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나무역 직원들은 이라크 복음화 준비했다
● 한국교회가 이라크內 선교활동 가장 활발. 神學校 건설 계획도 金鮮一 사건으로 중단
● 한국교회가 이라크內 선교활동 가장 활발. 神學校 건설 계획도 金鮮一 사건으로 중단
金사장은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이라크 현지 상황에 맞게 문제를 처리했고, 내 말에 거짓은 없다』고 했다. 그는 「金씨의 피살이 종교문제와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면서도 『나를 포함해 우리 회사 직원은 대부분 기업활동과 함께 선교에 뜻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金사장은 『그동안 이라크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성과가 많았고, 한국교회와 이라크 기독교연합이 주최가 되고 가나무역이 실무를 맡아 이라크의 복음화를 위해 神學校(신학교) 설립을 추진 중에 있었다』고 했다.
바그다드 시내에 사무실을 둔 가나무역은 사장을 포함해 직원이 16명으로, 이라크 주둔 美軍부대에 생필품과 각종 잡화를 납품하는 회사다. 本社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다.
―감사원에서는 주로 어떤 내용을 조사받았나.
『대사관에 피랍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와 무장단체와의 협상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조사받았다』
―이라크는 언제 들어갔나.
『지난해 4월 미군이 終戰(종전)을 선언한 직후 들어갔다』
―이라크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이라크에 들어가기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 자재를 납품하고 있었다. 미군 측이 「이라크에 가서 같은 일을 해 달라」고 해서 들어갔다』
―이라크에서 사업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대학 졸업 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에서 줄곧 일해 왔다. 자재납품 등 주로 개인사업과 함께 선교지원활동을 해 왔다』
―이라크人들이 갖는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어떠했나.
『이라크人들은 미국人 등 서양인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한국 사람들에게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한국 건설회사들이 그쪽에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중동 사람들은 한국人의 근면성과 국민성을 잘 알고 있었다』
―가나무역 직원들은 한국의 온누리교회 선교사라는 말이 있다.
『온누리교회 소속 信者(신자) 네 명이 있을 뿐 선교사는 아니다. 다만 나를 포함해 직원 모두가 이라크에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회사는 선교사로 뛰어들기 위한 준비과정을 제공했다. 우리 회사에 입사한 직원들은 구제활동을 통한 이라크의 복음화를 위한 뜻을 가지고 있다』
―金鮮一씨 피살사건이 선교활동과 관련이 있나.
『전혀 관련이 없다』
―金鮮一씨와 같이 납치된 이라크人 운전기사도 기독교 信者인가.
『가나무역에는 몇 명의 이라크人이 있다. 이들은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니고 계약을 맺은 임시 근로자라고 보면 된다. 물론 그들도 기독교 信者이다. 이라크 전체 인구 중에서 기독교인은 7~8% 정도다』
―일각에서는 金사장이 미국 정보기관과 줄이 닿아 있었고, 이 때문에 金鮮一씨가 피살됐다는 說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라크 무장단체가 金鮮一씨를 죽인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軍의 파병문제 말고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한국軍의 파병문제는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는데.
『이라크 현지에는 5월무렵 한국이 파병한다는 얘기가 다시 들려왔다. 그러면서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특히 6월18일 한국 정부의 파병확인 발표가 나온 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金鮮一씨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납치 이후 나흘이 지난 6월4일경이었다. 직원의 납치 사실을 늦게 안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바그다드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교통이나 통신 사정이 말이 아니다. 미군부대에 납품을 하는 날이면 직원들과 연락이 잘 안 되곤 했다. 교통이 안 좋아 군부대에서 자고 오기도 했다』
―가나무역 직원이 지난 3월에도 납치된 적이 있다고 하던데.
『당시 낫시리아 지역에서 이라크 저항세력과 이탈리아軍 사이에 총격전이 발생했다. 납품차 외출 중이던 우리 직원이 잠시 저항세력의 관할권 안에 들어 있었다. 14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었는데 납치라고 볼 수는 없다』
―이라크人들은 한국人이 참수된 사실을 알고 있나.
『다른 서방세계 사람들이 사살될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그들이, 한국인이 피살된 사건에 대해서는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이라크人들은 한국 파병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나.
『한국軍이 이라크 재건을 목표로 파병한다고 하지만, 많은 이라크人들은 전투병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그들이지만 파병 문제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그들 民心(민심)이다』
―한국軍이 파병되면 한국人에 대한 테러가 또다시 일어날 것으로 보나.
『한국 사람들은 또 다른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駐이라크 대사관에서 한국 교민들에게 신변안전을 위해 주의하라는 公文을 발송했다고 하는데.
『지난 5월경 公文이 아닌 전자메일로 몸 조심하라는 내용을 여러 차례 보내왔다』
―국가는 해외교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駐이라크 한국대사관의 안이한 대처도 문제이지만, 가나무역 측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그렇게 생각할 수있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金鮮一씨에게도 조심하라고 했나.
『아침마다 회의를 하면서 「스스로 몸조심하자」고 당부했다. 회의를 마치면 우리의 안전을 하나님께 기도했다』
―金鮮一씨 납치사건과 관련해 대사관과 이야기를 나눈 것은 언제인가.
『현지시각으로 6월20일 알자지라 방송이 한국인 피랍사실을 보도하자마자 대사관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나는 그때 모술에 있었는데, 빨리 바그다드로 오라고 했다』
―대사관에 알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면 사태를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납치 이후 20여 일 동안 대사관 직원에게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이라크式으로 무장단체와 직접 협상해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이 순조롭게 돼 가고 있었기 때문에 대사관에 알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金鮮一씨 구출작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처음에는 두 팀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한 팀은 바그다드의 고속도로와 경찰서, 병원을 돌아다녔고, 회사內 이라크人으로 구성된 다른 팀은 팔루자 지역에 있는 무장세력들과 접촉했다. 당시 무장세력은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찾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쪽에서 며칠이 지나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라크人 변호사를 통해 무장세력 고위층을 접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변호사에게 협상에 필요한 자금 등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
―변호사를 통해 일은 잘 진행됐나.
『그 변호사가 무슬림 수니 성직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처음에 우리의 제안을 거절했다가 다시 만나 부탁을 하자 「알았다. 기다려라」고 했다. 이후 일은 진행이 잘 됐다. 무슬림 고위 성직자와 변호사가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하는 등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6월17일 무렵 우리 변호사와 무슬림 수니 성직자들이 연결해 준 무장세력들과 단독 회담이 있었다. 변호사는 그쪽에 「무엇을 원하느냐, 얼마를 원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무장단체에서는 「金鮮一씨가 미국의 정보원이 아니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우리가 힘을 써 주겠다」고 했다. 다른 무장세력 관계자도 만났다. 그 사람도 「힘을 써 주겠다」고 했다.
상황은 6월18일까지 괜찮았다. 우리도 곧 金鮮一씨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정부의 파병 再확인 소식이 전해진 후 상황은 악화됐다』
―협상과정에서 무장단체가 5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인가.
『협상과정에서 돈 문제는 전혀 없었다. 나로서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돈의 액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돈을 요구하지 않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도 궁금했고, 답답했다』
―돈이 많은 이라크人들도 납치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이럴 경우 협상금은 얼마 정도 들어가나.
『적게는 3만 달러에서 많게는 10만 달러 정도라고 들었다』
―金사장은 6월4일경 전자메일로 요르단에 있는 강모 목사와 선교사들에게 金씨 실종사실을 알렸다. 며칠 후 任洪宰 대사가 요르단에 업무차 갔다가 이들 목사와 선교사를 접촉한 것으로 밝혀졌다. 任대사는 그들로부터 金씨 납치사실을 들었던 것은 아닌가.
『요르단에 있는 선교사들이 任대사에게 얘기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金사장이 任대사에게 빌려 준 1만5000달러의 성격은 무엇인가.
『任대사가 「대사관 운영비가 필요하다」고 해서 6월10일 빌려 줬고, 6월29일 돌려받았다. 나는 돈을 빌려 줄 때도 金씨의 납치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말을 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金사장은 金씨 납치 이후 3週 동안 이라크 대사관을 네 번 방문했다. 金鮮一씨 납치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데.
『대사관에 조그만 건물을 하나 짓고 있었는데 그 일 때문에 왔다갔다 했다』
―金사장은 어느 교회를 다니나.
『바그다드에서는 韓人교회에서 예배를 봤다. 한국에서는 서울 목동에 있는 M교회에 다녔다. 집사 직분을 맡고 있다』
―가나무역은 M교회가 후원해 주는 기업인가.
『우리 회사는 특정 교회로부터 선교활동비를 지원받지 않았다. 회사의 이익금으로 일을 해 왔다』
―金鮮一씨는 선교에 뜻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앞으로 이라크에서 선교활동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金鮮一씨가 피살되고 난 후 나도 같이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라크 복음화에는 누군가가 앞장서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들은 이라크內에서 구제활동을 하면서 복음 전파에 노력해 왔다. 성과도 많았다. 국내 대형 교회와 이라크 기독교 단체가 연합해 현지에 神學校를 건설하려 했다. 가나무역이 실무를 맡았다. 그러나 金鮮一씨 피살사건으로 그 일은 중단 상태에 빠졌다』
―이라크에서 선교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나라는 어딘가.
『한국교회가 선교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라크에 다시 들어갈 것인가.
『다시 들어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사관 측에서 가나무역 직원들을 철수하라고 해서 조만간 남아 있는 직원들이 귀국할 것이다. 하지만 완전 철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요즘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고 있나.
『일부 언론에서 내가 무모하게 사업을 했다고 비난한 것을 봤다. 이라크에 빈 몸으로 들어갔다. 일년 동안 젊은 직원들과 똘똘 뭉쳐 일했다. 바그다드에 들어온 사람들은 가나무역을 알 것이다. 바그다드에 들어온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 알 것이다.
오무전기도 작년에 참 어려웠다. 조건 없이 많이 도와줬다. 경호업체도 우리가 작은 도움을 줬다. 가나무역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일이 발생했다. 가나무역이 다시 한 번 이라크에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 「모든 일을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