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EO 列傳 ⑨ 兪相玉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 월간조선

兪相玉(유상옥·73)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의 이름 앞에는 늘 두 개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화장하는 남자」와 「55세에 創業(창업)한 CEO」이다. 심상치 않은 타이틀답게, 그는 재계에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꼽힌다.

兪회장은 동아제약에서 30여년 동안 근무하다가 쉰다섯에 퇴직금 1억원을 들고 「코리아나화장품」을 세웠다. 그는 창립 5년 만에 코리아나화장품을 매출 1000억원대의 업계 3위 기업으로 끌어올렸고, 1999년 12월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兪회장은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매니큐어나 립스틱 등 색조화장까지 직접 테스트해 봐, 「화장하는 남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11월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코리아나화장품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170cm의 키에 다부진 체격의 兪회장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兪회장은 『月刊朝鮮의 오랜 독자』라며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오늘도 화장하신 건가요.

『그럼요. 남자들도 화장을 합니다. 여성들의 색조화장만 화장이 아니에요. 화장은 피부청결·피부보호·미화의 세 가지 기능이 있죠. 색조화장은 이 중에서 미화에 속하는 것이고요. 남성들이 사용하는 샴푸·린스·비누, 면도용(셰이빙) 폼, 스킨·로션이 모두 화장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화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성용 색조화장을 하셨나 싶어 여쭤 봤습니다.

『신제품 출시될 때 가끔 하죠』

―연세보다 젊어 보입니다.

『비결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코리아나화장품을 꾸준히 바르는 거죠(웃음)』

코리아나화장품은 지난 11월15일 창립 18주년을 맞았다. 이 회사에는 올해 변화가 있었다. 중국의 천진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고, 단독 부사장 체제에서 複數(복수) 부사장 체제로 바꿨다. 이를 위해 CJ 출신의 金台竣(김태준·46) 부사장을 마케팅 부서장으로 영입했고, 高美希(고미희) 상무도 외부에서 모셨다.

중국 내수시장 공략 위해 천진공장 가동

동아제약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兪相玉 회장.

―올해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코리아나화장품 「氣運生動(기운생동)」의 해예요. 화장품 업계는 2003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에 접어들었어요. 수출산업은 성장했지만, 내수소비시장은 침체에 빠졌죠. 당시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신용불량자 수가 400만 명을 넘어서면서, 패션과 화장품 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어요.

1980년대 후반 50여 개였던 화장품 회사가 700~800개로 늘어났죠. 시장의 전체 규모는 줄어드는데, 회사는 늘어나는 기형적 상황이 벌어졌죠.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외부에서 인력을 충원했습니다. 내년에는 「活氣衝天(활기충천)」의 해가 돼야죠』

―중국의 천진공장 가동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포석이죠. 국내 시장은 한계가 있고, 결국 중국에서 결판을 내야 할 것으로 보여요. 현지에서 생산해 현지 시장에 화장품을 팔 생각입니다』

―「미샤」, 「더페이스샵」 등 低價(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많아졌습니다. 타격이 크지 않나요.

『우리 같은 중견 화장품 회사가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어요. 요즘은 低價 브랜드의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어요. 화장품은 이미지 사업이에요. 低價 화장품은 옷으로 치자면, 무명옷입니다』

―비싼 화장품이 낫다는 말씀이신가요.

『싼 것보다는 비싼 것이 좋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있고, 검증된 상품을 써야 한다는 얘기예요』

―코리아나화장품은 검증된 화장품인가요.

『우리는 그동안 화장품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둬 왔어요. R&D(연구 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았죠. 화장품을 출시하기까지 과정이 무척 까다로워요. 연구원들이 눈을 가린 채 화장품을 검사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매번 합니다. 4점 만점인데, 화장품의 퍼짐성·발림성·당김성 중 어느 하나라도 3.7점을 넘지 않으면 出荷(출하)하지 않아요. 「姿人(자인)」 브랜드는 200번 테스트를 했을 정도죠. 이런 과정이 검증이죠』

―코리아나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의 해외 명품 선호도가 높지 않나요.

『높아요. 하지만 소비자의 그런 성향을 탓해서는 안 돼요. 우리 제품이 外製(외제)에 못지않다고 인정을 받아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R&D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어요』

「생얼시대」의 화장法

코리아나화장품은 현재 30~40代 여성을 위한 브랜드 「姿人」과 「코리아나」, 20代 여성을 위한 「엔시아」, 기초 화장품 「녹두」 등 총 10개의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다. 코리아나의 천안공장은 한 해 3000만 개의 단일 화장품을 생산할 수 있다. 회사의 매출은 2001년 3500여억원에서 1300여억원대로 뚝 떨어지면서 한동안 적자였지만, 지난해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요즘 네티즌들의 화두인 「생얼」(화장하지 않은 얼굴)과 화장품 매출이 상관이 있을까.

―「생얼」 아세요.

『생얼, 알지요. 그게 화장 안 한듯 기술적으로 화장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완전 맨얼굴을 말하는 게 아니죠. 스킨·로션·영양크림 다 바른 상태를 말합니다. 파운데이션을 좀 덜 바르고, 색조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죠』

―그럼 화장품 매출이 오히려 늘어나겠군요.

『피부에 투자를 많이 해야죠. 요즘 「생얼시대」니까 화장을 전혀 안 하겠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손해를 봐요(웃음). 외부 자외선이며, 공해를 방지하는 기초 제품을 꾸준히 바르는 것이 피부 건강을 위해서 좋죠. 생얼 열풍이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봐요』

―신제품 출시 주기가 있나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제품이 나올 때마다 직접 테스트하시나요.

『그럼요. 저희 집 곳곳에 화장품이 넘쳐납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샤워 부스 안에만 19개가 있더라고요(웃음). 새로 나온 것도 써보고, 남의 것도 써보고, 견본도 써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제품은 「머드팩」

―경쟁사 제품 중에서 종종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겠네요.

『있죠. 어떤 산업이든 자기의 것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사와 철저히 비교하는 것이 필수예요. 비교 테스트를 꼭 해야 한다고 봐요. 종종 마음에 드는 他社(타사) 제품을 발견하면, 우리 회사 연구실에 보내서 성분부터 전부 분석하라고 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좋은 제품이 탄생하기도 하죠.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이렇게 울었나보다」徐廷柱(서정주) 시인의 詩 알죠? 그 마음이 이해 가죠(웃음)』

―여태까지 출시한 제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창업 5년차에 내놓은 「머드팩」(진흙팩)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 모델이던 시라(탤런트 채시라)가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CF에 나왔는데, 대성공이었죠. 그게 팔리니까, 다른 제품까지 덩달아 팔리는 거예요.

그해 매출이 전년보다 3배 이상인 1300억원대를 기록했어요. 코리아나를 창업한 지 5년 만에 국내 500大 기업에 뽑히더군요. 처음으로 기업하면서 성취감이란 것을 느꼈어요. 1997년에 내놓은 페이스 파우더는 국내 10大 화장품으로 뽑혔고, 마니아 고객들이 많아 같은 제품을 10년째 생산하고 있죠』

兪회장은 코리아나화장품의 히트 상품을 되짚어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의 웃음이 계속됐다. 그는 화장품 업계에서 「최장수 모델」 기록을 갖고 있는 탤런트 채시라 얘기를 계속했다.

『예전 얘기하니 좋네요. 어제 점심도 시라랑 같이 했는데, 제 가족 같아요. 시라가 「여명의 눈동자」라는 TV 드라마를 찍었을 때 픽업해서 15년 동안 모델을 시켰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코리아나 하면, 시라가 손을 코에 댔다가 떼면 「코리아~나」라고 말하는 장면을 기억해요. 코리아나와 시라가 각자의 분야에서 함께 성장했어요.

제가 한 우물 파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모델도 오랫동안 바꾸지 않았죠. 일관성 있는 회사 이미지를 주고 싶었거든요. 시라가 나이가 들어 TV 모델을 바꾸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시라와 좋은 인연을 가져갈 생각입니다』

―좀전에 화장품은 이미지 사업이라고 하셨죠. 코리아나의 이미지가 어떻다고 自評(자평)하시나요.

『화장품은 좋은데, 조금 비싸다는 것』

―마음에 드세요.

『네, 늘 그렇게 평가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품질 좋고 값도 싸면 더 좋을 텐데요.

『에이, 저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제 값 받고 팔자는 주의예요』

―해외 브랜드 중에서 가장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화장품은 어떤 제품인가요.

『프랑스의 「이브로셰」가 식물성 화장품 이미지로 유명하죠. 처음에는 그 회사가 내놓은 제품 용기에 꽃을 그리고 해서, 고급스럽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이미지가 일관성 있게 수십 년 쌓이다 보니,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받아들이더라고요. 이미지 수립에 가장 성공한 회사라고 생각해요』

티베트에서 찾은 화장품 원료

兪회장이 대뜸 자기 명함을 한 장 더 꺼내 책상에 올려놨다. 그의 명함 왼쪽에는 코리아나의 로고가 있는데, 그 밑에 「자연을 통한 예술」(Art Through Nature)이라고 적혀 있었다. 코리아나 화장품의 철학이 바로 자연을 통한 아름다움의 예술창조라고 한다.

『화장품 사업은 예술입니다. 내용물 외에 화장품 용기도 잘 만들어야 하고, 마케팅도 예술성을 고려해야 하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가꾸는 예술이죠』

兪회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제야 그의 사무실에 유난히 식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의 책상 옆에 있는 잎이 손바닥처럼 쩍 벌어진 나무와 창가에 있는 낮은 녹색의 화분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兪회장이 벌떡 일어나 평범해 보이는 1m가량의 나무 줄기를 들고 왔다.

『이게 바로 예덕나무예요. 우리 회사를 먹여살리는 식물이죠』

兪회장의 말에 따르면 예덕나무에서 피부 미용에 좋은 물질이 나오는데, 코리아나화장품의 모든 제품에 첨가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예덕나무를 발견하기까지 사연이 복잡하다.

『몇 해 전에 김진경 연변과학기술大 총장의 초청으로 延吉(연길)에 가게 됐어요. 간 김에 중국에서 뭣 좀 건져올 것이 없나 싶어 「유능한 화학 교수 한 명을 소개시켜 달라」고 그랬어요. 「내가 한국에서 화장품 회사를 하고 있는데, 중국에 혹시 피부에 좋은 재료 좀 없소」 이랬어요. 마침 그 양반이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거야.

잘됐다 싶어서 「내가 돈을 대줄 테니 연구 좀 제대로 해보시오」 그랬죠. 나중에 보고서를 받아 보니까, 티베트에서 피부에 좋은 식물이 있다고 해요. 티베트라, 우선 멀잖아요. 티베트에서 그 식물을 계속 공급받으려니 힘든 것도 있고. 그래서 일단 중국에 주재하는 직원한테 그 식물을 가져오라 그랬어요』

신이 난 모양이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兪회장이 비서에게 『차 한 잔 더 가져오라』고 인터폰을 했다.

『티베트에서 식물을 받자마자, 연구소에 갖다 주고 일일이 분석하라고 했어요. 그 나무와 성분이 똑같은 것을 국내에서 찾기 시작했죠. 아, 그게 바로 이 예덕나무예요. 이 나무 찾으러 전국 곳곳을 헤맸죠. 부산에서 찾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주도에 많더라고요. 지금은 제주도에서 공수해서 쓰죠. 경영자는 늘 정열을 가져야 해요』

―작은 일이 회사의 운명을 바꾸게 된 거네요.

『그럼요. 제 눈에는 그 작은 일이 보입니다』

기업가 정신

―비결이 뭘까요.

『그게 바로 기업가 정신입니다.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 그냥 스쳐가는 것을 잡아 낼 수 있는 능력이죠』

兪회장이 예덕나무 얘기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다. 요즘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또 다른 브랜드인 「녹두」 얘기로 이었다.

『요즘은 녹두에 재미를 들였지요. 「동의보감」에 보면, 녹두의 효능이 나옵니다. 연구원들에게 녹두를 분석하라고 했죠. 우리의 재료로, 우리 화장품을 만드니까 얼마나 좋아요. 신토불이잖아요.

한 알의 녹두가 커서 화장품의 재료가 되고, 또 화장품이 팔려서 소비자들이 얼굴에 바르고. 녹두 한 알이 이 나라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기업의 역할이죠. 연구는 연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산업화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결과적으로 사회를 이끄는 것이죠 』

한참 신바람 나게 말하던 兪회장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잠시 주저하던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反(반)기업 정서가 너무 심해요.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죠. 기업이 소비자들의 돈을 빼앗아 가는 곳이 아니에요.

기업은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조하는 곳이고, 돈을 벌어서 세금도 많이 내고, 사회의 기반이 되죠. 말로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고 하고 실제로는 그러지 못해 안타깝죠. 기업인으로서 의욕이 안 생기죠. 정부나 NGO단체, 국민들이 기업에 의욕을 줘야 합니다』

李秉喆·鄭周永 회장 존경

―反기업 정서가 심하다고 느끼시는군요.

『네, 사람들이 기업의 가치에 대해서 너무 몰라 줘요. 그게 속상합니다. 우리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반도체·IT·조선·자동차·제철 사업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李秉喆(이병철)·鄭周永(정주영) 회장 덕분에 후손이 이 정도로 넉넉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사업뿐이 아니에요.

李秉喆 회장은 문화재를 꾸준히 수집해서 「리움 박물관」 같은 세계적인 박물관을 지을 토대를 만들었죠. 우리 문화재가 해외 유출되는 것을 방지한 셈입니다. 鄭周永 회장은 아산재단을 통해 국민들의 복지에 신경을 썼죠.

저는 두 분이 그 어떤 세계적인 기업가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이분들처럼 훌륭한 기업인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봐요. 국가가 가난할 때는 먹고살기 바쁘지만, 이제는 우리만의 문화가 있어야 해요. 기업인들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고 보니 兪회장이 유독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2003년 11월, 창립 15주년을 맞아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스페이스 씨」라는 박물관을 지었다. 지하 1, 2층은 대형작품과 유물 기획전을 갖춘 「코리아나 미술관」으로, 5~6층은 「코리아나 화장미술관」으로 꾸며져 있다.

그가 문화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과거 「라미화장품」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에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兪회장이 사전 예약 없이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엘리자베스 아덴」 본사를 방문할 일이 생겼다. 아덴社의 CEO는 약속도 없이 찾아온 동양의 한 화장품 회사 기업가에 대해 큰 기대 없이 응대를 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회장실을 둘러보다가 兪회장이 우리의 전통 화장 문화에 대해 한참 얘기를 하자 갑자기 그 CEO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화장품 사업은 여성에게 꿈과 아름다움을 심어 주는 문화사업인데, 당신의 문화적 안목이 높은 것을 보니 화장품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고 했다. 兪회장은 그 후 아덴社 CEO와 해마다 연하장을 주고 받을 정도로 교분이 두터워졌는데, 그때 문화사업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화장품은 文化사업』

1994년 코리아나화장품 천안공장 증축식에서 직원들과 함께. 가운데가 兪회장.

兪회장은 얼마 전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서 한국 유물 전시회를 열었다.

『코리아나화장품 이름으로 프랑스에서 유물 전시회를 열었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에 이미 고대 시절에 화장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더군요. 고구려 벽화를 보면, 사람들이 입술은 빨갛게, 눈썹은 까맣게 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신라 시대에 토기 기름병이 있었고, 고려 시대에 화장용 서랍이 있었죠. 조선 시대 여성들이 장신구로 사용하던 노리개·비녀도 전시했죠. 돈을 좀 썼지만(웃음), 기업이 우리만의 문화를 만드는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兪회장이 처음부터 화장품 업계의 CEO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동아제약에 취직했다. 그의 업무는 동아제약의 「박카스」 영업이었다. 兪회장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했다. 그가 동아제약 영업 상무이던 때, 3년 만에 회사의 매출을 3배 끌어올렸다.

그가 동아제약에 입사한 지 l8년 만에 라미화장품 사장으로 발령이 떨어졌다. 당시 동아제약의 계열사인 라미화장품은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이었고, 더구나 그는 화장품 산업에 대한 지식이 全無(전무)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좌천됐다며 수군댔다고 한다.

주위에서 말린 創業

兪회장은 아직도 출근 첫날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라미화장품에 가보니 종업원 400명에 수금은 한 달에 달랑 7000만원 했더군요. 적자는 23억원이고요.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데요. 「관둬야 할까 말아야 할까. 까짓거 그냥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 화장품 업계와의 첫 인연이었죠(웃음)』

그는 라미화장품 사장으로 취임한 후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고 한다. 화장품 판매망을 새로 뚫고, 직원들에게 일일이 마케팅 기법을 가르쳤다. 그가 사장으로 부임한 지 10년이 지났다. 라미화장품은 그 사이 모범기업으로 변해 있었다.

兪회장은 적자투성이 기업을 흑자로 바꿨고, 상장시켰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슬슬 회사 경영에 간여하려 든 것이다. 兪회장은 勞組결성 사유로 라미화장품에서 쫓겨났다. 그는 박카스 병을 만드는 유리공장 사장으로 발령받았다.

『유리공장 사장으로 옮기고 1년을 기다렸어요. 오너 경영인이 나한테 일을 줄 거라는 심정으로. 그런데 결국 안 주데요. 일이 없으니 스트레스가 생기는 거예요. 하루는 병원에서 「스트레스성 급성 위염」 진단을 받고, 석 달 동안 죽만 먹고 치료했어요. 오너가 일을 주지 않으면, 내가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는 동아제약에 입사한 지 28년 만인 1988년 독립을 선언했다. 퇴직금 1억원을 손에 들고, 사업을 하기 위해 기웃거렸다. 주위 사람들이 『그나마 받은 퇴직금 떨어먹으려고 그러느냐』며 결사적으로 말렸다고 한다.

兪회장에게 희망을 준 사람이 「미도파」와 「농심」 사장을 지낸 趙藺相(조인상·82) 「한국캅셀」 회장이었다.

『趙회장이 늦은 나이에 창업을 하셨죠. 저한테 용기를 많이 줬어요. 「兪사장, 당신처럼 열정적인 사람은 할 수 있어. 한 번 해봐」 그러시더군요』

운도 좋았다. 프랑스의 이브로셰社가 한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파트너를 찾고 있었는데, 라미화장품 시절 그를 눈여겨본 프랑스人이 兪회장을 本社(본사)에 추천했다. 그는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갔다.

이브로셰社의 판매권 따내

코리아나화장품의「화장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한 兪회장.

『프랑스에 가보니 굉장히 큰 회사더군요. 별다른 준비를 못 하고 갔는데, 갑자기 경영진이 자기네 화장품을 받으면 어떻게 팔겠느냐고 물어요. 아, 그래도 내가 영업에 잔뼈가 굵은 놈인데 그거 하나 못 하랴 싶어서 빈 종이에 긁적긁적 설명했어요. 그게 두 시간 동안 이어졌죠(웃음)』

兪회장은 1988년 8월8일, 이브로셰社의 판매권을 땄고, 본격적인 화장품 회사 설립에 들어갔다. 코리아나화장품의 조촐한 시작이었다. 그의 전력을 알고 있는 知人들의 도움이 이어졌고, 사업이 조금씩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업한 지 5년째 화장품 업계의 전설로 여겨지는 「머드팩」이 출시됐다.

―오너 경영인과 전문 경영인을 다 해보셨잖아요. 차이점이 뭔가요.

『회사를 경영하는 부분에서는 똑같아요. 일을 하고, 기업을 키우는 부분은 같죠. 그런데 전문 경영인은 한계가 있어요.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고, 대우에 있어 차이가 있죠. 삼성처럼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월급이 그렇게 많다고 볼 수 없죠. 결국 누군가의 재가를 얻어야 한다는 면에서 볼 때, 한계는 분명히 있어요.

반면에 오너 경영자는 한계가 없고, 회사가 잘되면 얻는 이익이 크죠. 반대로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폭삭 망합니다. 전문 경영인은 사표를 내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오너 경영인은 경영은 물론 재무 책임까지 전부 져야 해요. 함부로 어떤 행동을 하기 어렵죠』

사업을 하려는 이들에 대한 충고

―늦게 창업해 성공하셨으니, 주위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으시죠.

『네, 무턱대고 회사를 세우는 것은 안된다고 봐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 번째는 「반드시 내가 해본 사업을 하라」는 것이죠. 내 눈에 비전이 있고 좋아 보이는 사업이 아니라, 내가 몸으로 알고 있는 일에 뛰어들어야 해요.

제가 가장 즐겨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 일단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으면, 열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게 어떤 일이 됐든, 내 모든 것을 건다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요』

코리아나화장품의 현재, 兪相玉 회장의 46년의 직장 얘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는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는 열정적인 CEO였다. 兪회장은 『끝으로 한마디 해달라』는 얘기에 코리아나화장품의 홍보는 뒤로 한 채, 우리 사회의 反기업 정서를 우려했다.

『기업인들의 氣(기)를 살려 주세요.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부강해지고, 또 국민이 잘살게 됩니다. 정부와 국민 모두 기업에 대해 무턱대고 배타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업은 天下之大本(천하지대본)입니다』●

사진 : 이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