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下請 줘 반찬 냉장고 생산
중소기업이 대기업에게 下請(하청)을 준다? 기술력이 있는 중소기업이 제조능력(manufacturing)을 갖춘 대기업에게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부리는 기묘한 형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下請이라면 으레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주는 것으로 알아온 지금까지 慣行(관행)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중소기업은 설비투자, 인력투자를 하지 않아서 경쟁력이 높아지고, 대기업은 기계를 놀리지 않아 이익을 올린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다.
국내 레인지 후드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주식회사 하츠(HaatzㆍHuman, Art And Tech Zone)가 바로 그런 중소기업이다. 하츠는 최근 대우전자에 「반찬 냉장고」 제조를 OEM(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하청줬다. 하츠는 상품기획과 설계를 하고, 생산만 대우전자에 맡기는 방식이다. 생산량은 매월 2000개. 반찬만 보관하는 「반찬 냉장고」는 싱크대 옆에 비치해놓을 수도 있을 만큼 소형. 요즘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레인지 후드란 주방에 설치하는 환기장치. 조리대 위에 장치된 스위치를 누르면 「윙-」하는 소리와 함께 팬을 작동시키는 모터가 돌아가며 조리하면서 생기는 냄새를 외부로 배출한다. 음식점에 가면 고기를 구울 때 석쇠 바로 위에 늘어뜨려 공기를 빨아내게 하는 알루미늄 원통이 바로 일종의 후드다.
하츠가 연간 110만개를 만드는 후드는 시장점유율이 60%(금액 기준)을 차지한다. 그 외에 이 회사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반찬 냉장고, 하이라이트 쿡탑 같은 「빌트 인(built-in)」 제품 및 소형 家電, 쌀통, 후드 필터, 세탁기용·식기세척용 세제 등을 만들고 있다. 「빌트 인」은 우리말로 하면 「붙박이 家電」이라고 할까. 붙박이장처럼 부엌에 고정 배치되는 소형 가전제품이다.
시장지배력과 경쟁력이 높아 경영성과가 매년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5년간의 성적표를 보자.
뮤지컬 「명성황후」 기획한 사람이 사장
매출 증가율이 43%, 경상이익 증가율은 47%에 이른다.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자산 262억원, 부채 105억원, 자기자본 158억원으로 부채비율 67%, 자기자본비율 60%인 초우량기업이다. 이자보상배율(경상이익 나누기 지급이자)은 1,227로, 빚이 거의 없는 無借入(무차입) 경영을 자랑한다.
하츠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인 李秀文(이수문·54) 사장은 독특한 중소기업론과 캐릭터를 가진 인물. 기업을 경영하면서 「아가씨와 건달들」, 「명성황후」 같은 뮤지컬을 기획한 연극狂이기도 하며, 군예대에서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분 월남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그의 중소기업론은 유별나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는 재래식 방식으로는 평생 임가공 하청업체에 머물고 만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라도 특정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을 갖추면 대기업과 공존 내지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건을 만들려면 공장, 설비, 인력이 필요하다. 잘 나갈 때는 괜찮다고 해도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으로서 자본 懷妊(회임)기간이 긴 제조설비에 투자했다가 시장상황이 불리해지면 도산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물건을 만드는 일은 그 분야의 選手(선수)인 대기업에 맡겨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논리다.
예전 같으면 대기업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 중소기업의 위탁생산을 받아주지 않았으나, 요즘은 다행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대우전자뿐 아니라, 세계적 대기업인 삼성전자, 대형 PC업체인 삼보컴퓨터, 히터, 선풍기, 펌프 등을 만드는 한일전기 등이 직원 수십명에 불과한 스몰컴패니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해 주고 있다.
전북 완주에서 李鎔德-朴春子씨 사이의 3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공무원이던 부친을 따라 상경, 서울에서 경기中·高와 서울공대 건축공학과를 나왔다.
李秀文 사장은 사회생활 시작부터 가구, 부엌 쪽과 인연을 맺었다. 첫 직장은 보르네오 통상. 당시 국내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던 최고의 家具회사였으나, 경영부실로 은행관리를 받고 있었다. 대학졸업 직전, 고교와 건축과 1년 선배가 학교에 찾아와 첨단 가구공장을 운영할 인재를 구하고 있었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자, 그가 차출됐다.
李사장은 1972년부터 3년 간 보르네오 통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생산현장에서 기능공들과 철야를 밥먹듯 해가며, 생산관리에 관한 외국서적을 구해 읽어가며 생산이 무엇인지 눈을 떴다는 것.
中東에 파견나갔을 때, 부엌 家電에 눈 떠
그래도 명색이 건축과 출신인데, 설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975년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주)한샘에 입사했다. 한샘은 싱크대 등 주방기구도 만들고 있었다. 그가 한샘으로 자리를 옮긴 시기는 잠실 住公(주공), 시영아파트, 반포 住公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재래식 부엌에서 立式(입식) 부엌으로 바뀌어 가고 있던 때였다. 그는 한샘에서 건축설계 일을 하면서 건축과 관련이 있는 부엌가구, 붙박이 家電 등에 관한 개념을 익힐 수 있었다.
10년 만에 상무이사까지 승진한 그는 중동 진출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한샘을 그만두고 現代그룹 산하 현대목재산업 이사로 직장을 옮겼다. 현대에서도 시베리아 原木(원목)을 들여다 합판공장을 경영해보라는 鄭周永 명예회장의 지시에 반대, 3년 만인 1988년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거쳐온 세 회사는 하츠를 창업한 그에게 커다란 사업발판이 돼주었다. 특히 부엌가구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인 한샘과 국내 최대의 건설회사를 포용하고 있는 現代는 『물건만 만들어 오면 사주겠다』고 그에게 언질을 주었다.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가 시장 확보다. 자금은 시장만 확보되면 해결할 길이 열린다. 그에게는 시장이 확보된 상태였던 만큼 제품만 잘 고르면 성공은 「떼어 놓은 堂上(당상)」이었다.
그가 착안한 것은 레인지 후드였다. 한샘에서 중동에 파견나가 있을 때, 미국 및 유럽의 주택건설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가구뿐 아니라, 가스레인지,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까지 모두 붙박이로 넣어주는 방식으로 설계하고 있었다. 부엌 쪽에서는 후드 설치가 필수였다. 그는 하이테크도 필요없고 설비가 간단한 후드를 떠올렸다.
현대목재를 그만둔 지 두 달 후, 달랑 집 한 채밖에 없던 그는 집을 담보로 은행융자를 받아 「한강상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공장을 짓는 동안 먹고 살 길을 찾아 독일에 건너갔다. 그곳에서 가스오븐, 식기세척기 등을 수입해다 한샘에 납품했다. 마침 보시(Bosch)社에서 후드를 수입할 수 있었다. 1년 남짓 수입하다 보시社에 기술이전을 타진했더니 선선히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경기도 파주에 공장을 짓고 후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국산 후드는 기술 낙후로 가격이 수입품의 10%에 불과한 粗惡品(조악품)이었다. 한샘과 現代라는 큰 업체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그는 단숨에 후드시장에 파고들었다.
마침 대기업에서 훈련받은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부도난 회사에서 일자리를 잃은 고급인력을 다수 스카우트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 역할을 정확히 알고 권한을 적정하게 행사할 줄 알았다. 시장 조사, 판촉, 기술개발이 쉽게 이루어졌다. 매월 경영 성과를 부서장 회의에서 설명해 줬다. 그리고 직원들이 모여서 봉급수준과 보너스 지급액을 결정했다. 사장이 잔머리 굴릴 일이 없었다.
『극장 문지기 해보고 싶다』
1998년 몰아친 IMF 사태는 하츠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IMF 이후, 분양이 자신이 없는 주택건설업체들이 부엌을 호화롭게 꾸미기 시작했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던 하츠는 그만큼 유리했다. 그 외에도 회사 내부의 긴장감이 고조돼 사원들이 단합했고, 업계에서 약자들의 도태로 시장지배력과 가격결정력이 강화됐으며, 자체 유통망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하츠의 레인지 후드 시장점유율은 물량으로 50~55%, 금액으로는 60%를 초과한다. 보통 후드의 가격은 한 개에 4만~5만원. 하지만 한개에 30만~40만원씩 팔리는 고부가가치제품만 보면 하츠의 시장점유율은 80%로 올라간다.
하츠의 명성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세계 후드 시장은 이탈리아가 석권하고 있는데, 2000년에는 이탈리아 업체를 제치고 호주에 진출했으며, 올해는 일본시장을 뚫을 예정이다. 애초 하츠에 기술을 이전해 준 독일의 보시社는 『동남아에서 팔겠으니 OEM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내년에는 세계 후드 업체 가운데 톱 10에 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李秀文 사장의 어릴 적 꿈은 극장 문지기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연극과 영화가 그렇게 좋았다. 중고교 때는 연극에 빠져 살았다.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아마추어 극단을 도와 막을 올린 경우가 여러 번이다.
1992년, 서울공대 건축과 선배이기도 한 한샘의 趙昌杰 회장으로부터 『무슨 연극을 그렇게 시시하게 하냐』는 힐난을 들었다. 李사장은 『돈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 큰소리쳤다. 趙회장은 『돈을 대줄테니 한번 해볼 테야?』라며 의사를 타진해왔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뮤지컬 「명성황후」다. 1895년에 弑害(시해)된 지, 100주년이 되는 1995년 막을 올리기로 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민족성이 가무음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최고로만 만들면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최고의 연출가로 동년배인 尹浩鎭(윤호진)을, 대본을 쓸 작가로는 소설가 李文烈(이문열)을 골랐다. 벤치마킹을 하러 셋이서 영국, 미국, 일본에도 갔다왔다. 일본 연극계의 代父로 꼽히는 아사리 게이타로부터 『문화상품도 일반상품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명성황후」를 준비하는 동안, 실험적으로 1993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무대에 올렸다. 기업경영처첨 우수한 인재와 조직력으로 밀어붙여 5억원 이상 흑자를 봤다. 1995년 「명성황후」를 올렸다. 空前(공전)의 히트였다. 지금까지 7년 간 4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었다. 중간자리 관람료가 5만원이나 되는 데도 관객이 찾아왔다. 항상 좌석의 70~80%는 찼다. 에이콤이라는 별도 법인을 만들고 성남시에 전용극장을 짓기로 했다.
李秀文 사장은 하츠를 코스탁에 등록하기 위해 준비작업을 완료했다. 등록만 끝나면 후배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할 계획이다. 은퇴한 후엔 나비 넥타이 매고 극장 문지기를 한번 해 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