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토론] 勞組 핑계를 대는 것은 무능한 경영능력과 실종된 정치·정책의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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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正 植 現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1961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大 경제학과 졸업. 고려大 노동대학원 졸업. 한국노총 정책연구위원·同 조사부장·기획조정국장·정책기획국장·홍보국장, 최저임금심의委 연구위원, 勞使政위원회 전문위원 역임. 저서·논문:「한국노총 운동이념」, 「최저임금제론」, 「 노사관계론」,「 4대 보험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등.
목숨을 담보로 일개미처럼 묵묵히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
 
 
  노동운동을 하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집단이기주의다」, 「너무 과격하고,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거꾸로 가고 있다」, 「노동운동이 임금노동조건 개선보다는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것 같다」, 「조직률에 비해 그 목소리나 대표성이 너무 지나치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된 연유에 대해, 우리나라 노동법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너무 우호적이며, 정부가 올바른 원칙을 갖고 일관되게 대응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연 그럴까.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알아본다.
 
  1999년 현재 總취업자수 2028만여 명 중 週 36시간에서 53시간 일하는 사람이 938만명(46.2%), 54시간 이상은 854만 6000명(42.1%)이었다.
 
  현재 法定 노동시간은 週 44시간이며, 勞使합의로 週 12시간을 더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多數가 週當 70∼80시간씩 일하고 있다(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2001년 우리나라 노동자의 週間 평균 노동 시간은 47시간 30분으로 나타났다.-편집자 注).
 
  우리 노동자의 低임금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일하고, 산업재해로 제일 많이 죽는다」는 것이다. 低임금은 長시간 노동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로 하루에 7∼8명이 죽어 나간다. 산업재해의 가장 큰 이유도 長시간 노동이다. 사람은 누구나 「일과 餘暇(여가)」 사이의 선택에 직면하는데, 소득이 어느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여가 대신 일을 원한다(물론 그나마의 일자리도 없는 것이 다반사지만). 결국 「목숨을 담보로 일개미처럼」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것은 「일주일에 44시간만 일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이 너무 낮거나, 물가가 너무 비싸고, 자녀 교육비·주거비 부담 등이 크기 때문이다.
 
  低임금 長시간 노동의 폐해는 사망통계로도 드러난다. 2000년 사망원인 통계 조사는 남자의 사망률이 전체적으로 여자보다 1.2배 높다. 경제활동의 절정기인 40代에 이르면, 8大 死因의 남자 사망률이 여자보다 3배 이상으로 높다. 통계청은 그 원인을 「過多한 飮酒(음주) 및 吸煙(흡연)과 경제활동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으로 본다. 이 모든 것이 長시간 노동의 결과다.
 
  低임금 長시간 노동이라 해도 적어도 직장이 있는 노동자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2001년 8월末 현재 失業者數는 79만 5000명, 실업률은 3.6%였다. 「실망 실업자」를 포함하면 실업자는 더욱 늘어난다. 失業급여 수혜자 수는 1996년 5708명에서 1999년 48만4772명으로 늘어났지만, 실업자의 절반 정도가 턱없이 부족한 失業급여 혜택을 받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非정규직 노동자는 무려 760만명을 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첫째 많은 경우 非자발적이거나 자발적 선택으로 위장된 「강제된 자발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 둘째 同一노동에 대해 차별 처우를 받고 있다는 점, 셋째 노동법과 사회보험 등 자신의 權益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非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52.7%에 불과하지만, 週當 노동시간은 47.5시간으로 정규직의 47.1시간보다 오히려 길다.
 
 
  勞組는 민주주의의 학교
 
 
  그렇다면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무엇인가.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약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를 전제」하면서 그것을 견제하고 보완하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체」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2000년末 현재 5698개이며, 조합원은 153여 명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은 12%이다. 연합단체는 46개(産別연맹 또는 産別노조), 總연합단체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두 개이다. 조직분포는 한국노총이 90만여 명, 민주노총이 60여 만명으로 추산된다.
 
  勞組의 63.4%는 조합원이 100명 미만, 88.2%가 300명 미만의 조합원을 갖고 있다. 전체 노조의 11.8%가 조합원 수에선 78.3%를 장악하고 있다. 조합원 1000명 이상인 勞組가 196개, 500명 이상이 401개, 300명 이상이 676개이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말이 있다. 노동조합은 헌법과 노동관계법에 의해 만들어진 노동자 대중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항구적인 투쟁조직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조합비를 내면서 일상적으로 대중적이고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를 밟아서 활동하는,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조직이 노동조합말고 또 어떤 조직이 있는가.
 
  노동조합은 가장 기본적인 조합원의 권익신장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며, 경제적 기능과 共濟的 기능 그리고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 경제적 기능과 共濟的 기능은 주로 기업단위 노동조합이, 정치적 기능은 上級단체인 연맹이나 노총이 담당한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기능과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조직 역량과 정치 역량 및 투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적극 노력한다. 이러한 노동조합과 사용자와의 관계를 우리는 勞使관계라고 부른다. 勞使관계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정부라는 세 主體가 만들어 간다.
 
  그밖에도 노동운동은 정치경제 상황, 노동시장의 需給(수급)구조, 노동관계 法令(법령)과 慣行(관행) 등의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勞使관계는 협력적 측면과 갈등·대립·투쟁하는 兩측면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1987년 이후 10여년 간 노동자들의 賃金·노동조건 개선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민주화의 진전, 소득 분배의 개선,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민주성 提高(제고) 등 이 나라 민주화의 실질적 진전에 적잖은 기여를 해 왔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음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항공운항 승무원, 철도 기관사, 가스 노동자, 발전소 노동자들은 물론 의사·약사들도 집단행동을 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파업은 「제거되어야 할 腫瘍」인가?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또 합법적 틀 內로 위치지을 것인가이다. 그렇다면 왜, 노동자들은 파업을 할까.
 
  파업은 고달프고 힘들 뿐만 아니라, 이른바 「無勞動 無賃金」 원칙에 따른 임금감소와 징계 및 해고, 심지어 구속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여론의 혹독한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사용자의 물리적 폭력과 公權力 개입까지 겹치게 되면 파업의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따라서 노동조합이야말로 최대한 파업을 자제하고,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려 한다면 거기에는 곡절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파업의 이유를 따져 보기도 전에 노동자의 멱살을 잡거나, 여론이란 매질을 가혹하게 해 대는 데 익숙해 있다. 작년 봄 항공조종사 등 노동자들의 파업 당시 일부 언론이 「가뭄으로 어려울 때인데 파업을 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인 것은 그 좋은 例이다.
 
  심지어 勞組의 파업은 종종 「제거되어야 할 腫瘍(종양)」쯤으로 간주된다. 과연 파업은 나쁜 것이며, 「제거되어야 할 종양」인가?
 
  아니다.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이다. 파업에 관한 한 사회의 容忍度(용인도)와 국민의 理解度(이해도)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連帶(연대)의식을 재는 尺度(척도)이다.
 
  내 불편을 이유로 남의 정당한 權利행사가 봉쇄된다면 결국은 모든 사람의 권리행사 규제와 제한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파업을 죄악시하는 행위야말로 민주주의와 人權에 반하는 것이다.
 
  종양이 문제가 된다면, 기업이나 사회에 內在해 있는 「종양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닐까.
 
 
  勞組와의 실질적 대화가 필요
 
 
  왜 우리나라 勞使관계는 늘 불안정하고, 때로는 파업과 公權力의 물리적 대결로 치달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勞組를 인정하거나 勞組와 대화를 하지 않으며, 대화를 하더라도 실질적 대화가 아니라 형식적 대화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와 조건을 달아 실질적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勞使관계 불안의 핵심요인이다. 勞組 핑계를 대는 것은 무능한 경영능력과 실종된 정치·정책의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파업이 나오며, 불신과 否定(부정)이 싹트게 된다.
 
  勞組의 요구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賃金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것은 勞組의 기본적인 요구다.
 
  다음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의 중단이다. 이는 IMF 경제위기 이후 두드러진, 가장 절박한 요구다. 고용불안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도개선이다. 週 5日 근무, 週 40시간 노동제, 非정규직 차별철폐와 보호, 4大 보험의 민주적 개혁 등이다.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먼저 정부와 기업은 여론몰이나 公權力을 통한 물리적·他律的인 勞使문제 해결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곪아 터지게 만드는 것이며, 앞으로 더 큰 폭발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은 조건 없이 勞組와 진지하고 성실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勞組를 기업경영과 국가정책 결정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아울러 당국은 新자유주의에 입각한 일방적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勞組와 사전 협의 또는 합의下에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정책전환이 있어야 한다.
 
  물론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 경향 등 勞組에게도 부정적 면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요인의 치유와 개선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항상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과연 힘이 센 것일까?
 
  아니다. 답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힘이란 투쟁력과 조직력,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기본적으로 힘이 약하다. 우리나라의 勞組는 기업별 勞組이기 때문이다. 기업별 勞組는 외국에서는 「會社勞組(Company Union)」 또는 「御用勞組(Yellow Union)」라 불리며, 勞組 취급도 안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힘의 우위에 있는 것이다. 힘이 센 사람은 함부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 힘의 행사에 대한 책임과 위험부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逆說的(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이 호소할 수 있는 길이 그것밖에 없음을 反證(반증)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 중 조직이기주의나 집단이기주의, 파업 樣態(양태)의 「과격성」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구조적 한계이거나, 노동조합의 힘이 약하다는 자기고백일 뿐이다. 이를 치유하는 길은 정부와 기업 측이 반대하는 「産別勞組」로의 전환밖에 없다.
 
  역사에 생략과 비약은 없다. 價値(가치)평가 여부를 떠나, 오늘날 선진국의 안정적인 勞使관계는 이미 과거에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이다.
 
  일부에서 문제삼는 노동운동의 정치성은 勞組운동의 당연한 責務(책무)이다. 개별 기업 단위에서의 경제적 문제해결은 노동자 사이의 富益富 貧益貧과 兩極化(양극화)를 초래하는 핵심요소이다. 이를 정치적·제도적으로 보완하려면 勞組가 정치성을 갖는 것은 불가피하다. 노동운동의 정치성은 정부와 기업이 비판하는 勞組의 과격성과 조직 이기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를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길로 오히려 촉진·강화시켜 나아가야 한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勞使관계 설정해야
 
 
  흔히들 勞組의 不法파업에 대한 엄정한 法집행을 강조하지만, 우리의 노동법규가 얼마나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것인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또 「필수 公益사업장」과 「강제 중재제도」 같은 違憲的(위헌적)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국내 노동단체들은 물론 ILO (국제노동기구)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문제들이다.
 
  이러한 惡法조항들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와 투쟁을 不法으로 몰고, 구속자와 해고자를 量産(양산)시켜 勞使관계를 악화시켜 온 主犯이다. 이는 정부와 기업이 헌법이나 국제법, 국제적 慣行에 따라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문제를 법의 테두리에서 해결하기보다는, 法으로 기본권을 박탈하고 公權力으로 문제를 「진압」하겠다는 無원칙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년 항공운항 승무원들의 파업을 보고 놀란 정부와 기업이 월드컵을 앞두고 항공운항 승무원의 파업을 職權(직권)중재대상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非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어 노동시장이 상당히 높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고,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라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노동조합 조직률이 12%밖에 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勞使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勞組의 탓으로만 돌리면서 정리해고 완화 등 노동조건 惡化, 勞組의 권리행사 제약 등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고 가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財界는 勞組를 동반자로 인식하면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勞使관계 설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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