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언론사 사장으로 돌아온 코리아헤럴드ㆍ내외경제 인수 洪政旭

『東北亞를 대표하는 언론매체를 만들고 싶어요』

  • : 이원익  4fant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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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소식이 없었던 하버드 수재의 야망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 걸 혼자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답답한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항상 저의 문제는 새로운 것은 시작하나, 항상 막차를 탄다는 거예요』

洪 政 旭
1970년 서울 출생. 미국 초우트로즈매리홀 고등학교 졸업. 미국 하버드大 동아시아학과 졸업. 중국 베이징大 국제정치학 대학원 수료. 미국 스탠퍼드大 로스쿨 졸업(법무박사). 미국증권감독위원회 변호사. 미국 리만브라더스 인수합병 금융전문가. 現 IKR 카리아 대표이사,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 대표이사 사장.

李 元 翼
1976년생. 고려大 영어영문과 졸. 月刊朝鮮 객원기자. 항공전문 저널리스트. 프랑스 라팔, 미국 F-16 등 최신예 전투기 민간인 최초 조종 경험. 美 하버드大 John F. Kennedy School of Government 진학 예정.
세상에서 가장 쓰기 쉬운 기사는 아마도 유명인의 인터뷰 기사일 것이다. 특별히 각색을 하거나 加減(가감)을 하지 않아도 대중의 관심을 헐값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장 쓰기 어려운 기사를 꼽자면 필자 자신이 憧憬(동경)하는 사람에 대한 그것이 아닐까 한다.
 
  잠시 蛇足(사족)을 달자면 洪政旭(홍정욱·33)씨는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필자의 우상이자 역할모형(role model)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에 학창생활을 했던 사람들 중에 洪政旭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한국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고 있다. 유명인(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아들로서 문자 그대로 수려한 외모와 하버드 영예졸업의 실력까지 갖춘 인재의 혀끝에서 미려하게 풀려 나온 유학생활과 포부에 관한 이야기는, 한때 英雄不在(영웅부재) 사회의 문화현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돌아왔다. 최연소 언론사 사장으로서다.
 
  명동에 위치한 코리아 헤럴드·내외경제신문 건물의 사장실에서 만난 洪사장은 영화배우 뺨을 여러 대 치고도 남을 만했다. 실제 영화배우인 아버지를 빼닮은 남성적인 얼굴선과 건장한 체구는 하버드 수재의 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운동선수에 가까운 동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
 
  ―본인이 잘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洪사장은 크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눈빛과 바리톤 가수같이 굵직한 목소리로 답한다.
 
  『글쎄요. 특별히 외모에 대한 자의식 같은 건 없어요. 확실한 건 나이 들면서 많이 망가진 것 같다는 거죠(웃음). 근데 최근에 백지연씨와 함께 했던 YTN 인터뷰에 나온 어린 시절 모습을 보니 「아, 나도 왕년엔 좀 괜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洪사장은 젊었을 때의 사진에 비해 조금 살이 붙은 것 같았다.
 
  ―체중은 얼마나 나가십니까?
 
  『(대답하기가) 싫어요!』
 
  민감한 질문을 대한 사춘기 소녀 같은 뜻밖의 반응에 사진기자도 촬영을 멈추고 웃음을 터뜨린다. 정확한 체중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근엄하고 정중할 것 같기만 한 洪사장은 의외로 캠퍼스에서 마주친 동아리 선배처럼 밝고 쾌활했다. 답변하는 품이나 말에 위트와 유머가 보기 좋게 녹아 있었다.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한 마디로 「쿨(cool)」했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한다고…
 
  『집사람이 임신하면서 같이 옆에서 열심히 먹어 줬더니 체중이 좀 늘었어요. 아… 좀 빼야 되는데… 참』
 
  ―음식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예, 저는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어요. 특히 두부, 전, 라면 같은 음식을 좋아합니다』
 
  ―신장은 얼마나 되십니까?
 
  『178cm입니다』
 
  ―보통 언론에서 하버드 천재 내지는 수재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공부 열심히 안 하고 시험 잘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洪사장의 헤어스타일은 10년 전과 같아 보였다. 일명 「8대 2」 스타일.
 
  ―헤어스타일을 코디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하… 제가 무슨 연예인인가요. 이 머리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개발된 겁니다. 누나는 깡통로봇 같다고 하고 누군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하더군요. 머리모양이 마음에 든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두어 번 정도 바꿔 보려고 시도했는데 그것도 어색해서 포기했죠. 한 번 든 버릇이 오래 가는 편입니다』
 
  세월의 흐름은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인가. 미소를 짓는 洪사장의 반듯한 이마에도 세월의 도랑이 살짝 파여 있다. 그러고 보니 洪政旭이라는 인물이 한창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시기가 1993, 94년이니 거의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당시 대학을 각 졸업한 청년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영자신문사와 경제신문의 대주주이자 경영인이 되어 돌아왔다.
 
  ―상당히 오랫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대학 졸업 후의 洪사장님 신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사실 예전에도 제 의도로 언론에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방비 상황에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었습니다. 당시 과대포장과 지나친 관심으로 저는 물론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론에 대한 도전욕 같은 것이 생기더군요』
 
 
 
 법률과 금융, IT 벤처 사업 등에서 활동
 
  ―ESA(East Asian Studies: 東아시아 지역학) 공부를 접고 법률을 전공하시지 않았습니까? 급선회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중국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北京(북경)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얼마간 공부를 하다 보니까 중국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時機尙早(시기상조)라고 할까… 北京大 대학원은 완전히 마치지 못하고 수료만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을 어느 정도 학습하고 나니까 이제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탠퍼드 로스쿨(Law School)에 가서 JD(법무박사)에 도전하게 되었지요』
 
  ―갑자기 너무 다른 전공을 공부하게 되어 혼란스럽지는 않던가요?
 
  『예,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 말에 필자는 고개를 들어 洪사장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적잖이 놀라웠다. 「힘들다」는 말이 「슈퍼맨」의 이미지를 가진 洪사장에게는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힘들었을까.
 
  『정말 힘들었어요. 공부 자체가 힘들다는 것보다는 진정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법률공부는 知的 욕구와 필요에 의해서 했지 제가 특별히 흥미와 열정을 갖는 분야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한창 열애 중이던 집사람이 보고 싶어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법률 공부를 계속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힘든 공부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서 감동적일 정도로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도 실은 하버드 로스쿨 학생들입니다. 「One L(로스쿨 1학년생)」 같은 소설 등에 그려진 법학도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도전욕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洪사장은 그의 자전적 저서 「7막7장」의 1막1장 도입부에 미국 詩人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을 소개했을 정도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표현한 적이 있다.
 
  洪사장은 뉴욕에서 변호사 생활, 투자은행인 리만 브라더스에서 M&A(합병 및 인수) 금융전문가, 귀국 후 투자 및 인큐베이팅 전문회사인 IKR카리아 대표 등 다양한 전문적 분야의 일을 시도해 왔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 걸 혼자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답답한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항상 저의 문제는 새로운 것은 시작하나, 항상 막차를 탄다는 거예요(웃음).
 
  하버드에 얼리 액션(early action: 우리의 특차전형과 유사)으로 입학한 것을 제외하고는 영어, 로스쿨, 변호사, 금융업 다 남들보다 한 발 늦게 발을 담근 셈이지요. 그래서 처음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변호사, 금융 전문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만 뜬금없이 건축 관련 벤처회사는 뭡니까?
 
  『하하…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분야와 벤처를 결합시켜 도전해 본 일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못질도 잘 못하는…(웃음) 건축을 뜻하는 라틴어 strux와 icon을 결합해서 「스트럭시콘(struxicon)」이라는 이름을 붙여 시작한 회사였지요.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요원으로 軍복무』
 
   ―만 31세에 영주권을 포기하고 자원해서 軍복무를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2001년 11월에 귀국해서 6개월간 공익요원으로 근무했습니다. 저는 이중국적을 가진 적은 없어요. 사실 영주권 소지자로서 35세까지 외국에 체류하면 軍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조국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고, 아이도 서울에서 키우고 싶었기에 軍복무를 마치고 싶었습니다. 우연히도 제 나이(1970년생)의 독자에 연로한 부모님(만 60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6개월만 근무하면 된다는 규정에 해당이 되었지요』
 
  洪사장의 말에서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도전」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사실 洪사장께선 우리 또래 젊은이들 사이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 내지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그만큼 능력이 출중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지만 너무 빈틈이 없어 보이니 凡人(범인)들로서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담스럽지요. 항상 여러 사람들이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주시하니까…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경험의 길에서 검증의 길로 넘어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경험의 길에서는 실수나 과오가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지만 검증의 길에서는 오직 냉정하게 평가만을 받게 되지요. 제가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린 나이에 세간과 언론의 관심 속에 언론사 인수와 같은 좋은 기회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찾아와 조금 빨리 검증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축복은 가족과 하나님의 사랑』
 
  ―스스로를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그럼, 그럼요! 저만큼 철저하게 환경의 산물인 사람도 드물 겁니다. 제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은 가족과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부모님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배려와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지 못했을 겁니다. 운 좋게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어서 적어도 학비와 관련해 경제적인 지원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만…』
 
  洪사장이 앉은 의자 바로 옆 테이블 위에 검은 가죽 표지의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와 자세히 보니 성경이다. 사장실 한켠 벽에는 커다란 목제 십자가도 걸려 있었다. 洪사장이 母胎(모태)신앙이라는 생각이 떠오른 필자는 갑자기 짓궂은 질문을 던지고픈 충동이 일었다.
 
  ―가족과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부모님과 하나님 중 누구에게 더 감사하십니까?
 
  『하하… 무슨 그런 질문을 다 합니까… 글쎄요… 음… 뭐 이런 건 있어요. 神은 부모님보다 차갑죠. 부모님은 항상 따뜻하고 맹목적인, 代價와 조건이 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반면 神은 두려운 존재임과 동시에 빚을 지면 반드시 상환해야 하는 존재라는 데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洪사장은 녹차 한 잔을 뚝딱 비우기가 무섭게 커피를 주문했다. 일반적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은 다소 긴장하게 마련이라 차에는 거의 입을 대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洪사장은 아주 여유 있게 음료를 즐겼다. 음식 외에 洪사장이 즐거움을 찾는 대상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저는 문화활동을 아주 즐기는 편입니다. 철학·문학·예술 등에 관한 독서, 음악 감상 등이지요. 음악은 재즈와 오페라를 좋아해요』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었던, 「7막7장」에서 그가 보여 준 인문학에 대한 다양하고 해박한 지식의 출처가 짐작이 간다. 그가 자유자재로 음미하면서 보여 주었던 영미권 문학의 매력과 깊이는 필자가 영어영문학을 전공으로 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문화활동을 할 짬이 없어 감성적으로 「드라이(dry)」 해진 자신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1995년에는 신사동에 「카멜롯」이라는 이름의 재즈 카페를 열기도 했다. 매년 「헤럴드 재즈 콘서트」를 열 계획도 있단다.
 
  30분을 예정했던 인터뷰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 1시간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던 洪사장이 다리를 꼬며 자세를 바꾸어 앉는다. 왠지 불편하고 불안해 보였다.
 
  ―인터뷰가 길어져서 지루하신가 봅니다.
 
  『아… 아니오. 저… 화장실 좀 다녀올 게요. 아까 차를 많이 마셨더니…』
 
 
 
 『영원히 코리아 헤럴드 사장으로 기억되고 싶어』
 
   편안한 안색을 회복한 洪사장에게 바쁜 업무 중에도 인터뷰를 위해 장시간을 할애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月刊朝鮮이니까 특별히 시간을 내는 거지(웃음). 사실 대학 졸업하고 한국에 왔을 때 저를 처음 인터뷰했던 잡지가 月刊朝鮮이었어요. 당시 조갑제 기자님과 담화를 나누었던 기억도 납니다. 언론사 인수하고 나서 처음 이렇게 인터뷰하게 된 잡지도 月刊朝鮮이라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말에 탄력을 받아 이번엔 좀 노골적인 질문을 던져 봤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저의 단점과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점도 많은 편이고 그에 대한 자신감도 크지요. 반면에 단점도 많고 콤플렉스도 많아요. 성격상의 단점 중 하나는 숫기가 없다는 겁니다.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데다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라 연설하기도 참 힘이 듭니다. 이 단점을 치유하느라 언론사를 인수한 건지도 몰라요(웃음)』
 
  愚問賢答(우문현답)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M&A 시장에 나온 그 많은 매물 중에서 하필이면 언론사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봤다. 줄곧 여유롭던 洪사장의 얼굴이 순간 긴장과 흥분으로 가득 찼다. 진작 좀 물어보지 그랬냐는 눈치다.
 
  『저는 어릴 적부터 언론을 동경해 왔어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학교와 미술관을 운영해 보고도 싶지만 언론만큼 저의 흥미와 열정을 끄는 것은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신문편집장과 NBC 수습기자로 활동했던 것도 언론을 향한 애정과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생산물을 창출해 내야 하는 언론사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임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부담감마저도 사랑합니다』
 
  洪사장의 얼굴이 살짝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거나 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영화배우 남궁원으로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겐 꿈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코리아 헤럴드·내외경제신문 사장 홍정욱으로 영원히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자는 밖에서 장사하면 안 되고 안에서 정치하면 안 돼』
 
  ―저서의 말미에 「인간의 지식은 결코 그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쓰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직은 좀 작은 배에 너무 큰 돛을 달았다고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맞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남들에 비해 너무 빨리 인생의 검증의 길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언론사 인수도 저의 능력만으로 성사시킨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상황과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들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험과 언론 지식이 일천하다 보니 결국엔 여러분께 의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初學三年 天下無敵 再修三年 寸步難進」(초학삼년 천하무적 재수삼년 촌보난진:처음 3년을 배우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고 다시 3년을 배우면 발걸음 하나 나아가기 어렵다) 이라는 말도 더욱 크게 와 닿습니다』
 
  洪사장에게는 과거 언론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기억이 있다. 당시 하버드 영예졸업 개념과 사실 여부를 놓고 과장·오보기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언론은 실로 무서운 조직입니다. 언론의 가장 무서운 힘은 사회성에서 나오지요. 이 사회성이란 것은 복잡한 개념이지만 좋지 않은 소식은 더 빨리 믿어 버리거나 믿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성향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소식이 보도될 때는 이메일 한 통 오지 않아요. 그러나 나쁜 소식이 전해지면 수십, 수백 통의 이메일이 옵니다. 과거 언론과의 기억을 뒤돌아보면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상적인 언론인像에 대해 물어봤다. 洪사장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지엽적으로 보자면 이렇습니다. 기자는 밖에서 장사하면 안 되고 안에서 정치하면 안 돼죠.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하나를 맡으면 작살 내지는 아작을 내는 근성이라고 봅니다. 그런 사람이 大기자로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洪사장이 「작살」이나 「아작」 이라는 전투적인 단어를 쓰니 무척 생소했다. 강단이 있는 말투에서 언론에 대한 신념이나 확신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언론사의 대표이사로서 경영철학은 무엇일까.
 
  『언론사의 가장 큰 특징은 공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언론사도 일차적으로는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입니다.
 
  돈을 못 벌면 언론의 진정한 독립이나 공익을 추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돈을 벌면 그걸 금고에 쌓아두지 말고 반드시 재투자해야 한다는 겁니다. 질과 양, 모든 지속적인 성장을 해야 그게 언론의 힘이 되고 공신력이 되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언론사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다면 다른 사업을 했을 겁니다. 선진국의 언론사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언론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저의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CNN 창업자 터너를 존경
 
  ―존경하는 언론인이나 신문경영의 모델은 누굽니까?
 
  『존경이라기보다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사람으로 CNN의 테드 터너를 꼽습니다. 시청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언론을 추구하면서 최초의 월드와이드 시장을 창출했으며,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유지 및 제시했던 면이 바람직하게 보입니다』
 
  ―언론사의 생명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인재像을 가지고 계십니까?
 
  『무엇보다 스마트(smart)해야 해요. 그리고 헝그리(hungry)해야죠. 저는 외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이 헝그리 정신을 배웠고 그 중요성을 깨달았지요. 도덕성도 아주 중요합니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도전하는 그의 이미지에 비추어 洪사장의 「개혁성향」이 궁금해졌다. 사장이 바뀌면서 신문도 얼굴이 바뀌는 것일까.
 
  ―솔직히 내외경제를 포함한 대부분의 경제지를 읽어 보면 무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사실 저도 안 봐요(웃음). 李기자도 나도 원하는 그런 재미있고 읽기 쉬운 새로운 내외경제신문이 5월6일부로 나옵니다. 일명 「대중경영문화지」입니다. 한마디로 스포츠신문 플러스 경제신문이죠. 언론계에서는 최초의 시도입니다. 스포츠지에는 재미있는 읽을거리는 많지만 보고나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경제지를 보면 「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人之常情(인지상정)입니다. 두 신문의 장점만을 취한 경제지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대중경영문화지」란 말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인지요.
 
  『대중이란 곧 사람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는 개념입니다. 가장 잘 팔리는 신문을 만드는 존재도, 신문을 읽는 존재도, 경제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존재도 결국은 다 사람입니다. 저는 17세 때부터 월스트리트 저널을 구독해 왔는데, 이 신문에는 기업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 냄새가 나는 신문을 지향할 겁니다. 기존의 경제지가 주로 딱딱한 경제 뉴스가 主가 되던 경향을 탈피해 경영실무에 관한 것을 주로 다루겠다는 의지입니다』
 
  ―코리아 헤럴드도 성형수술을 받게 됩니까?
 
  『확대수술을 받을 겁니다. 코리아 헤럴드는 국내 1위의 英字紙이기도 하지만 80여 개 국에 나가는 국제紙이기도 합니다. 美 국무성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코리아 헤럴드 웹사이트예요.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대표매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동북아를 대표하는 언론매체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포부가 있습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동북아 허브 국가를 주창하는데, 동북아를 대표하는 언론매체를 가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상 현재 이러한 역할을 하는 언론사는 다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습니다. 이걸 빼앗아 오고 싶습니다』
 
 
 
 확고한 신념 생길 때 정치하고파
 
   洪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자본금 5억원의 IKR 카리아는 48억원의 인수대금을 지불하고 377억원의 부채를 떠맡는 조건으로 코리아 헤럴드·내외경제신문을 인수했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그 큰돈이 어디서 났을까」 하는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언론사의 특성상 투자자를 모집해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처가 덕 봤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약간 찔렸다. 洪사장의 아내 孫貞姬(손정희)씨는 컬럼비아大에서 프랑스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에서 큐레이터(전시기획자)로 근무하던 중 그와 결혼했다. 손씨는 맥슨전자 사장을 역임한 孫明源(손명원) 커넥선트시스템스 코리아 사장의 막내딸로 孫元一(손원일) 前 국방장관이 친할아버지, 金東祚(김동조) 前 외무장관이 외할아버지다. 정몽준 의원의 부인이 처이모다.
 
  『48억원이란 돈은 당연히 제게는 큰돈입니다. 하지만 기업인수 차원에서는 사실 그리 큰 액수는 아니지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 친지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제 돈도 털어 넣고 대출도 많이 받아서 100% 독자적으로 마련했습니다. 처가에서는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애처가
 
  洪사장은 애처가다. 옛 어르신들이 들으면 「팔불출」 내지는 「주책」이라고 나무랄 정도로 아내 사랑이 말과 몸짓에 물씬 묻어 났다. 『내 인생에서 다른 사람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 자랑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러나 정작 아내 곁에 가면 무뚝뚝한 편이라고 한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항상 최고의 선물을 준비한단다. 가령 70만원 정도의 돈이 있다면 값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 주기보다는 최고급 스카프를 선물한다고.
 
  1995년에 우연히(洪사장은 「운명」이었다고 한사코 주장했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4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지승이라는 이름의 두 살배기 딸 하나가 있고 11월에 태어날 둘째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자녀계획을 묻자 『아내만 허락하면 무한대』라고 답한다.
 
  ―프러포즈는 어떻게 하셨는지 말씀 좀 해 주세요.
 
  『하루는 제가 운영하던 재즈카페 카멜롯에 앉아서 재즈 음악가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눈에 확 띄게 멋있는 여자 셋이 들어오더라고요. 그 중 한 명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순간 주변 사람들에게 반드시 저 여자와 결혼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지요. 나중에 말을 걸려고 다가가 보니 자리를 뜬 뒤였습니다.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제 카페에서 기다릴 테니 다시 와 달라고 했습니다. 약속 당일 카페 문까지 닫고 기다렸는데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어요. 여자한테 바람맞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죠. 인연이 깊었던지 다시 만나서 4년 동안 연애를 했어요.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배웅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영영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스탠퍼드 대학 내의 교회로 데려가서 무릎을 꿇고 청혼했습니다. 늦은 저녁이라 문을 연 보석 가게가 거의 없었는데 가까스로 있는 돈을 다 털어서 반지를 하나 사다 주었어요. 제일 비싼 반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싸구려지 뭐예요. 여자들 반지가 그렇게 비싼 줄은 몰랐지…』
 
  그의 저서에 담긴 유려한 글을 보고 짐작했던 것이지만 洪사장은 말을 아주 잘했다. 그는 행동의 인간이기도 했지만 말의 인간이기도 했다. 얼굴도 잘생긴 마당에 언론사말고도 입으로 먹고사는 일을 하면 대성할 것 같았다. 이를테면 정치 같은 것이랄까.
 
  『정치요? 정치란 수단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입니다. 제가 말하는 때란 확고한 정치적 신념이 생길 때를 말합니다』
 
 
 
 하버드大에는 과장과 신화 숨어 있어
 
  洪사장의 자전적 저서인 「7막7장」을 꺼내 사인을 부탁했다.
 
  10년 전 필자가 고등학생 때 책의 표지에 써 둔 「나도 꿈과 열정으로 10년 후에는 정욱이 형처럼 반드시 하버드에 가리라」는 빛 바랜 글 옆에 그는 정성스레 사인을 해 준다. 하버드에 입학지원을 할 때, 심지어는 전투기를 비행할 때 등 生의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이 책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는 말에 洪사장은 고마워했다. 1997년, 洪사장은 이 베스트셀러를 스스로 절판한 바 있다. 왜 그랬을까.
 
  『원래 책을 낼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삼성출판의 조석현 사장이 하버드에 찾아와 3주간 숙식하면서 조르더군요. 처음에는 대필을 해 주겠다고 해서 두고 봤더니 마음에 들지 않아 다 갖다 버리고 일기를 참고로 직접 썼습니다. 책을 보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등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왔습니다.
 
  반면에 「너만 하버드를 나왔느냐, 그런 좋은 환경이라면 누가 성공할 수 없겠느냐」 등의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습니다. 책이란 것은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려야 하는 것인데,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비판을 위한 비판과 무조건적인 평가를 적용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스스로 많이 부족했던 시기에 쓴 책이 사람들에게 너무 강한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7막7장」은 표지 등을 조금 바꾸어서 신문사 이름으로 5월 中 복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다른 책을 낼 생각도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에 대한 얘기보다는 특정 이슈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단다.
 
  내친 김에 하버드 생활에 관한 조언도 부탁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본인은 무척 힘든 것이 하버드 생활이에요.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외로움과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모든 유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목적의식을 가지라는 겁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가고 싶은 학교가 있다든지 학교공부를 통해서 꼭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든지 해야 합니다』
 
  ―하버드에는 과장과 신화가 숨어 있다고 보십니까?
 
  『그럼요. 하버드의 명성은 하버드로부터의 지리적·심리적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서 커진다는 말이 있어요.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사실 과장과 신화라고 볼 수 있지요. 모든 유명기관이 다 마찬가지라고 봐요. 사실 하버드도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신문사도 들어가 보면 특별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최고기관의 최고 자랑은 최고 인재들입니다. 이들과 경쟁하고 생활하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크게 성장해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지요』
 
 
 
 『이제는 사업가로서 인정받고 싶다』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남아 문을 나오면서 다시 한 번 洪사장을 바라보았다. 한때 「현대판 왕자」라고 불렸던 그에게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겸손과 수수함이다. 적어도 몇 년은 신었을 것 같은 낡은 구두 하며 손에 쥔 일회용 라이터에는 명동 먹자골목의 식당이름이 적혀 있다. 하버드 수재나 언론사 社主(사주)라기보다는 젊은 토종 벤처사업가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 필자는 洪사장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이원익씨, 항상 부족한 내게 과분한 관심을 가져 주어 고마워요. 나의 卒筆(졸필)에서 10배, 100배의 의미를 찾아 낸 것은 내 능력 때문이었기보다는 원익씨의 의지 덕입니다.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제는 하버드 우등생이나 유명인사의 아들보다는 서로 돕고 믿는 선배이자 열정이 있는 사업가로 바라봐 주었으면 해요. 공부하러 미국 들어가기 전에 연락 줘요. 내 술 한번 사리다」
 
  洪사장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이 生의 4막이라고 했다. 7막7장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사뭇 궁금했다. 문득 학창시절 몸과 마음을 전율케 했던 「7막7장」 마지막 페이지의 구절이 떠올랐다.
 
  <꿈은 생명보다 소중하다 생명을 잃음은 육체의 죽음이지만 꿈을 잃음은 내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삶은 꿈의 아름다움을 믿고 내일을 향해 질주하는 자의 것이다
 
  - 이 책은 마침표가 없습니다 과거의 얘기가 아니라 내일을 여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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