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용불량자는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우리가 마치 사회의 쓰레기로 취급되어 매도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용불량자는 『입사 1년차 된 모 경제신문의 20代 중반 여성 기자가 신용불량자를 「사회의 惡」으로 규정하는 글을 쓴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 이후 신용카드와 신용불량자 문제의 본질을 세상에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들은 왜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며, 이들은 2003년 여름을 어떻게 나고 있는가. 먼저 서울 구로구에 사는 P양(23)이 신용불량자가 된 사연을 따라가 보았다. 그녀는 20代의 사회초년생이 과소비와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 준다.
P양은 현재 4900만원의 카드빚을 지고 있다. P양은 자신이 신용불량자가 된 것은 과소비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동산 임대 관련 회사에 취직했고, 곧바로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었다. P양은 회사를 다니면서 필요한 옷과 화장품 50만원어치를 사면서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녀의 소득은 월 70만원이었다.
P양은 특히 화장품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값이 비싼 화장품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길거리에 서 색깔이 예쁜 눈 화장품이나 기초 화장품을 자주 샀다. 자신의 말로는 『아마 평생 쓸 화장품을 사 모은 것 같다』고 한다. 그 밖에 예쁜 장식품이나 옷을 사면서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자신의 소득범위를 넘어서는 물건을 사게 된 P양은 용돈이 모자랐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용돈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P양은 카드 돌려막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1년 후, 한 장이던 P양의 신용카드는 돌려막기를 하는 과정에서 4장으로 불어났고, 카드빚도 1500만원이 됐다.
돈이 부족했던 P양은 카드빚을 갚기 위해 불법 신용카드 대출인 속칭 「카드깡」을 시작했다. 직장생활 2년 만인 작년 말 P양의 카드는 8장, 총 채무는 4900만원으로 늘어났다.
금년 초 갑자기 현금서비스 한도가 줄어들면서 P양은 돌려막기가 더 이상 불가능했다. P양은 카드 대금을 연체하기 시작했고,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다. P양은 『돈도 없는데 카드를 쉽게 발급해 주니 「좋아라」 사용했다』며 『그러나 작년 중순, 카드깡을 시작하면서부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P양처럼 자신의 소득으로 카드빚을 감당하기 힘든 신용불량자들은 가장 먼저 개인워크아웃(신용회복지원제도)에 눈을 돌린다. 현재 P양도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여 최종 확정된 상태다.
일단 개인워크아웃 대상자로 결정되면 채무를 최장 8년간 나누어 갚을 수 있으며, 총 채무액의 3분의 1 이내에서 채무감면 혜택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지독한」 채권 변제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큰 혜택이다.
개인워크아웃에 통과된 P양은 한 달에 80만원씩 8년 동안 채무를 갚아 나가야 한다. P양은 현재 다니는 회사의 월급으로는 이 돈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에 회사를 마친 후 오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남자친구가 도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많은 신용불량자들이 개인워크아웃 제도를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의 빛으로 여기고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들이 개인워크아웃 제도를 통과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 7월30일, 서울 중구 명동 센트럴빌딩에 있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빌딩 6층의 개인워크아웃 신청부서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기를 업은 30代의 한 아주머니가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기 위해 자신의 채무상태와 소득 등을 적은 쪽지를 1차 상담원에게 건네주었다. 쪽지에는 채무 7500만원, 월 소득 170만원, 동거가족 5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쪽지를 건네받은 상담원은 즉석에서 「자격미달」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개인워크아웃 제도는 기본적으로 신용불량자 자신이 변제 능력이 있을 때만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담당 상담원은 『이 아주머니의 경우 5人 가족의 최저생계비인 120만~130만원의 소득을 제외한 상태에서 매월 120만원씩 갚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그럴 경우 월 25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의 소득을 합해도 월 170만원밖에 되지 않아 자격미달』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빚을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서류접수조차 안 된다.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려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정한 이상(4人 가족 기준102만원)의 수입이 있어야 하며, 총 채무액이 3억원 이하여야 한다. 또한 워크아웃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농협ㆍ수협 단위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및 사채업자 등에 채무가 있는 경우에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업무를 개시한 2002년 10월부터 지난 7월 말까지 약 1만9000여 명의 신용불량자가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 가운데 개인워크아웃이 확정된 사람은 3600여 명 정도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 李東基(이동기·33) 상담원은 『신용불량자는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카드 돌려막기란 말이 왜 나오는가. 카드 돌려막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손쉬운 채무 변제 방법이다. 돌려막기는 본인의 희생을 일단 뒤로 미룬다는 편리함이 있다. 돈이 없을 때 필요해서 카드를 쓸 수는 있다. 하지만 자기 소득으로 상환이 안되면 소비를 줄이고, 다시 가진 것을 팔아서라도 채무를 소득 범위 내로 끌어내려야 한다. 이들은 빚 갚을 수많은 상황을 설정해 놓았으면서 실제로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게으르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카드 대금이 연체되기 시작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를 시작한다. 빚을 내어 빚을 갚는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원금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서울 중랑구 묵동에 사는 白모(28ㆍ여)씨는 『카드 돌려막기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 몰랐다』고 말한다. 그녀는 『카드를 올바르게 쓰는 법을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현재의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그녀는 지난달부터 카드 대금을 연체하기 시작했다. 예비 신용불량자인 것이다.
그녀는 돈이 필요한 친구에게 카드로 680만원을 현금서비스 해서 빌려 준 것이 화근이 되었다고 말했다.
『카드 돌려막기를 하니 이자가 붙고, 또 돌려막고…. 680만원이 3년 만에 2600만원이 되었다. 돈을 빌려 간 친구를 찾으려고 석 달 동안 아무 일도 못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런데 신용불량자가 되면 「사회의 쓰레기」로 취급할까 봐 겁이 난다』
白씨는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장래가 유망하던 내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현재 개인 가게에서 월 100만원을 받으며 일을 하지만 독촉전화가 심하여 가게도 그만두어야 할 형편』이라고 걱정했다.
기자가 만난 많은 신용불량자들은 『어떻게 몇백만원대의 자신의 빚이 몇천만원이 되고 몇억대가 되는가』하고 물어보면 『잘 모른다』는 대답을 했다. 그들은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50만원을 한번만 연체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카드 돌려막기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올려놓은 글이 있었다.
<대게 돌려막기를 하면 이자(2%)에다 연체 수수료(2%)를 내기 때문에 월 4%의 이자를 내게 된다. 이것을 年利로 계산하면 48%의 이자율이다. 1000만원을 1년간 돌려막으면 이자는 480만원이나 된다. 그러나 돌려막지 않고 그냥 연체로 두었을 경우, 연체이자를 年 24%로 계산하면 1년에 240만원이 된다>
신용불량자들은 독촉전화에 시달린 경험을 이야기할 때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곤 했다. 심지어 처음에는 인터뷰를 하기 싫다던 신용불량자가 『채권 추심원에게 당한 횡포만은 이야기해야겠다』며 인터뷰에 응한 경우도 있었다. 대구 달서구 송현동에 사는 柳모(32ㆍ여)씨가 그런 경우다. 결혼 8년째인 그녀는 私금융업체 세 군데로부터 돈을 빌렸다가 추심원들의 전화독촉과 방문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柳씨가 세 군데 私금융에 진 빚은 모두 850만원. 대구 시내에서 아동복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게에 진열할 물건값을 지불하기 위해 빌린 돈이라고 한다.
柳씨는 『지난 1년 반 동안 매월 이자 40만~50만원을 연체 없이 잘 갚아 오다가 이제 겨우 한 달 연체를 했다. 채권 추심원들이 형제자매뿐 아니라, 서울에 사는 시동생에게 전화를 하는 바람에 시집과의 관계가 엉망이 되었다』고 말했다.
『私債업자들이 전화를 하고 집을 찾아오는데 견딜 수가 없다. 피해 다닌다고 될 일도 아니지만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는데 찾아와서 소리를 치니 이웃까지 다 알게 되어 창피하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사는 金仁洙(김인수ㆍ35)씨는 채권 추심을 참다 못해 카드社를 방문해 거센 항의를 했다고 한다.
『카드社에서는 臟器(장기)를 팔든지 眼球(안구)를 팔든 돈을 마련하라고 했다. 견디다 못한 나는 어느 날 카드社 사무실에 찾아가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찾아가 「깽판」을 치고 나니 좀 조용해졌다』
金仁洙씨는 1억8000만원까지 늘어났던 채무를 4년 만에 다 갚은 다소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지난 8월1일부로 신용불량 기록이 삭제되어 이제는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6년 前 사업을 하면서 은행 두 곳과 한 개 카드社에서 1억원을 대출받았는데 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잘 안 되면서 이 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당시 월 250만원을 벌었는데 이 돈을 다 갖다 줘도 빚이 매월 100만원씩 늘어났다』
─1억8000만원까지 늘었던 빚을 어떻게 갚았나.
『빚을 한푼도 갚지 않고 가만 두니 4년 후 1억8000만원으로 늘어났다. 나는 4년동안 빚을 한 푼도 갚지 않고 돈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현금 1억원을 들고 은행을 찾아갔다. 이렇게 하는 것을 속된말로 「쇼부(日語로 승부)친다」라고 한다. 현금을 들고 갔더니 채권자들이 이자 8000만원을 삭제해 주었다. 원금만 갚은 거다』
─1억원이라는 거금은 어떻게 모았나.
『2000년 각 카드社에서 신용카드를 경쟁적으로 발급할 때 나는 카드모집인으로 일했다. 한 달에 약 1500만원 이상도 벌었다. 신용불량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야말로 우리나라 카드社의 편법과 불법행위에 올라타 돈을 번 사람이다. 신용불량자가 카드모집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카드社는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카드모집인이 한 달에 1500만원을 번다는 것이 가능한가.
『카드社가 영업을 얼마나 난잡하게 했으면 그렇겠나. 나는 국내의 신용카드 업체 중 단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영업을 다 해 보았다. 길거리 카드모집원은 그렇게 큰돈을 벌지 못했다. 나는 주로 사무실 방문 영업을 했다. 하루에 신용카드를 평균 100장씩 발급했다. 한 명에게 19장을 한꺼번에 발급해 준 것이 최고 기록이다』
金仁洙씨는 한 사람에게 한꺼번에 10장 이상의 카드를 신청받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10개 정도 회사의 신용카드 신청서를 한꺼번에 묶어서 사무실을 찾아간다. 신용카드 신청자에게는 맨 위에 있는 신청서류 1장만 작성해 달라고 부탁하고, 나머지 9장의 신청서에는 그냥 사인만 받아 온다. 그리고 나서는 내가 맨 위의 서류를 보고 나머지 서류를 채운 후 회사에 갖다 주었다. 그러면 신청자에게 10장의 카드가 발급된다』
─회사에서 신용조회를 하지 않는가.
『회사에서 그렇게 해 오라고 지시를 한다. 어쨌든 내가 영업을 잘 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나를 서로 데리고 가려 했다』
金씨는 『은행에서는 카드 발급 실적이 지점장의 영업 실적과 연계되어 지점장들이 私債업자들과 연계해 대량의 카드 신청서를 받아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私債업자들은 돈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면서 카드신청서를 하나 작성해 달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작성된 카드신청서가 지점장들에게 대량으로 넘어갔다. 私債업자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의 예비 신용불량자들이다. 어느 카드社는 「연체가 있는 경우에 연체금액이 200만원 이하일 때 카드를 발급할 수있다」는 자체 기준을 정해 놓기도 했다. 이렇게 예비 신용불량자에게 무분별하게 신용카드가 발급됐다』
그는 처음에는 돈이 급해서 일을 했지만 일을 할수록 「2~3년 후에는 카드社가 나라를 망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金씨는 『현재 결혼적령기에 있는 20代말에서 30代 초의 여성 신용불량자가 약 30만 명 정도 되는데 이들이 빚을 다 갚기 전까지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며 『앞으로 20~30년 후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걱정』이라고 말했다.
金仁洙씨는 현재 인터넷 다음 카페의 「신용불량자클럽」에서 운영진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면서 신용불량자들에게 각종 상담과 조언을 해 주고 있다. 2000년에 개설된 신용불량자클럽은 비슷한 종류의 동호회 중에는 국내 최대 인원인 약 4만 명이 가입해 있다.
金仁洙씨는 『회원들이 3~4년 전에 내가 당했던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과거에 신용카드 모집원으로 일하면서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데 一助했다는 죄책감이 들어 더욱 열심히 활동한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클럽의 운영자인 남영민(32ㆍ한국신용정보 근무)씨는 『신용불량자클럽은 상환의지가 있는 신용불량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우리 클럽에서 실질적인 도움과 정보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빚을 상환할 의지가 있는 신용불량자들도 『이자를 아무리 갚아도 빚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私債를 끌어 쓰게 되고 나중에는 지치고 자포자기에 빠진다』고 말한다. 이들은 빚 갚을 의사가 있는 신용불량자들이 빚 갚을 기회를 찾도록 해야 하는데 막다른 골목으로만 내몬다고 불만이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金鍾延(김종연ㆍ38)씨는 私債를 빌려서 늘어난 카드빚을 갚았다. 밑천이 없는 그로서는 私債를 갚기 위해 또다시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1억원의 빚 중에 현재 私債가 6000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1997년 카드로 400만원을 대출받아 장사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었다. 지금 빚이 1억원쯤 되는데 왜 이렇게 커졌는지 모르겠다. 카드 대출을 받을 당시 나는 주방장을 하고 있었는데 월급이 200만원이었다. 200만원 월급으로 400만원을 결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드를 하나 또 만들어 돌려 막았다. 이렇게 3년 가까이 돌려 막다 보니 빚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金씨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가게는 私債업자가 『벌어서 갚으라』며 내 준 가게라고 말했다.
『그때는 정말 남의 돈 무서운 줄 몰랐다. 카드 금액이 연체되면 머리 굴리지 말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빚을 갚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끝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여러 카드社에 분산돼 있는 채무를 한 곳에 모아만 줘도 갚을 희망이 보일 것 같다』
이처럼 많은 신용불량자들은 한번 늘어난 빚을 청산하고 再起의 길을 걷고자 하지만 이에 따르는 고통은 작지 않다.
전주 덕진구 금안동에 살고 있는 자동차 보험 영업사원인 A모(34)씨는 빚이 1억2000만원 가량 된다. 1999년 그는 형의 사업을 돕기 위해 6000만원의 보증을 섰다가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50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그는 최저생활비를 제외하고 월급의 전체를 빚 갚는 데 쓰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보름 정도 회사를 마치고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대리운전을 하여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세 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다. 원래는 한 달에 20일 가량 대리운전을 했는데 최근 체력이 감당하지 못해 보름 정도만 한다. 앞으로 3년만 이렇게 하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빚을 갚는 동안 기본적인 가정생활이 안 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이들 얼굴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본다. 정말 한순간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를 한 것이 후회된다. 신용불량자도 어떤 면에서 「사회의 장애인」인데 주위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다』
모든 신용불량자들이 의정부의 金鍾延씨나 전주의 A씨처럼 빚을 갚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아니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李東基 상담원은 일주일에 약 400건이 넘는 개인워크아웃 신청자의 상담을 처리하고 있다.
그는 『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자신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면서 채무를 해결하려 한다』고 했다. 李씨는 『신용불량자들에게 「왜 자기의 소비행태를 바꾸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상담의 가장 큰 역할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상담을 하러 온 신용불량자들 상당수가 자신들의 소비행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30代 사회초년생들은 자기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빚을 갚으려고 한다. 단적인 예로, 이곳에 오는 20代 채무자 중에 휴대폰 음악서비스(컬러링)를 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비록 적은 금액일지라도 돈을 아끼겠다는 기본 자세가 부족한 것이다. 20代들이 신용불량 직전까지 혹은 신용불량 상태에서도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대구에 살고 있는 姜모(36)씨는 인터넷 프리첼에서 「엑스카드(xcard)」라는 커뮤니티(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1997년 벤처 열풍에 편승해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2001년 벤처산업이 불경기를 맞으면서 사업은 실패했고, 약 1억2000만원 정도의 빚을 안게 됐다고 한다. 이후 姜씨는 취업을 했으나 채무변제 독촉전화에 시달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姜씨는 『신용불량자가 된 후 신용카드 문제점을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전이될 수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2002년 말부터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어 신용카드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고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代 초반 계층과 미성년자의 신용불량자 문제는 기성세대와 정부, 기업의 책임이 크다. 신용카드는 신용이 검증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죽은 사람, 정신병자, 미성년자에게 카드가 발급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자기관리 능력, 상환능력, 사회경험 측면에서 취약한 계층에게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한 주체들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는 『320만 전체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며 『개인워크아웃 제도는 생색내기用으로 그 수혜자가 너무 적다』고 말했다.
『정책 당국자들은 카드 문제에 있어 책임회피와 책임전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金大中 정부는 카드를 통한 내수 진작 정책을 「무책임」하게 실시했고, 盧武鉉 정부는 「모르겠다. 두고 보자」 하는 「무능」 수준이다』
姜씨는 『연체 후 추심원으로부터 처음 걸려온 전화에서 들은 한마디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고 말했다. 그 추심원은 姜씨에게 『능력이 안 되면 쓰지를 말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소중한 한마디가 아직도 나의 교훈이 되고 있다. 연체자들은 자기 소득을 넘어서는 채무가 있을 때는 과감하게 중단하라. 빚을 키우는 것을 막는 것도 큰 능력이다. 신용카드 사업자들은 능력이 안 되면 신용카드 사업을 하지 말라. 책임을 분담하려는 노력을 다하는 것도 큰 능력이다. 정치권은 능력이 안 되는 정당은 집권하지 말라. 능력이 안 되면서 중임을 맡아서 국가 전체를 위태롭게 하고 국민을 절망에 빠뜨리는가? 자진해서 옷 벗는 것도 큰 능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