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星家에선 3世 여성들이 두각
● 탄탄한 학력과 경력, 선진 경영이론으로 무장… 「성공 스토리」 만들기 안간힘
●「내 자식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에 편법·불법증여 등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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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련 회장단이 지난 6월16일 서울 호텔신라에서 월례회의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강신호 전경련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지난 5월 말 鄭世永(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朴晟容(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타계는 한국 財界(재계)가 이제 완연한 후계자 체제로 접어들었음을 보여 준다. 후계자란 非창업주, 즉 상속이나 승계를 통해서 경영권을 장악한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다.
기업에 따라서는 아버지가 창업주인 2세 경영자도 있지만, 최근에는 할아버지가 창업주인 3세, 증조부가 창업주인 4세 경영인까지 등장했다.
이제 창업주 시절의 성공 스토리는 전설이 됐고, 후계자들은 누가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만드느냐를 놓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재벌 승계 모델이 제대로 성공한다고 보장하기는 어렵다. 가령 최근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보컴퓨터를 보면, 삼보컴퓨터 몰락의 뒤에는 「족벌경영」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물론 삼보의 실패에는 경쟁업체의 低價(저가) 공세와 자체 브랜드 없이 값싼 PC 수출에 매달려 온 영업전략이 주범으로 꼽힌다. 여기에 곁들여, 검증을 받지 않은 2세로의 경영승계와 친인척의 족벌경영이라는 고질적인 「재벌病」도 한몫을 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창업의 원동력이 됐던 벤처정신을 잊고 재벌 흉내를 내다가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삼보컴퓨터는 1990년대 이후 50여 개에 이르는 관계회사를 거느릴 정도로 방만한 경영행태를 보였다. 컴퓨터 제조에서부터 무선호출(삐삐), 초고속 인터넷,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솔루션, 인터넷 방송, 벤처캐피털까지 당시 유망하다는 거의 모든 분야에 진출했다. 그러나 삼보는 이들 사업에서 대부분 손실을 보았다.
잇단 사업실패와 관련해서는 李龍兌(이용태) 명예회장의 장남인 李洪淳(이홍순) 삼보컴퓨터 회장과 차남인 李洪善(이홍선) 두루넷 부회장에게 책임을 묻는 이들이 많다. 李회장의 두 아들 외에도 사위와 동서도 경영에 참여했는데, 그들의 성적표도 좋지 않았다. IT(정보기술) 업계 관계자는 『삼보컴퓨터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무분별한 투자였지만, 그렇게 된 데는 2세 승계의 한계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CEO(최고경영자)의 안목과 판단이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삼보컴퓨터처럼 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총수 자녀에게 경영권을 자동 승계하는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 30代 재벌 중 부도로 쓰러진 16개 그룹 최고경영자의 상당수가 재벌 2세였다는 점은 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재벌 승계가 역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유재산제도가 보장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富(부)의 대물림을 무작정 차단하는 것은 「경제하려는 의지」를 꺾어 버리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재벌 승계를 받아들이되, 이 과정에 철저한 견제와 감독 기능을 덧붙여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한국 재계에서 창업주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재계의 주역들은 대부분 2~3세다. 李健熙(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鄭夢九(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모두 2세이고, 具本茂(구본무) LG그룹 회장은 3세에 해당된다.
崔泰源(최태원) SK(주) 회장은 2.5세대로 분류된다. 崔회장의 경우 삼촌인 崔鍾建(최종건)씨를 창업주로 보고 아버지 崔鍾賢(최종현)씨를 후계자로 보기 때문에 2.5세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들 4大 그룹을 이끄는 총수들은 서로 다른 승계과정을 거쳤고, 각각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적으론 이미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들의 후대인 2~4세들은 비슷한 연령대에 성장과정이나 경영자 수업 등 많은 부분에서 닮은 점이 많다. 서로 간에 결혼과 커뮤니케이션 등을 통해 배타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귀족」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朴晟容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부고기사를 통해 金宇中(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이 금호家의 사돈이라든가, 李在鎔(이재용·37) 삼성전자 상무가 금호家의 사위뻘이라는 점을 뒤늦게 발견한 사람도 많다.
국내 재계에서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30~40代의 2~4세로는 우선 鄭義宣(정의선·35) 기아자동차 사장을 비롯하여, 李在賢(이재현·45) CJ그룹 회장, 李豪鎭(이호진·43) 태광산업그룹 회장, 李雄烈(이웅렬·49) 코오롱그룹 회장, 鄭日宣(정일선·35) BNG스틸 사장, 鄭志宣(정지선·33) 현대백화점 부회장, 許棋皓(허기호·39) 한일시멘트 사장, 金榮信(김영신·43) 한국도자기 사장 등이 있다.
두산그룹에는 4세들이 즐비하다. 두산그룹은 故 朴承稷(박승직) 창업주에 이어 故 朴斗秉(박두병) 초대 회장이 代를 이었다. 3세인 朴容昆(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인 朴廷原(박정원·43) 두산 상사BG 대표이사 사장은 4세로 최고경영자가 됐다. 두산家의 「장자 중 장자」인 셈이다.
朴사장은 재벌 후계자들이 많이 다닌 고려大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두산 家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미국 보스턴大 경영대학원 출신이다.
그는 1999년 두산 상사BG 사장에 취임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합격점이다. 朴사장은 올해 초 그룹 사장단 회의로부터 「2004 두산 경영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상사BG가 경영상을 받기는 18년 만의 일이었다.
朴사장은 非수익 사업과 취약한 재무구조로 앞날이 불투명하던 상사BG를 정상화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非수익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한편, 일본 시장에서 산소주의 시장점유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차입금도 2000억원에서 4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사실 朴사장은 처음 두산에 입사해 사원·대리·과장·부장 등을 모두 거쳤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것은 두산 家門의 원칙이다. 1992년부터 2년간은 일본 기린맥주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朴廷原 사장의 동생인 朴知原(박지원·40)씨는 두산중공업 기획조정실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前 대우종합기계)에 대한 임원인사에서는 (주)두산 전략기획본부 상무로 있던 朴鎭原(박진원·37)씨가 상무를 맡았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기도 한 朴容晟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인 朴상무는 연세大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大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朴상무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조직개편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 회사를 총괄적으로 지휘,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朴容旿(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朴仲原(박중원·37)씨는 두산산업개발 경영지원본부 상무로, 朴斗秉 초대 회장의 4남인 朴容眩(박용현) 서울大 의대 교수의 장남인 朴兌原(박태원·36)씨는 두산그룹 계열의 벤처캐피털인 네오플렉스 상무로 근무하면서 회사를 실무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렇게 두산그룹은 머지않아 가장 먼저 「4세 경영체제」로 접어들 전망이다.

아직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대표이사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곧 경영권을 물려받을 재벌 후계자도 적지 않다.
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의 외동아들인 李在鎔 삼성전자 상무를 필두로 하여, 여배우 고현정과 이혼하면서 다시 화제를 모았던 鄭溶鎭(정용진·37) 신세계백화점 부사장, 그리고 趙錫來(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세 아들인 趙顯俊(조현준·37) 부사장과 趙顯文(조현문·36) 전무와 趙顯相(조현상·34) 상무, 효성 오너와 형제인 趙洋來(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아들인 趙顯植(조현식·35) 부사장과 趙顯範(조현범·33) 상무, 趙亮鎬(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외동아들인 趙源泰(조원태·29)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부팀장 등 수십 명의 2~4세들이 후계구도의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다.
金升淵(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동관씨의 경우 현재 미국 하버드大에 유학 중이지만 이미 적지않은 지분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사실상 경영 후계자 대열에 올라갔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2004년 8월31일부터 9월30일까지 (주)한화는 自社가 보유한 주식 850만 주 중 262만 주를 김동관·김동원·김동선씨 등 金升淵 회장의 세 아들에게 주당 9160원, 총액 239억9920만원에 매각했다.
문제는 장남인 김동관씨를 제외하면 모두 미성년자이므로 막대한 주식 매입자금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 과정은 묻지 않아도 뻔하다.
일반인에게는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탄탄한 중견기업에서도 2~4세 경영체제는 속속 구축되고 있다. 3000억원대 매출의 스프링 제조업체인 대원강업의 許丞鎬(허승호·43) 사장은 1999년 3세 경영자로 가업을 이어받은 뒤 5년 연속 최고 실적을 갈아치웠다.
故 許周烈(허주열) 창업자의 장손인 許사장은 숭실高와 서울大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워싱턴大에서 국제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곧장 대원강업에 입사, 요직을 두루 거치며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주요 그룹마다 이렇게 2~4세 후계자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가속화되면서 이들이 경영수업을 받는 방식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은뒤 경영권을 이어받은 2~4세가 제대로 기업을 경영할 가능성이 높음은 물론이다.
과거 국내 재벌의 경영승계 과정을 보면 자식에게 그냥 재산을 넘겨주거나, 아니면 해외유학을 보낸 뒤 고위직에 앉히거나 社內(사내)에서 고속승진을 시키는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경영자로서의 자질이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대기업마다 무섭게 달라지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천하의 날라리」처럼 비치는 재벌 2~4세의 이미지는 이미 옛날 얘기다. 회사마다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경영수업 과정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은 주먹구구식 算法(산법)에 익숙했던 先代(선대) 경영자들이 받지 못했던 서양식 경영학 교육으로 무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재벌 후계자로 알려진 순간부터 이들은 쉴 새 없이 社內外 시험을 치러야 한다. 겸손해야 하고, 리더십을 공인받아야 한다. 만일 흠집이 나면 순식간에 모두에게 알려진다. 시민단체는 어디 꼬투리 잡을 곳이 없을까 예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웬만큼 체계가 잡힌 국내 대기업의 경우, 아무렇게나 대충 훈련받은 후계자가 마음대로 경영권을 잡고 휘두를 정도로 녹록하지 않다.

현대자동차그룹이 鄭夢九 회장의 장남인 鄭義宣씨를 지난 봄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킨 일은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30代 중반의 젊은 3세를 한국 대표기업의 얼굴로 과감하게 내세운 것이다.
1960년대나 1970년대는 종종 그런 사례가 있었지만, 요즘처럼 고령화를 치닫는 시대에 오너 아들이라고 하여 간판급 대기업의 사장직을 덥석 맡는 것은 일종의 실험이라고 봐야 한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사회 일각의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는 현대 家門 특유의 밀어붙이기 정신에다, 대외적으로 승계 문제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제는 여건이 무르익었다. 만일 시비와 논란이 있다면 맞부닥쳐 헤쳐 나가겠다. 鄭사장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상적인 것은 이같은 승계에 대해 투자자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는 점이다. 鄭義宣 사장의 선임 소식이 알려지자 현대차와 기아차의 株價(주가)는 오히려 올라갔다. 어차피 진행될 상속 작업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실세」가 대권을 잡아야 한다는 게 투자자들의 바람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아버지인 鄭夢九 회장이 실질적으로 현대차와 기아차의 경영을 총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鄭義宣 사장의 선임은 강도 높은 경영수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鄭義宣 사장은 누구보다도 더 현장에 자주 내려간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지방에 있는 공장에 내려가 현장 분위기를 익히고 식당에 가서 밥도 같이 먹으며 종업원과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鄭 사장은 1999년 현대차 구매담당 이사로 입사한 뒤 자재·구매·AS·영업·차량정보산업·기획 등을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아 왔다』면서 『뚝심 경영이 특징인 현대家의 후손답게 경영공부도 공격적인 스타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현장에서 몸으로 익혀라」式의 경영수업이다. 물론 이 방법은 기업체에서 사원훈련 방법으로 오랫동안 사용되는 기법이다. 被(피)교육자가 해당 직무에 종사하면서 지도교육을 받기 때문에 별도로 교육시간을 낼 필요도 없고 작업장 분위기는 물론, 구성원들 간의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

許昌秀(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許允洪(허윤홍·26)씨는 미국 세인트루이스大를 졸업하고 2002년 1월 LG칼텍스 정유소에 입사, 주유원으로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 許회장이 충분한 현장 경험을 쌓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영업전략팀과 경영분석팀을 거치며 정유사업을 심도 있게 배웠다. 그는 올해 초엔 GS건설로 입사, 현재 재경팀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GS건설은 許회장이 최대주주로 대표이사 회장직을 겸직하고 있으며, 許允洪씨는 0.14%의 개인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동원그룹 金在哲(김재철·70) 회장의 큰아들인 동원금융지주 金楠玖(김남구·42) 사장은 동원산업 신입사원이던 1986년에 원양어선을 탔다. 4개월 남짓 南태평양과 베링海로 참치잡이에 나섰다. 당시 金사장은 하루 16시간씩 중노동을 했지만 「로열 패밀리」라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숨겼고, 그 일화는 지금까지 財界에 회자되고 있다.
종업원들과의 「스킨십」은 삼성전자의 李在鎔 상무도 마찬가지다.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李상무이지만 社內 임직원과의 접촉 횟수는 무척 잦다. 그는 수원·탕정·천안 등 삼성전자의 지방공장을 돌면서 꼭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같이하면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의 얼굴 익히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때면 평상시와 달리 식당 메뉴가 상당히 좋아진다고 한다.
李在鎔 상무의 경영수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시스템을 중시하는 삼성답게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가령 2002년 미국 GE그룹에서 실시하는 최고경영자 양성과정(EDC: Executive Development Course)의 연수에 참가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 연수에 李상무가 참가하게 된 것은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의 특별 초청 덕분이었다.
이멜트 회장은 GE그룹 회장으로 선임된 직후인 2001년 10월 한국을 방문, 李健熙 회장을 만나 李상무의 최고경영자 연수과정 참가를 제안했고, 李회장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과정을 통해 李在鎔 상무는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가 되는 법을 많이 배웠다고 한다. 특히 글로벌 리더 간에 적지않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 재계 후계자들은 경영에 입문하기 전에 어려서부터 철저한 학력 및 커리어 관리를 받는다. 국내에서 일류대를 졸업하고, 일본이나 미국 명문대에서 석사나 박사를 받으며 글로벌 감각을 키운다.

崔泰源 SK(주) 회장은 학부(고려大)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선친인 故 崔鍾賢 회장의 강력한 권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崔鍾賢 회장은 『경제의 기본원칙은 「합리」이므로 경제를 잘 알려면 물리나 화학, 생물 가운데 하나를 공부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崔泰源 회장은 미국에 건너가서는 시카고大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李在鎔 삼성전자 상무는 『시야가 넓은 경영자가 되려면 학부에서는 역사를 전공하라』는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서울大 동양사학과로 진학했다. 일본 게이오大 석사, 미국 하버드大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IT 분야에 대한 공부를 더했다. 아버지인 李健熙 회장도 마찬가지여서 일본 와세다大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워싱턴大 경영학부를 나왔다.
鄭義宣 기아차 사장은 고려大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大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동원금융지주 金楠玖 사장도 고려大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大에서 경영관리 석사학위를 받았다.
두산 家門의 후계자들은 「국내 학부에서 경영학 전공, 미국 대학에서 MBA(경영학석사) 취득」이란 학력을 공식처럼 달고 다닌다.
재벌 2~4세들은 기본적인 경영 공부가 끝나면 대다수가 경영기획실이나 기획총괄본부로 배치된다. 전반적인 회사 흐름을 꿰뚫고 핵심사업을 추진할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崔泰源 회장은 1991년 SK그룹 미주 경영기획실에서 경영수업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SK상사 사업개발팀장 이사와 상무를 거치면서 신규사업과 기획업무를 맡아 그룹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효성그룹 趙錫來 회장의 세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변호사와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하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지금은 모두 회사의 중장기 경영전략을 모색하는 전략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공동 협력전선을 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효성 주변에서는 세 아들이 모두 경영자로서 적성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형제 중에는 욕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도 있고,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社內의 눈길은 예리하게 이들의 경영수업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경영수업의 한 과정으로 社內 2차 교육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회사內 고급두뇌들이 후계자들의 선생 역할을 맡는다는 얘기다. 가령 崔泰源 회장은 SK경영연구소, 鄭義宣 사장은 현대차 소속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를 통해 중요 현안과 연구보고서를 수시로 브리핑받는다.
李在鎔 삼성전자 상무도 요즘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의 지휘로 지난해부터 연구소 박사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매월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과외수업을 받는다. 이 모임은 IT(정보기술)와 BT(생명공학) 분야 박사 20여 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일부 현직 대학교수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일정한 과제를 내고 이를 제출하는 형식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李在鎔 상무가 임원에게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재벌가는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교육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보통 재벌 2~4세와 함께 일하는 임원들은 『총수인 아버지와 동행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경영수업』이라고 말한다. 후계자들은 어릴 때부터 밥상머리에서부터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先代부터 내려온 경영철학이나 리더십을 곁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는 기회를 가진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李秉喆 회장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인 「황제학」을 아들인 李健熙 회장에게 전수해 주었다. 손자인 李在鎔 상무에게는 『자기 생각을 말하기 전에 남의 말을 먼저 들으라』는 「傾聽(경청)」이란 교훈을 자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사람을 평가하고 다루는 기술, 先代에서 겪었던 실패의 교훈, 그동안 쌓았던 다양한 政·官界 인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노하우는 아무래도 지근 거리에서 고스란히 전수하게 된다.
반면 최근에는 폭넓은 경험을 쌓기 위해 아예 다른 기업이나 외부 기관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제 시대를 맞아 외국계 회사에 입사해 선진 경영 스타일을 배우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형제 경영으로 유명한 금호아시아나그룹 朴三求(박삼구)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씨는 조만간 미국 대학에서 MBA 과정을 끝내고 금호아시아나그룹 대신 다른 회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아마 미국 현지의 컨설팅 회사나 국내 외국계 기업이 후보가 될 전망이다.
대한전선그룹에서는 故 薛元亮(설원량) 회장에 이어 최근 경영 일선에 나선 장남 薛允碩(설윤석·24)씨도 연세大 경영학과 시절부터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인턴십으로 경력을 쌓았고, 대한전선에는 지난 3월 스테인리스 사업부 마케팅팀 과장급으로 입사했다. 薛씨는 효성그룹의 趙顯相 상무와 연세大 선후배 사이로 흉금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근한 것으로 소문이 나있다.
대한민국 최장수 기업인 두산그룹의 경우, 오너들의 은행 근무 코스도 눈에 띈다. 현재 두산그룹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朴容晩(박용만·50) 부회장은 서울大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외환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朴容昆 명예회장은 산업은행, 朴容晟 두산중공업 회장은 상업은행 근무 경험을 각각 가지고 있다.
최근에 눈에 띄는 것은 여성 3~4세들의 활약이다. 이들은 여성으로의 특성을 살려 호텔이나 유통, 패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때로 社內에서 자신의 신분을 과신하여 기존 전문 경영인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지만 그럴 경우 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직접 나서 교통정리를 해주기도 한다.
財界 3세 여성들의 활약이 가장 돋보이는 곳은 삼성家이다. 李健熙 회장의 맏딸인 李富眞(이부진·35)씨가 신라호텔 상무로 있으며, 둘째 딸 李敍顯(이서현·32) 씨도 2002년 제일모직 부장으로 입사하여 현재 패션부문 기획담당 상무보로 활동하고 있다.
李富眞씨는 호텔신라의 핵심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실내 디자인과 식음료 분야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있고, 李敍顯씨는 전공(뉴욕 파슨즈디자인스쿨 졸업)을 활용해 제일모직의 여성복 사업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의 사촌언니인 CJ엔터테인먼트 李美敬(이미경·47) 부회장도 주목받는 여성 경영인이다. 李在賢(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인 그는 얼마 전 임원 인사에서 CJ의 차세대 주력사업인 CJ엔터테인먼트·CJ미디어·CJ아메리카의 총지휘자로 임명되면서 위상이 급부상했다.
삼성家의 3세 여성 중에는 신세계 李明熙(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33) 조선호텔 상무도 빼놓을 수 없다. 이화여대 응용미술학과를 나와 미국 로드아일랜드大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정유경 상무는 1996년부터 조선호텔 등기이사에 올라 명품 호텔을 만드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촌인 李富眞 신라호텔 상무와는 정면대결을 벌이게 됐다. 趙亮鎬 대한항공 회장의 장녀인 趙顯娥(조현아·31)씨도 대한항공 기내판매팀장을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렇게 각 기업마다 경영 후계자들이 포진해 있지만, 이들은 전문 경영인 못지않은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 시장은 적법한 후계자 승계를 문제삼지는 않지만, 과연 자질을 갖춘 후계자인지는 냉혹하게 판단한다. 전문 경영인과 달리, 오너는 잘못을 견제할 장치가 적다.
따라서 실력이 입증되지 않은 후계자의 대권 승계는 기업에 큰 위험요인이 된다. 구멍가게를 경영하다가 망하면 자기 혼자 고달프고 말지만, 재벌 경영에 실패하면 그룹 차원에 머물지 않고 국가경제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확실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단순한 경영능력뿐 아니라 리더로서의 전반적인 자질이 모두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趙亮鎬 대한항공 회장의 외아들인 趙源泰(조원태·29)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부팀장(차장)이 빚은 해프닝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난 3월21일 오후 6시50분경 서울 이화여대 후문 앞 도로에서 젊은 청년과 70代 노인을 비롯한 일가족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문제는 그 청년이 재벌가 외아들이었다는 점에 있다.
서대문경찰서는 다음날 趙亮鎬 회장의 외아들인 趙源泰씨를 폭력행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趙부팀장이 옆 차선에서 운전 중인 태모씨(44)의 차량 앞으로 끼어들기를 시도했고 거기에 놀란 태모씨가 趙부팀장의 뒤를 따라가 차량을 세우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때 차량 급정거로 놀란 태모씨의 노모인 이모씨(76)가 趙부팀장의 뺨을 때리게 이르렀고, 趙부팀장이 이모씨를 밀친 것이 폭력사건으로 번지게 됐다. 자신의 모친을 밀친 것에 흥분한 태모씨가 趙부팀장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결국 이들은 나중에 폭력행위에 대해서 쌍방 합의를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의 오너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일부 네티즌은 『재벌 오너 후계자 교육에 더 신경을 써라』는 주문도 했다. 그 사건 이전에도 社內 일부에서는 趙源泰씨의 평소 행동이 후계자로서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趙源泰씨는 인하大 경영학과를 졸업한뒤 한진그룹의 소규모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에 근무하다가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전략본부로 입성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지 못해서일까. 그는 최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올 하반기부터 2년간 미국 남가주大(USC)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기 위해서다.
대한항공에서는 『미리 예정된 프로그램』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趙 차장이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경영 현장을 떠난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경영전략 측면에서 요즘 재벌 후계자들은 당장 돈벌기 쉬운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가령 이들은 수입차 시장(딜러)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재벌 3세는 코오롱그룹의 李雄烈(이웅렬) 회장이다. 외제차 수입자유화 직후인 1987년부터 BMW 판매에 나선 李회장은 현재 계열사인 HBC코오롱을 통해 BMW를 판매하고 있다. HBC코오롱은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점유율 1위인 BMW의 국내 판매분 5509대 중 총 1717대를 판매, 10개 딜러 가운데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수익성은 생각만큼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李회장을 바짝 뒤쫓고 있는 재벌 후계자는 趙顯相 효성그룹 전략본부 상무다. 趙상무가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더클래스효성은 지난해 본격적인 벤츠 판매에 나서 총 620대(전체 벤츠 판매대수 3188대)를 내다팔았다.
GS의 오너 一家인 許榕秀(허용수) 승산 사장도 2003년 분당지역 렉서스 판매권을 따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反日감정으로 잠시 주춤하곤 있지만 도요타의 렉서스는 BMW에 버금가는 인기 브랜드다. 許사장이 개인 대주주로 있는 센트럴모터스는 영업 개시 1년 여 만에 도요타의 9개 딜러 중 상위권에 랭크될 만큼 약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崔泰源 회장은 계열사인 SK네트웍스를 통해 다임러크라이슬러의 공식 딜러로 활약하고 있다. 두산家의 4세인 朴廷原 사장의 두산모터스, 許鎭奎(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인 김윤동씨가 이끄는 일진자동차가 각각 지난해 혼다의 공식 딜러로 선정된 뒤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명품 마케팅 차원에서 재벌 2~4세들이 수입차 판매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해 「60개월 무이자 할부판매」 등으로서는 수익을 올리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2~4세 경영인은 대체로 어려서부터 귀족수업을 받아서인지 자존심이 매우 세다고 한다. 또한 부친의 後光(후광)을 벗어나 자신의 능력으로 사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욕구가 강하다.
최근 경영에 본격 참여하고 있는 재벌 2~4세 중 일부가 벤처 바람 속에서 e비즈니스를 경쟁적으로 벌였다가 실패한 것도 그런 사례다. 가령 崔泰源 회장이 주도한 재계 후계자 모임인 「V소사이어티」 등을 통해 재벌 2~4세들이 집단적으로 e비즈니스 관련 사업을 벌인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다행히 이들 사업은 실험적 성격이 강해서 그룹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지만 경영 대물림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사회가 강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모든 의사 결정권이 총수에게 집중돼 있고, 총수의 자녀가 처음부터 유일한 후계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객관적인 능력 검증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물론 재벌 2~4세들도 나름대로 할 말이 많다.
기자는 최근 어느 재벌 후계자들 모임에서 「2~3세 기업경영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세미나의 자료를 입수한 적이 있다. 주로 자기 입장에서 울분을 토로했지만, 그들이 직접 민감한 주제를 놓고 얘기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아래 A, B, C, D씨는 모두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재벌가의 후계자들이다.
먼저 A씨의 말이다.
『2~3세 경영인의 고민은 잘 하면 보통이고(=아버지 잘 만난 것이고), 못 하면 냉소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넘겨받는 경우도 있다. 2세 경영인들 가운데는 「이것을 왜 해야 하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다. 지급보증은 다 서고, 스톡옵션은 못 받고…. 이래가면서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최고 경영자가 개인 지급보증을 많이 선다. 계열사 하나가 잘못하면 그 회사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지배력을 상실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Exit(지분 매각)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M&A(기업 인수 및 합병) 시장이 좀더 활성화돼야 한다. 왜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만 하느냐는 불만도 적지 않다.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노동운동도 잘못돼 있다고 지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분명한 자본주의 논리가 통용되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 내 재산의 반은 빚이다. 증여세 내느라고 빚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전부 회사에 묶여 있다. 내 주식 가치가 100억원도 안 되는데, 회사에 지급보증 선 것이 300억원이 넘는다. 빠져나오려고 해도 다른 창구가 없다. 남들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어떤 그룹사에서 子회사 하나를 팔려고 했는데, 子회사 임원들이 子회사 직원들을 부추겨 그룹 본사에 와서 시위하도록 했다고 한다. 모든 게 쉽지 않다』
다음은 B씨의 말이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지 못하고 2~3세들이 직접 경영하는 이유는) 다른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면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보다는, 내가 하면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전문 경영인은 지급보증을 선 것도 아니고, 결국 최종 책임은 대주주가 진다. 내 지분을 대주주 프리미엄을 받고 다 팔아도 지급보증 선 금액을 충당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나도 계열사 보고를 받고 있다』

이번에는 C씨의 얘기다.
『대주주가 지급보증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대주주가 전략적 투자자 역할만 하고 맡길 수 있는 전문경영인이 있으면 좋겠는데, A씨가 얘기했듯이 우리나라에는 대기업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풀이 형성돼 있지 못하다. (어느 큰 기업을) 인수한 후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사장을 2년이나 찾았다. 결국 마땅한 사람은 4大 기업에서 잘 하고 있는 경영인 몇 명인데, 그들을 데려올 수도 없고…. CEO 연습이 안 돼 있다. 이것은 대주주의 책임도 되고,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CEO 인재풀을 만드는 것도 지배구조 개선의 중요 관건이다』
다시 A씨의 말이다.
『2~3세 경영인들이 요즘은 「내가 이런 리스크를 지고 억울한 욕을 먹어 가면서 왜 해야 하는가」라는 회의감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옛날 경영인들은 「영주」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본다. 나의 영역이니 내가 책임지고 하겠다는 것 말이다. 그런데 지금 2~3세 경영인들은 다르다. 내 개인적으로는 내 재산을 증식시켜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경영인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골치 아프게 경영에 간여할 필요도 없다. 맡겨 놓고 중국어를 배우든지,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든지』
『지금 돈 가진 사람들의 생각은, 내가 100원을 갖고 있다고 할 때 60원을 내주고 40원만 보장해 준다면 행복하게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SK사태를 보면서, 「순식간에 재산이 0원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에는 계열사 간 자금이전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교묘한 방식들이 다 개발되고 있다』
이번에는 D씨의 언급이다.
『미국 등 구라파는 계약 중심 사회이고, 아시아는 사람 중심 사회다. 미국은 경영인을 선임할 때 엄청난 분량의 계약서를 들이밀고 꼼꼼히 따지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벤처기업은 행태가 다를 것이라고 보았는데, 실제로는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다만 기간이 짧아 상속과 증여의 문제가 없을 뿐이다.
미국에서는 벤처기업이 IPO(주식상장, 기업공개)할 때 창업자 지분이 5%가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분이 낮으면 코스닥 등록이 안 된다. 그 때문에 창업자 지분을 20~30% 정도로 맞춰 주기 위해 묘안을 짜내는 경우도 있다. 회사가 성장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면 대주주 지분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대주주가 지분을 팔고 나가면 어쩌냐며 지분율이 낮은 것을 문제 삼는다』
다시 B씨의 얘기다.
『가족기업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大재벌의 회장이라고 해도 聖人(성인)이 아니다. 그 사람의 욕구도 인정해야 한다. 돈 번 만큼 쓰려고 한다. 이런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소액주주를 위한 것이냐, 대주주를 위한 것이냐. 기업은 사회정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익 실현을 위한 도구다. 정치자금 제공이나 재단에 대한 기부금 제공, 일자리 제공 등은 결과로써 평가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CEO는 성과를 갖고 평가해야 한다. CEO가 첩이 있든, 술버릇이 나쁘든, 그 아들이 그 회사에 들어갔든 아니든 그것은 CEO의 능력과 무관하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세금만 제대로 냈다면…』
마지막으로 C씨의 의견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얘기는 IMF 외환위기 이후 나온 얘기다. 하나는 대주주 지급보증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CEO 인재풀에 관한 것이다. 두 가지 다 해결돼야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가능하다. 솔직히 대주주는 손떼고 이사회로 물러나라는 말인데, 뚜렷한 해법도 없는 상태에서 책임은 무한책임을 지우면서 물러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 가지 요건이 해결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 서구의 경우는 어떠할까. 가족경영을 하는 글로벌 기업은 가족의 경영 참여에 엄격한 원칙을 지켜 나가고 있다. 오너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사장이 될 재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경쟁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글로벌 기업의 변함 없는 불문율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포드의 경우 1903년 창업한 이후 아들인 애드셀 포드가 1932년부터 경영을 시작했다. 1943년에 아들이 죽은 후 헨리 포드가 다시 사장으로 복귀했다가 1945년엔 포드 2세(손자)가 사장으로 경영을 맡았다.
이후 1976년에 포드 2세가 가족경영 포기를 선언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입했다. 그러다가 1998년에 창업자의 증손자인 윌리엄 포드가 경영권을 다시 맡으면서 결국 세습과 전문 경영인의 혼합 경영체제를 유지하며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관되게 자식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제다.
그러다 보니 상속과 승계를 위한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하게 됐고, 일부 대기업은 非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편법 증여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非상장 기업을 만들어 계열사로 편입시킨 다음, 총수 아들에게 이를 물려 주고 그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의 주식을 매입하면서 그룹을 지배하는 형태다.
상당수 재벌에서 이같은 관행이 자행되고 있다는 게 경제 관련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를 부당 내부거래로 규제하고는 있지만 제도적으로 미흡하다. 이를 견제하는 장치로 社外이사 제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경영진이 추천하거나 경영진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뽑히고 있어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최근 非상장사들이 공개한 소유지분 구조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李在鎔 상무의 경우 보유 중인 非상장 주식 가치는 4000억∼5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李상무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96만여 주의 가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李상무가 보유 중인 非상장사 지분은 삼성에버랜드 25.10%(62만여 주), 삼성SDS 9.14%(514만여 주), 삼성네트웍스 7.64%(793만여 주), 서울통신기술 46.06%(506만여 주), 가치네트 32.7%(140만 주) 등이다. 이 중 에버랜드는 1분기를 기준으로 볼 때 주당 가치가 38만7600원으로 반영돼 李상무의 에버랜드 지분 가치는 2000억~3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삼성에 비해 승계 작업이 한 박자 늦은 현대기아차의 경우는 좀더 다급한 형편이다.
기아차 鄭義宣 사장은 非상장사 지분이 2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鄭사장은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 지분 39.85%(주식 119만5000주), 건설업체인 엠코 지분 25.06%(250만5000주), 자동차 부품회사인 본텍 지분 30.00%(60만주) 등을 소유하고 있다.
鄭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엠코는 올해부터 주택사업에 본격 뛰어들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엠코는 2002년 10월 자본금 47억원으로 설립돼 현대차 공장과 연구소 공사를 도맡아 2003년 2900억원, 2004년 4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시공능력 평가 순위 49위까지 뛰어올랐다. 현대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성장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해 재경委 국정감사에서 『현대·기아차 그룹의 후계자 鄭義宣이 최대주주인 현대 글로비스는 설립 2년 만에 매출 5787억원, 순이익 403억원을 올렸는데, 이 중 내부거래 비중이 90%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비스에 대한 鄭사장의 지분 가치는 16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非상장 회사들은 현대차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급성장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鄭사장이 非상장 계열사 지분을 발판으로 기아차 등 상장사의 지분을 사들여 장차 그룹을 넘겨받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롯데그룹 辛格浩(신격호) 회장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혀 가는 辛東彬(신동빈) 부회장은 非상장 주식가치가 6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가 보유한 대표적인 非상장 주식은 롯데쇼핑 21.19%(423만여 주)로 가치만 해도 무려 56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CJ 李在賢 회장은 물류업체인 CJ GLS 73.99%(248만6000주)를 비롯, 냉장·냉동 육가공 제조업체 CJ 모닝웰 37.04%, CJ시스템스 29.87%, 스카이락과 빕스를 운영하는 CJ푸드빌 10.50%를 각각 소유, 지분 가치가 100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이렇게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이 非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경영권 승계용으로 이용하고 있어, 지배구조 투명성과 후계자 검증 차원에서 견제와 감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