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博 대통령이 우파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해 감옥에 가고, 재판정에 서고,
자기 주머니를 털고, 뙤약볕 아래서 졸도하고 죽기까지 했던 수많은
‘아스팔트 우파’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었다면, 초반 1분 만에 자살골을
먹는 것처럼 허무하게 좌파들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자기 주머니를 털고, 뙤약볕 아래서 졸도하고 죽기까지 했던 수많은
‘아스팔트 우파’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었다면, 초반 1분 만에 자살골을
먹는 것처럼 허무하게 좌파들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전여옥 한나라당 의원)

- 지난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보수단체들의 ‘법질서 수호와 FTA 비준 촉구대회’.
그가 右派(우파)시민운동을 그만둔 것은 ‘생활’ 때문이었다. 그는 “우파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씁쓸해 했다. 그 다음 이유는 李明博(이명박) 정권에 우파에 대한 배려도, 우파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도 없다는 점이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우파에 대한 대접이 없다. 무엇을 바라고 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盧武鉉(노무현) 정권은 이러지 않았다. 左派(좌파)들이 정부나 유관 기관에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개인적인 대접을 떠나 우리나라가 가야 한다고 믿어 온 방향으로 새 정부가 나아가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親朴(친박)연대 등을 흡수하여 반수를 넘는 절대 안정의석을 확보했지만, 자유주의 개혁을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이 촛불시위에 대처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80여 석에 불과한 민주당에 끌려 다닐 것 같다. 이렇게 절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많이 지쳤고, 더 이상 내가 우파 운동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이제 우파 운동은 떠날 생각이다.”
조남현 전 대변인의 모습은 지난 10년간 좌파정권과 싸워 왔던 보수우파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0년 좌파 정권은 종식됐지만, 그들은 ‘보수 정권’이라고 믿었던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상은커녕 감사의 인사조차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주의·주장이 정권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 그를 지지했던 보수우파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다.
4년 전 보안법 폐지 반대 집회로 유죄 판결(徐貞甲)
徐貞甲(서정갑) 친북좌익척결국민행동본부(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흔히 ‘아스팔트 우파’라 불리는 ‘행동하는 우파’의 상징이다. 그는 2001년 이후 金大中(김대중)-盧武鉉(노무현) 정권을 ‘친북반역세력’이라고 규탄하는 300여 회의 언론 광고를 냈고, 2004년 10월 4일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 작년 11월 ‘NLL(북방한계선) 사수 국민대회’ 등을 주도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기구인 반제민족민주전선(反帝民戰·舊 韓民戰)은 그를 반드시 제거해야 할 ‘친미 매국 역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의문사위원회 조사관들, 친북반미단체 ‘우리민족연방제추진회의(대표 강희남)’ 등으로부터 명예훼손을 이유로 민ㆍ형사 소송을 당했고, 전국민주화운동상이자연합과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으로부터는 내란선동죄로 고발당했다.
지난 4월 23일 서울지방법원 형사27부(재판장 한양석)는 그에게 2004년 10월 있었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국민대회’에서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그를 기소한 것은 보안법 폐지 반대 국민대회가 있은 지 3년 가까이 지난 작년 7월. 검찰은 집회 참가자 가운데 일부가 “청와대로 가자”며 거리로 나섰다가 경찰과 대치 과정에서 경찰에게 대나무 낚싯대를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해 경찰관 두 명이 손바닥과 손등에 찰과상을 입은 것을, 대회 주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했다.
서정갑 본부장은 “작년 大選(대선)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기소하라고 강경하게 지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찰과상 정도를 가지고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면, 쇠파이프로 경찰관들의 머리를 깬 촛불시위대는 사형을 시켜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의 검찰이 그를 기소했다 하더라도, 정권이 바뀐 후 이명박 정부의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이 기소 취하를 지시했다면, 서 본부장은 법정에 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 본부장의 얘기다.
“작년 11월 李在五(이재오) 의원이 이명박 후보를 도와달라고 찾아왔다.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하나는 좌파 정권 10년 동안 사회 요소요소를 차지한 좌파세력들을 척결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안법 폐지 반대 국민대회 건으로 기소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었다. 이재오 의원은 이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난 4월 23일 법원에서 유죄선고가 나왔는데도 묵묵부답이다. 이재오 의원은 미국으로 건너가는 날까지 이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얘기가 없었다.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래도 되는 건가?”
―한나라당에서 관심은 없었나.
“검찰이 2년형을 구형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李相得(이상득) 의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면서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변호사 자격이 있는 의원을 붙여 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김 모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지침을 받았다’며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두세 차례 전화를 걸어온 것 말고는 공판정에 나오지도 않았다. 1심 판결이 난 후 李玲愛(이영애) 자유선진당 최고위원과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들, 남부지검장을 지낸 高永宙(고영주) 변호사 등이 변호를 해 주고 있다.”
서정갑 본부장도 이런 상황이 섭섭했나 보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후 朴槿(박근) 전 유엔대사 등 우파 인사들이 전화를 걸어와 ‘국민행동본부는 뭐 하고 있느냐?’고 하기에 ‘집행유예 받은 죄인이 뭘 하겠습니까. 이명박 정부를 위해 나서라고는 하지 마세요’라고 대꾸했다. 그래도 여러 인사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나서달라’고 해서 다른 보수단체들과 함께 ‘법질서 수호―FTA비준촉구 국민대회’를 준비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수고했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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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식 국민행동본부 사무총장. |
“원래 함께 대회를 주최하기로 했던 일부 단체가 집회를 앞두고 갑자기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알고 보니 청와대 某(모) 비서관이 ‘시청 앞에서 대회를 열 경우 촛불집회 참가단체들과 충돌 우려가 있으니 장소를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고 하더라. 그 바람에 한나라당과 몇몇 보수단체들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장소를 옮겨 행사를 가졌다. 그래도 시청 앞 집회에 7000여 명이 모인 것은, 지난 7년여 동안 줄기차게 투쟁해 온 국민행동본부에 대한 신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서정갑 본부장은 얼마 전 미국에서 강연 초청을 받았다. 여권을 갱신하러 갔더니, 재판에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1년짜리 여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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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
崔仁植(최인식) 국민행동본부 사무총장은 “나라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들 중 애국운동에 자기 자식을 내모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과정은 전부 검정고시로 마쳤다. 내가 학교를 제대로 다녔나, 아니면 우리 사회로부터 특별히 혜택을 본 게 있나? 그런 나도 애국운동을 하는데, 그동안 ‘내가 아무개 아들인데 나라로부터 우리 집안이 받은 혜택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애국운동에 나섰습니다’라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밥 벌어먹기 바쁘고, 벌금형이라도 선고 받으면 몸으로 때워야 하는 사람들이 보수운동 진영을 지키고 있다.”
“변호사 지원 요청에 ‘한나라당과 관련된 사건 아니라’고 거절”(박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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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성 반핵반감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 |
한 좌파 인터넷 매체는 이날 사건을 보도하면서 박찬성 위원장이 일당을 주고 노인들을 시위에 동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위원장은 “사람 동원할 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씁쓸해 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이나 민정수석실은 보수단체의 숨통은 교묘히 막으면서 좌파 단체들에게는 갖은 지원을 해 줬다. 노무현 정권 시절 호텔 등에서 황인성 당시 시민사회수석이 좌파 시민단체 사람들 만나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사람들은 보수단체 인사들에 대한 인사상의 배려는 고사하고, 고맙다는 인사조차 없었다.”
박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이 인수위 시절부터 쇠고기 파동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것이 보수가 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 “보수단체들이 전반적으로 無力感(무력감)과 自愧感(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박찬성 위원장도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등이 지난 4월 23일,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집회 건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을 때 함께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1심 판결이 나온 후 한나라당에 변호인단을 구성해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한나라당에서는 ‘한나라당과 관련된 사건이 아니다’라며 거절했다. 과거 민주당이나 民辯(민변)이 각종 좌파 집회 시위 관련자들의 변호에 발벗고 나섰던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나보다 더한 희생자가 나와도 한나라당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래서야 앞으로 누가 자기를 희생해 가면서 보수운동에 나서겠나?”
“대한민국 정체성 회복이 보상”(류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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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태 전 무한전진 대표. 2004년 11월 장충체육관에서 연 북한인권사진전에서. |
“나를 조사한 경찰관은 ‘지금이 어떤 세상인 줄 모르고 이런 짓을 했느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 검찰로 넘겨진 뒤 30대 중반의 젊은 검사는 ‘김근태 씨 같은 분은 大權(대권)을 바라보는 분인데 이러면 되느냐’고 야단을 쳤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사람들이 ‘세상이 뒤집혔다’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지만, 그때 ‘정말 대한민국이 뒤집혔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1심과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하는 바람에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7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05년 그는 50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노무현 탄핵찬성 카페’를 기반으로 우익청년단체 ‘무한전진’을 만들었다. ‘무한전진’이라는 단체 이름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이 했던 “대한민국은 영원히 전진해야 합니다”라는 말에서 따왔다. 그후 무한전진은 2004년 겨울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국회 앞 천막농성에 앞장섰고, 맥아더 동상 철거 반대 집회 등에도 적극 참여했다.
류현태 대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한마디로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동안 거리에서 싸웠던 ‘아스팔트 우파’에게 고맙다는 인사 안 해도 된다. 자리 안 줘도 된다. 금전적 보상 안 해 줘도 된다.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공직에 기용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훼손된 대한민국의 正體性(정체성)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우리들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다.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어차피 보수우익은 우리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간다면 언젠가 보수우익으로부터 호되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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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욱 신임 무한전진 대표. |
“우파도 오마이뉴스 같은 인터넷 매체,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 시민방송 RTV 같은 방송을 가져야 한다. 일부 보수인사들이 그런 인식을 갖고는 있지만, 막상 그런 일을 하려 해도 ‘가진 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가진 자’들은 국가공동체에 대한 의식,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몫의 체제 유지비를 내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상황이 이러니, 싸워 보겠다고 나섰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싸우려는 사람이 사라져 좌파에 대한 항체가 零(영)이 되면, 나라는 쿠바꼴이 날 것이다.”
“불법집회 방치한 것이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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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9월 맥아더 동상 철거 반대 집회에 나선 최대집 자유개척청년단장(왼쪽 군복입은 사람). |
작년 6월 남북회담 참석차 북한대표단이 서울에 왔을 때 최대집 대표는 이들의 숙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려다가 경찰에 연행된 후 집시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12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는 사이에 작은 병원 하나가 사라졌다.
작년 12월 대선 때, 자유개척청년단은 공개적으로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최 대표는 “李會昌(이회창) 총재도 우리가 바라던 보수정치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 때문일까? 이명박 정권에 대한 최대집 대표의 생각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이던 2005년 8월 태극기로 서울시청을 덮었던 것은 당시 분위기로 볼 때 훌륭한 결단이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5000년 민족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라고 했다. 시장경제주의자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렇게 최소한의 기본적인 원칙만 지켜준다면 보수우파는 이명박 정권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꼬집었다.
“노무현 정권은 우리 7명이 북한 대표단 숙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는 것을 집시법 위반으로 잡아넣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서울 중심부가 무법천지가 되도록 50여 일간 방치했다. 대통령이라면 국민의 생명과 자유, 치안질서부터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사태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것은 불법집회를 방치한 것이다.”
“전과나 지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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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8월 14일 북한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 반대 집회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기정 씨(가운데). |
그는 2005년 8ㆍ15 남북공동축전 당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앞에서 북한대표단 참배 반대 시위를 벌이다 최대집 자유개척청년단 대표 등과 함께 닭장차에 3시간여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싸워 왔는데, 대한민국 경찰에게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고 미칠 것만 같았다. 불법을 저지르지도,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던 우리를 그렇게 모질게 다루었던 경찰이 폭동 수준의 촛불집회 주동자들은 왜 그대로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장기정 씨는 보수세력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토로했다.
“한창 돈 벌고 결혼해야 할 젊은 나이에 애국운동하겠다고 나섰다가 상처를 많이 받았다. 한나라당 사람들도 우리보고 ‘極右(극우)세력’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시청 앞 국민대회에 한 번도 나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하던 어른들이 막상 일이 생기면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장기정 씨는 “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후회는 없다. 나라에 보상을 바라는 것도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집시법 위반,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벌금형을 받아 전과 6범이 됐다. 그동안 낸 벌금이 800만 원쯤 될 것이다. 좌파 정권 아래서 ‘대한민국이 위태롭다’는 생각에 나가서 싸우다 생긴 일인데, 이 전과나 좀 지워줄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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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4일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해체촉구 기자회견을 벌이는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 |
“10여 명의 경찰관들이 나를 보호하려 했지만 시위대에게 밀려 자기들 몸을 지키기에도 급급해 했다. 촛불시위대는 理性(이성)이 마비된 紅衛兵(홍위병)들이었고, 서울 한복판은 無法者(무법자)들의 해방구였다.”
그는 이명박 정권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鄭正佶(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우파단체가 MBC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이는 MBC 안에 있는 우리 지지자들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고, 현수막 값 한 번 보태준 적 없는 사람들이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좌파들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 도대체 左右(좌우)합작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명동성당 앞 집회에 참가했던 라이트코리아 회원 남부임 씨는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얼마나 조ㆍ중ㆍ동을 공격했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KBS, MBC를 바로 잡지 못하고 뭐 했는지 모르겠다. 이건 무능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탈북자 박상학 씨는 “대통령에게 행정권과 軍權(군권)이 다 있는데, 법질서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행여 자신에게 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그러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어려움에 빠진 우파 인터넷 매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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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1월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1980년대 주사파의 실태에 대해 증언하는 강길모 프리존 대표(왼쪽). |
강길모 대표는 연세대 재학 시절 反美(반미)청년회의 핵심 인물. 연세대 출신의 내로라하는 386 출신 정치인이나,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관 가운데는 그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강 대표는 2006년 일심회 사건 이후 국회 증언 등을 통해 우리 사회 내부의 主思派(주사파)들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현재는 우파 성향 인터넷 미디어들의 연합체인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장으로 權力化(권력화)된 거대 포털 사이트들과 싸우고 있다.
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원래 사상이나 이념을 경시했던 분이기 때문에 그에게 큰 기대는 안 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은 좌파 정권에서 진정한 우파 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도, 조급하게 굴지 말고, 5년이라는 기간을 이용해 우파는 자신의 역량을 비축하면서 長期戰(장기전), 陣地戰(진지전)을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이념과 철학이 없는 것을 넘어 무능하기까지 하다. 무이념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얼치기 우파’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앞으로 5년을 우파 재건의 교두보로 삼으려던 꿈마저 날아가 버릴 것 같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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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KBS 앞에서 열린 ‘편파 방송 종식 방송 되찾기 국민대회’에서 사회를 보는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
신혜식 대표는 2000년 말 인터넷상에 <안티 DJ> 사이트를 개설했다가 경찰 조사를 받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최초의 우파 인터넷 매체인 <독립신문>(www.independent.co.kr)을 창간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집회가 끝난 후 거리로 진출했다가 도로를 차단한 전경버스 위로 대나무 낚싯대를 집어 던졌다가 구속돼 45일간 구치소 신세를 졌다. 과거에 컴퓨터 학원을 하면서 모아 두었던 돈은 모두 독립신문 운영비 등으로 갖다 썼고, 아내로부터는 이혼을 당했다. 신혜식 대표는 “우파는 정권교체에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그 시절 편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왔지만, 지난 10년간 고생한 사람들은 여전히 극우니 수구니 하는 소릴 듣고 있다.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보수 집회하면 노인들밖에 안 나오더라. 그렇게밖에 못 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이나 네이버처럼 자기들을 비판하는 포털에는 광고를 주면서, 우리에게는 전당대회 관련 광고 한 번 주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정말 얄밉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에 실패”(李哲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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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승 헌정회장. |
“이명박 대통령이 孫鶴圭(손학규) 前(전) 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보수가 아니다’라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대한민국 정통세력과 보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다니. ‘이념을 초월한 실용주의’를 얘기하는데, 그건 左(좌)도, 右(우)도 아닌 기회주의에 불과하다. 회사CEO는 그런 소릴 할 수 있어도, 한 나라의 통치권자는 그런 소릴 해서는 안 된다. ‘이념을 초월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좌익들의 촛불집회를 엄정하게 다스리겠나?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여 만에 ‘대통령 下野(하야)’ 요구가 나오는 것은 ‘이념 없는 실용’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철승 회장은 “이명박 정부가 자신의 지지층에 대한 결집과 지지확보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도둑맞은 10년’ 동안 정권 탈환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보수세력들이 반미 친북 容共(용공) 정권에 맞서 아스팔트 위에서 싸울 때 물 한 병, 밥 한 끼 산 적 있나, 아니면 종이 태극기 만드는 데 돈을 보태길 했나? 無賃乘車(무임승차)한 것 아닌가? 지난 10년 동안 좌파 세력들이 사회 요소요소에 포진했다. 이들이 대선에서 패했다고 순순히 물러갈 것으로 생각했나? 그럴수록 청와대에 입성한 후에 보수세력들을 불러 지난 10년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앞으로 있을 좌익의 反動(반동)에 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안이한 생각이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철승 회장은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부는 이념을 분명히 하고, 특히 건국 60주년을 맞아 훼손되고 망실된 건국이념과 정통성을 회복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을 삼가는 보수인사들도 있었다. 金尙哲(김상철) 국가비상대책협의회(국비협) 상임의장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서너 달 만에 위기를 맞고 있는데, 정권교체에 박수를 쳤던 보수세력이라면 지금은 정부를 밀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적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對北(대북)문제에서 중심을 못 잡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그가 확실한 보수였다면 지난 20년 동안 계속되어 온 좌경 풍토 속에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옳은 얘기라도 ‘확실한 보수’의 목소리는 경원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변화를 점진적으로 이루어가야 한다. 보수마저 비판에 가세하면 이명박 정부를 더 불안하게 한다. 4ㆍ19 후에 언론 등이 정부 흔들고 여당이 분열했다가 9개월 만에 張勉(장면) 정부가 무너졌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의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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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
2004년 11월 뉴라이트 운동의 기치를 처음 들었던 자유주의연대는 지난 6월 간판을 내리고 2004년 4월 싱크탱크를 지향하며 출범했던 뉴라이트재단과 통합했다. 뉴라이트재단의 이사장은 安秉直(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는 상임이사는 韓基弘(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가 맡았다. 李在敎(이재교) 전 자유주의연대 부대표, 홍진표 전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崔弘在(최홍재) 전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등 자유주의연대의 주축들이 그대로 뉴라이트재단 이사진을 맡았다.
자유주의연대와 뉴라이트재단의 통합 과정에서 다소의 진통이 있었다. 일부 운영위원들이 “정권교체로 자유주의연대는 이미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申志鎬(신지호) 대표와 홍진표 사무총장 등에게 반발했다. 이들은 “정부 등에 들어갔던 좌파들이 다시 시민단체로 복귀하면 앞으로 1년 내에 좌파단체들의 역량이 강화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공세도 치열해 질 텐데, 왜 자유주의연대의 역할이 없나. 장기적인 사상운동을 벌이겠다더니 이게 뭔가. 정치에 참여하더라도 4~5년은 더 자유주의 이념운동을 벌인 다음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지낸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자유주의연대와 뉴라이트재단의 통합은 자유주의연대가 간판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인 자유주의연대와 싱크탱크인 뉴라이트재단을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자는 것이다. 일종의 M&A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은 뉴라이트재단 출범을 선언하면서 “뉴라이트 운동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이데올로기 高地(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작년 말의 대선에서 보수진영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고 自評(자평)했다. 그는 “우리 시대의 과제인 선진화와 남북문제 연구에 주력하면서 대학생 교양프로그램과 시민강좌를 개설하여 연구 성과를 전파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만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뉴라이트재단을 헤리티지재단 같은 본격적인 싱크탱크로 키우는 것은 우리나라 여건상 아직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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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새 정부 출범 후 좋은 세상 만난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전에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지원하던 기업 등은 ‘이제 정부와 직접 대화할 수 있게 됐는데 왜 우파 NGO가 필요하냐’는 생각에서 지원금을 끊었다. 우파NGO들을 지원하고 싱크탱크를 만들어 우파의 저변을 확대해야 우파 정권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없다. 박원순 변호사의 ‘희망제작소’는 빌딩 몇 개층을 쓰고, 참여연대는 빌딩을 올리는데, 우리는 있던 사무실도 축소하고 있다. 의장님이 조달해 오는 돈과 사무처 요원들의 쌈짓돈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김진홍 상임의장은 금년 초 “내년 봄 뉴라이트정치대학원대학교를 만들어 미국의 리더십인스티튜트나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 같은 보수인재 육성기관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재로서는 요원한 목표다.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임헌조 처장은 “그동안 대선에 대비하느라 방만해졌던 조직을 정리하고, 방송통신정책센터·문화예술정책센터·규제개혁센터 등을 중심으로 정책을 생산하고 이슈 파이팅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총선 공천에서 홀대 받은 보수우파
보수우파 진영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해는 간다. 흔히 ‘아스팔트 우파’로 불리는 인사들 가운데 대선 이후 한나라당 공천을 받거나, 청와대로 들어가거나, 정부에 들어간 사람은 거의 없다.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던 洪官熹(홍관희)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최인식 국민행동본부 사무총장,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 강승규 인터넷언론협회장 등 ‘아스팔트 우파’와 맥을 같이하는 인사들은 모두 공천에서 탈락했다.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의 경우는 明暗(명암)이 엇갈린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경우, 김진홍 상임의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친분, 작년 대선에서 공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던 점 등 때문에 새 정부 출범 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李東湖(이동호)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조직위원장, 김정만 뉴라이트문화체육연합 대표, 都希侖(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등 대부분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杜永澤(두영택) 뉴라이트교사연합 대표는 한나라당 전국구 13번에 내정됐다가 막판에 탈락했다. 두 대표는 “한나라당은 마지막 순간에 교사보다는 교수를 택하더라”고 했다.
반면에 자유주의연대 출신 인사들은 그나마 성과를 거두었다. 金槿泰(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도전했던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도봉乙(을)에서, 趙全赫(조전혁) 전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는 인천 남동乙(을)에서 당선됐다. 최홍재 전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은 공천 탈락했다.
최인식 국민행동본부 사무총장은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에 공천을 냈지만 기대하지는 않았다.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는 知人(지인)들이 전부터 ‘형님, 정치를 할 생각이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국민행동본부를 떠나세요. 거기 있으면 될 일도 안 됩니다’라고 말하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행동본부 주최 행사 등에 연사로 나섰던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도 ‘보수’를 백안시하는 한나라당 내부 풍조를 전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의 와중에서 좌파들이 선동과 왜곡과 날조로 세상을 뒤엎은 것을 보면서 ‘이걸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이 더 이상 대한민국일 수 없다, 가장 빠른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당에 들어와서 보니 황당했다. 모두 하는 얘기가 ‘좌측으로 클릭하자’, ‘보수라는 말을 쓰지 말자’, ‘중도개혁 보수주의로 가자’고 하더라. 어떻게 중도와 개혁과 보수가 함께 갈 수 있나? 한나라당 내 진보파 의원으로 꼽히는 고진화 의원이 자리 잡고 있던 영등포乙(을)에 공천 신청을 냈더니, 공천 과정에서 모 공천심사위원은 ‘전여옥 의원은 너무 右(우)편향 아니냐. 한나라당에도 고진화 의원 같은 진보적 사람이 한 명쯤 있으면 좋지 않으냐’고 했다고 한다. 이게 우파 정당에서 말이 되는 소린가? ”
“우파 운동과 한나라당 간의 괴리”
정부나 정부 산하기관 인사에서도 정통 보수 인사들은 재미를 보지 못했다. 통일부 장관으로 거론됐던 南柱洪(남주홍) 경기대 교수, 여성부 장관으로 거론됐던 李春鎬(이춘호) 전 자유총연맹 부총재는 재산문제가 걸림돌이 돼 낙마했다. 盧武鉉(노무현) 정권의 對北(대북)정책에 항의해 통일연구원을 그만 두었던 홍관희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통일교육원장으로 내정됐지만, 좌파언론들이 시비를 거는 바람에 아직 임명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자유주의연대 출신 가운데는 공직에 진출한 사람들이 보인다.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을 지낸 이대영 중앙대 교수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에 임명됐다. 김혜준 전 자유주의연대 정책실장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홍진표 전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은 지난 6월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내정됐으나, 좌파 단체들의 반발에 밀려 마지막 순간에 낙마했다.
이명박 정부의 보수우파 홀대는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행태와는 대조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좌파 세력들을 청와대나 정부 요직에 기용했다. ‘위원회 공화국’ 소리를 들어가며 위원회를 濫說(남설)해 그 자리에 좌파 시민단체나 언론 출신 인사들을 앉혔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비리사학에도 좌파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갔다. 인사상 배려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민주화운동 보상금이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 명목으로 금전적 보상이라도 받았다.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왜 보수우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강길모 프리존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차이는 한마디로 자기가 지켜야 할 가치와 신념이 있느냐의 여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 좌파세력은 자생적, 혹은 북한과의 연계 아래서 성장하다가 정치권으로 진입했다. 좌파세력은 김대중 시절에는 대중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씨와 제휴해 권력에 참여했고,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는 본격적으로 정권에 진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과 투쟁 경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패거리 의식 내지 동지 의식으로 뭉쳐 있었다. 운동세력과 집권세력은 명실공히 하나였다.
반면에 우파 운동세력과 한나라당 간에는 괴리가 크다.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관료, 법조인, 의사, 언론인 등으로 행세하다가 ‘이제 정치나 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정치에 몸 담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치와 신념을 기대하겠나, 아니면 ‘아스팔트 우파’에 대한 동질감을 기대하겠나? 당장 이명박 대통령부터 자기가 잘 나서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지, 보수우파는커녕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고마워하는 마음이 없지 않나?”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권 집권 직후 한나라당, 정부, 청와대 할 것 없이 ‘더 이상 우파 NGO는 필요 없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람들을 공직 경쟁자 내지 걸림돌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은 ‘아스팔트 우파’에 대한 콤플렉스 가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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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형규 정무수석비서관. |
“언젠가 柳佑益(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이 私席(사석)에서 ‘아스팔트 우파는 품위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이념을 중심에 두고 싸워 본 적이 없는 이명박 정권 사람들은 ‘아스팔트 우파’들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아스팔트 우파’가 정권에 들어올 경우 자기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스팔트 우파’에 대해 진입장벽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는 “보수라고 다 같은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수우파 안에도 고소영 강부자 내각 같은 기득권층에 속하는 보수가 있고, ‘배고픈 보수’가 있다. ‘행동하는 우파’는 後者(후자)다. 좌익은 자기들끼리는 단결하고 가진 것을 나누지만, 우익은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의리 없는 집단이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세력은 절대로 단결할 수 없다. 그래서 우익이 한 줌밖에 안 되는 좌익에게 당하는 것이다.”
봉 대표는 “돈 가진 사람들은 학교재단에는 100억 원, 1000억 원씩 내놓으면서 보수단체에는 100만 원도 내놓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박원순 변호사의 ‘아름다운 재단’에 자기 월급을 희사한 적도 있지만, 지금 박원순 변호사나 참여연대가 누구 편을 들고 있나? 그 돈의 10분의 1만 우익에게 내놓았어도 지금쯤 우익이 이명박 대통령의 방패가 되고 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뒤늦게 보수우파와의 대화에 나서고 있다. 孟亨奎(맹형규) 정무수석비서관은 취임 후 보수우파와의 대화에 나서고 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보수세력들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섭섭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바탕은 보수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통합은 보수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맹형규 수석의 다짐이 보수인사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시민사회단체와의 대화를 담당해야 할 시민사회비서관에 林三鎭(임삼진)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을 앉힌 주인공이 맹형규 수석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비서관직을 둘러싼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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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연합 사무처장 시절이던 2000년 9월 25일 주한미군기지의 폐유 유출 의혹을 제기하는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오른쪽). |
이번에는 보수진영에서 반발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전여옥 의원 등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이후 국민행동본부나 뉴라이트전국연합 주위에서는 “임삼진 비서관은 진보단체를 담당하고, 우파단체들을 담당하는 시민사회비서관 자리가 하나 더 생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실 직제상 비서관 자리를 늘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파 시민단체들과의 관계를 담당하는 4급 행정관 자리가 하나 생기는 데 그쳤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좌파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시민사회비서관이 되고, <다음> 부사장이 인터넷 담당 비서관이 되는 걸 보면 ‘정권교체 된 것이 맞나’ 싶다. 이 정권 사람들이 실용이다 뭐다 하면서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의리가 없다”고 말했다. 박찬성 반핵반김 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좌파 출신 인사를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앉힌 것은 ‘좌파와 소통하겠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맹형규 수석은 “임삼진 비서관에 대해 보수진영에서 걱정을 많이 하는데, 임 비서관은 중도우파다. 과거에 시민단체에 몸담은 적도 있어 아는 사람이 많고, 말이 통한다. 보수진영 분들에게 잘 설명했더니 수긍하더라”고 말했다.
4급 행정관이 우파 시민단체를 담당하게 된 데 대해 그는 “4급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 직급은 4급에 불과하지만, 그도 대통령의 비서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 정통우파 인사들을 수구꼴통이니 극우니 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맹형규 수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열심히 해 오신 분들이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았다.
보수단체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맹 수석은 “나도 중도보수다. 보수진영 분들을 나도 잘 안다. 내가 보수와의 대화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맹 수석이 말하는 보수에 ‘중도’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길모 프리존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일부 측근들이 최근 우파의 결속을 위해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우파와의 결속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보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바로잡기 위한 ‘人的(인적)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파와 소통하라”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도 이명박 대통령과 우파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흔히 이명박 정권이 위기에 처한 원인으로 ‘소통의 不在(부재)’를 얘기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좌파들과의 소통 부재’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우파의 핵심가치와 소통이 안 돼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이 잘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생각하거나, 경선 과정에서 기여했던 테크니션들만 중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스팔트 우파’를 비롯한 수많은 우파들의 피와 땀 덕분에 승리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파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해 감옥에 가고, 재판정에 서고, 자기 주머니를 털고, 뙤약볕 아래서 졸도하고 죽기까지 했던 수많은 ‘아스팔트 우파’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었다면, 초반 1분 만에 자살골을 먹는 것처럼 허무하게 좌파들에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