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감수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낯섦을 더욱 낯설게 일그러뜨리고, 생경함을 非文(비문)으로 토해 내는 作法(작법)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불쾌하게 만든다. 20년 전 황지우가 즐겼던 「파괴의 양식화」를 가볍게 뛰어넘는다.강정의 詩集(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문학동네 刊)과 김경주의 詩集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중앙 刊)를 읽노라면 짜증이 난다. 간혹 왜 이런 詩를 쓰는지 詩人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물어본들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 독자들은 왜 그의 詩를 읽을까. 답이 아득해지기는 피차일반이다.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냉온이 빠르게 교차하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나라고 하는 건/한갓 누군가의 원망을 대신 실현하려/파리나 모기 따위에게로 쏠리는 식욕을 감춘 채 인간의 영역에 파견된/짐승과도 같다는 것
(강정의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중에서)
말장난 같기도 한 생경한 단어들의 잔치다. 「잔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詩라는 장르가 지녔던 운율이니, 압축이니 하는 전통적 합의는 간단히 폐기처분된다. 길고 유장한 언어로 노래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상을 노래하진 않는다. 정형화된 세상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오리들이 죽은 시궁쥐들을 물고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간다/하수구에서 방 안의 날씨들이 눈병처럼 흘러나온다/이 동네를 마지막으로 돌아야겠군//용달차 뒤칸에서 키 작은 여인들이 생선을 뒤적거린다/생선을 좀더 싱싱하게 보이려고 사내는/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전구를 꺼내 갈아주면서 보았다
(김경주의 「구름의 照度」 중에서)
그네들의 詩를 評(평)한 발문이나 문예 계간지의 논평을 읽어 봐도 도통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詩보다 더 복잡하게 써놓아 詩를 더 어렵게 만든다. 그럴듯하면서도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 투사체 같다.
야릇한 혼돈
강정·김경주와 같은 1970년대産 젊은 詩人들의 변주곡은 이미 우리 문단의 「질서」로 자리 잡았다. 혼돈과 말의 「잔치」, 낯선 화법의 「유령」들은 벌써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 외에도 황병승·김행숙·김언·유형진·이원 등도 같은 부류다. 젊은 詩人들은 이 세계가 부여하는 기억의 얼굴을 거부하는 자들이다.(평론가 김수이)
저 지겨운 몰입을 보라/ 詩를 낳을 저 몸이 내 안에서 살던 것이라니!/나는 낯설기 짝이 없는 내 눈을 긁적거리기나 하자
(강정의 「알을 품은 시인」 중에서)
그렇다고 이들의 詩를 내다버려야 할까? 젊은 이단아의 詩를 구속시켜야 할까?
강정과 김경주는 되레 『구속시켜라』고 외친다. 구속시킴으로써 자신은 평면적 해석에 저항하는 戰士(전사)가 되기 때문이다. 강정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만든 것들이 또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 나의 몸뚱이를 구속하고 내가 그것들을 구속하는 것. 나의 꿈이란 나 스스로 처형받고, 나를 고문하는 그 폭압적인 감각의 소란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젊은 詩人들의 詩를 「이건 詩가 아니야」라고 외치자마자, 세상은 「폭압적인 감각의 소란」들로 흥건해진다. 그러니 꾹 참아야 한다. 불만이 있으면 그네들의 詩를 읽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未(미)정형의 詩에 자꾸 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정의 詩的 쿠데타나 김경주의 기형적 변주곡은 「얄밉게도」 야릇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역설적이다. 그네들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대상을, 확신에 찬 어조로 노래한다. 쥐뿔도 없는 확신일 테지만, 탕자의 강인함 같은 완력이 가득하다.
너무나 확신에 차 있어 독자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詩人 성기완은 강정을 가리켜 남근들이 흐물거리는 시대에 보기 드문 빳빳한 남근 이미지를 지닌 詩人이라고 평한다. 詩人 권혁웅은 김경주를 『非文(비문)마저 오래 들앉아 생각 키우게 만드는 감각의 논리를 갖췄다』고 말한다.
강정과 김경주는 2000년대 중반의 거친 젊은 詩人의 전형이다. 그네들은 자신의 詩를 독자들이 외면하면 할수록 독자들을 더욱 「불쌍한」 존재로 만든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친다.
휴일엔 가끔 혼자서 십자가를 뒤집어 놓고 방에 앉아 쓸쓸한 칼을 갈기도 하는 거야. 이런 당신들은 정말 한패로군. 내 새장의 새들이 입을 열지 않아 오늘도 밤을 샐 모양이군 (김경주의 「몽상가」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