파원과 대화하고 있는 필자(좌). |
그뿐이 아니다. 개항 당시 작은 어촌이 한국과 일본의 3대 도시가 되었고, 전쟁을 통해 파괴됐다는 것 또한 같은 운명이었다. 요코하마는 1923년 간토 대지진과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됐고, 인천 또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크게 파괴됐다.
그러나 요코하마는 두 차례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內港(내항)을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했고, 개항 초기의 건물들을 보존하고 복원했다. 이틀에 걸쳐 요코하마의 개항 축제를 둘러보면서 느낀 것은 과거와 현재를 조화롭게 공존시키면서 개항 15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 글로벌 마인드와 긍정적인 역사의식이었다.
153일간에 걸친 개항 150주년 축제에 주최 측은 500만명의 입장객을 예상하고 있었다. 성인의 일반 입장료는 2400엔으로 우리 돈으로 3만원 정도였는데, 관객의 연령이나 입장권 구입 조건에 따라 20여 가지의 각기 다른 입장 요금이 책정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같은 축제를 관람하는데도 20여 가지의 각기 다른 입장료를 책정해 놓았다는 것은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축제 이벤트를 조직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했다.
요코하마가 개항 150주년을 일본 개국 150주년과 동일시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성공으로 승화시켜 自祝(자축)하고 있는 분위기가 부러웠다. 요코하마와 유사한 인천의 경우, 작년에 移民史(이민사) 박물관이 개관됐고, 올해 말 개항 박물관이 문을 열면 개항의 역사를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점차 조성될 것이다.
요코하마에서 개항 축제를 참관하고 나서 24년 후 맞게 되는 인천 개항 150주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때의 인천 모습과 한국의 위상에 필자는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