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에게 영화는 글쓰기의 또 다른 원형
⊙ <말죽거리 잔혹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비열한 거리> 등 손대는 작품마다 히트
⊙ 그 동안 영화와 詩 사이를 수 차례 왕래
⊙ <쌍화점> 성공 이후 “사극은 절대로 안 한다” 선언
유하
⊙ 1963년 전북 고창 출생.
⊙ 세종대 영문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 석사.
⊙ <문예중앙>으로 등단. 동국대 영상정보통신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 역임.
⊙ 저서: 시집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천일馬화> 등 다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비열한 거리> <쌍화점> 등 연출.
⊙ 상훈: <문예중앙> 신인상, 금관영화제 금상, 동백영화제 대상, 김수영문학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감독상.
吳東振 D&D미디어 대표〈ohdjin@hanmail.net〉
⊙ 1964년 서울 출생.
⊙ 고려대 사학과 졸업.
⊙ 문화일보, 연합뉴스, YTN 문화부 기자, 취재부장, 편집위원, <씨네버스> 편집장 역임.
⊙ 現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 <프리미어> 편집위원, 외주제작사 D&D미디어 대표이사.
⊙ <말죽거리 잔혹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비열한 거리> 등 손대는 작품마다 히트
⊙ 그 동안 영화와 詩 사이를 수 차례 왕래
⊙ <쌍화점> 성공 이후 “사극은 절대로 안 한다” 선언
유하
⊙ 1963년 전북 고창 출생.
⊙ 세종대 영문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연극영화 석사.
⊙ <문예중앙>으로 등단. 동국대 영상정보통신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 역임.
⊙ 저서: 시집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천일馬화> 등 다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비열한 거리> <쌍화점> 등 연출.
⊙ 상훈: <문예중앙> 신인상, 금관영화제 금상, 동백영화제 대상, 김수영문학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감독상.
吳東振 D&D미디어 대표〈ohdjin@hanmail.net〉
⊙ 1964년 서울 출생.
⊙ 고려대 사학과 졸업.
⊙ 문화일보, 연합뉴스, YTN 문화부 기자,
⊙ 現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 <프리미어> 편집위원, 외주제작사 D&D미디어 대표이사.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그래서, 그가 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덩치가 큰 사람들은 눌변이기가 쉬우니까. 말보다는 힘과 욕망이 앞설 거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 하지만 유하는 생래적으로 달변이다. 아주 논리적이다. 얄밉도록 말을 잘한다. 그건 그 스스로도 인정하는데, 그는 그게 종종 영화감독으로서는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때론 이성보다는 직관이 더 빨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하는 늘 입 밖으로 말을 내뱉기 전에 머릿속에서 彫琢(조탁)부터 하는 사람이다. 그와의 대화에는 로버트 맥기와 수전 손탁의 글이 툭툭 인용된다. 예컨대 맥기의 말,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애쓰는 게 창조가 아니다. 상투의 세계에서 얼마나 신빙성 있게 창조하느냐가 문제다’ 같은 얘기가 그것이다.
그는 결코 말싸움에서 쉬운 상대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최근 400만 관객을 동원한 <쌍화점>에 대해 슬며시 시비를 걸었을 때 그는 여지없이 자신의 논거를 대며 상대의 이론을 제압한다.
―영화에서 섹스 신이 총 다섯 번인가 나온다. 다소 과잉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 섹스 신이 그랬다. 한쪽에서는 공민왕(주진모)이 신하들을 데리고 방마다 뒤지고 있었고, 두 남녀는 그때 정말 어디선가 열심히 ‘하고’ 있다. 영화는 공민왕과 두 남녀의 모습을 교차 편집한다. 심장소리 같은 음악소리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이윽고 공민왕이 문을 확 열어젖혔을 때 여자 몸 위에 올라가 있던 홍림(조인성)의 엉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제대로 현장을 들킨 것이다. 아 근데 그건 아니었다고 본다.
“그럼 어때야 됐는데?”
―빈방이었어야 했다.
“왜?!”
―그래야 서스펜스가 산다. 이 신에서는 두 남녀만 공민왕이 찾고 있다는 걸 모른다. 관객들은 모두 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걸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방문을 열었을 때 뒹굴고 있는 남녀가 없으면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런 게 히치콕이 얘기했던 서스펜스의 기본 아닐까.
“그러면 그 다음 신은 어떻게 처리해?”
―장면이 바뀌고 ‘현장’을 잡지 못한 공민왕이 홍림과 왕비를 추궁하면서 심증으로 밀어붙이는 게 더 그럴 듯하지 않았을까? 두 남녀의 육욕의 현장보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마음속 광풍이니까. 그게 더 공민왕을 못 견디게 만드는 것 아니었을까?
“당신이 모르는 게 있다. 심증만 가지고 홍림의 남성을 거세하는 건 무리라는 거다. 거세 장면이 나오려면 현장을 잡는 장면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논리적으로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다. 그게 없었으면 사람들이 공민왕이 홍림의 남성성을 없애는 걸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너무 비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공민왕은 그렇게라도 홍림을 옆에 두고 싶어 한 거니까. 봐라. 수많은 리플, 악플 가운데 거세 장면에 대해 당신처럼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만약 그 섹스 장면 없이 잘라 버렸으면 말들이 정말 많았을 거다.”
北北西의 진로에 서있는 남자
유하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많으면서도 적다. 누구라도, 처음엔 아주 많은 것처럼 느낀다. 그는 스타 시인이자 스타 영화감독이니까. 그랬기 때문에 유하에 대해 청탁을 받았을 때 별 망설임 없이 오케이를 했었다. 이 글의 시작처럼 188cm의 키부터 설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詩(시) 얘기를 해야지, 했다. 그 다음엔 영화 얘기로 옮기고, 자 그 다음엔 술 얘기? 상문고 얘기? 여자 얘기? 경마장 얘기? 섹스 얘기? 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물론 유하는 복잡한 사람이고, 머릿속에 온갖 상상을 다 담고 사는 사람이지만, 그는 그것을 결코 개인화한 영역으로 끌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는 상문고 출신이지만 그 당시의 일화를 여기저기 풀어놓은 적이 별로 없다. 그렇게 되면 <말죽거리 잔혹사>가 변방으로 밀리게 된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자신의 고교 이력은 이미 영화로 포장됐다. ‘그거면 된 것이다’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신이 아닌, 자신이 인위적으로 겹겹이 둘러쌓아 놓은 베일로 이해하기를 원한다. 그는 그래서 교묘하게 상업적이면서도 동시에 교묘하게 사변적이고 철학적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 이번의 <쌍화점>에 이르기까지 평균 300만 관객을 모은 흥행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화계 안쪽과 별로 섞이지 않는다. 그와 친하게 지낸다는 감독을 만나본 적이 없다.
흔히들 뉴코리안 시네마의 기수로 불리는 영화감독들은 그러지 않는다. 예컨대 朴贊郁(박찬욱)과 金知雲(김지운)은 서로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일착으로 영화를 보고 서로에게 문자를 보낸다. 문자 내용은 때론 낯간지러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고차원적으로 신랄할 때도 있다. 이현승 감독이 대표로 있는 ‘디렉터즈 컷’ 시상식에는 이름깨나 얻은 감독들이 늘 삼삼오오, 서로가 친한 척, 서로에게 질시의 눈치를 건네며 앉아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유하는 그런 자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영화계에서 여전히 아웃사이더이며 이방인이다.

영화판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감독
아마도 그건 그의 ‘독립군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영화가 순혈주의적 예술성을 지녀야 한다는 데도 반대하지만 지나치게 ‘싼 티’나는 것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인물이다. 자신은 매우 하이브로(highbrow)해도 영화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로 잘난 척하는 사람도 싫어하지만, 영화로 오로지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싫어한다. 유하가 영화판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그곳에서 쉽게 자신과 같은 중간형 혹은 경계형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영화계의 境界人(경계인)이다.
<쌍화점>의 두 히어로인 조인성과 주진모의 배우 평에 대해서도 그는 경계와 역설의 논거를 대며 조인성을 두둔한다.
―이번 영화로 조인성은 내려가고 주진모가 올라갔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아니다. 주진모도 올라가고 조인성은 더 올라갔다.”
―조인성의 이번 연기에 대해 호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특히 이번과 같은 사극에서 그가 보여준 딕션(diction·화법)은 어울리지 않았다는 얘기가 많다.
“우리나라 배우들만큼 CF가 중요한 사람들도 없다. 영화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CF 섭외가 쏟아지기도 하고,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이번 영화에서 조인성은 용감하게 섹스 신 연기를 했다. 그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했다는 의미다. 그런 측면을 지지해 줘야 한다. 사람들이 배우들에게 쉽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지만 스스로 자기 것을 버릴 줄 아는 측면을 진정으로 존중해 줘야 한다. 그래야 다른 연기자들도 따라온다. 감독이 하고 싶지만 배우나 매니지먼트가 주저해서 못하게 되는 표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비평이 배우에 대해 주목해 줘야 하는 그런 부분이다. 연기의 미학은 어쩌면 그 다음이다.”
―아마도 올 한 해 시상식에서 주목 받는 연기자는 주진모가 될 것이다.
“아마 안타깝게도 그럴 것이다. 주진모에 대해 나는 편견이 없다. 그는 좋은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훌륭하게 해줬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 하지만 내가 영화상 심사위원이라면 조인성을 많이 배려했을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둘 다에게 줬든지.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관객과 비평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는 법이다.”
386세대에 대한 오마주
돌이켜 보면 그의 이번 영화 <쌍화점>은 역설의 모멘텀을 많이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잘 들여다보면 그게 보인다. 公的(공적)인 인터뷰에서 그는 늘 이 영화를 두고 섹스를 화두로 내세운다. 다소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뭐, 한번 끝까지 가보려고 했어요” 따위의 말을 내뱉는다. 그럴 때는 꼭 기자들을 향해 ‘(당신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투로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 감독이 새로 만든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이럴 때는 꼭 유하가 홍상수 식의 ‘젠체함’이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 어쨌든 <쌍화점>은 그의 어색한 웃음이 보여주듯 진한 섹스 장면만으로 채워져 있는 영화가 아니다. <쌍화점>에는 386세대에 대한 비통함과 애상, 냉소와 비판, 그 우울함 같은 것이 몽땅 담겨 있다.
<쌍화점>에서 제일 좋은 장면은 마지막에 있다. 끝간 데 없이 난투극을 벌이던 공민왕과 홍림은 서로의 가슴과 배에 칼을 꽂는다. 공민왕이 울부짖는다.
“너는 나를 한번이라도 사랑한 적이 있느냐?”
그 대사를 보면서 사람들은 홍림이 주욱 눈물을 흘리며 나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노라고, 그런데 나한테 왜 이러느냐고,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느냐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홍림은 이를 악무는 표정으로 (가슴에 꽂힌 칼이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박박댄다.
“그러하오. 나는 당신을 한번도, 진정코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
<쌍화점>의 비극은 관계의 종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否定(부정)에서 찾아진다. 공민왕은 고려시대 말기 우왕과 창왕의 선대왕으로서 개혁의 기치를 내세웠던 인물이다. 21년간의 재위 초반 그는 시대와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장 퇴폐적인 인물로 변질됐다. 그의 혁명은 치정으로 변했다.
홍림은 아마도 고려시대의 386이었을 것이다. 공민왕과 같은 지도자와 함께 親元派(친원파)든 親明派(친명파)든 모두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대의 정치세력화를 꾀했을 것이다. 하지만 홍림 역시 치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쌍화점이 냉소적인 이유
<쌍화점>에서 유하가 은유하려 했던 것은 시대의 변질을 초래케 한 관계의 부정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前(전) 개혁파들이 서로의 관계를 부정하고 파당과 무리를 지은 채 이전투구 식으로 싸우고 있다. 그 사람들도 서로의 가슴과 배에 칼을 꽂고 물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 한때 사랑했던(혁명했던) 사람들인가?”
그러면 또 서로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한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노라고.
유하가 부르는 구전가요 ‘쌍화점’이 이상하게도 냉소적이고 우울한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이 영화를 보면서 홍림과 왕비가 나누는 섹스의 체위만을 가지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解讀(해독)은 유하의 시를 알면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그가 시인을 포기하고 영화감독으로 나서게 된 인생 과정을 잘 모르는 데서 나오는 해석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어느 정도 논쟁이 가능한 얘기다.
2000년 말, 그러니까 그가 2002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성공한 후 전업 영화감독으로 나서기 직전에 발표했던 시집 <천일馬화>에는 이런 시가 나온다.
<하루아침에 주사파는 서태지를 따라 부르는 래퍼가 되고, NLPDR은 방송국 PD가 된다./ 난 민중도 싫고 대중도 싫다. 은유가 억압받던 시절은 지났다./ 그러므로 은유는 힘을 잃었다./ 나는 톡 까놓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조국은 없다. 내 방이 나의 국가일 뿐이다./ 세상이 나보고 선보라 한다. 친구여, 내 인생의 과정을 경마 중계식으로 보도하지 말라./ 나의 삶은 모라토리엄 상태에 빠졌다. 어느 날 난 내 기억 속의 여자들로부터 정리해고당할 것이다./ 청춘의 한 시절 거대한 꿈을 베팅했었다. 이젠 본전 생각이 난다. 갬블러란 고독한 것이다.> (천일馬화-걸리버 여행기 中)
시에서 그는 더 이상의 은유는 없다고 했다. 은유 대신 직설을 선택할 것이며, 더 이상 빙빙 돌려 세상을 해석하거나 그렇게 해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이 시대에 시인이 할 역할은 없다고 했다. 어쩌면 아마도 그래서 그는 영화감독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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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30일 개봉한 영화 <쌍화점>은 2월 10일 현재 관객 동원 400만명을 돌파했다. |
은유에서 은유로 돌아오다
이 시 이후, 그러니까 그가 은유를 걷어치운 후 그는 한번 영화감독에 재도전했고 멋있게 성공했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제목처럼 은유가 없고 直說(직설)만 있으며 사랑은 없고 섹스만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세상은 정말 은유가 사라진 산문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이번 영화 <쌍화점>도 정치니, 시대니, 386이니, 개뼈다귀니 하는 얘기는 걷어치운 채 흠칫 놀라게 하는 홍림과 왕비의 69체위만을 생각하면 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혁명에서 치정으로 변질된 관계라니, 세상사 늘 오버는 금물이라는 얘기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집 <천일馬화>는 유하가 은유에서 다른 은유로, 제1 은하계에서 제2 은하계로 공간이동을 하겠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에게 영화란 시를 창작하는 또 다른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작품 연보로 볼 때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그리고 <쌍화점>은 동일 선상에서 파악되기 힘든 작품이다. 중간에 있는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는 그럴 수 있다. 좀 그럴듯하게 갖다 붙이자면 <말죽거리 잔혹사>가 우리 시대에 조폭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는가(억압된 사회 현실 속의 공교육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를 얘기했다면 <비열한 거리>는 그 조폭이 어떻게 기능하고 소비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하가 영화로 얘기하고 싶은 것이 ‘조폭의 세계’ 혹은 ‘조폭’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천박성일까. 그게 유하의 작품에 관통하고 있는 중심 화두일까.
유하의 영화에서 일관되게 느껴지는 것은 ‘욕망’이다. 혹은 ‘욕망으로 허기진 배’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부터 조폭 영화 2편, 사극의 껍데기를 쓰는 척한 이번 영화 <쌍화점>에서 그가 얘기하려는 것은 모두 욕망에 대한 것이다.
관습과 통념의 행태를 꼬집다
그는 사람들이 욕망을 이성적으로(현실에서가 아닌 문학과 영화 등을 통한 대리체험을 통해) 채울 수 없을 때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에서 시와 영화, 예술이 나온다고 본다.
어느 글에서인가 유하는 필름 누아르에 대한 단상을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전략)… 죽음과 같은 고통으로 저만치 깔깔대는 요부의 관능성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소 안락하고 다소 지리멸렬한 아내의 일상으로 귀환할 것인가. 하나 후자의 선택은 내겐 시 쓰기의 종말을 의미한다. 필름 누아르가 요부의 깔깔거림 덕택에 내러티브의 서스펜스를 이어가듯, 나의 시 쓰기 역시도 해피 엔딩의 지속적인 유보를 통해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얻는다…(중략)… 나는 여전히 관능의 사막을 떠돌고 있고, 욕망은 텅 빈 배를 움켜쥐고 있다. 나에게 시란, 그 텅 빈 욕망의 주머니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 같은 것이다….(후략)>
시인이자 감독인 유하는 자신이 욕망의 똥 덩어리의 소유자임을 진정으로 자각하는 인물이다. 세상은 끝없는 욕망의 변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것은 좌파든 우파든, 그 어느 쪽 이데올로기든 어쩌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꼭 나뉜다.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좌파식으로 혹은 우파식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 줄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기 식으로들 욕망을 재단하려 한다. 어떤 이즘(ism)을 내세우지 않은 채 그가 좌우합작, 國共(국공)합작의 세상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은 바로 영화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2000년대를 시작하는 초입부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그 리얼함 때문이다. 영화 거의 전편 동안 내리 진한 섹스를 보여주는 두 남녀는 그래서 결국 연애에 성공하고 결혼에 골인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여자 연희(엄정화)가 결혼 후에도 혼자 살고 있는 연인 준영(감우성)의 집을 찾아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키스하고,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희를 보면서 준영은 종종 혼란을 느끼지만 연희는 생글생글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애쓴다. 연희의 표정에는 욕망은 욕망일 뿐이며 준영 너만큼은 자신의 욕망을 자꾸 어쩌려고 하지 말라는 부탁이 담겨 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욕망의 통합을 통해 세상을 화합시키려는 유하의 판타지가 잔뜩 담겨 있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종종 파격적이라고 생각하고 아나키스트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그의 영화도 때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영화 속 준영과 연희처럼 세상 사람들도 싸움 대신 섹스를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맞다. 섹스는 미친 짓이 아니라 결혼이 미친 짓일 뿐이다. 관습과 통념의 행태들이 미친 짓이다.
영화와 詩 사이를 왕래
유하를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그의 ‘공간이동’을 이해해야 한다. 그의 노마드적 습성을 이해해야 한다. 시가 됐든, 영화가 됐든 그가 창출하는 미학은 삶의 공간을 의도적으로 옮겨 다니며 겪었던 체험에서 얻어진다.
시를 쓰면서 그는 압구정동부터 세운상가, 경마장을 다녔다. 1989년 <武林일기>로 등단, 1991년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1995년에는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과 1999년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를, 그리고 2000년에는 <천일馬화>가 그의 끊임없는 방황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역마살은 영화와 시를 줄곧 오갔다는 데서 찾아진다. 시인으로 스타가 됐던 탓에 그의 영화 이력은 시 다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1963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그가 처음 세상과 만난 것은 책세상이 아니라 고창극장이란 동시상영관이었다.
그건 1991년 시집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가 대박 흥행이 나고, 그 여세를 몰아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처절하게 깨진 후 조용히 시단에 물러앉아 쓴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당시 툭하면 영화 제목이나 자신이 어린 시절 흠모했던 여배우 이름으로 시를 썼다. ‘문희-고창극장을 추억함’을 읽고 있으면 마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전설적인 명화 <시네마 천국>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문희가 늘 극장의 푸른 스크린 뒤에 살고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둥근 눈물 방울을 하염없이 닦으며/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문희가 낳은 문희의 그림자가 저 극장을 데리고/ 삶의 심심함 속을 환하게 거닐 것이라고, 그녀의 눈물로/ 어둠을 깨어나 우린 거기에 기꺼이 갇힐 것이라고.>
‘드루 배리모어,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시는 그의 시적 영감의 뿌리가 어디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야 할리우드 키드였으므로, 할리우드 여배우 이름이나 외우며 사춘기의 전부를 허비했지 저수지의 개, 같은 날들이라고 비웃지 말게 난 모든 종류의 진지함을 경멸했어, 그게 나의 호환이고 마마야 과연, 이름 속에 갇혀 있는 게 진리일까?>
첫 영화 처참한 실패
그는 딱, 安正孝(안정효)씨가 창조해 낸 ‘할리우드 키드’의 모습 그대로였다. 세종대 영문과에 들어갔던 그가 제일 처음 한 것도 시를 쓴 것이 아니라 8mm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그와 함께 단편 <게으름의 찬양>을 만든 이들이 바로 김성수와 안판석이다. 김성수는 이후 <비트>와 <무사> <중천>을 만든 유명감독이 됐고, 안판석은 드라마 <하얀 거탑>이나 <비밀의 화원>을 만든 TV 연출자이자 제작자가 됐다.
할리우드 키드였던 유하가 세상에서 이름을 얻은 것은 영화가 아니라 시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시로 1차 이동. 하지만 유하는 1993년 다시 시에서 영화로 2차 공간이동을 감행한다. 그러나 안정효의 글을 거쳐 鄭智泳(정지영) 감독이 만든 동명영화의 주인공처럼 할리우드 키드 유하는 정말 영화로 망했다. 1993년 자신의 동명시집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는 대중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영화에서 시로 3차 공간이동. 영화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1993년부터 2001년까지의 치열한 詩作(시작)은 없었을지 모른다.
영화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유하 스스로조차 폐기처분하고 싶어 하는 작품이다. 같은 제목의 시집을 통해서는 스타 시인이 되고 ‘21세기 전망’의 핵심 동인으로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던 것과는 달리 영화는 대중적 평가에서 바닥을 기었다. 시를 통해 보여줬던 키치적 감성과 反(반)키치적 경향의 동시성, 곧 ‘이름 속에 갇히지 않은 채’ 밑바닥부터 진리를 깨달으려 했던 치열한 정신은 영화 속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메이저 영화사 가운데 하나였던 郭貞煥(곽정환) 사장의 합동영화사(現 종로3가 서울극장이 운영했던 제작사)를 유하가 어떻게 설득해 제작비를 받아냈을까가 신기할 정도다. 시인의 감독 데뷔라는 게 먹힐 거라는 환상이 떠돌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압구정동이란 단어가 젊은 관객층을 유인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이름 속에 갇혔던’ 셈이 된다.
영화는 유하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그대로 옮긴 내용이다. 시인이자 8mm 영화를 습작하며 싸구려 무협소설로 살아가는 청년 영훈(최민수)이 주인공이다. 그는 고향인 ‘하나대’를 그리면서도 압구정동 문화에 빠져 살아가는 이중인격의 예술가다. 영훈이 지금 하는 일은 8mm 소형영화를 만드는 일. 그 일을 위해 주연 여배우를 찾던 영훈은 사촌동생의 소개로 알게 된 혜진(엄정화)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지만 혜진은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밀어 주는 CF감독 박도훈(홍학표)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마지막 장면은 영훈이 자신이 준비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찢어버리고 고향인 하나대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유하는 첫 영화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데뷔작이 어떤 운명을 겪을지를 예상했던 것처럼 보인다.
시를 통해 잠행을 거듭하던 유하가 2002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거의 10년 만에 영화에 화려하게 복귀하기까지는 제작자 車勝宰(차승재)의 힘이 컸다. 차승재와 유하의 연결 고리에는 김성수가 있다. 차승재와 김성수 감독은 지금까지도 형, 동생 하는 관계로 두 사람은 <비트>와 <무사>를 함께 만들었다.
차승재는 어느 날 유하에게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시나리오를 넘기며 “이건 독신생활을 가장 오래 한 너밖에 만들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2002년은 제작자 차승재가 <살인의 추억> 등을 만들기 직전으로, 프로듀서로서의 感(감)이 최고였던 시절이다. 그는 유하를 제대로 알아봤다. 유하는 이 영화로 다시 한번 삶의 공간을 이동시킨다. 그때부터 그는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이 아니라 충무로로 가기 시작했다. 충무로야말로 그의 정신적 고향이자 그의 미학의 원천이다. 그는 그곳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대한민국 교육, 다 ×까라 그래”
유하는 그리 두텁지 않은 필모그래피를 통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힘을 선보여 온 인물이다. 그의 영화에서는 洪尙秀(홍상수) 식의 비루함과 박찬욱 식의 부조리함, 許秦豪(허진호) 식의 따뜻함과 金基德(김기덕) 식의 저돌스러움이 고르게 느껴진다. 유하의 영화는 그래서 그들보다 앞서있는 듯 앞서있지 않아 보인다. 의도적인 沒(몰)개성과 잡학스러움은 그의 영화를 늘 흥행타율이 높은 웰 메이드(well-made) 상업영화쯤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하의 영화엔 늘 그 이상이 담겨 있다. 그의 영화는 마지막 악센트가 유독 강하며, 상업영화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마지막 방점을 찍는 데에 주력한다. 거기엔 세상에 대한 신선한 충격요법이 담겨 있다. 유하 영화의 승부수는 늘 거기에서 찾아진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속마음에 용암을 끓이며 살아가는 범생이 현수(권상우)는 학교 짱인 종혁(이종혁)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학교 건물 옥상에서 벌어진 둘 사이의 혈투는 이소룡을 우상으로 살아가던 세대의 ‘맞짱’답게 주고받는 합에 멋이 들어간다. 종혁과의 일 대 일 싸움에서 종혁 일당과의 多(다) 대 일 싸움까지 비교적 승세를 굳힌 후 피와 먼지로 범벅이 돼 교실 복도를 걸어가는 현수에게 교련 선생이 뒤에서 거기 서라고 위협한다. 그에 아랑곳없이 복도 유리창을 박살낸 현수가 선생을 향해 돌아서며 울부짖는다.
“대한민국 교육, 다 ×까라 그래!”
이 마지막 대사는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의 제목을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한국의 교육문제를 얘기할 때 종종 거론되게 하는 상징어로 만들었다. 마지막 대사는 한국 공교육에 대한 지식인의 분노를 가장 저열하고 천박하게 표현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의 교육문제가 얼마나 천박한가를 드러내는데 유효한 방식이 됐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요 공간이 됐던 정문고등학교는 유하가 나온 서울 서초구 방배동 상문고등학교의 이름을 슬쩍 비튼 것이다. 상문고 문제는 비리 사학의 전형적인 사례로 기록되고 있으며, 유하는 그 같은 부정과 불의의 정점에서 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양재동이라 이름 붙여진 말죽거리(그가 학교를 다녔던 1978~1981년까지 비가 오면 진창이 될 만큼 개발이 덜된 곳이었지만 지금은 주변에 타워팰리스가 들어설 만큼 최대 부촌으로 바뀌었다. 유하가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에서 288번을 타고 학교를 다니며 영화 속 여주인공 강은주(한가인) 같은 여학생을 만나기도 했다(당시 유하가 타고 다녔던 버스 노선엔 상문 외에 주변의 여고인 은광고와 경복여상이 있었으며, 종종 이들 학생 사이에 벌어지는 성희롱 사건이 말죽거리의 이슈가 되곤 했다. 남학생들이 버스 안 손잡이에 콘돔을 줄줄이 걸어 놓는 것 정도는 귀여운 사건에 속했다).
“이제 史劇은 절대로 안 한다”
유하 역시 주인공 현수처럼 이소룡에 미쳐 살았다. 그건 그가 1995년에 발표한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밝히기를 극력 꺼리지만 유하 역시 고교를 다닐 당시 패싸움에 꽤나 얽혀 들어갔던 듯싶다. 하지만 당시 상문고에서는 퇴학과 정학이 밥 먹듯이 벌어지고 군부독재적 분위기(상문고는 당시 교련과 체육교사가 들고 다니는 알루미늄 배트로 지배됐다)의 학교와, 무엇보다 강남 猝富(졸부)들이었던 부모들이 학교 공교육보다는 막대한 비용의 사교육을 선호하느라 자퇴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탓에 유하의 굴곡진 고교시절도 그리 내세울 것은 못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유하는 가장 천박했던 시절에 가장 천박한 학교를 다녔으며, 그래서 몸에 밴 그 천박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때론 스스로가 천박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열한 거리>에서 주인공 병두(조인성)는 흥이 나면 고속버스에서나 나올 법한 트로트를 불러대는 3류 조폭이다. 1류는 아니지만 2류쯤으로는 올라서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그는 결국 대리 살인을 저지른다. 하지만 그 살인극이 이상한 경로를 통해 영화로 만들어지고, 결국 그가 그토록 열과 성을 바쳤던 조폭 세계에서 제거돼야 할 운명에 처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후배들, 부하들에 의해 ‘칼침’을 맞고 쓰러지면서 마치 물고기가 물 밖에 나와 그러는 것처럼 펄떡대며 죽는다(이때 조인성은 정말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눈을 껌벅대며 연기한다). 병두가 마지막으로 흘리는 말은 “왜 나한테 이런 짓을…”이다. 하지만 병두가 몰랐던 것은 이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과 같은 3류가 대리전을 치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싸움, 곧 勞資(노자) 모순이 격화돼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3류 조폭과 2류 조폭처럼 철저하게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처절하게 죽고 죽이는 싸움, 곧 勞勞(노노) 모순으로 유지된다. 유하는 <비열한 거리>에서 그려지는 병두의 최후를 통해 이 사회가 영원히 비열한 거리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세운다.
<비열한 거리>를 위해 유하는 실제로 수많은 ‘똘마니’들을 만났다. 거기도 사람 사는 세상인지라 그리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지만 그 중에서 만난 진짜 ‘쌈마이’ 조폭이 영화처럼 남을 대신해 살인을 저지른 후 감옥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은 후에는 여전히 속이 편치 못하다.
―당신은 어떤 감독인가? 당신에게서는 묘하게도 다른 감독들과의 연대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마치… 내게는 손탁이 얘기한 대로 캠프적 감수성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박찬욱 감독이나 그쪽 부류는 그게 강하다. B급 영화(진부한 통속성, 저예산 등으로 만든 영화로 공포나 폭력성이 강한 영화―편집자 주)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스타일에 대한 천착이 두드러진다. 그들에게서는 자기들만이 향유하는, 자기들만이 터득한 영화 즐기기가 있고, 그것이 그들의 개성이 됐다. 캠프적 감수성을 공유하기엔 영화 쪽에 동호회가 내겐 없다. 애초부터 나의 同人(동인)은 시 그룹과 문단에서 만들어졌다. 아마도 그래서 그럴 것이다.”
―그래도 영화는 시와는 달리 집단 창작의 행위다.
“내게 있어서는 다르다. 영화란 내겐 시 쓰기의 또 다른 원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전히 홀로 시를 쓰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관객과 시의 독자는 동일인들이다. 내 영화가 시각적으로 별로 멋을 부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영화판에서 별로 남아있지 않은 스토리 텔러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 어떤 세상을 원하고, 또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인가.
“계획하지 않는 삶. 무식하지 않은 세상. 좌가 됐든 우가 됐든 뭘 제대로 알고 운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 그리고 또 뭐라고? 다음 영화에 대해서 묻는 건가? 지금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다만 이제 史劇(사극)은 절대로 안 한다는 것이다.”
―왜?
“정말 너무도 힘들었으니까. 이 지옥을 다시 한 번 겪으라고? 그건 정말 안 될 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내
간간이 유하는 그의 정신적 자궁인 압구정동에 들를 것이다. 그가 읊었던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묘하게도 여전히 현재성을 지닌 채 사람들의 마음을 뒤집는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었다.
<산다는 일이 뾰족한 일이 있으랴 넥타이 매고/ 소주잔 돌리며 지글지글 삼겹살이나 뒤집는 일 외에 뾰족한 일 찾으려다, 노충량이는 빵에 갔고/ 난 누에 같은 시인이 되었다. 참누에는 기어이 뽕 먹고 살지//언어의 뽕잎 갉아먹으며 내가 황홀해지는 시 한편 쓰고 싶었다//악마에게 몸을 팔아서라도 정말 내가 뿅 가는/ 시 한편 쓰고 싶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자신의 데뷔작을 제대로 리메이크하겠다며 나설지.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유하는 그런 사람이니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게 그의 진짜 매력이니까. 진정한 자유로움을 실천하는 사람이니까. 세상이 그런 그를 온전히 내버려두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