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 廷 旭 소설가
1960년 서울 출생. 성균관大 국문과ㆍ同대학원 문학박사. 現 한국장애인연맹(DPI) 이사. 童話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MBC TV 느낌표의 2003년 5월 선정도서) 등.
1960년 서울 출생. 성균관大 국문과ㆍ同대학원 문학박사. 現 한국장애인연맹(DPI) 이사. 童話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MBC TV 느낌표의 2003년 5월 선정도서) 등.
레이먼은 다음에 나올 카드 패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번번이 거는 승부수에서 이들 형제는 백전백승. 결국 그날 하루 저녁의 게임으로 약삭빠른 사업가 찰리는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는 돈을 딴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이 신이 다 날 정도다. 바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영화 「레인맨」은 참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영화다. 장애인 문제의 심각성을 말하는 것 같다가도 황금만능주의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다시 형제의 友愛(우애)가 그 주제인가 싶다가 장애인·非장애 간의 사회 통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이별이다.
소아마비로 인해 1급 지체장애인이 된 필자는 영화에서 일단 자폐증 환자인 레이먼이 살던 월브룩이라는 장애인 복지시설을 언급하고 싶다. 아버지로부터 유산 300만 달러를 상속받은 레이먼은 그곳에서 평생 자신이 친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 수 있다. 이곳에서 레이먼은 철저한 안전을 보호받는다. 어느 누구도 그를 멸시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그런 건 모두 장애인 시설 밖 사회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것이니 격리된 이곳에서는 그 모든 불행이 미연에 방지된다.
그것이 과연 레이먼의 幸福(행복)일까. 나는 행복인 동시에 不幸(불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한국의 장애 현실과 비교해 본다면 레이먼이 살고 있는 복지시설은 선진국 시민이 누리는 엄청난 혜택이고 행복임에 분명하다. 그들은 이런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시설을 지어 놓고 장애인들을 돌본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장애인들은 최소한 버려지거나 학대받지 않고 안전해 보인다. 때가 되면 먹여 주고 재워 주지만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삶이 과연 행복인가? 완벽한 무균실이 과연 건강한 삶을 담보하는가.
대부분의 장애인들도 이러한 곳에 갇혀 지내는 삶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부족하고 미약한 능력이나마 발휘하면서 이 사회에서 非장애인들과 어울려 살고 싶을 것이다. 값싼 동정과 사회의 시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지하철, 버스를 타고 싶다고 시위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선진국과 같은 편의시설이 갖춰진 공공시설과 사회 시스템이다. 그러한 시스템을 이용해 일거리를 찾고, 직장에 다니고 싶고,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고 싶은 것이다. 안전한 장소에 격리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일부 선진국의 제도는 그저 장애인들을 「룸펜 인간」(방관자형 인간)으로 안주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장애인들의 요구는 그런 면에서 건강하고 건전하다. 이 사회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고 싶고, 가족과 함께 幸福하게 지내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레이먼은 또 자폐증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극히 드문 행운아라 할 수 있다. 그가 부자인 건 차치하고, 그의 장애 정도를 보면 장애가 꼭 삶의 질곡이라기보다는 유쾌한 일탈인 것만 같다.
말도 할 줄 알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천재적인 수리능력을 지녔다. 이쯤 되면 누구나 한 번쯤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한몫 챙겨 오고 싶어질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러나 실제 자폐 장애인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발달 장애라는 이름 아래 평생 고통받아야 한다. 일부가 특수교육을 받긴 하나 그 효과는 미미할 뿐 아니라 치유가 거의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육은 치유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자폐증 환자들은 자기가 틀어박혀 있는 세계가 진정한 세계이고, 현실 세계는 마치 꿈 속의 세계처럼 인식한다. 그렇기에 현실을 믿지 않고 현실에 적응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큰돈을 따고 나서 동생 찰리는 형에게 춤을 가르친다. 춤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남과 교감하는 육체의 언어다. 찰리는 춤을 한 번도 춰보지 못한 레이먼과 손을 잡고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의 夜景을 배경으로 춤을 춘다. 레이먼은 조심스럽게나마 그 춤을 따라하게 된다. 자폐 장애인으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감격한 동생 찰리가 세게 끌어안는 순간 형은 신체적인 위해를 가했다고 생각해 비명을 지른다.
맞다. 거기까지인 것이다. 장애의 꿈과 희망은 거기까지이고, 그 뒤로는 뼈아픈 현실일 뿐이다. 춤은 어떻게 허용했지만 진정 교감을 느끼는 마음 깊은 행동인 끌어안음은 용납되지 않는 것. 현실 세계에 사는 우리가 이처럼 꿈 속에 사는 것 같은 사람과 어떻게 마음을 터놓고 지낼 것인가? 장애의 고통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여기에 찰리의 物慾(물욕)이 가세한다. 그에게 있어 형 레이먼이란 존재는 단순히 유산 300만 달러의 일부를 나눠 가질 대상이고 인질일 뿐이었다. 그러나 육로로, 그것도 고속도로가 아닌 國道(국도)로 가는 긴 여정을 통해 찰리는 동생으로서 형에 대한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어렴풋이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상적 인물인 줄로만 알았던 「레인맨」이 바로 형 레이먼임을 깨닫게 된다. 레이먼은 어린 동생을 목욕시키고 돌봐 주던 고맙고 자상한 형이었다.
우리 장애인에게도 기회와 여건을 갖춰 주면 이처럼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 준다. 레이먼은 성공적으로 가정에 통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단지 운이 없어 동생을 뜨거운 물에 데일 뻔하게 함으로써 장애인 시설에 보내졌던 것이다. 만일 어머니가 죽지 않고 보살폈다면 레이먼은 동생과 함께 가정 안에서 성장했을 것이다. 동생인 찰리도 아마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고 무난히 자랐을 것이다. 돈만 아는 천박한 사업가가 아닌 이해심 많고 인정 넘치는 젊은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찰리는 형 레이먼으로 인해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부모들이 왜 자기에게도 형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하는 것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왜 자신에게 유산을 주지 않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실상을 직시하고 보니 분명히 유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으리라는 것을 아버지가 알고 있었음을 납득하는 것이다.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 일등공신은 바로 장애인 형 레이먼이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이 관객에게 던지는 심각한 질문은 영화 마지막 부분의 레이먼의 신변 처리에 관한 부분이다. 이미 형을 사랑하게 된 찰리는 강력하게 형과 살고 싶다고 주장한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형을 자신이 돌보고 지켜 주며 살고 싶은 것이다. 이에 반해 청문회의 전문가들은 레이먼을 안전한 복지 시설인 월브룩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강변한다.
여기에서 레이먼은 동생이 함께 살자고 해도 그러겠다고 하고, 의사들이 월브룩에서 살자고 해도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자폐증의 단적인 면인 동시에 장애인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명장면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이든 스스로 하고 자신의 삶의 결정권을 자신이 갖는 데에 있다. 장애인에게 人權이 문제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차별받고 편견에 시달린다.
필자의 경우도 의과대학에 가기 위해 실컷 이과 공부를 했지만 아예 장애인에게 원서 접수조차 하지 않은 현실에 부닥쳐 생각지도 않던 국문과에 입학하게 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물론 나름대로 적응해 살고 있지만 이런 경험이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한 선배 장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의 삶은 장애물이 가로막으면 빙 돌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길을 찾아 가는 것인데 평생의 길을 간 절대거리를 계산해 보면 아마 非장애인들보다 훨씬 길 것이다』
이 영화는 결국 레이먼을 복지시설로 돌려보내고, 찰리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만약 레이먼이 찰리에게 남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 삶이 그다지 평탄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점을 영화 속의 화재 사건으로 잠시 맛보게 해주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가장 현실적인 결론인 셈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함이 이 영화가 끝나도 우리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특이한 재능으로 돈을 딴 레이먼. 그러나 이를 가만히 놔둘 리 없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업자들은 찰리를 불러 형과 함께 당장 이 도시를 떠날 것을 명한다. 어느 카지노에서도 그들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통보와 함께. 이 땅의 장애인들도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레이먼처럼 내쳐지고 있다.
레이먼과 찰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쫓겨나면서 서로의 형제애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 땅의 장애인들은 부실한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으며, 편의시설 없는 건물, 학교, 직장에서 내쫓기며 무엇을 얻고 있는가? 과연 그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장애 탓인가, 이 사회 탓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