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자들은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기차를 탄다. 기차 요금을 내려고 지갑을 열면, 그 아버지(후쿠자와 유키치)는 근엄하게 아들들을 지켜본다.
金珽運은 누구인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大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의 전임강사로 발달심리학·문화심리학과 관련된 여러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문화심리학의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문화심리학」이라는 책을 책임집필했다.
2000년 귀국해 명지大 사회교육대학원에 국내 최초의 여가학 석사 과정인 여가경영학과를 개설했다. 저서로는 「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이 있다.
2006년 9월부터 와세다大에 특별연구원으로 체류 중이다.
金珽運은 누구인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大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의 전임강사로 발달심리학·문화심리학과 관련된 여러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문화심리학의 세계적 석학들과 함께 「문화심리학」이라는 책을 책임집필했다.
2000년 귀국해 명지大 사회교육대학원에 국내 최초의 여가학 석사 과정인 여가경영학과를 개설했다. 저서로는 「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이 있다.
2006년 9월부터 와세다大에 특별연구원으로 체류 중이다.

- 무라오 기쿠치의 영화 팸플릿 사진. 나이가 마흔다섯이라는데 아직도 이렇게 눈이 촉촉이 젖어 있으면 분명히 사고 친다.
두 영화는 불륜에 관한 내용이며, 베스트셀러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두 영화 모두 남자 주인공의 연기가 장난이 아니다. 조폭의 칼질처럼 내 나이 남자들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와 비틀어 대기까지 한다.
「사랑의 유형지」의 남자 주인공 기쿠치 役(역)을 맡은 토요카와 에츠시는 나와 같은 1962년 3월生이다. 하지만 그는 나와 나이만 같고 모두 다르다. 같은 마흔다섯이라고 하기에는 분통이 터질 정도로 너무 다르다. 특히 그 젖은 눈이. 여자나 남자나 촉촉이 젖어 있는 눈은 위험하다. 토요카와 에츠시의 눈은 처음부터 끝까지 금방 눈물이 흐를 듯 젖어 있다. 그래서 사고를 친다. 아주 큰 사고를.
도쿄와 교토를 오가던 기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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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실락원」의 주인공 야쿠쇼 코지(왼쪽)와 구로키 히토미.「쉘위댄스」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삶이 피곤한 중년남자의 표정·몸짓·언어가 어떤지를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여 준다. |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도 없고,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들을 포기할 수도 없는 후유카는 사랑하는 남자의 손에 죽는 것을 택한다. 그 여자를 죽인 남자에 대한 재판과, 여자에 대한 남자의 기억을 추적하는 것이 영화의 전체 내용이다.
혼자 남겨진 기쿠치를 위로해 주는 것은 도쿄와 교토를 오가던 기차의 추억뿐이다. 어차피 주인공은 처음부터 외로웠다. 한때는 잘나가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하지만 이젠 대학의 시간강의나 나가고, 잡지에 허접한 잡문을 기고하면서 시부야의 좁은 작업실에서 쓸쓸하게 살고 있다. 아내와는 별거 중이다. 가끔 전화해 주는 딸이 있을 뿐이다.
후유카가 죽자, 놀란 기쿠치는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옥상난간에 매달리고 만다. 그리고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한다.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 이 중년남자는 재판 끝에 아주 조금 용감해진다.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죽였고, 어떤 벌도 달게 받을 수 있다』고 나름대로 과감하게 외친다. 눈은 여전히 물기에 젖어 있다.
부족한 일본어 때문에도 그렇고, 혼자 가기도 쑥스러워 동행한 미츠비시상사의 구리타 유리는 『일본 남자는 그렇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한국의 장동건, 소지섭이라면 분명히 따라 죽었을 것』이라 했다. 『한국 남자는 용감해서 좋다』고 했다.
『장동건과 소지섭도 나이가 마흔 넘으면 비겁해질 게 분명하다』고 주인공과 「나이가 같은」 내가 마구 흥분해서 설명했지만, 그녀는 『한국 남자는 다르다』고 계속 우긴다.
「실락원」
무서워서 따라 죽지도 못하는 「사랑의 유형지」의 주인공과는 달리 「실락원」의 주인공은 여자와 함께 죽는다. 「실락원」의 남자 주인공 구키 役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쉘위댄스」의 주연을 맡았던 야쿠쇼 코지다. 「사랑의 유형지」 주인공보다는 나이가 좀더 많다. 영화에서는 쉰 살로 나온다.
그러나 이 사내는 마흔다섯의 사내보다 더 큰 사고를 친다. 사랑하는 불륜의 여인과 같이 죽는다. 마지막 情死(정사)장면은 영화가 끝나고도 나를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함께 죽는 장면만 보면 된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불륜의 여인 린코와 함께 도망온 구키는 비싼 샤토 와인 「샤토 마르고」에 독약을 탄다. 이 독약의 특징은 죽을 때 몸을 굳게 한다는 것이다. 구키는 자신의 입 안의 와인을 린코의 입에 넣어 준다.
일본적 에로티시즘
이 장면의 에로티시즘은 정말 일본적이다. 둘의 입술과 혀만 화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입술 사이로 전해지는 붉은 포도주….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사라지는 사쿠라의 미학이다. 둘의 사체가 얼마 후 흰 눈에 덮인 채 발견된다. 마지막 화면에는 이런 자막이 나온다.
「둘의 몸은 서로 붙은 채 굳어 있었다. 국소 부분이 서로 붙어 있어서 떼어 낼 수 없었다」
구키도 「사랑의 유형지」의 기쿠치 만큼이나 외로운 남자다. 감독의 역량은 「실락원」의 모리타 요시미츠가 더 뛰어나다. 「사랑의 유형지」에서 목을 조르는 행위는 작위적이다. 「실락원」에서 구키를 둘러싼 절박한 상황에 대한 묘사는, 궁지에 몰린 구키의 마지막 선택에 공감이 가게 한다. 「안구가 마른」 남자들은 그런 과격한 선택이 가능한 젖은 눈의 주인공이 많이 부럽다.
한때 잘나가는 출판사의 편집장이었던 구키 또한 이제 한직으로 밀려나 있다. 그는 신문사 부설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작문법 강의나 하면서 지낸다. 그러다가 같은 문화센터의 서예강사인 매력적인 린코를 만난다. 그녀를 만나면 무척 즐겁지만, 회사에 돌아가면 비슷한 사내들이 한방에 몰려 있다. 그들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척,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구키의 후임 편집장은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그 역시 결국 밀려나고 만다. 올라갈 만큼 다 올라갔던 모양이다. 충격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그는 급성 암 판정을 받고 죽는다. 장례식에 다녀온 후, 회사의 상무에게 불려간 구키는 자신이 좌천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린코와의 불륜 사실을 린코의 남편이 투서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니, 구키의 아내는 책상 위에 이혼서류를 올려 놓고 나갔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자, 당신이라면 이제 무슨 선택이 가능하겠는가?」
슬픈 한국 남자는 당구장으로 가고, 슬픈 일본 남자는 기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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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는 듯한 붉은 단풍으로 유명한 교토「토후쿠지(東福寺)」의 계곡을 가로지르는 긴 회랑. 이 좁은 길에서「사랑의 유형지」의 두 주인공, 기쿠치와 후유카는 서로 눈이 맞는다. 길의 생긴 모양이 눈이 안 맞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
한국의 내 나이 친구들이 만나면 서로 참 많이 우울하다. 은행 지점장 하는 친구는 『돈 좀 우리 은행으로 몰아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밀려나면 마지막』이란다. 한 친구는 술이 몇 잔 돌아가면, 『미국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초짜 기러기다.
우리는 『마누라 이야기 좀 그만하라』고 화를 낸다. 우리가 더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잘 안다. 그런데, 자기 마누라 보고 싶은 것을 지금 우리더러 어쩌란 말인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부장인 친구는 얼굴 보기가 힘들다. 교수인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 그래야 이사가 된단다. 『이사 승진이 안 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회사 사장하는 친구는 그래도 좀 낫다. 하지만 좀 잘된다 싶으면 모두들 바로 따라오기 때문에 항상 피곤한 얼굴이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친구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술은 마시지 않는다.
오늘 못 나온 친구 하나가 며칠 전 입원했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가슴이 덜컥한다. 『자식들이 속 썩이는 이유는,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자학하는 「참 착한」 친구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발기불능으로 한동안 한약을 먹었다』는 친구는 『이젠 좀 괜찮다』며 씩 웃는다. 그렇게라도 서로 웃어 본다.
별로 갈 곳이 없는 우리는 이제 당구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몇천원짜리 「게임비 내기」 당구를 친다. 대학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80점을 유지하고 있는 내 별명은 「지옥에서 온 염전」이다. 그래서 그 정겹고 아름다운 외침, 『아줌마 여기 났어요!』는 항상 내 몫이다.
이런 중년남자들 덕에 요즘 종로, 광화문 근처의 당구장·탁구장이 그렇게 호황이란다. 누가 대답 좀 해보라. 당구장 가는 것 말고, 도대체 이 나이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신데모이이(죽어도 좋아)』
영화의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일본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 중년들의 환상이 아직도 가능하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우선 눈이 촉촉이 젖어 있을 것. 둘째로 앞가르마에 긴 곱슬머리일 것. 두 영화의 주인공, 기쿠치와 구키의 공통점이다.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둘 다 열심히 기차를 탄다. 한국 남자들은 종로의 당구장으로 가고, 일본 남자는 기차를 탄다. 그러니까 한국 남자는 당구장에서, 일본 남자는 기차에서 그 절망을 위로 받으려는 것이다.
「사랑의 유형지」의 기쿠치는 도쿄와 교토를 오가는 신칸센을 열심히 탄다. 돈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교토까지 가는 신칸센은 왕복 2만 엔이 훨씬 넘는다. 그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확인하러 갔다. 교토까지 신칸센을 타고. 영화 속의 둘의 첫만남이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사십 중반의 남자가 혼자 오래 지내다 보면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집요해진다.
기쿠치가 후유카를 처음 만난 곳은 교토의 「토후쿠지(東福寺)」라는 절이다. 교토의 다른 절에 비해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계곡을 옆으로 끼고 있는 이 절은 불타는 듯한 가을단풍으로 유명하다. 계곡 위로는 「츠덴바시」라는 구름다리가 있다. 「하늘로 통한다」는 의미다. 이 구름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풍광이 아주 독특하다.
절의 입구에서부터 이 계곡까지 이어지는 상당히 긴 회랑이 있다. 이곳에서 기쿠치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회랑 끝에서 후유카가 나타난다. 우아하다. 회랑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왼손으로 가리는 그 모습이 화장품 선전에 나오는 여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기쿠치는 들고 있던 카메라의 셔터를 정신없이 누른다.
기차역의 에로티시즘
이렇게 눈이 맞은 두 남녀는 교토驛과 붙어 있는 최고급 그랑비아 호텔의 커피숍에서 문학 이야기를 나눈다. 후유카는 기쿠치의 오래된 팬이라며 가져온 책에 사인을 부탁한다. 호텔의 커피숍 너머로 사람들은 바쁘게 역사를 오간다.
기차역은 원래 에로틱한 공간이다. 항상 들어왔다 나가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기차든. 이 둘이 괜히 교토驛 안으로 들어온 게 아니다.
교토驛은 이 정도는 되어야 모름지기 기차 驛舍(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듯 어마어마하다. 정말 멋있다. 왼쪽에는 그랑비아 호텔, 오른쪽에는 최고급 이세탄 백화점이 있다. 지상 15층의 가운데 건물 내부는 뻥 뚫려 있고, 철골과 유리가 기하학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엄청나게 넓은 계단이 2층부터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 교토驛은 현대건축 디자인과 기차역의 에로티시즘이 만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실락원」의 구키는 린코와 신주쿠나 시나가와驛에서 항상 어딘가를 향하는 기차를 탄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이 영화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나는 또 궁금해졌다. 구키와 린코는 기차 안에서 서로에게 과자를 먹여 주며 즐거워한다.
둘이 바닷가를 거닐며 이야기하고 근처의 호텔에서 사랑을 나눈다. 정말 뼈와 살이 타는 밤을 보낸다. 야경이 아름다운 그곳이 도대체 어딘지 궁금해졌다. 살펴보니 그리 멀리 가는 기차는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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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와 철골구조로 된 엄청난 규모의 교토역 내부. 중간에 보이는 둥근 창문이 그랑비아 호텔의 커피숍이다. 기쿠치와 후유카는 토후쿠지(東福寺)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신다. 기차역은 원래 에로틱한 공간이다. 뻥 뚫린 공간으로 항상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둘이 괜히 이곳으로 온 게 아니다. |
구키와 린코의 밀애 장소를 추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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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마쿠라 인근의 에노시마. 겨울 바다는 바람이 무척 세다. 그 바람을 타고 윈드서핑 마니아들은 한겨울의 바다를 물개처럼 들락거리고 있었다. 섬 가운데 있는 탑이 식물원의 전망대다. |
나도 기차를 타고 에노시마로 갔다. 혼자 갔다. 열차 안의 내 옆의 사내는 연신 안약을 눈에 넣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앞가르마에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에노시마는 신주쿠에서 카타세에노시마驛으로 가는 특급열차를 타고 가면 된다. 아주 가깝다. 1시간 정도면 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로망스카」를 타고 마주 보고 갔지만, 혼자서 가는 나는 좌석이 우리나라 전철처럼 생긴 일반열차를 타고 갔다.
로망스카는 600엔이나 더 비싸다. 가깝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가는 비용이다. 그래도 매번 교토까지 가야 하는 기쿠치보다는 훨씬 싸다.
에노시마는 12세기 무렵부터 시작되는 일본 무사정권의 본거지가 되는 가마쿠라에 바로 이웃해 있다. 가마쿠라는 벚꽃이 하얗게 날리는 봄에 가봐야 한다는 일본 친구의 조언을 따라 난 에노시마만 보고 왔다.
어차피 구키와 린코를 추적하는 것이 내 목적이었으니까. 에노시마는 두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섬의 한가운데는 식물원이 있고, 식물원에는 가마쿠라 인근의 바다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아름답게 휘어진 해안선이 린코의 하얀 가슴처럼 눈부시다.
聖橋와 性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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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노시마의 정상에 있는 식물원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가마쿠라 인근의 해안선. 해안선의 파도가「실락원」의 여주인공, 린코의 하얀 가슴처럼 눈부시다. |
JR주오線(선)과 소부線이 지나는 이곳은 무척 아름다우면서 어딘가 우울하다. 참 묘하다. 다리와 기찻길, 그리고 강물이 서로 떠나고, 떠나 보내며 만들어 내는 우울함이다. 그래서인지 스미다가와江을 끼고 있는 오차노미즈驛은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한다.
「성스러운 다리」를 뜻하는 하지리바시(聖橋)의 한자를 우리말로 읽으면 「성교」가 된다. 성스러운 다리를 뜻하는 聖橋와 또 다른 의미의 性交(성교).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릴 때면 항상 그랬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그러면 아이는 울고, 어른들은 즐거워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진실을 말한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다리」를 그 냇가의 다리로 이해했을 따름이다. 프로이드에게 이런 식의 언어연상놀이는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리비도적 충동의 무의식적 왜곡인 것이다.
그렇다면 「聖橋」를 「性交」로 읽는 것은 이 글을 쓰는 나의 리비도적 충동의 결과란 이야긴데… 아, 혼자 너무 오래 있었다.
프로이드도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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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차노미즈驛과 아름다운 하지리바시(聖橋). 다리와 기찻길, 그리고 강물이 서로 떠나고, 떠나 보내며 만들어 내는 묘한 정경 때문에 이곳은 일본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촬영장소가 된다. |
동생과 함께하지 않을 때는 처제인 민나 베르나이스와 자주 여행을 떠났다. 초기에는 아내 마르타와 함께 했다. 그러나 얼마 후부터 마르타는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한다.
처제 민나가 남긴 편지들을 보면, 그녀는 무척 따뜻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여행길에서 기차 승무원과 싸우기도 하고, 음식투정이 심하고, 잠자리가 나쁘면 불평을 참지 못했던 프로이드에게 처제 민나는 편안한 동반자였던 것 같다.
문제는 민나가 처제라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의심받게 되어 있다. 실제로 프로이드의 수제자이며 후계자로 사랑받던 칼 구스타프 융은 프로이드를 떠나면서 그의 인격을 비난했다. 비난의 여러 근거 중에 처제 민나와의 관계가 포함된다.
알프레드 아들러 역시 프로이드와 결별하며 민나와의 관계를 비난했다. 빌헬름 라이히는 『프로이드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프로이드와 결별한 가까웠던 제자들은 한결같이 자기 스승의 여자관계를 비난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性(성)의 문제를 학문적 담론의 주제로 끌어 올린 프로이드다. 당연히 모두들 프로이드 자신의 性은 어떤가에 관심을 가졌다. 이 부분에 대해 프로이드는 결벽증처럼 침묵했다. 그 어떠한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집요한 이들은 『프로이드가 진정한 정신분석학자라면 자신의 본능적 욕구에 대한 분석결과도 밝혀야 한다』며, 그에게 고백을 강요했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절대 자신의 性的(성적)인 욕구나 여성에 대한 욕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단 한 번만 제외하고.
프로이드가 남긴 자신의 性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1915년 7월8일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제임스 퍼트넘에게 보낸 편지에 있다. 프로이드는 이렇게 썼다.
처제와 「은밀한 관계」였던 프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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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발견된 프로이드와 처제 민나 베르나이스의 밀애관계를 증명한다는 프로이드의 자필서명. 프로이드는「Dr Sigm Freud u frau」(지그문트 프로이드 박사와 아내)라고 서명했다. |
참 애매하다. 만약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 자유를 전혀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써야 맞다. 『거의 이용한 적이 없었다』는 말과, 『경계에 서 있다고 느낄 만큼만 그 자유를 이용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좌우간 뭔가는 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가장 가까웠던 제자들의 증언 등을 고려해 볼 때, 그 대상이 처제 민나였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사촌과도 결혼할 수 있었던 당시 독일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경계에 서 있는 자유란 「처제와의 사랑」으로 봐야 할 듯하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아홉 살 연하의 처제 민나와의 관계는 여전히 집요하게 추적당하고 있다. 200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뉴욕 타임스」는 프로이드와 처제 민나 베르나이스는 「은밀한 관계」였다고 보도했다.
1898년 8월13일 스위스 말로야의 호텔 「슈바이처하우스」에 투숙한 프로이드의 자필 서명이 최근에 발견되었는데, 프로이드는 「Dr. Sigm Freud u frau」라고 썼다는 것이다. 처제 민나를 동반한 첫 번째 여행에서 프로이드는 처제를 아내라고 쓴 것이다.
그 이후로 처제 민나는 아내 대신 계속 프로이드와 여행을 함께 한다. 「실락원」의 구키와 린코의 밀애 장소를 찾아 낸 나의 본능적 감각으로 당시 그 호텔에서의 상황을 추리해 보면 이렇다.
프로이드와 민나가 호텔에 들어선다. 당시 프로이드는 42세, 민나는 33세다. 누가 봐도 부부다. 호텔 직원은 당연히 방 열쇠 하나만을 내민다. 프로이드는 열쇠를 받아 민나에게 웃으며 넘기고는 프런트의 숙박계에 서명한다. 「프로이드 박사와 아내」라고. 그리고 함께 아주 우아하게 방으로 가서 열쇠로 방문을 열고, 민나에게 웃으면서 들어가라고 한다. 프로이드가 따라 들어가고 문은 닫힌다.
뭐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달리 추리가 가능할까. 그러나 프로이드가 기차여행을 떠난 것은 단순히 처제와의 밀월을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처제와의 밀애는 프로이드에게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처제와의 불륜을 위해 프로이드가 기차를 탔다면 그건 그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너무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꼭 처제 민나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프로이드의 밀애여행의 상대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뉴욕 타임스」紙의 기자는 프로이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프로이드는 처제 민나와 기차를 탔다」가 아니다. 「프로이드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처제 민나와 기차를 탔다」라고 해야 한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이 사실이 중요하다. 프로이드의 아버지는 1896년에 사망했다. 1898년부터 프로이드는 처제 민나를 여행에 동반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벗어나려고 탄 기차
프로이드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기차를 탔다. 프로이드에게 행복은 이런 것이다.
『행복이란 옛날 옛적에 품었던 욕망의 뒤늦은 실현일세. 바로 이것이 富(부)와 행복이 거의 비례하지 않는 이유지. 돈은 어렸을 때 품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네』(「정신분석혁명」, 233쪽)
프로이드가 품었던 그 오래된 욕망은 도대체 뭘까. 그것은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프로이드에게 무척 자상했던 것 같다. 프로이드는 『아버지의 사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유대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의 형성과정에서 어린 프로이드는 아버지의 비겁한 행동으로 인해 엄청난 상처를 입는다. 그 후, 프로이드의 무의식에서는 고된 아버지와의 상징적 갈등이 지속된다.
죽은 아버지로부터의 自由
프로이드의 평생 취미였던 골동품 수집과 철도여행은 결국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다. 1896년 아버지가 죽자, 프로이드는 아버지의 상실에 대한 슬픔과 지금까지 자신을 억압했던 아버지로 인한 무의식적 억압 사이에서 무척 혼란스러워한다.
프로이드는 이때부터 조각품·골동품을 강박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다. 죽은 아버지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골동품 수집으로 전이된 것이다. 골동품은 아버지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시간만 나면 아버지의 도시인 오스트리아 빈을 벗어나려 했다.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과 자신을 동일시한 프로이드는 이탈리아의 로마를 무척 여행하고 싶어 했다. 한니발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로마에 대한 복수심을 일깨워 준 반면, 자신의 아버지는 유대인에 대한 모욕을 그저 피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프로이드의 여행에서 처제 민나가 동반했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프로이드의 불륜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한 자기 부정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불륜의 상대가 꼭 민나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 불분명한데 무슨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1901년 처음으로 로마에 도착한 프로이드는 무척 기뻐했다. 끝내 로마를 정복하지 못한 한니발이 못 이룬 일을 자신은 이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은 아버지의 무의식적 억압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를 생각하게 된 것은 로마를 여행한 후, 몇 년이 지나서였다.
1904년경부터 프로이드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 확신하기 시작한다. 프로이드에게 있어 성공이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아버지보다 더 멀리 가는 것이었다. 1856년생인 프로이드는 48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늘이 큰 아버지를 둔 자녀가 뛰어나는 것은 너무 고단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 시대로서는 아주 평범한 상인에 불과했고, 중등교육밖에 받지 못했던, 그리고 비겁했던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프로이드 같은 위대한 인물도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본다면 훌륭한 아버지를 두는 일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그림자와 투쟁하는 남자들
재벌 2세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들은 프로이드의 말대로 행복과는 별로 상관없는 돈만 상속받을 따름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림자와 투쟁해야 하는, 참으로 힘겨운 싸움을 평생 해야 한다.
그늘이 큰 아버지를 둔 자녀들은 항상 둘 중 하나다. 계속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 나려고 끊임없이 기차를 타든지, 아니면 포기하고 아버지의 고향에 눌러 앉든지 한다.
「젖은 눈」의 슬픈 일본 남자들이 끊임없이 기차를 탄다. 그들은 그저 밀애를 즐기려고 기차를 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짓누르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기차를 타는 것이다. 그들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은 「근대일본의 아버지」의 긴 그림자다.
프로이드의 아버지처럼 근대일본의 아버지도 일본인들의 자기정체성 형성과정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그 아버지는 자식들이 동양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닌,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길 강요했다.
정체성이 흔들리고, 불안한 이들의 사랑은 내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자폐증적 강박행동일 뿐이다. 「신데모이이(죽어도 좋아)」 그러면서 독약을 먹고 함께 죽거나, 목 졸라 죽이는 행동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경계에 서 있다고 느낄 만큼만 그 자유를 이용했다」고 처제와의 불륜을 간단히 정리해 버리는 프로이드와는 정반대로, 젖은 눈의 일본 남자들은 너무나 비장하게 불륜에 목숨을 건다. 이건 너무 오버다. 이렇게 오버하는 이유는 일본 남자들에게 아버지의 그림자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비겁했던 프로이드의 아버지와 근대일본의 아버지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버지가 죽자 프로이드는 부지런히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그 아버지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근대일본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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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엔짜리 지폐의 근대일본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 유대인의 정체성과 관련해 어정쩡한 태도로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줬던 프로이드의 아버지와는 달리, 유키치는 일본의 아들들에게 동양인의 정체성을 버리라고 강하게 요구한다. |
일본 남자들이 아버지 그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타는 그 기차는 모두 그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지금도 젖은 눈의 사내들이 시부야驛에서 기차 요금을 내려고 지갑을 열면, 그 아버지는 항상 같은 표정으로 근엄하게 아들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 근대일본의 아버지는 바로 「脫亞論(탈아론)」의 후쿠자와 유키치다.
프로이드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내놓고 아들들에게 「동양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라」고 요구한다.
『惡友(악우)와 친하게 되면 악명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진심으로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를 사절해야 할 것이다』(유키치의 「탈아론」 중에서)
게이오大를 설립하고 문명·개화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이 근대일본의 아버지는 일본의 아들들에게 서구 기술문명을 열심히 배워, 서구문명국의 일원이 되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방 구석구석까지 기찻길부터 부지런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기차의 나라다. JR신바시驛에서 내려 약간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포르셰 전시장이 있고, 그 옆에 舊신바시정거장이 있다. 포르셰 전시장과 옛날 기차역이 함께 있는 것이 참 일본적이다. 舊신바시정거장에는 철도 驛舍 전시실이 있다.
기차의 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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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舊신바시정거장의「Mile Marker Zero」. 여기서 일본 기차는 출발했다. 벗어날 수 없는 근대일본의 아버지의 그림자가 시작되는 곳이며, 동시에 젖은 눈의 일본 남자들의 방황이 시작되는 곳이다. |
일본 내에서의 여행은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싸다. 고속도로 이용료가 무척 비싸다. 좀 멀리 가면 수만 엔은 기본이다. 그럴 바에는 싸고 편히 앉아 가는 기차 편이 훨씬 행복하다. 기차의 선로는 거미줄처럼 거의 모든 곳에 연결되어 있다.
일본이 「기차의 나라」라면, 독일은 「자동차의 나라」다. 그래서 우울한 독일 남자들은 자동차 뚜껑이 뒤집어지는 카브리오를 타고 아우토반을 미친 듯 달린다. 우울한 일본 남자들은 처진 어깨에 가방을 메고 기차를 탄다.
일본 기차는 빠르다. 근대일본의 국가적 상징은 눈 덮인 후지山을 배경으로 달리는 신칸센이다. 누구나 아무 어려움 없이 그 장면을 기억해 낼 수 있다. 후지山만큼 신칸센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즈음해 개통된 신칸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오래된 고속전철이다.
빈틈 메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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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역에 정차해 있는 신칸센. 일본의 기차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차기술은 기술문명의 발달의 기본 메커니즘을 잘 보여 준다. 빈틈 메우기. 그래서 신칸센은 기차의 전형적인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바람과의 마찰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
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여행의 역사」라는 책은 기차의 기술적 발전이 인간의 개인의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심도 깊게 설명해 주고 있다. 기차를 포함한 근대기술의 핵심은 빈틈을 없애는 것에 있다.
톱니바퀴를 만드는 기술 수준이 낮을수록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게 되어 있다. 톱니바퀴가 완벽해지면 각 부분들 간의 빈틈이 줄어들어 소리가 거의 나지 않고 돌아가는 터빈으로 발전한다.
우리가 낭만적으로 기억하는 기차의 덜커덩거리는 소리는 신칸센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기계들 사이의 빈틈에서 나는 소리는 거의 없다. 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자연과의 마찰 소리만 엄청크게 들린다.
기차의 기술적 발전은 인간과 기차 사이의 빈틈을 줄였다. 기차 부속들의 빈틈이 사라질수록 기차를 운전하고 전체 시스템을 관리하는 인간 조직 사이의 빈틈이 줄어야 한다. 인간이 기계들의 빈틈을 메워야 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행위는 갈수록 더 분화되어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는 단순한 기능으로 환원된다. 영화 「철도원」은 이러한 근대 기차의 기술발전과 인간 행동의 빈틈 메우기가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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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철도원」의 주인공 오토마쓰 役의 다카쿠라 켄. 전혀 울지 않을 것 같은 사내의 회한의 눈물에 모든 일본이 따라 울었다. 기차 기술의 빈틈을 메우던 남자들의 허무한 삶을 장인정신이란 키워드로 폼 나게 만들어 준 영화다. |
그가 하는 일은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아주 작은 빈틈에 불과하다. 그 일로 평생을 보낸 그를 위로하러 저승에서 죽은 딸이 돌아온다. 딸은 『무엇 하나 좋은 일 없었던 아버지』라며 엄마가 매일 입었던 빨간 조끼를 입고 아빠를 위해 찌개를 끓여 준다.
글을 쓰면서 이 장면이 떠올라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영화 「철도원」은 한국 영화 「파이란」과 함께 내가 가장 많이 운 영화다.
밥상을 대하고 오토마쓰는 정말 오래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 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어떻게 그런 삶이 행복한 삶이겠는가. 그러나 근대일본 남자의 삶은 그래야 했다. 근대일본의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동양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근대기술의 빈틈을 메우는 삶을 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착한 아들들을 장인정신이란 이름으로 위로했다. 이런 위로만으로 기계의 빈틈을 메우며, 자신의 삶을 한결같이 희생한 철도원 같은 착한 아들들 때문에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일본에는 이런 착한 아들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 다음 세대의 「젖은 눈」의 일본 남자들은 이전 세대의 「빈틈 메우기」의 삶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영화처럼 17년 전에 죽은 딸이 다시 나타나 위로해 주는 황당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도 위로해 주는 이 없이, 죽은 사람의 유령을 기다리며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우겨야 할 판이다.
기차가 그들을 구원해 주지는 않는다.
더 이상 속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은 선택은 아직까지는 위로해 줄 수 있을 듯한 여인을 데리고 떠나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끔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까지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일본의 수없이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기차는 지친 삶에서 주인공을 건져 주는 구원의 도구가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기차는 절대 이들을 구원해 줄 수 없다. 신칸센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그 아버지의 긴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 전부 그 아버지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실락원」과 「사랑의 유형지」는 그 좌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