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人物]「人蔘 이야기」책 펴낸 한국인삼공사 홍보실장 玉淳鐘

『인삼은 朝鮮의 반도체,「인삼 종주국」명맥 이어야』

  • : 이상흔  hana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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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淳鐘
1958년 목포 출생. 목포高·동국大 사학과 졸업. 서강大 영상대학원 졸업. 전남일보 사회부장·경제부장·논설위원, 문화관광부 국가 10大 브랜드 자문위원 역임. 現 고려인삼학회 홍보위원.
『우리가 人蔘(인삼)의 종주국인 데도 대다수 국민들이 인삼에 대해서 너무 몰라요. 와인이나 맥주, 커피에 대해서 잘 모르면 교양인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이 점이 안타까워 이 책을 썼습니다』
 
  한국인삼공사 홍보실장 玉淳鐘(옥순종ㆍ48)씨가 쓴 「교양으로 읽는 인삼 이야기」는 인삼의 역사에서부터 약효와 요리법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玉실장은 인삼을 「朝鮮(조선)의 반도체」라고 했다.
 
  『요즘 반도체가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약 10%를 차지하는 효자상품이지만, 1690년대 조선의 對일본 수출품 중 인삼이 36%를 차지할 정도로 효자상품이었습니다』
 
  1601년 인삼 한 근의 가격이 무명 70필, 표범 가죽의 4분의 1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삼을 쪄서 말린 「紅蔘(홍삼)」은 인삼의 10배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일본에 수출하는 인삼은 대개 銀(은)으로 결제되었다. 17세기 후반 일본은 무게 210g짜리 銀화폐(조선 인삼 구입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화폐) 120개가 있어야 조선 인삼 한 근을 살 수 있었다.
 
  玉실장은 『인삼 재배가 보편화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이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 「인삼」이라고 기록된 것은 대부분 山蔘(산삼)을 가리킨다』며, 『관련 기록을 유추해 보면 15세기 전후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서 인삼을 인공으로 재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삼, 즉 산삼은 삼국시대부터 각 지방마다 국가에 납부할 물량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산삼을 조달할 길이 없는 백성들이 도망가는 일이 속출했습니다. 백성들은 인삼 재배법을 개발해 암암리에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를 산삼이라고 속여 국가에 바쳤습니다.
 
  18세기 초에 「영남에서 인삼 재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쯤 이르러 인삼 재배기술이 상당히 보편화되었을 겁니다』
 
  ─인삼의 학명인 「진셍」을 일본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요.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인삼을 뜻하는 말은 「고라이 닌징」입니다. 닌징은 「당근」이란 뜻이고, 이 말 앞에 「고려」를 뜻하는 고라이를 붙여 인삼을 표현한 것입니다.
 
  현재의 「진셍」이란 말은 인삼의 중국 고명인 祥蔘(상삼: 중국음 「샹셴」)에서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러시아 학자인 메이어가 1843년 세계식물학회에 인삼을 「진셍」이라고 등록했는데, 중국 발음을 차용했다고 보는 거죠』
 
 
 
 인삼의 자생지는 한반도와 만주
 
   ─우리가 인삼의 종주국이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지요.
 
  『우리 고유어로 인삼을 「심」이라고 합니다. 중국 고대 문헌에서는 인삼을 「參(삼)」 혹은 「蔘(삼)」, 「?(침)」 혹은 「浸(침)」 등 6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국 문헌에 최초로 삼이 소개되었다고 해서 인삼의 종주국을 중국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인삼의 자생지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이기 때문에 인삼의 우리말인 「심」이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중국 측에서 이와 유사한 발음을 가진 漢字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책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가 인삼의 종주국인데 인삼관련 전문서적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앵무새·집비둘기·호랑이·담배 등에 대한 전문서가 많이 발행됐는데, 인삼에 대한 책은 없습니다.
 
  반면 일본은 18세기 초 대마도를 통해 고려인삼 종자와 재배법을 입수한 후 관련 서적을 연이어 간행했습니다. 제가 쓴 책은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 기타 논문 등에 흩어져 있는 인삼 관련 기록을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18세기 중반 일본에 대한 인삼 수출이 격감했다. 고려인삼 가격이 너무 비싼 데다, 일본 정부가 인삼 구입에 따른 銀의 대량유출로 재정의 압박을 받아 인삼 무역이 쇠퇴하게 되었다.
 
 
 
 미쓰비시, 舊韓末 홍삼 수출권 독점
 
  이 시기 北美産(북미산) 산삼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北美産 산삼은 1720년경 캐나다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1747년 美 매사추세츠州에서 많은 산삼이 중국과 일본에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값싼 北美産 산삼으로 1800년대 말 고려인삼 값이 5분의 1로 폭락했었다.
 
  1899년 왕실은 內藏院(내장원: 왕실관리 관청)에 「삼정과」를 설치해 인삼사업을 관장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인삼 전매의 시초다. 1908년 조선총독부는 전매법을 공포, 왕실을 인삼 사업에서 배제하고 이를 직접 관장했다. 일제에 의해 홍삼 수출 독점권을 얻은 일본 기업 미쓰비시는 큰 이익을 남겼다.
 
  玉淳鐘 실장은 『현재 미국·중국·일본 등지에서 인삼이 재배되고 있지만, 이 인삼들이 고려인삼의 품질을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토양과 기후 조건이 인삼 재배에 가장 알맞고, 인삼 재배에 들이는 정성이 크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玉실장은 『외국 삼은 우리 삼과 식물학적으로 다른 종에 속한다』며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삼은 크게 고려인삼(panax ginseng)과 미국삼(화기삼 panax quinquefolius)」으로 나뉩니다. 이 둘은 種(종)이 다르기 때문에 식물학적으로 보면 마늘과 양파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진셍」은 「고려인삼」 하나뿐입니다.
 
  현재 미국이 「아메리칸 진셍」으로 표기하는 대신 「진셍」으로 인삼의 명칭을 일원화하려고 합니다. 고려인삼의 우수한 효능에 무임승차하려는 것이죠. 인삼에 들어 있는 사포닌의 약리작용 차이도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인삼을 「국가 브랜드」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미국 하면 「자유의 여신상」, 호주 하면 「캥거루」가 떠오르듯이 한국 하면 「인삼」이 떠오를 정도로 우리 정부가 체계적으로 홍보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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