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昺 善 모스크바 특파원
카메룬과 튀니지로부터 감독직 제의받아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56)을 만난 것은 정확히 6년 만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한 것이 마지막 대면이었다.
지난 6월12일 모스크바 시각 오후 1시 모스크바 교외 「힘키」라는 작은 도시(인구 20만 명)에 위치한 비쇼베츠 사무실을 찾아갔다. 강력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스웨덴과 비기는 바람에 16강 탈락이 확정된 異變(이변)의 날이었다.
그는 여전했다. 몸무게도 불어 보이지 않았다. 비쇼베츠는 안경을 낀 채 스포츠 신문을 읽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했다. 시력이 좀 약해진 듯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나이지리아와 영국의 축구 경기를 보았다』고 했다.
러시아 독립기념일(러시아의 날)인 공휴일, 사무실에 출근한 것을 보면 아직도 일에 파묻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올 상반기 동안 월드컵 개막 직전 프랑스 출장을 다녀온 것이 유일한 휴식이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아는 비쇼베츠는 어디 가서 편히 쉬는 성격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책을 읽거나 조깅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처럼 느껴졌다. 술 마신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 출전할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월드컵 개막 수개월 전 카메룬, 튀니지 축구협회로부터 감독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기가 촉박한데다, 팀 컬러를 바꿀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거절했다고 했다.
대화 방향을 월드컵 축구와 히딩크의 한국 대표팀으로 돌렸다. 그는 『한국팀이 눈부시게 달라졌다』며 『월드컵 경기를 통해 한국 팬들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계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발렌시아」 감독 시절의 히딩크와 인연 맺어
―히딩크와 인연이 있는가. 어디서 처음 만났는가.
『내가 舊소련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히딩크는 스페인 프로팀 「발렌시아」의 감독이었다. 소련 대표팀과 발렌시아가 경기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아마 히딩크도 나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히딩크는 네덜란드 감독을 맡으며 유럽 정상급 감독으로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히딩크가 한국팀 감독으로 내정됐을 때 뭘 우려했는가. 한국 대표팀을 지도했던 외국인 감독으로서 충고를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외국인 감독이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동양문화, 즉 한국적 사고방식의 이해가 가장 우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식 사고, 유럽과 전혀 다른 한국 전통적 교육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텃세가 센 한국 축구판에서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을 충고해 주고 싶었다.
내 경험으로는 선수들을 존중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감독과 선수는 신뢰해야 한다. 외국인 감독은 이방인처럼 행동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히딩크 감독도 이런 점에서 고생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도자 경험이 풍부한 히딩크가 잘 극복할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한국 최초의 외국인 감독은 아니었다. 이미 독일의 크라머 감독이 한국팀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팀은 선진 축구를 전하려던 크라머 전술 등을 소화하지 못했다. 감독들이란 명성만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할 순 없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겸비해야 하고, 때론 선수들의 기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는 『한국적인 인간관계, 한국에 대한 지식, 선수들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해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고 한국 대표팀 취임 당시를 회고했다.
『나 자신에 대해 이해시키고, 그 다음 선수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서로서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주 족구를 하였고, 내 인생은 그들의 인생과 하나로 되었다. 나는 언제나 선수들의 옆에 있었다. 감독에게는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항상 우리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우리팀이 제주도로 전지 훈련을 갔을 때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늘 바닷가에 갔었다. 해녀들은 잡아온 해산물을 꺼내, 같이 먹을 것을 권했으며, 소주도 나눠 마셨다. 그것이 나에게는 아주 인상 깊었다』
축구팬은 제3의 선수
―당시 한국팀을 맡아 역대 올림픽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던 한국에게 첫 승리를 안겨주고도 물러나야 했다. 아쉽지 않았는가.
『아쉬운 것보다는 좋은 추억이 많다. 선수들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가나에 1대 0으로 이겼지만, 첫승의 감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올림픽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 선수가 찬 공이 한국 선수 발에 맞고 골인돼 패배했던 것이 쓰라림으로 남았다. 그리고 한국을 떠날 때 무척 아쉬웠다. 한국 축구는 현대 축구를 접목하는 단계였지만 좀더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게임이란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이 따라야 한다. 올림픽 경기 때는 상대적으로 강팀들과 편성된 데다 게임 운도 따르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그렇다. 「프트볼르이 보그」(축구 神)가 프랑스를 외면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팀은 월드컵 개최국으로 홈그라운드 이점을 갖고서 달라진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히딩크가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제3의 축구 선수인 열광적인 축구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의 외국인 감독을 보는 태도와 관련해서 섭섭했던 점을 말해 달라.
『언론과의 마찰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가가 비슷한 상황이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모든 국민과 언론이 기뻐하지만, 실패한 경우에는 뭇매를 맞는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 한국팀이 일본에 3대 1로 이겼는데, 한 선수와 사소한 마찰이 있었다. 그 선수를 베스트 11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선수를 기용하지 않자 당시 신문들은 나를 힐난했다. 나는 당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축구를 이해할 수 있지만 축구를 직접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말이다.
언론은 감독과 선수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줘야 한다. 적극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감독의 게으름을 타파할 수 있게 하고, 축구에 전념하도록 하는 것도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건전한 비판은 도움이 된다』
―히딩크 감독 역시 대표팀을 맡으며 굴곡이 많았다. 프랑스에 5 대 0으로 대패하며 최대 위기를 맡기도 했다.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감독으로서 어떤 충고를 하고 싶었는가.
『히딩크 별명이 「오 대 영」(한국이 프랑스에 5대 0으로 대패한 뒤 한때 그를 비아냥거리던 「히딩크 스코어」를 지칭)이라고 불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멈추지 말고 주변에 지나치게 신경쓰지도 말고 자신의 소신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파워 넘치고 스피디한 모습을 보인 것은 히딩크 감독이 자신이 잡은 계획대로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팀은 늘 외국에서 경기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경기할 때 실력 이상을 발휘한다. 외국에서는 멘탈리티가 다르고 음식, 시차 적응에 애로를 느꼈다. 나는 이를 극복시키기 위해 외국 전지 훈련을 자주 나갔다. 히딩크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한 것은 칭찬할 만하다』
비쇼베츠는 외국인 감독으로서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고 했다. 팀내 소요도 있었다고 한다. 전지훈련을 간 프랑스 툴룬에서 선수들이 외국인 감독인 자신에게 『아퍼, 아퍼』 하며 경기에 못 나가겠다고 항명, 애를 먹었다고 한다.
『넘어지지 않으면 일어날 줄도 모른다』
―히딩크가 「베스트 11」을 일찍 확정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베스트 11을 선정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모든 감독들에게 가장 어려운 상황은 경기에 지는 것이다. 경기에 졌을 경우에 감독은 선수들을 통제할 수 있는 끈들을 놓치게 된다. 그럴 때는 감독 자신만의 특성으로 모든 것들을 극복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감독도 선수들도 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넘어지지 않은 선수는 일어나는 법을 모른다』
―히딩크의 성공요인으로 학연·지연을 끊어 놓은 것이 지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표팀 감독에게는 선수 선발, 훈련 방식 등에 관해 전권이 주어져야 한다. 바깥 바람에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선수 코칭 스태프 선발 때 압력을 받은 적이 있나.
『히딩크는 新·舊 선수들을 모아 월드컵 대표팀을 조화시켰고, 역동적인 팀으로 만들었다. 특히 조별 리그 경기를 통해 한국팀은 탁월한 체력을 바탕으로 빠른 공수 전환을 하는 팀 컬러를 보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팀은 수비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미국과 경기에서 수비수들의 약점은 두드러졌다. 실수가 많았다. 공격수들이 결정적인 순간, 골을 못 넣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는 수비수들의 움직임 느리고 공격時 백패스를 자주하는 모습은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감독은 전술 이해도가 빠르고 두뇌 플레이를 하는 선수, 전술을 부여할 경우 독창적인 플레이로 감독에 부응하는 선수를 선호한다. 그러나 히딩크는 외국 감독이 모르는, 한국 선수 특유의 정신력을 소유한 선수들을 멀리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그는 인터뷰 도중 『미국戰에서 후반 45분 이을용이 최용수의 오른발에 패스를 했더라면 완벽한 골 찬스를 만들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국은 파워, 日本은 경기력이 강점
―한국의 축구 문화와 사회 분위기에 대해 말해 달라. 그리고 한국 축구가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 축구는 발전하고 있다. 근본은 한국 프로축구에 있다. 프로 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프로축구팀이 유소년 팀을 유지해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일본 축구의 발전 토대는 여기에 있다』
그는 『일본 얘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韓日 양국의 축구를 간략히 비교했다.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 스타일을 비교하면, 일본 축구는 경기력 측면에서, 한국은 체력과 파워면에서 우수한 축구를 한다. 일본 축구는 유럽 축구 스타일로 무장했다. 韓·日 축구팀의 스타일을 굳이 따지자면 유럽풍이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한국팀이 더 적극적이고 상대 진영부터 프레싱을 가하는 「히딩크式」으로 무장했다. 즉 네덜란드 스타일을 접목시켰다. 토털 사커 개념이 중시된 것이다』
―한국 축구가 현대 축구의 本流(본류)로 도약하기 위한 適期를 만났다는 말들이 있다.
『그런 도약은 대표팀 감독 한 명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팀들을 맡고 있는 각각의 감독들에게 달려 있다. 유소년 때부터 대학 축구까지 체계적이고 연관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프로팀에 소속된 국가대표팀 선수가 자신의 팀으로 돌아갔을 때 너무나 다른 경기 운영방식과 전술로 인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선수도 감독도 아무런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
―히딩크 감독이 경기장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타나는 등 사생활 문제가 언론에 거론되며 도마 위에 올랐다. 팬들은 특히 외국원정에까지 여자 친구를 동반하는 것은 단순히 사생활 문제를 넘어선 것으로, 팀워크를 해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유럽과 한국의 정서적 차이도 있는 것 같은데.
『윤리적인 측면에서 감독 간에 서로를 평가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한국 선수들에 대해 평가해 달라. 히딩크는 취임 초 『선수들이 순수하고 열정이 있다』고 얘기했다. 잔디 구장 하나 변변찮은 한국 축구 수준은 형편없지만, 대표 선수들의 기량과 체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었다는 게 히딩크의 얘기였다.
『동감이다. 한국의 특성이다. 월드컵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회가 끝나면 많은 한국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할 것으로 본다.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는 한 단계 진보하게 될 것이다』
자기 것을 잃지 않고 남의 것을 받아들여야
비쇼베츠는 한국 선수들의 외국 진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선수들의 스타일이 네덜란드나 영국에 가면 잘 맞을 것이라고 했다. 비쇼베츠는 아직도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의 한국팀 경기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에 3 대 2로 패했지만 독일의 폭스 감독이 자신에게 다가와 『후반전은 완전히 「스탈린그라드」 전쟁과도 같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그날 이후 세계 축구 감독들이 한국 축구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을 맡은 후, 한국 축구에 변화가 있다고 보는가?
『팀 운영 분위기가 네덜란드식이며, 경기방법 또한 유럽 스타일로 변했다.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원래 한국 축구가 지니고 있던 빠른 공수전환, 끝까지 경기에 임하는 자세, 선수들의 투지력 등 자신만의 스타일은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드컵 직전까지 한국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한국 축구가 새로운 것을 얻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최근 한국의 경기를 다 보았다.
지난 컨페더레이션 대회 때는 한국팀은 자신들만 할 수 있는 고유한 스타일, 힘있고 강한 축구를 잃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과 더불어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특성이 가미됐다. 전술과 기술로 프랑스나 유럽팀들을 이긴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현대적 기술 축구를 접목시켜야 한다. 다행히 월드컵에서 보인 한국팀의 경기는 한국 고유의 투지와 스피드 등 정신력 등이 살아나 안도감을 느꼈다』
―한국 축구의 가장 고질적 문제는 「골 결정력 不在」인데, 어떻게 보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감독 시절 우리팀은 아주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다』
비쇼베츠는 인터뷰 답변마다 「우리 팀」 「우리 선수」라는 표현을 썼다. 아직도 한국팀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등은 정말로 환상적인 골을 만들었다. 골이 잘 터지지 않는 것은 선수들 수준이라기보다, 심리적인 문제와 전술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골 결정력의 不在가 한국팀에게만 한정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모든 국가 대표팀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공격보다 수비를 잘하는 팀들이 많아졌다. 현대 축구에서는 수비를 무너뜨리는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은 상대팀의 수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어야 했다』
복사품은 늘 오리지널보다 떨어진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에 선진 축구를 접목시키려고 하는데, 과연 「선진 축구」란 무엇인가?
『한국 축구는 자신의 특징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투지와 정신력, 체력이 가미된 한국 스타일을 고집해야 하며, 좌우측면을 충분히 활용하는 경기 운영방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체력,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정신력으로 빚어진 독특한 팀워크이다. 이런 것을 기본으로 상대방을 연구하여 경기 운영 전술들을 짜야 한다』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끌어올렸다. 당신도 그런 노력을 했을 것 아닌가. 당시에 「어차피 서구선수들과 체력으로는 안 되니까, 한국식의 조직축구를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지 않았나.
『경기는 감독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가 하는 것이다. 감독이 목표를 설정해 주면 선수들은 창조적인 플레이로 조직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한국 대표팀은 최상의 체력을 가지고 게임에 임하고 있다. 정신력도 투지도 대단하다. 일본팀은 한국의 정신력에 늘 주눅이 들었다.
한국 선수들은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현대적인 축구스타일을 접목해야 한다. 그 두 가지를 병행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어느 단계까지는 우리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도 체력을 겸비한 기술 축구의 접목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걸 바탕으로 수비에서의 압박과 공격에서의 중앙 돌파 등 부분 전술이 성공했다』
―히딩크가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한국 축구 수준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現 한국인 코치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히딩크는 대표팀을 맡은 뒤 자신의 카리스마로 히딩크式 축구를 만들었다. 한국 축구가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토대를 잘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히딩크 스타일을 그대로 복사만 하면 안 된다. 상황에 맞게 응용해야 한다. 복사품은 오리지널보다 늘 질이 떨어진다. 히딩크가 경기에서 선보인 압박 축구 등은 한국이 앞으로 무한히 응용할 수 있는 전술이다』
경험 많은 선수가 중요한 경기 때 중요한 역할
―일본 축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프로축구팀에 유럽 리그와 브라질 리그에서 뛴 유명한 선수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 용병들은 팀내 일본 선수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다. 또 유럽이나 브라질에서 뛰어난 감독들을 초대한 것도 원인이다. 그러한 점들이 일본 축구가 발전하는 기본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은 그러질 못했다. 일본은 리트바르스키, 지코와 같은 유명한 축구 선수들의 경기를 선보이며, 自國 선수들에게 어떻게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지 직접 보여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 선수들에게 경기하는 사고 방식을 가르쳐 줬다는 것이다』
―황선홍, 유상철, 최용수, 윤정환, 이운재 등, 당시 대표팀에서도 함께 생활한 선수들이 아직 뛰고 있는데 이 선수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원래 「베스트 11」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감독에게만 있다. 감독은 베스트 11을 선발할 때 상대편에 대항할 적절한 선수를 뽑으려고 고심한다. 또한 이번 게임의 목표, 예를 들면 이번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되는지, 아니면 비겨도 되는지도 고려한다. 윤정환 같은 선수들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예술 축구를 구사할 줄 아는 선수들이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전술들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홍명보는 아주 많은 경험이 있는 선수이며, 이미 월드컵 조별 리그를 통해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홍명보는 수비와 동시에 공격 라인을 가동하는 세계 수준급 선수이다. 그 선수들은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기 위해 좋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홍명보, 유상철, 황선홍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큰 경기일수록 경험이 중요하다』
그는 『큰 경기일수록 경험이 중요하다』며 히딩크가 경험 많은 선수들 선발에 인색한 것에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미국과의 경기에서 보인 페널티킥 키커로 이을용을 선정한 것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에 중요한 순간을 맡긴 것은 문제라는 얘기였다.
프랑스 몰락은 혹사 때문
―이번 월드컵에서는 어떤 스타일의 축구가 세계 축구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남미 스타일과 유럽 스타일이 혼재된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 축구의 頂點에 있는 프랑스팀과 포르투갈팀을 합쳐 놓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두 팀은 공격과 수비의 절묘한 조화가 장점이다. 그것이 바로 가장 합리적인 현대 축구의 모습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프랑스는 탈락했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스타 플레이어들의 혹사 때문이다. 유럽컵 등 소속팀에서 크고 작은 경기를 너무 많이 치르는 바람에 체력적으로 한계에 와 있다. 지단의 부상도 마찬가지다. 5~6년 동안 너무 많은 경기를 하면서, 근육이 피로해 있고, 의지는 있지만 정신력이 지탱이 안 되는 것이다. 선수들은 이쯤되면 영감이 없어진다. 일종의 신경쇠약 같은 것이다』
비쇼베츠는 『한국팀이 월드컵에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기를 기도하고 있다』며 『한국팀이 경기마다 좋은 경기 모습을 보이며 한국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한다면, 나 또한 아주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생(1946년)
1966년 잉글랜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선수로 참가
1981~86년 舊소련 청소년팀 감독, 84유럽컵 준우승
1986~89년 모스크바 디나모팀 감독
1986~90년 舊소련 올림픽팀 감독, 88서울 올림픽 금메달
1994~96년 한국 올림픽·대표팀감독
1997~99년 러시아 프로팀 제니트팀 감독
현재 러시아 1부리그 힘키 축구단 副구단주
▣ 鄭昺善 특파원이 본 비쇼베츠와 히딩크의 축구 스타일 비교
비쇼베츠는 장신 선수, 히딩크는 빠른 선수 선호
비쇼베츠의 전술은 측면 돌파와 적극적인 맨투맨과 프레싱,즉 압박 축구다. 히딩크 전술도 상대 진영에서부터 적극적인 압박을 시작한다. 토털 사커를 응용한 전술의 개조가 눈에 띈다.
비쇼베츠의 훈련방법에는 철칙이 있다. 한번 세운 스케줄은 좀처럼 변경을 하지 않는다. 폭우가 쏟아지건 눈발이 휘날리건 훈련을 한다. 그만큼 준비과정도 철저하다. 히딩크도 이런 점에서 비쇼베츠와 비슷하다. 비쇼베츠는 선수들 훈련시에도 선수들과 함께 뛴다. 서있는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 그만큼 열성적이다. 선수보다 오히려 더 많이 뛴다. 비쇼베츠는 『선수들에게 프로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보고 배우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비쇼베츠의 전술훈련 중점은 기본적으로 강인한 체력 훈련이었다. 스피드 그리고 측면 돌파의 파워 축구다. 맨투맨과 수비강화가 부분 전술로 이어진다. 특히 측면돌파를 이용한 공간축구 활용과 역습은 비쇼베츠가 구사하는 축구 하이라이트다.
비쇼베츠는 『히딩크의 스타일이 다소 미드필드를 강화한 중앙 공격에 있다』며 『나의 축구 스타일과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쇼베츠에게 있어 핵심을 이루는 포지션은 스토퍼와 사이드 어태커, 그리고 리베로다. 전술의 모태를 수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비쇼베츠가 디나모 키예프 시절 은사로 부터 배웠던 축구철학이 여기에 응집되어 있다.
장신 골게터들을 선호하고 특히 헤딩력이 우수한 선수를 중용한 것은 파워 넘치는 영국 축구 전술의 일부분이다. 비쇼베츠는 『히딩크는 미드필더의 운용에 많은 초점을 두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측면 공격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이 헤딩력이 약하고 코너킥과 프리킥 등에서 단조로운 세트 플레이를 보이는 것은 지적할 만한 것이다』고 말했다.
둘 다 체력훈련에 역점
히딩크가 왕복달리기로 체력 측정을 했다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비쇼베츠도 동일한 테스트를 자주 했다. 쿠퍼 테스트로 불리는 체력 측정으로 선수들의 지구력과 순발력을 측정했다.
쿠퍼 테스트는 그가 선수관리의 핵으로 삼는 자료다. 선수들은 이 기록에 의해 철저히 관리된다. 비쇼베츠는 『외국인 감독들은 팀워크를 중시하고, 선수들을 데이터에 의해 관리하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비쇼베츠는 모든 경기를 녹화, 분석한다. 게임이 끝난 후 새벽까지 그리고 수차례 본다. 패스 횟수, 선수들의 이동방향,그리고 개인별 장단점을 분석한다.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패스의 거리와 성공·실패 횟수를 완벽하게 기록, 깨알만한 글씨로 노트에 기록한다. 그는 가끔씩 분석방법을 기자들에 제시하거나 빽빽히 기록된 노트를 보여 기를 죽이곤 했다.
비쇼베츠는 한국 고유의 팀 컬러, 전술 그리고 정신력은 어떤 외국인 지도자가 온다 해도 잘 유지해 줘야 할 부분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보이는 정신력과 같은 특수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이방인 감독은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이나 히딩크 같은 외국인 감독이 선진 축구 전술이나 기술은 주입할 수 있지만, 사고방식과 정신력까지 가다듬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