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原告의 訴狀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한다.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가지고 하여야 한다.”(어느 판사의 판결문 중에서)
嚴相益
⊙ 1954년 경기도 평택 출생.
⊙ 경기고·고려대 법대 졸업.
⊙ 군법무관시험, 사법고시 합격. 大盜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탈북 난민 한영숙씨 사건 등 변호.
⊙ 수필집: <변호사와 연탄 구루마> <욕심그릇이 작을수록 자유롭다>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은빛남자의 금빛이야기> 등.
소설: <여대생 살해사건> <검은 허수아비>,
논문: <미국과 프랑스의 언론법 비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가지고 하여야 한다.”(어느 판사의 판결문 중에서)
嚴相益
⊙ 1954년 경기도 평택 출생.
⊙ 경기고·고려대 법대 졸업.
⊙ 군법무관시험, 사법고시 합격. 大盜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탈북 난민 한영숙씨 사건 등 변호.
⊙ 수필집: <변호사와 연탄 구루마> <욕심그릇이 작을수록 자유롭다>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은빛남자의 금빛이야기> 등.
소설: <여대생 살해사건> <검은 허수아비>,
논문: <미국과 프랑스의 언론법 비교>.

-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법관들의 소통 노력 부족이 법원에 대한 시민의 불신을 낳는다.
벌써 몇 달째 상복 두건에 새끼줄을 동이고 시위를 벌이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몸에 두른 플래카드 문구가 기이했다. 자기가 죽으면 뼛가루를 법원 뜰에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억울해 하는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기에게 성형수술을 했던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가 敗訴(패소)한 것 같았다. 벌써 여러 달째 한자리에 望夫石(망부석)처럼 서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의사를 증오하던 그녀는 지금은 대법관으로 공격의 대상을 바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법제도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반인의 생각처럼 법관은 神的(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법원에 제출된 주장과 증거를 그냥 판단하는 보통 인간이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과 진실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법조인 30년의 결론이다. 하루는 지나가다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여러 날 시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사연을 물어봅디까?”
누군가 한번이라도 성의를 가지고 그녀를 설득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사람들은 죄의식 자체가 없어요.”
무슨 소린지 모를 그녀의 대답이었다.
지난해 가을 무렵, 대법원 앞에는 수많은 플래카드가 ‘혁명의 깃발’ 같이 휘날렸다. 아무개 판사를 처단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북소리와 꽹과리 울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쪽은 저쪽을 부패한 判官(판관)으로 보고, 저쪽은 이쪽을 무식한 정신병자로 보는 경우가 많다. 서로 같은 땅에서 사는 한국인인데도 서로 소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실종되어 있다.
대법원장, “변호사는 사기꾼”
지난 2월 2일 변호사회 정기총회장은 원인 모를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1000명이 훨씬 넘는 변호사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법원에 대한 불만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써내도 제대로 판사들이 읽지를 않아요, 내용도 모르고 법정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법정에서 변호사가 말도 하지 못하게 하고 調停(조정)하라고 강요하죠. 판사 말 안 들으면 결과가 나쁠 거라고 협박도 해요.”
“지방마다 판사들이 어떻게 텃세를 부리는지, 지방사건은 그곳 변호사를 꼭 이름이라도 더 걸쳐놔야 한다니까요.”
“우리도 과거에 법관을 했지만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철저한 在野(재야)정신을 가져야 한다니까요.”
법원의 고위직 판사를 지낸 변호사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였다. 묵묵히 듣고 있던 내가 끼어들었다.
“변호사가 재야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게 무슨 말씀이죠?”
내가 그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에게 물었다. 나는 그가 법관이던 시절 그에게 혼났던 변호사들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법원에서 無罪(무죄)판결을 내기가 귀찮아서 집행유예라는 有罪(유죄)판결을 선고할 때, 상당수의 변호사들은 적당히 타협을 해 왔어요. 이제부터는 법원이 밉게 보더라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자는 거죠. 또 법원의 강요로 중간에 적당히 조정하는 일은 없게 하자는 거죠.”
변호사들이 달라지고 있었다. 연단에 나선 변호사회장 후보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우리 변호사들은 국민을 대변해서 법정에 가면서도 판사들로부터 수많은 모욕을 받아왔습니다. 절반 이상의 변호사들이 기업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보다 수입이 적으면서도 언론에는 국민의 敵(적)으로 매도되어 왔습니다.”
연단에는 하얀 바탕에 ‘正義(정의)의 붓으로 人權(인권)을 쓴다’라는 검은 글자가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원인은 변호사에게 더 많이 있다는 생각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변호사를 ‘고용된 양심’이라고 했고, 金日成(김일성)은 ‘자본주의 첨병’이라고 했다. 이는 변호사의 일부 속성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말이다.
대법원장은 법관회의에서 ‘변호사는 사기꾼’이라고 했다. 스스로 변호사를 하면서 체험한 바를 말한 것 같았다. 변호사가 돈만 생각하고 법의 娼女(창녀)가 될 때, 모욕과 무시는 당연한 因果應報(인과응보)였다. 그런 잘못을 고치고 국민의 소리를 법원에 제대로 전달하자는 자성이 나오고 있었다.
鬪士가 된 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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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9일 ‘2008년도 법관평가’ 결과를 발표하는 河昌佑 변호사. |
“서울변호사협회장 자격으로 대법원장 면담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겁니까? 이걸 보세요.”
그는 탁자 위에 있던 서류 한 장을 내게 보였다. 대법원장의 취임사 중 한 구절이었다.
“항상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 되겠습니다.”
기억이 떠올랐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대법원장의 종교철학이 밴 귀한 취임사였다. 하창우 변호사가 말했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대법원의 首長(수장)이 변호사회장의 면담조차 거부하는 게 어디 귀 기울이는 것이고 어디 국민을 섬기는 겁니까?”
그는 심한 모멸감을 느낀 것 같았다.
“왜 만나려고 했는데요?”
필자가 물었다.
“편파적인 재판을 하고 법정에서 막말을 하는 교만한 판사들이 있어요. 변호사협회에 진정이 들어온 그런 것들을 보고 저는 그걸 사법부에 전달하려고 했어요. 법관도 이제는 국민적인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만 법관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없어요. 견제가 없을 때 비리가 생겨나는 걸 우리 변호사들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또 형식적인 법 논리에만 빠져 재판을 하는 경험 없는 판사들 보세요. 국민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결론을 내고 매일 그 앞에 시위자들이 몰려들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고인 물은 썩기 때문이다. 변호사 회장의 독설은 계속됐다.
“우리 사법부는 대단히 막강하죠. 선거법 위반으로 걸린 정치인들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함부로 거슬리는 立法(입법)을 하겠어요? 언론기관도 마찬가지죠. 수시로 손해배상소송이 법원에 계류되는데 함부로 비판하는 기사를 쓸 수 있겠어요? 저한테도 아는 판사들을 통해 은근히 압력이 많이 들어옵디다. 판사 때문에 먹고사는 변호사가 쓸데없이 법관평가제를 하자고 주장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이죠.”
안일했던 법조 쪽에서 어떤 움직임이 꿈틀대는 게 틀림없었다. 가장 소극적이고 보수적이던 변호사회장이 鬪士(투사)가 되어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얼마 전 법정에서 한 젊은 판사가 元老(원로) 변호사를 즉석에서 구치소로 보낸 적이 있어요. 증인에 대해 더 신문하겠다고 우기면서 법관에게 대들었다는 사유였죠. 판사가 법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가진 권력을 남용한 거죠. 그 판사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정말 치사스런 짓을 하다가 걸려서 구속됐어요. 사건 청탁 당사자에게 자기 단골인 룸살롱에 가서 술값 500만원을 갚으라고 한 거예요. 더 치사한 건 외상값은 200만원이었는데 500만원을 갚게 하고서는, 나중에 그 술집 마담으로부터 300만원을 현찰로 받았다가 걸린 겁니다. 그런 형편없는 저질 판사들은 평가 받아야 합니다. 변호사가 뭡니까? 판사한테 아부해서 자기 돈만 버는 직업입니까? 그게 아니죠. 저는 변호사회장으로 이제부터 변호사가 검찰이나 법원 같은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법관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몇 년 전 판사에게 석궁을 쏘는 테러 사건이 있었다. 대법관이 협박을 받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일만 하다가 집에 도착해도 쏜살같이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런 법관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일반 민중의 몰이해가 많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이 피하기만 할 뿐 당당히 나서서 해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그런 오해의 원인이 대단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법관 수준으로 법을 알라고 할 수는 없다.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는 법관이 국민과 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그 속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재판에 참여하다 보면 먼저 법원과 국민이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걸 많이 본다. 법원에서 아무리 공보관을 많이 두고 방송에 대고 法理(법리)를 설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공개된 법정 아무 곳에나 가서 30분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방청하면 당장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안다. 대화가 통해야 이해를 하고 마음이 흐른다. 그런데 법조인들은 법조생활을 하면 할수록 사용하는 언어가 외국어 같이 바뀐다. 얼마 전 유명신문사 부국장을 지낸 분이 한 가지 부탁을 해 왔다. 정치부장 출신인 그는 30년 이상 글을 써 온 칼럼니스트로, 글에 관해서는 베테랑급이었다.
“법원에서 민사사건 판결문을 받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 해석 좀 해 줘.”
나는 한글로 된 판결문의 내용을 그에게 설명했다. 전에 한 법정에서 우연히 이런 광경을 본 기억이 난다. 당사자가 재판장에게 말했다.
“제가 돈을 다 갚았습니다.”
재판장이 반말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변제했단 말이지?”
당사자가 다시 말했다.
“빚진 거 갚았다니까요.”
“그러니까 채무를 변제했다는 거야? 아니야? 요점만 말해.”
재판장과 당사자는 그렇게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법리만 머릿속에 가득 찬 재판장은 우리말도 겸손도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았다.
변호사인 나도 일반의 언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대학시절부터 법조문과 법률용어만 달달 외워왔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의 생각과 말과 글에 異常(이상)이 생겼다. 법률상담을 하러 온 당사자에게 나는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듯 멀뚱한 표정이었다. 나는 판례에 나타난 이상한 문장들을 앵무새같이 내뱉으면서 속으로는 상대방을 무식하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더러 글을 쓰기도 했다. 사람들은 법률과 한자용어로 꽉 찬 내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글에는 마음도, 메시지도, 문장의 기본원칙도 담겨있지 않았다.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위축시키는 엘리트 의식과 권위주의만 짙게 깔려 있었다. 法書(법서)만 읽다 보니 思考(사고)방식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폭력배에게 얻어맞아도 증거가 없으면 나는 얻어맞지 않은 것이고, 돈을 꾸었어도 차용증만 없으면 나는 아무런 빚이 없었다.
‘實體的(실체적) 진실’과 ‘법적인 사실’이 전혀 달랐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판사가 인정한 사실을 실체적 진실이고 정의라고 착각들을 했다. 그런 重病(중병)은 법원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중하다.
고등법원장을 지낸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복잡한 법리와 최신판례를 상식같이 전제하는 그분의 말을 실력이 부족한 나는 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생략한 채 법률토론을 하는 것 같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언어를 잃어버린 중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문학과 철학, 역사와 종교에 관한 책들을 쌓아놓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공부했다. 평이한 문장 하나, 소박한 수필 한편의 탄생 뒤에 보이지 않는 고뇌와 땀이 얼마나 많이 배어 있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10년, 20년이 지나면서 나는 덤으로 수필가가 되고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몇몇 언론 매체에서 고정적인 칼럼이나 소설연재를 받기도 했다.
“이게 수필입니까, 항소이유서입니까?”
한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호되게 모욕을 당한 적이 있다. 운이 나빴던지 그 사건은 변호할 여지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강도사건의 抗訴審(항소심)이었다. 그래도 변호사는 마치 마른 수건을 비틀어 물을 짜내듯 그의 삶 속에서 단 한가지의 좋은 점이라도 찾아야 했다. 법적인 핵심이 부족하다 보니 그의 힘들었던 삶을 우회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간신히 항소이유서를 써서 제출했다. 재판 당일이었다.
“변호인, 일어나 보세요.”
재판장은 나를 보면서 경멸하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이게 수필입니까? 아니면 항소이유서입니까? 난 도무지 그 핵심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는 작심하고 나를 모욕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판사였다. 변호사들이 대부분 그에게 한 번씩은 당했다고 열을 올리는 대상이었다. 심지어 그와 같이 일하던 동료 판사도 변호사 개업을 하자마자 그에게 당했다고 했다.
재판장은 내가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손에 들고 공중에서 흔들었다. 그는 빈정거리고 또 조롱하고 있었다. 방청석에서는 나의 의뢰인이 그런 재판장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재판정에서 변호사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 똑똑한 척하다가는 당사자에게 피해가 갈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사건을 다른 변호사에게 넘기기로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재판장님 그러시다면 저는 논점을 단 여덟 글자로 압축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뭔데요?”
재판장이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정. 상. 참. 작. 바 .랍. 니. 다. 그렇게 여덟 자죠.”
내가 손가락으로 글자 수를 세어가면서 말했다. 갑자기 재판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덧붙였다.
“핵심을 네 자로 더 압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뒤에 있는 존대어를 빼고 ‘정. 상. 참. 작’이라고 줄이면 네 글자 아닙니까? 재판장님은 그 항소 취지를 정말 모르십니까?”
나는 법정모독으로 법정에서 바로 구치소로 향할 수도 있었다. 고정관념의 틀 속에 꽉 박힌 법관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법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수필이야말로 인간의 오롯한 마음을 담는 귀중한 글의 양식이라고. 그는 수필을 모독하고 있었다. 법관이 오히려 판결을 수필같이 쓸 수 있을 때 이 사회에는 온기가 넘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합시다.”
재판장이 불쾌한 듯한 어조로 말을 끊었다.
아름다운 판결문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原告(원고)의 訴狀(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가져야 한다.”
2007년 1월경 인터넷에 잔잔히 퍼져나간 판결문이다. 아름다운 판결이라고 이름이 붙은 그 판결문을 쓴 판사 덕에 칠십 넘은 노인이 겨울을 훈훈하게 보내게 됐다. 76살의 노인은 딸이 보내주는 20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동네아파트 공사장의 청소 등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갔다. 늙었다는 이유로 그에게 막일이라도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하루 세 끼 중 한 끼는 봉사단체가 주는 밥을 얻어먹었다. 난방은 밤에만 한다. 그의 한 달 전기사용료는 1980원이었다. 그의 아내가 중병이 났다. 잠시도 옆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딸을 심부름 보내 간신히 임대아파트를 얻어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주택공사로부터 나가라는 소송을 당했다. 딸이 주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법입주라는 것이었다. 아내 병수발 때문에 시간이 없어 딸에게 대신 계약하라고 한 게 화근이었다. 재판장이 그에게 물었다.
“추운 겨울인데 혼자 사는 노인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재판장은 가난한 노인을 대신해 職權(직권)으로 소송구조를 신청했다. 노인 대신 변호사를 선임해 준 것이다. 판결을 선고하면서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계약은 딸 명의로 맺었지만 병든 아내의 수발을 위해 자리를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딸 명의의 계약은 법 지식의 부족으로 벌어진 실수로 판단됩니다. 노인은 실제로 임대아파트에 살고, 또 보증금도 본인의 돈을 냈습니다. 사회통념상 실질적인 賃借人(임차인)으로 충분히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도 임차인으로 보는 것이 공익적 목적에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문서를 최고로 생각하는 다른 판사들과 달랐다. 본질을 보는 판관이었다. 그는 판결문에 또 다른 이런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놓았다.
“가을 들녘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한다. 법의 해석과 집행도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가지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국민들을 정서적으로도 설득하기 위해서는 수필 같은 판결문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맞는 얘기였다. 판사들의 문장실력이 짧아서 무죄판결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불만들도 있었다. 日帝(일제)시대에는 法大(법대)가 아니라 法文學部(법문학부)였다. 그의 아름다운 판결문을, 오랫동안 법관 생활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쓸데없는 蛇足(사족)을 그렇게 붙일 필요가 있을까?”
“이 많은 걸 내가 다 읽으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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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정으로 입정하는 법관들. |
그러나 좋은 건 좋은 거다. 아름다운 판결문을 쓴 그 판사를 법정에서 여러 시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다른 법정의 판사에게 들렀다가 그 판사에게로 갔었는데, 똑같은 재판장이면서도 두 판사의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먼저 들른 다른 법정의 재판장은 당사자들을 대할 때마다 짜증을 냈다. 그는 당사자 한 사람을 부르더니 손에 서류뭉치 하나를 들고 흔들어 보였다.
“당신이 이거 냈지?”
재판장은 화가 난 어조였다.
“그렇습니다.”
당사자가 기어드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많은 걸 내가 다 읽으라고 낸 거야?”
역시 반말이었다.
“….”
“이제 그만 좀 써, 알았어?”
그는 교만한 재판장이었다. 그 재판정에서 나온 후, 아름다운 판결문을 쓴 재판장이 진행하는 법정으로 들어갔다. 그는 온유한 태도로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너무 초과되면 이렇게 양해를 구했다.
“하실 말씀이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법정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글로 써서 재판부에 제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무리 그 量(양)이 많아도 꼭 읽을 겁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판사도 名品(명품)판사가 있다. 해골 같은 법리에 따라 짧은 시간에 수십 건 수백 건을 처리하는 판사가 사람들의 말을 다 들어주느라고 밤늦게까지 법정에서 고생하는 판사를 무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법적인 관점이 동시에 법의 盲點(맹점)이라는 것을 봤다. 천장만 보면 바닥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판사들을 무능으로 매도하는 건 또 다른 교만이었다.
판결을 선고할 때 얼마나 당사자를 납득시키느냐에 따라 그 판사의 인격과 자질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어떤 법정에서 변호사가 고심해서 연구하고 주장한 것들에 대해 재판장이 이렇게 말하는 걸 봤었다.
“변호사가 뭐라고는 하는데 이유 없어요.”
辯論(변론)을 일축하는 그 재판장의 태도는 가벼웠다. 선고를 받던 피고인이 재판장을 향해 펄쩍 뛰어오르다가 제압당했다.
“재판장! 야, 너 똑바로 해!”
또 다른 고등법원에서 본 광경이다. 개정 시각이 지났는데도 재판장은 들어오지 않았다. 재판장의 버릇이었다. 복도에 있던 교도관들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늦게 나오면 잘난 걸로 보이는 모양이지?”
“우린 언제 구치소로 돌아가 점심을 먹나?”
이윽고 재판장이 거만한 표정으로 법정에 나와 앉았다. 宣告(선고)가 시작됐다. 중년의 남자가 나왔다.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한다.”
재판장이 건조한 표정으로 짧게 선고했다.
“재판장님 저 사흘 전에 합의했는데요.”
남자가 당황해서 말했다.
“합의해도 소용없어.”
재판장이 내뱉었다.
“다음 사람.”
재판장이 사무적으로 내뱉었다. 그를 끌고 들어가라는 지시였다. 갑자기 그가 법정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재판장! 야, 너 똑바로 해!”
‘존경하는 재판장님’이 ‘야’로 바뀌었다.
“刑(형)을 더 높일 걸 잘못했구먼….”
권위의식을 침해당한 재판장이 눈알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고위법관인 그는 인격적으로 피고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법복과 위압적인 법정 분위기, 그리고 법적 권한만을 의지하는 판사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반면에 판결을 선고하면서 말 한마디로 수많은 시위대를 단번에 침묵시킨 名(명)판관도 있었다. 그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이라고 보도됐던 다단계 사업이었다. 언론은 피해액이 5조원에 이르렀고 자살한 사람이 여러 명일 뿐만 아니라, 서민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앉았다고 보도했다.
재판 때마다 법원 주변은 살벌한 전쟁터였다. 법정 안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밖에서는 피해자라는 시위대 안에서 편이 갈려 주먹과 발길질이 오갔다. 피해자들도 투쟁방법에 따라 두 부류로 갈렸다. 한쪽은 “판사가 회장(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하게 해야 숨겼던 돈을 토해낼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쪽은 “일단 석방시켜 돈을 벌어서 갚게 하자”고 했다. 당시 내가 일기처럼 세밀하게 기록해 놓았던 것을 보면, 그 내용은 이렇다.
‘사기꾼 회장’에서 ‘우리 회장님’으로 둔갑
법원 건물의 위로 회색구름이 커튼처럼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져 포석 위에서 사방으로 은방울이 되어 날아갔다. 후텁지근하고 습기 찬 날씨였다. 나는 법원 정문 앞을 지나면서 시계를 봤다. 오후 2시45분이다. 법원 뜰에는 경찰버스 여러 대가 출동해 있었다. 오늘 선고가 있은 후의 난동에 대비한 것 같았다. 구치소에서 출발한 호송버스가 도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백명이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단계회사의 사장을 사기꾼이라고 하면서 죽이라고 악을 쓰던 시위대였다.
“회장님 오신다.”
한 사람이 소리치자 그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가 도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회장을 잡아 죽일 듯하던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이변이 난 것이다.
법정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방청석 제일 앞줄은 교도관들이, 그 뒷줄은 경찰관들로 이중의 인간방벽을 만들고 있었다.
재판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편이 갈려 고함과 야유로 법정은 난장판이었다. 판사들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오늘 판사가 어떻게 행동을 할까 아주 궁금했다. 어제까지 “사기꾼 회장을 죽이라”고 떠들던 시위대였다. 그런데 오늘은 모두 “우리 회장님을 살려달라”고 하고 있다.
자칫하면 그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던지는 돌을 이번에는 재판부가 고스란히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방청석 앞에서 법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했다.
“여러분 그동안 협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위대가 강하면 법원 직원도 슬며시 꼬리를 내렸다. 무심히 방청석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전 재산을 사기당했다”면서 난동을 피우던 남자였다. 그는 변호사들에게 온갖 쌍욕을 퍼부어댔었다. 그의 적대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수십만의 적의가 호의로 바뀐 기적이 벌어졌다.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하니까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게 아닌 것 같자 군중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죽이겠다”고 덤벼들었다. 그가 다시 돈을 갚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다시 변했다. 욕심에 눈이 먼 피해자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피해자들을 대표하는 업무를 맡은 변호사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오늘 틀림없이 變數(변수)가 있겠죠?”
‘사기꾼으로 몰린 회장이 무죄로 석방되겠느냐’는 얘기였다.
“어떻게 시위대의 태도가 이렇게 바뀌었죠?”
내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하루 전만 해도 플래카드가 난무하고 꽹과리 소리가 요란했었다.
“어제 회장이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각서를 다 써줬어요. 합의가 된 거죠. 이제 석방되어 의무 이행만 하면 됩니다.”
“이행할 의사나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회장은 충분히 그럴 의사나 능력이 있다’고 모든 피해 회원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기꾼이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이 고의적으로 거짓을 했을 때 사기죄는 성립한다.
“시간적·인간적 한계 속에서 재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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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단계업체 ○○그룹 회원들이 법원 앞 도로를 점거하고 ‘영업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
“법정 안에 기자 분들 계십니까?”
재판장이 방청석을 둘러보며 물었다. 구석에 서 있던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판사실에 보도 자료가 있습니다. 그 자료 중 27쪽과 55쪽의 내용들이 판결문의 핵심입니다.”
언론에 대한 처리였다.
“피고인 나오세요.”
재판장이 교도관에게 명령했다. 잠시 후 벽 쪽의 문이 열리면서 백발에 파란 재소자복을 입은 회장이 걸어 나왔다. 백지장같이 하얗게 바랜 얼굴이었다. 재판장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시선과 시선이 부딪치고 있었다.
“지금 심경이 어때요?”
재판장은 뜸을 들이는 것 같았다.
“….”
회장은 침묵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재판장은 다시 방청석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먼저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재판을 많이 해 봤지만 이렇게 진지하고 열정적인 재판 과정은 못 봤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검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잘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변호인들 역시 성의가 대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방청객 여러분께서 협조해 주셔서 재판부로서는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이 민감하게 그 말을 분석하는 표정이었다. 검사를 칭찬하면 형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았다. 그런데 변호사도 똑같이 배려하고 있었다. 재판장이 다시 피고인인 회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물었다.
“좀더 재판을 하자고 연기신청서를 내셨는데 그 취지가 뭡니까?”
“아직 충분히 審理(심리)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저하고 같이 있는 회사 임원이었던 다른 사람들은 법정에서조차 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1심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억울한 점도 많고 할 말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됩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재판장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이란 시간적 한계 속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장인 저 역시 시간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한계 속에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재판장이 매끄럽게 법원의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에는 재판장이 방청석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방청석에 나와 계시는 피해자 여러분들은 그동안 모두 피고인을 엄벌해 달라고 진정하셨던 분들이죠? 그런데 여러분들 모두 태도가 바뀌셨더군요, 이제는 모두 회장님을 살려달라고 탄원을 하셨더군요.”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재판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러분은 회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지 않았나요? 그러다가 황금알이 나오지 않자 구속과 엄벌을 요구했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그 속의 알을 꺼내려고 고소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법정바닥에 신문지까지 깔고 앉아 거위가 죽어가는 걸 보려고 여태까지 기다려왔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이 시각에는 모든 분이 회장을 용서해 달라고 하네요. 재판부에서는 여러분이 탄원한 내용을 세심하게 보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회장을 다시 바깥세상으로 내보내 계속 황금알을 낳도록 하자’는 게 여러분의 뜻이라 재판부는 해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판사들이 여기 법정에 나오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양의 탄원서가 재판부에 더 밀려들어오더군요.”
사람들은 올렸다 내렸다 이리저리 치는 재판장의 속뜻을 파악하려고 민감하게 신경을 쓰는 표정이었다. 재판장의 말 속에는 이해관계에 의해 손바닥을 뒤집는 경박한 인간성에 대한 질책이 배어 있었다. 재판장이 계속했다.
“재판장인 저는 여러분의 회장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나쁜 사기꾼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법적 판단 이전에 재판장이 인간적 시각에서 본 회장에 대한 평가였다. 판사가 ‘너는 진짜 나쁜 놈은 아니야’라는 그 한마디만 있어도 큰 위로였다. 재판장이 계속했다.
피고인에서 인간으로
“세상에서는 회장인 피고인을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판장인 저는 피고인이 그렇게 매도당할 만한 영악한 사기꾼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앞에 선 피고인의 내면의 본질을 봤다는 얘기였다.
“모든 걸 善意(선의)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사기꾼들은 이익을 챙겨 빠져나갈 줄을 압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사기꾼하고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密航(밀항)을 하려 했다고 하고, 재산을 은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재판부의 입장에서는 그런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따지고 보면 피해자들이라고 하시는 분들 역시 실질적인 피해가 없습니다. 일반적 기준으로 볼 때 사실 피해자가 아닌 거죠. 저희 재판부는 그 동안의 기록을 읽어보니까 피고인의 얘기가 맞는 점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검찰의 덮어씌우기에 대한 법원의 통박이었다. 재판장은 잠시 침묵하다가 논점의 방향을 사건 쪽으로 돌렸다.
“다단계사업 회장인 피고인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창조한 세계 최초의 마케팅 방법으로 사업을 벌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들었다는 마케팅에 대한 수학적, 통계학적 근거까지는 준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가 보기에 피고인이 구상했다는 그 마케팅은 높은 빌딩을 새로운 工法(공법)으로 설계하면서 수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단계 영업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피고인을 황금을 만드는 ‘미다스의 손’쯤으로 여기고, 그가 짓고 있는 빌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빌딩 건물은 점점 더 높이 구름을 향해 솟아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수학적 근거가 없는 빌딩은 고층건물이 되자 어느 순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피고인은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괜찮겠지, 괜찮겠지’하고 사람들을 계속 건물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물론 회장이었던 피고인은 사람들에게 투기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초콜릿 맛을 들인 어린아이에게 ‘한 개만 먹고 그만둬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저는 봅니다. 이미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막 먹고 있었죠,
피고인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구름 위까지 높이 치솟은 건물에 균열이 나고 결국 회장인 피고인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붕괴되었습니다. 말을 압축하면 실패한 경영자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윤 범위 내에서 수당을 줘야 하는데 그걸 넘어서 너무 많이 줘 버린 겁니다.”
재판장은 잠시 말을 중단하고 회장인 피고인을 내려다 보았다.
“○○○씨!”
재판장이 갑자기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피고인에서 인간으로의 승격이었다.
“당신은 어떤 다른 걸 그렇게 열망했나요?”
보통 사기꾼 같으면 1000억원만 챙겨도 외국에 나가 평생 왕같이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인지가 사건의 실질적인 핵심이었다. 재판장은 그것까지 간파한 눈치였다.
“….”
재판장은 더 이상 피고인으로 그를 부르지 않았다.
“상식과 법률은 다르다”
“○○○씨의 열망을 저는 잘 모르겠지만 서민들은 퇴직금이나 전 재산을 털어 당신의 무너지는 건물에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무너질 순간 막차를 탄 게 서민인 그들입니다. 지금 당신은 서해안의 기름이 나오는 유전, 그리고 강화도나 제주도의 골프장을 말하면서 보상할 많은 財源(재원)이 있는 듯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건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피해가 너무 큽니다.”
재판장이 이번에는 방청석의 고소인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러분은 회장이 석방되면 받고 싶은 돈을 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죠? 재판부는 다단계 사업에서 그 황금알을 낳는 源泉(원천)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황우석의 줄기세포 같은 그런 가치창조가 아닙니다. 다단계 판매에서 받는 수당은 중간이윤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중간이윤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약속한 많은 돈을 주기 위해서는 또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돈을 내놓게 해야 합니다. 재판부로서는 여러분들의 욕심을 위해 또 다른 선량한 피해자들이 量産(양산)된다는 걸 알면서 굳이 여러분을 만족시켜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재판장은 서서히 법적 결론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반인의 상식과 법률은 다릅니다. 법은 未必的(미필적) 고의를 가진 것도 처벌하고 있습니다. 건물이 무너질 걸 알면서도 사람들을 끌어들인 점을 저는 사기의 미필적 고의로 보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막 들어오는 걸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것도 미약하지만 사기의 犯意(범의)라고 봅니다. 수학적·통계학적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것도 그렇게 간주합니다.
법적인 사기는 일반관념보다 광범위합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걸 중단하지 않고 용인한 그 자체가 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실질적인 이득을 본 사람도 법률적 측면에서는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상식과 법률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은 법이 무엇인가를 선언하고 있었다. 이해관계에 뭉쳐진 고소인과 피고인을 모두 비판하면서 법은 그런 것을 초월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이카루스의 날개
“다음은 여론에 대해 한마디하겠습니다.”
재판장이 화제를 돌렸다.
“지금 모든 언론매체는 피고인을 단군 이래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재판부는 여론에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되지만 여론을 무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고소를 했다가 탄원서를 낸 방청석의 여러분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고 싶지 않겠죠? 그 점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많은 일반 국민들은 그 거위를 죽이기를 차라리 원할 겁니다.”
어느새 재판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피고인!”
재판장이 그를 내려다보면서 무거운 어조로 불렀다. 그가 강한 눈빛으로 재판장을 올려다보았다.
“이카루스의 날개라고 압니까?”
재판장이 의미를 담은 어조로 물었다.
“….”
그는 말이 없었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올랐죠, 그러다가 태양근처에서 그 열 때문에 날개가 녹아 추락을 했습니다. 피고인도 이카루스같이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요?”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그의 열망의 정체가 수천억의 돈보다 더 추구했던 이카루스의 날개였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재판장으로서 당신에게 형을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됐습니다. 검사는 너무 형이 가볍다면서 無期(무기)징역에 처해달라고 항소했습니다. 변호인단에서는 무죄라고 하면서 ‘징역 12년은 이미 인생 50대를 넘어선 피고인의 나머지 인생을 모두 박탈하는 무거운 형’이라고 주장하면서 석방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 재판부는 유사한 다단계업체의 재판 결론 몇 개를 참고했습니다. 피고인이 하던 업체에 비해 피해액이 엄청나게 적은데도 징역 10년이 확정된 게 있습니다. 그걸 감안하면 피고인의 減刑(감형)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봤습니다. 동시에 검찰 측의 무기징역도 너무 무겁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 측이 못마땅해 하고 변호인 측이 허탈해 하더라도 우리 재판부는 1심에서 선고한 피고인에 대한 징역 12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들고 엄숙한 표정으로 낭독했다.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거대한 사건에 대한 프로급 노련한 판사의 선고 장면이었다. 판사의 명쾌한 선언 앞에서 시위대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인간이 무엇인지 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건의 본질이 어떤 건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법관으로서의 소신까지 표명한 최고의 법정이었다.
‘인간의 목소리’를 경청해주는 법관
법조계에서도 밀과 가라지는 구별되어야 한다. 모래와 금은 분리해야 한다. 자칫하면 모래만 남고 금만 쓸려나갈 위험성도 크다. 법관평가제가 거론된다. 법률지식이 법관의 다가 아니다. ‘혼자서 열심히 공부해 왔으니까 대우 받아야 한다’는 건 이미 지나간 사고방식이다. 판단의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들은 ‘인간의 소리’를 경청해 주는 법관이 좋다. 기록보다 마음을 읽어주는 법관을 더 사랑한다. 형식적인 법 논리에 매인 법관보다 같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판사여야 한다.
국민의 실생활과 동떨어진 판결을 골라 공개해야 한다. 같은 종류의 사건 판결문만 공개해도 前官(전관)예우는 쉽게 없앨 수 있다. 폐쇄적인 조직구조와 견제시스템 미비는 비리의 온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대만도 일본도 미국도 모두 법관에 대해 국민적 평가를 한다. 그건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더 살아있는 좋은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