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묻지마 범죄의 심리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세상이 싫어져서, 아무 이유 없이 殺人 저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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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 하나 산다고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봐 찔렀다”(홍제동 묻지마 살인범인 金모씨)
⊙ “사는 게 힘들고 해서 징역을 가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동해시청 살인사건 피의자 崔모씨)
⊙ “아무 이유 없이 죽이려 했다”(강원도 양구 묻지마 살인범 李모씨)

張世璡 자유기고가〈sec@hanmail.net〉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유영철(마스크 쓴 사람). 그는 사이코 패스의 전형이다.
지난 10월 20일 아침 8시15분.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의 발화지점은 3층 B12호 정상진(30)씨의 방이었다. 정씨가 자신의 침대에 라이터용 휘발유 두 통을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5분 뒤 고시원에 연기가 차기 시작했고, 놀란 사람들이 뛰쳐나오며 아비규환이 됐다. 연기를 피해 밖으로 탈출하던 사람들은 3층 복도에서 헤드랜턴과 물안경을 착용한 정씨가 무차별적으로 휘두른 흉기에 난자당했다. 이어 정씨는 4층으로 올라가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여성들 방에 침입하여 4~5명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 사이렌 소리에 폭력을 멈춘 정씨는 4층 창고에 숨었다. 그리고 현장에 나타난 소방관에게 피해자 행세를 하며 고시원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의 옷차림과 행동을 수상히 여긴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의 무차별적 폭력에 의해 40~50대의 이주노동자 3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며칠 후 고시원 사건 현장을 찾아가 봤다. 4층은 火魔(화마)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투숙자의 탈출시도와 화재진압 과정에서 유리창이 파손돼 흉물스러웠다. 이 고시원은 침대만 가까스로 들여놓은 1평 남짓의 방이 3층 50개, 4층 35개로 다닥다닥 밀집한 벌집 같은 구조였다. 복도는 두 사람이 서로 비켜 가기도 빠듯할 정도로 좁았다.
 
  올해에만 이런 ‘묻지마 살인’ 사건이 세 차례나 더 있었다. 죽음까지 이르지 않아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중상을 입힌 ‘묻지마 폭력’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이전에 있었던 세 건의 ‘묻지마 살인’ 사건의 피의자들이 검거 후에 진술한 충격적인 발언과 그들이 빚어낸 참극을 되돌아봤다.
 
 
  죄의식 없는 칼부림
 
  “이유 없이 누군가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수퍼마켓에서 부엌칼을 구입했다. 처음엔 초등학교 수위를 죽이려고 따라갔는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쳐서 포기하고 근처를 지나던 다른 남자를 죽였다.”(홍제동 살인사건 피의자 金모씨)
 
  광복절인 8월 15일 오후 4시경.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초등학교 후문 앞에서 근처를 지나던 행인 吳(오)모(41)씨는 생면부지의 김모(25)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전문대 중퇴 후 5년여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으며, 그간 끈으로 할머니의 손발을 묶고, 여동생 목에 흉기로 상처를 내는 등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두 차례에 걸쳐 100일 이상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다. 피의자 김씨는 오씨를 살해한 후 집으로 돌아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씻어 보관하기도 했다.
 
  김씨의 범행은 지난 1990년대부터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ㆍひきこもり)’가 저지른 ‘묻지마 범죄’와 유사한 패턴이다.
 
  “세상이 싫어져 범행을 저질렀다. 사는 게 힘들고 해서 징역을 가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동해시청 살인사건 피의자 崔모씨)
 
  지난 7월 22일 오후 1시10분 무렵.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동해시청 민원실에 침입한 30대 남자 최모(36)씨가 흉기를 휘둘러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 점심시간이 막 끝나 어수선한 틈을 타 민원실에 침입한 최씨는 신문지에 싸 온 흉기를 꺼낸 후 “여기 있는 사람들이 공무원이냐”고 소리를 지르며 흉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오후 근무를 준비하던 고객봉사과의 南(남)모(여ㆍ37)씨가 표적이 되어 가슴과 머리를 흉기에 찔렸다. 이때 옆에서 이를 말리던 李(이)모(남ㆍ38)씨 역시 최씨가 내려치는 흉기에 찔려 팔목 여러 군데에 상처를 입었다.
 
  최씨는 사건 직후 민원실을 빠져나가다 동해시청 공무원들에게 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그는 경찰에게 “살기 힘들고 살기도 싫었다. 큰 건물이 시청이어서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 아무나 살해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최씨는 2년 전인 2006년 11월에 부산시 모 전자제품 대리점에 아무 이유 없이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지른 혐의(일반건조물 방화)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묻지마 범죄’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없다. 아무 이유 없이 죽이려 했다.”
 
  지난 4월 26일 오후 8시30분경. 강원도 양구읍 서천변 공원 산책로에서 운동을 하던 여고생 金(김)모(17)양이 얼굴과 등, 옆구리에 수십 차례 흉기에 찔린 채 살해당했다. 당시 김양은 학교 친구 한 명과 함께 공원에서 운동을 하던 중이었는데, 벤치에 앉아 있던 피의자 이모(36)씨가 흉기를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보고 놀라 도망을 쳤다. 그러나 김양은 이씨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었다.
 
  범행 30분 전 양구읍의 한 잡화점에서 범행에 사용할 흉기를 구입한 이씨는 곧바로 공원 산책로 벤치에 앉아 범행 대상을 물색하다 친구와 함께 운동을 하던 김양에게 위해를 가했다. 사건 현장에서 검거된 피의자 이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건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피 묻은 옷을 입은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이씨는 정신지체인으로 알려졌으며, 피해자 가족들은 이씨가 사건이 있기 이틀 전에도 동일 장소에서 부녀자를 상대로 범행을 시도하다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우발적 범죄가 늘고 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세 자매 피습사건’의 용의자 정남규(37)씨가 경찰의 현장확인을 끝내고 영등포 경찰서로 들어오고 있다.
  대검찰청이 2006년 발간한 <범죄분석>이라는 통계집에 따르면 1997년 우발적ㆍ현실불만 살인사건이 전체 살인사건의 34.8%였지만, 2006년에는 40.2%로 상승했다. 2006년 발생한 살인사건이 모두 1006건이었으므로 405건이나 된다. 2007년 10월 22일 대검찰청이 발행한 ‘2007 범죄분석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방화범 998명의 범행 동기를 분석한 결과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386건, ‘현실불만’이 108건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범행 당시 방화범의 정신 상태는 酒臭(주취ㆍ술에 취해 술 냄새를 풍기는 상황) 상태가 390건, 정신장애가 111건에 달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51%에 달했다. 방화범을 직업군으로 분류할 경우 무직자가 359명으로 가장 많았다. ‘묻지마 범죄’의 피의자 상당수도 무직자다.
 
  같은 통계집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현실불만형ㆍ우발적 범죄’ 건수는 무려 39만8913건으로, 2005년보다 3만6000건이나 늘었다고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朴亨敏(박형민) 박사는 논현동 고시원 방화사건과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들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막연히 ‘사회’라는 대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의자가 분노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또 자신의 어려움을 상의할 수 있는 상대가 없으며, 비뚤어진 성격으로 인해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묻지마 범죄’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두렵다. 대구 지하철 방화, 국보 1호 숭례문 방화 등도 ‘묻지마 살인’ 사건과 유사성을 보인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행의 동기는 막연한 증오심과 적개심이다. 특히 범죄를 일으키는 계층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숙자나 실업자, 重症(중증)의 정신질환자 등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분노 표출 방법은 상식을 뛰어넘는 극단을 달리기도 한다. 또 말 그대로 예측 불가능한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배가시킨다. 박형민 박사의 말이다.
 
  “묻지마 범죄자들이 택하는 가해 대상은 자기보다 더 약자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범죄자들도 사회 속에서 피해자들이긴 하지만 자기들보다 더 약자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지요.”
 
  이들은 용서 받을 수 없는 행위를 하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 비도덕적 인물들이다. 이들에겐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더욱 크게만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극악무도한지 깨닫거나 뉘우치지 않는다. 그들에겐 남 탓과 사회부조리 탓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고시원 殺人魔 정상진은 누구인가?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은 ‘묻지마 범죄’의 결정판이다. 피의자 정상진(30)씨는 묻지마 범죄자의 전형으로 갖추어야 할 여러 가지 징후들을 복합적으로 가진 인물이다.
 
  피의자 정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무직자였으며, 전과 8범에 은둔형 외톨이로서의 성향과 유영철로 대변되는 反(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전형인 사이코 패스의 성향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殺人魔(살인마) 정상진은 4남1녀 중 막내로 2002년 8월경 경남 합천에서 상경해 2003년부터 올 4월까지 서울 강남 및 경기 지역에서 식당 배달이나 주차요원으로 생활했다. 고시원이 있는 영동시장 근처에서 식당 일을 하던 그는 2008년 4월부터 일자리까지 잃고 일정한 직업 없이 고시원 4층에서 낮에는 자고, 밤에는 영동시장 주변을 배회하며 지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그는 향토예비군법 위반으로 벌금 150만원이 누적된 상태였고, 밀린 휴대전화 요금도 60만원 가량 되었으며, 고시원 월세 17만원도 내지 못해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또 앓고 있던 질병인 하지정맥류 수술비 300만원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영동시장 근처에서 그를 지켜본 박모(37)씨는 “직장생활에 성실하지도 못했고, 산만해서 근무 장소를 떠나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게다가 언행이 거칠어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씨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반말을 주로 써 주변 사람들이 기피했어요. 말을 받아 주면 앞뒤 맥락이 없는 다방면의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아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차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어요.”
 
 
  인형 뽑기 집착, 자살 시도 세 번
 
  對人(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그는 외톨이 생활을 했으며, 자신이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인형 뽑기와 로또 구입에 탕진했다고 한다. 그렇게 날린 돈이 줄잡아 1000만원이나 됐다고 한다.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않고 고시원에서 홀로 지낼 정도로 가족관계도 소원했다. 정씨에게는 세 명의 형과 누나 한 명이 있었지만 연락을 않고 지냈다.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강남경찰서 형사2팀 이용호 팀장은 그가 세 번의 자살시도를 했다고 전했다. 정씨의 진술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 신상을 비관해 두 번의 자살시도가 있었고, 서울로 상경하던 해에 먹고살기가 힘들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범행 직후 경찰이 입수한 일기장을 보면 범행을 각오한 내용도 적혀 있다. “사람들이 싫다. 이제는 마무리를 할 때가 됐다”라든가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잘못됐다. 몸과 두뇌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등의 비관적인 내용이 상당수 발견됐다고 한다.
 
  강남경찰서 이용호 팀장은 정씨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몇 가지 바로잡아 주었다.
 
  “그는 전과 8범으로 알려져 있는데 폭력이나 기타 전과는 아니고 향토예비군법 위반이 전부입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도 없었습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고 범죄를 모방했다는 언론의 보도는 앞서간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조사과정에서 그가 본 영화 중 한 편이었을 뿐입니다.”
 
 
  공공의 敵, 공공의 産物
 
지난 6월 8일 무차별 살인이 일어난 아키하바라 거리. 부상당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구급차가 출동했다. 사람들이 쓰러졌던 자리에는 신발만이 남았다.
  ‘묻지마 살인’은 말 그대로 “왜?”라고 물으면 “이래서”라는 이유가 불분명한 범죄다. 그래서 이유가 없는 것 같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나름 이유가 있는 범죄다. 당하는 상대(피해자)를 통해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금전도, 원한도 성폭행이나 기분 나빠서도 아니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국가나 사회, 가정에 경제적 이유 등으로 불만을 품고 있고, 그런 불만이 분출되는 순간 그 화풀이를 감당할 ‘불특정 다수’라는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운 나쁘게 ‘그 자리에 있게 된 사람’이다. 범죄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사회에 표출하는 그 과정에 말이다.
 
  ‘묻지마 살인’은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나는 범죄의 한 양태라는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도 있다.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상대방에 대한 열등감이 깊어지고 자신의 못남을 외부적 요인으로 돌리다 보니, 세상을 원망하고 이를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가 사회문제화된 일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흔히 ‘도리마(길거리의 악마)’라 불리는 ‘묻지마 살인’이 올해 들어 벌써 다섯 차례나 발생했다. 1998년 이후 10년 동안 발생한 이런 사건은 67건에 이른다. 2006년 4건, 2007년 8건이 발생했는데,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범인은 대체로 20~40대 남성으로, 反(반)사회적 태도, 가학적 성격, 어두운 가족사, 열등감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올해 범행을 저지른 사람 대부분이 실직자거나 신분이 불안한 파견사원이었다.
 
  지난 10월 1일 발생한 오사카 시내 DVD방 방화로 15명의 생명을 희생시킨 이는 40대의 무직 남성이었다. DVD방은 주로 성인물을 감상하는 곳이지만, 하룻밤 2000엔 이하로 이용할 수 있는 간이 숙박시설이라서 날품팔이 등 사회빈곤층이 주로 애용하는 곳이다. 용의자인 오가와 가즈히로(46)는 “세상 사는 것이 싫다”며 방화를 했다. 그는 다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된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사채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그에 앞서 지난 6월 9일에도 대낮에 20대 비정규직 남성이 도쿄의 전기전자 제품 밀집지역인 아키하바라의 ‘보행자 天國(천국)’을 트럭으로 돌진한 뒤 흉기를 마구 휘둘러 7명을 숨지게 하고 1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용의자는 사회부적응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 심한 고립감, 불우한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 속에서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다.
 
  이와 유사한 범죄는 7월 22일 도쿄의 한 서점에서도 발생했다. 파견사원으로 근무하는 33세의 한 남성이 서점 인근의 수퍼마켓에서 칼을 산 뒤 서점에 들어가 흉기를 휘둘러 22세 여대생을 살해하고 21세의 여성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사건의 용의자 역시 아키하바라에서 참극을 빚은 가토 도모히로(25)의 경우와 처지가 비슷했다.
 
 
  ‘묻지마 범죄’는 왜 일어날까
 
일본 전문가들은 게임중독도 일본의 ‘묻지마 살인’ 증가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일본 전문가들이 보는 일본의 ‘묻지마 살인’ 증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계약직 사원이 증가한 일본의 경제상황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불황으로 전통적인 연공임금, 종신고용, 기업별노조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고용에 관한 정부정책이 변화, 계약직 사원이 늘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의 통계로는 전체 노동자 3명 중 1명이 계약직 사원으로 집계됐다. 계약직 사원의 증가로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위험에 노출된 계층이 두껍게 형성됐다. 이로 인해 계층 간 위화감과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경제 빈곤층이 경쟁사회에서 소외됐고, 사회 불만세력을 등장시켰다. 그 불만이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일본 특유의 익명성과 타인에 대한 무관심도 ‘묻지마 범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셋째, 게임중독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6월 8일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의 범인은 남코에서 개발한 ‘테일즈 오브 데스티니’와 SCE의 ‘그란 투리스모’를 좋아하는 게임으로 꼽는 등 상당한 게임 마니아로 알려졌다. 특히 범행과정이나 모습이 최근 출시된 ‘그랜드 테프트오토 4’(편집자 주: 反사회적 내용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으며,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와 美 시민단체들이 비난할 정도로 폭력적인 게임)와 흡사하다고 한다.
 
  ‘묻지마 범죄’는 개인에게 일차적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국립서울병원 신경정신과 이정일 과장은 묻지마 범죄자가 배태되는 이유를 “기질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 고립된 환경에 있다 보면 사이코 패스나 反(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게 되는 수가 있다”며 묻지마 범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고립된 환경에 들어갔는데,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깁니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주위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왜곡된 판단을 하게 되죠. 경계심을 갖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벌어지는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기 시작하죠. 가상세계에 빠져 ‘저놈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가족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라며 자기 상황을 현실적으로 타개하기보다는 타인에게서 핑계를 찾으면서 고립됩니다.
 
  그러다 점점 분노가 커지고, 뚜렷한 상대가 없는 복수심으로 타오르면서 끔찍한 사건을 저지릅니다.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끔찍한 행동을 벌이냐’고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현실성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묻지마 범죄’를 얘기할 때 요즘 많이 거론되는 단어가 사이코 패스와 ‘은둔형 외톨이’다. ‘묻지마 살인’의 결정판인 고시원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정씨가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은둔형 외톨이’ VS ‘사이코 패스’
 
지난 10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논현동 방화 난동 사건 피의자 정상진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앞에는 피의자가 검거 당시 소지하고 있었던 회칼, 가스총 등 증거물들.
  지난 9월 17일 경북 구미의 한 수퍼마켓에서 벌어진 사건도 대표적인 ‘은둔형 외톨이’가 저지른 ‘묻지마 범죄’로 볼 수 있다. 당시 피의자 김모(여·26)씨는 새벽 시간에 자신의 원룸에서 조금 떨어진 수퍼에서 라면 하나를 샀다. 그러고 집으로 가서 흉기를 가져와 종업원인 이(56)씨를 10차례 이상을 찔러 전치 6주의 중상을 입혔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라면 하나 산다고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봐 찔렀다”며 범행 이유를 털어놨다.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대구의 한 보육원에서 성장한 김씨는 19세 이후 보육원에서 나와 독립한 뒤 대구의 한 부품공장에서 일했다. 올 2월 구미의 원룸 촌으로 이사했고, 5개월 간 공장을 다니다 범행 2개월 전 회사를 그만둔 뒤 원룸에서 TV를 보며 생활했다고 한다. 김씨는 사회로부터 고립된 상태에서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이유만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정으로 얽힌 인간관계는 사람의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막아 주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고립된 사람은 그런 브레이크가 없다. 국립서울병원의 이종일 과장의 말이다.
 
  “논현동 고시원 살인사건 용의자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그 순간에 걸려든 사람에게 쌓여 있던 분노를 표출한 케이스입니다. 김씨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묻지마 범죄자들의 경우 고립된 환경에서 분노조절 능력이 없습니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이들을 이끌어내 배려하고 재활하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쌓이는 분노를 풀 방법이 없는 것이죠.”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은둔형 외톨이’의 원조다.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히키코모리는 약 120만명으로 추산된다. 히키코모리는 ‘(특정 장소에)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를 명사화한 단어다. 주로 어려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산이나 시골에서 숨어 사는 정치인들에게 쓰이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6개월 이상 외출하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을 부르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히키코모리는 한때 무단결석을 하고 밤에만 외출하여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일본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지면서 성인들에게도 전염이 되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잃거나 취업에 실패한 젊은이들이 처지를 비관하여 사회생활을 거부한 채 방문을 걸어 잠그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커졌다.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는 시간이 갈수록 사회와 멀어진다. 적게는 몇 개월에서부터 많게는 몇 년 동안이나 자기만의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광장공포증이나 편집증, 햇빛혐오증 등을 보이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오랜 은둔으로 나타난 정신질환을 방치하다 보니 대체로 음울하고 말을 잘 하지 않으며 극단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한다.
 
  우리나라도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은둔형 외톨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부류는 온라인을 통한 사이버(가상)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현실세계의 일들을 귀찮아하고 싫증을 느낀다.
 
  우리나라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인터넷 중독’인데, 그중에서도 게임중독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지난해 조사한 게임중독 실태에 따르면 청소년의 14.4%, 성인의 6.5%가 중독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수백만명이 게임중독이거나, 중독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로 진행될 우려가 높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 패스들
 
손성은 정신과 전문의.
  형사정책연구원의 박형민 박사는 “‘묻지마 살인’이 표출적인 범죄라면, 사이코 패스 성향을 가진 연쇄살인은 ‘도구적인 범죄’”라며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고시원 살인사건처럼 대량 살인은 분노와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자기에게 해코지를 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향해 범죄를 저지릅니다.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충동적인 감각의 표출이죠. 연쇄살인은 도구적인 것인데 살인을 통해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살인의 쾌감이나 돈, 성적 만족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끔찍한 범죄로 세상을 뒤흔든 대형 범죄자들의 경우는 대부분 사이코 패스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견해다. 사이코 패스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규범이나 규칙, 약속 등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특정 계층만을 골라 살해한 연쇄살인마 유영철, 2년 동안 13명의 생명을 빼앗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린 연쇄살인마 정남규, 안양 어린이 살해 피의자 정모씨, 그리고 논현동 고시원 살인사건의 용의자 정상진이 모두 사이코 패스로 판명되거나 짐작된다.
 
  사이코 패스는 겉은 멀쩡하면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反사회적 인격장애자를 일컫는 말이다. 1920년대에 독일의 학자 슈나이더에 의해 개념이 처음 소개됐다. 사이코 패스의 정신병질은 내부에 잠재돼 있다가 범행을 통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힘들다.
 
  정신과 전문의인 손성은 ‘생각과 느낌’ 원장은 “감정 읽기가 되지 않는 부류로, 묻지마 범죄자들이 사이코 패스일 확률이 높다”며 사이코 패스를 이렇게 정의했다.
 
  “대표적인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이나 정남규는 사이코 패스입니다.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의 경우 영화를 보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과, 흉기나 범행에 쓸 도구들을 오래 전에 준비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사이코 패스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동해시청 살인사건이나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은 사이코 패스와 좀 다른 것 같아요.
 
  사이코 패스는 보통 피도 눈물도 없고, 조승희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 겁이 많아 ‘혼자 죽기는 싫다, 우리 같이 죽자’는 양상을 보입니다. 감정 읽기가 안 되어 죄책감이나 후회, 양심 등 감정 영역이 무감각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지요. 일반적인 패턴이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과대망상증도 있습니다.”
 
 
  돌 대신 관심을 던져라
 
지난 7월 23일 동해시청 직원들이 흉기 난동 사건으로 희생된 고(故) 남모씨 빈 자리에 조화를 놓고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70여 차례의 ‘묻지마 살인’이 벌어진 일본에서는 최근 들어 가난한 노동자들이 상담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등 갖가지 대책을 세우느라 골몰하고 있다. 그 대책 안에는 시민단체나 지자체, 정부가 연계하는 시스템이 포함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묻지마 범죄’가 빈발함에도 불구하고 대책 마련에 미흡했다. 이에 대해 이종일 과장은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바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는 폐쇄적이고 가족 중심적이며 혈통을 강조하는 민족이라서 가족 내에 정신과적 질환을 가진 가족이 있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죠. 드러내놓고 치료하는 환경이 되지 않습니다. 사회구조도 정신과적 진단을 받게 되면 평생 올가미를 쓰게 됩니다. 10명의 우울증 환자 중 한 명의 환자만이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습니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보험이 취소되는 나라다 보니 정신질환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이런 편견을 없애는 것이 시급합니다.”
 
  독방에 갇혀서도 “살인을 못해 우울하다”고 했던 살인마 정남규는 자신의 선고공판에서 판사가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을 묻자, “이상하게 삶이 꼬인 것 같다. 가혹하고 혹독한 폭력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같다. 국가와 사회가 (내게) 도움을 줬더라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는 요지의 말을 남겼다.
 
  묻지마 범죄자들은 대부분 불우한 어린 시절, 고립된 생활, 경제적 궁핍, 정신병이나 범죄 전력, 사회의 무관심이 그들의 이력을 채우고 있다. 그들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로부터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한 이들이다.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관심, 제도적 보호 장치와 안전망 확대가 절실하다. 우리 사회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묻지마 범죄’는 땅속에 묻혀 있는 지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른다.⊙
 

  ▣ 사이코 패스들의 특징
 
  ▷ 첫째,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전혀 모를뿐더러 양심이 없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무관심하다. 다른 사람들과의 정서적 유대도 잘 맺지 못한다.
 
  ▷ 둘째, 매우 폭력적이다. 오로지 힘이 신념이고 기준이다. 분노를 통제하기 어렵고, 자신의 감정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무척 예민하게 반응한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냉담하고 잔혹하게 행동한다.
 
  ▷ 셋째,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능력을 높게 책정한다. 권력과 돈에 대해 집착하며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관심이 깊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불사하고, 자기과시욕과 허풍이 강하며 性的(성적)으로 문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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