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 촛불에 불타 버린 한국의 禮

  • : 김정우  hg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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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曺城準 사진작가·조선일보DB
작은 촛불 하나, 온 대한민국을 뒤덮다.
지난 2월 10일 숭례문이 불타던 날, 조선 皇嗣孫(황사손) 李源(이원)씨는 “崇禮(숭례)가 무너졌으니, 나라의 禮(예)가 불로 무너질 것”이라며 탄식했다.
 
  104일 후인 지난 5월 24일, ‘평화’를 외치던 촛불 시위대가 광화문 일대 도로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각목과 쇠파이프가 등장했다. ‘평화시위’는 사라졌고, 성난 군중이 모여들었다. 비폭력을 외치던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무례했고, 폭력 시위대는 국가에 무례했다. ‘진짜’ 국민은 둘 모두에게 뿔이 났다.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지난 6월 10일 8만 인파(경찰 추산)가 참가한 가운데 ‘쇠고기 수입 재협상’과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시위대의 ‘촛불’과 보수단체의 ‘맞불’로 대한민국 심장부는 ‘불바다’가 됐다.
 
‘독재 이명박’이란 플래카드를 든 시민.
  鄭雲天(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대화를 위해 시위 현장을 찾았지만, “매국노, 물러가라”는 시위대의 외침에 발걸음을 돌렸다. 광화문 사거리 한복판은 일명 ‘명박산성’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컨테이너 장벽으로 길이 두 동강 났다. 촛불로 타오른 밤, 예의는 불타 버렸고, 신뢰는 무너졌다. 지도자는 웃음거리가 됐고, 국민은 ‘뿔났다’. 누구의 책임일까.●
 
‘쇠고기’로 시작된 집회의 이슈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해졌다.

심각한 표정의 한 농민.

청계광장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

일부 시위대가 경찰버스를 향해 집기들을 던지며 공격하고 있다.

경찰의 과격진압 논란을 일으킨 물대포를 맞고 있는 시위대.

최대 인파가 모인 6월 10일 밤 광화문 사거리의 모습.

2008년 6월 12일 밤,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빗속에 200여 명의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갖고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단상 앞에 혼자 앉아 굵은 장대비를 맞고 있다.

2008년 6월 11일 오전 5시경, 밤새 촛불집회를 한 시위 참가자들이 스티로폼 계단을 이용해 경찰이 설치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참가 학교 및 단체 깃발과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2008년 6월 1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한 할아버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가족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담은 구호를 들고 시가 행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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