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盧武鉉 후보 공보특보를 지낸 柳鍾珌 민주당 대변인의 盧武鉉 정치행태·심리 분석

책임전가, 弱者로 위장,「선택적 망각」이게 盧武鉉을 이해하는 키워드

  • : 송승호  soonj@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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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武鉉은 울퉁불퉁한 땅에 스핀을 먹여 던진 럭비공』

『盧武鉉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게 「불리한 승부를 해서는 안 된다」
「불리할 때에는 더 큰 승부를 해야 한다」고 자주 얘기했습니다』


柳鍾珌
1957년 전남 함평 출생. 광주제일高·서울大 철학과 졸업. 한국일보·한겨레신문 기자, 한국기자협회 편집국장, 서울시의회 의원, 金大中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 副대변인, 서울시장 직무인수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정무비서관, 민주당 盧武鉉 후보 언론특보, 민주당 홍보위원장 역임. 現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서울 관악을지구당 위원장. 저서 「단소리 쓴소리」, 「굿모닝 DJ」, 「9남매 막내 젖 먹던 힘까지」.
『盧武鉉(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일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경우, 상황을 완전히 헝클어 혼란상태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그런 뒤 큰 승부수를 띄우죠. 최근 「내각제 수준으로의 聯政(연정)」 발언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문제는 盧대통령이 혼란을 수습할 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위기를 모면하지만 한국 정치와 사회는 大혼돈에 빠져드는 거죠』
 
  盧대통령이 취임 이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변칙·돌출 言行(언행)을 쏟아내자, 많은 이들이 柳鍾珌(유종필·48) 민주당 대변인을 찾았다. 그가 정치인 盧武鉉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柳鍾珌 대변인은 盧武鉉 대통령 후보가 해양수산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大權(대권) 캠프를 차렸던 2001년 6월, 盧캠프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盧武鉉 후보가 광주 경선에서 승리를 한 2002년 5월경까지 그의 「입」과 정책자문 역할을 했다.
 
 
 
 YS 스타일과 盧武鉉 스타일 흡사
 
  柳대변인은 大選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02년 9월 한 발짝 물러나 盧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盧대통령이 민주당을 뛰쳐나와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이하 열린당)을 창당하자 柳대변인은 민주당에 잔류하면서 「反盧」로 돌아섰다.
 
  盧武鉉 대통령과 「愛憎(애증)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柳鍾珌 대변인을 만나, 盧대통령의 스타일·정치행태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7월8일 서울 마포구 소재 민주당 黨舍에서 이뤄졌다.
 
  ―盧武鉉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을 단적으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분의 정치스타일은 金大中(김대중·DJ) 前 대통령보다는 金泳三(김영삼·YS) 前 대통령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盧대통령이 YS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盧대통령은 「3黨 합당으로 민주세력을 배신했다」는 점에서 YS에 대해 경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도 별로 인정하는 것 같지 않구요』
 
  ―어떤 점에서 盧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 YS와 닮았다고 생각하는지요.
 
  『盧武鉉 대통령은 YS와는 달리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추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超논리적인 사고를 할 때가 많습니다. 이같은 논리를 뛰어넘는 사고를 하는 게 YS의 행태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柳대변인은 『DJ의 경우, 어떤 문제에 대해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접근해 해결하려고 하는 스타일입니다. 盧대통령은 논리적일 때도 있지만, 논리를 넘어서 파격적으로 단번에 본론에 접근해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YS 스타일입니다』라고 했다.
 
  ―盧武鉉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즉흥적이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신중한 판단의 결과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盧대통령은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의 평소 생각이 즉흥적인 형태로 나타날 따름이지, 즉흥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盧대통령이 최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이양 용의가 있다』고 한 발언 역시 신중한 생각 끝에 나온 것이라고 봐야겠네요.
 
  『물론입니다. 盧대통령은 지난 4·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부터 기사회생의 묘수를 고민해 오다가 내놓은 게 「내각제 수준으로의 聯政」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양은 우연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우연을 가장한 심사숙고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盧대통령은 전형적인 승부사적 기질을 타고 난 사람입니다』
 
  ―여권에서조차 처음에는 盧대통령의 「聯政」 발언을 失言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였죠.
 
  『생각해 보세요. 盧대통령은 예고도 없이 이른바 「與圈 11인 회의」 장소에 나타나 「聯政」 발언을 내뱉고는 사라졌습니다.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예고없이 회의장소에 나타난 것 때문에 盧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失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는 11인 회의 멤버들이 盧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盧武鉉의 노회한 「리크(Leak)」 戰術
 
   ―盧대통령의 「聯政」 발언이 심사숙고의 결과란 얘기인가요.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盧武鉉式 발언 행태로 봐야 합니다. 盧대통령은 어떤 내용을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이 직접 하기는 뭣할 경우, 그 내용이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盧대통령이 여권 11인 회의 장소에 나타나 聯政 발언을 한 것은 참석자 누구를 통해서든 聯政 발언이 언론에 흘러 나간다는 사실을 미리 예측하고 일부러 흘린 거죠』
 
  ―盧대통령의 聯政 관련 발언이 최근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盧대통령은 작전에 성공한 셈이군요.
 
  『盧대통령은 이런 형태의 작전에는 도가 튼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聯政이 盧대통령의 의도대로 이뤄질지는 모르지만, 일단 정치 쟁점화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지요. 저는 정치권과 여론이 盧대통령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과거에도 盧대통령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까.
 
  『2002년 민주당 후보 경선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盧후보가 한 번은 회의에서 해서는 안 될 내용을 공개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회의가 끝난 뒤 「그런 얘기를 회의석상에서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따지듯 물었죠. 그랬더니 盧후보가 「내가 외부로 전달되도록 일부러 흘린 것」이라고 하더군요. 盧대통령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입니다』
 
  ―盧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聯政」이라는 정치적 手(수)를 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현재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자신의 지지도는 20% 수준으로, 열린당의 지지도는 1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盧대통령은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국가적 어젠다(議題·의제)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민들, 면역이 생기고 있다』
 
  ―『경제에 올인하겠다』던 盧대통령이 최근 『앞으로는 정치에 主力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과도 연관이 있겠군요.
 
  『그렇죠. 한마디로 자기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바꾼 것이죠. 盧대통령은 그동안 경제분야를 비롯해 國政을 챙기다가, 뜻대로 되지도 않고, 자신도 없고, 재미도 없으니까 자신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분야로 돌아선 셈입니다. 이같은 행태 역시 盧대통령 특유의 「超논리적 사고」에 기초한 것이라고 봅니다』
 
  ―盧대통령은 무엇을 노리고 聯政이란 정치 手를 던졌을까요.
 
  『앞으로 盧대통령은 이른바 「큰 승부」를 하려고 나올 것입니다. 盧대통령은 자신의 聯政 발언으로 인해 野圈이 헷갈리고, 이 과정에서 혼란이 조성되면 그때가서 「혼란을 정리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盧대통령은 혼란을 정리하는 방법으로 국민투표 등 큰 승부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2003년 수도이전을 둘러싸고 與野와 국민들의 의견이 엇갈려 혼란이 빚어졌을 때도 盧대통령은 국민투표라는 큰 승부수를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柳대변인은 『盧대통령은 대다수 서민들이 찬성할 수밖에 없는 부동산 정책 등을 앞세워 큰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이 높지만, 국민은 盧대통령의 이같은 승부수에 대한 면역이 생겼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盧武鉉 대통령은 위기가 오면 일단 혼란을 조성한 뒤 더 큰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서 탈출구를 찾는 스타일의 소유자란 분석이군요.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DJ와 YS, 盧武鉉 대통령 세 명이 시험장에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DJ는 시험지를 받아 보고 비록 모르는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아는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YS나 盧대통령은 시험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시험문제가 잘못 출제 됐다며 시험 자체를 거부할 것입니다』
 
  柳대변인은 『盧대통령은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 근본원인을 분석해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그 어려운 상황 자체를 뒤집어엎고 戰線(전선)을 다른 쪽으로 옮겨 가려고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柳대변인은 『盧대통령의 측근으로 일을 할 때 盧대통령으로부터 「불리한 승부를 해서는 안 된다. 불리할 때에는 더 큰 승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전했다.
 
 
 
 덮어씌우기 政治
 
   ―盧武鉉 대통령은 최근 『지난 4·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통해 열린당의 과반수 의석이 무너져 대통령으로서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與小野大라서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힘없는 대통령에게 부동산해결·경제회생 같은 어려운 숙제를 맡기지 말라』는 요지의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盧대통령의 말은 사실과 다르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1988년 제13代 국회는 3黨 합당으로 판이 엎어지기 이전까지는 與小野大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당시 200여 건의 안건 중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與野 합의로 통과시켰습니다. 2000년 제16代 국회에서도 자민련까지 포함해 野大 상황이었지만,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의석이 과반수가 되지 않아 일을 못 하겠다는 것 역시 「盧武鉉式 초논리적 사고」에 근거를 둔 발언입니다』
 
  柳대변인은 『2004년 4월15일 실시된 제17代 총선에서 국민은 열린당의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주는 등 盧武鉉 정부를 적극 지지했으나, 자신들의 부정부패와 선거법 위반으로 인해 지난 4·30 재보궐 선거를 하게 된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盧武鉉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상실해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것』이라고 했다.
 
  柳대변인은 『집권여당 자신들의 국정운영 실책으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놓고, 野黨이 반대해 일을 못 하겠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 역시 「盧武鉉式 덮어씌우기 정치」』라고 주장했다.
 
  ―盧대통령은 『勞使문제와 부동산정책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野黨의 반대에 부딪혀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동안 어떤 사안에 대해 민노당이나 민주당이 열린당에 협조해 주지 않았습니까? 盧대통령은 野黨 때문에 勞使문제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與小野大와 전혀 관계 없는 일입니다. 勞使·부동산 문제가 국회에 상정됐을 때, 野黨이 이를 보이콧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勞使문제와 부동산 관련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盧武鉉 정부의 정책실패 때문입니다. 盧대통령의 주장은 사실과도 다르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盧武鉉式 억지」입니다』
 
 
 
 弱者로 위장
 
  ―盧대통령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을 텐데. 계속 이같은 非논리적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남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격 때문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盧대통령은 氣가 센 분입니다. 盧대통령 자신도 자서전(「여보, 나 좀 도와줘?」)을 통해 「초등학교 때부터 氣가 세 시골집 아이들과 함께 모여 부잣집 애들을 두들겨 패기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盧대통령이 『野黨이 너무 공격을 해 내가 꼼짝없이 당한다』는 말을 여러 곳에서 하는데, 본인이 진짜 그렇게 믿고 있는 겁니까.
 
  『盧대통령은 스스로를 弱者(약자)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盧대통령이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알리고 있지만, 「편지」는 弱者의 수단입니다.
 
  대통령의 권력과 수단은 무제한적입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연두 기자회견이나 수시로 할 수 있는 기자회견, 국회 연설 등 强者(강자)로서의 수단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도 盧대통령이 「言論과 野黨이 자신을 탄압한다」며 편지를 쓰는 것은 强者가 弱者로 위장하는 것이죠. 盧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이런 형태의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국민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일종의 정치 테크닉이라는 얘기입니까.
 
  『「盧武鉉式 정치술」이죠. 사실 이같은 정치술로 많은 효과를 보지 않았습니까. 탄핵을 당했을 때 이런 정치술이 국민에게 얼마나 잘 먹혔습니까? 최고 권력자인 盧대통령의 위장술 또한 최고 수준이라고 해야겠지요. 보통사람은 못 합니다』
 
  ―盧武鉉 대통령은 향후 國政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으로 봅니까.
 
  『盧대통령 본인도 그것을 잘 모를걸요. 盧대통령 본인이 모르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본인이 미래에 대한 명확한 國政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굳이 盧武鉉 정부의 목표라고 한다면, 수도이전, 公기업 지방이전, 국토 균형발전, 과거사 청산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이런 사안 자체가 국가비전일 수는 없지요』
 
  柳대변인은 『盧대통령이 미래에 대한 國政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돌발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國政 운영 방향조차 예측할 수 없다면, 국민들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盧武鉉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국민에게는 길게 느껴지겠지만, 盧대통령 본인에게도 길게 느껴질 것입니다. 제가 그분의 속내를 조금은 압니다. 함께 있었기 때문에…』
 
  ―최근 연이어 터져 나온 「행담도 문제」라든지, 「油田 게이트」 등에 盧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입됐을 것이라고 국민들은 생각하는 것 같은데, 실제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저는 국민의 생각이 맞다고 보는 편입니다』
 
  ―盧대통령은 어떤 문제가 터지면 뒤로 숨는 스타일이죠.
 
  『「油田 게이트」만 해도 산업자원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부터 비서관, 행정관 등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통령만 몰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盧대통령은 「왕따 대통령」이라는 말입니까? 대통령이 왕따가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盧대통령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盧대통령의 동업자는 不法정치자금 취급자
 
   ―盧대통령은 이른바 386세대 참모들을 「정치적 동업자」라고 표현했는데, 정치적 동업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입니까.
 
  『처음에는 제가 盧대통령의 동업자인 줄 알았습니다. 大業을 함께 이루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동업자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盧대통령의 동업자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정치자금과 관련된 사람만 동업자이지, 저는 정치자금과 관련이 없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盧대통령의 동업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는 어쩌면 盧대통령의 「애첩」이었던 것 같아요. 애첩은 언제라도 버리고 바꿀 수 있지 않습니까』
 
  ―지난 大選 때 「386세대 출신」들은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정치자금 조달은 물론 적극적으로 뛰었지요. 후보와 제일 가까운 사람은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大選 때 민주당 총무본부장을 맡았던 李相洙(이상수) 前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구속까지 됐습니다. 그럼 이분도 「정치적 동업자」입니까.
 
  『李相洙 前 의원은 공식적인 선거자금을 주물렀기 때문에 盧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非공식적인 자금, 法에 어긋나는 자금을 주물렀던 사람이 진정한 동업자인 것이죠』
 
  ―鄭大哲(정대철) 前 고문은 지난 大選 때 일정 부분 非공식적인 자금을 만졌는데, 왜 구속이 됐다고 봅니까.
 
  『제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입니다. 盧대통령 취임 이후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盧대통령은 鄭고문에게 「만일 大選자금 문제가 불거지면 선배님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鄭大哲 前 고문의 입장에서는 盧대통령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군요.
 
  『저는 盧대통령이 배신할 수 없는 사람으로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배신을 하면 크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자기 합리화도 잘하구요』
 
 
 
 『盧武鉉은 대통령이 되고서 사람이 변했다』
 
  柳鍾珌 대변인은 盧대통령의 성격과 관련해 ▲민주당 大選 후보가 되기 이전 ▲민주당 大選 후보 시절 ▲대통령 당선 이후 세 부분으로 나눠 설명을 했다.
 
  柳대변인은 『盧대통령이 후보가 되기 이전까지는 경륜이 부족하고 성격상 불안정한 부분이 있었으나 억지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 당시 盧대통령은 참모들의 건의를 잘 수용했다고 한다. 柳대변인은 『그러나 盧대통령이 후보가 된 이후 성격이 많이 변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성격이 급격하게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이 민주당 大選 후보가 된 이후 어떻게 달라졌나요.
 
  『盧대통령은 光州 경선 이후 자신의 지지도가 60% 가까이 나오고 「盧風(노풍)」이 불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 얘기는 다음의 기회로 미루죠』
 
  柳대변인은 씁쓰레한 웃음을 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盧대통령이 大選에서 승리한 이후 어떻게 변했습니까.
 
  『너무 억지가 많고, 논리를 초월하고, 헌법도 초월하는 것을 볼 때 盧대통령의 실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권력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꾸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대권도전을 앞두고 절제하고 포장된 盧武鉉을 제가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盧대통령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는 없는지요.
 
  『성격뿐 아니라, 정치적 노선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聯政 주장하는 것을 보세요. 한나라당하고도 하자, 민노당하고도 하자는 것입니다. 흡사 「江南 갈래, 昌原 갈래」하는 식이죠. 중심을 완전히 잃어 버린 것 같습니다』
 
  ―盧대통령의 언론관은 어떻습니까.
 
  『盧대통령은 朝鮮日報에 대한 나쁜 추억이 있습니다. 그것이 언론 전체를 비판적으로 규정하게 된 강한 첫 경험이었던 것이죠. 사실 東亞日報나 中央日報는 朝鮮日報 때문에 도맷금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타깃은 朝鮮日報입니다』
 
  ―盧대통령이 朝鮮日報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된 계기가 1992년 「주간조선」에 게재된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 및 호화생활에 관한 기사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盧대통령은 朝鮮日報에 대한 피해의식이 너무나 강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주간조선」 보도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朝鮮日報 본사와 朝鮮日報 서울 종로지역 지국 사이에 발생한 사건 때문이라고 盧대통령이 말하더군요』
 
  ―朝鮮日報 본사와 서울 종로지국 간 관계에 대해 무슨 말을 하던가요.
 
  『盧대통령은 당시 지역구가 서울 종로구였습니다. 지역구內 朝鮮日報 지국 관계자가 본사와의 어떤 문제에 대해 盧대통령에게 부탁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朝鮮日報 기자가 盧대통령에게 개입하지 말 것을 요청했는데, 盧대통령은 계속 개입을 했던 모양입니다. 이 과정에서 盧대통령과 朝鮮日報 사이에 마찰을 빚었다고 들었습니다』
 
  柳대변인은 『朝鮮日報와의 이런 마찰이 盧대통령으로 하여금 언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柳대변인은 『어렸을 때 여자 아이가 性폭행을 당하면, 남자를 평생 올바른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盧대통령의 언론관도 많이 일그러져 있다』고 했다.
 
  ―盧대통령의 언론관이 어떻게 일그러져 있다고 봅니까.
 
  『언론의 기본적 기능은 비판과 견제입니다. 그런데 盧대통령은 언론의 비판기능에 대해, 「언론이 음모를 꾸며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지나치게 그 의도를 강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언론의 비판을 못 견디는 盧武鉉」
 
  柳鍾珌 대변인은 盧武鉉 대통령의 언론관을 파악할 수 있는 사례를 한 가지 들려주었다.
 
  『2001년 10월 당시 盧武鉉 후보가 日本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햇볕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 명칭도 바꾸어야 한다. 6·15 남북 頂上회담은 국내 정치에 이용했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盧후보의 이같은 발언은 다음날 8개 조간신문에 똑같이 1면 머리기사로 보도가 됐습니다.
 
  盧후보는 다음날 오전 7시쯤 전화를 해 「신문사에 항의를 하고, 언론중재위원회에 提訴(제소)를 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언론중재 대상이 안 된다고 했죠. 그랬더니 盧후보가 「당신이 그렇게 언론을 무서워해서 어떻게 언론특보를 하느냐」며 화를 내더군요. 그래서 제가 「내가 언제 언론을 무서워했나. 싸울 때 싸웠다. 언론을 무서워했으면 언론특보를 하지도 않았다」며 둘이서 심하게 싸웠습니다』
 
  柳대변인은 『당시 盧후보에게 「죄송스런 말씀입니다만, 제가 기자 출신인데 저라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고 하니까 盧후보가 「당신이 그런 자세와 인식으로는 나와 함께 일할 수 없다」며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더라』고 말했다. 柳대변인은 『이때 盧후보의 목소리가 워낙 커 핸드폰을 귀에 대고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柳대변인은 盧후보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알았습니다』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고, 이날 두 사람 간 전화통화 시간이 30여 분이었다고 한다.
 
  ―盧武鉉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정부의 언론보도에 대해 중재위원회 및 법원 제소 건수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盧武鉉 대통령의 언론관에서 비롯됐다고 보는지요.
 
  『전적으로 盧대통령의 언론관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됐습니만, 盧대통령이 언론보도에 대해 왜 그토록 불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까.
 
  『盧대통령은 언론의 비판에 대해 못 견뎌 합니다. 최근에도 盧대통령은 「나를 도와주는 언론이 없다」고 발언했지 않습니까. 盧대통령은 언론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언론의 가장 기본인데도, 盧대통령은 그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분의 언론특보 시절 의견마찰이 많았습니다』
 
  ―기자에 대한 盧대통령의 시각은 무엇입니까.
 
  『언론과 기자를 지나치게 私感時하는 것 같아요. 「특정인에 대한 감정이 좋으면 좋게 기사를 쓰고, 그렇지 않을 경우 나쁜 내용을 보도한다」는 생각을 해요. 매우 위험한 생각이죠. 요즘 술 얻어 먹고 기사를 쓰는 기자가 어디 있습니까? 기자 자체를 비하하는 듯한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柳대변인은 盧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입장 가운데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柳대변인은 『盧대통령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언론에 굽신거리지 말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며 『이같은 盧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태도는 언론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솔직한 盧武鉉
 
  ―盧대통령이 토론을 상당히 즐기는 스타일이죠.
 
  『盧武鉉 대통령은 자신의 논리력과 토론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토론을 잘하고, 어떤 事案에 대해 토론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금강캠프(盧武鉉 후보 시절 그의 私조직 캠프) 시절에도 참모들을 모아 놓고 토론하기를 즐겼습니다』
 
  ―盧대통령은 특정 事案에 대해 토론을 할 때 미리 자신의 결론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생각이 있기는 하겠지만, 미리 자기의 결론을 가지고 토론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 주는 편입니다. 좋은 점이죠』
 
  ―盧武鉉 대통령은 성격이 솔직한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盧대통령이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大選 때 한나라당 李會昌(이회창) 후보가 서민들이 거주하는 「옥탑방」을 몰라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죠. 그 며칠 뒤 기자가 盧후보에게 「옥탑방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자신도 몰랐다고 대답하더군요』
 
  柳대변인은 『지난 大選 때 盧대통령의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이 젊은층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같은 지지가 결국 「盧風」을 만들어 낸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편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盧대통령이 5共 청문회 때 명패를 집어 던진 행위나 대통령이 되고 난 지금 기자회견을 할 때 자주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盧대통령의 이같은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진정으로 우리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盧대통령의 정치적 밑천이 됐을지도 모르죠』
 
 
 
 『민주당 후보 경선 때 음모는 없었다』
 
  ―민주당의 大選 후보 黨內 경선 과정에서 李仁濟(이인제) 후보 측은 「음모론」을 제기했습니다. 음모론은 실체가 있었던 겁니까.
 
  『李仁濟 후보 측이 제기한 음모론은 저와 盧후보, 朴智元(박지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金大中 대통령 간 커넥션이 있어, 盧風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李후보 측에서는 朴智元 실장이 국민회의 대변인을 할 때, 제가 副대변인을 맡았다는 점을 근거로 이같은 음모론을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李仁濟 후보 측은 柳대변인을 朴智元 실장 계보라고 본 것이군요.
 
  『그렇죠. 그러나 저는 朴智元 계보가 아닙니다』
 
  ―柳대변인이 민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실제 盧후보의 입장과 생각을 朴智元 실장에게 자주 전달했고, 朴실장도 盧후보의 입장과 생각을 金大中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제가 처음 盧武鉉 캠프에 가보니, 盧캠프의 실세들이 청와대 행정관들과 접촉한 결과를 가지고 청와대 기류를 판단하더군요. 웃기는 얘기죠. 그래서 제가 평소 친분이 있던 朴智元 실장과 자주 연락을 하면서 盧후보의 입장이나 생각을 전달하게 된 것입니다』
 
  ―朴智元 실장에게 전달한 盧후보의 당시 입장과 생각은 주로 어떤 것이었습니까.
 
  『盧武鉉은 절대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盧후보가 YS는 그냥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DJ는 大정치가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 등을 중점적으로 전달했지요. 「진정한 동서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교동계나 호남 출신이 후보가 돼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강력하게 주장했구요. 朴智元 실장에게만 이같은 논리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장점은 빛 바래고, 단점만 남아
 
2003년 1월3일 당시 서울 여의도 민주당 黨舍 강당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와 柳鍾珌씨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두 사람 간 악수는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盧대통령이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은 지금도 유효한지요.
 
  『당시 盧대통령이 배신을 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暗數(암수)가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구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볼 때, 盧대통령의 솔직한 성격 등 장점은 상당 부분 빛이 바랜 반면 단점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柳대변인이 「盧대통령이 자신을 당선시켜 준 민주당을 깨고 열린당을 창당한 것은 배신행위」라고 공격하셨죠.
 
  『정치행위 이전에 인간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한 것이죠. 자기 부정이고, 배은망덕이고, 殺父母 행위인 것이죠』
 
  ―盧武鉉 대통령이 민주당을 뛰쳐 나오면,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分黨을 강행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지극히 盧武鉉스러운 행위」인 것이죠.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구요.
 
  盧대통령은 초헌법적인 사람 아닙니까? 그런 사람에게 있어 상식을 뛰어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金大中의 때 묻은 黨보다는 자신의 黨을 가지고 싶었겠지요. 부산ㆍ경남에서 정치적 성장을 모색하는 자신의 「패밀리」들에게 기회도 주고 싶었을 것이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한 번만이라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구요. 이런 생각들이 혼합돼 민주당을 깨고 짓밟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大選 때 盧武鉉 캠프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습니까.
 
  『제가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李基明(이기명ㆍ前 盧武鉉 후보 후원회장)씨에게 연락을 먼저 했고, 그 뒤 盧후보를 만났죠.
 
  제가 당시로서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盧후보를 선택한 것은 우선 동서화합을 주창하는 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盧후보가 大權 도전에 실패해도 정치생명이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盧대통령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습니까.
 
  『「저는 기능을 파는 사람이 아닙니다. 盧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죠. 「기능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는 말을 한 것은 제가 盧대통령에게 寄生(기생)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盧武鉉에겐 미래 비전이 없다
 
  ―盧武鉉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 시기는 언제입니까.
 
  『2003년 1월3일 당시 서울 여의도 민주당 黨舍 강당에서 열린 신년회 자리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신년회에 참석한 盧대통령 당선자와 나눈 악수가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저는 分黨 직전인 2003년 8월쯤 이미 盧武鉉 정권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감했습니다』
 
  ―향후 盧武鉉 정부는 어떤 행보를 보일 것으로 생각하는지요.
 
  『현재 盧武鉉 대통령은 향후 국정운영에 대한 확실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에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大選 때까지만 해도 盧대통령에게는 확실한 콘텐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입문해서 국회의원과 장관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난 지금은 최고의 고지를 점령한 軍人처럼 내일에 대한 목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柳대변인은 『盧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지금처럼 계속 국민과 야당을 상대로 정치게임하다가 흘러갈 것 같다』고 전망 했다.
 
  柳대변인은 『그러나 盧대통령의 성격상 이런 식으로 남은 기간을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며 『盧대통령은 승부를 가리려는 성격이기 때문에 앞날이 암담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盧武鉉 대통령은 탄핵과 수도이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싸고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선택적 망각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잊어버리고, 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증세죠. 盧대통령은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민주당을 깨고 나가는 무자비한 성격을 지니기도 했습니다.
 
  저는 盧대통령의 이같은 성격에 대해 한동안 헷갈렸습니다. 진정한 盧대통령의 모습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정리가 되었습니다. 다정다감한 것도 맞고, 무자비한 것도 맞습니다. 악어가 먹이를 잡아 놓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진실이고, 맛있게 먹는 것도 진실인 것과 같은 것이지요』
 
  柳鍾珌 대변인은 『한국 정치에 三災(삼재)가 들었다』고 했다. 한국의 정치 자체가 예측불허인데다, 盧대통령도 예측불허의 스타일이고, 여기에다 예측불허의 大權 레이스 국면이 시작됐다는 얘기였다.
 
  柳대변인은 『「盧武鉉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울퉁불퉁한 땅에 스핀을 먹여서 던진 럭비공』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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