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돌풍 ‘빅뱅 신드롬’

소비자들과 소통 통해 완성된 그룹

  • :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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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이돌은 소년소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빅뱅은 폭넓은 팬을 자랑한다.
대성이 솔로 트로트곡 ‘날봐 귀순’을 부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덩실 춤을 춘다.
빅뱅의 공연에는 30대 이상의 아줌마 팬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혹은 친구들과 함께 몰려든다.


⊙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 달리 색다른 옷차림에 색다른 춤동작으로 안티팬 거의 없어
⊙ 빅뱅 멤버들의 저서 <세상에 너를 소리쳐> 발매 한 달 만에 30만부 판매
⊙ 고난과 성공의 스토리가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위력

兪仁卿
⊙ 1959년 서울 출생.
⊙ 예일여고,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 조선일보 출판국 기자, 경향신문 여성팀장, 뉴스메이커부장, 레이디경향부장 역임.
⊙ 現 한국여기자협회 감사, 관훈클럽 편집위원, 경향신문 특집기획부 선임기자.
⊙ 저서: <내 인생 내가 연출하며 산다> <웬수들과 살기> <대한민국 남자들이 원하는 것>.
연령층에 관계없는 공감대 형성을 통해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어 낸 ‘빅뱅’. 사진은 빅뱅의 ‘하루하루’ 뮤직비디오 중.
올해 가요생활 50주년을 맞은 李美子(이미자)씨는 후배 가수들에 대한 촌평을 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빅뱅이 제일 눈에 띈다”고 말했다. 탤런트 高賢廷(고현정)씨도 15년 만에 등장한 오락프로 ‘무릎팍 도사’에서 “빅뱅 탑의 눈빛이 매력적”이라며 소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최근 한 모임에선 50대의 부장검사가 빅뱅의 ‘붉은 노을’을 열창해 박수를 받았다. 칠순을 앞둔 국민가수도, 미모의 중년여성 연기자도, 근엄한 법조인까지도 빅뱅 예찬론을 펼친다.
 
  빅뱅 5명의 멤버들이 올 초 펴낸 책 <세상에 너를 소리쳐>는 발매 한 달 만에 30만부가 팔렸다. 삼성SDS의 金仁(김인) 대표는 그 책을 간부 300명에게 선물하며 “현재 경제위기는 戰時(전시)상황이니 이 책을 ‘전쟁 지침서’로 삼아 일에 미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빅뱅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는 “빅뱅이 2007년, 2008년 2년간 470억원을 벌어들였다”고 밝혔고, 조선일보는 연예면이 아닌 경제 섹션에 그들의 성공학을 다뤘다.
 
  고백하자면 대학생 딸을 둔 중년아줌마인 필자도 빅뱅의 팬이다. 처음에 딸아이가 ‘빅뱅’ 운운 할 때는 우주학에 관심을 갖는 줄 알았다가 노래 ‘거짓말’을 듣고 감동한 후, G드래곤의 패션감각에, 탑의 섹시한 눈빛에 가슴이 흔들리고, 설거지할 땐 대성이의 ‘날봐 귀순’을 흥얼거린다.
 
  예전에도 HOT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동방신기 멤버들의 눈빛에 가슴이 흔들린 적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떼지어 나와 ‘헤이 요오~’ 등 국적 불명의 가사를 읊조리거나 기계처럼 춤을 춰대는 어린 연예인들을 보면 “뉘집 자식인지 부모 속 많이 썩였겠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들의 이름이나 멤버들의 개성을 파악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짧게는 석 달, 길게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사라진 그룹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6년 나타난 ‘빅뱅’은 3년이 지난 지금, 한번의 큰 폭발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빅뱅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자서전 〈세상에 너를 소리쳐〉(쌤앤파커스)를 펴낸 5인조 아이돌 그룹 ‘빅뱅’. 왼쪽부터 탑, 승리, 대성, 태양, G드래곤.
 
  스토리텔링 기법
 
  SS501처럼 꽃미남들도 아니고, 다른 연기자들처럼 키도 크지 않고, 동방신기 등 유사 그룹들처럼 세련된 매너가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겨우 20대 초반의 5인조 남성그룹이 전 국민을 사로잡는 힘은 뭘까. 연예계에 관심 없는 어른들에게도 “저런 아들 하나 뒀으면” 하고 부러워하게 만드는 빅뱅의 정체가 궁금하다.
 
  빅뱅은 탄생부터가 남달랐다. 음반을 발매한 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매스컴을 통해 이름과 실력이 알려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룹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대중을 끌어들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지금은 연예계의 파워맨이 된 양현석 대표는 빅뱅을 여느 신인처럼 쇼 프로그램으로 데뷔시키면 실력과 잠재력의 진가를 알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2006년 10회 분량의 빅뱅 다큐멘터리를 자체적으로 제작해 인터넷 매체인 곰TV를 통해 소개했다. 이후 ‘리얼다큐 빅뱅’이란 다큐멘터리를 MTV에서도 방송했다.
 
  옆집 동생같이 생긴 평범한 외모의 아이들이 모여 길게는 6년, 짧게는 1년 정도의 연습생 과정을 거치면서 땀과 눈물을 흘리고 좌절하고 주저앉으면서 ‘빅뱅’이란 하나의 팀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대중은 그들의 열정에 공감하고 같이 가슴 졸이면서 이미 팬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金蘭都(김난도) 교수는 “빅뱅은 소비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룹이 완성됐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성장했다”며 “빅뱅은 ‘웹2.0(블로그 등 사용자 참여 중심의 인터넷 환경)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들의 면모 역시 다른 아이돌 그룹과 달랐기에 이야깃거리가 풍부했다. 양 대표는 빅뱅 다큐멘터리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문화적으로 영향력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었다. 은퇴 후 만난 서태지가 “왜 예전처럼 음악, 패션, 춤 등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뮤지션이 없는지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얘기한 것에 자극을 받아 그런 요소를 갖춘 멤버들을 모으려 했다는 것이다.
 
  양씨는 개성이 강한 멤버들에게 이야깃거리, 즉 스토리텔링의 주인공 역할을 맡겼다. 13세에 가수의 길을 선택해 작곡과 작사, 패션과 헤어스타일 등에서 천부적인 감각을 보이는 리더 G드래곤(권지용), 뮤직비디오에서 지누션의 아역을 맡으면서 전율을 느낀 후 연기자에서 가수로 변신한 태양(동영배), ‘가수가 돼라’는 담임선생님의 노래방 덕담으로 ‘목회자가 돼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친 대성(강대성), 힙합에 빠져 있으면서 좋은 가수가 되기 위해 고민하는 탑(최승현), 오디션에 탈락했지만 패자부활전으로 다시 합류한 막내 승리(이승현) 등은 다른 아이돌 그룹과 달리 무대에 설 때도 색다른 의상으로 개성을 살린다.
 
  세계경영연구원 최철규 부원장은 “빅뱅은 이야기의 힘,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본질과 그 위력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른 아이돌 그룹들은 똑같은 옷차림에 비슷한 춤 동작만 연상되지만, 빅뱅을 보면 고난과 성공의 스토리가 파노라마처럼 흐르게 되어 ‘흐르는 스토리’가 대중의 뇌에 각인되었기에 그들의 노래, 춤, 광고, 행사 등이 호응을 얻는다는 것이다.
 
  대중문화 전문가들은 “아이돌이면서도 뮤지션으로서 강력하게 어필한 건 빅뱅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과거 아이돌이 공격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음악의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획사가 10대 청소년들을 발굴해 가공품처럼 대량 생산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빅뱅은 음악도, 공연하는 모습도 이전의 아이돌 스타와 너무 달라 취향대로 좋아할 수 있으며, 그만큼 안티팬들도 적다.
 
 
  꼭두각시 아닌 각자 독립된 아티스트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빅뱅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케이블 채널 MTV에 방영하는 방식으로 팬들의 시선을 끌었다.
  빅뱅의 또 다른 장점은 다섯 명이 모여도 근사하지만 각자 독립을 해서도 제 몫을 해낸다는 것이다. 무대 아래에서 만나는 그들의 모습은 옆집 동생 같은데, 무대 위에 올라가면 이국적이고 파워풀하다는 것이다. 안무에 맞춰 학예회 하는 수준의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멤버 각자가 다 자신의 목소리와 스타일로 놀고 있다.
 
  각자가 독립된 아이돌이고 아티스트라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능력 이전에 탄생 배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수만씨가 이끄는 SM이나 박진영씨가 운영하는 JYP가 만든 그룹들과 달리, 이들은 정교하게 계획표대로 움직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조정을 받는 대상들이 아니다. 양현석씨는 빅뱅 구성원 개개인의 재능을 찾아내 그걸 스스로 극대화시킬 수 있게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랬기에 빅뱅은 솔로건 합창이건 가리지 않고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미 고교 시절에 G드래곤은 ‘거짓말’ 등의 작품을 써냈고, 웬만한 발라드나 R&B(리듬 앤 블루스) 가수들보다 더 가창력이 뛰어나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과 더불어 ‘덤앤더머’로 불릴 만큼 어리숙한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대성은 무대에서는 전혀 다른 파워풀한 카리스마를 보인다.
 
  빅뱅은 음악뿐 아니라 스타일도 독특하다. 빅뱅 이전의 아이돌 그룹은 ‘동방신기’처럼 戰士(전사)를 연상시키는 갑옷 같은 단체복을 입거나, ‘신화’ 등이 보여주듯 코스프레 같은 단체복을 입었다. 자신들의 개성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코디가 입혀준 코스튬을 입어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하지만 빅뱅은 10대 후반과 20대 남자들 사이에 엄청난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헤어 스타일부터 스카프·바지·선글라스·모자 등 음악뿐 아니라 패션 등이 또래 남자애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또 다른 가수들의 음반작업에도 참여하고 탑, 승리 등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 연기자로서도 인정받았다. 대성은 오락프로와 ‘캐츠’ 등의 뮤지컬 활동도 한다. 노래, 춤, 연기, 작곡 등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한 다음, 잘하는 부분은 살리고 못하면 지독하게 야단을 치는 양 대표의 선진국형(?) 학습법의 결실일 것이다.
 
  양 대표는 멤버들의 솔로 활동에 대해 “콘텐츠 확장의 의미도 있지만 팀의 수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0세가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롤링스톤스처럼 믹 재거 등이 솔로활동도 하면서 팀을 유지하는 것이 팬들과 더불어 같이 늙어가며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진솔함과 자연스러움
 
  과거 ‘아이돌’은 소년소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빅뱅은 폭넓은 팬을 자랑한다. 대성이 솔로 트로트곡 ‘날봐 귀순’을 부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덩실 춤을 춘다. 빅뱅의 공연에는 30대 이상의 아줌마 팬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혹은 친구들과 함께 몰려든다. 중년 아저씨들도 이문세의 원곡인 ‘붉은 노을’을 흥얼거린다.
 
  재능보다 이들의 솔직한 노출에서 연령층에 관계없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꿈으로의 질주, 빅뱅 13, 140일의 도전’이란 부제가 붙은 빅뱅의 책 <세상에 너를 소리쳐>를 읽어보면 멤버들의 진솔한 목소리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至難(지난)한 과정이 진솔하게 표현돼 있다.
 
  “멤버 모두 사회생활을 배워야 할 시기의 대부분을 연습실에서 보낸 탓에 숫기가 제로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운동화 끈 하나를 갖고도 몇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지만, 빅뱅을 벗어나면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붕어들처럼 그야말로 바보가 된다. 수천 명을 앞에 둔 무대보다 낯선 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다.”(G드래곤)
 
  “내가 부모님을 설득한 방식은 가출하거나 밥을 굶거나 말을 하지 않는 반항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내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계를 망가뜨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그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고맙게도 최소한 우리 부모님은 꽉 막힌 담벼락 같진 않으셨다. 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부모님이 시키지 않아도 뭔가 해드리면 좋아하실 일들을 찾아서 했다. 앞으로 연습생이 되고 가수가 되더라도 착하고 성실한 아들의 모습은 잃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될 수 있는 한 가장 진지하게 나의 마음을 전달했다. 혹시라도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맞닥뜨려 힘겨운 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내 경험을 나누고 싶다.”(태양)
 
  “데뷔를 하고 인기를 얻으면서 가장 기쁜 것은 부모님이 행복해 하신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들, 아들이 잘돼서 엄마 아빠도 엄청 자극받았다. 아들이 노력해서 성공했는데 부모가 가만히 있을 수 있어? 우리끼리 더 열심히 해서 아들을 추월하기로 했어’ 내 평생 가장 큰 칭찬이었다.”(승리)
 
  이처럼 자신들의 아픔과 기쁨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지나치게 건방지거나 너무 과장되지 않아서 빅뱅의 팬 층은 더욱 넓어진다.
 
  물론 이들은 양현석이란 기획자 덕분에 탄생했다. 그는 연습실에 ‘가수가 되기 전에 인간이 돼라’는 구호를 붙여 놓고 외모보다는 호감도와 실력을 우선해 팀원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노래가 더 좋아서, 춤출 때 가장 행복해서 가슴이 터지는 청년들에게 마음껏 뛰어 놀면서 재능을 극대화할 기회를 제공했다.
 
  빅뱅에 선택된 다섯 명의 멤버는 어릴 때 이미 자신의 꿈을 정했고, 그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도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성공이나 돈보다 즐거움과 행복을 선택했기에 진화된 21세기형 아이돌을 탄생시키며 가요는 물론 연예계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만 19세에서 23세까지의 어린 청년들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넘어져도, 실수해도 좌절하지 않고 웃으며 다시 일어나 “재미있는 걸? 이번엔 옆으로 넘어져 볼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20대 청년들만 가능한 일일까. 꿈을 갖고 꿈을 키우고, 좌절해도 다시 용기와 희망을 발견하는 것, 하는 일에 재미를 찾는 것은 연령 제한이 없는 것 같다.
 
  태양의 노래에서 위안을 얻는 이들, G드래곤의 패션감각에 한 수 배워보는 청년들, 탑의 섹시한 눈빛에 가슴이 뛰는 여성들, 승리의 카리스마에 취하는 이들, 대성의 미소에 더불어 즐거워지는 이들이 있는 한 빅뱅의 인기는 계속될 것 같다. 그리고 중년층도 옆집 청년들의 이런 성공에 자극을 받아 다시 한 번 잃어버린 꿈의 불씨를 키운다고 해서 부끄러운 일일까?
 
  빅뱅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불행하고 무서운 것이 확실한 고통이 아니라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이며, 가장 슬픈 것이 꿈을 잃는 것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다섯 청년의 성공이 지속되기를, 또 일상의 작은 행복을 잃지 않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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