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北 화학기술자의 증언
『나는 軍 죄수를 상대로 한 生體實驗에 참여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견해 -『대체로 신빙성이 있는 증언이다』

  • : 이상흔  hana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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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청산가스와 염소가스를 혼합 주입했다. 실험대상자가 죽는 데 세 시간 반이 걸렸다. 다리도 제대로 못 펴는 사람이라 오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그저 바닥을 긁고 버둥거렸다. 죽기 10분 전에는 엄청나게 큰 소리를 질렀다. 두 번째 사람에겐 청산가리와 오르토 니트로클로로벤젠 혼합 독극물을 주입했다. 그는 두 시간 반 만에 죽었다』
2003년 10월28일 처음으로 공개된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의 노동단련대 내부 모습으로 수감자들이 상의를 벗은 채 목재를 운반하고 있다. 국내 탈북자 지원단체인「피랍·탈북인권연대」는 북한內 협조자의 도움으로 지난 8월 온성군 노동단련대 내부를 비밀리에 촬영해, 이날 동영상을 공개했다.
2002년 3월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화학기술자인 한 脫北者(탈북자)와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이 50代 脫北者는 1979년 자신이 평성 소재 북한의 군사감옥 연구실에서 정치범 2명을 상대로 독가스 시험을 하는 데 직접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1993년까지 그런 실험이 계속되었다는 이야기를 연구소 간부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는 두 정치범을 각각 다른 실험실에 넣고 청산가리와 오르토 니트로클로로벤젠(Ortho-Nitrochlorobenzene) 혼합 가스를 주입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목격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동안 脫北者를 중심으로 북한의 화학무기 생체실험에 대한 증언이 몇 차례 나온 바 있으나 증언자가 이러한 실험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月刊朝鮮은 脫北 화학자가 목격한 북한의 생체실험에 대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2001년 한국으로 귀순한 그는 북한에 있을 때 함흥에 있는 한 화학연구소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안전을 위하여 자신의 신상과 관계되는 부분은 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 脫北 화학자는 『생체실험처럼 중요한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 공개하느냐』는 질문에 『그동안 누가 물어보기나 했느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한국에 오니 「人權」이 어떻고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나는 솔직히 人權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지도 몰랐단 말입니다. LA 타임스에 인터뷰를 주선한 남재중(이지스 재단 대표) 선생을 만나 2·8 비날론 공장의 생체실험 대상자 인계 문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우연히 이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는 『정치범들이 계급적 원수라고 생각했고,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 죽는 방법에서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여 실험대상자에 대한 인간적인 측은함은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친구의 배려로 실험에 참여
 
  ―화학무기 생체실험에 참가한 것이 언제인가.
 
  『1979년 4월 말이나 5월 초경, 평양 부근 평성市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실험이 있었다. 이 수용소는 軍部 정치범 감옥소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軍부대로 되어 있고, 수용자도 모두 군인으로 알고 있다』
 
  ―생체실험에 참여한 동기는 무엇인가.
 
  『대학 졸업 후, 나는 함흥에 있는 ○○화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道에 있는 ○○독해물(독극물)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던 친구가 자신의 연구소에서 니트로클로로벤젠의 분리공정 시설을 만드는데 나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다. 이 친구는 나와 같은 대학, 같은 科를 다녀서 무척 친했다. 나는 친구의 연구소에서 3개월 정도 머물며 분리공정 시설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런 인연으로 독해물연구소가 실시한 (생체)실험에 참여하게 됐다』
 
  ―사전에 생체실험을 한다는 것을 알았나.
 
  『그렇다. 북한에서 국방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연구 결과가 좋으면 훈장을 받는다. 북한에서 훈장은 일종의 老後보장책과 같다. 친구가 실험에 내 이름 하나 덤으로 끼워 놓으면 훈장을 받을 수 있다며 상부에 보고하여 나를 실험에 참여시켰다. 친구는 나 때문에 좋은 성과를 냈으니 나에게 신세를 갚는다며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실험으로 훈장은 받았나.
 
  『받았다. 몇 호 실험에 참가하여 공훈을 쌓고, 국방과학기술에 이바지했다는 그런 명목이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독해물연구소는 화학무기를 만드는 곳으로 북한 국방과학원에 속해 있고, 국방과학원은 상급 기관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군수사업부의 지휘를 받는다. 실험에는 노동당 중앙위 군수사업부의 과장 한 명과 軍 보위사령부의 교화국 부국장이 왔었고, 연구 인력으로는 나를 포함해 친구가 있던 ○○독해물연구소에서 두 명 등 모두 다섯 명이 실험에 참여했다. 그 외 수용소의 사형집행관인 듯한 교도관 두 명이 나와서 실험에 협조했다』
 
  ―니트로클로로벤젠의 분리공정 시설을 직접 만들었나.
 
  『분리공정 설계사도 같이 일했다. 도면이 완료되면 공정기계를 제작하고, 실제 분리실험까지 해야 한다. 분리공정 시설은 갱도 내에 설치되었다』
 
  ―화학물질 분리공정 시설을 만드는 것은 간단한 작업인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밀도가 차이 나는 화학물질을 제대로 분리하는 것은 실험실에서는 잘 되지만 실제 공업에 응용하는 것은 어렵다. 화학물질 분리공정 장치에 증류탑이 있는데, 이 증류탑의 온도차가 2~3℃만 나도 화학물의 성실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증류탑 높이를 잘 계산해야 하는데, 나는 다른 설계사 한 명과 증류탑 설계를 하는 등 분리공정 시설 제작에 참여했다. 분리장치 완성 후 실험을 두 번 했다』
 
 
 
 각각 다른 방에서 두 명을 생체실험
 
   ―니트로클로로벤젠을 왜 분리하는 것인가.
 
  『니트로클로로벤젠을 분리하면 오르토 體와 파라體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 오르토 니트로클로로벤젠을 청산가리와 혼합하여 독극물을 만든다. 이때 용매는 톨루엔을 쓴다. 청산은 휘발성이 강한 일시성 독해물에 속한다. 연구소는 강력하면서 持效性(지효성·지속성)이 있는 혼합 독해물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르토 니트로클로로벤젠은 어떤 물체인가.
 
  『고체인데, 공기에 노출되면 氣體(기체)로 승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氣化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용매를 써서 액화했다가 氣化시킨다. 사람이 氣化한 이 물질을 호흡을 통해 흡수하면 곧 사망에 이르게 된다』
 
  ―持效性이란 사람이 흡수했을 때 약효가 지속된다는 뜻인가, 증발이 천천히 된다는 뜻인가.
 
  『내가 독해물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외부적인 성질의 지속성을 높이지 않으면, 낭비가 많고 생산량도 많아야 한다. 어쨌든 외부에 몇 시간 잔존해야 한다는 등의 나름의 독해물 판단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혼합 독극물을 사람에게 투여해서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었나.
 
  『그렇다. 청산이 들어간 독극물을 사람에게 투입하면 그 사람이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연구소 입장에서는 이런 독극물을 실제로 생산하자면 자재 산출량, 노력 산출량 등 제반 경제적 산출을 먼저 해야 국가계획에 맞물려 자재를 지급받고 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생체실험을 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다음 연도 연구사업할 자재 사용 계획서를 그 전 해에 올려야 한다』
 
  ―수용소의 구조는.
 
  『수용소는 평양 인근 평성市에 있었는데, 평양에서 자동차 속도(시속 약 40km)로 4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수용소는 2층 건물 한 棟과 단층 건물 두 棟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용소 주변에는 시멘트로 담장을 쳐 놓았다』
 
  ―실험실의 구조는.
 
  『수용소 건물 중 단층 건물 한 棟에서 실험이 이루어졌다. 실험실이 있는 건물은 건물 안에 건물이 있는 식이었다. 건물 한가운데 두 평 남짓한 실험실이 네 칸(네 개의 방) 있었고, 주위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다. 실험실의 전면은 외부에서 내부를 관찰할 수 있도록 유리로 되어 있었다. 뒷면은 콘크리트 벽이었고, 눈높이 위치에 가로·세로 40cm 정도 크기의 視窓(시창: 들여다보는 창문)이 나 있었다. 실험실 앞면 유리벽 한쪽에 사람이 숙이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나 있었다. 유리벽 아래는 20cm 가량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었다』
 
  ―실험 장소가 常用 시설처럼 보였나.
 
  『그것은 잘 모르겠다. 애당초 무슨 용도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꾸민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날 실험에 한 번밖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른다. 어쨌거나 이 사람들 일하는 것이 처음하는 솜씨는 아닌 것처럼 익숙했다』
 
  ―실험과정을 설명해 달라.
 
  『한 명에게 먼저 화학가스를 주입하여 실험한 후, 다른 한 명은 다른 방에서 실시했다. 첫 번째 실험대상자에게는 청산가스와 염소가스를 혼합 주입했다. 이 사람이 죽는 데 세 시간 반이 걸렸다. 두 번째 실험대상자에는 청산가리와 오르토 니트로클로로벤젠 혼합 독극물을 주입했다. 이 사람은 두 시간 반 만에 죽었다. 모두 여섯 시간 동안 실험이 지속됐다』
 
 
 
 죽기 10분 전 엄청난 괴성
 
  ―실험대상자인 죄수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이미 폐인이 다 된 상태였다. 2층으로 된 토끼우리 같은 좁은 곳에 오래 가두어 놓은 사람들이었다. 감방에서 실험실로 끌고 나왔을 때는 무릎도 못 펴는 앉은뱅이였다. 걷지를 못하니 교도관들이 휠체어에 태워 밀고 왔다.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을 못 할 정도였다. 머리는 길고, 수염은 텁수룩하고 차마 인간이라고 할 수 없고, 그저 벽에다 회칠해 놓은 듯 뼈에 가죽을 발라놓은 듯했다. 가죽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달아나라고 해도 못 달아났을 것이다』
 
  ―실험실 내부로 가스 주입은 어떤 식으로 했나.
 
  『분무할 수 있는 기구를 가지고 왔다. 전기로 작동하는 소형 콤프레샤(컴프레서: 공기 등을 압축하는 기계)로 독가스를 실험실 내로 분사했다. 실험실은 완전히 밀폐되었고 내부로 가스를 주입할 수 있는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분사는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안에 있는 죄수와 대화할 수 있게 마이크 장치가 있어 밖에서 죄수와 대화할 수 있었다』
 
  ―죄수와 대화는 누가 했나.
 
  『교도소 교관 중에 한 명이 했다. 교도관이 「네 이름 뭐야, 어느 부대 소속이야」 하는 식으로 말을 걸며 문답을 했다. 죄수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가스 주입은 한꺼번에 이루어졌나.
 
  『몇 단계에 걸쳐 조금씩 분사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쏘면 사람이 금방 죽기 때문에 실험을 할 수가 없다』
 
  ―실험에 쓰인 가스의 색깔은.
 
  『물리적으로는 투명한 액체였다. 색상이 완전 투명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험실 안에는 기체 상태로 「팡」 하고 쏘아 넣었을 때는 투명했다. 실험실이 크니 분말이 흩어진다. 마지막에 가스량이 많아지자 실험실이 조금 흐려지는 느낌이 있었다』
 
  ―투입된 가스는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나.
 
  『오르토 니트로클로로벤젠은 중추신경 마비, 호흡기관 마비와 파괴를 가져오고, 청산가리는 직효성(급성) 호흡장애가 오며, 뇌 파괴와 臟器(장기) 파괴도 동반한다』
 
  ―가스를 주입했을 때 죄수가 어떤 반응을 보였나.
 
  『기운이 없는 사람이니까 힘찬 소리는 못 지르고, 하여간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첫 번째 실험자는 세 시간 반 만에 완전히 죽었는데, 죽기 10분 전에는 엄청나게 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먹지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까 생각했다. 그러자 죄수에게 마이크로 말을 걸던 사형집행관(교도관)이 「저 새끼 아침을 많이 먹였더니 소리를 지르는가 보다」 하는 말을 했다. 나는 교도관의 말을 듣고 「죽을 사람이라 다른 날보다 그나마 식사는 잘 먹였구나」하고 생각했다』
 
  ―독극물이 투입되자 죄수가 곧바로 쓰러졌나.
 
  『다리도 제대로 못 펴는 사람이라 오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그저 바닥을 긁고 버둥거렸다』
 
  ―문을 열려고 하거나 벽을 긁지는 않았나.
 
  『그럴 기운도 없는 사람이었다. 실험실 가운데 플라스틱 깔개 같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저 앉은 자리에서 바닥을 긁었다. 바닥이 질퍽했으니 소변은 많이 싼 것 같고, 고통에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찢어서 옷이 너덜해졌고, 손에서 피도 난 것 같다』
 
 
 
 『실험대상 죄수들을 사상적 원수로 생각했다』
 
  ―실험 참관인은 어디서 이 장면을 지켜보았나.
 
  『실험실 유리벽 밖에서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책상을 하나 가져다 놓고 기록을 했다. 책상 위에는 전화기가 한 대 있었다. 혹시 실험 도중 머리가 아프면 마시려고 독한 술도 한 병 갖다 놓았었다』
 
  ―무슨 기록을 했나.
 
  『몇 시간 만에 질식하는가, 죽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가를 관찰하여 기록한다. 이런 것을 국방과학원의 비공개 회의 때 보고해야 인정받으니까』
 
  ―실험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내가 맡은 실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실험에 쓸 화학약품을 날라 주는 등의 협조를 하는 것뿐이었다』
 
  ―죄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려 주었나.
 
  『그런 것 없었다. 전혀 눈치 챌 수 없었을 것이다. 실험실 안에 들어가기 전에도 강냉이 과자인가를 좀 주는 것을 보았다. 하여간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실험대상자는 사형수였나.
 
  『북한에서 살인범은 살아나도, 정치범은 못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미 그곳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온 이상 사형당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고, 단지 죽는 방법상의 문제가 있을 뿐이었다. 나도 들은 이야기지만 그곳에 온 사람들을 사형시킬 때는 집행관이 끌어내어 망치로 때려죽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에서는 총알 하나에 닭 한 마리 값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죄수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나.
 
  『전혀 구분할 수 없다』
 
  ―죄수의 신분은.
 
  『둘 다 군인이다』
 
  ―당시 그런 실험을 하면서 어떤 심정이 들었나.
 
  『「사람은 죄짓고 살지 말아야 한다, 죄를 지으면 저런 꼴을 당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나쁜 짓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죄수들은 우리의 계급적 원수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런 교양만 받았으니,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정치범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오로지 죽여야 한다는 것밖에 없었다. 강물이 내리 흐르듯 그런 교육만 받으면 그렇게 된다』
 
  ―실험실에 들어갈 때 보안 점검은.
 
  『독해물연구소 당비서가 중앙당 과장에게 미리 이야기해 놓았고, 실험 전에 실험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들어간다』
 
  ―인체실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나.
 
  『박사학위와 실험과는 전혀 관계 없다』
 
  ―1993년까지 인체실험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당시에 실험에 참가했던 독해물연구소 친구를 1993년에 만났다. 그는 연구소의 간부 화학자 위치에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이번에도 평성에 다녀왔다」, 「불쾌하다」고 한 적이 있다. 나도 그 실험에 들어간 적이 있으니 그 말을 들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그때 한 실험이 화학무기를 위한 실험이란 것도 알았나.
 
  『그런 것은 다 알고 실험한다』
 
  ―실험의 명칭은.
 
  『NP-120 실험이라고 했다. 무슨 약자인지는 모른다. 실험 이름은 과제책임자가 만들기 나름이다』
 
 
 
 국내 화학자들: 『신빙성 있는 이야기다』
 
  ―얼마 전 언론에 공개된 2·8 비날론 공장의 생체실험 대상자 인계 문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남이 입수한 문건에 대해서 논평하고 싶지 않다』
 
  脫北 화학자와 인터뷰가 끝난 후 이 내용을 국내 화학자와 毒性學(독성학)을 전공한 교수 여러 명에게 보여 주고 인터뷰 내용의 신빙성에 대해 물어봤다. 이들은 한결같이 『脫北 화학자의 진술만 봐서는 그의 말을 의심할 만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독성학 박사인 서울大 수의학과 趙明行 교수는 『인터뷰 내용만으로 봤을 때 脫北 화학자가 언급한 화학물질이 신체에 반응하는 모습이나 실험방식에서 이상한 점은 없다』고 말했다. 趙교수는 『실험실에 컴프레서로 독극물을 투입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방식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지만 밀폐만 완벽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니트로클로로벤젠 중에 왜 오르토體를 사용했다고 보나.
 
  『오르토體의 독성이 더 강하다. 청산은 공기 중에서 순간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에 脫北 화학자의 목격이 사실이라면 북한당국이 독성이 강하면서 공기 중에서도 오래 지속되는 물질의 독극물을 개발하려 한 것 같다』
 
  ―독가스에 노출된 사람이 세 시간 반 동안 살 수 있나.
 
  『농도에 따라 다른데 일본의 731부대가 마루타를 상대로 실험을 할 때 어느 정도의 독가스 농도에 신체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를 실험했다. 脫北 화학자가 목격한 실험은 독극물의 농도가 낮은 것에서부터 강한 것까지 단계적으로 실험한 것 같다』
 
  정부 산하 화학물질 연구기관의 한 독성학 전문가도 『脫北 화학자의 진술이 상당한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연구소에서 일년에 서너 차례 동물로 독극물 반응 실험을 한다. 동물 급성독성시험을 할 때는 보통 네 시간 정도 한다. 독성물질의 온도를 높여 氣化시키면서 실험을 한다. 액체 상태일 때 유색인 독극물도 공기 중에 분사를 하면 무색 가스처럼 보일 수가 있다. 脫北 화학자가 실험에 투입된 독극물의 농도에 대한 부분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동물실험과 비교해서 농도 부분만 빼면 증언에 의심할 만한 부분은 없다. 농도가 너무 높으면 산소 부족으로 질식해서 죽는다. 기타 그가 말한 청산과 니트로클로로벤젠의 화학적 특성도 정확하다』
 
  국방부의 한 화학무기 전문가는 『청산과 니트로클로로벤젠은 화학무기에서 흔히 쓰는 물질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해서 脫北 화학자가 언급한 화학물질이 화학무기로 쓰이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며 『인터뷰만 보고 증언의 진실성과 생체실험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脫北 화학자말고도 인체 실험을 증언한 예는 또 있다. 1995년 脫北,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순옥씨는 『평남 개천교화소에 수감되었던 1987년 50여 명의 수용자들이 자신들에게 제공된 삶은 배추 한 덩이씩을 먹고, 30분이 못 되어 모두 쓰러져 죽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영국의 BBC 방송이 1999년 北京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했다는 귀순자 권혁씨의 생체실험 목격담을 보도했다. 權씨는 『1993년 함경도 회령에 있는 제22 정치범 수용소 경비대장으로 있을 때 부모와 어린 아들·딸 등 한 가족이 유리로 된 가스실에서 화학무기 생체실험으로 죽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BBC의 보도 후 「피랍·탈북인권연대」가 북한이 생체실험을 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는 문건의 원본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문건은 「22호 정치범 수용소에서 3명의 정치범을 함남에 있는 2·8 비날론 공장 화학일용품 직장에 생체실험용으로 이송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月刊朝鮮 2004년 3월호 보도 참조).
 
  우리 정보 당국은 탈북자들의 생체실험 증언에 대해 『주장은 있지만 아직까지 생체실험이 확인된 것은 없다. 脫北 화학자가 지목한 평성市의 軍 교도소는 존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생화학 무기개발을 한다는 정황이 있으므로 우리는 이를 계속 추적 중에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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