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의 축구칼럼] 잉글랜드 축구의 부활

유럽 대륙에서 축구는 문화이자 오락이며 산업이자 유사 종교다. 어느 나라 어느 거리에나 축구 팬들과 축구 이야기가 강물처럼 흘러넘친다.

  • : 장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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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30일 2007/2008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FC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동료들과 기뻐하는 박지성(왼쪽).
사람들은 브라질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펠레는 안다. 세계인들에게 브라질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축구황제 펠레다. 위대한 스포츠 스타의 명성과 영향력은 이미 오래 전에 국경을 넘었다. 우리는 지금, 스포츠 스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낳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박지성이다.
 
  유럽 대륙에서 축구는 문화이자 오락이며 산업이자 유사 종교다. 어느 나라 어느 거리에나 축구 팬들과 축구 이야기가 강물처럼 흘러넘친다. 북단의 섬나라 아이슬란드로부터 지중해의 小國(소국) 몰타공화국에 이르기까지,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루마니아 같은 東(동)유럽 국가들로부터 피레네 산간 인구 2만 명의 小國 안도라에 이르기까지 축구는 유럽인들의 생활과 긴밀하게 얽혀있다.
 
  2007년 4월,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영국 팀이 세 팀이나 진출한 것을 두고 유럽인들은 「大英帝國(대영제국)의 화려한 부활」을 소리 높여 외쳤다. 2008년 5월,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아예 영국 팀끼리 결승전을 치른다. 결승에 진출한 두 팀 모두 대한민국과 관련이 있다. 런던을 연고로 하는 첼시의 경기복에는 후원사 「삼성」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는 「한국의 별」 박지성이 있다.
 
  여기서 의문 하나를 풀고 가자. 아니, 그깟 축구에서 성적을 좀 냈기로 이렇게 거창한 비유를 갖다 써도 되는 거야? 월드컵은 알겠는데, 도대체 챔피언스 리그라는 건 어떤 물건이야?
 
  축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유럽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훌륭한 축구팀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연장처럼 번듯한 도시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해당 도시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의 성적이 그 도시의 品格(품격)과 興亡盛衰(흥망성쇠)의 바로미터라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럽 각 도시를 연고로 하는 축구 팀들은 自國(자국) 리그에 참가해 1부 리그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우승컵을 획득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총력전을 펼친다. 우승팀은 열광하는 군중 사이를 지나 도심 광장까지 카 퍼레이드를 하고, 시청의 발코니에서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며 선수단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승컵에 입맞추는 것이 유럽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인 축하행사다.
 
  1986/1987 시즌 마라도나(아르헨티나)와 카레카(브라질)를 앞세운 나폴리 구단이 74년 만에 처음으로 이탈리아 리그를 제패했을 때 도심 교통은 사흘간 마비되었다.
 
  이기면 우승을 확정 짓는 마지막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3시인데 관중들은 이미 오전 9시에 7만 석 관중석을 가득 메웠고,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한 남자는 아예 낙하산을 타고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유럽 축구팬 중에는 『아들 혹은 딸의 결혼식이 중요한 축구 경기와 날짜가 겹친다면, 할 수 없이 결혼식을 비디오로 보겠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王中王」을 가리는 챔피언스 리그
 
  유럽 도처에 영웅들이 할거한다면, 대중들의 호기심은 으레 다음 수순을 밟게 마련이다. 강한 자들 가운데 가장 강한 자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 팀이 최강이다」, 「너희 나라 리그는 경기력이 우리나라 3부 리그 수준이다」, 「대표팀 경기와 프로팀 경기는 다른 차원에서 비교되어야 한다」는 등 全유럽 대륙에서 감정적이고 독단적인 시비가 그칠 날이 없었다.
 
  1955년, 유럽축구연맹(UEFA)은 이러한 혼란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아예 각 나라 우승팀끼리 모여서 국제대회를 열자. 이 대회의 승자가 王中王(왕중왕)이 되는 거다. 진정한 챔피언, 유럽의 왕자, 영웅과 전사들이 모인 위대한 집단.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가 프랑스의 렝을 4:3으로 물리치고 초대 챔피언에 오른 이래, 챔피언스 리그는 유럽 축구팬들의 꿈을 먹으며 매년 잊혀지지 않는 전설과 神話(신화)를 생산해 냈다.
 
  때로는 축구 外的(외적)인 기술의 발달이 축구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비행기를 포함한 교통통신과 텔레비전, 위성방송 등 미디어의 발달은 챔피언스 리그 경기 방식을 진화시켰다. 한 번 지면 그대로 탈락하는 토너먼트 경기방식은 좀더 많은 경기를 치르며 각 팀의 실력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리그 포맷으로 개편되었다.
 
  2007/2008년 대회의 경우는 2003/2004년부터 적용한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각 나라의 우승팀뿐 아니라 준우승팀도 리그에 참가하며, 이전 해에 각국의 팀들이 유럽대항전에서 거둔 성적을 합산해 성적이 좋았던 나라들에 와일드카드 참가권을 별도로 배정한다.
 
  참가팀들은 세 차례의 예선을 거친 후 본선에 진출할 32개 팀을 가리고, 32개 팀이 4개 팀씩 8개조로 나눠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여섯 차례 경기를 갖는다.
 
  각 조 상위 두 팀이 16강에 진출하고 이 16개 팀이 다시 4개조로 나뉘어 홈 앤드 어웨이로 조별 리그를 치러 8강 진출 팀을 가린다. 여기서부터는 「지면 탈락」인 홈 앤드 어웨이 토너먼트 방식의 혈투를 펼친다. 결승전은 단판승부. 장소는 일 년 전쯤에 UEFA 회의에서 정해진다.
 
  올해 개최날짜와 장소는 5월21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이다. 그리고 박지성은 이 「꿈의 祭典(제전)」에 출전하는 최초의 아시아인 축구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챔피언스 리그는 유럽인들이 해마다 벌이는 거대한 축제다. 국제적 행사이다 보니 각국의 프로 리그에 비해 인기가 하늘만큼 높은 것은 당연하다. 32强(강), 16강, 8강, 고지 하나 하나를 돌파할 때마다 출전료며 이익배당금, 팬들의 성원에 기타 附加的(부가적) 이익까지, 팀이 거두는 경제적 이익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全유럽이 이렇듯 치열하게 경쟁하는 마당에서 한 나라의 팀이 4강 중 세 자리를 2년 연속으로 차지했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잉글랜드 축구는 왜 강해졌는가?
 
지난 5월5일 프리미어 리그 첼시 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 잉글랜드 축구는 외국 선수의 영입 등 과감한 수술로 부흥을 이뤘다.
 
  잉글랜드 축구는 어떻게 부활했나?
 
  명성이 높은 유서 깊은 백화점이 있다고 하자. 수십 년간 누구도 전통과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고, 소비자도 그럭저럭 이 백화점을 애용했다. 어느 날 이 백화점의 서비스와 품질수준이 여타 경쟁 업소보다 확실히 처진다는 것이 드러났다면? 그래서 고객들이 하나둘 떠나고, 적자폭이 누적되어 백화점 영업이 위기에 봉착했다면?
 
  1990년대 중반, 잉글랜드 축구가 처해 있던 상황도 이와 같았다. 당장 건물부터 리모델링하고, 품질혁신 서비스 개선에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여 고객의 마음을 다시 끌어오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먼저 내부 혁신이다. 1993/1994, 1994/1995 시즌 잉글랜드 리그 소속 팀들은 유럽 대항전에서 단 한 팀도 8강에 오르지 못했다. 1994년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유럽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축구 宗主國(종주국)의 위기론」이 유포되었다.
 
  잉글랜드 팀들의 부진을 조사하기 위해 2년간 한시 기구로 출범한 위원회의 조사결과는 팀당 경기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리그 참가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1부 리그 팀의 규모를 24개 팀에서 20팀으로 줄이는 대수술을 단행해 팀당 경기 수를 연간 여덟 경기나 덜어낸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음은 외적 개혁이다. 축구 경기는 수공업적 속성이 있다. 22명의 선수와 3명의 심판이 직접 몸을 움직여야만 경기라는 생산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판매 방식의 혁신을 통해 얼마든지 대량 소비가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다.
 
  잉글랜드 리그는 전통적으로 폐쇄적 자급자족 체계를 고수하던 리그다. 수출·수입을 통해 해외 시장과 연동하는 다이내믹한 시스템이 아니라, 自國 선수들을 길러 自國 리그에서 뛰도록 하는 內需(내수) 우선 경제구조였다.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보니 품질이 다소 처지는 축구 상품이라도 얼마든지 판매가 가능했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스페인·독일 등에서는 재능 있는 외국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수입했다. 멀리 남미나 아프리카·아시아에도 눈을 돌렸다. 예컨대 프랑크푸르트의 차범근과 쾰른의 오쿠데라. 세계화에 기반한 더욱 치열한 경쟁은 좀더 재미있고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축구를 낳는 법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1990년대 들어서야 적극적으로 국제화의 이점에 눈을 떴다. 영국에서 생산해서 영국 내에서 판매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영국 내에서 다국적 기업처럼 생산하고 세계 시장을 상대로 축구를 판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개혁에 성공한 잉글랜드 축구
 
  먼저, 自國 선수들의 파이를 줄였다. 「프로 축구선수」는 꽤 훌륭한 직업이다. 이 일자리를 외국인에게 개방했다. 첼시 같은 경우 루드 굴리트(네덜란드), 지안루카 비알리(이탈리아) 같은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해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했다. 「첼시 라커룸에선 영어가 외국어」라는 농담이 오갔다.
 
  오죽하면 유수의 도박회사들이, 「첼시가 금년 시즌 열한 명 스타팅 멤버 중 영국인을 한 명도 쓰지 않고 벌이는 경기는 몇 경기나 될까」라는 주제로 내기를 걸었겠는가. 첼시는 그래서 「유럽 대륙의 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프로구단들의 기업 형태를 주식회사로 바꿔 축구판 바깥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축구를 단순한 취미와 레저가 아니라, 본격적인 산업으로서 보험이나 관광산업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는 분야로 육성한 것이다. 애호가들과 축구에 호의적인 기업가에 기대던 구조를 탈피해, 아예 프로 축구단을 주식회사로 만들고 증시에 상장해 주식시장에서 유망한 투자 종목으로 거듭나도록 했다.
 
  「프로 축구단은 일주일에 한 경기 이상을 치르므로 구단의 실력이 일주일 단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프리미어 리그 관계자들은, 프로 축구단은 일주일 단위로 매번 주주총회를 여는 기업이나 마찬가다. 이 이상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손들고 나와 봐라」는 논리로 투자자들의 마음을 열었다.
 
  산업구조가 뼈대를 잡아가자, 인구 수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본격적인 축구 시장을 수립하기 어려운 北유럽과 東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자기 나라의 대표급 선수 거의 전원을 프리미어 리그로 수출하고, 아예 自國 리그를 프리미어 리그에 원자재(선수)를 공급하는 계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프리미어 구단들도 미디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이들 나라의 시청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리그 자체가 국제적인 경연장의 성격을 띠며 진화하자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이 다투어 잉글랜드로 진출하는 선순환이 이어졌고, 타임 워너, 소니, 커널 플러스 등 세계 유수 다국적 멀티미디어 그룹들이 다투어 팀을 인수하며 시장 규모를 키웠다.
 
 
  진정한 실력자만 살아남는다
 
  유럽 축구계만큼 경쟁이 격렬한 분야도 지구상에 그다지 많지 않다. 진정한 실력자가 아니면 살아남거나 승리하기가 불가능한 세계다. 그래서 유럽 4강 중 세 팀이 잉글랜드 소속이라는 건 엄청난 사건이다.
 
  잉글랜드 축구팀들은 눈앞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고 내부 혁신과 외적 개혁을 통해 미래를 꿈꾸었다. 영국 축구인들은 달콤한 과실을 즐길 자격이 있다.
 
  확실한 진단과 올바른 처방, 그리고 규제 철폐와 기득권을 과감히 버린 지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시도와 줄기찬 도전. 행복한 미래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지성의 행운을 빈다. 또 다른 태극전사 프리미어 리거 이영표·이동국·설기현, 그리고 소속팀의 승격과 더불어 한국인 제5호 프리미어 리거가 된 김두현의 행운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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